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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의 어떤 하루 _ 미라이, 이쿠 2

댓글: 8 / 조회: 519 / 추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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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13, 2018 00:39에 작성됨.

 한 달이 넘은 후에는 시어터의 모두가 강제적으로 브랜드를 동결당한 채 우유만 마셔야 하는 두 광고 모델에 대한 문제를 꽤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저 둘에게 어떻게든 우유를 먹이지 않기 위해 냉장고의 우유를 시어터의 멤버들이 각자 몇 개씩 배분해 가져가기까지 했으나 그 다음날 거짓말처럼 다시 복구되어버린 냉장고 상태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뭔 얘기조차 꺼낼 시간이 없던 프로듀서도 오늘 오후에 극장에 머물 것이라 했다. 프로듀서가 있을 때 일을 해결 보는 게 가장 좋을 거란 의견엔 모두가 적극 동의했다. 그렇다고 오로지 이 일의 해결을 위해 멤버들이 집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최대한 극장에서의 스케줄이 겹치는 멤버들이 이 일에도 신경을 쓰기로 했다.


 "자아-. 커피 우유 한잔씩 마시는 거 어때? 시럽 안 넣은 커피 우유는 투명한 컵에 담았으니까 각자 알아서 가져갈 것."


 가득 커피 우유 만들어 온 리오는 대기실의 탁자 중간에 쟁반을 놓았다. 한 명씩 제 입맛에 맞는 커피를 찾아갔다. 그럼에도 쟁반 위에는 컵이 몇 개나 남아 있었다.


 "리오씨. 인원수보다 너무 많이 만드신 것 아닌가요?"


 "응응. 괜찮아. 코토하쨩. 분명 몇 명 더 오지 않을까?"


 "이거... 그걸로 만드신 거죠?"


 "시즈카쨩. 정답이야. ABC 우유! 아직도 한 가득이나 남아있던데?"


 "그나저나 그럼 모이게 된 멤버는 나, 시즈카쨩, 리오씨, 치즈루씨. 이렇게인거죠?"


 "나도 있다고?"


 "아, 줄리아쨩까지."


 난간에 걸터앉아 기타를 만지작거리던 줄리아가 한 켠에 기타를 놔두고 테이블로 합석했다. 테이블 중간에 남은 커피 중에서 시럽이 들어간 컵을 택한 줄리아는 버릇처럼 대기실의 텔레비전을 틀었다.


 "줄리아씨. 중요한 말이 오고갈 텐데 텔레비전을."


 "아아. 그러네. 미안. 시즈. 버릇처럼..."


 "줄리아짱, 집에 가자마자 텔레비전 트는 게 버릇인가봐?"


 "크흣..."


 리오가 살짝 던진 농담에 딱히 반박하지 못 한 줄리아는 리모콘의 전원 버튼에 손을 가져다 대려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익숙한 얼굴들에 행동을 멈췄다.




 A! Ace! B! Best! C! Choice!


 와-! 이쿠쨩! 영어단어 외우는 거야? 어디어디... ABC?


 미라이쨩! 이건 영어 단어가 아니라구! 우유계의 새로운 질서! ABC를 세우기 위한 이름하야 에이스한 베스트 초이스! ABC 우유라는거야!




 "아... 저거. 꾸준하네."


 첫 날 광고를 마주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키도 쑥쑥 자라 톱 아이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저 광고 때문에 자라나는 아이돌들이 다른 것들은 제쳐둔 채 우유만 마셔댈 줄 누가 알았을까. 광고 타임이 숙연하게 끝나자 줄리아는 말없이 텔레비전의 전원을 껐다.


 "모이긴 했지만 우리보다도 미라이와 이쿠가 와야 하잖아. 시즈카쨩. 미라이랑 이쿠쨩은 오늘 극장에 온대?"


 "아. 예. 두 사람 다 극장에서 레슨이 있거든요."


 코토하의 물음에 시즈카는 각각 두 사람과 주고받은 라인을 확인하며 답했다. 미라이가 이쿠보다 약 30분 정도 빨리 도착할 예정이었다.


