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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싸움과 거짓말과 게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 무망(無望) -- 3-1= -- 3화 | 재전은 새로운 나날의 시작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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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27, 2018 22:25에 작성됨.

걷던 시간, 즉 전초전이 끝나고 우리들은 그대로 카페로 진입했다. 근처의 적당한 카페에서 먹었다간 까딱하면 미각이 파괴될 수도 있으므로 연회에 걸맞는 가장 좋은 카페에 들어왔다.

역시나 들어오자마자 시선이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내 쪽으로는 아니지만.

뭐니뭐니해도 이곳에는 톱클래스의 미녀가 2명이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학교의 면면들도 먹었다간 까딱하면 미각이 파괴될 수도 있으므로 연회에 걸맞는 가장 좋은 카페에 들어왔다. 보이는 걸 보니, 실제로 누구인지까지 알기에 더욱 증폭된 것이리라.

그만큼 내 쪽으로는 적대적인 시선들도 섞여 들어왔지만, 적당히 흘러 넘기고, 나는 이런 곳에 많이 와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둘에 맞춰 적당히 움직였다. 자리에 앉자, 생각보다 늦게 웨이트리스가 왔다. 원래라면 입구에서부터 안내해야 할 것인데... 물론 그녀에게 따질 생각은 없다. 이런 미녀들이 들어오면 순간 당황해서 타이밍을 놓쳐도 어쩔 수 없으니까.

둘도 당연히 느끼고 있었기에 부드러운 언동으로 그녀를 대한다. 순간 실책의 표정이 드러났던 웨이트리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흐드러지는 꽃처럼 밝게 웃으며 주문을 받고 안쪽으로 사라졌다.

 

이런 하나하나의 과정 속에서도, 삶의 모든 시간에서 그 빌어먹을 공간에서 배운 것들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그것들이 실제로 사람들을 이렇게나 쉽게 조종한다는 것에 이골이 난 나는, 스러질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서도 같은 소리가 난 것을 보면, 미나미도 나와 같은 생각에 도달했으리라. 한편 에스더 씨는 겉으로는 태연자약해 보였지만, 전체적인 얼굴 조형을 보면 미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내 안에서 묘한 안심감이 흘러들었다.

어째서였을까.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녀가 적어도 나와의 교집합이 있다는 점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을까.

 

...어쨌든, 빨리 뭐라도 나와야지 이 답답한 공기가 풀릴 듯하다.

이정도까지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린 것은 없었다고 생각하듯 굳은 손놀림으로 테이블을 건드리는 두사람과 한사람. 온도는 점점 떨어져 마치 말로만 듣던 시베리아의 설원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영원과도 동등하게 느껴지는 시간 후, 메뉴가 나왔다. 미처 공기를 숨기지 못해, 웨이트리스의 얼굴이 하얘졌다. 그래도 어떻게든 표정을 유지하며 세팅까지 하고 돌아간 걸 보니 그녀도 상당한 아이이리라.

 

한동안 조용히 음식을 먹는 소리만이 이어진 후, 에스더 씨가 이야기를 꺼냈다.

 

저기... 그래서 저를 이 곳에 부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갑자기 이야기를 진전시켰다.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몰랐다는 듯 옆에서 작게 기침소리가 들려오며 당황한 기색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까지 와서도, 거기까지 말하고도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거짓말을 못하게 해야겠지.

 

에스더 씨, 체스 한 판 두시지 않겠습니까? 초대면의 상대를 잘 알 수 있는 건 역시 게임이지요.”

 

어제 그녀와 싸웠던, 내가 옛날부터 가지고 있던 판을 꺼내며 말한다.

 

당신은 게임에도 능숙할 것 같습니다만...

 

그렇네요. 당신에게도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니, 재밌는 게임이 되겠어요.

 

일변한 아우라를 두르고, 설원이 빛을 반사하는 듯한 광채를 눈동자에 띄우며, 그녀는 말했다.

