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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장 필요했던 건, 이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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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25, 2018 17:06에 작성됨.

내게 가장 필요했던 건, 이해자였다.


주변에서 이상하다는 소리를 듣는 건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남몰래 바라고 있었다. 내가 특별히 약한 건 아니야. 사람에게는 정말 딱 한 번쯤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이를 필요로 할 때가 있지 않을까.


그런 구실을 붙여서라도. 나는 이해자가 필요했다.


나 자신조차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키사라기 치하야라는 존재를.....누구보다도 가장 잘 알아주는, 그런 존재를. 


그렇지만 요즘 들어서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억지도 다 있구나- 하는 감상이 든다고 해야할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생각은 전혀 없고, 그저 자기의 사정만을 알아달라니. 이런 건 좀 불공평한 게 아닐까. 그래, 맞아. 좀 더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알아두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이해, 해두지 않으면. 그러지 않고서는 나를 이해받을 수는 없을 것 같으니까.


불순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의도였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조금 낫지 않을까. 나는 적당한 변명을 하나 덧붙여가며 다음 스텝을 밟아나가기로 한다. 이해. 어떤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먼저 알아야만 한다. 그럼 대체 뭘 알아야하는 걸까. 어떻게 알아야하는 걸까. 과연 어디까지 알아야하는 거지? 얼마나 알아야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궁금증들이, 저마다의 방향으로 빠르게 흩어져나간다. 아직 그에 대한 해답을 손에 쥐지 못하는 나는, 무수히 펼쳐진 사고의 갈래길에서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막막한 느낌에 작게 한숨이 나오지만, 동시에 아주 조금은 기대감이 든다.


노래나 음악이 아닌 것에도 이런 감정을 느낀다니, 어쩐지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져. 아니, 아니야. 이건 어쩌면 좋은 신호일지도 몰라. 내가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그런. 조금씩 스며들어오는 불안함에게서 애써 고개를 돌리며, 나는 나아갈 방향을 찾기로 한다. 우선은 알아내는 방법에 대해서.....아. 이제 막 걸어나가려던 생각이 그 자리에서 우뚝 멈췄다.


그러고보니,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나는 누굴 이해하고 싶은 걸까.


누구한테 이해받고 싶은 걸까.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곧 어렵지 않게 정할 수 있었다. 머리 양 옆에 묶은 리본이라는 귀여운 트레이드 마크를 지닌 그 아이. 반짝이는 녹색 눈. 쾌활한 목소리. 보고 있으면 어딘가 마음이 누그러지는, 전체적으로 둥근 인상인 소녀. 의외로 나보다 한 살 더 많았던, 같은 아이돌 사무소에 다니는 동료. 무엇보다도 밝은 웃음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마미 하루카. 이미 알고 있는 정보는 많았다. 그렇지만 좀 더 알고 싶었다. 이해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이해받고 싶었다. 


글쎄, 어떨까. 스스로조차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이해할 수 있다는 거지?


마음 한 구석에서 이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도 결국은 어린애의 억지에 지나지 않았던 걸까. 조금 흔들릴 것 같은 마음을, 나는 강제로 다잡았다. 억지라도 상관없었다. 그러고 싶었다.


.....


"잠깐 앉아봐."

"어, 으, 으응."


어째서일까. 하루카는 마지못하다는 투로 떨떠름한 대답을 하고는, 이쪽의 눈치를 슬슬 보며 앞서 마련해둔 자리에 앉았다. 어딘가 불편한 점이라도 있는 걸까. 나는 바로 맞은 편의 자리에 앉아, 블라인드를 치고 최소한의 불만을 켜놓은 탓에 어둡게 된 사무소의 미팅룸을 둘러보았다. 불필요한 자극 없이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 


"저, 저기 있잖아....무슨 일?"


하루카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쪽까지 덩달아 떨리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언제나의 태도를 유지하기로 한다. 나마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간 하루카한테 더 좋지 않은 영향을 줄 테니까.


"그냥, 궁금한 게 생겼거든. 하루카에게."

"에...."

"그래서 질문을 좀 해보려고 하는데, 괜찮을까."


처음부터 덜컥 꺼내버리기에는 상당히 무거운 본론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니까 윗부분만을 슬쩍 떠내어 내밀어본다. 거짓말은 아니다. 말 그대로, 질문을 좀 할 뿐이다. 그러니까 괜찮을 거야. 하지만 그렇게해서 나온 결과는, 그리 괜찮아보이지 않는 듯 했다.


