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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되이 맴돌며 닿지 않는 이야기 - 한 소녀의 생일 [이치노세 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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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30, 2018 23:58에 작성됨.

하얀 방.

무기질적이며 무음의 무의미한 방.

시야는 순백 일색으로 물들어 비치는 것 없이 흐려졌다.

그 방 안에 홀로 있던 것은 한 소녀.

이 무채색의 공간 속에서 극도의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선명한 극채색으로 물든 소녀.

 

약품들이 든 플라스크와 시약병들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독주곡을 연주한다.

적막에 삼켜진 주변은 둘러보지도 않은 채, 오로지 자신과 같은 색채를 내뿜는 그것들에만 신경을 모은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존재의 가치가 있는 빛들이 조용히 명멸하고 있다.

이곳에 어둠이 들어차지 않도록, 빛들은 열심히 흔들리며 섞이고 새로운 빛을 내뿜어 주변을 물들인다. 변색되지 않는 방은 소리 없이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계속되었던 그녀의 빛을 바라본다.

 

이윽고, 소녀의 계속되던 실험이 잠시 멈추고.

몇 시간, 또는 몇십 시간 만에인가, 그녀가 숨을 돌리고 기지개를 켰다.

 

아흐으~~~!!! 완전 뻐근하네! 이번에는 얼마나 이러고 있던 거지?’

 

방금 전까지의 냉철하고도 지성적인 학자 같던, 또는 목석 같던 모습은 간 데 없고, 그곳에 있던 것은 좀 까불면서 자유분방한, 아이였다.

몸이 좀 말을 듣자 소녀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아무 소용 없는 언제나의 말을 한다.

 

에헤헷시키짱 어땠어? 내 연구하는 모습, 조금은 ---같아졌을까?’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그 말을.

 

 

체념한 듯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이 소리를 내봐도

반향만이 끝없이 울리는 방 안.

그 누구도 듣지 않으며, 그 누구도 보지 않는다.

닿지 않은 소리는, 사람 한명 없는 이 공간을 맴돈다.

끝없이 공회전(空回傳)하며 무색인채로, 묻혀지고, 희미해져서. 사라졌다.

 

 

그 말 이후, 어느새인가 그녀는 다시 일에 돌아갔다.

다시 한참인가 가붓이 손을 놀리고 있자니 조용하던 공간을 뒤흔드는, 작고도 시끄러운 신호가 울려퍼진다.

집중이 깨져버린 그녀는 정말 드물게도 감정을 담아 노려본다.

이 방에서 유일하게도 바깥과 접할 수 있는 수단, 그것을 꺼내어 매우 오랜만에 본 화면을 응시하니, 어딘가의 기업에서 담담하고도 의례적인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이치노세 시키 님.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그제서야 오늘이란 날이 자신의 생일임을 알아차렸다.

, 그렇다고 해서 어딘가의 소설이나 만화처럼 꺅꺅거리며 오늘을 즐기지는 않겠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아, 또 한해를 더 먹는구나 하는 영혼없는 감흥과 아무것도 변한 게 없구나 하는 적당한 허무 뿐. 이미 익숙해진 아무도 없는 정경에 파묻혀, 다시 하던 일에 들어간다.

 

 

바라는 것은 없다.

언제부터인가 포기했던 것들이 다시 떠오른다 하더라도,

정말로 그렇게 주변이 바뀐다 하더라도,

설령 내가 그것을 원한다 하더라도.

 

 






 

 

정적은, 하염없이 계속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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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첫 생일 기념 팬픽이였습니다.

늦지... 않았어...!

끝나기 3시간 전에 쓰기 시작해서 휙하고 써재껴서 많이, 아주 많이 부족하고 아까운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잘 봐주셨으면 합니다.

 

쓰던 중인 본편과 연결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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