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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의 어떤 하루 _ 미즈키, 미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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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7, 2018 18:15에 작성됨.


 손바닥보다 조금 큰 접시에 담긴 오니기리 두 개. 누가 봐도 편의점에서 공수해 포장만 벗긴 이 오니기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미키는 말똥거리며 프로듀서를 쳐다봤지만 프로듀서는 조용히 시선을 피하며 미즈키 쪽을 턱짓했다. 턱짓을 따라가니 당당한 표정의 미즈키가 꿈뻑거리며 미키의 시식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키는 어쩔 수 없네 라는 표정으로 오니기리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검증된 명란젓 맛입니다."


 "음... 검증된 편의점 맛인거야."


 "아셨군요. 역시 호시이씨입니다...... 세상에."


 오물거리며 오니기리의 섭취를 끝낸 미키는 티슈 한 장을 뽑아 입을 정리했다.


 "미키를 왜 부른거야? 프로듀서랑 미즈키가 같이 있다는 건...... 아핫. 마술? 마법? 아무튼 그 이벤트 때문이려나?"


 전에 미키는 하루카와 마코토와 함께 미즈키의 스케줄을 격려해준 적이 있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미키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미키. 알고있었구나. 마침 잘 됐다. 이번에 미즈키의 마술 대회 이벤트에 미키도 같이 해 줄 수 있을까?"


 "으응... 미키. 그런 분야는 잘 모른다는거야."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관심이 없다니, 귀찮다니 등의 이유가 아닌 잘 모른다는 이유의 부정적인 반응은 프로듀서가 생각했던 반응들 중 가장 약한 반응이었다.


 "미키,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거라면 할 수 있지만 마술은 잘 몰라. 으음... 슈욱. 하고 팟. 해서 짜안-! 한다는 느낌?"


 "으음. 마술 이벤트지만 그렇게 어려운 마술의 느낌은 없을거야. 마술은 미즈키가 전담할 수도 있고 미키는 무대만 하면서 할 수도 있고... 어......"


 프로듀서는 말을 헤멨다. 연락 받은 후 지금까지 거의 즉흥적으로 움직이는거나 다름 없었다.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하지 않은 채 움직이자 삐걱이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바라보는 미키의 시선을 받으며 초조해하던 때


 "호시이씨. 같이 사람을 현혹하는것에 동참해보시지 않겠습니까."


 ".....현혹?"


 조용히 관망하던 미즈키가 입을 열었다. 나온 문장은 프로듀서도, 미키도 선뜻 생각 못한 방향이었다. 미키는 미즈키의 말 중 제일 인상깊었던 단어를 혼잣말처럼 되물었다.


 "호시이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쉽게도, 저 혼자서는 아직 그 큰 스테이지를 매혹시키기가 어렵습니다. 저의 매직 스테이지의 조커가 되어주세요....."


 챠악-.이란 소리를 스스로 내며 미즈키는 검지와 중지 사이에 언제 준비한건지 모를 조커를 낀 상태로 미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미키는 시야 앞에, 미즈키의 두 손가락 사이에 껴 있는 조커를 저도 모르게 빼 쥐었다.


 "호시이씨의 존재 자체가, 저의 와일드 카드입니다. 부디 함께해주세요."


 미키는 받아든 조커와 굳은 표정의 미즈키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단순한 부탁이 아님을. 부탁에 무게가 있음을. 미키는 어렴풋이 파악했다.


 "미키가 어떻게 하면 되는거야?"


 "그저 등장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있는 그대로."


 그렇게 말하곤 미즈키는 프로듀서를 응시했다.


 "미키. 어때?"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미키가 안 할 수 없잖아. 다만, 정말 미키는 쨘-. 하고 등장만 할 거니까 프로듀서도 미즈키도 나중에 다른 말 하기 없는거야."


 "나중에는 아니지만 조만간은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에-. 프로듀서. 말이 다르잖아."


 미키 특유의 승낙으로 분위기가 가볍게 환기되었다. 프로듀서는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미키와 농담들을 주고받으며 프로듀서는 흘끔 미즈키를 살폈다. 살짝,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미즈키를 본 것 같았다.


*


 "저기저기. 프로듀서. 할 말이 있어."


 다음 날이었다. 주최 측과의 깔끔한 담판을 위해 아예 미키와 미즈키가 이벤트에서 선보일 예상 공연 내용을 정리하던 프로듀서는 슬그머니 다가와 면담 아닌 면담을 신청한 미키에게 약간의 시간을 냈다. 미키는 사뭇 진지해보였다.