 "아아. 그럼 대충 시간은 맞을지도. 프로듀서도 그 즈음 온다네. 방금 연락이 왔어."


 코토하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말이지. 일단 우리의 목표는 미라이, 이쿠, 프로듀서군의 3자 대면인건가?"


 "그렇지 않을까요?"


 "그럼 그 전에 우리가 두 사람에게 느꼈던 위화감 같은 게 무엇이었는지 한 번 얘기해볼까?"


 연장자답게 리오는 대화를 리드해갔다.


 "리오씨와 같이 느꼈던 것 중에 제일 이상하게 느껴졌던 건 역시 계약서의 얘기겠네요."


 "치즈루씨도 들으신 거예요?"


 치즈루의 말에 시즈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벌떡 들어 물었다. 미라이가 비밀이라고 부탁했던 말이 뒤이어 바로 떠올랐지만 아차 했을 땐 이미 늦어버렸다.


 "어머. 시즈카쨩도 들은 바가 있으신가요?"


 "저...음... 미라이가 말했어요. 3개월 동안 계약을 했는데 그 기간 동안 우유만 마셔야 한다고요."


 어차피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해 모인 건데 말해도 괜찮겠지. 시즈카의 말은 모두가 금시초문이었는지 각각의 멤버 모두가 각자의 방식대로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 무슨! 아무리 광고주가 갑이라고 해도 3개월 동안 우유만 마시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와요!"


 "이 바보P. 대체 뭘 어떻게 계약한 거야?"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데. 시즈카쨩. 미라이가 정말 그렇게 말했어?"


 "네. 코토하씨. 정확한 건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대충 그런 뉘앙스였다. 같은 말이었어요."


 더 정확히 설명해주고 싶어도 미라이에게 들은 내용이 딱 그 정도였다.


 "그... 아무리 신제품의 홍보가 중요하다 해도 밖에서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도 아닌데 애들이 극장에서도 죽어라 우유만 마신 걸 보면..."


 "하, 하긴. 리오씨 말처럼 공과 사 구분 않고 두 사람 다 그 우유만 마셨으니까요."


 하지만 짧은 경악 후에는 모두가 계약서의 내용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아마 그렇지 않고서야 비상식적으로 우유를 드링킹하지 않았을 거란 판단에서 도출되었을 것이다.


 ♬♩♪♬


 꽤 진지한 얘기가 오고가는 마당에 벨소리가 울려댔다. 두리번거리던 시즈카는 제 폰이라는 걸 인지하고는 몇 번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양해를 구하곤 조심스럽게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댔다.


 '시즈카쨔앙-! 도저히 안 되겠어-!! 나 초코우유 하나만 가져다주면 안 돼?'


 조심스럽게 가져다 댄 게 무색하게 전화기를 뚫고 나오는 엄청난 데시벨에 회의 하던 모두가 숨죽여 빵터졌다. 유일하게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짚은 시즈카는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참지 못했다.


 "하아... 편의점에서 사서 마시면 되잖아. 미라이."


 '시즈카쨔앙-!'


 "대체...! 하아. 알았어. 알았다구."


 '우와앙. 고마워. 나 의상실에 있을게! 커튼 뒤에!'


 "뭐 그렇게 뒤에 숨어 있는거야?"


 '그.. 그래도...!'


 "......알았어. 끊어."


 '고마워어어어어어어'


 길게 끄는 고마움의 인사를 시즈카는 단 번에 끊어버렸다. 의자를 뒤로 주욱 당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즈. 올 때 아이스크림."


 "줄리아씨. 농담할 기분이 아니에요."


 "차라리 잘 됐을지도?"


 "리오씨"


 "얼른 갔다 와. 미라이 반드시 데려오고!"


 "알았어요. 코토하씨. 정말 다들 진지하지 못하다니까."


