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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하루? _ 코노미, 리오, 카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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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20, 2018 18:24에 작성됨.


 '오늘 한가하면 우리집에서 한 잔, 콜?'

 이유 따위는 없었다. 후덥지근한 날씨, 한가한 스케줄, 시원하게 해 놓은 여러 주류들. 하나하나 차례로 눈에 밟히자 사람을 부르고 싶었다나 뭐라나. 소파에 푹 늘어져 성인조들만의 라인방에 무심한 듯 툭 던져놓은 라인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곤 팔을 축 내려놨다. 우와. 한가해.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인지하며 코노미는 눈만 껌뻑였다. 껌뻑. 끔뻑. 깜빡. 눈 감았다 뜨는 것도 인지된다. 이거 한 번 이러면 계속 신경쓰이는데 말야.

 '코노미 언니? 한가한거야?'

 첫 빠로 답한 건 리오다. 내가 그럴 줄 알았지. 히힣. 이상한 웃음소리를 터트리며 자판을 쳤다.

 '응 그러니까 와 줘엉'

 이모티콘으로는 사랑의 하트 탕탕.

 '지금 카오리랑 스케줄 중인데'
 '끝나면 한 7시쯤 될 것 같아'
 '그래도 괜찮다면 >0<'
 '카오리도 같이 간대!'

 깜찍하기도 해라. 아무튼 긍정적인 답에 맞는 해맑은 답을 보내기 위해 다시 손을 움직이는데 라인 하나가 통 올라왔다.

 '리오쨩! 내가 언제 간다고...'

 카오리다. 서로 얘기되지 않은 모양이다.

 '어머. 카오리쨩. 언니 집에서의 수다회가 싫은거니?ㅠㅠㅠ'

 문자로는 우는데 실제로는 웃음이 터져 실실 웃었다.

 '아니 그건 절대로 아니예요!'

 다급한 문자다.

 '와이-! 모임인가요?'

 레이카가 난입한다

 '저, 저는 오늘 내일 로케 촬영있어서 합류하지 못하네요 ㅠㅠ'
 '(이모티콘)'

 후카는 글자로도 울고 이모티콘으로도 운다.

'모임임가요? 저는 저녁에 장을 봐'
'온다는 걸 체크해야 해서요. 오호호'
'(이모티콘)'

 와. 확실히 세레브의 저녁 준비는 다른 모양이다.


'알겠어요~ 프로듀서~ 이따 저녁에 방송국으로 갈게요~'

 아즈사는 여기서도 길을 잃었다. 이게 뭐람. 클클클 웃으며 한 마디씩 던진 각자의 현황을 코노미는 하나씩 정리해갔다.

 '레이카쨩. 시간 되는거야?'
 '후카쨩 아쉽네 ㅠㅠ 로케라면 어디 갔으려나? 그 지역에서 젤 유명한 술 사오는 거 잊지말고! ㅋㅋ'
 '아즈사쨩 여기엔 프로듀서 없다구'  
 '치즈루쨩은 집에서도 바쁘구나 ㅠ'
 
 보내기가 무섭게 통통 라인들이 올라왔다.

 '아쉽게도 저녁에는 아카네쨩이랑 푸딩쨩이랑 함께 만나기로 했어요!'
 '그거 아카네쨩이랑 푸딩을 먹으러 간다고 해석하면 되는거지? ^^:;;'
 '그거 말이 되네요!'
 '지역 술 알아볼게요. 제 몫까지 즐겨주세요!'
 '어머, 여기가 아니었구나.'
 '아즈사쨩 저녁에 스케줄이면 같이 놀 수 없겠네 ㅠ'
 '응응. 아쉽게 됐네 코노미쨩 ㅠ'
 '체크가 꽤 깐깐해야 해서 어쩔수가 없네요. 부디 재밌게 즐기시길 바랄게요.'
 '카오리쨩이랑 얘기 맞췄어, 코노미 언니! 우리 밤 8시쯤 습격할거다?'
 '아즈사쨩 스케줄 힘내고!'
 '그렇게 됐으니 이따 실례할게요. 코노미씨.'

 카오리의 라인을 마지막으로 내내 울리던 알람이 멈췄다. 그럼 올 수 있는 사람은 리오쨩과 카오리쨩이란거지. 으얏차. 코노미는 몸을 일으키며 시계를 봤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었다. 아직 4시간이나 남았잖아? 다시 스스르 소파 위로 쓰러졌다. 준비는 음식 정도만 하면 되니까 조금 더 뒹굴거려도 좋겠지.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잠에 빠져들기 직전 혹시나 싶은 마음에 코노미는 알람을 설정했다. 시간은 당연히 8시... 아니 7시......한 번 깊게 하품을 했다. 설정 저장을 했나 안 했나. 했겠지...... 했을거야........

*

 딩동-!
 쾅쾅쾅!
 딩동딩동-!
 쿠쾅쾅!

 헉 하고 일어났다. 초인종 소리와 문 두드리는 소리의 콜라보가 환상적이었다. 이 소음공해는 대체 뭐람. 짜증도 잠시. 멀찍이서 보이는 인터폰에 뜬 익숙한 인영. 코노미는 시계를 쳐다봤다. 뭐야? 8시 10분이라고? 4시간이나 잤다는거야?

