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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노세 시키와 함께한 이야기.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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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2, 2018 20:32에 작성됨.



이건 그저 꿈을 갖고 싶어하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다.





“아무것도 적지 않는구나 너는?”


‘진로희망조사서’ 라는 비합리적인 종이를 뚫어져라 바라본지 어언 5분. 고개를 숙이고 책상에게 사과를 하는 듯한 자세를 하고 있던 소년의 정수리에서 그런 장난스러운 어조의 말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거기엔 한 소녀가 장난스러운 어조에 맞는 장난스러운 표정. 비유하자면 장난을 좋아하는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특히 입부분) 소년의 앞에 앉아 소년의 책상에 팔꿈치를 올려 턱을 괴며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랄까.. 1초라도 빨리 소년을 가지고 놀고 싶다는 분위기. 호기심이 많은 고양이처럼 귀엽다면 귀여운 것이겠지만, 사냥감을 노리는 고양이 과의 특유의 본능이 보이는 것 같기도해 무섭기도 하다. 그런 소녀를 바라보며 소년은 심드렁한 표정(특히 코부분)을 지으며 자신은 아무것도 못봤다는 듯이 다시 고개를 숙여 ‘진로희망조사서’를 보았다.

분명 소녀는 아는 사람이고 자신의 앞에 앉아서 자신에게 말을 걸어줄 때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 반응을 보인다면 분명 귀찮아 질게 뻔하니까 지금은 이대로 그냥 무시하는 게..


“킁카킁카..”


“....”


좋겠지만...


“킁카킁카.. 훔~ 이 냄새~ 확실히 비슷하긴 하네~ 누나쪽이랑 말이야~ 역시 유전자의 영향이려나?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호르몬은 근본적으로 다르니까 이렇게까지 비슷할 수는 없을 텐데 말이야~ 냐하하~ 미스테리해~ 실험해보고 싶어~!”


“....”


“킁카킁카.. 하와와~ 좋은 냄새~”


이런식은 역시 곤란.. 하겠지..?

사춘기가 이제 막 끝나가는 남자(18세)의 정수리의 냄새를 사양없이 맡는 여자(18세)의 사양없는 킁카킁카 공격에 못 이겨 결국 소년은 고개를 들었다. 그대로 소녀의 코에 부딪힌다. 라는 개그스러운 전개도 내심 기대했지만, 그런 소년의 돌발행동을 고개만 살짝 틀어 민첩하게 피한 소녀는 여전히 턱을 괸채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것쯤은 이미 예상했다는 미묘하게 깔보는 듯한 표정. 뭐랄까.. 자존심이 상한다.


그런 소년의 기분과 상관없이 만들어진 소년은 내려다보고 소녀는 올려다보는 뭔가 미묘하지만 설레이는 아이컨텍의 구도. 다른 학생들은 이미 집에 돌아가거나 부활동을 시작해 아무도 없는 방과 후의 교실.


청춘전개..


라고 하고 싶지만 소년은 그럴 기분이 아니다.


“하아..”


그래서 일단은 크게 한숨을 쉰다. 한숨 한번에 복이 날아간다면 이미 생의 복은 다쓴 기분으로 한숨을 쉰다. 그리고 잠깐 눈을 감아 생각에 빠지고 2초도 머리를 비워 천천히 뜬 후 정면에 있는 소녀를.. 그래, ‘이치노세 시키’를 바라본다.


“오늘은 무슨 일이야 시키..”


그리고 근본적인 문제(지금 시간에 이치노세 시키가 자신의 눈앞에 있다.) 라는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소년은 일단 그걸 물어본다. 최대한으로 짓는 무표정. 하지만 눈앞에 있는 시키는 그런 소년이 재밌다는 듯 빙긋 웃기만 하고 있었다.


“무슨 일? 그건 무슨 의미일까나~? 시키쨩 모르겠는데~”


“그래 내게 용무가 있다는 건 그렇다치자 원래 너는 자유분방한 애였으니까 이유 같은 건 언제나 필요 없었잖아."


