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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못하는 하루살이의 꿈」 - 한 소녀의 생일 [호죠 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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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05, 2018 23:57에 작성됨.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오실로스코프의 기계음과 시간을 재듯 떨어지는 링거팩의 물방울 소리. 그리고 그 속에서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약하고 막힌듯한 불규칙한 숨소리.

그것들이 이 빛 하나 들지 않는 방을 구성하는 전부였다.

 

소녀 - 호죠 카렌은 지금 최악의 기분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그녀가 이런 어둠 속에서 잠을 깬 이유, 언제나의 호흡곤란으로 시작되는 병세의 악화 때문에.

소녀는 태어났을 때부터 이런 몸이였다. 수없이 들어와 이름만을 외운 병, 그러나 무슨 병인지 무엇이 문제를 일으킨 것인지도 모르는 그 병에 의해 소녀는 남들과는 다른 일상을 살게 되었다. 소녀의 일생 대부분은 이 병실 안에서 존재한다. 조금 증상이 완화되면 바깥으로 나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다시 발작이 일어나면 여지없이 이 감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반복해간지 14. 이젠... 아니, 이미 눈치챈거지?

 

나는 이미 죽어있었어

 

 

 

몇 번이고 시야가 암전해갔다. 희미하게 무기질한 복도를 비추는 불빛에 그저 번져가는 정경은, 걸음걸음마다 희미해지며 흔들리는 뇌리에 잔상처럼 들러붙어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미 내가 왜 이렇게 나와 움직이려 했는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소녀는 그곳에서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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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몇 시간마다 송곳으로 온몸을 찌르는 듯한 고통,

심하면 생명마저도 기계에 맡겨야 하는 얇은 호흡,

제대로 식사가 넘어가지 않으면 익숙해진 듯 맞게 되는 링거.

 

힘들다.

죽을 것 같다.

지쳤다.

포기하고 싶다.

그래선 안 된다.

어째서?

다 포기한 주제에 어째서, 무슨 미련이 남아서?

정말 전부 포기한걸까?

그럼, 남아있는 게 있기라도 한가?

가족? 친구? 아니면... 이 생명?

순간 뇌리에 스친 것은 그 대답을 긍정하는 광경, 화면 너머의 눈부신 빛.

그것을 지워버리며, 질문도 그만두고, 다시 정적이 돌아왔다.

 

그리고 정신을 붙잡아둘 생각이 더 이상 없어진 채로, 꿈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몇 시간 전의, 오늘을 그나마 행복한 날로 만들어주었던 기억.

 

 

 

 

바깥의 밝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최근 일이 바빠 2주일 정도 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시간을 어떻게든 내서 오신 듯하다.

 

카렌, 늦어서 미안하구나.”

 

늦은 적 없다. 엄마는 단 한번도, 늦은 적 없다.

 

어서와. 오는 거 힘들지 않았어? 그 먼 데서 굳이 오지 않아도 되는데.”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 말은 그저 확인 절차일 뿐, 내가 조금이나마 안심하기 위해 답을 재생하도록 요청하는 것일 뿐이다.

 

무슨 소리니. 생일이니까 당연한 거야.”

 

그리고 그대로 답을 말해주었다. 언제나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짜증난다.

하지만 이 마음은, 언제나 태동하고 있는 이 끈적끈적한 마음은 절대 드러낼 수 없기에, 다시 그 마음 모두를 어둡고 깊은 내 안, 가장 안쪽에 밀어넣어 걸어잠갔다. 절대로, 꺼낼 수 없도록.

 

카렌, 생일 축하한다.”

 

... 정말 고마워...”

 

따뜻한 품 안에서 감정이 잦아들 때 쯤...

 

카렌-! 병문안 왔어!”

 

잠깐... 너무 시끄럽다고.”

 

뭐 어때. 생일은 밝게, 당연하잖아?”

 

친구들이 와주었다. 언제나처럼 밝게, 환하게 나를 비추어주는 친구들.

순수하게 기뻤다. 아직 내게는 사람들이 잔뜩 있구나.

이런 사람들과 함께, 나도 다시 꿈을 꿔볼까. 그런 생각마저 해버린 것이다.

 

분수도 모른 채.

 

 

 

 

하아... 하아...”

 

어둡고 어두운 세계에서 끝없이 홀로 있는 채로 나는 부정했다. 부정하고 부정하고 부정하고... 전부 지워버렸다.

 

그렇지 않아? 정말 웃기는 생각이였지. 이런 내가 삶을 바란다니, 꿈을 꾼다니.

 

나는 이미 죽어있었는데, 그런 간단한 것을 왜 계속해서 까먹는 것일까.

 

죽은 사람이 뭐라고 한들 무덤 속의 망령의 울부짖음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그 말에 의미 따위 없으니.

 

그것은 그저 수많은 시간동안 그저 울부짖기만 한 위선자의 기만이였다.

 

 

 

 

 

이것으로 몇 번인지 물어봐도 대답 하나 없는 채로 시계바늘은 다시 돌아가며,

몇 번이고 세계가 깜깜해져도 실루엣은 웃는 채로 모두 빼앗아갔다.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수없이 깨져버린 자신 속에 파묻혀

멈춰버린지 얼마나의 시간이 지난 것일까.

 

이런 흔해빠진 이야기라면 결말은 분명 하나뿐이지...?

 

실로 자주 있을 한 밤중의 이야기

그런 무언가가 이곳에서 끝났다.

 

 

 

 

 

 

 

 

 

 

 

 

 

 

 

 

 

눈을 뜬 건 정적 속에 울려퍼지는 오실로스코프를 옆에 둔 소녀의 병실.

지금은 언제인가...

어느새 희미해져버린 생일이 지난 다음날.

 

소녀는 그저

또 해내지 못했어 라며 흩어진 이불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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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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