"아, 아하하.....지, 질문이라....."


하루카는 명백히 이쪽을 꺼리고 있었다. 조금은 겁먹은 것처럼도 보였다. 이상하네. 하루카는 질문받는 걸 저렇게 무서워했나? 평소 알고 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혼선이 일어났지만, 어렵게 마련한 둘만의 자리를 놓칠 수는 없었다. 나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나와 하루카 그 둘 사이를 가르는, 유리판이 덮고 있는 네모난 탁자에 놓아둔 접대용 과자를 슬쩍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괜찮다면 하나, 어때."

"앗, 그, 고, 고마워....."


하루카는 더듬거리며 감사를 표하고는 과자에 조심스럽게 손을 대었다. 탕비실에 구비되어있던 것들과 적당히 비슷한 것을 골라왔을 뿐인 물건. 그래도 이 경직된 분위기를 푸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며, 이쪽 또한 같은 행동을 개시하기로 했다. 하루카와 달리 과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가만히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하루카를 불편하게 만들 것 같았다.


"아, 이거 맛있네."


부스럭거리는 소리. 우물거리는 소리. 그리고 다음으로 들려오는 하루카의 목소리는 아까보다는 조금 안정되어있었다. 다행히 입맛에 맞았던 걸까. 그렇지만 혹시 또 몰라, 굳이 확인해보는 말을 입밖에 내본다.


"하루카는 그런 게 좋나보네."

"에....."


나는 전에 하기와라 씨와 있었던 일을 기억해냈다.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 하기와라 씨에게 나는 방금 전과 같은 말을 했었다. 그러자 어째서인지 몰라도, 상당히 당황스러운 듯 보였던 하기와라 씨. 지금의 하루카라고 해서 그와는 별 반 다르지 않은 반응.


어쩌지.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전환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일어나려다 도로 주저앉아버린 듯한 이 칙칙한 공기를 어디 날려보낼 방법은 없는 걸까. 곤란해진 나는 벽면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어둡긴 해도 주의를 기울이면 충분히 그 시각을 알 수 있는 그것은, 하루카와 내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안 돼. 


"저, 저기 하루카."

"으, 응!"

"질문, 할게."

"응! 뭐, 뭐든지!"

"가능하면 숨김없이 대답해줬으면 하는데....."

"그, 그건.....해볼 수 있는 만큼은 해볼게."


분위기 따윈 이젠 뭐든 상관없어졌다. 뭐라도 좋으니 행동에 나서야했다. 그게, 이대로 시간만을 죽이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


"잘 넘어지는 것에는 따로 이유가 있니?"

"....태어날 때부터의 버릇입니다. 아주 못된 버릇."

"그래. 그러면 다음 질문. 여름이라고 하면 산? 아니면 바다?"

"여, 역시  바다! 일까나요....아하하."


마음이 급했던 탓일까. 돌이켜보니 나는 하루카에게 그저 일방적인 의문만을 부딪치고 있었다. 그 덕분인지 기억해두고 있으면 나름 쓸모있을 법한 정보를 얻어낼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하루카의 표정은 딱딱하다. 불편하다는 것이 역력하다. 마치, 꺼내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뺏기고 있다는 얼굴이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대화는 핑퐁게임과도 같이 주고 받는 게 있어야한다는 케케묵은 지식이 머리 속을 한 차례 밝히고 지나간다. 내가 하루카와 하고 있는 건. 아니, 하루카에게 하고 있는 건 전혀 그렇지 않다. 이건 대체 뭐라고 할 수 있는 거지? 아니, 그런 것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해야할 것이 있을 텐데. 곤란하다. 낭패스럽다. 아직 알고 싶은 건 많지만, 이걸 계속하기에는 저항감이 든다. 더 이상 하루카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만두고 싶지도 않았다.


"저, 저기 있잖아 치하야 쨩....."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망설이는 사이, 하루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쪽을 불렀다.


"물어보는 건 좋지만, 그, 조금은 더 평범하게 물어볼 수는 없는 걸까? 이래서는 완전 취조라고요." 


취조. 그동안 벌였던, 대화라고 할 수 없는 것에 정확한 이름이 붙여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방금 하루카의 어조를 곱씹어보았다. 그렇게 심각한 투는 아닌 것으로 볼 때, 진심이라기보다는 농담 쪽에 조금 더 가까운 듯 보였다. 그래, 그렇다면 이쪽도 같은 수로 나가볼까. 어쩌면 분위기 전환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후후, 그러게. 가츠동이라도 하나 시켜둘 걸 그랬나봐."

