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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의 어떤 하루 _ 아유무, 사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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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15, 2018 11:44에 작성됨.

 한 번의 용기, 한순간의 무대.

 균등한 기회로, 최고의 스테이지를 향해.

 Project Only One


 사요코와 아유무는 단 세 줄의 문장을 진지하게 새겨 넣었다. 건너편에 앉은 프로듀서는 진중하게 두 사람을 살폈다. 두 사람의 눈빛이 의욕 가득 영롱히 빛나고 있었다. 무어라 입을 열지 않았음에도 그 열의가 느껴진다면 충분히 이 프로젝트를 둘에게 맡겨도 좋다고 판단한 프로듀서가, 정적을 깼다.


 "사무소를 대표해서 나가게 될 경연 프로그램이야. 총 8팀 중에서 오로지 단 1팀만이 주최 방송사의 메인 음악 방송 라스트 무대에 설 수 있어. 우리 765프로는 사요코와 아유무. 두 사람을 이 경연에 내보내려고 해. 무대를 꾸리는 건 오로지 출연자만이 결정할 수 있기에 외부 인력이 투입되지 못하는, 말 그대로 순수한 출연자 그 자체의 무대로 평가받는 무대야. 방송은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무대 위에서 맞춰볼 수 있는 건 오로지 방송 직전의 리허설이 전부야. 기획 의도마냥 단 한 번의 무대로 모든 게 결정되는 셈이지."


 너무 부담스럽게 설명한 걸까. 하지만 설명하는 데 있어 최대한 사족을 붙이지 않았다. 벌써 다른 사무소 쪽에서는 어떤 팀이 나올 거니 하는 루머같은 게 밑바닥에서 돌고 있었다. 아예 공개된 적 없다는 신인 기대주부터 사무소를 대표한다는 아이돌까지. 확신할 수 없는 루머들을 파악하며 정리한 끝에 프로듀서는 경연에 참가할 인선 플랜A로 사요코와 아유무를 선택했다. 이 둘의 시너지가 폭발한다면 분명 관객들과 시청자들을 각인시킬 무대가 탄생하리라는 자신감이었다. 그 속내를 일단 두 사람에겐 내비치지 않았다. 프로그램 자체가 주는 부담이 분명 엄청날 거기에.


 "엄청난걸... 프로듀서. 정말 나와 사요코에게 맡겨도 괜찮겠어?"


 "저, 할 수 있어요. 흔치 않은 기회니까요. 아유무씨."


 "오. 사요코 완전 열정 만빵인데. 질 수 없지. 프로듀서. 해 볼게. 부딪히면 어떻게든 될 테지!"


 초반 정적과 달리 두 사람은 감탄할지언정 프로그램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은 것 같았다. 일단 두 사람을 사무소로 대표로 내보내는 그 첫 걸음의 점수는 상위권이다. 받아들이는 것에서 조차 기가 눌릴까 살짝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두 사람은 함께 대화를 나누며 열의를 다지고 있었다.


 "좋아. 둘의 이름을 올릴게. 경연 날은 딱 3주 뒤야. 경연 일주일 전에 무대 순번을 정하는 녹화가 한 번 있고, 그 다음번은 생방이야. 외부 인력의 투입이 안 되네 뭐네 하지만 그를 제하고는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도와줄 테니까 가감 없이 상담을 부탁해줬음 좋겠어."


 "물론이야. 맡겨만 달라고."


 "저도 열심히 할게요!"


 프로듀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제 막 발걸음을 떼었기에 벌써 섣불리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었다. 다만 흔치 않은 프로젝트이니만큼 두 사람에게 있어 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를. 활동의 발판이 되기를. 프로듀서는 조심스럽게 기원했다.


*


 "경연이라 한다면, 강렬해야 하지 않겠어?"


 "아무래도요. 분명 사람들의 이목을 확 끌어당겨야, 유리하겠죠."


 아유무의 말에, 사요코는 동의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경연의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는 것 빼고는 다 차곡차곡 쌓아 올려야 했다. 두 사람은 일단 전반적인 틀을 잡기로 했다. 사요코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아유무와는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큰 접점이 없었다. 같은 유닛의 멤버도 아니었기에 어깨너머로 파악한 아유무의 특성과 자신의 특기를 합쳐 시너지를 이뤄내야 했다. 생각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이목을 집중시킬, 강렬한 무언가. 그 무언가가 대체 뭘까.


 "사요코. 일단 지금 당장 내가 생각난 것들을 말해본다면 말야."


 아유무는 털털하게 말을 이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기며 마인드맵을 그려가던 사요코는 아유무의 말에 제 생각들 쓱싹 지웠다.


 "생각하신 게 있나요?"


 "아니, 뭐. 지금 막 생각난 걸 얘기하려는 거니까. 뭐라도 의견을 내다보면 둘이 탁-. 하고 오는 게 있지 않겠어?"


 "그거 뭐랄까. 사장님이 팅-! 하고 왔다. 라고 하시던 그 느낌이네요."


 아유무의 방식은 즉흥적이었다. 머리에 생각을 쌓아 둔다고 그게 탑이 되리란 보장이 없으니, 일단 하나씩 꺼내보자는 유형이었다. 그 방식이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는 더 먹힐 수도 있겠다고 사요코는 판단하여 아유무에게 집중했다.


 "무대는 넓겠지. 관객은 많을거고."


 "생방송이면 텔레비전 너머로도 분명 많이 시청하시겠죠."


 "강렬해야 한다고 했잖아. 내가 보기엔 역동적이어야 할 것 같아."


 "역동적이라면, 몸을 많이 써야 한다는 뜻일까요?"


