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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의 어떤 하루 _ 메구미, 아리사

댓글: 8 / 조회: 630 / 추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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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04, 2018 20:54에 작성됨.

기다란 셀카봉 하나를 메구미에게, 스마트폰 하나를 아리사에게. 얼떨결에 장비들을 하나씩 받아든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가 프로듀서를 동시에 쳐다보았다. 프로듀서는 이상하리만큼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거, 뭐 어쩌란거지? 메구미는 셀카봉을 몽둥이를 쥐듯 쥐었다.


 "저기, 프로듀서. 이거 이렇게 쥐어서 프로듀서를 때리면 되는거지?"


 금방이라도 휘두를 것 같은 포즈를 취하는 메구미에게 프로듀서는 있는대로 고개를 흔들며 팔로 엑스자를 펼쳐들었다. 아니야. 그거 절대 아니야.


 "냐하하. 농담이야 농담. 이거, 왜 준거야?"


 "하앗. 아리사에게 스마트폰을 주었다는 건 이 스마트폰으로 아이돌쨩들과 열광의 라인이라도 보내라는 뜻일까요. 무흐흐"


 "열광의 라인? 그럼 나는 이걸 뭐 어떻게 해야하려나?"


 하아아아아! 아리사! 알았어요! 아리사는 호들갑과 함께 메구미에게서 셀카봉을 갈취해서 자신이 받은 스마트폰을 셀카봉에 장착했다. 무흐흐! 이제야 한 몸이 되었군요. 아리사는 잔뜩 의기양양하게 장비를 메구미 손에 쥐어준 후 메구미를 뒤에서 껴안듯 겹쳐 메구미의 손을 조종했다. 살짝 각도를 위로 올려서, 액정 봐봐요. 그리고 둘. 셋. 찰칵!! 무흐흐-. 메구미쨩의 셀카봉을 이용한 첫 셀카를 겟했어요옷---!!! 메구미는 어리벙벙하게나온 나온 자신과 그 옆에 잔뜩 흔들려 유체이탈 된 아리사와의 투샷을 보곤 냐하하하하! 경쾌하게 웃었다.


 "자. 이제 이 장비들이 뭔지 알았으니 얘기해줄게."


 프로듀서의 말에 두 사람은 집중했다.


 "바야흐로 소통의 시대. 더 이상 아이돌의 활동이 무대, 방송, 화보로 국한되지 않는다는거 너희들도 느끼고 있지? 우리 아이돌들은 블로그로 교류를 하지만 건너 아이돌들은 아예 SNS로 실시간으로 소통까지 하고 있어. 이 상황에서 말이다. 우리도 뭔가 실시간으로 팬들과 소통을 해야 할 콘텐츠가 있어야한다. 라는거야."


 "실시간으로 소통한다는 건 생방송을 얘기하는거려나? 그래도 우리 인터넷 생방송같은데는 출연한 적 있지."


 "조금은 다른 느낌인데, 우리 자체적인 콘텐츠로 소모를 한 번 해보자는거야. 이른바 '시어터 돌발뉴스!'같은 느낌의...... 깜짝. 사생활 공개같은. 아리사. 이거 무슨 느낌인지 넌 알겠지? 팬들이 궁금해하는 아이돌들의 일상"


 "아이돌쨩들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는 것..... 끼요오옷! 아리사, 상상만으로도 분에 넘치는 행복이에요! 프로듀서씨. 그걸 하는건가요!!!!"


 "일단 채널 협약은 맺었어. 다만 실험적인 부분이 강하니까 단발적으로. 내일이야. 시간은 30분 정도인데 그것보다 일찍 마쳐도, 초과해도 상관이 없어. 한 마디로 시간적인 부담. 이런 거 생각하지 말고. 내일 시어터에 연습하는 친구들이나, 스케줄을 가려는 친구들이나. 뭐, 인터뷰같은 거 있잖아. 아니면 애들이 게임을 할 수도 있고, 밥을 먹을 수도 있겠지. 그런 걸 살짝 오픈해보는? 스트리밍 방송이라면 이해가 좀 쉬우려나. 그거를 메구미랑 아리사한테 맡겨보려 해."


 "프로듀서. 다시 말해서 그거 우리 둘 메인으로 첫방을 한다는거지?"


 "이게 지속된다면 너희 다음에 다른 멤버들이 돌아가면서도 할 수 있겠지? 근데 거기까지는 아직 좀 먼 얘기 인 것 같아. 일단은 너희 둘이 이끌어가는 형태로 파일럿 같은 느낌으로다가. 괜찮지 않니?"


 "아리사! 잘 할 수 있어요! 촬영이라면 아리사의 전문 분야이니까요! 메구미쨩과 함께라면 더더욱 잘 할 수 있어요!"


 "냐하하. 그렇게 봐준다면 좋긴한데.....으음."


 성향과 취향에 맞는 일거리에 마냥 즐거운 아리사와 사뭇 신중한 메구미. 나름 고민한 인선이었다. 프로듀서는 두 사람 사이의 밸런스가 잘 맞아 떨어진다면 분명 괜찮은 첫 방을 꾸려나갈거라 자신했다.


*


 ON AIR [765프로 깜짝 리포트 _ UP!10sion Theater Party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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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

 [방송 열렸네]

 [메구미 멍 때리고 있는데 지금]

 [HI!]

 

 "....... 아리사. 이거 지금 틀어진건가?"


 메구미는 어벙한 표정으로 깜빡깜빡 액정을 쳐다보았다. 하나씩 올라가는 채팅을 일일히 눈으로 살폈다. 나보고 멍 때리고 있대. 냐핫. 혼잣말과 함께 웃음소리를 내자 채팅 올라오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지금 잘 되고 있는건가? 메구미는 들고 있던 셀카봉을 내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하아아아. 메,메,메, 메구미쨩! 그 각도는 에러입니다! 아이돌쨩에게 로우앵글은 치명적인 샷이에요!"


 아리사가 달려와 셀카봉을 쳐들었다. 화면이 확 날아갔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와. 아리사. 방금 말투 되게 로코같았어."


 "로코쨩만의 특별한 말투. 아리사는 존경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메구미쨩. 보세요. 올라가는 엄청난 채팅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셀카봉을 쥐지 않은 반대쪽 손을 연신 흔들며 아리사는 격하게 인사했다. 푸쳐핸섭에 비견할만한 인사는 자연히 반대쪽 손에도 영향을 주어 셀카봉도 사정없이 흔들렸다. 메구미는 그 옆에서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채팅들에 집중했다. 댓글 자체도 속도가 붙어 읽기 힘든 마당에 아리사의 쉐킷쉐킷까지 겹치니 도저히 사람이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아, 이거 큰일이네. 셀카봉을 들고다니면서 촬영하는 동시에 채팅도 살펴야하고 진행까지 해야한다는거잖아?