 "갈게! 간다고!"

 안으로 들이는 게 우선이다. 우다다다 뛰어가 걸어잠궜던 문을 열었다. 양 손에 뭘 바리바리 들고 있는 카오리와, 허리춤에 팔을 걸치곤 약간 화딱지 난 표정으로 쳐다보는 리오. 코노미는 아하하하 멋쩍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오라는 제츠쳐를 보냈다.

 "정말. 오라고 한 건 코노미 언니잖아."

 "미안. 미안. 그... 깜빡 잠들어버려서..."

 "아니 이 어두컴컴한 내부는 뭐야. 어둠의 정령인거야?"

 불과 4시간 전에는 방에 불을 켤 필요가 없었단다. 급하게 불을 켰다. 정리되지 않은 거실이 짠 하고 드러났다. 리오는 계속 무어라 무어라 마치 엄마마냥 잔소리 중이었다. 집안 꼴이 이게 뭐야 정말. 오프 날이라고 집안일마저 오프하면 어쩌자는거야. 정말 코노미 언니는. 중얼중얼중얼. 난들 내가 이럴 줄 알았니.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려고 했는데...... 그 사이에 카오리는 들고 온 짐을 놓고는 하나하나씩 쭉 늘어놓았다.

 "혹시나 해서 가져왔는데 다행이네요."

 맥주와 일본주, 그리고 와인이 나왔다. 가라아게, 만두, 타코야키같은 요리들도 나왔다. 우왓. 잘 됐다. 요리 안 했는데 요리 할 필요가 없어졌어! 카오리쨩 완전 도라에몽이네! 폴짝 뒤며 좋아하는 꼴을 보곤 리오가 코노미의 팔을 한 대 팡-. 쳤다. 아앗! 카오리쨩. 봤지? 얘가 날 쳤어. 으냐냐냐 하고 빙글빙글 돌던 코노미는 소파에 푹 주저앉았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쓰러진 것 마냥 누었다. 빵 터진 카오리와 달리, 리오는 연신 어이없단 표정을 지어보였다.

 "코노미 언니. 혹시 아까 한 잔 했어?"

 "아니. 그럴리가 있니. 낮 술은 안 한다구."

 "텐션이 이상한데..."

 "암튼, 잘 왔어. 잠깐 앉아있을래?"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리오를 질질 끌어서 오른편에, 카오리를 질질 끌어서 왼편에 앉혔다. 그리곤 손을 탁탁. 털었다.

 "잘 왔어 얘들아. 내가 상을 차릴테니까, 너희는 가만히 있으렴."

 "코노미 언니? 그거 우리가 사온거잖아."

 "그렇지. 하지만 사오기만 한 거잖니."

 "정말. 코노미씨 오늘따라 더 재미있네요."

 "카오리쨩. 재미는 조금 뒤에 더 있을거란다."

 음식들의 포장을 벗겨 접시에 담았다. 마치 내가 한 음식같이 정갈하게 올려놓고 탁자에 하나씩 올렸다. 으흐흠. 콧소리를 내며 앞접시도 하나씩 가져다 놓고, 술잔도 가져다 놨다. 일본주를 마실 잔과 와인을 마실 잔을 하나씩 따로 마련했다. 맥주는 캔맥주니까 그냥 마시면 그만이지. 이제 술을 놓자. 리오와 카오리가 사온 와인 이외의 술들은 냉장고행. 코노미는 원래 마련했던 일본주와 맥주를 꺼내 진열하듯이 탁자 위에 놓았다. 으음, 됐나..... 아!

 "코노미씨. 다 된거 아닌가요?"

 "아니아니. 그래도 뭐랄까. 내가 음식을 뭐라도 하나 대접해야 하지 않을까."

 냉동실을 열었다. 포장을 뜯지 않은 냉동 피자가 있었다. 이거면 되겠다. 꺼내서 포장을 뜯은 후 전자레인지로 직행했다.

 "우와. 피자. 너무 헤비한 거 아니야?"

 "뭐, 다른 건 안 헤비하니? 안 그래, 카오리쨩?"

 "네? 네. 뭐."

 솔직히 헤비하다고 생각하지? 리오의 속삭임에 카오리는 코노미의 눈치를 슥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둘의 의견이야 어쨌든간에 전자레인지에서 충분히 익은 피자는 술상에 큼지막하게 한 자리 차지했다. 됐다!

 "뭐 마실거니, 맥주? 일본주? 와인? 이야. 알코올 바야 완전히."

 "일단은 시원하게 맥주!"

 "저도 맥주로 마실게요."

 "맥주? 좋지. 피자엔 맥주잖니. 피맥말야 피맥."

 캔맥주가 하나씩 배당되었다. 동시에 탁-. 경쾌한 소리가 벌써부터 시원했다. 건배를 하자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세 사람의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캔 3개가 탁자 중앙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리고는 꿀꺽꿀꺽. 목구멍 안이 타들어가는 느낌, 그 한계까지 밀어넣었다. 캬아. 시원해라.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안주는 각자 알아서. 카오리는 제 앞에 놓여있던 가라아게 하나. 리오 역시 자기 앞에 가깝게 놓여있는 타코야키 하나. 코노미는 피자 한 조각.