 "두 사람이 무대를 꽉 채워 넣으려면, 행동이 커야 하지 않을까?"


 틀린 말은 아니다. 행동이 크면 그만큼 사람들의 시야가 커질 것이다. 다만 허우적거리면 안 된다. 행동에는 반드시 힘과 리듬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할 것이다. 사요코는 아유무의 특기를 가만히 떠올렸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 수련해 왔다는 댄스. 아유무의 댄스 실력이라면 충분히 경연에 통할 것이다.


 "아유무씨의 말대로라면 댄스를 주된 방향으로 해서 무대를 꾸미면 되려나요?"


 "오! 괜찮은데? 아이돌의 경연 무대라면 분명 노래만을 보진 않을 테니까 말야."


 "동의해요. 노래도 중요하지만, 댄스도 중요하죠. 그 플러스알파도 중요하겠죠."


 "그 플러스알파까지는... 아직 생각 못 했지만 말야."


 "저도 그래요."


 "댄스 위주의 경연 무대라...... 뭔가 두근거리기 시작했는데. 아! 사요코. 지금 막 떠오른 노래가 하나 있어. 들어볼래?"


 아유무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주섬주섬 꺼내 음악 목록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 여깄다. 찾은 노래를 재생시켰다. 사요코는 아유무가 재생한 노래를 집중하며 들었다. 세찬 느낌의 전주 뒤로 가사가 온다. 정체된 하늘에 갇힌 희망들. 포기한 채론 잡힐 리 없는 꿈.


 "이 노래..."


 "응. '우리들의 레지스탕스'야. 떠올리기에 이 무대에 강렬한 댄스가 조합이 잘 맞을 거 같거든."


 즉흥적인 것 치고, 아유무의 센스는 탁월했다. 옆에서 조금만 다듬어주면 바로 다음 길로 향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확실히 이 노래는 경연이라는 특성에 맞을 것 같았다. 이런 것까지 고려해서 아유무가 고른 것 같진 않았지만, 가사의 메시지, 음악의 분위기, 중간중간 퍼포먼스를 충분히 삽입할 수 있을 간주까지 경연곡으로서의 조합이 괜찮았다.


 "괜찮을 거 같아요."


 속전속결이었다. 아주 살짝, 급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에 불안감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아유무가 하나씩 던지는 퍼즐 조각들은 꽤 아귀가 잘 맞아떨어졌다. 길목의 문이 하나씩 차곡차곡 열리며 마치 도장 깨기를 하는 것 같아 다른 루트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오케-! 그럼 사요코. 이 노래에 맞는 댄스를 내가 구상해볼게!"


 "아유무씨 혼자 괜찮겠어요?"


 "댄스라면 벌써부터 짜임새가 머릿속에 그려진단 말야."


 아유무의 의욕은 마치 크나큰 파도와 같았다. 그 기세에 사요코는 함께 간다는 느낌보다는 휩쓸린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뭐, 휩쓸린다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 휩쓸려 떠내려가 발견한 대륙이 아메리카일지 무인도일지는 가 봐야 아는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닌 댄스의 구상이라면 더더욱 아유무에게 맡기지 않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좋아요. 그럼 저는 어떤 쪽을 구상해볼까요?"


 "음...... 일단은 괜찮을 거 같은데?"


 "네?"


 "당장은 말야. 노래는 정해졌으니까. 노래 쪽은 지금은 건들지 않아도 되지 않겠어?"


 "그냥 기다리고 있어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야. 맡겨만 달라구."


 "아, 네... 알겠어요."


 지금의 불안감은 정말 급하고 진행되고 있는 상황 자체에 대한 불안감일까. 해맑게 웃는 아유무는 충분히 믿음직스러웠다. 그것과 별개로 사요코는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사요코는 자신의 안에서 두근거리는 이 느낌이 설렘인지, 불안함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


 아유무가 댄스를 구상하는 데 걸린 시간은 사흘이었다. 노래를 골백번 반복하며, 이 노래의 주인공들이 펼쳤던 무대를 지겹도록 돌려보며 만들어 낸 댄스 플롯은 만족감을 뛰어넘었다. 사요코와 잡은 약속 시각보다도 훨씬 이른 시간에 도착한 아유무는 레슨복과 함께 목에 둘렀던 타올 하나를 바닥에 던져두고 음악을 재생했다. 노래의 시작과 함께 구상해 온 댄스를 펼쳐 보였다. 거울 넘어 수많은 관객이 자동으로 펼쳐졌다. 아직 오지 않은 사요코를 머릿속으로 그려냈다. 복잡한 스탭을 밟으며, 상체와 하체를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음악 소리보다도 더 크게 신발 밑창과 바닥이 내는 마찰음이 귀에 박혔다. 듣기 힘든 소리가 거슬리지 않았다. 그래, 언젠가 당도할 그 날까지 몇 번이던 쏘아붙여!!!!! 마지막 가사를 아유무는 있는 힘껏 질러댔다. 엔딩 포즈를 10초간 유지한 아유무는 푹 쓰러지며 숨을 몰아쉬었다. 여기서 더 부풀어 오르면 폐가 터지는 게 아닐까 싶었으나, 그 고통은 아유무에게는 이상할 정도의 쾌감도 함께 줬다. 몸도 정신도 다 불태워버리는 댄스 무대. 아이돌 활동하면서는 느껴볼 수 없는 무대였기에 이번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고 싶었다.


 "......아유무씨. 이게 그 댄스인가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반사된 거울로 살펴보자 열린 문 앞에 사요코가 벙 찐 표정으로 서 있었다. 사요코 뿐 아니었다. 사요코의 뒤로 리츠코와 토모카가 함께 있었다.


