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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메이트

댓글: 9 / 조회: 1141 / 추천: 5



본문 - 04-26, 2018 04:30에 작성됨.

-일러두기 -

1.  (이 글의 일부 이미지는 공식 이미지를 흥미 위주로 합성한 것입니다.

작성자는 이에 대한 어떠한 권리 주장이나 상업적 이용을 할 의도가 없으며

문제시 즉시 삭제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절대 공식 일러스트가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2.  (이 글에는 캐릭터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자의적인 해석을  불쾌하게 생각하시는 분들께 미리 사과드립니다. ) 

3. 링크된 곡은 The Chamber Orchestra Of London 의 명곡 「The Suite(from Downton Abbey)」 입니다. 

   같이 감상하신다면.....어울릴까요? 


케임브리지 시절을 회고해본다면

지금은 고인이 되어버린 지루한 강의를 일삼던 시원찮은 교수들과

이제는 사회의 저명 인사들이 되어 점잔을 빼고 있는 철 없던 친구들과의 추억, 

수없이 실패한 재미 없는 연애담과 땡볕 아래에서의 크리켓 경기와 같이 

수 많은 이야기들이 떠오르지만,


모든 것이 밝혀진 지금에와서, 사람들이 내게

물어보는 건 모두 '그녀 이야기' 뿐이다.

코드네임 '아나스타샤'


내가 불렀던 그녀의 이름은 분명 다른 무언가였을테지만,

그것은 '가짜 신분'에 걸맞는 괜찮은 '가명'에 불과했다.

지금에 와서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그녀는

코드네임 '아나스타샤'로 불리고 있다.

어쩌면 그것마저도 '거짓 정보'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그녀와 처음 알게된 것은

어느 퇴역 장군의 가문에서 자선 사업을 빙자하여 개최한 

어느 사교 모임에서였다.

나른한 오후까지 이어지는 늘어지는 따분한 이야기들.


책에서만 본 '오래된 전쟁'을 겪은 노인네들의 오래된 무용담이

벽에 걸린 빛바랜 훈장만큼이나 닳고 닳도록 이어지는 가운데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도 없는, 나는 무척이나 무료했었다.

  

 대체 아버지 상사분의 정계 진출 후원을 왜 내가 도와야하는 건지,

해군 장성이신 아버지의 얼굴을 봐서 억지로 참석하긴 했지만,

쌉싸름한 홍차는 진작에 식어버렸고, 말라버린 스콘은 푸석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친구들 따라 펍(Pub)이나 가는 건데,

맞지도 않는 수트를 입고서 점잖은 체 하는 건 고역이었다.

인내심이 바닥날 무렵, 나는 그녀를 발견하였다.

아니, 지금에 와서는 그녀가 의도적으로 내게 '접근' 한 것이겠지만.


그때 내가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걸었는지,

그녀가 내게 먼저 인사를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녀의...바이칼과 같은 깊고 푸른 눈동자에

매료되어 버렸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코드네임 '아나스타샤'

아버지는 현재 정계의 고위 관료로 유명한 인물이었고,

그녀 역시 케임브리지에서 '천문학'을 전공하는 명석한 여학생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약간 어렸....던 것 같다. 아니 동갑이던가?

적어도 그녀가 내게 말한 정보들이 사실이라면 그러했다.


 맑고 순수한 그녀의 목소리와 신선한 표정은 마치 샴페인과 같이

답답했던 나의 갈증을 일소에 해결해주었다.


우린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때 내가 아무런 의심 없이 내뱉은 말들에 대한 그녀의 대답들이....

지금에 와서는 모두 진실인지 나도 확신이 서질 않는다.




다만 우리는 과거에 빠져 헤어나올 줄 모르는 노친네들을 뒤로 한 채

간단한 '체스 게임'을 했었다. 

시간을 보내기엔 머리 쓰는 게 제격이지.


나름 교내 사교 클럽에서도 '체스 마스터'로 이름을 날린

나였기에 나는 이 처음보는 소녀의 담대한 도전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체크메이트...."

그녀의 압승이었다.