 "코노미 언니 설마 피자 먹고 싶어서 우리 부른거야?"

 "그럴리가. 있기에 먹는거야. 너희를 부른 것과는 별개란다."

 "후훗. 그렇죠. 있으니까 먹는거죠."

 "봐. 카오리도 동의하잖아."

 "뭐야 정말. 진짜로 아무런 이유가 없는거였어?"

 "일 끝난 후에 술 한 잔. 낭만적이잖아?"

 "우와. 낭만을 그런데에 쓰는 건 아닌 것 같아."

 "리오쨩. 일 끝나고 한 잔, 즐겁긴 하잖아?"

 "카오리쨩마저? 음...... 맞아. 솔직히 그러긴 해."

 별 시덥잖은 대화들이 오고갔다. 그거대로 즐거웠다. 그 후의 대화는 서로의 근황이었다. 하루종일 오프였던 코노미는 뭐라 해 줄 만한 얘기가 없었지만, 스케줄이 있었던 리오와 카오리는 이야깃거리가 풍부했다. 라디오 출연 차 간 방송국에 견학을 온 어린 친구들을 보곤 눈을 떼지 못하다가 늦을 뻔 했다던 이야기라던가, 섹시한 노래를 추천해 달라는 청취자 부탁에 자기 노래를 신청했다 빠꾸먹은 이야기라던가. 술 한 잔에 이야기 하나. 주거니 받거니 풀어가다보니 서서히 셋 다 알딸딸한 경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술도 각자 먹고싶은 걸 먹기 시작했다. 코노미는 맥주에서 일본주로 선회했다. 섞어먹음 금방 간다고 카오리가 충고해줬는데, 아무렴 뭐 어때. 내 집인걸.

 "맞다. 그러고보니 말야. 라디오에서 카오리쨩, 세리카쨩이랑 전화 통화하는 코너가 있었잖아."

 "아앗. 리오쨩. 그 얘기는...!"

 "으응? 뭔데 입막음을 하는거야? 궁금하잖아?"

 안절부절 못하는 카오리가 이상하다. 코노미는 살짝 풀린 눈으로 카오리를 응시했다.

 "있지, 코너 중에 미션이 있었거든. 청취자가 지정해 준 멤버에게 전화해서 '좋아한다'는 말을 듣는거였어."

 "정말, 리오쨩!"

 "카오리쨩? 라디오 생방에서 있었던 일이라면 이미 다 알고 있는 얘기일 거 아니야?"

 "그... 듣지 못하셨다면, 모르는대로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말야, 얘가 글쎄 세리카쨩에게 전화를 하게 됐지 뭐야. 전화를 걸자마자 받으니까 카오리쨩이 당황해서 '세리카쨩, 나, 나는 세리카쨩을 좋아하는데...' 하고 다짜고짜 고백을... 읍!"

 으아앙하고 울음 같은 소리를 내더니만 카오리가 리오의 입을 확 막아버렸다. 애도 아니고 다 큰 애들이 벌이는 꼴이 웃겨 코노미는 깔깔 웃었다. 카오리의 악력을 겨우 떨쳐낸 리오는 기어코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좋아하는데... 하고 하니까 세리카쨩. 그 특유의 되게 해맑은 말투 있잖아? '네! 저도 카오리씨 정말로 좋아해여!' 하고 말한거 있지."

 "아하하하. 별 거 아니네. 카오리쨩 미션은 완전 고속도로급으로 성공한 셈이잖아?"

 "그렇긴 하지만...아! 리오쨩도 저랑 똑같은 미션이었어요. 리오쨩이 전화를 건 상대는 츠무기쨩이었는......"

 이번엔 반대로 리오가 급하게 카오리의 입을 막기 시작했다. 쟤네들 진짜 사람을 웃겨 죽이려고 하나봐. 이렇게까지 웃길 일은 아닌데, 거의 곱하기 100은 더 하게 웃기다. 술기운이 돌긴 도나봐. 코노미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살짝 훔쳐냈다. 리오의 힘을 카오리는 이기지 못한건지 그대로 넉다운이었다. 카오리가 잠잠해지자 리오가 그제야 봉인한 입을 풀었다.

 "......리오쨩이 전화를 건 상대는 츠무기쨩이었는데. '츠무기쨩 날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자 츠무기가 '그걸 말을 해야만 아신다니... 리오씨는 바보인건가요?'라고 말한 거 있죠."

 아, 아니네. 카오리는 속사포 랩을 하듯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와, 키오리쨩 말이 그렇게 빨랐어?"

 막기는 커녕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정확한 발음으로 빠른 말을 마친 카오리에게 리오는 순수한 감탄을 했다. 코노미는 카오리의 말 빠르기보다 리오가 처했던 그 상황을 상상하곤 실실 웃었다.

 "코노미 언니. 취한 거 아니지?"

 "그게 아니라 그래서 결국엔 좋아한다고 말해주디?"

