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후쿠이의 달: 오오하라의 아이

댓글: 4 / 조회: 485 / 추천: 1


관련링크


본문 - 08-15, 2018 11:30에 작성됨.

* 예고편 및 에피소드 목록

https://www.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alk&wr_id=11773


* 유의 사항

 저는 직접 일본이나 두바이에 가 본 경험이 있는 게 아니어서, 해당 지역들에 대해 부정확한 내용들도 다소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후우. 떠날 듯 떠나지 않던 추위도 어느 새 가시고, 완연한 봄이 찾아왔네요.
 가지만 앙상하던 벚나무에는 어느 새 꽃이 한가득 피었고, 사람들의 얼굴을 세차게 치대던 거칠고 차가운 바람도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해져서는, 살랑거리는 감촉으로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기 시작했지요. 따뜻한 봄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흩날리는 벚꽃 잎을 보고 있으면, 아아 봄이 찾아왔구나, 하고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돼요. 그리고 새로운 감상에 빠져들죠. 그간의 추위에 사람들이 통 밖에 나오지를 않아 마치 빵이 없는 빵집마냥 공허하고 썰렁했던 상점가의 풍경에도, 이 땅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찾아온 따뜻함을 맞이하러 모여든 수많은 이들로 다시 활기가 돌아오기 시작하네요. 다들, 겨울의 추위가 가시기를 얼마나 기다렸던 걸까요?
 뭐, 저야 추우면 집안의 화덕이나 오븐의 따뜻한 열기에 서서 빵을 굽고 있으면 그만이지만 말이죠. 아하핫!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제 이름은 오오하라 미치루. 엄마아빠가 빵집을 운영하셔서, 저도 때때로 엄마아빠를 도와서 빵을 굽는 일을 하고는 하죠. 그래서 제빵에는 자신이 있어요! 그리고, 실은 빵을 만드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먹는 것도 좋아해요. 방금 엄마아빠의 일을 도와서 빵을 굽는다고 이야기했는데, 사실 제가 구운 빵은 대부분 제 뱃속으로 들어가 버린답니다! 게다가, 그것도 부족해서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빵을 집어먹기도 하는데, 부모님이 이런 제 모습을 보고는 가게 빵은 먹으면 안 된다고 혼내는 것도 매일매일 벌어지는 일상이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화덕에서 제가 먹을 빵을 잔뜩 구웠답니다. 그렇게 구운 빵은 “오오하라 베이커리”라고 앙증맞게 적힌 종이봉투 하나에 가득가득 넣어서... 아, 하나로는 안 되네요! 봉투를 하나 더 가지고 와야겠다.
 그런데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거냐구요? 오늘은 모처럼 봄이 찾아왔겠다, 주말이고 하니 인근 공원으로 나가서 벤치에 앉아 빵을 먹으며 벚꽃 빛 맛을 느껴 보려고 해요. 기왕 봄이 왔는데 봄의 정취를 느껴보지도 못하고 봄을 떠나보내 버리면 아깝잖아요?
 자,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 오늘 구운 빵을 다 담았네요. 그럼 읏샤! 빵 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가 볼까요?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크게 인사하고, 양손이 이미 가득 차 버렸으니 어깨로 가게 문을 살포시 밀쳐 바깥 공기와 마주하면, 으으음~~ 이 상쾌한 바람! 빵 먹기 아주 좋은 날씨네요! 네? 저한테 빵 먹기 안 좋은 날도 있었냐구요? 그치만, 겨울엔 빵을 바깥 공기에 조금만 내놓아도 금방 식어서 퍽퍽해지니까 입에 한 가득 넣어도 기분이 별로 안 좋단 말이에요.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고 따뜻해서, 따끈따끈한 빵의 맛을 오랫동안 음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이 공기를 음미하며 상점가를 거닐어 볼까요? 양손으로 빵을 한가득 껴안은 채로 천천히 길을 걸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네요.
 “오, 미치루 아니냐. 오랜만이구나!”
 그러면 꼭 한 둘 정도는 저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주고는 하죠. 하긴, 이렇게 빵을 잔뜩 들고 다니는데 눈에 띄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 아니겠어요?
 “안녕하세요, 미츠이 씨! 요즘 들어 날이 많이 풀렸네요. 오늘은 나들이 나오신 건가요?”
