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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치바나 수사일지 ~테이블 위의 가루~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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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16, 2018 04:58에 작성됨.

“일단 복도 쪽 가짜 CCTV는 제쳐두고 근처의 다른 CCTV를 살피며 동선을 파악하도록 하죠. 자, 그럼 이것부터…….”

“아, 그거 고장이래.”

“캬악!”

하나같이 도움 안 되는 한심한 감시도구 기계 놈들. 적어도 346프로덕션이 아이돌들의 사적 공간을 어쩌다 보니 존중하고 배려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자명한 듯했다. 사측의 의지가 작용한 부분은 아니겠지만.

“어라? 그래도…….”

다행히도 완전히 고장나버린 건 아닌지 녹화된 영상 중 (꽤나 지지직거리긴 하지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영상이 일부 남아있었다. 오후 5시 15분부터 6시 45분까지, 한 시간 반 가량의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미나미의 발견 시점으로부터 굉장히 가까운 시간대인지라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핵심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아리스는 정확한 시작 시간을 체크하기 위해 영상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근듸 지나댕긔는 새럼들이 일케 마눈대 뉴가 샤뮤실로 드루간 곤지 딸꾹 어케 아러?”

사나에가 혀를 뱅뱅 꼬며 느릿느릿 질문했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어절의 맞춤법이 틀렸고 유일하게 맞춤법에 맞게 말씀하실 수 있는 부분이라곤 딸꾹 뿐인데 용케 핵심적인 질문을 던지셨군요. 일단…… 제 추측이 맞다면 프로듀서나 동료 아이돌 분들 중에 범인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슬프게도.”

아리스의 단언에는 근거가 있었다. 신데렐라 프로젝트 사무실은 일단 사무실이라고 불리고 있긴 하지만 이제는 거의 아이돌들의 휴게실 내지는 만남의 광장 정도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 만큼 아이돌들이나 담당 프로듀서 외의 사원들이 출입할 일은 생각보다 드물다.

“그런 이유로 이제부터는 이 한 시간 반 동안 누가 그 근처를 오고 갔는지 체크할 예정입니다. 추후 영상에 등장한 사람들이 왜 그곳을 지나쳤는지도 당연히 알아볼 거구요.”

“오늘 캣츠 야구보다 이게 더 재밌다 야.”

“빈정거리는 줄 알았는데 진심이시군요……. 그런데 이 영상은 저만 남아서 마저 체크하려고 해요. 여러분은 완전히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여전히 용의자 선상에 있을 수 있음을 아셔야 해요. 그러니 여러분께 이것저것 알려드릴 수 있는 것도 여기까지입니다.”

어쩔 수 없다. 아리스 나름대로 생각한 심증은 있으나 아직 물증이 없으니. 동료 아이돌들에겐 미안하지만, 일단은 모두를 의심하는 단계일 수밖에 없다.

“근데 아리스 쨩.”

미나미가 끼어들며 말했다.

“다른 게 아니고, 정말로 괜찮겠어? 시간이 늦어서 피곤하기도 할 테고……. 영상은 내일 다시 와서 확인하는 게 어때?”

미나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걱정스런 얼굴(아마 그럴 것이다)로 아리스를 바라보았다. 오히려 아리스는 그게 뭐가 대수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걱정해주셔서 감사 드리지만 저는 애가 아니에요. 이 정도 시간에는 피곤하지도 않네요. 저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예요.”

“그래도…….”

“괜찮아요. 여러분도 제게 도움 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으니 이제 돌아가셔서 쉬세요.”

다들 아리스의 수면과 건강에 대한 우려를 표했으나 그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아리스가 뭣도 없이 막무가내로 버틴 건 아니었다. 아까의 조급해하던 아리스와는 달리 지금의 아리스에게는 어떠한 확신이 있었다. 이제 모든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직감. 게다가 이 영상만큼이나 결정적인 증거가 남아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사건은 하루 만에 스스로의 추리만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모두를 내보내고 아리스만 홀로 모니터실에 남았다. 꼭 이럴 때 코우메가 들려줬던 무서운 이야기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온갖 잡생각을 애써 떨쳐내고 일단은 영상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진실은 화면 너머에 있다.

그날 밤, 아리스(aka 수사관)는 아직 아리스가 돌아오지 않은 것을 눈치챈 프로듀서에 의해 잠든 채 발견되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말았네요…….”

아직 부스스한 얼굴로 프로듀서가 우린 차를 한 모금 넘기는 아리스. 대강 20분쯤 보다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잠든 것으로 보였다.

“괜찮아. 집에도 말씀 드렸으니 내 차로 집에 가면 돼.”

“아뇨, 전 마지막까지 전부 확인하고 가야 해요. 오늘 내로 마무리 지을 수 있어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말했지만 그 태도는 단호했다. 잠시 침묵하던 아리스는 고개를 홱 들더니 프로듀서에게 말했다.

“자, 그러니 프로듀서 씨도 제게 협조하세요. 같이 남은 영상을 확인하도록 하죠.”

“나도 용의선상에 있는 거 아니었어?”