 "아, 사요코 안녕. 리츠코랑 토모카도 있었네?"


 "오는 길에 만났어요. 레슨이 궁금하다고 해서..."


 "이야, 프로듀서에게 얘기를 듣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본격적인가 보네."


 리츠코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토모카는 그 옆에서 싱긋 웃을 뿐이었다.


 "혹시 첨부터 본 거야?"


 "아뇨. 끝부분만 봤어요."


 사요코의 말에 불현듯 아유무는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아유무가 세 사람에게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세 사람이 온전히 레슨실 안에 입성하자 아유무는 레슨실의 문을 닫았다.


 "잘 됐다. 구상해온 댄스를 품평해 줄 사람이 필요했거든."


 "아아. 좋은 구경이 될 것 같네요."


 토모카의 말에 아유무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요코도 잘 봐줘. 같이 춰도 괜찮을지, 부족한 부분이 있는지."


 "아, 알겠어요."


 세 사람은 아유무의 춤에 방해되지 않게 한쪽에 주르르 섰다. 아유무는 음악을 재생시켰다. 2회차의 댄스가 시작되었다. 사요코는 아유무의 댄스를 눈을 부릅뜨고 쫓았다. 어려운 스탭이 많다. 잘 알지 못하지만, 스트립 댄스 같은 것도 보인다. 관절을 탁탁 튕기는 댄스도 있는 것 같고, 단둘이서 하는 댄스이지만 대형의 이동이 겉보기에도 복잡해 보인다. 사요코는 아유무의 옆에 자신을 그려 넣어보았다. 상상 속의 자신은 아유무의 댄스를 한 치의 오차 없이 플레이하고 있었다. 저 춤을 실제로 실행해야 하는 사요코는? 아유무의 댄스 중, 왼쪽 가슴에 오른쪽 주먹을 대고 펌핑하는 동작이 있었다. 무의식중에 그 동작을 따라 해봤다. 아유무처럼 힘차게 끊어지지 않았다. 또다시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그 사이 아유무는 노래의 끝과 함께 강하게 허공을 삿대질하며 포즈를 유지했다. 정지된 움직임 속에서 헐떡이는 아유무의 가슴이 심하게 오르내렸다. 사요코는 리츠코와 토모카를 살폈다. 아유무의 마무리 포즈를 응시하는 두 사람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안... 좋았어?"


 세 사람이 요지부동으로 반응이 없자 아유무는 뜸을 들이며 물어봤다. 셋의 표정이 각각 심각했다.


 "좋았어요! 좋았는데."


 "저기, 아유무. 일단은 정말 칭찬해줘야겠는데?"


 리츠코가 한 번 안경을 매만졌다. '칭찬'이란 단어에 아유무의 표정이 환해졌다.


 "확실히 아유무만이 할 수 있는 퍼포먼스였어. 다른 소속사 아이돌이 과연 이런 댄스 무대를 선보일까? 한다면 아니라고 바로 답을 할 수 있을 정도야."


 "예스! 바로 그거야!"


 "하지만 아유무씨만의 무대가 아니라는 거겠죠?"


 토모카가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리츠코는 토모카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만의 퍼포먼스가 아니야. 둘이 함께 해야 하는 퍼포먼스야. 사요코에게는 아직 아유무의 댄스 스킬을 단기간에 습득하기 어려울 수 있어."


 "그러려나..."


 리츠코의 말에 아유무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둘이 함께 해야 하는 퍼포먼스. 댄스 스킬. 단 기간에 습득하기 어려운. 그러려나. 리츠코와 아유무의 말들이 탁탁 끊어져 사요코의 귀에 총성처럼 박혀 들어왔다. 분명 저 퍼포먼스는 멋지다. 아유무의 댄스가 크고 어려운 건, 무대를 둘이서 커버하면서도 강렬한 임팩트를 주기 위함일 것이다. 첫 회의에서 나온 말들을 아유무는 아주 훌륭할 정도로 이행한 셈이다. 그 최상의 퍼포먼스를 실력이 딸려서 깎아야 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리츠코의 평에는 한 치의 거짓이 없음을 머리로는 이해했으나, 해보지도 않고 받아들일 수 없다.


 "저기. 저. 할 수 있어요."


 사요코가 두 주먹을 꽉 쥐며 답했다.


 "사요코. 무리해선 안 돼."


 "아뇨. 할 수 있어요. 해 볼게요."


 "사요코씨. 마음이 앞서면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이랍니다. 지금은 이성적으로 판단하셔야 해요."


 "토모카쨩. 충분히 이성적이야. 아유무씨가 어떤 마음으로 댄스를 구상했는지 알아요. 경연이잖아요. 할 수 있는 걸 해보고 싶지 않아요."


 "사요코. 경연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상을 보여줘야지 그 선을 넘어버리면 최상을 보여줄 수가 없어."


 리츠코의 조언은 분명 선배로서의 경험에서 나온 조언일 것이다. 모를 리 없었다.


 "그 선을 제가 높이면 되잖아요."


 사요코의 근성이 이성의 끈을 툭, 끊어버렸다. 리츠코와 토모카는 싸한 기운을 느꼈다. 두 사람은 아유무를 쳐다봤다. 두 사람의 경연에 이 이상은 간섭할 수 없었다. 아유무의 판단이 사요코의 근성을 조금은 잠재울 수 있기를.


 "좋아. 사요코의 뜻이 그러하다면, 난 찬성이야."


 "아유무."


 "리츠코. 우리의 경연이니까 우리에게 맡겨 줘."


