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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Crossover-able:사기사와 후미카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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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4, 2018 00:56에 작성됨.

"네, 다시 MC가 보내드립니다! 1주년을 맞이한 765 시어터의 'UNION'! 역시 믿음과 전통의 765라고 할 수밖에 없겠는데요..."

MC의 형식적인 멘트를 뒤로 하고, 무대에서 돌아오는 아이돌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카오리 씨를 센터로 보낸 일은 스스로 생각해도 명판단이었다.

넥타이를 다듬고, 아이돌들에게 뭐라고 해줄지, 다음 스케줄은 어떻게 되는지 머릿속으로 다시 점검한다. 늘 하던 일이지만 오늘따라 머리가 복잡하다. 1주년이라 바빠서 그런 걸까.

"사기사와 씨, 다음 무대입니다!"
"네!"

몸이 움찔했다. 무심결에 대답할 뻔했다. 저 편에서, 당사자 그 프로듀서가 뛰어간다.
아직 당황이 얼굴에서 가시지 않았는데, 아이돌들이 돌아온다. 위험하다.

"수고하셨어요, 프로듀서 씨! ...어라, 무슨 일 있었나요?"

역시 카오리 씨가 제일 눈치가 빠르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돌아오자. 중2때 행적이 떠오른 고등학생도 아니고, 이런 일에 휘둘릴 수는 없다.

머릿속에서 정리한 말들을 꺼낼 때, MC의 멘트가 끝을 맺었다.

"사기사와 후미카의, '은하도서관'입니다!"

---

다른 아이돌들을 데려다주고 나니, 레슨실로 갈 카오리 씨와 나. 이렇게 둘만이 남았다.

"프로듀서 씨, 운전 바꿔드릴까요?"

"아닙니다. 곧 레슨 들어가시니, 카오리 씨는 푹 쉬어두세요."

카오리 씨의 걱정에 말은 그렇게 했지만, 결국 뒷차가 경적을 울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레슨실에 도착하면 그 때 쉴 테니까.

---

"그럼, 수고하십시오. 끝날 때 데리러 가겠습니다."

"아뇨, 좀 더 연습할 게 있어서, 오늘은 제가 버스로 갈게요."

"네?"

"그야, 프로듀서 씨한텐 오늘 얘기할 사람도 있으시잖아요? 전직, 346의 프로듀서 씨."

조금 생각해보다가, 누구 이야기인지 눈치채버렸다.
정말이지, 이 사람은 못 당한다.

"...카오리 씨가 버스라니, 영 불안한데요."

"뭐에요!"

농담으로 복잡한 기분을 감춰보았다. 카오리 씨는 금세 삐진다. 어른 같다가도, 그 반짝이는 눈을 보고 있자면 어린아이 같은 사람. 매력적이다. 아이돌의 세계를 보며 두근거리는 사람이다.

후미카에게는, 그런 세계를 보여줄 수 있었던가.

아니, 그 답을 알기에 나는 스스로 그녀의 담당을 그만두고, 346을 제 발로 나왔다. 타카기 사장님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다시 프로듀서를 하지도 않았겠지.

---

벌써 일 년 전의 연락처다. 번호는 바뀌었을까. 바뀌었다면 곤란하다. 그럼 어떻게 연락할까.

아니다, 번호가 안 바뀐 건 알고 있다. 후미카가 그렇게 핸드폰에 신경쓸 수가 없지. 문제는 역시, 연락할 낯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려던 찰나, 문자가 도착했다.

후미카입니다.
항상 찾던 그 식당에서, 항상 저녁을 먹던 시간에 기다리겠습니다.

바보인가. 번호 바꿨으면 어쩌려고.
맥이 탁 풀리면서, 답장을 보냈다.

가겠다만, 적어도 번호 바뀌었을 경우는 생각하자.

---

조금 늦게 식당에 들어섰지만, 잠깐 동안 후미카를 찾지 못했다. 검고 긴 세미 롱헤어를 찾다가, 몇 분이 지나고서야 무대로 가던 후미카가 머리를 묶은 걸 떠올렸다.

그제서야 후미카가 보였다. 늘 앉던 자리에 있었다.

"머리, 밖에서도 묶고 다녔어?"

"...늦었어요."

자리에 앉자 후미카의 눈이 보였다. 예전보다 아주 조금, 더 잘 보였다.

"담당이 39배로 늘어서 그래."

"이젠 농담도 하시네요."

"너만 변한 건 아냐."

"다행이네요, 술에 쓸 비용이 굳어서."

"태클 걸 게 좀 많은데. 나이는...문제없긴 한데, 평일이고. 술 마시러 온 것도 아니고."

"그 때 프로듀서 씨는, 술이라도 없으면 본심을 드러내지 않으셨으니까요."

"윽... 아프네."

"아파야 돼요. 지쳤다는 세 글자 남기고 떠나더니, 다른 사무소로 가서는 오히려 더 힘내고 있고. 덕분에 3주년 행사 생각하느라고 저희 프로듀서가 고생이라고요."