 "걔 결국엔 뭔 사투리 남발하곤 전화 끊겼어. 나는 츠무기쨩을 좋아하는데, 츠무기쨩은 어떻게 생각해? 하고 떠먹여주기까지 했는데 말야."

 "뭐, 뭐라능교!하고 전화가 끊겨버렸지. 리오쨩."

 "그 덕에 카오리쨩이 이겼다니까. 근데 좀 찜찜한게 그래서 츠무기쨩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말을 해야만 아냐는데 말을 해야 알지!"

 리오가 술 한잔을 벌컥 마셨다. 카오리가 그 옆에서 같이 술동무가 되어 주었다. 잠깐, 이거 좀 재밌겠는데. 코노미는 박수를 한 번 짝 치고는 스마트폰을 찾아 들었다.

 "코노미씨. 어디 연락하시게요?"

 "아니아니. 있잖아. 우리 이대로 먹는 것도 재밌긴한데 좀 더 재밌게 마셔볼까?"

 "응? 더 재밌게? 어떻게?"

 "일명 술게임인거지. 약간 연장선으로 멤버들에게 전화를 해서 우리가 제시해주는 미션을 성공하면 넘어가고, 못하면 벌주."

 평소같으면 에에이, 시간도 늦었는데 어린 친구들은 일찍 자야하지 않겠어? 하고 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9시 30분이란 시간은 늦었다고 하기엔 조금은 애매하고, 알딸딸한 술기운은 이 재밌을 것만 같은 놀이를 놓치기 싫어했다. 약간 카오리가 자의 30퍼, 타의 70퍼 정도로 휩쓸리긴 했지만 아무튼 셋 다 동의하게 되었다.

 "카오리쟝. 이번엔 내가 복수해줄거라고?"

 "리오쨩. 나도 지지는 않을거야."

 "오오. 카오리쨩 승부욕. 보기 흔치 않은데?"

 두 사람의 서로를 향한 선전포고 따위 귓등으로 듣고는 코노미는 열심히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뭔 앱이 있었던 거 같은데. 아아 있다. 앱을 하나 깔고는 열심히 조작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거 아니야? 칭얼대는 리오에게 우리 제외하고도 머릿수가 무려 49명라는 걸 인지시켜줬다.

 "프로듀서군도 넣을까?"

 "프로듀서는 좀 그렇지 않을까...?"

 리오에 제안에, 카오리는 살짝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긴 했는데 코노미는 그 자리에서 오케이를 외쳤다. 프로듀서까지 입력하자 총 50명의 다채롭고도 깔끔한 숫자가 완성되었다.

 "일명 빙글빙글 걸려라! 야. 여기 걸리는 멤버에게 전화를 해서 1분 안에 제시하는 문장을 들어야 해. 그건 오로지 우리가 정하는거다?"

 "코노미 언니가 걸려도 똑같은거야."

 "아, 문제 없어."

 첫 순서는 가위바위보다. 안 내면 술래, 가위바위 보!!! 셋 다 똑같이 보자기를 폈다. 다시, 가위바위 보!!! 코노미 주먹, 리오 주먹, 카오리 가위. 첫 빠는 카오리다!! 코노미는 스윽 스마트폰을 카오리의 앞으로 건넸다. 그 사이 리오는 벌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벌주란 자고로 맛이 우선이 아니라 얼른 취하는 걸 우선으로 만드는거지. 컵에 일본주 반, 맥주를 반, 열심히 와인을 따고는 찰랑거리는 잔 위로 와인을 살짝 토핑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50가지 이름들, 그 정중앙 'STOP'이라 적힌 빨간 버튼을 터치했다. 점점 회전판의 속도가 줄어든다.

 "카오리쨩. 누가 걸렸으면 좋겠어?"

 "꽝은 없겠죠?"

 "유감스럽게도."

 서서히 이름이 넘어간다. 카스가 미라이, 이부키 츠바사, 야부키 카나, 후타미 아미...

 "아미나 마미쨩 걸리면 재밌겠는데?"

 "리오쨩. 아직 나는 그 두 친구들을 잘..."

 후타미 마미도 넘어간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 멈춘 이름을 보곤 카오리는 어쩔 줄 몰라했다.
 
 "세리카쨩에게 아까 했는데 또 똑같은 걸 할 순 없어요!"

 하코자키 세리카.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분명 아까 전화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려면 충분히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은데 또 세리카에게 장난 전화를 하라니. 울상을 짓고는 리오와 코노미를 번갈아 쳐다봤지만 오히려 두 사람은 이 두 번째의 연속적인 만남을 환호하고 있었다.

 "세리카쨩. 지금 자고 있지 않을까요?"

 바른 생활의 아이니까 자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건 연락을 해 봐야 아는거지."

 그 기대를 리오가 무참히 짓밟았다.

 "세리카쨩에게 들을 내용은. '카오리씨 오늘 이상한 것 같아요.' 어떠니."

 "이미 충분히 이상하다고요."

 "그러니까 쉬울 거 아니야? 자, 어쩔 수가 없어. 스타트!"