 아유무의 말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사요코는 투지에 사로잡혀 있었다. 토모카는 촉으로 자각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을 말릴 방도가 없다. 리츠코를 쳐다봤다. 복잡한 심경이 가득 보였다. 리츠코는 한 번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아유무씨! 고마워요!"


 반색하는 사요코에게 아유무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


 아유무는 사요코에게 전신의 풀캠으로 댄스 영상을 찍어 보내줬다. 혼자 레슨할 때는 전체적인 댄스와 동선을 익히고, 아유무와 함께 레슨할 때는 자잘한 동작들을 교정받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이 챗바퀴 같은 순환에 위화감을 느꼈다. 그 위화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갑자기 훅 끼쳐온 이 초조함은 뭘까. 아유무는 조종당하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여 노래의 MR를 틀었다. 흘러나오는 간주에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가만히 서서, 박자를 셌다. 여기에 가사가 들어가야 하지. 넷, 셋, 둘. 하나.


 정체된 하늘에 갇힌 희.


 노래의 첫 마디부터 삑사리가 났다. 반주를 껐다. 다시 틀었다. 가만히 서서, 박자를 셌다. 여기에 가사가 들어가야 한다. 넷, 셋, 둘. 하나.


 ...체된 하늘에 갇힌 희망.


 노래의 첫 마디를 놓쳤다. 아유무는 급하게 물을 찾았다. 타올 옆으로 굴러다니는 이온 음료를 발견했다. 급하게 벌컥벌컥 마셨다. 사요코의 노래 실력이 어느 정도더라. 분명 극장 안에서 사요코의 가창력은 꽤 좋은 평을 받고 있었다. 그에 비해 아유무의 가창 실력은 사요코에게 미치지 못했다. 사흘 정도가 댄스 구상으로, 일주일이 댄스 연습으로 지나가버렸다. 3주의 시간 중 열흘이 지나가버린 것이다. 이제 겨우 남은 시간은 열흘이었다. 그 위화감의 정체를 파악하자, 아유무는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아, 아유무씨! 역시나 일찍 오셨네요. 오늘은 2절 후렴 부분 스탭 알려준다고 했죠?."


 사요코가 반기며 레슨실 안으로 들어왔다. 오자마자 댄스의 스탭을 말하는 사요코를 향해 아유무는 몸을 휙 돌렸다.


 "저기, 사요코. 오늘은 보컬 레슨이 어때?"


 "네? 하지만 오늘 아유무씨가 2절 후렴 부분의 스탭을 알려주신다고.... 어제 하루 종일 그 부분 연습했어요."


 "있잖아. 우리. 댄스는 어느 정도 되지 않았을까?"


 댄스가 어느 정도 됐다니. 사요코는 가득 물음표를 띄웠다. 아직 사요코는 아유무의 댄스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캠을 보며 영상을 익혀도, 아유무가 알려주는 세세한 동작들은 난이도가 높아 그 각이 잘 나오지 않았다. 아유무와 연습이 된 부분까지 합을 맞춰보면 그 실력 차는 여실히 들어났다. 그걸 아유무도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 실력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댄스가 어느 정도 맞춰줬다는 말을 하는 아유무를 사요코는 납득할 수 없었다.


 "댄스가 어느 정도 됐다는 걸 뭘 보고 판단하셨나요?"


 말을 꺼내며 아차 싶었다. 자신도 모르게 말에 날이 서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댄스의 흐름은 다 외웠잖아."


 "흐름만으로 됐다고 할 수 없어요. 경연이잖아요."


 "흐름만 알면 댄스는 거의 다 파악이 된 거야."


 "........네?"


 이번엔, 아유무가 자신의 말에 자신이 놀랐다. 일주일간 사요코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모르지 않았다. 순간 조급해 실례되는 말이 툭 튀어나와버렸지만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일단은 이 말은 수습해야 한다.


 "저기, 그게 아니라."


 "아유무씨. 저는 아유무씨의 그 흐름을 흘러가는 대로 맞출 수 없어요. 그 흐름을 저는 무수히 쪼개서 틀로 받아들여야 해요."


 "방금 말은."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혹시 아유무씨도 그리 생각하시는 건가요? 누군가의 타고남을, 저는 노력해야만 발끝에 미칠 수 있어요."


 "사요코. 미안한데. 단순히 날 춤에 타고난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던 거야?"


 "그건 사실이잖아요. 아유무씨 뿐 아니라 극장의 대부분 그리 생각할거예요."


 아유무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 댄스의 구상은 아유무 자신이 지금까지 자신의 노력을 집대성해 압축한 결과물이라 생각했고 그에 무리해서 따라 와준 사요코에게 고마운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노력가인 사요코가, 자신의 노력들을 타고남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설마 사요코는 지금껏 나를 그렇게 생각해 왔던 것일까. 아유무는 말문이 턱 막혀왔다. 여기서 말들이 더 꼬리를 물면, 지금의 말다툼 이상의 안 좋은 꼴을 볼 것 같았다.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댄스 어느 부분을 알려달라고 했지?"


 "...2절 후렴 스탭이요."


 아유무는 사요코의 곁에 섰다. 스탭을 하나씩 선보였다. 사요코가 아유무의 스탭을 따라 맞췄다. 삑-. 삑-. 마찰음이 불안정했다. 아유무는 연습 하는 사요코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방금 전의 말다툼 때문인지 경직된 표정이었다. 아유무는 사요코의 경직된 표정을 걷어내고 그 속내를 살펴보려 노력했다. 눈빛이 진지했다. 자신의 춤을 통째로 담아내겠다는 열의가 엄청났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사요코의 집념에서 리츠코가 말했던 무리가 무엇이었는지 살갗으로 생경하게 느껴졌다. 저 근성이 사요코의 원동력이란거지. 연습 내내 아유무는 사요코에게서 주체할 수 없는 자극을 느꼈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노력의 끝이 과연 성공을 이룰 수 있을까. 그 날 사요코는 악착같이 2절의 스탭을 통째로 습득해갔다.