 "그 이벤트 말야. 솔직하게 말해줘. 미키, 하기로 했으니까 정확한 이유를 알아도 된다고 생각해."


 "미즈키가 좀 어렵게 말하긴 했지만 그 내용들은 맞아. 미즈키 혼자서 스테이지를 꾸리는 건 어렵게 됐거든."


 "프로듀서의 잘못인거야?"


 프로듀서는 잠시 숨이 턱 막혔다. 아니라고 입을 열 수 없었다. 프로듀서 선에서 해결 할 수도 있었을 문제를 아이돌들에게 떠넘긴 셈이 아니냐는 질책을 한다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프로듀서는 대답을 망설였다.


 "음... 미키가 어렵게 말했나? 프로듀서가 실수한거야? 아니면 상대 쪽에서 미즈키 혼자 안 된다고 한거야?"


 "......그렇게 따지자면 후자가 맞겠네."


 "그냥. 미키가 정말 대충 해도 좋은지, 힘을 내도 좋은지 알고 싶었을 뿐이야. 미키, 볼 일 끝났으니까 가볼게."


 "잠깐만, 미키."


 프로듀서는 미키를 불러 세웠다. 미키는 브레이크마냥 끼익 멈췄다. 프로듀서는 종이 한 장을 미키에게 보여주었다. 휘날리는 필체로 갈겨 쓴 공연 내용이었다. 미키는 훑어 읽었다.


 "이대로라면 미즈키는 마술만 하고, 미키는 라이브만 하게 되는데?"


 "맞아. 약 10분 정도라고 가정했을 때 5분을 미즈키에게 주고 5분을 미키에게 주는 걸로 딜을 해 볼까 해서."


 "음.....뿌뿌-!."


 "응? 뭐가?"


 입으로 울리는 부저 소리에 프로듀서는 얼빠지게 반문했다.


 "미키가 어제 말한거야. 미키는 쨘-. 하고 등장만 할거라니까?"


 "하지만 방금 대충 해도 좋은지, 아닌지 알고 싶다고 한 건 미키였잖아?"


 "에-. 프로듀서는 바보인거야. 조커는 임팩트가 있어야 하는거야. 미키는 그 정도의 힘만 내도 좋다고 생각하는거야. 아핫. 그럼-."


 해맑은 웃음 소리를 남기고 미키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프로듀서는 자신이 적은 일정표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임팩트만 있으면 된다라. 프로듀서는 펜을 꺼내 자리에 앉았다. 곰곰히 상념에 잠겼다. 본래는 미즈키의 공연이었다. 외부적인 조건으로 인해 미키가 참전하게 되었다. 손이 종이 위에서 버퍼링 걸린 듯 버벅였다. 일단 프로듀서는 미즈키 5분, 미키 5분으로 나눠 표기한 시간에 벅벅 두 줄을 긁었다. 그리고 그 옆 빈 공간에 미즈키 10분. 미키 ?분이라 표기했다. 마술의 시간과 라이브의 시간을 5분씩 나눈 부분도 두 줄로 지워버렸다. 그러다가 미키의 이름도 다시 두 줄로 죽죽 그었다. 머뭇거리던 손에서 점차 망설임이 사라졌다. 아예 프로듀서는 새로운 종이를 꺼냈다. 어떻게 이 둘을 운영해야 할지 이제야 길이 보였다. 첫 머리부터 망설임없이 작성했다. 출연진. 마카베 미즈키. 시크릿 게스트.

.

.

.

 "미즈키, 안녕인거야."


 "호시이씨. 안녕하세요."


 미즈키는 비어있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잡고 있던 천으로 덮어 몇 번 흔들었다. 쨘-. 소리와 함께 빈 왼손에서 장미꽃 모양의 조화 하나가 등장했다. 미즈키는 그 조화를 미키에게 건넸다. 재밌다는 듯 미키는 그것을 받았다.


 "호시이씨와 저를 어떻게 마술로 접목시켜야 할 지 고민했습니다. 본래 특기는 트럼프 마술 쪽이지만 다른 분야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역시 마술은 미즈키가 해야하는거야."


 "얘기 들었습니다. 공연. 라이브 쪽을 담당해 주신다면서요?"


 "누가? 혹시 프로듀서?"


 "그래서 생각한 마술입니다."