"엑."

".....농담이었어."

"아, 아하하....농담이라기에는 너무 진지하게 보였는데.....차, 착각이겠지? 그렇지?"


나름 회심의 농담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하루카는 안하는 것보다 못한 메마른 웃음을 흘리고는, 다시 내 눈치를 살폈다.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은 게 틀림없겠지. 그렇다면, 더이상 붙들지 않는 게 정답일 터였다.


"다, 다음 질문. 하루카는 하루 종일 혼자서 집에 있던 적, 있어?"


그런데. 나는, 어느샌가 또 질문을 해버리고 말았다. 


"앗, 또 질문이야? 뭐어, 있긴 한데.....전에 엄마하고 아빠하고 둘다 어디 볼 일이 있다 하셔서."

"외롭지는 않았어?"


어라, 방금, 왜 그랬지. 스스로도 까닭을 모르고 해버린 그 다음의 질문은, 하루카라면 그럴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하루카도 그랬을 거라는 근거없는 추측에서 나온 것일까. 모르겠어. 아니, 잠깐만. 조금 이상한데. 하루카도 그랬을 거라니? 하루카도.....?


"외롭다기보다는 심심했다고 해야할까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 부모님은 금방 돌아오시는 걸. 혼자 있는 때도 그렇게 많지 않고."

"그러니."

"치하야 쨩은 부모님이 자주 집을 비우시는 편인가봐?"

"응. 그게, 두 사람 다 일을 나가서."

"헤에.....그렇구나."

"그렇게 되겠네."


나는, 뒤늦게 두 눈을 깜빡였다. 얼마 없는 빛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눈이 하루카를 새롭게 비췄다. 하루카는 처음보다는 조금 편해진 모습으로 나를 보고는 이윽고 입을 연다.

 

"심심하지 않아?"

"그렇지는."

"익숙해졌다는 거네."

"응."

"혼자 있을 때는 주로 뭐해?"

"음악을 듣거나 노래 연습을 해."

"에헤헤, 역시 치하야 쨩이네."


질문을 한다. 말을 건다. 내가 하는 말을 들어준다. 내 말에 호응해준다. 어느 순간부터 이 방의 흐름은 내가 의도했던 것하고는 정반대가 되고 있었다.


"그렇지 참, 치하야 쨩도 나처럼 외동이었던가?"


하루카가 또 한 번 말을 걸었다. 나는 거기에 무심코 부정하는 말을 내뱉으려다, 겨우 삼켰다. 그렇다고 긍정할 수는 없어서 일단 침묵을 선택했다.


"그, 그렇지 참. 혹시 부활동 같은 거 해?"

"부활동?"


하루카가 황급히 꾸며낸 질문을 듣는 순간, 이쪽을 다소 언짢아하는 몇몇 얼굴들이 뇌리를 스쳤다. 키사라기 씨의 실력은 인정해. 그렇지만, 합창이라는 것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잖아? 최대한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 게 무색했던 목소리들 또한 기억났다. 입밖에 내기에는 별로 유쾌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들. 그렇지만, 부활동하는 것 자체까지는 숨길 것은 아니다.


"일단은 합창부에 들어가 있어."

"우와, 합창부?"

"이상해?"

"치하야 쨩이라면 마치는 대로 곧장 집에 가지 않을까 생각했거든."

"부활동 하냐고 물어본 건 하루카잖아."

"아, 그게....실은 있지, 조금 기대하고 있었어. 치하야 쨩, 어쩌면 소프트볼 부 같은 데에 들어가 있을 수도! 그것도 에이스! 막 이러고."

"그런 데에는 흥미없어."

"아하하, 역시 그렇지요. 합창부라.....치하야 쨩답다면 치하야 쨩답네."


지금은 합창부에 들어간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조만간 퇴부서를 낼 작정이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금방이라도 튀어나가버릴 것만 같은, 심술에 지나지 않는 생각을 억누른다. 그 대신 질문을 던진다.


"하루카는 뭐 하고 있는 거 있어?"

"에....나? 나는 딱히 없는데."

"의외네."

"에헤헤, 그래? 그치만 나, 가끔은 다른 부에 도우미로 들어갈 때가 있다구? 저번 주만 하더라도 치어리더 부에서 불렀다니까."

".....대단하네."

"그치그치?"