무엇하나 부족함 없는 깔끔한 승리.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녀 특유의 플레이 스타일이자,

그녀의 실제 성격이기도 했다.


위장되지 않은....본연의 성격.

그녀는 그만큼 빈틈없이

나를 속였고,

나를 무너뜨렸다.


그녀와 사랑에 빠진 것은

일생 일대의 실수였다.

하지만 그토록 아름답고 순진해 보인 소녀를

사랑하지 않는 신사가 어디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도 그 점은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체스를 계기로 가까워진

그녀를 학교에서 몇 번 다시 마주치면서 

우리는 급격하게 가까워졌었다.


서로의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하여

몇 번 가든 파티나 티 파티를 열기도 하고


그녀의 부탁에 아버지의 서재에서 오래된 책들을 함께 열람하거나

그녀의 안내를 받아 그녀가 별을 관측하는 작은 다락방에도 같이 올라갔었다.

그때는 서로의 추억을 공유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이, 거짓말의 연속이었다.


날이 좋은 때면 바다에 나가 수영도 하는 등...

 누가 봐도 평범한 젊은 연인들의 일상이었을텐데...

그녀가 '스파이'만 아니었다면.



평온한 나날이 계속되던 것도 잠시,

아마 새로 개봉하는 로맨스 영화를 보러 가는 날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내게 갑작스레 작별을 고한 건.


약속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그녀가 걱정되어

그녀의 집 앞으로 갔을 때, 나는 뜻 밖의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영국 내의 모든 경찰을 다 불러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녀의 집은 엄청난 인력이 들이닥쳐 샅샅이 파헤쳐지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 날은 한 명의 영국 소녀가, 소비에트 연방의 시민으로

전향한 날이었다.

 우리 아버지의 서재에서 잔뜩 캐낸 해군 기밀 정보들을 가지고서.


그야말로 나라가 뒤집혔다.

피해를 입은 건 우리 집안 이외에도

유력한  정계, 재계 그리고 정보부 요인들이 허다했다.


그리고 집에서 발견된 수 많은 도청기들과 녹음 장치들....

별을 바라보던 천체 망원경은 사실 고성능 사진기인것으로 밝혀졌다.

그녀는 나의 모든 행동과 숨소리 마저 머나먼 저 얼어붙은 땅으로

송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류층의 자제라는 이점을 십분 활용한 배경과

저 품격있는 미소와 친절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기에

담대하고 자유롭게 그녀는 온갖 정보들을 캐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념의 조국, 소비에트 연방을 위하여.


처음 그녀가 나에게 체스를 이기고 한 말은

"속여서 미안해요. 실은 저 유소년 체스 챔피언이었어요." 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이유나 변명도 없었다. 미안하다는 그 말도 들을 수 없었다.

물론 다시 만난다면 이제는 영어가 아니라 '소련어'로 듣게 되겠지만

그러나 모든 것이 밝혀진 자리에 진실은 없었다. 


소련으로 건너 간 그녀가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알기 위해

 나는 온갖 노력을 해보았지만 아직 서커스에서 소식이 없다.


오히려 소식을 물어다 주러 간 요원들이

모스크바나 동독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연락이 두절되는 일이 잦았다.


게다가 지금으로서는

수 년 넘게 그녀를 쫓는 나의 마음이

명령을 수행하며 조국인 영국을 지키기 위한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인지,

기밀 누설에 대한 충격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작고하신 아버지를 대신한 복수심인지,

아니면 그때의 만남과 마음이 모두 거짓은

아니었다는 헛된 믿음 때문인지 알 수 없다.


그녀는 여전히 나와의 체스 게임에서

몇 수 앞서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녀에게 멋지게

"체크메이트"라는 대사를 날려주고야 말것이다.

수 년 전 그녀가 내게 그러했듯.


동독의 체크포인트 찰리 부근에서 

사랑을 담아.

코드네임 '346'.


 

<이 기밀 해제된 낯간지러운 일기는 1968년 *월 *일, 동독의 슈타지에 의해 현장에서 

사살된 영국 MI6 소속, 어느 스파이의 소지품에서 회수된 것입니다.>


체크메이트 후기 / https://www.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alk&wr_id=1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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