 “그렇지. 날씨가 따뜻해져서, 오늘은 주말도 왔겠다 아들내미 데리고 상점가 한 바퀴 산책이나 하고 있지.”
 “헤에, 히로 쨩이랑 같이 왔구나! 어디 보자... 아! 히로 쨩, 오랜만이에요! 누나 기억해요?”
 “...기억 안 나. 누구세요?”
 “흐응... 안 본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누나를 잊어버린 거예요? 속상해라...”
 히로 쨩이 저를 기억 못하는 것 같네요. 몇 달 못 봤다곤 하지만, 빵집에 찾아오면 항상 서비스로 초코소라빵 하나를 주곤 했는데... 아, 그래! 오늘 봉지 안에 분명 초코소라빵 하나를 넣어 왔을 거예요. 어디 보자, 주섬주섬.... 찾았다!
 “짜잔! 이게 뭘까~요?”
 “와아! 초코소라빵이다아! 히로, 기억났어! 항상 초코소라빵 주고 머리도 소라빵이니까, 소라빵 누나야!”
 “딩동댕! 자, 그럼 상으로 이거, 맛있게 먹어요!”
 “감사합니다아!”
 초코소라빵을 받아 맛있게 먹는 히로 쨩. 비록 제가 먹을 빵은 하나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빵을 먹으며 함박웃음을 짓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멋지지 않나요? 저는 따끈따끈하게 구워진 맛있는 빵에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마력이 있다고 믿어요.
 “그러고 보니 오늘도 빵이 한아름이구나, 하핫! 미치루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구만.”
 “그야 물론이죠! 노 빵 노 라이프니깐요!”
 “그래그래. 항상 보던 대로. 활기가 넘쳐서 좋구나. 그런데, 미치루는 이제 몇 학년이지? 6학년이 되던가?”
 “저요? 저 이제 초등학교 졸업해서 중학생이에요. 중학교 1학년이라구요?”
 “오, 그래? 빨간 란도셀을 벗고 교복을 입은 미치루라... 잘 상상이 가질 않는구나.”
 “아하하! 그러게요. 저도 잘 실감이 안 가요.”
 “그래, 중학교에 며칠 다닌 느낌은 어땠니?”
 “실은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 버려서, 친구 사귀는 것부터 큰일이에요.”
 “흐음, 의지할 만한 친구가 없다니, 그럼 꽤나 적응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미치루는 붙임성이 좋으니까, 금방 새 친구를 만들겠지.”
 “그렇네요. 하핫!”
 “그럼, 그럼.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럼, 다음에 다시 보자!”
 “네엣!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저와의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상점가를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미츠이 씨. 그럼, 저도 가던 길을 마저 가 보도록 할까요?
 그나저나, 중학교라... 하아.....


 그 뒤 좀 더 걸었더니, 제 눈앞에 공원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공원 여기저기에 심어져 있는 벚나무와, 벚나무들로부터 바람을 맞아 흩날리는 하얀 잎들. 그리고 그 곳에서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 어떤 아이들은 미끄럼틀이나 시소 같은 놀이기구를 타고 놀기도 하고, 다른 어떤 아이들은 막 뛰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한 바퀴 뺑 돌거나, 자기들이 가지고 온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네요. 음, 좋아요. 아주 평화롭고, 행복으로 가득한 그런 풍경이에요.
 이제 어딘가에 앉아서 빵과 함께 분위기를 즐겨볼까요? 그럼, 어디 앉을 만한 곳이... 아! 저기 비어 있는 벤치가 하나 있네요! 벤치에 다가가 한아름 들고 온 빵 봉지를 살포시 내려놓고, 읏샤! 자리에 앉으니, 저를 스치고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이 이 이상 기분 좋을 수가 없네요.
 그럼 빵을 하나하나 꺼내 먹어 볼까요? 어느 걸 먼저 먹어 볼까요? 이럴 땐 항상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된단 말이죠. 주섬주섬, 흐흐흥... 그래! 우선은 바게트 빵을 먹어 보기로 하죠! 시작부터 너무 단 걸 먹어버리면 그렇지 않은 빵을 먹었을 때 아무 맛도 느낄 수 없게 되어 버리니깐요. 게다가, 단단한 바게트 빵으로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송곳니도 갈아야 하고 말이죠. 아하핫! ...농담이에요.