 미즈키는 한 켠에 마련한 상자로 다가갔다. 상자 안에는 ♥7의 카드가 있었다. 미즈키는 말 없이 손으로 상자 안을 가리켰다. 미키는 관객이 된 것 마냥 미즈키의 마술을 지켜보았다. 미키가 보고있음을 인식한 미즈키는 상자를 천으로 가렸다. 그리고 몇 번 위아래로 흔들거리다 확 천을 당겨 올렸다. 상자 안의 ♥7 카드는 온데간데 없이 조커카드로 바뀌어있었다. 와아. 미키는 입을 벌린 채 감탄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한 저와 호시이씨의 교체 방법입니다. 화려한 퇴장과 눈부신 등장. 훌륭해. "


 "이게 정말 가능한거야?"


 "프로듀서에게 말해봐야해요. 도구의 도움이 필요하기에..."


 미키는 교체된 카드를 무심히 쳐다보았다. 저 조커가 다시 ♥7로 바뀐다면 어떠려나.


 "다시 아까 카드로 바꿀 수는 없는거야?"


 "그럴리가요."


 미즈키는 아까와 같이 상자를 천으로 가렸다. 그리고 똑같이 몇 번 위아래로 흔들흔들 천을 털었다. 셋, 둘, 하나. 구령에 맞춰 미즈키는 천을 걷어냈다. 주문과는 다르게 ♥7와 조커가 같이 등장했다.


 "이런. 실수했군요."


 "미키적으로는 괜찮다고 생각하는거야."


 "음... 그렇죠. 마술엔 이런 실수도 의도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 넘어갔어. 미즈키."


 "그 의도를, 무대에 쓰는 게 어때?"


 미키는 가벼이 툭 던졌다. 미즈키는 미키를 바라보며 갸웃거렸다. 미키는 아핫-. 끝에 별이 보일 것 같은 해맑은 웃음소리를 내며 싱긋 웃었다.


 "저기. 미키적으로는 그 무대가 훨씬 재밌을거야 생각하는거야. 그.... 현혹적일거야."


 "오오-."


 미키의 뜻을 단박에 간파한 미즈키는 자신도 모르게 얕은 감탄사를 내었다.


 "호시이씨. 확실히 선배라는 느낌입니다."


 "미키는, 미키 혼자 스테이지를 커버하는 게 힘들었을 뿐이야. 앗.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미키, 보컬 레슨이 있어서 이만."


 미즈키가 무어라 인사를 하기도 전에 미키는 총총총 사라졌다. 미키가 사라진 공간에서 미즈키는 자신의 마술도구를 하릴없이 내려보았다. 자신이 하려던 마술과 미키가 원하는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좋았어. 미즈키. 이 계획을 프로듀서에게 말하는거야. 미즈키는 양 손에 마술도구를 가득 안은 채 움직였다. 낑낑거리며 사무실 앞에 겨우 도착한 미즈키는 도구들을 땅바닥에 다시 내려놓으려다 이것들을 다시 허리를 굽혀 들어올릴 자신이 없어 발끝으로 문을 통통 두드렸다. 문은 몇 초 지나서 열렸다. 한 쪽 어깨로 전화기를 받쳐 올린 채 통화를 하던 프로듀서와 눈이 마주쳤다. 프로듀서는 찡끗. 미즈키에게 윙크했다. 그리고는 어깨로 받쳤던 전화기를 문을 연 손으로 다시 고쳐 잡았다. 어깨와 허리를 당당히 핀 프로듀서에게서 미즈키는 극도의 신뢰감이 느껴졌다.


 "보내주신 저희 쪽의 출연 일정을 잘 봐 주셨다니 다행입니다. 저희는 처음 그대로 마카베양을 출연시키겠습니다. 다만 원하시는대로 저희 765프로의 인지도 높은 아이돌을 동행합니다. 다만 그 깜짝 게스트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출연 직전까지 시크릿 게스트로서의 보안을 유지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시다시피 그 누구의 이름도 아닌, 765프로와 계약이 되어 있으니까요."


 프로듀서는 흡족하게 미소지으며 말을 마쳤다. 상대쪽에서 뭐라뭐라 하는 말이 미즈키의 귀에도 닿긴 했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곧이어 프로듀서는 전화를 끊었다. 미즈키를 바라보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표정에 만족이 가득했다.


 "그래. 미즈키. 무슨 계획이 있는거니?"


 "마술의 계획입니다. 그리고 무대의 계획입니다. 호시이씨와 말을 마쳤습니다. 프로듀서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플리즈 미."