*


 정체된 하늘에 갇힌 희망들

 포기한 채론 잡힐 리 없는 꿈

 약하고 작은 마음을 바꾸고 싶어서 crash!

 일어나라!


 극장으로 출근해 의상실로 향하던 사요코를 사로잡은 노랫소리는 정제되지 않은 무딘 목소리였다. 사요코는 멈칫해 소리가 들리는 레슨실을 염탐했다. 아유무가 홀로 보컬 레슨에 열중이었다. 사요코는 레슨실에서 있었던 아유무와의 작은 다툼을 떠올렸다. 타고났다는 말에 발끈한 아유무를 떠올리곤 머리를 세차게 저었다. 댄스에 무리가 없으니까, 보컬 연습에 열중하겠다는 뜻인가. 가사 하나하나 목청 터져라 읊어대는 아유무를 응시하던 사요코는 언짢은 탄식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도대체 아유무가 어떤 생각으로 경연을 준비하는지 그 자체조차 사요코는 알 수 없었다. 역동적인 동작으로, 강렬한 춤으로 경연에 임하겠다고 한 건 아유무 본인이었다. 그 거대한 포부를 실망시킬 수 없어 더 악착같이 댄스 연습에 열의를 가졌었다. 그 마음을 알아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보컬 연습을 할 시간조차 없는 자신과, 보컬 연습에 열중하는 아유무를 비교해보자 타고난 재능이 없는 자신이 너무 비참해졌다. 사요코는 레슨실의 문을 박차고 열었다. 놀란 아유무가 움찔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사요코?"


 문을 쾅 닫았다. 사요코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뚜벅뚜벅 아유무의 곁에 섰다.


 "오늘 좀 늦게 온다고 하지 않았어?"


 대꾸하지 않고 그대로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음악에 맞춰 힘을 가득 담아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요코의 행동을 처음엔 당황하여 쳐다보던 아유무의 표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하게 굳어졌다.


 "지금 뭐하는 거야?"


 무시하고 몸을 움직이는 사요코의 춤사위는 위험해보였다. 힘을 주지 말아야 할 부분에도 힘을 주고 있었다. 저렇게 춤추면 분명 스탭이 꼬일 것이다. 저러다 다치면 안 되는데.


 "사요코."


 삑-. 순간 발을 삐끗했다. 표정에서 아픔을 참는 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야."


 아유무는 뚜벅뚜벅 걸어가 신경질적으로 음악을 꺼버렸다. 그럼에도 사요코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 스탭 두 번, 뒤로 스탭 한 번. 교차해서 한 번 턴. 힘을 가득 줘 턴을 하는데 부드러울 리 만무했다. 한 쪽 발로 균형을 잡고 부드러이 돌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되자 사요코의 균형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쾅-. 무너지는 건 삽시간이었다. 바닥에 풀썩 엎어진 사요코가 주먹을 꽉 쥐며 아픔을 참고 있었다.


 "있잖아. 뭐 하는 거야. 대체."


 이를 악물고 아유무가 사요코의 앞에 섰다.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춤추면 몸이 남아나질 못 해. 방금처럼 된다고. 일단 일어나. 일어나서 말하자."


 아유무가 사요코에게 손을 내밀었다. 바로 앉은 사요코가 아유무가 내민 손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유무씨는 이해 못 하겠죠."


 울분을 참는 말투였다.


 "뭘 이해 못 한다는 건데?"


 "왜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미친 듯이! 노력해야 하는지!!"


 사요코는 있는 대로 소리를 질러댔다. 날이 선 고음에 아유무는 인내심이 뚝, 끊어졌다.


 "내가 왜! 그걸 모를 거라 생각하는데! 남의 노력을 타고났단 말로 함부로 재단하지 마!"


 "그걸 재단하고 있는 사람은 아유무씨잖아요!"


 탄식이 나왔다. 사요코의 눈에, 내가 그렇게 보였다는 걸까. 아유무는 사요코를 향해 내밀었던 손을 거두고 뒷머리를 세차게 헤집었다. 사요코는 스스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음악을 틀었다. 또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악착같은 노력이 대체 뭐기에 이 지경까지 가는지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아유무는 사요코의 옆에 섰다. 노래 반주에 맞춰 있는 대로 노래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음이 맞는지 박자가 맞는지 알 바 없었다. 그냥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의 행위는 마치 서로를 향한 시위 같았다. 활짝 열어 젖혀진 레슨실의 요란함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전혀 호흡도 맞지 않고, 음도 맞지 않고, 박자도 맞지 않는 한 사람의 노래와 한 사람의 춤을 극장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지켜봤다. 사요코의 몸짓과, 아유무의 노랫짓이 엉망진창으로 마구 부딪쳐댔다. 저러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나가 떨어질 것 같았다.


 "무슨 소란인거야?"


 프로듀서가 무리들의 뒤에서 서성거리며 앞을 살폈다. 아이돌들은 프로듀서에게 길을 터 줬다. 시야 가득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 가관이었다.


 "프로듀서. 말려야 하겠죠?"


 리츠코의 말에 프로듀서는 대꾸하지 못했다. 말려야 할 상황인지 아닌지도 파악되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그 사이에 노래는 끝을 내달렸다.


 "프로듀서."


 "끝날 때 까지 놔두자."