 코노미의 스마트폰은 어느새 스탑워치로 바뀌어 있었다. 잠깐만, 전화 거는 것 부터 초를 재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빨리 이 상황을 타개해버리자. 최근 통화목록 최상단에 위치한 세리카의 연락처를 눌렀다. 그 옆에서 리오가 한 뼘 통화를 터치했다.

 '여보세요? 카오리씨?'

 받았다.

 "아, 세리카쨩. 안 자니?"

 '지금 막 자려고 침대에 누웠어요!'

 새 나라 어린 아이의 잠들기 직전 귀한 시간을 이렇게 빼앗는다니. 똑같은 초일텐데 스탑워치의 시간이 점점 빨라지는 것 같다.

 "있잖아! 세리카쨩! 지금 내가 어떤 거 같니?"

 '네? 아... 어떻다고 말해야 좋은가요?'

 아니 도대체 뭘 어떻게 말해야 얘가 이상하다는 말을 입에 올릴까. 이 때묻지 않은 아이에게 '이상한 것 같아요'라는 문장을 입에 올리게 하려는 것이 마치 이 아이에게 욕을 시키는 것 같은 죄책감이 일었다. 술기운은 별 쓸데없는 감정까지 있는데로 과장되게 느껴지게 한다.

 "있지. 세리카쨩. 세리카쨩은 미래를 함께 할 소중한 아이란다."

 '미래요? 아핫! 좋은 말씀 해주시는 건가요?'

 "미래에는 분명 이런 어른들이 못살게 굴 수 있어. 그걸 이겨내야만 해."

 '아... 아. 그렇군요.'

 살짝 세리카가 말을 머뭇거렸다.

 "세리카쨩. 있잖아. 사실은."

 "땡! 카오리쨩 땡! 완전 이거 땡이야! 땡이라고!!!"

 코노미가 스탑 워치의 멈춤 버튼을 꾹 누르곤 소리쳤다.

 "대체 '있지'를 몇 번째 말하는거야. 이거 금지 워드도 만들어야 겠는데?"

 '아... 카오리씨 혹시 다른 분들하고 계신건가요?'

 "안녕 세리카쨩. 이 언니가 누군지 알겠니?"

 '아...... 아......? 죄, 죄송해요. 아직 전화 목소리로는...'

 "섹시한 리오 언니란다."

 "리오쨩. 애 앞에서 무슨 말을 하는거야."

 '아핫. 리오씨, 안녕하세요! 같이 계신 건가요?'

 "세리카쨩. 내일 자세히 말 해줄게. 지금은 좀 어려울 것 같아. 얼른 자렴."

 '네! 카오리씨. 내일 뵐게요!'

 뚝. 세리카에게 전화가 끊어지자마자 카오리가 파닥거렸다. 리오는 그 가련한 생명체 앞에 독을 내 놨다. 이거 쭉 들이키고 진정하렴. 이건 뭐 도깨비가 건네주는 독주 같았다. 언뜻 리오의 머리 위로 진짜 도깨비 뿔 같은게 보이는 것 같기도...? 차라리 잘 됐지 뭐. 카오리는 눈을 질끈 감고 원샷했다. 절로 표정이 찌푸려졌다.

 "세리카짱과 '미래'를 함께 한다는거야 '밀애'를 함께한다는거야?"

 실실거리며 장난치는 리오를 보곤 카오리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 자신이 비운 잔에 와인을 가득 딸고는 맥주를 몇 방울 떨어뜨렸다.

 "있지, 리오쨩. 그 다음은 리오쨩이야."

 어? 어. 어어. 리오는 순간 카오리에게서 섬뜩함을 느꼈다. 아까 전보다 얼굴에 표정은 활짝 폈는데, 말투도 무척이나 상냥한데, 뾰족하다 못 해 날이 선 가시가 느껴졌다. 카오리의 눈치를 슬쩍 보곤 리오는 돌림판을 돌렸다. 제발 상대하기 쉬운 아이가 걸리길. 제발. 제발. 제발. 서서히 돌림판의 속도가 늦어진다. 도쿠가와 마츠리. 멈춘 이름에서 난이도가 극상으로 치닫는 걸 느꼈다.

 "마츠리쨩에게 '섹시'라는 단어를 듣는 건 분명 어렵겠죠?"

 "카오리쨩?"

 "아하하. 재미있을 것 같긴 하네!"

 "될 것 같은 걸 해야지 '분명 어렵겠죠'라니이!"

 애절한 눈빛을 보냈으나 두 사람은 그 눈빛을 강렬하게 튕겨냈다. 하아. 리오는 한숨을 한 번 깊게 내쉬곤 마츠리에게 통화를 연결했다. 연결음이 이어졌다. 차라리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단 말야. 딸깍. 하지만 언제나 이럴 땐, 기가막히게 받는 단 말이지.

 '호? 리오쨩? 어쩐일인건가요?'
 
 마츠리 목소리가 살짝 잠긴 거 같은데.

 "마츠리쨩? 혹시 잤니?"

 '다짜고짜 전화해서 무슨 말씀인건가요? 공주의 잠자리는 정확히 밤 10시랍니다.'