 

정말 평범한 시작이였다. 서로가 진행하는 수들은 정석을 벗어나지 않는 수, 어디에나 있을 법한 흔한 대국으로 보였으리라.

 

하지만 내가 5번째 말을 움직이자, 그녀의 눈빛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는 거의 노타임으로 대응수를 두었다. 그에 대해 나도 다음 수를 그녀의 손이 판에서 떠나자마자 두었다.

 

그래, 이 대국은, 그날 싸웠던 첫 번째 대국과 완전히 동일한 대국이다.

 

27수가 넘어갔을 때, 대국은 다른 양상을 띄었다. 누가 더 빨리 그 때의 대국을 완전히 파악하여 빠르게 재현하는가를 승패로 삼고 싸우는 나와 그녀는 이미 생각이나 수읽기 따위 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감각에, 기억에 맡겨, 상대가 놓은 순간, 나라면 이때 어떻게 두었을까를 생각하며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131, 마지막 직전의 수를 놓은 내 손이 떨어지자 그녀는 손을 가져가 흑의 퀸을 5C로 옮겼다. 예정된 결과로 빨려들어 가듯이 말이 판에서 잠시 떨어졌다 닿은 순간, 누구 할 것 없이 완벽히 겹쳐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 “체크메이트” ”

 

몰입했던 의식이 풀리자,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조용해진 카페에서 이곳으로 시선이 모여 있었다. 우리 셋은 시선의 탄막을 어떻게든 받아넘겼지만, 미나미는 방금 전의 대국에 당황한 듯한, 기쁜 듯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구나. 진짜 에스더 양은 이렇게나 뜨겁고 강인한 성격이네."

 

흘리는 듯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했지만 이번에는 듣지 못했다. 에스더 씨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 것으로 보아서는 중요한 이야기 같다만...

 

그런 내 생각을 지우듯, 그녀는 다음 대국을 종용했다.

두 번째 대국은 새로운 대국이였다. 앞선 한 차례의 싸움으로 감출 필요도 연기할 필요도 사라진 그녀는, 마음껏 날뛰면서 나를 베었다. 그 다음도, 그 다음도. 그 날처럼 끝없이 패배하는 감각에 휩싸여 그녀와의 싸움을 이어갔다.

 

흩날리는 보병들을 방패삼아 돌진하는 기사를 성채가 막아선다. 저번처럼 당하지 않겠다며 말과 일체가 되어 대포들의 난사를 피한 기사가 성문을 부수고 들어가 함락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그 직후, 성벽 위로 보이는 하늘에 법진이 펼쳐지며 광탄을 내뿜는다. 그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파괴의 힘으로 함락된 성 째로 매장시킨다. 반동으로 쓰러져 있는 주교를 여왕의 검이 포착한다. 저번의 7번째 대국과 마치 반대처럼 흘러가는 전황이였으나, 마지막은 그때처럼 여왕이 적진까지 파고들어 휘젓고 베어버리는 것으로 끝났다. 정반대의 상황에서도 같은 결과를 만든다. 패배할 것 같던 상황에서도 승리를 이끌어낸다.

 

이윽고 전장 위에 석양이 드리워져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자, 우리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조용히, 원래 다른 이유로 이곳에 왔음에도 그저 우리의 대국을 봐준 그녀에게는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하다. 이런 나에게 게임의 기쁨을 다시 알려준 그녀에게도 감사와 함께 존경과 호승심이 끓어오른다. 이 마음 그대로, 내일 그녀들을 만나 다시 그렇게 보내자.

영원한 이별을 하는 것도 아님에도, 이렇게나 헤어짐이 아쉽고 슬퍼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런 세계에서의 헤어짐은, 더 이상 거짓으로 둘러싸인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기에, 오히려 기뻐해 마지않을 일이였을 터인데.
하지만 우리는 오늘, 슬픔의 헤어짐을 했고, 영원한 이별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일 또 만날 수 있겠지.

 

 

그것이 우리 셋이 함께했던 나날들의 시작을 알렸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청춘의 순수하고 무구했었던 나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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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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