"냐하~ 너는 나를 잘아는 구나~? 시키쨩 칭찬을 하고 싶은 기분이야~ 상으로 냄새 맡아줄까~? 손가락이라던가~ 목덜미라던가~ 그것도 아니면 인간의 페로몬이 가장 많이 분비된다는 겨드랑.."


"그게 내 상이냐! 네 상이지!"


쾅!


오늘만은 휘둘리지 않겠다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소년이었지만.. 결국은 이런 전개가 되버렸다. 그래, '평소와 같이'


'핫' 하는 감탄사가 뇌리에 스쳐갔지만 이미 지나 버린 일 소년은 자신의 이마를 감싸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히죽히죽


말을 이어가기에는 소녀의 표정이 너무 기뻐.. 아니, 재밌어 보였다.


"...하아"


"냐하하~"


다시 쉬는 한숨..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행위로 복이 날아간다면 이미 소년의 생에 복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이미 날아가서 이렇게 휘둘리는 걸까? 잘 모르겠다.


소년은 이제 됐다는 듯이 책상에 엎드린다. 그렇게 노려보던 '진로희망조사서'도 덮어 버린 채. 이제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저 그런 기분이다. 물론 소녀가 그런 걸 허락해주지 않겠지만..


엎드린 소년은 자신의 정수리 부분의 머리카락에 뭔가 부드럽고 가녀린 감촉을 느낀다. 소년의 머리카락이 배배 꼬이는 거 같기도 하고 정돈되는 것 같기도 하는게 아마 소녀가 소년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는 거 겠지.. 소년은 그에 대항해 귀찮은 파리나 모기를 쫓듯이 팔을 휘휘 저어봤지만 소용없는 듯 했다. 소녀는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으니까. 결국 소년은 모든 걸 포기한 채 힘이 다 빠진 것처럼 자신의 몸을 늘어 트렸다. 그래, 마치 문어처럼.. 저항같은 건 해봐도 소용없으니까.. '이치노세 시키' 앞에서는


"....."


"~♬"


그리고 다시 시작된 정적. 분명 아무것도 한게 없는데 피곤한 느낌이다. 그에 반해 소녀의 조그맣게 들려오는 콧노래 소리는 활기차고 기분 좋아보였지만..


이게 다 이 '진로희망조사서' 때문이다. 애초에 18살의 나이에 미래를 결정지으라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기대 수명이 100세가 넘어가는 세대에 겨우 5분의 1지점에서 나머지 5분의 4를 결정지으라니 말이 되는 가? 애초에 그런 걸 결정지을 능력이나 교육을 국가에선 해줬던가? 해줬다고 한다면 왜 소년은 지금 이런 종이 하나에 고민을 하고 있는가? 결국 다 사회의 문제가 아닌가? 젊은 세대에 꿈을 강요하면서 방향을 정해주지 않는다니.. 무책임한 것도 정도가..


"...."


그런 네거티브한 생각이 이어져갈 때 소년은 생각하는 걸 그만두었다. 그래, 이 이상 생각해서 무얼하나. 그저 '진로희망조사서' 일뿐인데. 대충 적는다고 해서 패기도 꿈도 없는 미래를 적는다고 해서 뭐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생각에 문어처럼 늘어져 있던 몸을 들었다. 장난을 치고 있던 피실험체가 갑자기 일어나자 소녀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눈이 마주치자 다시 재밌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소녀를.. 그래, '이치노세 시키' 를 바라보자 소년은 뭐랄까..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을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기분이었다.


"움?"


