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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미야 아스카, 18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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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02, 2018 16:45에 작성됨.

  프로듀서와 헤어진 후 소녀는 카페를 나섰다. 태풍이 지나가는 하늘은 여전히 짙은 구름이 깔려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아스카는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다시 눈꺼풀을 떴을 때는 자신이 이미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깨어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며칠 후, 프로덕션에선 니노미야 아스카 기획안을 담은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오랫동안 유지해온 노선의 갑작스런 선회에 실무 협의에서 꽤나 시끄러운 마찰이 있었지만, 프로듀서와 아스카 그리고 익명으로 보내진 녹음 파일을 통해 이벤트를 앞두고서 극적으로 니노미야 아스카에 대한 전에 없던 파격적인 컨셉 변경이 이루어졌다. 예전과 다름없이 아스카는 여전히 일찍 일어나지만 '니노미야 에쿠스테 콜렉션'이 담겨져 있던 서랍장은 이제 비어있다. 니노미야 아스카, 18. 지금의 그녀에게 내던져버린 에쿠스테들의 행방은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이벤트는 무사히 끝났다. 늦여름의 태풍이 기습적으로 찾아오거나, 몇몇 아이돌들이 레슨을 빠지거나 담당 프로듀서와의 불화로 기숙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지만 다행히 별 탈은 없었다. 이벤트를 전후하여 눈에 띄는 변화들 중에 항상 에쿠스테를 하고 무대에 서던 니노미야 아스카가 더 이상 에쿠스테를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수년에 걸친 컨셉의 갑작스런 변화는 많은 여파를 낳았다  

다들 알다시피, 오랫동안 나는 에쿠스테를 통해 니노미야 아스카라는 존재를 증명해왔어. 그렇기에 그건 나에게 무척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지. 사소한 저항이라는 이름으로. 그렇지만...언젠가 나는 깨닫고만 거야. 알을 깨고 나오려는 새는 자신을 가둔 알을 부술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그녀의 선언에 팬덤과 평단의 반응은 여러 가지로 갈렸다. 신선한 시도라는 평과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평이 나뉘었다. 언론들은 이러한 톱스타의 갑작스런 변화에 주목하면서 그녀의 새로운 정체성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연예계 전문 매체에서부터 삼류 타블로이드지에 이르기까지 니노미야 아스카의 갑작스런 심경의 변화 혹은 프로듀서와의 불화설 등의 여러 추측들 내놓았다. 데뷔 초부터 함께했던 프로듀서와 갈라서기 직전까지 갈 정도로 큰 다툼이 있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혹자는 익명의 제보자에 따르면 그녀가 자신의 컨셉 문제를 두고 자신의 프로듀서와 다투고 자신의 에쿠스테들을 내동댕이치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으며 어떤 이들은 거기에 살을 붙여 그녀가 기숙사를 뛰쳐나와 다른 누군가의 집에서 잤었다는 근거는 없지만 그럴싸한 낭설을 퍼뜨리기도 했다. 자극적인 기사들을 두고 사람들 역시 여러 말들이 많았지만 개중에는 니노미야 아스카라는 아이돌의 한층 성숙한 면모를 알게 되었다는 반응도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니노미야 아스카라는 여론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니노미야 아스카에 대해 세상의 모든 수다스런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떠들어 대더라도, ‘니노미야 아스카는 여전히 니노미야 아스카라는 사실만은 분명해보였다.  

니노미야 아스카의 새로운 시작이라. 확실히 항상 긴장되지만 멋진 순간이지. 그 뭐냐...집 나온 직후의 기분이랑 비슷 하다랄까? 두근두근?”  

태풍이 지나간 후의 나른한 늦여름 오후, 기숙사 응접실에서 새하얀 피부가 훤히 드러나는 편한 복장으로 축 늘어진 채, 슈코는 TV를 보며 야츠하시를 우물거린다. 연예 뉴스에서는 기름진 얼굴의 패널들이 예의 그 쓸 데 없는 아이돌 열애설 보도나 근황에 대한 추측성 기사들만을 시끄럽게 지껄이고 있다. ‘니노미야 아스카의 갑작스런 컨셉 변화, 톱 아이돌의 근황 집중 보도!’ 따위를 왜 4부작 특집으로 편성해서 보도 해야만 하는 걸까. 하여간 우리 프로덕션은 쓸데없는 방면에는 기가 막히게 돈을 잘 쓴단 말이야.

있지, 카나데.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슈코는 굉장한 소리를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 같단 말이야.”  

