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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미야 아스카, 18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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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28, 2018 03:18에 작성됨.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후텁지근한 공기도 눈에 띄게 선선하게 변했다. 흘러가는 구름들도 더 이상 뭉게뭉게 피어오른 적란운들이 아니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자양화도 시들고 가로수들 사이에서 울어대던 매미들도 하나 둘 길바닥에 떨어져 부서져간다.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시간은 고요히, 그리고 쉼 없이 흐르고 있다. 그런 흐름 속에서는 아차 하는 순간 사람도 어느 샌가 변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쩍 달라져버린 모습에 놀라지 않으려면, 살펴봐야 할 것은 거울만이 아니라는 것을 대개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18 , 아이돌 니노미야 아스카의 아침은 언제나 빠르다. 바쁜 스케줄에 쫓기는 와중에도 밤새 도이칠란드 철학서를 탐독하거나, 늦게까지 이런 저런 공상들을 캠퍼스 노트에 그리는 취미를 데뷔 시절부터 그만둔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한 번도 새벽 레슨이나 아침 연습을 빠진 적이 없는 것을 보면 이미 그녀도 어엿한 한 명의 아이돌인 것이다. 여느 때처럼 일찍 일어나 몸단장을 마치고 기숙사를 나서 카페로 향한다. 미시로 카페, 구내식당이 아직 운영시간이 아닐 때 간단히 아침을 먹기 위해 아이들이 모여드는 곳. 특히나 요즘처럼 큰 이벤트를 앞둔 시즌에는 보다 더 자주 찾게 되는 곳이다. 다만 그녀에게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늘 착용하던 에쿠스테(붙임머리)’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과 복잡한 심경이 내비쳐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점이다. 방을 나서기 불과 몇 분 전, 기초 화장을 마치고 으레 전날에 착용하려고 마음먹었던 에쿠스테를 찾으려 악세사리함을 열었지만 그곳은 비어있었다.  

이상한 일이군.’  

 혹시나 다른 서랍장을 연 것은 아닌가 싶어 다시 확인해보았지만 틀림없이 평소의 자리였다. 믿기지가 않아 볼을 꼬집어보니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프다. 확실히 꿈을 꾸고 있거나 잠이 덜 깬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어렵사리 모았던 니노미야 에쿠스테 콜렉션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보니 당혹감을 넘어 낭패감이 엄습한다. 평화롭던 아침이 삽시간에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다.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누가 가져간 것일까? 리카? 미레이?’   

 우선 어제 저녁 레슨 후 방에 찾아온 리틀 팝스의 멤버들이 떠오른다. 확실히 그 아이들은 평소 아스카의 에쿠스테를 신기한 눈빛으로 눈여겨보긴 했지만, 아무 말도 없이 가져가버릴 정도로 손버릇이 나쁜 녀석들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룸메이트도 없는 이 독방에서 대체 누가 그랬을까? 밤사이 도둑이라도 몰래 숨어들기라도 한 걸까? 그렇다면 분명 좀 더 값나가는 것들을 노렸을 텐데. 머릿속이 복잡해져오는 찰나 알람시계가 울린다. 젠장, 더 늦기 전에가 봐야만 한다. 하는 수 없지, 오전 레슨이 끝나면 분실물 신고를 접수하는 수밖에오랫동안 아끼던 에쿠스테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린 충격을 수습할 틈도 없이 아침을 시작한 아스카는 평소 먹던 달콤한 커피의 설탕을 조금 줄이고 좀 더 진한 녀석을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했다. 곁들이는 식사는 오이 샌드위치, 상심한 기분에 뭔가 먹고 싶지도 않았지만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견디기 위해선 뭐라도 입에 쑤셔 넣어야만 한다. 아직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단정 짓긴 어려우니까 분명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보지만, 쓰라린 가슴을 마음을 부여잡고 레슨 룸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이벤트 탓인지 이른 아침이지만 레슨 룸에선 벌써 시끌벅적한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 , 쓰리....! 역시, 아스카쨩! 어제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진 느낌이야!”  

그치, 그치! 뭐랄까, 오늘따라 더 잘하는 것 같지 않아? 그나저나 안즈는 아직 안온거야? 이제 곧 시작인데?”  

안즈는....아까 트윗으로....조금 늦을 거라고...”

늦은 와중에 트윗 할 시간은 있는 거야?”  

그나마도 봇이야...”  

