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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하라 미치루 「겨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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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19, 2018 14:01에 작성됨.

언제나 빵만을 생각하며 살 수는 없는거니까, 어릴 적에 몰래 들었던 부모님의 대화는 으레 어머니의 잔소리와도 같은 말로 끝을 맺었었다. 의지와 꿈은 있지만 실력은 평범한 제빵사인 아버지와, 그런 것보다도 평범한 일을 해, 평범한 가정을 이루는 것을 재촉하는 어머니. 물론 그 때에도, 지금도 아버지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야 온 세상 사람들에게 오오하라라는 이름으로 만든 빵이 맛있다고 소문내겠다는 꿈이 나쁜 건 아니니까. 꿈이란건 먹고 사는데에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있으면 좋고 행복한 거잖아. 그러니까 아버지의 꿈을 비난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 사회를 알아버린 지금, 그 때의 일을 돌이켜보면 어머니가 틀린 것은 아니라고 절감하게 된다. 아니, 오히려 어머니의 말이 백 번 옳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린다. 평범한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서 평범한 것이니까. 평범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빵집 딸로서 어릴 적부터 도왔었던 제빵. 일은 정말로 재밌었지만, 빵의 유혹에 넘어가버려 도중에 너무 많이 먹어버렸기에 결국에는 돕지 않아도 된다고 들었었던 어린 시절. 울상을 지으면서도 어머니가 내어준 다 식은 빵을 먹고 난 이후에는 어느샌가 해맑은 미소를 지었던 어린 시절. 혹시 나는 전혀 성장하지 않은 걸지도,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무심코 그렇게 생각해버리고 만다. 그야, 나는 지금도 따스한 코타츠에 뒹굴거리며 누워 빵을 먹고 있으니까. 지금 내가 성장했다면 나는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인 이 상황을 맞이하지 않지 않았을까라고 무심코 생각해 버린다. 나는 무능력한 아이다라고 절감해버리는 오늘이다.


프로듀서 씨로부터 겨울 휴가를 받은 어제는 온 프로덕션의 아이돌들이 모여 라이브를 한다고 발표하던 날이었다. 모두가 기뻐하는 와중에 나만 따로 부른 프로듀서 씨는, 라이브에 내 자리는 없으니 미리 고향으로 올라가도 된다고 귀띔해주었다. 무어라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어, 혼자 기차를 타러 털레털레 기차역을 돌아가는 발걸음은 꽤나 무거웠다. 주변을 돌아보면 모두 나와 같은 유명하지 않은 아이돌들. 그들과 짧게 손인사를 나누며 희망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한 나는 나의 마지막 고향인 후쿠이의 본가로 가는 기차를 타는 플랫폼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본가인 후쿠이로 가는 기차는 너무 드문드문 오기에, 비가 오더라도 피하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덮개도 없는 정거장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나. 하지만 밥 한 숟갈이라도, 아니, 빵 한 조각이라도 내어줄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혹여 기차를 타지 못한다면 오늘 내로는 본가에 돌아갈 방도도 없어져버리고, 그렇게 되면 꼼짝없이 길바닥에 나앉아 구걸을 해야만 할 테니까. 후쿠이로 가는 기차는 정말로 드문드문 온다. 날씨는 너무 흐려 곧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고, 결국에는 비가 쏟아졌다. 비를 맞아버릴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이 비를 맞는다고 해서 라이브에 지장이 가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몸조심하고 다시 월초에 보자는 프로듀서 씨의 말이 떠올라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비를 맞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다니. 눈에 맺히는 불투명한 액체를 닦아내며 덮개가 있는 정류장으로 몸을 피했다.


 
아, 그래도 아이돌 일은 즐겁다. 빵집 간판 아이돌보다 어려운 일이지만, 최소한 빵을 너무 먹는다고 혼나지는 않으니까. 오히려 배가 부를 정도로 먹고도 몽실몽실하게 부풀어오른 빵을 들이미는 것이 이 업계다. 어차피 대식 아이돌로 입지를 다질 거라면 기네스 북에 오를 정도는 되어야 네타라도 된다고 하던가. 그런 것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기네스 북에 오르는 것은 실패했다. 프로듀서 씨는 괜찮다고 하면서 나의 어깨를 두드려 주셨지만, 주변에서 나를 보는 시선으로 알 수 있었다. 아, 나는 이제 빵을 조금 잘 먹는 아이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구나라고.


후쿠이로 가는 기차는 꽤나 오래 기다려야 했다. 달리 말하면 이것저것 생각해 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당연한 흐름으로, 나는 아이돌에 대해서 생각한다. 토토키 아이리, 칸자키 란코, 시부야 린, 시오미 슈코, 시마무라 우즈키, 타카가키 카에데, 그리고 최근에 신데렐라 걸이 된 아베 나나. 언젠가는 나도 그 사람들처럼 인기 있는 아이돌이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일단 이 코타츠에서 벗어나야 하겠지. 겨울의 코타츠는 단단히 뭉쳐진 밀가루처럼 강한 인력을 내뿜어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지만.


주룩주룩. 비는 계속해서 내린다. 너무 우울하니까 빵을 생각해보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따스한 빵을 떠올린다. 치즈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빵...어라, 그러고보니 그런 빵을 먹었던 적 있던가? 나는 기억의 저편까지 더듬어 따스한 빵을 먹었던 기억을 찾아본다. 하지만 어렸을 적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 내가 먹었던 것은, 가게 문을 닫기 직전까지도 팔리지 않는 다 식어빠진 빵들. 버리기엔 아까워 줘 버리는 폐기품. 아, 나는 처음부터 폐기품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같기도 하다. 폐기품, 폐기품, 모두가 사 가지고 간 빵들 사이에서 남아있는 폐기품.


달리 생각해보면, 어쩌면 나는 그나마 운이 좋았던 경우일지도 모른다. 그야 안즈 씨처럼 주 8일 휴가가 꿈인 사람도 있다고? 일주일은 주 7일인데 어떻게 주 8일 휴가를 갈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빵이라도 배부르게 먹었으니까. 일생의 꿈이 실현된 것만 같았던 그 기분은 정말로 짜릿했다. 그래도 그 날을 곱씹어보면 조금은 아쉽다아-라고 생각해버린다. 그 때 내가 조금 더 꾸역꾸역 빵을 집어넣었다면 나는 더 유명해질 수 있었을까? 빵으로 완전히 배가 차 버려 터질 것만 같은 모습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면 나는 행복했을까? 잘 모르겠다. 잘 모를 때는 따스한 빵을 갉아먹는 것이 최고지.


나는 어쩌면 평범한 소녀로 컸어야 하는걸까. 아버지의 일과 나의 일을 생각하며, 나는 다시 빵 한 쪽을 깨물어 맛을 본다. 풍부한, 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빵의 맛. 아무래도 이런 빵 맛으로는 유명 베이커리는 안 되겠지. 그래도 나는 좋아하지만 말이야. 아버지의 따뜻한 맛이 느껴지니까. 어쩌면 이 세계 안에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코타츠를 나와 조금은 몸을 움직여보자.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올거고, 봄이 되면 다시 사무소로 돌아가야 하니까. 그러니까 이번의 겨울을 잘 지내보자. 춥다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비가 온다고 너무 우울해지지도 말고. 주룩주룩 내리는 겨울비. 그 비에 식혀질 정도만 몸을 움직여보자.


이번 겨울을 잘 날 수 있도록.


「겨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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