"너...말 많아졌다."

"누구보다는 대화할 보람이 있는 새 프로듀서라서요."

"푸흡..."

험담이지만 웃기다. 스스로 그 때 자신은 그런 험담을 들어 마땅함을 알고 있기에 그럴 것이다.

"그래서, 새 프로듀서는 어떤 사람이야?"

"그 때 당신보다는 나아요. 고개를 끄덕이는 법을 알거든요."

"..."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그 때의 나라고 하면...

"그 땐, 나름대로 가장 이상적인 방침이라고 생각했었지."

---

"사기사와 후미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기사와 씨의 프로듀서 되는 사람입니다. 이쪽이야말로."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처음 만났다. 아직 사무원이던 녀석이 내 이름을 대고 스카웃해온 내 담당 아이돌, 사기사와 후미카.

"우선 역량 검사를 진행할 겁니다. 미리 얘기해 드렸으니 트레이닝복 챙겨오셨죠. 체육동에서 환복 후 2시까지 로비로 와주시면 됩니다. 이후 스케줄은 그 뒤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예? 예..."

"혹시, 질문 있으십니까."

"그게...하나, 있어요."

"...뭡니까."

"절 스카우트해주신 분은...제게서, 가능성이 보였다고 했어요."

"그랬습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신입을 키웠어야 했다.

"프로듀서 씨가 보시기엔, 어떤...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제가 사기사와 씨를 봤어야 알죠."

---

당시의 나는, 지쳐 있었다.
회사가 밀어주지 않아서, 외부 압력에 의해서, 돈에 의해서, 수많은 아이돌들이 져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평가가 끝나고 지쳐있는 후미카를 본 순간, '이번엔 언제 윗사람들 명령으로 떨어져나갈까.'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어버렸다.

"어땠...나요..."

그렇게 물어보는 후미카의 보석 같은 눈을 보면서도, '좋았다'라는 한 마디를 하지 못 했다. 눈은 보석을 보고 있었으면서도, 내가 본 것은 보석의 가치가 떨어지는 순간, 내쳐지는 순간뿐이었다.

"...활동을 계속할지를, 사기사와 씨의 의사로 결정할 정도는 됩니다."

"네...?"

"아직 아이돌을 하고 싶으시다면, 하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트레이너는, 그 때 활짝 핀 후미카의 미소에 전율했다고 했다.

"할게요, 반드시...! 이렇게 빛나는 이야기를, 지나칠 수는 없어요."

"그렇습니까. 그럼, 씻고 사무동으로 와주십시오. 향후 계획과 작성할 서류 몇 개가 있습니다."

"네...!"

그 때 뒤돌기 전에 내가 했던 말이 아니었으면, 아마 지금도 나는 후미카의 프로듀서였을지도 모른다.

"말해두겠습니다만, 그쪽 생각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세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맞는 말이었죠."

"그렇다고 방금 아이돌 하겠다고 한 대학생한테 할 소리는 아니었지."

"그것도 맞는 말이고요."

이제는 어찌 되어도 좋은 과거의 일이라서일까. 부끄러울 법한 이야기들도 함께 회상할 수 있게 되었다.

"나름, 경력은 잘 쌓이고 있었죠."

"그럴 수밖에 없었지. 너는 재능이 있었고..."

"당신은 베테랑 프로듀서였으니까."

"그래도, 정말 단조로웠지."

"네, 2년쯤 가서는 저도 지루해졌죠."

"그래서 딱 2주년 행사 때..."

"당신이 사표를 썼고. ...어디가, 문제였을까요."

"연예계 외에 갈 곳도 없어서, 결국 765에서 사무원으로 지내게 됐어. ...그 극장에서, 조금은 답을 찾았다고 생각해."

"극장의...풍경인가요."

"처음 봤을 땐 정말이지, 아이돌 맞나 싶더라고. 무사태평하고 낙관적이어서, 그리고 제멋대로여서."

"뭔가, 당신이라면 잔소리를 한창 퍼부을 것 같은데요."

"선배 프로듀서한테 얘기했지. 좀 많이 소란스러워서 곤란하진 않냐고. 그런데, 선배가 나한테 물어보더라."

---

"너, 프로듀서의 일이 뭐라고 생각하냐."

"네...?"

"그냥 상담 같은 거니까, 한번 편하게 얘기해봐. 솔직하게."

그렇게 말하며 커피를 건네는 선배에게, 나는 내가 생각해온 아이돌의 세계를 이야기했다.

"솔직히...결국 이 업계도 돈이 최상위입니다. 누군가의 수입, 누군가의 이득에 따라서 아이돌이란 꽃은 피다가도 지고, 좌절하고, 사라집니다. 그렇지만...아이돌을 꿈꾸는 사람들은, 그런 세계의 일원이 되어선 안 돼요."

"흠."

"그러니까, 프로듀서는 그 더러운 세계의 일을 짊어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돌들은 그저 꿈을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너, 담당이랑 일하기 힘들었지?"