그런 소년의 심경의 변화를 느꼈는지 소녀는 고개를 갸웃한다. 머리위에 물음표가 띄워진 느낌이랄까 뭐 그런 느낌이다. 그런 소녀를 빤히 바라보던 소년은 이내 다시 책상위에 있는 진로희망조사서를 바라본다. 그리고 적어 나간다. 이름과 반 같은 건 이미 적혀있으니 적을 부분은 하나 밖에 없었고 적는 대는 3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 소년의 움직임이 신기하다는 듯이 소녀는 적혀가는 소년의 필체를 따라가며 그 글을 읽어 보았다. 적는대 3초도 안걸리는 글씨인 만큼 읽는 것 역시 3초도 걸리지 않았다.


"아..직.. 없..음..?"


그 고양이같은 입으로 그 말을 입에 담은 채 소녀는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한다. 그리고 소년을 올려다본다.


소년의 내가 그렇다는데 어쩔 거야 라는 당당한 표정. 소녀는 그런 소년을 보자 이내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린다.


"냐하하~ 역시 너는 재밌어~"


소녀가 웃음을 터트리는 건 이미 예상했던 바지만 생각보다 더 뚱한 기분에 소년은 입을 삐죽인다. 그런 소년이 더 재밌다는 듯이 소녀의 특유의 웃음 소리는 더 커졌다.. 뭐랄까.. 진 기분이다. 승부 같은 건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뚱한 건 뚱한거다.


"그만 웃어.."


"냐하하~ 미안미안~"


소녀의 웃음이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다. 이런 아무 의미없는 종이 같은 거 대충 써서 낸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을 텐데. 소년은 아무것도 적지 못하고 있었다. 평범한 삶. 이라는 거짓말 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째서 일까.. 라는 생각도 분명 들었다. 잠깐 고민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런 고민 같은 건 포기해버리기로 했다. 그렇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게 아니니까


"그래서.."


"냐아~?"


"너는.. 그러니까 '연습생' 신분이신 '이치노세 시키'는 레슨 시간에 여기 있는 건데?"


그렇다. 소년의 미래나 심정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여태까지 휘둘리고 있었지만 지금의 소녀는.. '이치노세 시키' 는 여기 있어서는 안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소년은 그런 시키의 일탈을 방관해서도 안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움~? 나 말이야? 그러니까.. 시키쨩?"


"그래 너 말이야 너 이치노세 시키 고3의 중요한시기에 느닷없이 미국에서 전학온 '천재' 이치노세 시키 너 말이야 너"


"움~ 어째서일까~"


"너 몸이 조금씩 교문으로 향하고 있는데 지금 도망가려는 건 아니지? 미리 말하지만 나 달리기는 자신있어 동갑내기 여자애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하지만 실전의 달리기는.. 그러니까 '규칙'이 없는 달리기에서는 상관 없지 않을까~? 시키쨩 살기위해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


"설마 또 이상한 약이라도 가져온거야?"


"글쎄~ 어떨까~ 냐하하~ 앗~! 담임 선생님이다! 네 그 '종이'를 받으러 왔나본데~?"


"어 정말?"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뒷문을 바라봤다. 아무도 없었다. 순간 '속았다' 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다시 소녀 쪽으로 돌렸지만 소녀는 이미 소년의 사정권에서 벗어나 앞문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냐하하~ 그럼 나중에봐~ 꿈 없는 소년~"


"야! 시키!"


"시키쨩 실종~"


그대로 쏘옥 사라지는 소녀 소년은 순간 머리가 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소녀를 놓친다면 소년은 분명 누나에게 싸잡혀서 3시간동안 논스톱으로 '교육'을..

덜컹! 소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일단 달렸다. 100m 달리기는 12초대 후반. 타고난 운동신경이라는 평가도 들었다. 지금이라도 쫓아간다면 동갑내기 여자애 정도는 분명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잡아야 한다.


"시키-! 거기서!"


"냐하하~"


방과후의 교내. 술래잡기를 하는 18살의 소년 소녀. 전혀 다른 둘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아무 의미없는 '진로희망조사서' 에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는 걸까? 그래, 분명 그럴지도 모르겠다.




"시키-!!"





그래, 이건 그저 꿈을 갖고 싶어하는 소녀와 소년의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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