 시계를 흘쩍 쳐다봤다. 10시가 아니긴 하다.

 '무슨 용건이신가요?'

 "있지. 어... 마츠리쨩, 나의 그 특기가 뭘까?"

 '특기요? 뜬금없이 전화하셔서 특기를 묻는건가요?'

 "나한테서 그... 이 매력이 느껴지지 않니?"

 '매력이라함은...... 호.....오?'

 말끝을 살짝 늘리는 게 이상하다. 코노미는 살짝 카오리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눈치챈 것 같지? 카오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혹시 녹화중이신건가요?'

 "아니야. 그것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어. 녹화 중은 아니야."

 '호? 녹화가 아니란 것 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면, 다른 어떤 의도가 있긴 있나 보군요. 공주의 눈은 속일 수 없는거예요.'

 "저기 마츠리쨩! 내가 좀 한 이거! 하지 않니?"

 '공주는 야심한 밤에 그런 단어를 함부로 언급하지 않는거예요!'

 "뭐라도 좀 말해줘. 마츠리 공주님."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 리오쨩은 언제나 '청순'한거예요'

 청순이라니. 코노미는 옆에서 에헤헤 웃으며 리오쨩 아웃, 리오쨩 땡, 리오쨩 틀렸다구!를 연발했다. 득의양양한 말투로 공주는 속일 수 없는거예요. 같은 말을 하며 전화를 마무리짓는 마츠리가 얄미운 것도 잠시. 아까와는 정반대로 방긋 웃으며 벌주를 친히 입 앞에 가져다주는 카오리를 보곤 리오는 아하하. 난감하게 웃었다. 의외로 맛이 괜찮으니까 쭉 들이키는거야. 리오쨩. 무슨 주문같다. 리오는 있는대로 표정을 찌푸리며 사약을 받듯 벌주를 원샷했다. 와인만 가득 따라놓은 술이라 와인의 맛만 났지만 맛이 중요한 게 아니라 벌주를 마셨다는게 중요한거지. 이 복수의 칼날을 다음 사람에게 돌려야겠다. 리오는 일어나 코노미의 냉장고를 열었다. 여기 콜라랑 오렌지주스가 있네?

 "저기, 리오쨩. 설마..."

 우리 이 이상으로 무너지진 말자. 하지만 이미 한 대 얻어맞은 사람에겐 체면 같은 건 나중에 생각 할 문제였다. 컵에 오렌지 주스와 콜라를 따르고 그 위에 일본주를 콸콸 부었다. 코노미 언니를 위한 칵테일을 완성했어. 눈웃음이 살벌하다.

 "자아! 여기까지! 즐거웠지? 얘들아. 10시가 되어가네. 집에 돌아가야하지 않겠니? 택시 불러줄까? 콜택시 전화번호가 어디에 있더라아..."

 일어나려는데, 양 옆에서 연행하듯 팔짱을 껴댔다. 코노미씨. 코노미언니. 각자의 애칭이 앙 다문 이 사이로 비집고 나왔다. 우와, 이거 피할 수 없겠구나. 리오는 붙잡은 코노미의 손으로 돌림판을 돌렸다. 누가 나오든 상관 없으니까 성공만 했으면 좋겠는걸. 하나, 하나, 돌아가던 이름이 멈춘다, 키타카미 레이카. 레이카?

 "이건 승산이 없잖아. 그냥 마실게."

 제조한 벌주를 그냥 쭉 마셨다. 으엑. 맛 없어. 이거.

 "그냥 벌주를 마시는게 어딨는건가요. 코노미씨."

 "카오리쨩? 시도를 하지 않은건 실패로 간주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야. 코노미 언니. 시도를 해야 실패인거지 지금은 그냥 이거 먹고싶어서 먹은걸로 알게."

 망했다. 이거. 리오는 또 다시 칵테일이랍시고 괴상망측한 음료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카오리는 그 옆에서 다시 돌림판을 가동하고 있었다. 대체 이거 누가 먼저 하자고 한거야? 그 원인을 속으로라도 마구 욕해주고 싶은데 이거, 내가 하자고 한거잖아. 이 바보 멍텅구리 같으니라고. 속에서 코노미 바보. 넌 바보야. 멍청아. 적당한 용어로 자기 비판을 마구 해댔다. 그 와중에 걸린 이름은 텐쿠바시 토모카. 리오쨩? 코노미씨에게 토모카쨩이 어떤 말을 해 줬음 좋겠어? 음... 죄 많은 아기 돼지는 벌이 필요한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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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토모카쨩? 코노미인데.

코노미씨. 지금 시간. 무려 밤 10시가 지나갔답니다.

그래. 있지 내가 밤 10시가 넘었고, 내일 오전에 스케줄이 있거든? 근데 술을 먹었어.

.......얼른 주무셔야겠네요.

....... 그게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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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코토하쨩. 하나 물어볼 게 있어서 연락했어.

아, 리오씨. 스케줄 관련된 일인건가요?

음... 코토하쨩 아이스크림 좋아하지?

아. 네. 좋아하긴 하는데......

민트초코를 어떻게 생각하니? 나는 코토하가 민트초코를 좋아할거라 생각해.

