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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치바나 수사일지 ~테이블 위의 가루~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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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16, 2018 04:51에 작성됨.

※ 어나스테에서 배포된 버전을 수정하여 올렸습니다.

※ 묘사 상 원본 설정 및 캐릭터와는 다르거나 과장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가벼운 폭력 묘사와 비속어 표현이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 본 내용은 픽션이며, 실제 인물, 지역, 단체와는 무관합니다.

오후 여덟 시, 346프로덕션의 의무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은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인 것으로 보인다. 두런두런거리는 소리가 밖에서 들릴 정도의 인원이 의무실 침대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침대 위에 있는사람은 미무라 카나코. 사무실 내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현재는 응급실에 잠시 실려 갔다가 신변 보호를 이유로 다시 346프로덕션으로 옮겨진 상태. 하얀 시트 위에 힘없이 축 늘어져있는 카나코의 주변엔 프로듀서와 몇몇 아이돌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갑자기 이런 끔찍한 일이…….”

미나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옆에 있던 프로듀서는 한층 침울해진 표정을 지었다. 최초 발견자인 미나미마저 이렇게 말한다면 더더욱 실신의 원인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의사 말로는 건강상의 문제는 없고 무언가에 의한 타상의 흔적이 보인다고 했지. 그렇지만 대체 뭐가 카나코를 이렇게…….”

프로듀서의 말에 치에리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은 캔디 아일랜드 멤버로서 레슨을 받던 카나코가 의식불명이라니. 그대로 치에리가 눈물을 터뜨리려던 찰나-

“이건 「사건」의 냄새가 나는군요.”

기묘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누군가가 기묘한 대사와 함께 나타났다. 탐정 아이돌, 안자이 미야코였다.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저…… 미야코 쨩, 사건이라니?”

치에리의 물음에 미야코는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척 하고 손가락을 내밀었다.

“모르시겠나요? 뒷머리엔 타상의 흔적, 단 한 명뿐인 목격자, 벌건 대낮에 빈 방에 홀로 남겨진 시체……. 이건 명백한 밀실사건이에요!”

“얘 안 죽었거든.”

“아아아, 더 말씀하지 않으셔도 돼요. 슬프시겠죠, 괴로우시겠죠, 모든 게 거짓말 같으시겠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프로듀서! 본 사건은 이 안자이 미야코가 해결해내어 카나코 씨의 성불을 돕, 헉.”

그러니까 안 죽었다고, 라고 태클을 걸 틈조차 없었다. 미야코의 눈이 일순간 풀리더니 스르르 주저앉아버린 것이다.

“미야코 쨩!!!!!”

“무, 무슨 일이야!”

갑작스런 일에 모두가 당황하던 중에 프로듀서가 허둥지둥 쓰러진 미야코에게 달려들었다.

“잠깐만요.”

작지만 또박또박한 목소리의 누군가가 미야코에게 달려드는 다리들을 멈춰세웠다. 작은 체구에 당당하게 팔짱을 낀 채로 서있는 그는

“아리스……?”

“타치바나입니다. 다들 너무 허둥지둥하시는 것 아닌가요? 이럴 때일수록 보다 차분하고 냉정한 상황분석이 필요해요.”

아리스는 프로듀서에게 ‘불현듯 나타나 날카롭게 상황의 핵심을 파악하는 어조’로 한마디 툭 던지더니 매고 있던 크로스백에서 아이패드와 전용 펜을 꺼내 메모를 시작했다.

“자, 제가 한 번 정리해볼게요. 후두부 쪽에 외상, 미나미 씨가 카나코 씨를 발견한 건 오후 일곱 시경, 사건 발생은 오후 여섯 시 반쯤으로 추정, 최초 발견자 외에 목격자 없음. 맞나요?”

“으, 응…….”

미야코가 앞서 언급한 것과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정보값은 아니었지만 묘하게 하나 둘 정리되어가는 듯했다. 그 외에도 진지한 얼굴로 혼자서 이것저것 열심히 메모를 하던 아리스는 침착하게 아이패드의 커버를 덮었다.