 시즈카는 퉁명스럽게 혼잣말 하며 대기실을 벗어났다. 주머니를 뒤적거리자 마침 딱 미라이에게 초코 우유를 사줄 수 있는 돈이 잡혔다. 이 바보 같은 상황에 어울려줘야 하다니. 더군다나 얘는 이왕 다른 게 마시고 싶으면 주스라던가 탄산이라던가 아무튼 궤가 다른 음료를 고를 것이지 그 와중에 일탈한다고 고른 게 초코 우유다. 우유를 좋아하는 그 피는 어디 안가는 모양이지 원. 터벅거리며 편의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파도에 휩쓸릴 것 같은 느낌.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 같은 느낌. 불길한 느낌. 싫고 자시고를 떠나서 그냥 그런 불안함이 가는 내내 발목을 무겁게 했다. 그 기분을 뒤로 미룬 채 편의점에서 초코우유를 결제한 시즈카는 재빨리 극장의 의상실로 향했다. 조만간 이쿠도 온다고 했는데. 괜한 기분에 홱 뒤돌아보았다. 뒤따라 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몇 걸음 걷다가 다시 뒤돌아보고 또 재차 뒤돌아보기를 여러 번. 의상실의 문 앞에 선 시즈카는 닫혀있는 문을 주먹으로 콩콩 두드렸다. 그 바로 후에 있을 비극의 만남 그 사이에 끼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똑똑똑-.

.


.


.

 이쿠는 운다. 당황한 미라이도 울먹거린다. 대기실에 모여 있던 멤버들도 전혀 예상 못한 상황에 놀라 일단 서로가 찢어져 한 명씩 달래주었다. 제일 늦게 대기실로 오게 된 시즈카는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흑... 나. 나는. 나도. 우유. 막 그렇게. 맨날. 싫었는. 끄흑."


 최대한 울음을 삼키며 말을 이어가려 하지만 그동안의 설움이 복받쳤는지 이쿠는 단어 하나하나를 힘겹게 끊어 말했다. 미라이야 조금씩 먹기 벅차다는 티를 내긴 했었지만 이쿠에게서는 힘들다는 뉘앙스를 다들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들 더 이쿠의 반응에 어쩔 줄 몰라했다. 미라이는 미라이대로 난리도 아니었다.


 "이쿠쨩. 미안해. 그게 아니었는데. 으아앙."


 한 달 동안 잘 따랐는데 그 잠깐의 일탈이 이런 우연을 불러왔을 줄은 상상도 못했겠지. 애한테 미안해 죽겠는데 허공에 뻗은 손은 차마 이쿠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헤메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시즈카는 미라이의 일탈에 동참해 준 자신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저기. 이쿠쨩. 일단 앉아서 얘기할까?"


 이쿠의 등을 하릴없이 토닥이며 달램에 여념이 없던 코토하는 이쿠를 조심스럽게 이끌어 의자에 앉혔다. 옆에 있던 줄리아에게 어떤 눈짓을 보내자 줄리아는 그를 눈치 챘는지 빠르게 대기실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줄리아의 손에는 빨대가 꽂힌 요구르트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코토하는 그를 받아 이쿠에게 건넸다. 훌쩍이던 이쿠는 요구르트를 사양 않고 두 손에 쥐었다. 리오와 치즈루 또한 미라이를 이쿠의 곁에 앉혔다. 줄리아는 직접 요구르트를 미라이에게 건넸다. 미라이는 받긴 했으나 그를 도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차라리 이렇게 터져버린 게 잘 된 걸지도 몰라. 코토하는 속으로 생각하며 손짓으로 나머지 멤버들에게 앉으라는 사인을 보냈다. 진정될 때 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히끅거리며 어깨를 들썩이던 이쿠는 좀 진정이 되었는지 손에 쥔 요구르트를 한 모금 쭉 마셨다. 그 옆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미라이의 머리를 옆에 앉은 치즈루가 말없이 쓰다듬었다.


 "안 그래도 언젠가 이런 사단이 날 것 같았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쿠쨩. 미라이쨩. 우리에게 말 해 줄 수 있나요? 한 달 넘게 우유만 먹게 된 이유 말이예요."


 치즈루가 차분하게, 나긋나긋하게 두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이쿠는 채 다 먹지 않은 요구르트를 앞에 테이블에 놓았다. 양 손으로 눈가를 거칠게 비볐다.


 "그게... 프로듀서씨가 말했었어. 광고를 찍고 나서 조심해야 할 게 있다고."


 "조심해야 할 거?"