자그만한 칭찬에도 하루카는 금방 우쭐거려서는, 어두운 방 안에 특유의 밝은 웃음소리를 풀어놓았다. 덕분에 이쪽도 덩달아 긴장이 풀어져, 입가가 조금 느슨해졌다. 하마터면 이렇게 하루카와 자리를 가지는 목적조차 잊어버릴 뻔한 것을 겨우 붙잡아냈.....아니, 잠깐만. 나는 느슨해진 입가를 원상복귀 시켰다. 그와 함께 미간마저도 꽉 조여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 원래 가지고 있던 목적을 잃어버려도 한참 잃어버린 것 같았으니까.


내가 일부러 이런 자리까지 마련한 건 하루카를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는 어땠지? 그저 단순한 정보만을 몇 개, 얻어낸 정도에 불과하다. 그것도 하루카가 싫어하는 방법을 써서, 반은 강제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안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또 아니었다. 애초에 이런 건, 그 누구도 이해라고 부르지 않아.....


그러니까 말했잖아. 어떻게 남을 이해할 수 있냐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 흔들거리는 마음에 한 때 무시했던 이죽거림이 전보다 더욱 강하게 울려퍼졌다. 비틀거리던 마음이 무작정 그 쪽을 향해 고개를 든다. 스스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자괴감이 나를 짓누른다. 무겁다. 속이 답답해진다. 하루카를 점점 직시할 수 없게 된다. 미안해진다. 질문을 가장한 취조에 시달리게 해서는,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고 말았으니까. 참다못한 나는 하루카를 불렀다. 내 제멋대로인 억지에 어울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할 작정이었다.


"저기, 하루카."

"치하야 쨩."


하지만 그 때. 하루카도 나를 불러서, 일순 숨을 크게 삼켰다.


"아, 미안."

"괜찮아. 먼저 말해."

"에....그러면.....그, 이걸로 궁금한 건 전부 풀렸나 싶어서."

"으, 응."


거짓말이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다. 알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렇지만 그게 이해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니까. 나 혼자만의 지적 욕구를 채울 뿐인 일이니까. 그러니까 그만두기로 한다. 봐, 마침 시간도 얼마 없고. 힐끔. 마지막으로 시계를 확인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처져있던 블라인드를 올렸다.


"그렇구나....어쩐지, 조금 아쉬운 느낌."


방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셔 얼굴을 찡그리는 사이, 뒤에서 생각하지도 못한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곧장 뒤를 돌아보니, 햇살 속에서 하루카가 선명하게 보였다.


"치하야 쨩? 왜 그래? 그렇게나 놀란 얼굴을 하고."

"아, 아니, 그게."

"있지, 앞으로도 이런 게 더 있었으면 하는데. 안될까?"


멋쩍게 웃고 있는 그 모습은, 무척이나 환하게 보였다. 지금까지 어둠 속에서 엿보였던 어색하고, 딱딱하고 불편했던 표정들을 기억 속에서 모조리 날려버릴 정도로.


"하, 하루카가 그러고 싶다면. 그런데 괜찮겠니?"

"응?"

"처음에는 그렇게 내키지는 않은 것처럼 보여서."

"아, 맞아. 그렇네. 헤헷, 실은 처음에 엄청 놀랐어.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 했다니까."


그런데. 하루카가 이번에는 다른 무엇 없이 그저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막상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니 재밌어졌달까. 치하야 쨩이 나에 대한 걸 알아간다고 생각하니까 어쩐지 또 기뻐져서....에헤헤."

"그, 그래....."


그 미소에 내 마음이 이끌려간다. 안 쪽에 자리잡았던 무거움이 풀려나가는 기분. 비록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하루카가 즐거워한다면 그걸로 괜찮지 않을까. 그런 무책임한 생각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올 정도로, 마음은 어느덧 자유를 되찾고 있었다.


"아, 하지만 방금 궁금한 건 전부 풀렸다고 했었지."

"아, 그건."


미안. 거짓말이었어. 내가 그렇게 사과하기도 전에, 하루카는 장난스러운 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어디보자.....그럼 이렇게 할까. 다음에는 내가 치하야 쨩에게 질문해보기로."

"에....?"

"생각해보니 나, 아직 치하야 쨩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구나- 싶어서. 합창부에 들어가 있다는 것도 완전 처음 들었고."

"으, 응. 그랬었니."

"그밖에도 모르는 게 산더미일테니까. 이것저것 알아두지 않으면 안되겠네."