“그럼 이제부터 이 건은 제가 일일 수사관이 되어 해결하도록 하죠.”

“엥……?”

“수사, 뭐……?”

“아뇨 뭐……. 그런 게 있는데 그 뭐냐, 아무튼! 제가 맡아서 처리할 테니 모두들 협조 부탁드려요. 일단 여기에 있어봤자 별 도움은 되지 않아요. 사무실로 돌아가도록 하죠.”

어쩐지 평소의 아리스와는 좀 느낌이 달랐지만 그러한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건지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 건지 다들 별 대꾸 없이 아리스의 말에 따랐다. 프로듀서만이 겉옷을 챙겨 입다 문득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근데 미야코는……?”

“아 앗 아 그렇군요. 저런, 레슨이 끝난 직후일 텐데 너무 무리하신 모양입니다. 제가 침대로 옮기도록 하죠. 아, 돕지 않으셔도 돼요.”

이 과정에서 옆에서 조용히 모든 걸 지켜보던 미나미는 아리스가 수상쩍을 정도로 경직된 말투를 구사한 사실과 미야코를 옮기는 과정에서 목덜미의 무언가를 제거하는 모습을 발견했으나 이를 섣불리 지적하기엔 아리스가 묘하게 들떠있었기에 일단은 묵인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아리스(aka 수사관)의 수사일지의 첫 페이지가 열렸다.

“여기가 사건 현장이군요. 미나미 씨는 특별한 건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셨죠?”

“응, 너무 놀라서 다른 걸 살필 경황도 없었지만.”

아리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살폈다. 확실히 특별한 무언가는 눈에 띄지 않았다. 평소대로의 사무실일 뿐이다. 테이블 위를 제외하면.

‘이게 뭐지……?’

테이블 위에는 정체 모를 하얀 가루가 듬성듬성 흩뿌려져 있었다. 별 거 아닌 가루라 생각할 수 있으나 아리스(aka 수사관)의 눈을 피해가기는 어려웠다. 아리스는 손끝으로 그 일부를 손으로 찍어보았다. 단단한 가루였지만 소금이나 설탕이라고 보기엔 좀 굵었고 어떤 것은 약간 바스러지는 느낌도 있었다. 순간적으로 맛을 보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다. 346프로덕션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이니까. 그런 사람들이 뭘 흘렸을지 역시 모르는 일이다.

‘이건…….’

아리스는 크로스백에서 장갑을 꺼내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루들을 미리 준비해둔 작은 봉투에 담았다. 중요한 단서가 될지도 모르는 귀중한 가루다. 첫 증거 채취. 벌써부터 왠지 모를 성취감이 느껴졌다. 이대로만 한다면 사건은 무사 해결이다. 이상한 방해꾼만 등장하지 않는다면 복잡해질 일은 없을 테다.

“곤니치할로~”

“냐핫, 다들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많이 복잡해질 듯하다.

“잠깐만요. 인사는 됐고요, 그 이상 가까이 오지 말아주시겠어요? 지금 두 분은 존재만으로도 이미 유력한 용의자상에 올라와있으며 설령 두 분이 범인이 아니더라도 함부로 수사현장에 개입할 시엔 고의든 아니든 자칫 댁들에 의한 증거인멸이 발생할 우려가 있거든요?”

“앗 아리스 쨩이다. 메틸헥사비탈은 잘 썼어?”

“칵! 조용히 해요!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라구요!”

“뭔데뭔데~? 또 누가 시키 쨩이 만든 유아퇴행 주스 마신 거야?”

“그런 주스가 있고 또 그걸 마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네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프레데리카 씨랑 시키 씨! 두 분 오늘 사무실에 드나든 적이 있었나요!”

아리스는 혹시라도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사람들’ 둘이 이쪽으로 다가올까 경계하며 물었다. 시키와 프레데리카는 서로를 한 번씩 쳐다보았다.