 코토하가 제일 핵심이 되는 부분을 되물었다.


 "계약서 내용 중에 계약 기간 동안 다른 음료를 마시지 말라는 뜻의 내용이 있다고 그랬었어."


 "미라이가 말했던 게 사실이었던 거야?"


 줄리아의 물음에 풀죽어 있던 미라이가 놀라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쿠는 별 반응 없었으나 미라이는 이쿠의 심기를 몇 번이나 슬그머니 살폈다.


 "미라이쨩은 우유를 좋아하고, 나는 성장해야 하는 아이니까. 아니. 그런 걸 다 떠나서. 계약을 어기면 큰 일이 난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고! 프로듀서씨가 분명히 우리를 위해서 따 온 일인데 계약된 내용대로 하지 않으면 우리뿐만 아니라 극장 모두도 피해를 볼 거잖아."


 ".....이쿠쨩. 나는 그것도 모르고....!"


 으아앙. 미라이가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며 이쿠에게 안겨들었다. 진정되었던 이쿠는 미라이의 울음에 다시금 어깨를 들썩이며 히끅거리기 시작했다.


 "나, 나는... 이렇게까지 우유만 마셔야 할 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계약 내용 같은 거 함부로 말 하면 또 안 될 것 같고... 흑. 우유를 좋아하지만 우유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걸 너무 막 확 깨달아버려서 으아앙. 그래도 몰래 마시면 이쿠쨩도 걱정을 덜 하고 계약도 안 어기고 괜찮을 거라 생각해서. 흐아앙"


 "미, 미안해. 미라이쨩. 하지만 무서웠는걸. 잘못 어기면 큰일 나는 거잖아."


 서로 껴안으며 목 놓아 우는 두 아이를, 나머지 멤버들은 차마 달래 줄 생각을 못한 채 얼빠진 것 처럼 굳어버렸다. 어른의 사정에 묶였던 아이들이 저들 나름대로 발버둥치고 있었다는 걸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이 미안했다. 그리고 그 미안함은 자연히 잘도 이런 계약을 성사시킨 프로듀서에 대한 분노로 향했다.


 "어, 얘들아. 모여 있었구나."


 ......프로듀서어!!!!!!!!!!!!!!! 5명의 멤버들이 한꺼번에 소리치며 한 대 칠 것처럼 다가오는 광경에 프로듀서는 깜짝 놀라 그대로 대기실 문을 닫고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어지간히 놀란 모양인지 한 쪽 손으로 심장을 부여잡는데, 그 모습에도 그다지 동정이 들지 않았다. 시즈카와 코토하는 문을 열곤 프로듀서를 송환하듯 끌고 들어와 가장 상석에 프로듀서를 앉혔다. 앉자마자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미라이와 이쿠를 보자마자 프로듀서는 짚이는 구석이 있는 듯 탄식을 뱉었다.


 "할 말은? 이, 바보P!"


 "이거... 애들한테 말해야지 했었는데..."


 "말해야지, 말해야지가 아니라 프로듀서. 이상했으면 바로 말을 했어야죠."


 "저기, 프로듀서군. 얘네들이 이럴 수밖에 없는 그 계약서의 내용이 뭐야?"


 "정확히는 '계약 기간 내 자사품의 음료 외 다른 음료의 브랜드가 드러나는 사진이나 영상 등의 노출 자제 요청.' 이었어."


 "...... 자제 요청이요? 그게 전부인가요?"


 치즈루가 갸우뚱거리며 재차 물었다.


 "아무래도 신제품이다 보니까 그 제품을 광고하는 모델들이 타 브랜드의 음료 같은 걸 블로그나 SNS 올리는 게 신경 쓰였는지..."


 "미라이는... 3개월 동안 우유만 마셔야 한다고....."


 시즈카는 며칠 전 미라이의 말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미라이가 제게 해 준 말은 변함이 없었다. 이거 내용이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그.. 결국엔! 같은 말이잖아. 언제 어디서 사진이 찍힐 줄 모르는데 다른 걸 먹고 있으면 피해를 볼 거니까!"


 이쿠가 항변하듯 외쳤다.