 "네?"


 리츠코는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프로듀서는 심각할 정도로 진지하게 이 경광을 응시하고 있었다. 옆에서 리츠코도 어쩔 수 없이 끝날 때 까지 기다렸다. 마침내 노래가 끝나고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진 두 사람은 쓰러지듯 풀썩 주저앉았다. 두 사람에게 달려가려던 아이돌들을 프로듀서는 제지했다. 리츠코에게 눈짓을 보냈다. 리츠코는 나가라는 손짓을 보내며 레슨실의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힌 레슨실 안에 오롯이 프로듀서와 사요코, 아유무 세 사람만이 남았다. 날 것의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무슨 일인지 설명 해 줄 수 있니?"


 다가가지 않은 채, 프로듀서는 물었다. 먼저 몸을 털고 일어난 건 아유무였다. 아유무가 일어나자 사요코도 보란듯이 있는 힘을 쥐어 짜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이서 할 말이 더 남았다면 나는 나갈게."


 대답이 없다.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도울 수 있다고 했었어."


 "프로듀서......의 도움은..... 괜찮아요."


 사요코의 대답을 들었다. 프로듀서는 아유무를 쳐다봤다.


 ".......응. 괜찮아."


 아유무의 대답을 듣고, 프로듀서는 알겠다고 답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레슨실의 문을 열고 나오자, 리츠코가 팔짱을 끼며 프로듀서를 노려봤다.


 "그걸로 된 건가요?"


 "...... 사요코와 아유무가 어떤 일로 저렇게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 알 수 없어."


 "그럼 그걸 알아야 할 거 아닌가요?"


 "알려주지 않으려는 걸 억지로 말하게 할 수 없어."


 "프로듀서!"


 "내가 개입해서 해결 할 수 있는 일이라 판단이 되면 해결하려 해. 그런데 이건 내 개입으로 해결 될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어떻게 대립하는 지 알 수 없는데, 그걸 아신단 건가요?"


 "무대를 준비하면서 생긴 갈등을 리츠코는 어떻게 풀었어?"


 프로듀서의 물음에, 리츠코는 뒤통수를 한 대 후려 맞은 기분이었다. 질문의 그 의도를 단박에 파악할 수 있었다. 물음에 답이 같이 있었다. 리츠코는 헛웃음을 흘렸다.


 "프로듀서공. 저 둘에게 모험을 거신 건가요?"


 "너희들이 보여줬던 길이 답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할 말이 없네요."


 리츠코는 아유무가 처음 경연에 선보일 댄스를 선보였던 그 날을 떠올렸다. 우리의 경연이니까 우리에게 맡겨 달라던 아유무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저 둘을 마냥 저대로 방치할 수 없어요. 저는."


 "저 둘이 내가 아니라 너희들을 찾는다면, 너희는 응당 도와줘야 맞는 거겠지."


 ".......알겠어요."


 뒤돌아가는 리츠코의 뒷모습을 보던 프로듀서는 슬쩍 레슨실의 안을 살폈다. 둘은 여전히 대립 중이었다. 짧은 순간의 판단이 옳은 판단일까. 저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대치하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 대책이 서질 못했다. 저렇게까지 폭발했다는 건 이미 처음부터 뭔가 아귀가 잘못 들어맞았단 소리였다. 그러나 이제 와서 다시 매듭을 풀기엔 너무 많이 와 버렸다. 밀고 갈 수 밖에 없다. 무대는 분명 저 두 사람에게 어떤 방향으로든 해답을 내 놓을 것이다.


*


 갈등이 폭발하고 며칠 후, 사요코와 아유무는 경연의 순번을 정하는 녹화에 참여했다. 전달받은 녹화 방법은 간단했다. 그저 녹화장에 참여해 제비뽑기로 순서를 뽑으면 그만이었다. 그 날 이후로 서로 합을 한 번도 맞춰보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녹화장에 도착해서도 사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 기류를 느낀 건지 스태프들도 두 사람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마이크를 착용하고 녹화장에 마련된 자리에 착석했다. 둘러보자, 인선들이 엄청났다. 대기업 소속 사무소의 유명 아이돌로만 이뤄진 팀도 여럿이었다. 인지도만 따지자면 이 8팀 중에서 가장 딸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 위축감에 두 사람은 더더욱 말을 잃었다. 스태프가 녹화의 시작을 알렸다. 저명한 사회자가 프로그램을 이끌기 시작했다. 각 팀의 소속사와, 참여 멤버의 이름을 소개했다. 765프로의 마이하마 아유무양과 타카야마 사요코양! 사회자에 소개에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단 둘이었지만 파도타기식 인사가 되어버려 녹화장에 작게 웃음이 터졌다. 얼른 순서를 정하고 녹화를 마치고 싶었다.


 "자, 그럼 'Project Only One'의 경연 순서를 어떻게 뽑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무대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상대팀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염탐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될 겁니다." ......? 이게 뭔 소리래. 아유무와 사요코 뿐 아니라 참가팀 모두 술렁거렸다. "지금부터 50초간, 여려분들은 여러분들의 경연 무대 '중간 점검'을 하실 겁니다. 이 중간 점검에서 1위를 한 팀부터 차례대로 제비뽑기를 진행해 나갈 겁니다."


 중간 점검이라니. 그런 말은 전혀 듣지 못했다. 분명 전달해 받은 큐시트에도 중간 점검에 대한 말은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50초면, 경연의 무대가 5분이라고 가정했을 때 무려 6분의 1을 오픈하는 거였다. 당혹스러움에 아유무와 사요코는 서로를 쳐다봤다. 이러나저러나 의지해야 할 사람은 서로였다.