“아니? 시키 쨩은 방금 회사 정문에서 만나서 같이 온 거고 나는 검은 고양이 프레데리카 놀이 하고 있었어.”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무실엔 들른 적이 없단 말씀이시죠?”

“아리스 쨩이 올 줄 알았다면 더 일찍 왔겠지만 말이지~”

“타치바나고요, 일단 알겠어요. 물어볼 게 한가득이니까 한가하시다면 저~쪽에 가 앉아계세요.”

“응!”

둘은 촐싹대며 걸어가더니 지나치게 올바른 자세로 구석에 있는 소파에 가 착 하고 앉았다. 일단 둘은 알리바이를 제시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본인들의 주장일 뿐이다. 여전히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귀찮게 군다거나 하진 않을 것 같다는 점에서 안심이다. 저 둘만 얌전히 있으면 이 수사도 착실히 진행해갈 수 있을 것이며

“안녕안녕! 테레비 틀어놨어? 오늘은 캣츠가 이긴다!”

“어라 다들 모여있었네, 후훗.”

“언니들 자리는 있으려나~? 앗! 아리스 쨩 안녕~~!!~!~!”

수사관 아리스는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곳이 이곳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것을 깨닫고 속으로 탄식했다. 유키와 사나에는 오자마자 신나서 주사 혹은 고성방가에 가까운 언행들을 해대기 시작했고, 카에데는 벌개진 얼굴로 후훗거리며 좁은 사무실에서 와와거리는 무례한 일행들을 맑은 사케처럼 티없는 미소로 받아주고 있었다.

“또 술 드시러 오신 건가요! 프로듀서가 분명……”

“우리 술 마시러 온 거 아닌데?”

“이미 마시고 온 건데?”

“아오!”

아리스는 순간 그들이 반쯤 깨면 위협용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할 각종 술병을 챙겨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몹시 유감스러웠다. 그저 세 사람이 추가되었을 뿐인데 그나마 조용했던 사무실이 금세 왁자지껄 해졌다. TV소리에 사나에의 음도 제대로 맞지 않는 노래 소리까지, 게다가…….

“거기 앉지 마세요! 아직 조사가 덜 끝난…… 유키 씨! 소파에 걸개 걸지 마세요!”

“캣츠 새끼들은 오늘도 병살만 치냐!”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난장판을 어느 정도 통제해줄 사람이 자신을 제외하고적어도 한 명은 있다는 것이었다. 카에데에게 슬쩍 눈치를 주면 좀 동조해주려나 싶었다.

“제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구요!”

“총이 네 자루 있으면 4 gun? 풉끅.”

아리스가 의자 하나를 걷어차고서야 사태는 진정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된 일이니 협조 부탁드려요. 그리고 유키 씨, 혹시 오늘 지나다니면서 누구누구 만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글쎄, 취해서 기억이 안 나는데.”

“물어본 제가 멍청이네요. 카에데 씨는요?”

“잠깐 잠깐 아리스 쨩.”

카에데가 입을 열기도 전에 옆에서 가만히 딸꾹거리던 사나에가 멋대로 끼어들었다.

“취조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란다. 언니가 현역 때 종종 쓰던 방법인데 잘 보고 참고하도록 하렴.”

“그런가요……. 불안하지만 한 번 해보시죠.”

사나에는 유키의 반대편에 철제 의자를 가져와 털썩 앉은 뒤 목소리를 깔고 시범을 보였다.

“야 짜샤, 내가 지금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거든? 그래서 빨리 끝내는 방법을 고안하려 하는데, 지금부터 1부터 10까지 숫자를 적을 거야. 헛소리 하나 당 숫자 하나가 지워지는데, 숫자 하나가 지워질 때마다 손가락 하나가”

이후 사나에는 발언권을 잃었다.

“음~ 저도 아리스…… 타치바나 쨩에게 한가지 도움을 주고 싶은데”

사나에의 취조쑈 때문에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카에데가 입을 열었다.