“설마 프로듀서가 본인이 담당한 아이돌을 후려쳐서 며칠 동안이나 쉬게 하진 않을 거라 생각해요. 이건 단순한 믿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제 논리적 판단에 의해 근거한 거구요. 프로듀서를 신뢰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예요.”

일단 아리스도 일부분에 있어서는 나름대로 결론을 낸 상태였다. 무작정 아무나 용의선상에서 제외하지 않는다.

“아무튼 그렇게 되었으니 계속 서 계시지만 말고 여기 오셔서 좀 도와주세요. 어디까지 봤더라…….”

“근데 나 방금 일 끝났는데…….”

영상이 재생되었다.

한 시간 반짜리 영상이 끝나자 노이즈음과 찢어지는 화면이 반복되더니 얼마 있지 못해 완전히 나가버렸다. 아리스는 한숨을 폭 쉬었다.

“드디어 끝났네요……. 저기, 프로듀서 씨?”

“…….”

“프로듀서 씨!”

“앗 아아 전무님 죄송합니다!”

“그새 무슨 꿈을 꾸신 건가요……. 안타까움으로 가득한 잠꼬대는 그만 두시죠. 한참 어린 저도 이렇게 멀쩡한데 뭐 하시는 건가요.”

“아까 잤잖아…….”

“됐고, 보시면서 뭐 발견한 거라도 있으신가요?”

“사람이 많다는 거?”

“네 어차피 기대 안 했어요. 이제 제가 발견한 걸 보시죠.”

“방금 좀 어이없어한 거 같은데.”

아리스는 영상을 보면서 적어둔 시간까지 영상을 돌렸다.

“자, 여기 보이시나요?”

흐릿한 영상 속에는 세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프로듀서는 눈을 비비며 그들이 누구인지 자세히 살폈다.

“이건……. 미나미랑 아냐고, 이 오른쪽은 누구지?”

“아쉽게도 지금 영상에선 오른쪽 부분이 심하게 깨진 상태라 정확히 확인하긴 어려워요. 일단 머리카락 색이나 대강의 복장 등으로 좁혀나가긴 했지만 어차피 정 모르겠다면 미나미 씨에게 물어보면 되는 일이고……. 일단 이 모퉁이를 돌면 신데렐라 프로젝트 사무실이 나온다는 건 프로듀서도 잘 아시겠죠. 그리고 끝 쪽으로 곧장 가면 레슨실로 갈 수도 있고요.”

아리스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 영상에 잡힌 다른 사람들도 확인해보니 대부분 유닛 별로 같이 이쪽 복도를 통해 이동하더군요. 지금 화면에 잡힌 미나미 씨와 아나스타샤 씨처럼요. 추측하건대, 이때까지 화면에 잡혔던 분들은 아마 레슨실이 목적이었을 거예요. 유닛 별 특별레슨이 있던 날이라고 하면 납득이 가네요. 그렇다면 이 오른쪽에 계신 이 분은 뭘까요? 프로듀서 씨, 혹시 그 사이에 러브라이카에 새 멤버가 추가된 건 아니겠죠?”

“물론이지. 그런 일이 있다면 내가 먼저 알았을 테고.”

“그렇죠. 그럼 이 분은 그대로 사무실로 들어갔다고 추측되네요. 단,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어요. 시간이 너무 일러요. 이 분은 꽤 이른 시간부터 카나코 씨와 함께 있었어요.”

“그러게. 아직 영상이 시작된 지 30분도 안됐네.”

“심지어 영상이 끝날 때까지 이 분은 다시 CCTV에 잡히지 않았어요. 미나미 씨가 카나코 씨를 발견한 것이 오후 7시경이었으니 영상이 잡히지 않은 15분 사이에 방을 나왔다는 얘기가 되겠죠.”

정말이지 절묘한 타이밍이다. 이 사람이 범인이라면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거나 혹은 굉장히 주도면밀한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아리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고의든 아니든 정말 카나코 씨를 기절시켰다면 누가 들어오기 전에 그곳을 빠져 나오려 했을 거예요. 아마 카나코 씨와 한동안 같이 방에 있다가 범행을 저질렀겠죠. 왜 계속 같이 있던 사람에게 그런 심한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네요. 뭐, 싸웠다던가 하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요.”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는데”

프로듀서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왜 CCTV 화면에 카나코는 잡히지 않았을까? 그 말은 그전부터 계속 사무실에 있었단 얘기가 되는데 카나코는 대체 혼자서 뭘 하고 있었을까?”

확실히 사무실은 혼자 앉아서 뭘 하기엔 꽤나 따분한 장소다. 카나코가 뭘 하고 있었는지도 충분히 의심해볼법 하다. 그러나 아리스는 프로듀서의 의문에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아리스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바로 그거예요, 프로듀서 씨. 어쩌면 그게 이 사건의 원인일 지 모르죠.”

다음 날 오후, 한가한 사람들은 모두 사무실에 모여있었다. 각자 자유롭게 떠들며 휴식시간을 보내던 그 때, 아리스(aka 수사관)가 창문을 통해 들어온 자연광을 가르며 사무실에 들어왔다. 아리스는 아무 말 없이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지시봉을 든 채 목을 가다듬더니.