........네? 뜨, 뜬금없이요? 어... 미.. 민트초코는... 프라이버시예요.

응? 그런 걸 프라이버시 한단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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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타마키쨩 휴대폰... 맞나요?

타마키는 지금 잠들었는데... 누구신가요?

아, 아닙니다. 그..... 죄송해요.

내일 아침에 타마키에게 전해드릴게요. 누구신가요?

그... 카오리라고 하면 타마키쨩이 알 거예요. 실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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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턴이 몇 번을 돌았을까. 그 와중에 리오는 연전연패. 코노미도 그에 못지 않은 패를 달성했다. 그나마 카오리는 이 아비규환에서 살짝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 장난에 어울리는 건 별로라고 말하면서도 정답을 맞춰 준 시호쨩. 아이돌이라면 밤낮없이 열광해주는 아리사쨩. 삼바와 축구에 대한 열의만큼은 엄청난 엘레나쨩. 이 구원자들이 아니었다면 분명 저 두 사람과 같은 상태가 됐겠지. 온갖 것들을 짬뽕한 벌주의 취기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거의 뻗어버린 두 사람을 어찌 옮겨줘야 하려나. 카오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짝 빙글 돌았다. 나도 제 정신이 아니긴 아니구나. 일단 병에 조금이라도 마실 것들이 차 있는 것들은 뚜껑을 닫아 냉장고로 집결시키고 음식물 쓰레기는 한데 옮겼다. 나름 분리수거 할 것들과 그냥 버릴것들을 분리해서 치웠다. 너저분했던 탁자위를 행주로 훔치고 나서야 조금 사람 사는 곳 같았다. 이젠 이 두 사람이 문제였다. 카오리도 취기가 몸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라 일단 한 턴 쉬기로 하고 소파에 푹 앉았다. 지이잉. 지이잉. 진동이 울렸다. 스마트폰은 또 언제 진동모드로 해 놨지. 일단 카오리의 폰은 아니었다. 리오의 폰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코노미씨의 폰이라는건데. 아, 여깄다. 코노미가 등에 깔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빼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코노미씨?'

 "프로듀서씨?"

 '.......카오리씬가요?'

 "네. 카오리예요."

 하아. 카오리씨도 계셨던간가요. 한숨 소리와 피곤에 절여진 목소리가 함께 들리자 카오리는 취기가 살짝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아... 네. 코노미씨랑 리오쨩이랑..."

 '애들에게 연락이 왔어요. 코노미씨랑 리오한테 이상한 전화가 온다고. 오해는 마셔야해요. 얘네들이 코노미씨랑 리오가 이상하다고 프로듀서가 전화 해 보라고 해서 전화 해 본 거니까요. 혹시 술게임 같은 거라도 하신건가요.'

 "아...... 예. 그런걸 좀 했는데..."

 허탈한 웃음 소리 같은게 건너왔다.

 '일단 별 일 아니니 다행이네요. 코노미씨 좀 바꿔주실 수 있나요?'

 "코노미씨 지금......"

 '.......아. 알겠습니다. 내일 카오리씨. 책임지고 두 사람과 함께 극장에 나오셔야 해요. 저를 한 번 보셨으면 좋겠어요.'

 마치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오라는 말 같았다. 죄송합니다. 사과의 말을 올리자, 프로듀서는 아닙니다. 그럴 수 있지요. 하고 답했다.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자 11시였다. 제정신이 슬슬 돌아오자 민망할 지경이었으나 지금은 민망함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다. 벌떡 일어나 두 사람을 침실로 옮기기 위해 톡톡 건드렸다. 저기, 리오쨩. 들어가서 자. 코노미씨. 방으로 들어가시는 게 어때요? 톡톡 건드리는 손길이 점점 세지고 있는데도 두 사람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어쩌지. 방을 허락없이 들어가는 건 실례지만, 그걸 따질 때가 아니다. 코노미의 침실로 들어간 카오리는 이불을 있는대로 가져왔다. 바닥에 깔고, 어떻게 어떻게 두 사람을 굴려서 이불 위로 올려놨다. 베개도 가져와 두 사람의 머리를 들어올려 밑에 받쳤다. 바닥에 깐 이불 말고 다른 이불들로 두 사람을 덮어줬다. 일단은 이러면 되려나. 또 다시 한 텀 쉬기위해 소파에 푹 앉았다. 그러다 무심결에 스마트폰을 쳐다보았다. 라인에 떠 있는 숫자가 장난 아니었다. 터치해서 보니 시어터 멤버들이 함께 모여있는 라인방이 난리가 난 상태였다. 그 라인방으로 들어가기가 겁이 났지만, 외면할 수 없었다. 채팅방에 들어가서 보자, 와 있는 채팅들이. 하나 같이들.