 그럼 한 입 깨물어 볼까요? 하읍! 후고후고후고후고... 그래요! 바게트 빵 하면 역시 이 식감이죠! 단단한 표면을 스쳐 지나고 나면, 그 뒤에 느껴지는 것은, 조금 질기다고 느낄 수도 있을 정도로 쫄깃한 알맹이의 감촉. 계속 씹고 있으면 정말 기분 좋아지는 자극이에요. 게다가 입 안에 맴도는 빵 알갱이들이 침에 서서히 녹으면, 뚜렷하지는 않아도 은은하게 퍼지는 달달함.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바게트 빵을 다 먹어버렸네요. 그럼 다음에는 무슨 빵을 먹어볼까요? 앙금이 혀에 착착 감기는 단팥빵도 좋지만, 입안에 들어오는 순간 스르르 녹아버리는 슈크림도 좋단 말이죠. 또 초코 쿠키가 송송 박혀 있어서 달콤한 초코의 향이 오랫동안 입안에 맴도는 초코 머핀은 어떻고요. 흐으으, 이젠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네요. 어서 빵을 먹어야 겠어요!
 후고후고후고후고후고후고후고
 후고후고후고후고
 후고후고
 후고후고
 후고
 후고
 ...
 .....


 하지만 이 기분은 무얼까요. 빵은 무척이나 맛있고, 이런 빵을 잔뜩 먹으면서 봄의 정취를 즐기고 있으면 분명히 행복함을 느껴야 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안에 자리 잡은 응어리 하나가 사라지질 않는다고나 할까요. 여전히 제 마음은 불안하고, 어찌해야 할 지 몰라 답답할 뿐이에요.
 아까 미츠이 씨랑 이야기한 걸 들으셨다면 아시겠지만, 실은 저는 이제 막 시립 아스와 중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하게 되었어요. 초등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던 몇몇 친구들은 모두 다른 중학교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중학교에 들어온 저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죠. 다만, 문제가 이것뿐이었으면 미츠이 씨 이야기처럼 새로 친구를 사귀면 되겠지만, 사실 전 그것도 해낼 수 있을 지가 의심스러워요. 그도 그럴 게, 제가 이렇게 빵을 먹어대는 모습이 상점가 아주머니 아저씨들에게는 귀여워 보여서 인기가 있지만, 학교 애들한테 이런 모습은 특이하게 비쳐져서 놀림거리가 되는 경우도 많았거든요. 그래도 초등학생 때는 괜찮았어요. 저처럼 상점가에서 자랐거나 또는 마음이 착해서 저랑 친하게 지냈던 몇몇 친구들이 있어서 다른 애들이 저를 못되게 굴어도 감싸 주고는 했으니깐요. 하지만 친구들은 모두 다른 학교로 흩어져 버리고 남은 건 저 뿐. 그래도 초등학교랑 중학교는 다르겠지 하고 애써 저를 위로했지만, 입학식 날에 보니까... 네. 빵을 먹는 저를 특이하다는 듯이 보는 눈이 좀 있더라구요. 하아... 빵과 함께하면 이렇게나 기분 좋은데, 왜 그걸 이해해 주지 않는 걸까요? 학교에서 의지할 상대도 없는 상황에서 초등학교에서 그랬듯 따돌림을 당하는 건 아닐지, 정말로 걱정이 돼요.
 그렇게 제가 그리도 좋아하던 빵을 먹는 것도 잊은 채 저는 불안하고 어두운 감상에 갇혀, 고개를 푹 수그리며 움츠러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
 왠지 저를 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지는데요. 누가 저를 빤히 쳐다보는 걸까요? 고개를 들어보니,
 “어, 라이라 씨를 보아 준 것이네요. 괜찮습니까예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에요?”
 거기에 있던 것은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특이한 외양의 여자아이. 나이는 저랑 비슷할까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외모와 익숙지 않은 듯한 일본어를 보니 외국인인 것 같네요. 그 모습을 더 자세히 바라보니, 구릿빛의 탱탱한 피부와, 그 위를 물결치듯 찰랑찰랑하게 흘러내리는 금빛의 머리카락은 미지의 사막의 눈부신 태양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래와 같이 찬란하게 빛이 나고 있었고, 저를 지그시 응시하는 옅은 푸른빛의 눈동자는 마치 모래 속에 묻혀서도 가려지지 않는 사파이어의 광채와 같이 고귀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옷차림은 허름하고 단조로워, 이 사람에게는 왠지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하네요. 대체 이 여자아이는 누구고, 무슨 이유로 제게 다가와 이렇게 말을 거는 것일까요?