 "정말. 아리사. 진정해. 진정하라구."


 일단 아리사를 멈췄다. 자연스럽게 아리사의 손을 풀어 카메라를 건네받은 메구미는 손을 뻗어 괜찮은 각도를 만들었다. 스마트폰의 액정으로 두 사람이 보기 편하게 들어왔다. 메구미는 바로 채팅창을 살폈다. 어지럽다, 정신없다 등의 반응들로 아우성이었다.

 

 "반응 봐봐. 어지럽다잖아."


 "한 쪽만 움직인다고 움직였는데 그게 아니였네요. 죄송해요. 우우"


 "일단 인사할까? 그러고보니 인사를 안 맞췄네."


 "메구미쨩. 괜찮아요. 팬이라면 아이돌쨩의 어떠한 인사도 반갑고 즐거우니까요!"


 "냐하하. 그럴려나? 그럼.... 얏호! 방송 시작한지 몇 분 지나긴 했지만 정식 인사야. 토코로 메구미!"


 "마츠다 아리사에요! 예!예!예!예!예!"


 양 손으로 브이를 그린 채 앞뒤로 흔들며 강조하는 아리사를 보며 메구미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에 또 화면이 흔들린다. 화면에 탑승한 수백개의 채팅들이 또 다시 멀미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난리난 채팅창을 보며 메구미는 헛기침과 함께 웃음을 진정시켰다.


 "아리사. 채팅이 엄청 빨리 올라가거든? 근데 그 와중에 눈에 확 들어오는 댓글이 있었어."


 "뭔가요?"


 "제발 그만 좀 흔들어제끼래."


 "으아아. 혼나버렸네요."


 "저기, 시청자 여러분. 미안미안. 하지만 이해해줬음 좋겠어! 이렇게 셀카봉으로 진행하고 그러는게 처음이라. 그래도 우리. 잘할거니까 끝날 때 까지 쭉- 재밌게 봐 줬음 좋겠어!"


 "아리사도! 아리사도 이 방송을 보고 계시는 여러분들과 같은 심정. 지금부터 시어터를 구석구석 탐방하면서 아이돌쨩들이 어떤 일과를 보내고 있는지 샅샅히 알아보도록 하지요. 무흐흐~"


 "아리사. 너무 들뜬 거 아니야?"


 "일단 대기실로 가는거예요. 어떤 아이돌쨩들이 있을지 아리사. 무척 기대가 되는거에욧!"


 아리사는 앞장섰다. 메구미는 카메라 각도와 화면에 뜨는 채팅들을 수시로 살피며 아리사의 뒤를 따랐다. 짧은 시간일 수 있지만 그래도 마가 뜨면 안 되니까 간간히 방송이 가능할 것 같은 채팅들을 읽으며 살을 붙였다. 대기실에 미라이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미라이 오늘 출근하는 날이던가? 잘 모르겠네에. 이쿠쨩 리코더연습 중. 그럴수도 있겠다! 근데 이건 비밀인데, 리코더 연습 중에는 이쿠는 건들지 않는게 좋다? 레이카쨩은 정말 하늘을 날 수 있나요? 에이. 이런 건 알면서 물어보는거지?


 "메구미쨩. 드디어 도착한것이에요! 그동안 실시간으로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시어터의 대기실!!"


 "너무 그렇게 기대하게 하면 오히려 실망한다구."


 "그래도그래도. 아리사. 너무나 기대되네요!!"


 "냐하하. 하긴 그럴수도 있겠다! 그럼그럼. 셋, 둘, 하나하면 아리사가 문을 열어줘."


 셋, 둘, 하나! 아리사는 있는 힘껏 문을 열어 젖혔다. 꺄아! 대기실에 지금...... 오오옷! 미라이쨩! 코토하쨩! 지금 뭐 하고 있는건가요!"


 아리사는 긴급 취재에 들어간 기자마냥 대기실 탁자 앞에 앉아있던 미라이와 코토하를 습격했다. 갑작스런 난리법석에 두 사람은 두리번거리며 상황을 살폈다. 메구미는 셀카봉을 든 채 요리조리 위치를 잡으며 최대한 네 사람이 잘 보일 각도를 찾았다. 이렇게 하면 좋을까? 아리사 머리칼밖에 안 보이는데. 요렇게 할까? 코토하가 안 보이잖아?


 "저기. 메구미. 뭐하는거야?"


 코토하의 물음에 일단 메구미는 화면에 코토하가 잘 보이도록 조정했다.


 "코토하! 인사 부탁해!"


 "응? 이거 뭐야? 방송중인거야?"


 "방송이요?"


 코토하의 물음을 미라이는 아기새처럼 따라 읊었다. 아, 이거 각도 어째야 하는거야. 요리조리 몸을 돌리던 메구미는 에라 모르겠다싶어 코토하의 무릎 위에 풀썩 앉았다. 꺅! 하는 소리와 함께 코토하가 메구미의 등을 한 번 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메구미는 있는 힘껏 손을 뻗어 각도를 맞췄다. 됐다. 드디어 네 명이 한 앵글 안에 들어온다.


 "이른 바 765프로 깜짝 리포트!!!.....으음.... 부제가 뭐였지?"


 "업텐션! 시어터 파리 타임이에요!"


 "자, 코토하. 미라이. 지금 이거 생방으로 나가고 있으니까 시청자분들께 인사 부탁해."


 "꺄아아! 귀중한 코토하쨩과 미라이쨩의 오프 더 레코드!! 이건 특종이에요!"


 메구미의 진행에 아리사의 멘트들이 MSG처럼 첨가되는 상황들이 정신없어 혼이 날아갈 지경이었다. 일단 두 사람은 화면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거울처럼 행동들이 똑같이 재생되는 걸 보니 정말 생방이 맞긴 맞았다. 덧붙여 쉴새없이 올라가는 채팅 공세들.


 "와아. 이거 진짜 팬분들이 올려주시는거에요?"


 "응응! 미라이. 뭔가 재밌는 거 있음 읽어줘도 돼!"


