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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의 어떤 하루 _ 후카, 타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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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4, 2018 23:08에 작성됨.

 맞바람이 경쾌하게 귓볼을 스쳐 지나가고, 그 일순간의 차가움을 따스한 햇살이 감싸주던 그 어느 날. 프로듀서는 간만이니 집에서 푹 쉴 수 있겠다는 말로 후카의 휴일을 축하해줬었다. 후카 역시 당장 오늘 침대에서 눈을 뜰 때 까지 같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턱을 괴고 밖을 바라보니, 날이 보는 것만으로도 포근해 집에만 있기가 아까웠다. 친구를 부를까. 스마트폰을 열어 주소록을 스르륵 살폈으나 누군가를 굳이 불러서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다. 몇 분의 짧은 고민 끝에 후카는 극장으로 향했다. 오늘 극장에 누가 출근하는지도 잘 모른다. 극장에 도착해서도 딱히 극장 안에 들어갈 생각도 없다. 그냥, 그 극장 근처의 공원을 거닐면서 우연히 아는 이를 만나면 우연히 반가워하고 싶었다. 

 꼬붕-! 어디가는거야---!

 극장에 도착하긴 했나보다. 익숙한 목소리가 멀찍이서 들려왔다. 극장 옆 강가에서 타마키와 고양이 한 마리가 폴짝폴짝 돌아다니고 있었다. 정적인 날씨에 알맞는 동적인 움직임들이 반가웠다. 커피 한 잔이 있었으면 좋았으려나. 후카는 자신의 옆에, 꼭 자기가 앉기 위해 마련되어 있는 것 마냥 자리한 벤치에 살포시 앉았다. 따뜻한 느낌보다는 약한, 다스한 느낌이라기엔 좀 강한 포근함. 조금 자세가 풀어진 후카는 주머니를 천천히 뒤적거렸다. 아, 있다. 꺼내든 건 이어폰이었다. 스마트폰에 연결했다. 랜덤으로 음악을 재생했다. 자신의 솔로곡이 흘러나왔다. 평소엔 자신이 부른 곡을 제3자마냥 듣는 것이 익숙치 않아 피해왔었다. 오늘은 딱히 그러고 싶지 않다. 보드라운 멜로디. 상냥한 목소리. 상냥한 목소리? 후훗-. 오늘만큼은 이런 자화자찬도 나쁘지 않겠지. 후카는 미소를 머금은 채 팔짱을 끼고 명랑하게 뛰놀고 있는 두 종의 생명들을 구경했다. 생명들이라 생각하니 좀 이상하다. 아무렴 어때. 후카는 한참을 멍하니 타마키와 꼬붕이 뛰노는 광경을 바라봤다. 유독 지나가는 사람도 없이 고요하다. 언뜻, 세상이 멈춰있고 저 둘만 움직이고 있는게 아닐까 싶은 몽상도 들었다. 꿈 속에 있는 것 같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

.

.

 얼마나 지난걸까. 푹 꺼진 고개를 들어올린 후카는 뻐근함에 인상을 찌푸렸다. 조금 더운 것도 같다.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목을 스트레칭하던 후카는 자신의 왼편에 푸근하게 느껴지는 무게에 시선을 돌렸다. 주황색의 머릿결이 시선 가득 들어왔다. 조금 더 고개를 숙여 얼굴을 살펴보았다.

 타마키쨩?

 눈을 감은 채 일정한 박자로 숨을 내쉬는 타마키에게서 느껴지는 온도는 살짝 뜨거웠다. 얘는 나를 언제 발견한걸까. 깨지 않게 조심히 움직이려니 뭔가가 스르르 무릎 위로 내려갔다. 들어 올려 보니 얇은 담요였다. 담요를 치우자 무릎 위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소록소록 잠들어있었다. 후카는 잠깐 잠든 사이 일어난 일을 유추해보았다. 잠든 나를 발견한 타마키가 어디선가 담요를 공수해왔고... 아, 극장에서 공수해왔겠구나. 아무튼 그 담요로 나를 덮어주었고, 꼬붕을 내 무릎 위에 얹혀주고, 자기 자신도 내 옆에 기대어 있던거려나....... 일련의 상황들이 차곡차곡 머릿속에 그려졌다. 

 "으음..... 아? "

 너무 기척을 냈던거려나. 잠들어있던 타마키가 꼼지락거리며 일어났다. 

 "타마키쨩, 잘 잤니?"

 후카는 소리 없이 빙긋 웃으며 물었다. 타마키는 말 없이 고개를 크게 두 번 끄덕였다. 눈을 비비적거리는 타마키를 보며 후카는 아이의 머리 전체를 훑듯 쓰다듬어주었다. 꼬붕도 잠에서 깬 모양인지 슬그머니 움직여 후카의 무릎 위에서 타마키의 무릎 위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 꼬붕을 타마키는 푹 껴안았다. 하늘이 오렌지색으로 물들고 있다. 아주 가끔은, 이런 하루의 마무리도 괜찮겠지. 오렌지 빛깔의 하루마저 점점 빛바래질 즈음에서야 후카는 타마키의 손을 잡고 극장으로 들어섰다.


*


 "꼬붕-. 거긴 안 돼-! 위험하다니까-!"