 그 어떤 일이라도,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있다. 일처리를 과감하게 성사시킬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준 아이들에게 이젠 프로듀서가 숨통을 틔어줄 때가 되었다. 프로듀서는 믿음직스럽게 고개를 한 번 위아래로 끄덕였다. 미즈키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마술도구를 내려놔, 계획들을 남김없이 프로듀서에게 털어놓았다. 미즈키의 장대한 계획을 들으며, 프로듀서는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미즈키의 계획들을 메모하며 컨펌했다. 이 계획이 그대로만 성사가 된다면 분명 무대를 떠들썩하게 하고도 남을 것이다. 자칫 환상으로 끝날 수도 있을 이 마법 같은 로망을, 반드시 현실로 실현시켜야 한다.


*


 넓은 스테이지. 화려한 조명. 수많은 관객들. 날이 밝을 때 부터 쉴 틈없이 달려온 이벤트는 어느덧 예선을 거쳐 본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예선의 끝과 본선의 시작에는 약 1시간의 타임이 있었고, 본선이 시작되는 시간은 밤 8시. 날이 까맣게 물들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미즈키와 미키에게게는 예상했던대로 약 10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둘의 무대가 끝나고 난 후, 바로 본선이 시작된다고 했다. 프로듀서는 무대 위로 미즈키와 미키가 사용하게 될 도구들이 설치되는 걸 무대 뒤에서 바라보았다. 그런 프로듀서 옆으로 미즈키가 뚜벅 걸어와 섰다. 하늘색 계열의 연미복같은 무대 의상을 입고 한 쪽 머리에 작은 채플린 모자를 악세서리처럼 착용한 미즈키는 누가 봐도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돌이자, 마술사였다.


 "호시이씨는 밑에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키가 왔다는 걸 몰라."


 아까 전, 주최 측의 사람이 들렀었다. 그는 아직 미즈키의 실력과 시크릿 게스트에 대해 미심쩍은 반응을 보였었다. 프로듀서는 철면피를 깔고 당당하게 상대했다. 그 당당함에 주최측은 무대를 보고 말씀드리겠다는 말로 한 발 물러섰었다. 무대의 세트 준비가 마치자, 조명이 찬란한 빛깔들을 내며 테스트에 들어갔다. 흰색 핀 조명이 미즈키가 서 있을 공간을 고고히 내려쬐었다.


 "프로듀서."


 미즈키는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이렇게까지 힘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즈키의 인사에 프로듀서는 미즈키의 어깨를 한 번 토닥였다.


 "이 무대는 전적으로 미즈키가 쟁취한 무대야. 그러니까, 즐기고 와."


 조명의 테스트가 끝나자, 사운드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이 테스트가 끝나면 그 다사다난함의 끝을 볼 무대가 시작된다. 미즈키도, 프로듀서도 초조히 대기했다. 아래에서 준비하고 있을 미키에게 신경을 써 주지 못해 마음이 쓰였지만 미키는 분명 알아서 잘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마카베씨. 10초 뒤 입장입니다.


 10초. 9초, 8초. 7초. 6초. 5초. 4초. 3초. 2초. 1초. 프로듀서는 미즈키의 등을 밀어주었다. 미즈키는 두벅두벅. 스테이지의 정중앙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길게 내리쬔 핀조명의 앞으로 섰다. 한 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왼손으로는 뒷짐을 지고 오른손은 앞을 감싼 채 꾸벅 허리를 숙였다 폈다.


 안녕하십니까. 마카베 미즈키입니다. 765프로의 소속 아이돌이지만, 이 자리에서 만큼은 마술사로 인사드립니다. 아, 여기.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제 키보다도 큰 상자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도했다고요? 정답입니다. 하지만 이 안을 열어 보여드리겠습니다. 짜잔. 놀랍게도 이 안에는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시 문을 닫습니다. 이제 이 상자는, 마법 상자입니다. 그리고 저는,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입니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들을 저는 이 안에서 마련할 수 있습니다. 상자의 앞에 글씨를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여기에 저는 커피푸딩을 씁니다. 다시 한 번 열어 확인시켜드리지요. 분명 이 안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문을 닫고. 3초. 2초. 1초. 짜잔. 놀랍게도 테이블과 함께 커피 푸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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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마술을 해보겠다고?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해보긴 했지만... 큰 스케일로는 해 보지 않았습니다...... 업그레이드.


 상자에서 무언가 등장하는 마술이란거지?


 그렇습니다. 상자는 제 키보다 조금 커야합니다. 공간은 적어도 제가 두 사람은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솔직하게 말해줘. 혼자서 할 수 있는 마술이 맞는거야?