 "으음. 너무 빨라요. 헐 코토하 개쩔. 아리사쨩 뒤에서 완전 커엽. 메구코토 터짐 대박. ENG...PLZ는 뭐죠? 이건 되게 많이 보이네요. 와아. 엄청 올라오잖아요?"


 손가락 하나를 뻗어 눈에 보이는대로 채팅을 읽을 뿐임에도 방송에 내보내기 거시기한 것들 위주로 읽는 미라이의 초이스에 세 사람은 당황했다.


 "저기, 미라이. 방송중이잖아?"


 일단 코토하가 한 번 돌려서 미라이에게 말했다.


 "아앗. 혹시 제가 좀 난감한 것들을 골랐나요? 이게... 넘.. 빨라서.... 미라이쨩 졸귀. 와아. 이거 뭔가요? 칭찬인가요?"


 "아아앗 미라이? 그런 건 피해서 읽어야 한다니까?"


 "네? 아, 저 또 뭐 이상한 거 읽은건가요? 아, 여기서 알려주시네요. 미라이쨩 졸ㄹ...."


 "미라이쨔앙! 완전 귀엽다는 뜻이에요! 미라이쨩의 귀여움을 차마 착한 단어로 표현하지 못한 그 마음. 센 표현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그... 그.... 본능! 아리사. 이해할 수 있어요!!!"


 "아리사! 아리사는 또 무슨 말을 하는거니! 정말... 메구미, 이거..."


 코토하가 머리를 짚으며 앞에 앉은 메구미의 옆 얼굴을 난처하게 쳐다봤다. 메구미는 난감하게 웃었다. 잠깐 머릿속 생각들이 한꺼번에 날아간 것 같이 아찔했다. 이거. 이거. 이거 그러니까. 나마저 정신줄 놓으면 안 돼. 수습해야 한다.  


 "하핫. 미라이. 그거, 칭찬인데 좀 격한 칭찬이랄까. 나중에 내가 따로 알려주도록 할게. 아리사. 아리사도 지금은 진행자니까 팬심을 조금 낮춰줄 필요가 있어. 아무튼 둘이 여기서 뭐 하고 있던거야? 코토하?"


 "아? 아. 아아. 미라이의 숙제를 도와주고 있었어."


 "그거 볼 수 있을까?"


 메구미의 유도에 코토하는 손을 뻗어 미라이의 공책을 들어올렸다.


 "아아! 안 돼요. 보여줄 수 없어요!"


 미라이가 황급히 공책을 낚아챘다. 공책의 정체를 알고싶어하는 채팅들이 수없이 올라갔다.


 "이거....그거라서..."


 미라이가 울상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코토하를 바라봤다. 코토하는 갸우뚱하더니 뭔가 깨달은 듯 아앗. 하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맞다. 그... 오답풀이 중이었거든."


 "오답풀이. 아. 그거 못 보여주지. 시어터 아이돌의 일상을 공개하는거지 아이돌이 틀린 문제를 공개하는 게 아니니까. 둘이서 상당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구나. 몰랐네. 모를 수 밖에 없었지만."


 무슨 말들이 입에서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메구미는 상황을 정리해나갔다. 일단 이 둘에게서는 이 정도면 되겠지. 메구미는 영차 하고 코토하의 무릎 위에서 일어났다. 구겨진 옷을 정리하려 자기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고 있던 손마저 내려버렸다. 아리사는 신속하게 메구미에게서 카메라를 받아왔다. 그 사이 코토하는 메구미의 허리춤과 엉덩이를 탈탈 털어주며 옷정리를 도와주었다. 아리사는 이 때를 놓지지 않았다.


 "여러분!! 보십시요! 코토하쨩이 메구미쨩의 엉덩이를 털어주며 옷 매무새를 정리해주는 이 모습. 하와와. 이것이야말로 바로 진정한 아이돌 커뮤니케이션인거에요!"


 "뭐라는거니, 정말!"


 "콭...! 아팟!"


 짝-! 살짝 노기가 든 목소리와 함께 털어주던 손에 힘이 들어간 코토하는 졸지에 메구미의 엉덩이를 한 대 내려쳐버렸다. 메구미는 반사적으로 맞은 부위를 감쌌다. 당황한 코토하는 아리사가 여전히 자신들을 화면에 잡고 있는 것을 보곤 허공에 손만 붕 띄운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채팅창이 웃음으로 가득했다.


 "아리사의 데이터에도 저장하지 못한 장면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게 되었어요! 수확입니다! 무흐흐. 무흐흐흐!"


 "아리사씨. 지금 완전 그 악당같았어요."


 미라이는 완전 구경모드였다. 아픔에서 회복한 메구미가 그 새 복귀해 쉴새없이 올라가는 채팅들 중 몇 가지를 읽었다.


 "미라이. 지금 여기에 '그저 오답풀이를 하고 싶었던 미라이!'같은 채팅이 엄청 올라갔다 사라져."


 "데헤헷. 그렇게 보여졌던 걸가요?"


 미라이가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뭐야. 사실이었던거야?"


 "네에에 아, 그. 그럴리가요. 참으로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어... 팬 여러분. 즐거우셨죠?"


 미라이가 손을 둥글게 말아 마치 마이크로 호응을 유도하듯 화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오오오. 지금 네! 라는 대답들이 미친듯이 올라가고 있어요."


 "그럼 대기실은 이쯤할까. 코토하. 미라이. 고마웠어!"


 "아니야. 재밌었어. 두 사람 다 수고해."


 "코토하. 지금 채팅에서 '코토하쨩 영혼 완전 날아가버린듯'이래."


 "그... 러려나?"


 코토하는 초점 없는 동공으로 손바닥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손을 제 옆머리 위에 올려 마치 떠나가는 영혼을 잡아 쥐는 행동을 취했다. 뜬금없는 행동에 세 사람은 기습당한 듯 웃어버렸다. 그 와중에 코토하는 웃지도 않고 영혼을 잡은 채 망부석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진짜 저건 지쳤다는 표현일거야. 자, 그럼 이번엔 급탕실로 가보자! 다음으로 향할 곳을 힘차게 외치며 메구미와 아리사는 코토하와 미라이에게 안녕을 고했다.


 "코토하. 막판엔 정말 넋이 나가보였지."


 "그 모습. 아리사의 개인 카메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이거 영상을 저장하면 되지 않을까?"