 “...누, 누구세요?”
 “아. 라이라 씨는 라이라 씨인 것이에요. 사정이 있어서 두바이에서 일본으로 오게 되었습니다예요. 후고후고 씨는 누구입니까예요?”
 저의 물음에 라이라 씨라고 스스로를 밝힌 여자아이. 그런데, 음?
 “그 후고후고 씨라는 거... 저 이야기하는 건가요?”
 “네. 후고후고 하고 빵을 먹고 있었던 것이니까, 후고후고 씨인 것이에요~”
 후고후고?! 저 그렇게 분명하게 소리를 내면서 먹고 있었나요? 아무튼, 그럼 제가 누군지 물어본 거죠?
 “저는 오오하라 미치루라고 해요. 올해로 중학생이 되었고, 엄마아빠는 빵집에서 일을 하시죠. 제 이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오오하라 베이커리라는 곳인데, 저도 그 곳에서 엄마아빠의 일을 곧잘 도와주고 있어요.”
 “오오, 오오하라 베이커리인 것인가요! 라이라 씨, 오오하라 베이커리에는 항상 신세지고 있습니다예요. 메이드 씨랑 빵집에 들어가면 빵집 아저씨께서는 항상 라이라 씨에게 빵 귀퉁이를 주고는 했습니다네요. 빵 귀퉁이가 있으면 송송 썰어서 크루통처럼 만들어 먹거나, 빵가루로 만들어 반죽해서 난이나 피타처럼 만들어 먹을 수 있어서 좋은 것이니까, 빵집 아저씨에게는 항상 감사한 것이에요.”
 그러자 반갑다는 듯이 화답하는 라이라 씨. 저희 빵집에서 빵 귀퉁이를...? 아! 저 이 사람 누군지 알 것 같아요. 1달 쯤 전이었나, 그 때부터 엄마아빠가 때때로 외국에서 왔다는 여자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는 하셨죠. 저도 화로에서 일을 돕다보면 문 바깥으로 가끔 빵을 사면서 빵 귀퉁이를 함께 받아 가는 진한 피부의 여자 둘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쓸 수 없어 버려질 운명에 처한 빵 귀퉁이마저도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인상적이면서도, 빵을 좋아한다면서 어떤 부위는 함부로 잘라 내거나 버리는 스스로에 대해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머나먼 나라에 단 둘이 넘어와 돈이 없어 힘들게 살고 있는 이들에게, 빵 귀퉁이는 말 그대로 “행복을 주고 있는” 것이었으니깐요. 그 주인공이 바로 라이라 씨였군요.
 “아뇨, 저희야말로 더 고맙죠. 보통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는 빵 귀퉁이에마저도 소중한 가치를 입혀 준 거잖아요.”
 “오오, 그런 것이네요. 그런데 후고후고 씨, 방금 전에는 왜 그렇게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것이에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별안간 훅 들어오는 라이라 씨의 질문. 어째서 생판 모르던 사람 앞으로 슬그머니 와서는, 그런 걸 궁금해 하는 건가요?
 “벼, 별 일 아니에요.”
 뭐, 일단은 대충 이렇게 대답해 두도록 하죠. 이 정도만 해 둬도 상대방이 친한 친구도 아니니 아 그렇구나 하고 그냥 돌아가겠죠.
 “표정이 별 일 아닌 것 같진 않습니다예요. 라이라 씨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그러나 순순히 돌아가지 않고 다시 한 번 이유를 물어보는 건가요. 이렇게까지 물어보니, 제 마음도 왠지 약간 흔들리네요. 왠지 이 사람이면 내 고민을 해소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요. 하지만, 정말 그럴 리는 없을 테죠. 괜히 말해서 기대만 키우느니 차라리 달콤 쌉싸래한 커피빵과 함께 삼켜 두고 혼자 품고 있는 편이 나을 거예요. 기대가 크면 그만큼 배신감도 큰 법이니까요.
 “따, 딱히 당신이랑은 상관없잖아요...?”