갑자기 들어온 선배의 질문에 당황했다.

"아이돌은 꿈 하나만 바라보고 업계에 뛰어들었는데, 프로듀서는 어째선가 지옥을 바라보고 있어. 자신에게 걷고 싶어지는 꽃길을 깔아주면서도, '거기서 한 발짝이라도 잘못 걸으면 생지옥이니 조심해주십쇼' 하니, 꽃길을 걸어도 생지옥이 생각날 수밖에 없지."

"..."

"극장에서 뛰어놀거나, 시트콤이 따로 없이 사는 아이돌들을 보고 있자면, 난 그런 생각이 들어. 이거야말로 아이돌, 우상이 아니겠냐고. 생지옥 같은 세상에 이런 천하태평하고 소란스러운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야말로, 아이돌과 그 프로듀서의 역할이 아닐까 하고."

등골이 오싹했다. 선배는 태평한 사람은 커녕, 나는 한참 전에 포기한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무원으로 한 발짝 물러난 거,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특히, 여기로 와준 거."

"..."

"천천히, 극장을 지켜봐. 그리고 오늘 내가 한 이야기가 마음에서 떠오른 날에, 얘기해줘. 그 땐 널 프로듀서로 쓰도록 사장님께 얘기해볼게."

"어떻게...아실 생각인가요."

"그걸 알게 되면, 너는... 아이돌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네 담당과, 똑같은 눈을 할 테니까."

---

"뭐, 그런 이야기야."

"저와는 못 찾아낸 이야기를...찾아내셨네요."

"그렇지. ...솔직히 너한테 솔로곡으로 그렇게 빠른 비트가 어울릴 줄도, 포니테일이 될 줄도 몰랐어. 그 때 나한테는 그게 한계였겠지."

물잔이 술처럼 보인다.

"결국 초심을 찾았다고 할까, 선배님 말을 이해하고 따라가며 프로듀서로 복귀했어. 그러다가도... 솔직히 말해서, 네 존재가 가끔 켕기더라."

"...솔직히 저도, 오늘 당신을 보기 전까지 그랬어요. 나 때문에 연예계를 포기한 걸까, 하고 문득 생각이 들고."

"죄책감 많은 전 파트너구만. 어쨌든, 오늘 널 보고 안심했어. 과거의 내가, 널 완전히 망치진 않은 것 같아서."

"좋은 일이네요. 아마, 저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이야기가 이상하게 돼버렸네. '너 없이 이렇게 잘 산다 콘테스트'같잖아."

"푸흡..."

"뭐, 내가 할 말은 이 정도였다만..."

"얘기하다 보니, 저도 할 말은 끝났네요."

"그런가, 계산하자."

카드 포인트를 쌓는다면서, 그녀가 계산했다.

"...가끔 책 보다 보면, 그런 거 있지."

"네?"

"크로스오버가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작품."

"있죠, 꽤나."

"옛날의 너랑 내가, 이젠 그렇게 느껴진다. ...힐링 소설의 꼬마아이랑 디스토피아 소설의 생존가 정도일까."

"확실히 동감이에요. 생존가라면 그런 아이를 보고도, 그 아이의 미래에 찾아올 절망만을 볼 테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마이너스였어."

"이젠, 조금은 달라졌습니다만... 이야기를 다시 함께 써 보자고 제안하는 건, 무의미하겠죠."

"이미 각자가 안식처를 찾아버렸으니까. 난 765의, 극장의 사람이야."

"그럼, 안녕히(さよなら)."

"작별이다(さらばだ)."

서로에게 쓴웃음을 지어주고 자동차로 돌아왔다. 술이라도 마신 기분이라, 잠시 시동을 켜지 않고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카오리 씨를 섭외한 날을 떠올렸다.

---

"이제 와서 아이돌이라니... 늦지는 않았을까요?"

"늦고 빠름은 확실히 있습니다만...카오리 씨는 충분히 젊고, 그 격차를 극복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도 뭐랄까, 솔직히 말해서, 스스로에게...자신이 없네요. 평범하고 태평한 인생이라, 아이돌이 될 만한 이야기인지."

그렇게 말하며 수줍게 웃는 카오리 씨를 보고,
선배의 말들이 스쳐지나갔다.
아이돌보다는 아이들 같던, 극장의 풍경이 스쳐지나갔다.

확신을 담아서, 언어를 자아냈다.

"평범하고 무사태평한 이야기니까, 아이돌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


후미카 3차 SSR을 보고, 싱숭생숭한 마음을 담아 썼습니다.

용량 문제로 데레스테도 지웠으니, 다시 돌아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한때나마 좋아했던 아이돌인지라 잠깐 기분이 복잡해져 끄적이...던 게 1시가 됐네요.


후미카나 작중의 P나 각자 길을 찾아갔습니다. 다 읽으셨다면 후미카의 '은하도서관'을 엔딩으로 깔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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