 "그것도 좋지요. 아리사는 팬 여러분들과 함께 아이돌쨩들의 이면을 공유하는 것도 참으로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코토하와 미라이와의 짧은 만남이 그래도 도움이 된 모양인지 두 사람은 아까 전보다는 여유있게 생방송에 적응해갔다. 그렇게 서로 짧은 수다를 떨며 급탕실 앞에 도착했다. 똑똑똑-. 메구미는 가벼이 노크한 후 문을 열었다.


 "...... 메구미씨?"


 식탁에 앉아 컵라멘을 먹고 있던 시즈카가 메구미를 반겼다. 메구미는 의미심장한 미소로 시즈카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시이-즈으... 카앗!"


 "메, 메구미씨?"


 "시청자 여러분! 특종입니다! 특종! 그 시즈카쨩이 우동이 아닌 무려 컵라멘을 먹고있어요!!"


 메구미의 뒤에서 툭 튀어나온 아리사가 시즈카의 얼굴과 시즈카가 먹고 있던 컵라멘을 열심히 촬영했다. 꺅. 뭔가요. 당황한 시즈카는 자기도 모르게 먹고 있던 컵라멘의 뚜껑을 황급히 닫고는 양 손으로 가려버렸다.


 "시즈카쨩. 이 채팅. 채팅들을 보세요. 우동을 배반한 시즈카쨩에 대한 원망이!!"


 아리사는 화면을 시즈카의 눈 앞으로 들이댔다. 채팅은 커녕 갑자기 자신의 눈이 커다랗게 클로즈업 된 모습에 더 놀라 경기를 일으키며 화면을 피했다.


 "저기저기. 아리사. 이 스마트폰은 촬영기기이기도 하다고?"


 메구미가 큭큭 웃으며 아리사에게 말했다.


 "아아. 아리사. 망각해버렸어요."


 그제야 화면이 적당한 거리를 찾았다. 시즈카는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듯 크게 심호흡했다. 여전히 화면에 비춰지는 자신을 마주하진 않은 채 이게 대체 뭔가요를 연발했다.


 "아아 시즈카. 인사해. 지금 우리는 시어터의 이모저모를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있어."


 "새, 생방송이라고요? 메구미씨. 이건 너무 갑작스럽다고요. 밥 먹고 있는데."


 "그걸 팬 여러분들은 궁금해하는거예요! 아이돌쨩이 뭘 먹을까.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쨩과 음식 궁합이 맞을 때의 그 반가움!"


 "그래도 조금의 언질이라도 있었어야죠."


 "시즈카. 그러다 면 불어버린다?"


 "하지만 촬영중이라면서요?"


 "시어터의 자유로운 모습을 찍는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먹어주면 돼."


 메구미의 말에 시즈카는 반신반의하며 웅크렸던 몸을 폈다.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채 화면과 메구미와 아리사를 번갈아 쳐다보며 다시 컵라멘 뚜껑을 열었다.


 "자. 여러분. 이제 곧 시즈카쨩이 한 젓가락 떠 먹을거예요. 이 보기 드문 모습을 놓치지 말아주세요."


 아리사는 셀카봉의 각도를 철저히 시즈카 위주로 잡았다. 시즈카는 화면 가득 자신이 먹는 모습을 마주하며 면 한가닥을 집어 호로록 삼켰다. 그리곤 메구미를 쳐다봤다. 메구미는 신경 쓰지 말라는 제스쳐를 보냈다. 다시 한 번 면을 집어 호로록 마셨다.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기계처럼 면발을 빨아들이고 턱을 움직여 씹고는 삼키길 반복했다. 행위를 반복하다 화면 속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커헉. 콜록콜록. 시즈카는 입을 꽉 막곤 고통스럽게 기침했다.  


 "시즈카, 여기 물!"

 

 "아아아. 이런 NG장면을 송출할 수 없어요! 잠깐, 아리사 타임입니다!!"


 아리사가 화면을 자신에게 돌려 한 손으로 열심히 알 수 없는 포즈를 취하는 동안 메구미에게 물을 받아든 시즈카는 몇 번을 더 콜록거린 후에야 진정할 수 있었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진정됐나요? 시즈카쨩? 아리사의 물음에 시즈카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못 말려 정말.


 "다 먹었다치고, 이제 소통의 시간이야. 자."


 메구미는 시즈카 옆에 착석했다. 그 반대편으로 착석한 아리사는 각도를 조절해 세 사람이 한 앵글에 들어올 수 있도록했다. 메구미는 올라가는 채팅들을 주시했다.


 "지금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은 그거네. 시즈카씨, 왜 컵라멘을 드시고 있으셨나요? 우동이 아니라?"


 메구미는 젓가락 하나를 마이크처럼 잡고 시즈카의 입 쪽에 댔다. 아, 그건 말이죠. 시즈카는 동화되기로 했다. 피할 수 없다면 맞딱뜨릴 수 밖에.


 "누군가가 제가 먹으려 놔 뒀던 컵우동을 먹어버렸어요. 무려 유부우동이었다고요."


 "시즈카쨩. 그 우동, 오늘 산 건가요?"


 "네. 오늘 제가 직접 사 왔어요. 두 개 사왔거든요. 하나는 먼저 와 있던 미라이에게 줬고, 하나는 이제 레슨 끝난 후 먹으려고 급탕실에 놔 뒀죠. 근데 와서 보니까 없는거에요."


 "미라이가 생각보다 되게 빨리 와 있었나본데? 음... 혹시 코토하가 먹었나?"


 "코토하씨가 와 있어요?"


 "아, 몰랐어? 미라이랑 코토하 같이 있던데... 나랑 아리사는 여기 오자마자 방송 준비하느라 바빴고..."


 "메구미쨩. 채팅창에 질문이 올라오네요. 나오가 먹었을 확률은?"


 "어... 나오는 오늘 스케줄이 있어서 극장 안 올걸?"

 

 "카나 이름이 올라가는데요. '카나다 카나'라 하시는 분도 있어요."

 

 "카나쨩은 아리사가 잘 압니다. 오늘 오후에 쁘띠슈를 사가지고 온댔어요!"


 삽시간에 '시즈카의 우동은 과연 누가 먹었을까'에 대한 추리 대론이 벌어졌다. 갖은 멤버들의 이름들이 튀어나오는 와중에 이 흐름을 바꿀 이름 하나가 묵직하게 튀어나왔다. 근데 그거 혹시 타카네 라멘 아니야?

 

 "타카네씨.....?"


 시즈카의 혼잣말과 함께 세 사람은 컵라멘에 시선을 집중했다. 시즈카는 급히 뚜껑을 다시 덮어서 그 브랜드 이름을 확인했다. '라멘 니지로 특별 협업!' 브랜드까지 볼 것 없이 포장지에 강조되어 있는 문구가 심상치않았다.