 “하지만 후고후고 씨는 라이라 씨를 빵 귀퉁이를 통해 도와주었습니다이니까, 라이라 씨도 후고후고 씨에게 보답하고 싶습니다인 거예요. 그러니 가르쳐 주면 좋겠습니다예요.”
 그럼에도 똑같은 질문으로 받아치는 라이라 씨. 아아, 정말로 끈질기네요. 어째서 전혀 관계없는 남 일에 대해 이렇게나 알고 싶어 하는 건가요. 저한테 보답이라느니 말은 좋게 하지만,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학교 애들한테 따돌림을 당할까봐서 걱정이라느니,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하냐구요. 이런 걸 해결해 줄 수 있을 리도 없고, 괜히 끼어 들어봐야 같이 해코지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죠. 애초에 혼자서 이겨낼 수밖에 없는 일이고, 힘들 때는 가족이나 가끔 초등학교 친구 만나서 어리광 부리는 걸로 충분해요. 라이라 씨가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에선 이렇게 남의 일에 참견하는 건 좋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기분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정말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럼 어째야 할까요. 그저 꿍하니 라이라 씨의 눈을 피해 바닥만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요. 그런데,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까
 “후고후고 씨는, 어느 학교에 다닙니까예요?”
 다른 방향으로 질문을 돌린 라이라 씨. 게다가, 달라진 질문에 고개를 드니 어느 새 라이라 씨가 제 옆 자리에 떡하니 앉아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으으, 직접 물어보는 게 안 통하니까 이번엔 이렇게 나오는 건가요. 정말이지, 어째서 이렇게까지 집요한 건지. 하지만 이 정도까지 제게 관심을 가져 주는데 여기서도 아무 말 안 하면 제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네요. 왠지 말려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일단은 어울려 주도록 해 볼까요.
 “학교요? 학교라면, 저기 아스와 중학교 다니는데... 왜요?”
 “오오, 아스와 중학교인 것이에요? 실은 라이라 씨도 며칠 전부터 그 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에요. 그렇다면 라이라 씨와 후고후고 씨는 같은 학교에서 함께 중학교 생활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네요. 인연인 것이에요~”
 음? 라이라 씨, 저랑 같은 학교에 다니는 건가요. 이거 우연이네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더니...
 “후고후고 씨, 처음에 중학교 들어왔을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예요?”
 으앗! 가볍게 잽을 몇 번 맞았더니만, 이번엔 아예 정곡을 찔려 버리네요. 바로 그것 때문에 내가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건데... 미츠이 씨랑 이야기했을 때처럼 가볍게 넘겨 버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 제 옆에 앉아 있는 이 사람은 그렇게 말해도 결코 물러설 리가 없을 테죠. 어쩌면 이미 눈치를 채고 있을 지도...
 “그거야 뭐... 처음이라면 다들 그렇잖아요. 두근대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새로운 환경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일단은 이렇게 가볍게 툭 던져 보기로 하죠. 어차피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니깐요. 그랬더니,
 “아, 그렇습니다네요.”
 하는 대답과 함께, 라이라 씨는 저로부터 고개를 돌려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기 시작했어요. 마치 자신을 되돌아보듯 말이죠. 그런데 왜일까요? 홀로 골똘히 고민하는 라이라 씨의 모습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느껴지네요. 지고의 세월을 괴로움 속에서 보낸 듯 수심 어린 표정. 하지만, 그러면서도 희미하지만 푸르게 불타오르는, 결코 지지 않겠다는 의지. 그리고 한 편으로는 행복을 향한 어떤 종류의 깨달음의 감정도. 정상으로부터 슬슬 내려오기 시작하는 해는 라이라 씨에게 다가가 후광처럼 라이라 씨를 비추고 있었고, 공원의 한 편으로부터 불어오는 봄바람은 라이라 씨의 모랫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신비로움을 배가시켜 주었죠. 그 모습은, 너무나 눈부셔서 똑바로 볼 수 없을 정도였어요.
 당신은 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떤 일을 겪어 온 건가요? 그리고 어째서 제 앞에 나타나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려는 거죠?