 안즈를 제외한 리틀 팝스 멤버들의 활기찬 목소리를 들으며 문고리를 잡다가 문득 아스카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아스카라고 했지? 아스카는 이제 막 도착했는데 이미 아스카가 안에 있다니? 혼란스러운 마음에 당장이라도 문을 확 열어젖히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면서, 살짝 열린 문틈사이로 룸 내부를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아스카는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떨어뜨릴 뻔했다.  

저건........대체 뭐야?’  

 아스카가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형형색색의 니노미야 에쿠스테 콜렉션들이 허공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니노미야 아스카가 아닌 니노미야 아스카가 자신을 이루고 있는 머리카락이라는 소재의 특유의 유연함과 부드러움을 한껏 발휘하며 완벽하게 리듬을 소화하는 모습을 멤버들이 주변에 모여 구경하고 있는 광경. 아스카가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며 다시 보았지만 틀림없는 자신의 에쿠스테가 아스카의 파트에 맞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세상이 빙글 빙글 도는 것만 같다. 에쿠스테를 잃어버린 충격에 이젠 헛것마저 보이는 건가. 그렇지만 멤버들은 이미 그것을 향해 아스카라 부르며 박수를 보내고 말을 건다.  

, 안즈! 왔구...........저기....누구?”  

어라? 처음 보는 아이네. 혹시 저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  

.......여긴.............지금 곧 우리 팀...레슨이........”  

 놀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룸으로 들어선 아스카였지만, 멤버들의 환영을 받기는커녕 어색함만 자아내고 말았다. 처음 보는 아이....신입....이라고? 농담이지?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땀 흘리며 연습한 동료를 알아보지 못하는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에쿠스테녀석은 춤사위를 멈추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나는.......!”  

...? 니노미야! 왔으면 어서 들어가지 않고, 룸 앞에서 뭘 얼쩡거리고 있는 건가?”  

 멍하니 있던 사이 느껴진 인기척. 평소라면 짜증이 치밀어 올랐을 트레이너의 목소리가 오히려 지금은 자신이 현실에 있다는 사실을 안심시켜주는 것만 같다. 부탁이야. 트레이너씨, 어서 내가 제정신이라고 말해줘. 분명 당신이라면 이 이상한 상황을 끝내줄 수 있겠지.  

? 아니, ...자세히 보니 니노미야가 아니군’....뒷모습이 닮았다 싶었는데..., 니노미야와 모두들 벌써 안에서 맹연습 중인가. 후타바는....역시 보이지 않고. 하여간 후타바나 이치노세나 다들 이벤트를 앞두고 이렇게 긴장감이 없어서야.”  

.....이봐......”  

아무튼 미안하게 됐다. 낯이 익지만 처음 보는 얼굴인데....혹시 연습실을 잘못 찾아온 신입인가? 지금 여긴 리틀 팝스유닛의 연습이 잡혀 있어서 말이야. 본인의 스케줄을 다시 확인해보도록. 그럼.”     

 자신을 스치듯 지나쳐 룸 안으로 들어 가버린 트레이너의 뒷모습을 보며 아스카는 점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봐, 트레이너씨! 나야, 나라고! 내가 바로 니노미야 아스카, 아스카라고! 다들 저 머리카락 뭉치를 진짜 니노미야 아스카로 믿는거야? 눈앞에서 자신을 부정당한 기분.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가 미쳐버린 것만 같은 기이한 상황에서 아스카는 울분에 차서 고함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솟구쳤지만 이상하리만치 두 손은 덜덜 떨려왔고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혀가 얼어붙은 것처럼 뻣뻣하다.  

넌 니노미야가 아니군.’   

 ‘니노미야 아스카인 이 내가 니노미야 아스카가 아니라고? 그럼 저 춤추는 에쿠스테는 대체 뭐야? 저 녀석은 대체 뭐 길래 나처럼 행세를 하는 거지? 그리고 뒷모습이 닮아? 허공에 떠 있는 에쿠스테에 무슨 형체라도 보이는 거야? 당연한 것에 대한 존재 증명이 강요된 순간, 평화롭던 일상은 너무도 손쉽게 사라지고 만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건 없었다는 것처럼. 이미 거짓된 자기 자신에 의해 부정당한 타자의 공간이 되어버린 레슨 룸 앞에서 아스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발걸음을 돌리는 것 밖에 없었다. 프로듀서, 너라면. 그래, 너라면 이 불가해한 일을 내게 납득시켜 줄 수 있겠나? 떨리는 마음처럼 사무실을 향해가는 아스카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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