, 슈코 나름의 뼈있는 감상이겠지. 미카도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  

"그야 그렇지만...우리 유닛은 항상 종잡을 수 없어서 익숙해지는 게 아무 소용이 없다랄까 뭐랄까......혈기왕성하다 못해...주체가 안 되는 것 같지만. , 아무렴 상관없나.”  

 태연하게 차를 홀짝이는 카나데 옆에서 미카는 한 쪽에서 찰싹 붙어있는 시키와 프레데리카를 보았다. 이벤트 내내 제멋대로 뛰쳐나가서는 레슨도 빼먹고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두 사람이지만 누구보다 뛰어나게 이벤트를 소화해 냈기에 여전히 불가사의한 아이들이라 여겨졌다. 유난히 죽이 잘 맞는 둘. 따뜻한 햇살 아래 기분 좋게 가르릉 거리며, 서로 찰싹 붙어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한 쌍의 고양이들이다. 시키가 프레데리카의 품에 안겨 부드러운 향기를 맡고 있을 때, 프레데리카가 시키의 머릿결을 매만지다 눈에 익은 에쿠스테를 발견했다. 시키가 새롭게 개발한 향이 진하게 배인 윤기 나는 에쿠스테가 손 끝에서 미끄러진다  

어라? 시키, 이건 뭐야? 에쿠스테?”  

~ ~ 이건 말이지~”  

시키는 자못 장난기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눈알을 굴린다. 지금은 잘려져버린 누군가의 정체성이라고 할까, 아이에서 어른으로 거듭나는 소녀가 세상에 내던진 과거의 껍데기라고 할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시키는 그 에쿠스테의 이전 주인을 힐끗 쳐다보았다. 시키를 바라보는 프레데리카는 알 듯 말 듯 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마주한 갑작스러운 변화에 혼란스러울지도 모른다는 점은 알고 있어. 그렇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그게 더 카오스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움을 맞이하도록 하자, 익숙한 과거에서 벗어나 또 다른 내일로 너희들과 나아가고 싶어. 어쨌거나 바람은...불고 있으니까.”  

 TV 속 니노미야 아스카는 시원한 단발머리로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아스카, 네가 너로 있기 위해선 에쿠스테 따윈 아무 상관없었어분명 그 어느 때에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시키는 이제야 니노미야 아스카다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팬들에게 손을 흔드는 그녀의 모습은 환영하는 인사처럼 보이기도, 또는 무언가를 향한 작별 인사처럼 보였다. 그에 따라 시키의 머리에 달린 에쿠스테의 보석들이 흔들려 찰랑거린다  

“...지난번에 재워 준 길고양이에게 받은 선물! 냐하-!”  

와오! 은혜 갚은 고양이잖아! 그럼 프레쨩이 고양이로 변해 찾아가도 시키는 재워주려나?”  

어이, 프레쨩. 지난번에 고양이 그만둔 것 아니었어?”  

....듣고보니 그렇지만 요호 슈코에게 부탁하면 가능할지도!”  

 아무리 봐도 긴장이 한껏 풀어진 태평한 녀석들이다. 시간이 갈수록 어른스러워지는 녀석들이 있는 반면 이쪽은 점점 아이 같아 진달까?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빛나는 그녀들과는 전혀 딴판인 본 모습이지만, 아스카의 말처럼...그래도 그녀들은 그녀들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아냐, 미카 정신차려! 이 유닛에서 너 마저 이러면 안돼!

저기 카나데....우리 유닛도 뭔가 새로 시작해야할 것 같지 않아?”  

후훗....글쎄, 우린 매번 새로운 느낌이라. 그럴 필요 까지는 없지 않을까?”  

인터뷰도 끝났고...미카, 카나데! 아무도 안보면 채널 바꾼다- 괜찮지?”  

 어느 샌가 여름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무더웠던 시절들은 거짓말 같다. 한 층 높아진 구름이 도시 위를 지날 때, 태풍을 마주하던 사람들은 이제 언제 눈이 내릴지 만을 바라본다. 교복이 바뀌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바다의 수온도 달라진다. 타이어의 공기압을 조금 더 높이고 부동액을 점검한다. 해변에 즐비했던 바다의 집들이 철거된 자리엔 바다 새들만이 날고 있다. 여름날의 서퍼들은 미래에 다가올 새로운 파도를 위해 때를 기다린다. 그렇게 아이가 어른이 되는 여름을 지나, 가만히 머물러 있기엔 아까운 젊음은 쉼 없이 흘러간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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