 그렇게 혼자서 깊은 생각을 하던 라이라 씨는 그 자세 그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라이라 씨가 두바이에서 일본에 막 들어왔을 때, 라이라 씨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었고 두렵게만 느껴졌습니다예요. 그런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며칠을 방황하다 이곳에 정착해 살게 된 것이네요. 여기서 라이라 씨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기분 좋은 나날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이지만, 그래도 낯선 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이고, 그래서 라이라 씨에게 상냥하게 대해주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라이라 씨는 기분이 너무나도 불안해졌습니다예요. 그건 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여서 기대를 가득 품고 들어간 학교에서 아무도 라이라 씨랑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을 때는 정말로 이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네요.”
 아, 그렇군요.
 아까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라이라 씨는 외국에서 넘어온 사람. 게다가 두바이라고 하면 일본과는 완전히 정반대에 위치한, 저로서는 미지의 세계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공간이죠. 만일 제가 두바이에 홀로 덩그러니 떨어지게 된다면 그 낯선 분위기나 전혀 알지 못하는 현지의 관습과 언어 같은 것에 압도되어 도저히 견딜 수 없었을 것이듯, 라이라 씨도 여기 오게 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굉장히 두려웠을 거예요. 게다가 학교에서도 친구들은 라이라 씨를 피하려는 모습만 보이고... 저도 중학교에 와서 같은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이 걱정도 라이라 씨가 겪은 어려움에 비하면 그야말로 빵 부스러기 한 조각에 불과할 따름이었던 거예요.
 그래요. 그런 라이라 씨도 이렇게 힘내서 열심히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저도 우는 소리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죠. 저도 이겨내고 말겠어요. 스스로에게 이런 다짐을 하는데,
 “하지만, 같은 반에 유우나 씨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인데, 유우나 씨는 라이라 씨의 말을 들어주고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예요. 유우나 씨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견딜 수 없었을 거라면서, 라이라 씨가 느끼는 기분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니까 솔직하게 받아들이자고. 그리고, 반 아이들이 라이라 씨를 멀리하는 것은 라이라 씨가 일본이 낯선 것처럼 그저 낯설어서 그런 것뿐이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가까워지면 괜찮을 것이라고 한 것이에요.
 그러니, 후고후고 씨도 라이라 씨에게 솔직하게 말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예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라는 새로운 곳과 만나면 누구라도 어색하고 두려운 기분이 되는 것이에요. 그 기분은 절대로 비난받을 것이 아닙니다예요.”
 게다가 라이라 씨랑 후고후고 씨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후고후고 씨가 힘들면 라이라 씨가 함께해 줄 수 있는 것이에요. 서로 의지할 수 있습니다예요. 그렇게 라이라 씨는 그에 이어서, 저도 안심하고 자신에게 제 고민을 이야기해도 좋다고 말해 주었어요. 정말이지, 자기를 전부 드러내 놓고 저한테도 이야기하게 시키다니, 정말 못됐어요. 게다가 같은 학교라는 것까지 어필하면서... 본인은 그렇게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했으면서, 제 고민까지도 들어주려고 하는 그 모습은 대체 뭔가요. 하아, 하지만 그래요. 초등학생 시절에 의지할 수 있었던 몇몇 친구들이 지금은 모두 다른 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학교에서는 오직 저 혼자. 계속 학교에 다니다 보면 친구가 한둘 쯤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 전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저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안심하고 같이 지낼 친구가 제게는 필요했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라이라 씨는 같은 학교에 다니니까, 학교생활 동안 의지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어요.
 조금 고민하다 그래요 될 대로 되라죠 하는 생각으로 저는 라이라 씨에게 고민을 천천히 털어놓기 시작했어요. 빵집에서 자라 와서 그런지 빵을 정말 좋아하게 돼서 빵을 먹으면 행복해진다는 것. 그런 제 모습을 상점가 사람들은 귀엽다고 좋아해 주었지만, 학교에서는 빵만 먹는 제 모습을 이상하게 보고 심지어는 그런 저를 따돌리는 사람들도 많아서 학교 생활이 힘들었다는 것. 그리고 초등학생 시절에는 친한 친구가 몇몇 있었으니까 그 친구들이 저를 보듬어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저 혼자가 되었다는 것까지. 실제로 만나 이야기하는 건 처음인 그저 낯선 사람일 터인데, 어째선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점점 안심이 되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고, 그리고 가슴 한켠이 뜨겁게 북받쳐 오르면서, 한 방울 두 방울 눈물이 양 뺨을 적시기 시작했어요. 흑, 흐흑... 맞아요. 그 동안 저는 너무 답답하고, 슬펐어요. 화로에서 낸 따끈따끈한 빵은 어린 시절에는 저를 그렇게나 기분 좋게 해 주었는데, 어째서 지금은 제 기분을 이렇게 복잡하고, 답답하게 만드는 거예요? 어째서 학교 애들은 빵을 먹었을 때의 행복감을 몰라 주냐고요. 아무리 빵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해 주어도, 그들은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갑갑해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어서, 저는 저도 모르게 라이라 씨를 껴안으며 계속해서 흐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그런 제게 조용히 다가와 등을 토닥여주는 라이라 씨. 아아, 따뜻해... 화로 안에서 맛있게 부풀어 오르는 빵처럼, 제 마음도 따뜻하게 감싸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이대로 계속 있고 싶을 정도로요.