 "맞아요! 우리.. 그래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이돌인데...!"


 "아이고. 얘들아. 이건 정말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나는 정말 너희들이 그 계약서의 내용을 그렇게까지 깊게 파고들 줄 전혀 생각 못했어. 그 우유 한꺼번에 사 왔던 것도 광고 찍은 기쁨에 저지른 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 미안하다."


 프로듀서가 이쿠와 미라이 앞에 양 손을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결국 정리해보자면 계약서의 내용은 크게 문제될 만한 내용은 아니었고, 프로듀서는 계약서의 내용 중에서 미라이와 이쿠에게 '이러한 내용이 있으니 유의하라'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설명해줬을 뿐이지만 광고 계약이 처음이었던 미라이와 이쿠에게는 그 계약의 내용이 언제 어디서 사진이 찍힐지 모르는 아이돌의 직업적 비애까지 파고들어 '언제 어디서나 타 브랜드의 음료를 마셔서는 안된다'로 곡해되어 벌어진 해프닝이었던 것이다. 매일 우유를 먹기 버거웠지만 차마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채 속으로 끙끙 앓던 미라이와 극장의 피해까지 생각해 힘들다는 것을 티도 내지 않은 채 꾹꾹 참아온 이쿠가 대견하게 보이는 것도 잠시. 멤버들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오해 탓이라지만 한 달 넘게 이쿠와 미라이가 ABC우유만 마셔온 노고는 분명 광고주의 입장해서는 충분히 치하해주고 남을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이 ABC우유만 연신 마셔댄 걸 아는 사람은 결국 극장 안의 사람들 말곤 없었다. 있더라도, 분명 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배경처럼 지나치는 존재였겠지. 방송국에서도 마시고, 행사장에서도 홍보했다지만 그건 결국 그걸로 끝인 걸.


 "...... 흔적이 없잖아."


 "응? 코토하쨩?"


 "미라이랑 이쿠가 한 달 넘게 ABC 우유만 마셔 왔다는 걸 증명해 줄 흔적이 없잖아요. 달리 생각해보면."


 "......그러네."


 "그거... 억울하잖아요."


 코토하는 마치 자신이 한 달 동안 우유를 마셔운 당사자인 것 처럼 가슴아파했다.


 "그 계약서. 달리 얘기하자면 계약 기간 동안 ABC우유 마시는 걸 블로그 같은 데 마구 올리면 좋을 거란 뜻도 되는 거지?"


 "......으아아앙! 억울해! 한 달 동안 죽어라고 마셔댔는데!"


 미라이가 다시 이쿠를 부둥켜안는다. 미라이를 품에 안긴 했지만 이번에 이쿠는 울음을 터트리지 않았다. 다만 그 어린 아이에게서 쉬이 볼 수 없는, 세상에 달관한 표정을 목격할 수 있었다.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도 모자라서 남들은 그 지독했던 노력의 흔적조차 알 리 없다니. 계약의 강박에서 벗어나 상식선으로 생각이 돌아오자 이쿠는 순간 맥이 탁 풀려버리는 것 같았다.


 "그... 한 달 동안 노력한 게 있는데 뭔가 억울해."


 "하지만 이쿠쨩. 두 달 동안은 정말 우유 입에 안대도 될 것 같아."


 "미라이쨩. 억울하지 않아? 우리가 엄청 마셨다는 걸 분명 윗사람들은 알아야 하잖아!"


 "그건 그래! 맞아! 억울해! 하지만... 어떻게...."


 설움에 잠긴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며 생각에 잠기던 코토하는 좋은 방법이 떠올랐는지 작은 감탄사와 함께 스마트폰을 들곤 카메라 앱을 활성시켰다. 테이블 중간에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커피 우유를 찰칵 하고 찍은 뒤로는 엄지손가락을 바삐 움직여 타자를 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약 5분간의 짧은 행동을 마무리 지은 코토하는 모두를 향해 자신의 액정 화면을 보여주었다.




 제목 : ABC 우유로 커피 우유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사진]

 

 쨘-. 리오씨가 직접 만들어 준 커피 우유입니다!

 맛있겠죠?