“여러분, 주목해주세요. 어제 저녁,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사무실 내부는 일순간 조용해졌다. 아리스는 정적에 싸인 사무실을 한번 쭉 훑어본 후 말을 이었다.

“누군가가 미무라 카나코 씨의 후두부를 가격하여 하루 동안 의식을 잃게 만들었죠. 저, 타치바나 아리스는 몇 가지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문에 고개 돌리지 않기 위해 본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려 총력을 다했습니다.”

“아리스 쨩 묘하게 텐션 높아 보이지 않아?”

“아리스 쨩이 아니라 수사관 쨩이야.”

“타치…… 아오 흐름 좀 끊지 마세요! 아무튼 저는 어제 몇 가지 단서가 될 만한 정황을 발견, 취합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오오 불타오르는데!”

“그 말은 범인 녀석을 쳐잡았단 얘기임까?!”

“자자, 정숙해주세요. 이제 범인이 누군지 밝힐 거니까요.”

유키와 니나의 말을 시작으로 사무실 내의 반응이 점차 뜨거워졌다. 아리스는 평소대로의 침착함을 유지하려 하고 있었지만 입가에 슬쩍 스치는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는 미처 숨길 수가 없었다. 그는 숨을 몇 번 고른 후에 입을 열었다.

“범인은…….”

잠시 동안의 정적.

“당신이에요!”

아리스의 지시봉이 허공을 가르며 누군가를 향하더니 척 하고 멈췄다. 그곳에는……

“미치루 쨩?!”

아아…… 바로 이거야……. 아직 발표중인 만큼 아리스는 최고조에 달한 만족감을 어떻게든 억누르려 애썼다. 매번 후미카 씨가 빌려주던 추리 소설에서만 보던 로망이 실현되는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보고 계신가요 홈즈, 보고 계신가요 포와로. 이런 기분이군요…….

“어? 나 뭔가 나쁜 짓 했어?”

미치루는 후고후고거리며 열심히 빵을 먹는 와중에 자신이 지목당하자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며 물었다. 아리스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을 이었다.

“역시나 잡아 떼시는군요. 하지만 당신의 변명도 제 완벽한 논리 앞에선 아무 쓸모가 없다는 사실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어요. 자 그럼 설명하도록 하죠 흠흠.”

아리스는 가볍게 목을 푼 뒤 미나미에게 질문했다.

“미나미 씨, 어제 아나스타샤 씨, 미치루 씨와 함께 사무실 앞을 지나간 일이 있었죠?”

“응, 미치루는 사무실에 들어가고 우리는 레슨실에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던 기억이…….”

미나미가 그 때를 떠올리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아리스는 그 답변을 듣고선 한층 더 의기양양해졌다.

“그렇겠죠. 미치루 씨는 카나코 씨가 혼자 사무실에 있을 때 사무실에 들어갔어요. 그 때 두 분은 뭘 하고 계셨을 지 다들 감이 오시죠?”

“응 우리 테이블에 모여 앉아서 빵……”

미치루가 끼어들려고 하자 아리스는 손을 들어 제지했다.

“미치루 씨 발언권은 조금 이따가 드릴게요. 네, 맞아요. 카나코 씨는 맛있는 걸 좋아하고 미치루 씨는 빵을 좋아하죠. 카나코 씨는 느긋하게 쉬며 저녁으로 빵을 드시고 계셨을 거예요. 그 때 마침 미치루 씨가 들어오신 거고요. 두 분은 말이 잘 통하니 같이 빵을 나눠먹으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셨겠죠.”

“응 맞아!”

“그게 오랫동안 사무실에서 나오지 않은 이유가 되어요. 미치루 씨는 애초에 카나코 씨에게 해를 입히려 사무실을 찾은 게 아니었을 거예요. 그러던 도중 무슨 일이 일어난 거겠죠. 두 분이 싸우실 만한 일이라면, 역시 카나코 씨가 미치루 씨 몫까지 빵을 먹어버렸다던가? 뭐 그런 일이 아닐까 싶어요. 어떤가요, 미치루 씨.”

미치루는 잠시 생각하더니 사실대로 얘기했다.

“음~ 그러고 보니 카나코 쨩이 내가 가장 먹고 싶었던 허니브레드를 가져가긴 했어.”

“역시 그런 이유였던 건가요……. 평소 미치루 씨가 얼마나 빵을 사랑하시는 지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만……. 아무튼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음을 추측해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아리스 쨩.”

미나미가 살짝 손을 들며 말했다.

“그런데 사무실에는 딱히 해를 입힐만한 도구가 없지 않아? 더군다나 카나코를 그런 상태로 만들 정도의 흉기라면…….”

“아, 미나미 씨 좋은 질문 감사드려요. 사실 이에 대한 답이 미치루 씨를 범인으로 확정 짓는 데에 좀 더 큰 도움을 주었어요.”

아리스는 중요한 얘기를 앞두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흉기는 바로 빵이에요!”


<3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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