 공원의 모든 풀 밭이 제 발 안에 있는 양 뛰다니는 꼬붕을 통제하기 위해 그 두배의 힘으로 내달리던 타마키는 마침내 꼬붕의 양 몸을 포박한 채 잡아올렸다. 축 쳐진 꼬붕의 몸을 다시 한 번 아이를 안듯 안아올린 타마키는 꽤 멀리서 익숙한 인영이 앉아있는 걸 발견했다. 으응? 분명 우리 극장 사람같은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갈수록 그 익숙한 존재가 누군지 눈치챈 타마키는 잔뜩 반가워하기 위해 우다다다 달려갔다. 그러다가 끼이이익. 자체적으로 급제동을 걸었다. 턱끝까지 차올랐던 그 이름도 침과 함께 꿀꺽 삼켜 내렸다. 

 "꼬붕. 후카한테 인사하려고 했는데 후카가 자. 타마키, 인사하는게 좋을까?"

 꼬붕의 얼굴을 보며 타마키는 고민했다. 깨우고 싶은데, 너무 편안한 표정으로 곤히 자고 있으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타마키는 일단 꼬붕을 내려놓았다. 그러다 문득 후카를 올려보았다. 항상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본 얼굴이지만 오늘은 새삼 낯설었다. 눈을 꼭 감은 채 살짝 올라간 입꼬리로 잠에 취한 후카의 모습은 타마키에게  생경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풀썩. 모르게 그 앞에 주저 앉았다. 마찬가지로 몸을 말고 엎드린 꼬붕의 몸을 쓰다듬으며 타마키는 그 모습을 한참을 관찰했다. 움직임이라고는 숨을 쉴 때마다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상체 뿐이었다. 재미없는데, 보게된다. 그 모순같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타마키는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타마키--. 레슨 시간이야---.

 프로듀서의 목소리가 가득 울렸다. 타마키는 반사적으로 목을 돌리곤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을 여러번 터치했다. 프로듀서는 타마키 앞에서 졸고있는 후카를 발견하곤 살짝 갸웃거렸으나 이내 수긍하곤 손으로 이리 오라는 사인을 보냈다.

 "후카. 타마키, 잠깐 레슨갔다가 와야 하는데."

 당연하게도 대답이 없다.

 "음.... 후카를 혼자 놔둘 수 없어. 어쩌지. 아!"

 타마키는 꼬붕을 후카의 무릎 위에 조심스레 올렸다. 의도를 눈치챈걸까? 꼬붕은 그 앞에 얌전히 제 몸을 엎드렸다. 

 "이러면 후카도 외롭지 않을거야. 쿠후후. 후카. 타마키가 올 때 까지 꼬붕을 잘 돌봐줘야 해?"

 으으응. 잠꼬대인지 정말 타마키의 말에 답을 해 준건지 알 수 없었다. 타마키는 그 대꾸를 대답으로 들었다. 꼬붕을 한 번 쓰다듬곤, 극장으로 우다다다 달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침 프로듀서가 계단을 내려와 타마키를 맞이했다.

 "밖에 후카?"

 "응! 언제부터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있었어."

 "일단 있다는 건 알았으니까 상황 봐서 깨우거나 해야겠네. 이따 안으로 들여야지. 일단 타마키는 레슨가자."

 "응!..... 아니...... 우우."

 힘찬 대답 뒤로 타마키는 우물쭈물 망설였다.

 "타마키. 뭔가 마음에 걸리니?"

 "두목. 후카, 저렇게 있어도 될까?"

 "걱정되는거야? 그러고보니까 꼬붕이 없네."

 "꼬붕을 후카에게 맡겼어."

 "후카가 알겠다고 했어?"

 "으으응 하고 대답하긴 했어."

 "타마키는 어떻게 하고 싶어?"

 "으음......"

 "솔직하게 말해도 좋아."

 "타마키, 후카 옆에 있으면 안될까? 그..."

 두 손가락을 마주한 채로 말을 찾고 있었다. 프로듀서는 잠깐 고민했다. 오늘 타마키의 레슨은 일반적인 보컬 레슨이었다. 뭐, 하루쯤은 괜찮지 않을까. 아직 타마키는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어른의 허락으로 받아내고 싶어 할 나이였다. 

 "타마키가 하고싶은 대로 해도 좋아."

 "정말?! 두목! 고마워! 타마키, 다음 레슨 열심히 할게!"

 폴짝 뒤며 당장 밖으로 뛰쳐나갈 기세였던 타마키는 금세 몸을 돌려 대기실로 뛰쳐갔다. 빠른 속도로 두리번거리다 얇은 담요를 발견한 타마키는 양손에 들고 두다다 달려나갔다. 그리곤 그 담요를 후카의 어깨 앞으로 신중히 덮어주었다. 무릎 위의 꼬붕, 어깨 앞의 담요. 만족스러웠다. 쿠후후. 저도 모르게 나온 웃음에 후카가 들썩이자 주먹 쥔 손으로 합. 입을 막았다. 뭔가 부족한 거 같은데. 타마키는 유독 넓게 비어있는 후카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 상태로 후카를 올려보았다. 옆으로 쏠린 후카의 머리를 제 머리로 받쳤다. 안정적인 무게가 정수리에서부터 느껴졌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몸도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타마키는 몇 번 느리게 눈을 꿈뻑이다가, 새근새근. 잠에 빠져들었다.



후카, 타마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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