 "......이게 왜 여깄죠?"


 시즈카는 캐치 프레이즈같은 그 문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특별 협업이라면 분명 한정판 라멘이겠.....지?"


 메구미가 한 쪽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세 사람의 정적이 길어졌다. 채팅창이 미친듯이 혼잡해지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채팅마다 기본으로 'ㅋㅋㅋㅋㅋㅋㅋ'을 장착하고 있었다. 시즈카가 혼란한 표정으로 화면에 올라가는 채팅을 응시했다.


 ".......시즈카쨩. 타카네씨라면 분명 생방을 보고 있지 않을겁니다. 그리고 설마 보고 계시더라도 선배의 아량! 안 그래요? 메구미쨩?"


 "으..으응!! 그렇지! 그리고 사정이 있었잖아? 일종의 등가교환인거지?"


 동의를 구하듯 메구미는 찍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얼굴을 들이 밀었다. 허나 애통하게도 채팅창의 세상에서는 아리사와 메구미의 수습이 통하지 않았다. 홀린 듯 채팅창을 쳐다보던 메구미가 웃음을 못참고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


 "여기 봐. 비보. 타카네 한정 라멘. 시즈카에게서 장렬히 전사."


 "메구미씨! 그런 걸 읽으시면 제 입장이..."


 "정보. 니지로 협업 한정 라멘. 더 이상 시중에 판매되지 않아."


 "네에? 그거 정말 큰일인거잖아요!"


 아리사의 덧붙임에 시즈카의 좌불안석은 가속화되었다. 얼마 먹지도 않은 라멘이 체한다. 아아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것을.


 "시즈카쨩. 못 보셨어요?"


 "그걸 보고 먹는 사람이 어딨어요. 제가 사놓은 게 없는데 뭘 먹긴 먹어야 겠으니까 찬장을 뒤지고 이게 하나 나오길래 라멘이구나 하고 먹은건데 이 라멘이 그런 라멘이었으면 손을 안 댔을텐데. 한정판이면 좀 더 한정판스러웠어야죠? 안 그래요? 메구미씨? 아리사씨?"


 ".......무슨 소란인거야?"


 한창 억울함을 가득 담아 변명 아닌 변명을 토로하던 시즈카의 귀로, 살짝 성질을 긁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즈카 뿐 아니라 메구미와 아리사도 목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급탕실 안으로 들어온 이는 시호와 세리카였다.


 "안녕하세요? 촬영중이신가요?"


 세리카가 해맑게 스마트폰의 화면으로 얼굴을 드밀었다. 자신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뜨는걸 보곤 사뭇 놀랐으나, 금세 활짝 웃으며 화면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시호씨! 시호씨도 인사해주세요! 세리카의 권유에 얼떨결에 시호도 손을 흔들었다.


 "뭔가요. 이건?"


 "꺄옷! 시청자 여러분! 시호쨩과 세리카쨩입니다!"


 아리사는 전력을 다해 총 다섯명의 인원을 프레임 안에 잡았다.


 "생방송인가요?"


 "아! 그래. 시호. 연습 중에 잠깐 나갔었지. 그 때 뭐했어?"


 시즈카는 다급하게 시호에게 다가가 따지듯 물었다. 시호는 훅 다가온 시즈카에게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무슨 얘기야."


 "여기 왔었어? 안 왔었어?"


 ".......왔었는데."


 "잠깐! 잠깐! 시호. 급탕실에 왔었다고?"


 어쩐지 돌아가는 상황이 미묘했다. 메구미는 일단 일어나 두 사람에게 향했다. 아리사도 시호와 시즈카를 집중적으로 화면에 잡았다. 시호는 갑자기 자신에게 쏟아지는 집중에 당황해 상황을 경계했다.  


 "시즈카는 그렇다치고. 메구미씨. 아리사씨는 왜..."


 "지금 제일 중요한 사항인거예요! 시호쨩! 예스 오어 노로 대답해주세요!!"


 아리사는 시호의 옆으로 낑겨들어갔다. 아리사가 촬영하고 있는 화면에 가득한 자신의 원샷. 그 옆으로 정신없이 올라가는 알 수 없는 채팅들. 시호는 도저히 이 상황이 적응되지 않았다. 거기다 옆에선 예스 오어 노라고 대답을 강요한다. 얼른 대답하고 사라져야겠다. 시호는 그 짧은 사이에 그렇게 판단했다.


 "시즈카쨩이 사온 우동. 시호쨩이 먹은건가요?"


 "네. 제가 그랬....... 네?"


 "역시 시호!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아니, 잠깐만. 뭘 먹어요?"


 "같이 연습하고 있었는데 먹으려면 나한테 말이라고 해 주고 먹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남의 우동을 빼앗아 먹고 그렇게 태연자약하게 레슨을 같이 할 수......."


 "잠깐. 시즈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여러분 보셨죠? 우동. 시호가 먹었어요. 이 모든 인과 관계의 시작은 바로 시호가 제 우동을 먹은 탓이라고요."


 아, 이거 또 난감한 그림이다. 곤란한 웃음을 지으며 메구미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꺄아!! 시호와 시즈카쨩의 특종이에여!! 외치며 이 상황을 아낌없이 생중계하며 프로 의식을 거두지 않는 아리사와 남들이 보기에 '그깟' 우동일 수 있는 상황에 실랑이를 멈추지 않는 시즈카와 시호. 그리고 세리카. 세리카? 메구미는 세리카를 유심히 봤다. 어째, 불안해하는게 느낌이 이상하다. 메구미는 슬그머니 화면 뒤로 빠져 세리카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저기. 세리카."


 ".......메구미씨!"


 흔들리는 눈망울이 불길하다. 세리카는 천성이 착한 아이였다. 만약. 만약에 세리카가 이 사태의 주범이라면 분명 여기서 양심 고백이 터지겠지. 그럼 어떻게 수습해야하지? 상황들이 생각을 뒤범벅으로 만들어 도저히 어떻게 이어야 부드럽게 넘어갈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우와. 모르겠다고. 정말.


 "저기! 시즈카씨! 그 우동...... 제가 먹었어요! 시호씨는 제가 먹고 있는 우동을 한 젓가락 먹은 것 밖에 잘못이 없어요!"