하루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 쪽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하루카."

"응?"

"하루카는 뭘 위해서 날 알고 싶은 거야?"

"에....그러니까.....음.....그냥, 알고 싶어져서? 좀 전만 하더라도 치하야 쨩, 나한테 엄청 질문해댔잖아. 치하야 쨩만 날 알아버리는 건 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건 그랬다. 그럴 수 있었다. 그럴 만 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고개를 끄덕이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라서, 나는 멀뚱멀뚱 하루카를 보고있기만 했다. 그러자 하루카는 이상하다는 듯 두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곧 장난섞인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으흠, 그러는 치하야 쨩이야말로 날 알아서 뭐하려고?"

"미안. 싫었던 걸까."

"에이, 아니야. 좋은 걸. 치하야 쨩이 날 알고 싶다는 건, 그만큼 관심이 있어서 그렇다는 거잖아."


.....아니야? 하루카가 뒤이어 발한 말에서는, 아주 약간 장난끼와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윗부분만 슬쩍 떠내고 남았던 나머지 부분마저 보이고 말았다.


"하루카를 이해하고 싶었어."

"이해....아하하, 생각보다 조금 어려운 이유였네."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알아야하니까, 알아보려고 했었어. 너에 대한 걸."


그리고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직접 물어보는 것이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실행에 나섰던 거고. 그렇지만. 나는 좀 전에 얻어냈던 결과를 다시 상기하며 쓰게 웃었다.


"안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였나봐. 아니, 무엇보다도." 


처음부터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일 같은 건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이해하려는 목적 자체도 상당히 불순했는 걸. 나를 이해받기 위한 선행과제. 그렇게 정리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고마워."


조금 그늘이 지려는 마음에, 또 한 번 햇살이 비추었다. 아직 그 따스함보다는 눈부심이 앞서서, 나는 다소 퉁명스러운 말투로 불순한 의도를 밝혀버렸다.


"그렇게 고마워할 건 아닐지도. 왜냐면, 결국에는 나를 위한 행동이니까."

"엣, 나를 이해하는 게 어떻게 치하야 쨩을 위한 게 되는 거야?"

"나만을 이해해달라고 하는 건 좀 불공평하다고, 요즘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그러니까, 그, 기브 앤 테이크라는 걸로. 스스로도 낯부끄럽다고 생각되는 말을 겨우 꺼내자, 하루카는 한동안 멍하니 있는가 싶더니 곧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어, 어째서.....?


"후, 후후, 푸후훗, 아하하핫."

"저기, 그, 하루카? 갑자기 왜....."

"어쩌지. 나, 치하야 쨩이 굉장히 귀엽다고 생각해버렸어."

"귀여, 워.....?"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평에 신체도 정신도 빳빳하게 굳는다. 어떻게 해서 저런 평이 나온 걸까. 하루카는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귀엽다는 말은, 정말 귀엽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반어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걸까. 아직 하루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그저 말없이 하루카를 바라본다. 그러자 하루카의 얼굴에서는 조금씩 웃음기가 사라지고, 대신 불안감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아, 그, 저기.....미안. 기분 나빴어?"

"으으응. 아니."


기분 나쁜 건 아니었다. 혼란스러워. 그리고 불안해. 하루카가 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과 같은 눈으로 나를 보게 되지 않을까, 하고. 나는 여전히 어색한 눈짓으로 하루카를 보았다. 하루카도 주춤주춤 나를 보았다. 나는 하루카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루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둘다 불안해하고 있다. 이런 점만큼은 똑같다는 점에서, 조금 헛웃음이 나올 것 같다.


역시,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겠지.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중얼거리고는 미팅룸의 불을 켰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네."

"응."


딱히 크게 건든 건 없었으니까, 다시 불을 끄고 이 곳을 나가면 되었다. 나는 하루카가 내 뒤를 따르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불을 껐다. 그리고는 미팅룸 밖으로 나와, 하루카가 나오는 것을 기다린 다음 조용히 문을 닫았다. 앞으로 이런 일로 이곳을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단정짓고는 하루카에게 그만 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려는 그 때.


"하지만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소중하다고 생각해."


하루카가 그렇게 말한 탓에, 나는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루카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치하야 쨩. 앞으로의 인터뷰, 잘 부탁해?"


그러고는 가끔 몇 번 찾아오는 기자의 흉내를 내고는, 웃었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한 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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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아이커뮤에 들어오는 군요. 간만의 하루치하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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