 "마이 갓. 어쩌지."


 "......할 수 밖에요."


 "우리 근데...... 제대로 맞춰보질 못했잖아."


 굳이 맞춰봤다면 다투기 전 춤이 전부였다. 노래의 부분은 전혀 맞춰보지 못했다.


 "그래도 할 수 밖에 없잖아요."


 ".......맞춰보지 않았으니까, 따로따로 하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설마 여기서 까지 감정의 골을 들어내려는 건가 싶어 사요코의 표정이 확 안 좋아졌다.


 "일단은 서로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나는 춤을 출 테니까, 사요코는 노래만 불러."


 "아유무씨."


 "사요코. 즉흥적이긴 한데, 한 번만 믿어줘."


 아유무는 합장한 채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까지 부탁해오는데 거절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사요코는 알겠다고 답했다. 그 사이에 벌써 다른 팀의 중간 점검이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내지르는 고음에 정신이 혼미했다. 아주 말끔하게 올라간 고음이었다. 다음 팀은 힙합 스타일로 수준급의 랩을 선보였다. 대비되지 않은 짧은 50초인데도, 어떤 무대를 선보일지 응축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순번이 하나씩 사라지고 마침내 두 사람의 순번이 되었다. 마이크는 사요코만 들었다. 음악이 흘렀음에도 사요코는 가만히 서 있는 채였다. 마이크를 쥐지 않은 아유무가 그 옆에서 댄스를 시작했다. 극과 극으로 동적이었고, 정적이었다. 아유무의 부드럽고도 힘찬 춤 위로 사요코의 목소리가 얹혀졌다. 연약하고 조그마한 마음을 바꾸고 싶어서, 크러쉬! 살짝 초과 된 52초 부근에서 노래가 끊어졌다. 아유무의 춤사위도 그에 맞춰 깔끔하게 멈췄다.


 "지금껏 본 중간 점검 무대 중 가장 정직한 무대였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칭찬인지 아닌지 판가름 나지 않았다. 다만 사요코는 노래의 반주와 아유무의 춤사위에서 어떻게 노래를 불러야 할지에 대한 흐름이 피부에 와 닿아 그 자체로 놀란 상태였다. 보컬 레슨을 제대로 하지 않았음에도.


 "......흐름이 뭔 지 알겠지? 있잖아. 사요코. 나는 노래를 잘 못 해."


 제자리로 돌아온 아유무가 나지막이 읊조리듯 사요코에게 말했다.


 "네가 춤을 그렇게 노력으로 타파해 나가야 했듯이, 나는 노래를 그렇게 해야 하는 존재야."


 다른 팀의 중간 점검 따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흐름이 느껴졌다면, 그건 네 노력의 집약체인거지. 마냥 타고난 게 아니라."


 순간 안에서 뜨거운 게 울컥 올라올 것 같았다. 사요코는 그 덩어리가 올라오는 것을 꾹 참아 내렸다. 자신이 던졌던 말의 비수가 아유무에게 어떻게 꽂혀 들어갔는지 느껴졌다. 느껴졌는데, 아직은. 아직은 그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중간 점검이랍시고 짧게 무대에 섰을 때 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그 날 중간점검에서 두 사람은 꼴등을 했다. 가장 마지막에 뽑은 경연 순서는 7번째였다.


*


 남은 일주일동안 두 사람에게 일어난 변화는 딱히 없었다. 다만 레슨을 할 때 춤이 아닌 노래도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부족한 부분을 알려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알려 달라 하기 전 미리 서로가 서로의 손을 봐 줬다. 화해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사이가 더 나빠지는 것 같진 않은 이상한 균형감에 아무도 선뜻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지 못했다. 연습량은 연습 초반과 비교하면 줄었으나, 둘의 호흡은 갈수록 잘 맞아 떨어졌다. 경연 전 날엔 드디어 두 사람의 퍼포먼스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경연장에 들어설 때도 두 사람은 과묵했다. 경연장에는 프로듀서도 동행했다. 의상으로 맞춘 밀리터리 복장이 두 사람의 비장함을 더욱 강하게 채워주는 듯 했다. 프로듀서는 최대한 제3자 마냥 서포트하기만 했다. 두 사람을 밀착하여 촬영하는 카메라맨의 뷰파인더엔 오로지 정적 가득한 두 사람의 투 샷만 채워졌다. 경연 프로그램의 감독은 이런 그럼도 경연에 필요한 그림이라 좋아했다. 


 '한 번의 용기, 한 순간의 무대. 균등한 기회로, 최고의 스테이지를 향해. Project Only One! 그 화려한 경연의 막을 올리겠습니다!!' 


 사회자의 말과 함께 방송이 시작되었다. 한 무대, 한 무대를 두 사람은 아무런 리액션 없이 경청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먼저 경연을 맞힌 참가자들의 후련한 표정들이 그대로 모니터에 비춰졌다. 5번째 무대가 시작할 즈음 스태프는 무대 뒤에서 대기해 달라 요청했다. 나가는 두 사람에게 프로듀서는 말없이 주먹만 쥐어보였다. 3주간의 무수한 일들이, 단 5분의 시간으로 마감될 때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


 무대 뒤편은 분주한 것 이상으로 고요했다. 앞 타자의 무대도, 관객들의 함성도, 사회자의 음성도 귀에 웅웅거릴 뿐이었다. 정면만을 쳐다보고 있는 사요코의 어깨를 아유무가 툭 건드렸다. 안경을 벗은 사요코의 눈은 사요코의 열의를 더욱 짙게 느낄 수 있었다.


 "아유무씨. 중간 점검 때 하신 말씀에 대해 아무 말도 못 드렸네요."