 이 커피 우유. 우리 시어터에 미라이쨩, 이쿠쨩이 광고 중인 ABC 우유로 만들었어요.

 이쿠쨩이랑 미라이쨩. 요즘 이 우유만 먹느라 정신이 없네요 (웃음)


 음... 내용은 여기까지에요.

 소소한 극장의 근황이랄까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p.s 당분간 우유는 ABC 우유입니다!


 타나카 코토하




 이미 업로드를 마친 블로그는 많은 좋아요를 실시간으로 찍고 있었다. 팟 하고 달린 댓글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수확 또한 있었다.


 [얼마 전에 이쿠쨩 우유 마시는 거 봤었는데 이거였구나!]


 "이거..."


 코토하의 블로그와 댓글을 몇 번이고 정주행하던 이쿠의 물기 젖은 눈이 반짝였다. 여러 개 달린 댓글에서 이쿠와 미라이가 해당 우유를 마시고 있는 걸 목격했다는 내용이 적지 않게 달리고 있었다.


 "헛되지 않았어. 미라이쨩!"


 "응?"


 "코토하씨! 고마워! 나, 길을 찾은 거 같아!"


 "저기. 이쿠쨩. 어떤 길을 말하는 거야?"


 "미라이쨩. 우리 이제 블로그에 집중해보자!"


 "...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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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미나코씨의 특제 빙수!



안녕하세요! 나카타니 이쿠예요!


오늘 미나코씨가 ABC 우유를 이용해 빙수를 만들어 줬어!

이름하야 수제 눈꽃 빙수!

우유 자체를 냉동실에 꽁꽁 얼려서 그걸 강판 같은 거에 막 갈아서

연유 뿌리고 딸기 올리고 초코과자도 올리고!

쨔잔!


[사진]


맛있어 보이지?

모두들 ABC 우유로 빙수도 만들어 먹어봐!

완전 맛있어!



그럼 또 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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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초코우유!



오늘, 팬사인회에 와 준 모두들 정말 고마워요!

아! 카스가 미라이예요!

사인을 받아간 팬 여러분들에게 많은 응원 받아서 기뻤어요!


그리고 선물들!

우유에 타 먹으라고 준 초코가루 완전 맛있어요!

ABC 우유는 왜 초코우유가 안 나올까요?

하지만 덕분에 맛난 우유를 마실 수 있었어요!


에-. 옆에서 츠바사쨩이 이렇게 쓰면 안 된다는데

어쨌든 제가 마신 건 ABC 우유니까요! 데헤헤-


모두들 오늘 고마웠어요!

다음번에도 잘 부탁드려요!


우유도 잘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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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장기



안녕하세요! 나카타니 이쿠예요!

다들 ABC우유 잘 마시고 있어?


코노미씨가 우유를 매일 한 잔씩 마시고 있대

오늘 아침에 키를 쟀는데 키가 조금 큰 것 같다고 해서 재 봤는데 똑같았어!

코노미씨는 성장기가 멈췄다고 슬퍼했지만

그래도 뼈가 튼튼해 진 것 같다고 했어!


맞아! 그러고보니 우유는 뼈에 좋았지.

코노미씨가 느낀 게 거짓말이 아닐거야.


[사진]


이건 코노미씨가 ABC우유를 넣고 만들어 준 밀크쉐이크야!

맛있었어!


그럼 또 만나!


.


.


.


제목 : 광고판



우와!! 이것 보세요!!


[사진]


지하철 광고판에 나랑 이쿠쨩이 이렇게나 크게!

아무리 봐도 너무 신기해서 시즈카쨩에게 사진을 부탁했어요!


우리보다 우유가 더 크게 나온 것 같지만

우유도 중요하니까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우유도 잘 부탁드려요!




카스가미라이





.


.




 와-! 이쿠쨩! 이거 ABC 우유 초성인거지?! A! Ace! B! Best! C! Choice! 이제 확실히 안다구!


 뿌뿌-. 미라이쨩! 틀렸어! 단순한 ABC 우유가 아니라구!


 에-. 분명 ABC 우유 맞잖아!


 잘 보라구 A'B'C 우유랑 AB'C' 우유야!