 이윽고 터져버렸다. 한참 시호에게 잘잘못을 따지던 시즈카는 세리카가 던진 본의 아닌 카운터에 머리에 징을 맞은 듯 댕-. 멈춰버렸다. 시호는 한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리사의 스마트폰도 갈피를 잡지 못해 프레임 안에 인원들이 어정쩡하게 들어와있었다.


 ".......자! 여기서 이렇게. 급탕실에 있던 시즈카의 단 하나남은 우동은 어디로 갔을까. 해결이 됐네!"


 일단 프레임 안으로 메구미는 급하게 들어왔다. 짧은 단편 드라마 하나 보셨습니다. 우와. 역시. 아이돌들의 일상은 말이야. 매번 하루하루가 버라이어티하다니까. 그래서 버라이어티에 섭외가 잘 되는지도? 냐하하. 안 그래? 아리사?


 "메구미씨! 이렇게 마무리 해버리면 제가 너무 이상해지잖아요?"


 시즈카가 다급하게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야. 어쨌든 시호가 한 젓가락을 먹긴 먹었잖아?"


 "메구미씨? 그건 또 무슨 말이신거죠?"


 시호가 시즈카 반대편의 방향을 통해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세 사람을 잡기 위해 아리사가 각도를 조절했다. 아리사의 정수리가 빼꼼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저기. 시호씨. 시즈카씨. 그건 제 잘못......."


 우물쭈물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토로하는 세리카가 슬그머니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이 상황들이 안쓰러워보였는지 채팅창에 여러 수습 방법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라멘을 그대로 덮고 다시 찬장위에 올려놓으라는 방법부터 잘못한 게 없어도 잘못한 게 있으니까 잘못을 고하라는 알 수 없는 방법. 팝콘각을 외치며 파이어를 외치는 방관꾼까지.


 "일단 말이야. 서로의 오해 풀어야 하잖아? 세리카. 시즈카에게 미안하다고 하는거야."


 메구미는 마치 판사처럼 가운데에서 중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저... 시즈카씨. 너무 배가 고파서 시즈카씨가 사온 우동인 줄 모르고 먹었어요. 죄송해요."


 "아니야. 세리카. 그럴 수 있어."


 "저기, 시즈카? 내가 먹었다고 오해했을 땐 그런 말투가 아니었잖아?"


 "시호. 진정해. 일단 시호도 시즈카에게 한 입 먹은거에 대해서 사과."


 "메구미씨."


 "지금 채팅창에선 이 상황을 마무리지을 최악의 방법으로 단체 도게자라는게 있어."


 ".......시즈카. 세리카를 말리지 않고 한 입 먹은거..... 미.....미안."


 "자, 이제 시즈카가 시호에게 사과."


 "메구미씨!"


 "다시 한 번. 채팅창에서 최악의 방법으로"


 "시호. 미안. 난 당연히 네가 먹은 줄 알고..."


 "그리고 시즈카. 시호. 세리카. 타카네씨 영상편지로 사과 한 번."


 "......타카네씨요?"


 타카네의 라멘에 대해 세리카와 시호 두 사람이 영문을 알 리 없었다. 하지만 상황을 설명해 줄 겨를이 없었다. 메구미는 프레임에서 빠져나오고, 아리사도 세 사람만을 화면에 담았다.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시호와 잔뜩 죄책감에 위축된 세리카 사이로 시즈카가 어중간하게 고개를 숙였다.


 "타카네씨. 타카네씨의 한정 컵라멘을 제가 먹어버린것에 대하여..... 사과드립니다."


 "한정 컵라멘?"


 시호와 세라카가 입을 맞춘 듯 동시에 물었다.


 "이 무슨 가슴 아픈 나비효과일까요. 시즈카쨩이 우동을 사오지 않았더라면. 우동을 미리 먹었더라면. 그 우동을 세리카쨩이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시호쨩이 한 입 먹지 않았더라면. 타카네쨩의 라멘은 무사했을거예요."


 흑흑거리며 상황을 정리한 아리사의 말에 두 사람은 사과의 과정들이 어쩌다 여기에까지 도달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게 뭐야. 으흐흐흐흫. 메구미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 허탈웃음을 터트렸다. 코토하가 왜 뜬금없이 자기 영혼을 잡아 쥐었는지 알 것 같았다.


 "타카네씨. 죄송합니다."


 타카네에게 닿을지, 닿지 않을지도 모를 사과를 하며 세 사람이 손붙잡고 머리를 숙이는 모습이 전파를 타는 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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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아까의 상황은 우연의 우연이 겹쳐서 대본이 있다 해도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오늘의 극장은 참으로 스펙타클하네요!"


 "지금 얼마나 남았으려나?"


 "한 25분 정도 됐어요. 메구미쨩."


 기분으로는 30분은 훨씬 넘은 것 같았다. 일단 사무실로 향하는 동안 화면과 채팅창을 온전히 아리사에게 맡긴 메구미는 생각을 정리했다. 프로듀서는 방송 시간을 30분 전후로 잡았다고 했었다. 시간 제약이 없더라도 30분이라는 가이드라인이 있다는 것은 그걸 넘기지 않는 게 좋다는거겠지. 대기실과 급탕실에서 총 5명의 멤버를 만나는동안 25분이나 썼다는 건, 다음에 한 명의 멤버를 만나더라도 긴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일단 사무실을 마지막으로 방송을 정리하는게 좋을 것 같다. 사무실에 부디 소수의 인원만 있기를. 아리사와 함께 둘, 셋. 문을 열었다. 메구미의 소박한 염원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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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게 뭔가요. 언질도 없이 촬영을 하신다는 건 저의 촬영 밖 행적을 배포하셔서 곤란하게 하겠다는......."


 "아니예요. 츠무기쨩! 그럴 리 만무하잖아요!"


 "아, 아니면 아이돌이라면 당연히 거쳐가야하는 신고식인건가요? 역시 아이돌이란 이런 무례한 테스트를 거쳐야만 하는.....!"


 "아니야. 츠무기. 정말로 그거 아니라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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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쨘. 트럼프 마술입니다. 제가 들고 있는 하트7 카드가 채팅창에 '하트7'이라 적인 채팅과 정확히 일치를......!"


 "미즈키. 솔직히 그건 좀 때려 맞춘 거 아니려나...? 냐하하......"


 "세상에. 역시 토코로씨입니다."


 "꺄아아앗! 미즈키쨩의 우연을 가장한 마술!! 아리사와 시청자가 함께 공유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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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타카야마 사요코. 채팅창의 모든 분들이 만족할 때 까지 웃겨볼게요."