'뜬금없이 코노미씨가 술을 먹었다고 고백하는데, 이게 무슨 뜻일까요'
'코노미씨가 토모카쨩한테? 나는 리오씨가 갑자기 민트초코 좋아하냐고 물어보던데...'
'이야. 뭔지 몰라도 난리가 난 모양인데?'
'메구미는 연락 안 왔어?'
'나? 연락 안 왔어. 다들 연락 받은거야?'
'카오리씨가 고양이 소리 내 보라고 해서 야옹이라고 하긴 했는데......'
'에? 시호?'
'메구미씨, 그, 어쩔 수 없었다고요.'
'호? 다들 연락을 받았던 모양인가봐요?'
'마, 난리가 아닌갑네. 내한테도 갑자기 연락와서 와사비 맛 타코야키를 좋아하냐고 묻지 않카나'
'으음... 버라이어티 녹화라도 하는걸까요?'
'오. 시즈카쨩. 그럴 가능성도 있는겁니다! 무려 아리사에겐 아이돌쨩 중 누굴 제일 좋아하냐는 고를 수 없는 질문을 ㅠㅠ'
'나한텐 삼바냐 축구냐 물어서 둘 다라고 했더니 완전 좋아했다GU'
'아님 설마 어떤 무리에게 붙잡혀서 어쩔 수 없이 저희들에게 SOS를 청하는 신호를 보내시는 건 아닐까요?!'
'에...유리코. 그건 너무 나간 생각 아닐까 싶은디...'
'정해진 답을 못 얻음 녹화가 안 끝난다거나...?'

 아이들의 추리에 '술을 먹고 주정을 부린다'같은 명제가 없는 것이 다행이면서도, 부끄러웠다. 답을 내 줄 당사자의 메시지가 없다면 분명 한밤중까지 이렇게 추리하지 않을까. 그러면 분명 내일 스케줄에도 지장이 있겠지? 카오리는 안절부절 못하며 어떻게 할까, 어찌 넘어가야 할까 고민 끝에 잠든 두 사람의 위로 스마트폰 카메라를 조준했다. 정말 미안해요. 이 어린 양들의 열띤 추론을 끝내려면, 어쩔 수가 없어요. 찰칵. 찰칵. 그래도 마음 한 켠 이래도 되나 싶은 자책감에 최대한 두 사람의 얼굴이 괜찮게 나온 사진을 골랐다. 아니 잠깐, 코노미씨 술병을 들고 있었나? 아아 모르겠다. 카오리는 눈 딱 감고 라인방에 띵-. 올려버렸다.

라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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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어제는 정말 별 일이 없었던거죠?"



 도레미 순서대로 선 세 명의 성인 아이돌들은 고개를 땅바닥에 푹 쳐박은 채 였다. 이거야 원. 주의 정도 하려고 했지, 혼내려고 부른 건 아닌데 졸지에 다 큰 성인들을 훈계하는 모양새가 되어서 프로듀서는 뻘쭘함에 뒷목만 만지작거렸다.

 "애들한테 걱정하는 투로 연락이 몇 개 왔었어서..."

 "미안해? 프로듀서군. 어제 우리끼리 너무 즐겁다보니까 다른 애들 생각을 못 했네."

 이렇게까지 과도하게 반성하는데 프로듀서로서 더 이상 해 줄 말이 없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긴 하지만, 어린 애들이니까요."

 프로듀서는 난감한 듯 웃었다. 이거 좀 환기시키고 싶은데.

 "그나저나 재미있으셨나봐요?"

 "응?"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먼저 들어올린 건 코노미였다.

 "극장 라인방에 말이죠. 재밌는 사진 하나 올리셨던데 말이죠."

 "사...진...?"

 리오와 코노미는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고개를 확 들어 올린 카오리가 동공 가득 당황함을 담은 채 프로듀서를 향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지만,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는 프로듀서에겐 그 신호가 닿을 리 없었다. 여깄네. 갤러리에서 만지작거리던 프로듀서가 액정을 세 사람 눈 앞에 들이 밀었다.

 "이거요. 잘 주무시던데요?"

 하핫. 프로듀서의 웃음소리와 반비례해 코노미와 리오의 표정은 소위 말하는 뭐 씹은 표정이 되어버렸다. 이. 이게 뭐야. 완전히 술 취해서 널부러져 있는 모습이잖아? 대체 이걸 누가. 아. 동시에 두사람은 뭔가 알아챘다는 듯한 감탄사를 내었다. 네 개의 눈동자가 한 사람을 향했다.

 ".......카오리쨩?"

 억지로 끌어올린 듯한 미소와 상냥한 말투가 이중으로 붙어서 들리니, 공포영화가 따로 없었다. 어제의 그 판단은 어제 당장을 넘기기 위한 행동이었는데, 오늘은 이거 어떻게 넘겨야 하나.  

 "그... 라인방에서 아이들이 너무 걱정하고 그러길래..... 잘못했어요!"

 악의 없었던 행동에 화를 내는 건 착한 어른이 아니야. 그렇지?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말이야, 이 마음이. 그게 안 된단 말이지. 아이들 생각하는 것 만큼 우리도 생각해 줘야지! 카오리쨩! 혼자만 살아남다니! 이 배신자! 카오리에가 원망 아닌 원망을 던져냈지만, 이미 극장 내에선 널리널리 퍼져버린 사진이었다. 그리고 거짐 일주일 내내 아이들한테 사진과 함께 무지하게 시달렸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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