 "꼭 말을 해야 아는 건 아니잖아."


 "말을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솔직하게 노래가 부족했다고."


 "나는 사요코처럼 대책 없는 근성으로 타파하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아유무의 말에 사요코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여전히 저는 아유무씨의 댄스가 단순히 노력으로만 이뤄졌다고는 인정 못 해요."


 웃음을 거둔 사요코가 진지하게 말했다.


 "나도 사요코가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정말 성공적인 무대를 펼칠 수 있는지 모르겠어."


 아유무가 진지하게 맞받아쳤다.


 "이 무대에서 알게 되겠죠."


 "그렇지. 사요코도 알게 되겠지."


 무대 입장 1분 전입니다. 스태프의 알림에 아유무는 예---!!!! 하고 크게 외쳤다. 사요코도 질세라 예-----!! 하고 길게 소리 질렀다. 얼른 무대로 뛰쳐나가고 싶다. 경연의 1등 같은 거, 바라지도 않는다. 최고의 무대 같은 것도 모르겠다. 무대의 방향성 같은 건 지금 막 정해졌다. 무대의 파트너인 '너'에게 '나'를 납득시키겠다. 이 무대를 찢어발기고 싶다. 서로를 겨눴던 오해도 함께 날려버리고 싶다. 두 사람은 안에서 첨예하게 날을 갈았다. 무모한 노력도, 타고난 재능도 어떻게든 버무려지겠지. 쏟아 낼 수 있는 건 다 쏟아 내버리고, 산화하리라. 무대의 문이 열렸다. 열화와 같은 함성 속으로 두 사람은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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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ject Only One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팀의 무대가, 지금 여기서 바로 곧! 시작됩니다. 이 무대와 함께 이번 주의 음악 방송을 마치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절대 눈을 떼지 말아주세요. Team 346프로의 무대입니다! 


 갖은 미사여구와 함께 음악방송의 라스트 무대가 시작되었다. 대기실의 탁상에 앉아 젤리를 오물거리며 사요코는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텔레비전에 시선을 향했다. 346프로의 무대가 몇 번째 무대였더라. 가만 떠올리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요! 사요코? 뭐 보는 거야?"


 음료수를 쪽 빨던 아유무가 사요코의 등을 팡-! 쳤다.


 "아앗! 아유무씨. 놀랐잖아요."


 "아 뭐야. 저 무대 정말 나오는 거였네?"


 아유무는 심드렁하게 쓱 보곤 사요코의 옆에 앉았다. 사요코는 텔레비전의 무대를 보고 있었고, 아유무는 그 옆에서 음료나 쪽쪽 빨며 스마트폰을 매만지고 있었다. 사요코는 자신이 먹던 젤리를 아유무에게 쓱 밀어줬다. 쌩큐! 아유무는 젤리 몇 개를 집어 먹었다. 멀찍이서 그 광경을 쳐다보던 리츠코가 어이가 없단 표정으로 다가갔다.


 "이 봐. 너희들. 저 무대가 아깝지 않은 거야?"


 리츠코가 두 사람이 앉아있는 탁자를 손바닥으로 탁 내려치며 말했다. 동시에 깜짝 놀라는 광경이 볼만했다.


 "1등이 목표가 아니었으니까 딱히 막 아쉽거나 그러진 않다고?"


 "어떻게 어? 경연장에 나가는데 1등이 목표가 아닐 수 있단 거냐고! 지독하게 싸워서 걱정했더니만 다 끝나니까 아무렇지도 않네. 정말."


 "뭐 그것도 괜찮지 않나요? 무대 자체는 만족스러웠으니까요."


 사요코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유무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보이며 사요코에게 몸을 살짝 기대며 리츠코 쪽으로 브이를 그려보였다. 그 날 경연에서 두 사람은 2등을 했다. 매끄러운 조화는 아니었으나, 오히려 그 8팀 중에서 거칠고 투박한 무대를 그려낸 팀이 없었기에 심사 과정에서 그 희소성을 인정받았다. 무대가 끝나자 두 사람의 사이는 거짓말처럼 괜찮아졌다. 프로듀서의 말로는 둘이서 따로 화해의 시간을 가지진 않았다고 했다.


 "있잖아. 그래서 너희들. 둘이 정말 괜찮은 거야?"


 리츠코의 말에 사요코와 아유무는 서로의 눈을 마주쳤다. 1초, 2초 3초. 동시에 시선을 확 피했다. 얘네 보소. 무슨 콩트 하는 것도 아니고. 리츠코는 그 둘은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음료수를 다 마셨는지 몇 번 쪽쪽이던 아유무가 캔을 구겼다. 사요코 쪽을 한 번 흘끔 보더니,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때로는 극한 상황으로 치 닫을 정도로 무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고."


 아유무의 말에 사요코는 눈썹을 씰룩였다. 그러더니 안경을 한 번 고쳐 쓰곤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타고난 사람이 괜히 뛰어난 게 아니더라고요. 그런 사람의 노력 또한 치열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오로지 두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상이란 걸 리츠코는 알 수 있었다. 제3자가 납득할 수 없다 한들 전혀 소용없겠지. 둘 사이에 끼어들 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뭐, 이런 결말이라면 프로듀서의 판단이 나쁘지 않았던 걸까. 니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리츠코는 한 번 어깨를 들썩이곤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


같이 무대를 꾸리다보면 분명 다투는 상황도 있겠죠. 서로의 의도를 곡해할수도 있고, 말 한마디가 불씨를 당길 수도 있고요. 뭔가 그런 상황을 써 보고 싶었어요. 잘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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