 온몸을 둘러싸는 따뜻한 공기 속에서, 라이라 씨는 이렇게 저를 위로해 주었어요.
 “빵을 좋아하지만 그런 후고후고 씨를 이해해 주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슬픈 것이었군요. 라이라 씨도 아무도 라이라 씨를 이해해 주지 않으려고 한다면 많이 힘들 것 같습니다네요. 게다가 후고후고 씨에게 있어서 빵은 후고후고 씨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니까 더더욱 그렇습니다네요.
 앞으로 걱정하지 말라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이지만, 학교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라이라 씨에게 와서 이야기해 주세요인 거예요. 라이라 씨는 어떻게 해서든 후고후고 씨의 슬픔을 덜어주고 싶습니다예요.”
 라이라 씨를 만나 이렇게 제 고민을 털어놓고 라이라 씨의 따뜻한 손길에 위로를 받고 나니, 당장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음에도 신기하게 불안으로 가득했던 기분이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하네요. 저에게 어떤 마법이라도 건 것처럼, 저는 라이라 씨의 따뜻함에 점점 빠져들어 버렸죠.
 라이라 씨, 정말 고마워요. 이런 생각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이며, 저는 라이라 씨의 품에 한참 동안 안겨 있었어요.


 그 뒤, 저랑 라이라 씨는 함께 빵집에 돌아와, 엄마아빠에게 오늘의 일을 이야기해 드렸어요.
 “호오, 라이라 쨩이 미치루하고 같은 학교였구나.”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혼자가 되었다고 걱정이 정말 많았는데, 이렇게 친구가 생겨서 정말 다행이네.”
 “네. 라이라 씨가 친구가 되어 준다고 해서, 정말 기뻐요!”
 “그래. 이 엄마도 정말 기쁘구나.”
 그렇게 제게 미소 지어 보인 엄마는 라이라 씨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라이라 씨에게 고맙다고 해 주었어요.
 “라이라 쨩, 정말 고마워. 이미 들어서 알겠지만, 초등학교 친구들이 다 다른 학교로 흩어져서 학교에서는 의지할 친구가 없었거든. 그래서 미치루가 정말 불안해해서...”
 “라이라 씨는 그저 후고후고 씨가 슬퍼하는 걸 보아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예요. 그렇게 감사할 일은 아닌 것이에요.”
 “후훗. 평소의 라이라 쨩 그대로구나. 하지만, 그래도 미치루를 위해 준 거니까, 고맙다는 말은 하고 싶어.”
 게다가 미치루가 정말 좋아하는 빵의 소중함을 알아준 거니까. 앞으로 미치루를 잘 부탁할게, 하는 엄마의 말과 함께 따뜻해지는 빵집의 공기. 라이라 씨와 함께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아, 그래. 미치루. 미치루가 빵을 좋아하는 건 좋지만, 학교에 가서 빵만 먹을 게 아니라, 다른 것도 잘 먹도록 하렴. 친구들도 친구들이지만, 골고루 균형잡힌 식단이 중요한 거니까. 알겠지?"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또 다시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네요. 네, 네. 알겠어요. 빵만 먹지 않을게요...
 자, 그럼 힘을 내고 다시 찾아올 학교생활을 준비해 보도록 할까요?



 “그런데, 라이라 씨는 혹시 몇 학년인가요?”
 “라이라 씨 말인 것이에요? 라이라 씨는 2학년으로 학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예요.”
 “헤에, 그럼 라이라 씨가 제 선배가 되는 거네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라이라 선배. 아하핫!”

1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