 "아니야. 사요코. 웃기기 위한 촬영이 아니라니까?"


 "미국에서 비가 내리면 뭔지 아세요?"


 "뭔가요? 사요코쨩!! 아리사. 궁금합니다!"


 "USB예요! 어때요? 이거, 버라이어티를 대비하기 위해 습득한 유머입니다!"


 "......사요코. 실망이야."


"....풋...푸흐흣."


 "치하야? 언제 있었던거야?"


 "히야야아! 오늘 정말 아리사. 쉽게 얻을 수 없는 많은 장면들을 겟하고 있어여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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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구미! 코브라 트위스트 한 방!!"


 "으아아악. 노리코. 아파. 아프다고오!"


 "아리사에게도 기술 하나 걸어줄까?"


 "하아아아. 아리사는 보는 것 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충분해요! 충분하다구요오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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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더이상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 사무실에 그렇게 멤버들이 포진해 있을 줄 몰랐지. 하필 들이닥쳤을 때가 스케줄을 확인할 타이밍였을 줄이야. 더 많은 멤버들이 있었지만 시간상으로 무리였다. 메구미는 카메라 밖에서 차마 촬영을 하지 못한 멤버들에게 일단 양손을 합장한채 여러번 흔들며 사과의 메시지를 보냈다. 사무실 구석의 벽을 등지고 선 두 사람은 카메라를 뻗어 화면 안에 본인들이 들어오게 각도를 잡았다. 더 보여달라고 복작이는 채팅창은 그나마 재미있게들 시청했구나 판단할 수 있는 척도였다.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았을텐데..... 일단 이정도로밖에 보여줄 수가 없어서 미안. 그래도, 재밌었지?"


 메구미는 귀에 손을 가져다대며 호응을 듣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가며 다양한 대답들을 냈다. 언뜻 보이는 대답들로는 긍정적인 것 같다.


 "아....이렇게. 시어터를 보여주는..... 우리 이거 방송 제목이 뭐였더라?"


 "765프로 깜짝 리포트! 업텐션! 시어터 파리 타임! 입니다!"


 "응. 그. 업텐션 시어터 파리 타임! 내가 같이 진행하면서 말이야. 아리사가 굉장히 사리사욕을 채우는 느낌이 강했거든?"


 "메구미쨩. 오해입니다. 아리사는 정말로 열심히 시청자 여러분들께 시어터의 이모저모를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알아주세요! 하지만, 아리사, 아리사적으로도 만족했습니다."


 "냐하하. 뭐야. 결국 채우긴 했다는거잖아."


 "반은 채웠다고 치죠! 메구미쨩은 어땠나요?"


 방송 시작 때 부터 지금까지의 장면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으음. 뭔가 방송에 나갈만한걸로 잘 채웠나 모르겠다. 만약 이게 녹화분이었다면 거짐 1시간을 채워 찍은 것 중에 5분은 내보낼 수 있을까? 갑자기, 자괴감이 밀려왔다. 내가 잘 조율했어야 했는데. 코토하랑 미라이를 찍은 것도 별로 기억에 남는게 없고, 급탕실에서의 일도 사과로 마무리 짓는게 아니라 더 재밌게 마무리 지었을 수도 있었을거다. 아리사는 자신의 신념 하에 열정적으로 임했는데. 나는?


 "......끄흑."


 ".......메구미쨩?"


 "으앙. 내가. 좀. 더. 히끽. 잘 할 수 있었을텐데."


 "메구미쨔앙?"


 아리사는 급한대로 한 손으로 메구미를 품에 안았다. 당황하기로는 화면 안 채팅창도, 화면 밖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한 손으로 들고있는 셀카봉이 점점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급하게 셀카봉을 건네받은 인물은 사요코였다. 최대한 자기 자신이 안 나오고 두 사람만 화면 안에 등장하도록 자리를 잡았다. 무릎을 꿇고 셀카봉을 잡고 있는 두 손을 위로 쳐 든, 누가 보면 벌 받는 거 아닐까 싶은 자세였다. 그 자세 뒤로 메구미는 훌쩍이고 아리사는 토닥인다. 저게 대체 뭐람. 그렇다고 여기서 웃을 순 없으니까 각자가 각자의 방법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예 외면해버리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멤버도 있었다.


 "진짜. 첫 스타트를 잘 끊었어야 했는데 말이야."


 "메구미쨩은 충분히 노력했어요. 보세요. 채팅창. 메구미쨩 힘냈어. 잘했어. 온갖 칭찬들밖에 올라오지 않잖아요?"


 "흐아앙. 그래도. 뭔가. 이게. 왜 내가 이 진행을 맡았던걸까아."


 "메구미쨩. 이 아리사가 보증합니다. 오늘 메구미쨩 없었으면 큰일날 뻔한 일들이 있었잖아요? 정말. 오늘 최고의 아이돌 중재자였습니다!"


 "끄흑."


 "저기...... 그...... 진정됐으면......."


 셀카봉 위 카메라가 부들부들떨린다. 아리사도, 메구미도 그제야 자신들이 카메라를 들고 있지 않다는 걸 인지했다. 정면을 쳐다보자 참으로 가관인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참을 무릎꿇은 채 셀카봉을 받들고있던 사요코가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사요코. 끄흑. 뭐하는거야?"


 "뭐하긴! 두 사람의 신파를 열심히 찍어주고 있었는데."


 메구미가 사요코가 들고 있던 셀카봉을 건네받으려 다가왔다. 사요코는 그제야 불편했던 자세에서 일어나기 위해 끙차-. 다리를 폈다. 한 쪽 무릎을 펴고 일어나려던 사요코가 비틀거렸다. 어엇? 위험한데 이거. 아리사도 위험을 감지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깨우쳤을 땐, 상황이 벌어진 이후다. 어떻게든 몸을 가누려 애쓰던 사요코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사무실의 모든 이들이 사무실의 바닥과 셀카봉, 스마트폰이 일체화되어 찰싹 달라붙는 광경을 그대로 목격해버렸다.


 "........폰 꺼졌다."


 고개를 확 들어올린 사요코가 급하게 자신의 몸보다 스마트폰의 생사를 확인했다. 액정이 잔뜩 금간 채, 생을 마감해버렸다. 그 잔재를 모두가 넋을 잃은 채 바라봤다.


 ".......아리사. 아이돌쨩의 이런 마무리. 어떻게 생각해?"


 ".......아리사도 모르겠어요."