“취조도 중요하지만 이런 일엔 좀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지 않겠어요? 프로듀서에게 혹시 복도 쪽 CCTV를 확인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게 어떨까요?”

“오……. 그렇네요. 방 내부에만 집중하다 보니 복도의 CCTV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이런 초보적인 미스를……이라고 자책하면서도 드디어 쓸만한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래도 어른은 어른이구나. 다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쇠뿔도 단 김에, 아리스는 아이패드를 챙기며 소파에서 일어섰다.

“자, 그럼 프로듀서에게 가보도록 할까요.”

“오우! 가자가자♪ 검은고양이 프레데리카가 간다~”

“야호! 프로듀서 기다려랏!”

“저런저런, 그렇게 뛰면 저도 뛰고 싶어져요. 저run저run…… 후후……. 꺼얼껄…….”

정말 이 사람들과 같이 가도 될까. 정신사나운 건 둘째치고서라도 어쩌면 이중에 범인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온갖 생각을 하면서도 아리스는 까불대며 자신을 쫓아오는 무리들을 애써 무시한 채 사무실을 나와 이 시간까지도 근무 중일 가여운 프로듀서를 찾아 나섰다.

오후 10시, 야심한 시각이지만 프로듀서의 도움을 받아 CCTV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리스 일행은 집에 가고 싶다는 한마디를 남기는 프로듀서를 뒤로 한 채 CCTV 화면을 준비해놓은 모니터로 향했다. 카나코 실신사건 담당 수사관 아리스. 진상에 크게 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일까. 그러나

“……안 나오는데요?”

뜻밖의 난관. 범인의 조작일까?

“아 그건 가짜래.”

종합병원 입원조차 하지 못하고 회사 의무실에 누워있는 아이돌, 퇴근하지 못하는 프로듀서, 어떠한 뜻깊은 사정이 있는 것인지 가짜로 설치되어있는 CCTV. 아리스는 346프로덕션이 진정 대기업이 맞는 것인지, 수사한다면 346프로덕션의 부조리한 현실부터 수사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수 초 간 고찰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수사는 지체되어버리는 걸까. 낙담해있는 아리스의 어깨에 새하얀 손이 슬쩍 올라갔다.

“꺄아아아아악!”

“에에에에에엥?”

“아 진짜 뭐예요 프레데리카 씨. 그렇게 손 올리지 마세요.”

“그럼 어떻게 올려야 하는데?”

“이 사람 진짜 한 마디도 안 지려는 거 봐!”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짓는 아리스와 능글맞게 웃고 있는 프레데리카. 프레데리카는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로 슬쩍 뒷짐을 진 채 아리스 옆에 앉았다.

“어린이 수사관님.”

“타치바나.”

“수사관 쨩.”

“아니 진짜…… 아뇨 됐어요, 말씀하세요.”

프레데리카는 아리스 쪽으로 스르르 다가왔다.

“단서는 한 번에 뿅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잖아? 우선 천천히 처음부터 짚어나가면서 답을 찾아보는 게 어때?”

“네?!”

“왜 그렇게 놀라는 거야?”

“아뇨 갑자기 그렇게 올바른 소리를 하니까……. 아무튼 웬일로 프레데리카 씨가 옳아요. 제가 너무 조급했네요.”

확실히 그렇다. 사건이 지체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갑자기 불안감이 커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급하게 진행하다가는 발견할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아리스는 곰곰이 생각했다. 이 사건을 미제사건으로 종결시킬 수는 없다. 자신이 수사관을 자처하고 나섰으니까. 그 동안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 비웃음을 받는 자신만을 상상했다. 이는 역으로 사건을 멋지게 해결해 당당히 모두의 앞에 서는 자신을 앞서 떠올렸기에 나올 수 있었던 상상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단순히 멋있어 보일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닌, 수사관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다워질 필요가 있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아리스는 마음을 다잡았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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