 으음... 잘 모르겠는걸.


 Ace! Banana! Choice! 그리고 Ace! Best! Chocolate!


 아하! 바나나 우유랑 초코 우유구나!! 드디어 새로운 맛의 ABC 우유가 나왔어!!


 


 자라나는 미래의 톱 아이돌과 함께 업계의 탑을 노립니다. ABC 우유ㅡ






 "저기... 미라이. 뿌듯하다는 건 알겠는데 지금 그러고 있는 건 뭔가 좀... 오버하는 거 같달까."


 극장의 대기실. 텔레비전 바로 옆에 팔짱을 끼고 서선 기세등등한 포즈를 유지하고 있는 미라이를 보곤 시즈카는 어처구니가 없어 한 마디를 던졌다. 미라이는 데헤헤 웃으며 포즈를 풀고는 시즈카에게 달려들었다. 그 광경을 보곤 코토하는 웃음을 터트렸다.


 "잘 됐네. 미라이쨩. 여러모로."


 "데헤헤. 어떻게 보면 코토하씨 덕분인걸요!"


 "뭐... 사실 3개월 지나면 광고 안 찍을 줄 알았지만."


 "에. 시즈카쨩. 그럴리가! 이제 초코 우유랑 바나나 우유도 나왔는걸!"


 그 사단이 났었으니까 말이지. 아무튼간에 계약서 문항을 오해해 벌어졌던 해프닝은 코토하가 터준 길로 인해서 잘 무마가 되다 못해 꽤 좋은 성과를 내었다. 자의적 PPL 블로그의 횟수도 일주일에 두 번. 미라이와 이쿠가 한 번씩 번갈아 가며 쓰는 것으로 조율해 너무 잦아보이지는 않게. 하지만 광고 모델로서의 본분은 성실이 이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팬들에게도 광고주에게도 좋은 점수를 받아 3개월 단발로 끝날 계약을 늘리기로 합의를 했단다. 그리고 오늘이 그 두 번째 광고의 방영 날이었다.


 "오늘은 시어터에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극장에서 보고 싶었던거야?"


 "시즈카쨩이랑 코토하씨가 있으니까!"


 "그..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아, 그럼 미라이쨩. 이쿠쨩도 오는거야?"


 "이쿠쨩 곧 온대요!"


 안녕하세요-!!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발칵 열린 대기실의 문. 미라이가 우다다다 달려 나가 이쿠를 맞이했다. 들어오는 게 생각보다 늦어서 무슨 일인가 살펴보던 코토하는, 바스락거리는 비닐 소리에 순간 몇 달 전의 데자뷰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설마..!!!! 아아. 이쿠쨩. 이거 혼자 다 사온거야?"


 "코토하씨! 이번엔 다르다구! 흰 우유랑 초코 우유랑 바나나 우유! 무려 세 종류!"


 "아, 아니. 계약서. 계약서 무슨 내용이야. 응? 또 우유만 먹으려고!!"


 "시즈카쨩. 그거 아니야. 이제 그 계약 내용 없댔어. 그냥 우리가 나눠 먹고 싶어서...!"


 "이거 아니야. 환불! 환불! 프로듀서에게 물어봐야겠어! 프로듀서어!!!!!!!!!!!"


 "아아. 아무래도 대기실에서 우유 섭취 금지라고 적어놔야겠어."


 아 글쎄 아니라니까! 아니라니까요! 이거는 정말 우리가 시어터 멤버들이랑 나눠먹으려고...! 이쿠와 미라이는 각각 코토하와 시즈카의 옆에 매달려 상황을 열심히 설명해줬지만 두 사람은 쉬이 진정하지 못했다. 결국 소동에 프로듀서가 와서 관계자에게 설명을 해 주는 것 처럼 계약서의 내용을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나서야 두 사람은 ABC 우유의 극장 냉장고 입성을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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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한 줄의 계약문구가 불러 온 3개월간의 브랜드 강제 동결기. 정도 였어요

실제로 광고 계약서에 꽤 다양한 문구의 계약이 있다는 걸 풍문으로 들었었는데, 이런 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써 본 글입니다. 부디 재밌게 읽으셨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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