 아아아아아. 그래 그래. 그 아이돌 최고의 덕후도 이런 마무리가 익숙치 않다는 건, 엄청난 사고를 쳤다는거겠지. 아마 765프로 사상 최고의 마무리가 되지 않았을까. 미즈키가 이 분위기를 어떻게든 환기시키기 위해 '쨔안-.' 입으로 낸 효과음과 함께 마술의 마무리 포즈를 짓지 않았다면 정적은 분명 엄청 길어졌을 것이다.


*


 엄청난 마무리와 함께 끝맺음을 한 765프로의 최초 스트리밍 생방송은 그 대책 없던 종결때문에 그 날 온갖 포털 사이트와 SNS에서 이슈가 되었다. 한참 그럭저럭 재밌게 생방송을 이끌어 오던 진행자들이 막판에 갑자기 훌쩍이다가, 카메라가 쓰러지면서 인사도 없이 끝나버린 장면은 클립으로 떠돌아다니며 예상 못한 조회수를 이끌어낼 정도였다. 작게는 크레센도블루 3/5 멤버들의 사과 장면도 소소한 이슈였고 한 번도 화면에 등장한 적 없는 타카네는 그 한정판 컵라멘때문에 컵라멘과 함께 타임라인에 오르내리기도했다.


 "농담이 아니라 프로듀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자신만의 특제 음료수를 만들어 온 메구미가 음료를 빨대로 한 번 쭉 빨곤 입을 열었다.


 "정말 예능계는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인 것 같아."


 "어떤 부분에서?"


 프로듀서는 콜라 한 모금을 쭉 마시곤 물었다. 메구미 옆의 아리사는 스마트폰으로 어제의 방송을 아직도 열심히 모니터하고 있었다.


 "어제 방송은 정말 망했다고 생각했거든. 사요코한테도 엄---청. 미안했어. 근데 결과적으로 그게 호응이 좋다니까."


 "뭐, 메구미로서는 다행이지 않니?"


 "...... 그렇게 꿰뚫듯이 말하지 말라구. 어젠 정말 난 나대로 심각했으니까."


 "무흐흐. 무흐흐흐."


 프로듀서와 메구미의 대화에 아랑곳않고, 아리사는 영상을 보면서 특유의 웃음소리를 냈다. 메구미는 슬쩍 아리사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끄흑.'


 '.......메구미쨩?'


 '으앙. 내가. 좀. 더. 히끽. 잘 할 수 있었을텐데.'


 "으아아아. 아리사 정말. 이거 왜 자꾸 보는거야아!"


 메구미는 아리사가 보고있는 스마트폰의 액정 위로 손을 마구 흔들어대며 시청을 방해했다.


 "하지만 방송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메구미쨩의 우는 모습이라고요? 아마 팬 여러분들도 이 장면, 메구미쨩때문에 더 보시는걸거예요."


 "정말.... 계속 그러면 내가 너무 창피하잖아."


 메구미가 양 손으로 제 볼을 감싸쥐었다. 저 흑역사가 당분간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닐 생각을 하니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나저나 타카네 그 라멘은 정말 타카네가 사 놨던거래?"


 프로듀서의 물음에 메구미는 양 어깨를 위로 올렸다 내렸다. 그리고 도리도리.


 "솔직히 잘 모르겠단말야."


 "뭐, 타카네도 소식을 들었을테니까. 어제 인터넷이 좀 시끌했으니까 알 수도 있으려나."


 "어제 저녁에 시즈카쨩, 시호쨩, 세리카쨩이 함께 편의점에 가는 걸 봤어요!"


 모니터링을 끝낸 모양이었다. 아리사가 두 사람은 몰랐던 정보를 투척했다.


 "편의점에? 그거 한정판이라면 편의점에 안 팔거아니야."


 "그래도 뭐라도 사 놓고 용서를 구한다면 타카네씨도 충분히 아량을 배풀어주시지 않을까요? 또 하나의 따뜻한 선후배의 스토리가 나오는 것이지요."


 "냐하하. 뭔가 상상되는걸. 아무튼 프로듀서. 이러나 저러나, 재밌었어."


 "아리사도. 아리사도 정말 재밌었습니다!"


 "어제 마무리도 그렇게 끝나서 좀 마음 쓰는 건 아닐까 싶어서 여기 데려왔던건데 그럴 필요 없었나봐."


 "솔직히 어제 둘이서 진행하는 거 좀 힘들긴 했으니까, 이런 보상 정도는 받아도 된달까......"


 메구미는 아리사를 향해 동의의 눈빛을 보냈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꼭! 아리사를 채택해주세요!! 메구미쨩도 같이 말이죠!!"


 "아니야. 나보단 더 잘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을거야."


 메구미는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아리사는 확신했습니다. 이 방송이 정말 레귤러가 된다면, 메구미쨩과 아리사는 최고의 콤비가 될거라구욧!"


 ""냐하하. 그렇게 봐줬다면 좋긴한데.....으음."


 자칫 또 다른 흑역사를 만들까봐 불안하단 말이지. 메구미는 잔뜩 들떠있는 아리사 앞에서 마지막 말은 속으로만 외쳤다. 아마 그 데미지가 사그라지려면 좀 걸릴 것 같달까.


 


 

- B side.


 저기, 타카네씨. 그... 라멘이에요. 그 한정판 라멘은 정말 한정판이었는지 도저히 구할 수 없어서. 편의점에 있는 라멘 하나씩 싹 사온건데...


 세상에. 모가미 시즈카. 이게 다 뭐란 말인가요?


 어제 방송 안 보셨으려나요? 타카네씨의 한정판 라멘을 제가 먹어버리는 바람에.......


 한정판 라아멘이라 함은...... 아앗!


 아아. 역시. 타카네씨. 많이 화나신건가요?


 괜찮으셨나요?


 네? 라멘의 맛을 말씀하시는거라면 차마 다 먹지 못 한..... 아아 이렇게 말해도 안 되려나요?


 그 라멘. 유통기한이 분명 한참 지났을텐데요.


 ........유통기한.....이요?


 니지로 특급 생면이 들어간 라멘이라 유통기한이 짧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짜, 짧아요?


 처리한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맛이 정말 괜찮았나요?


 ........아아아아아악. 내가 정말 못살아. 아니 이건 타카네씨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 그림 그려준 모 프로듀서분께 감사드려요

- V앱이나 인스타라이브 같은 걸 하는 시어터 아이도루타치를 보고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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