 ...... 배워보지 않은 마술입니다. 당장 배우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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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푸딩을 의심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한 입. 꿀꺽. 음. 이건 커피 푸딩이 맞습니다. 이제 이 상자 안에 테이블을 없애야 할 때가 왔습니다. 제가 테이블을 소환하진 않았지만, 커피 푸딩의 크기가 작아 어쩔 수가 없었군요. 하지만 이 테이블을 단순히 없애는 게 아니라, 이 테이블을 무언가로 바꿔보겠습니다. 원하시는 걸로 바꿀 수 있습니다. 외쳐주세요. 닭이요? 산타클로스는 살아있는 닭을 선물로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죽어있는 테이블을 살아있는 생명으로는 바꿀 수 있습니다. 커피 푸딩을 적었던 칸을 지우고 나무를 적겠습니다. 이제 이 테이블은, 나무로 변합니다. 문을 닫고. 3초. 2초. 1초. 짠. 테이블은 순식간에 나무로 변했습니다. 나무에겐 뿌리가 달려 있어 혼자 올 수 없기에, 화분을 동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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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을 참여시킬 생각입니다.


 무대는 넓고 관객은 많아서 관객의 목소리가 닿을까?


 모르겠습니다. 닿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통하는 마술은 중요합니다.


 소통하는 척을 하겠다는거야?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군요......마술은 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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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에 나무가 등장했지만, 이 곳에서 나무를 살아가게 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이 마법상자로 나무를 자연으로 돌려보냅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를 받을 생각입니다. 원하시는 게 있으신지요? 닭이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살아있는 동물은 동물 보호법에 의거해 데려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처음에 제 소개를 들으셨나요? 저는 765프로의 소속입니다. 키사라기 치하야라 하셨나요? 저희 765프로의 소속 아이돌입니다. 한마디로 가희라 불리고 있죠. 호시이 미키라 하셨나요? 역시 저희 765프로의 소속 아이돌입니다. 역시 인기 아이돌을 좋아하시는군요. 좋습니다. 저, 마카베 미즈키. 같은 사무소의 동료이자 후배로서 노력해보겠습니다. 나무를 지우고 호시이 미키를 쓰겠습니다. 그리고 문을 닫습니다. 3초. 2초. 1초. 다같이 세어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이제 문을 엽니다. 짠-. 배송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호시이 미키씨의 등신대가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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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히 765프로 아이돌의 이름이 나올겁니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어?


 제가 유도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미키의 등장이 좀 빠르지 않을까?


 처음에 호시이씨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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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신대지만 호시이씨가 제대로 배달이 되었습니다. 이게 아니라고요? 진짜 호시이씨를 불러오라고요? 아까 전에도 얘기했지만 살아있는 동물을 소환하는 건 안됩니다. 하지만 동물과 사람은 궤를 달리 하기도 하죠. 호시이씨는 사람이기에 시도해보겠습니다. 힘 내자. 미즈키. 호시이 미키씨의 이름 앞에 '살아있는'을 덧붙입니다. 다시 문을 닫고. 3초. 2초. 1초....... 짜안....... 이런. 통신의 오류입니다.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등신대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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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등신대를 이용해서 한 번. 아무것도 내보내지 않는 것에서 한 번. 페이크라는거구나.


 기대를 사라지게 해야 더 큰 임팩트가 온다고 알고 있기에......


 그러면 그 3번째에, 조커가 등장하는거니?


 그렇습니다. 이 마술을 구상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조커의 등장은 화려하고, 눈부셔야 합니다.


 미즈키의 퇴장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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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석 여기저기서 탄식과 야유가 들려왔다. 무대와 관객석의 거리는 꽤 될 텐데도 '그럼 그렇지'같은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미즈키는 주눅들지 않았다. 카운트를 함께 외쳐주는 것만으로도 미즈키는 무대의 성공을 예측할 수 있었다. 이제 이 마술을 할 수 밖에 없던 이유가 등장해야 한다. 미즈키는 '호시이 미키'라 적힌 글자를 지우고 미즈키 세 글자를 썼다.


 "이 상자 안에 아무것도 없으면 호시이 미키씨를 소환할 수 없습니다."


 미즈키는 비장하게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관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굳은 결심을 하고, 저 마카베 미즈키로 호시이 미키씨를 데려오겠습니다. 제가 상자의 문을 닫으면, 여러분은 3초가 아닌 5초의 시간을 외치셔야 합니다. 강조합니다. 5초입니다."


 미즈키는 스스로 상자의 문을 닫았다. 관객들은 홀린 듯, 상자만이 남은 무대를 향해 카운트를 외쳤다. 5초, 4초, 3초, 오오.....오오오오! 카운트는 점차 놀란 사람들의 환호로 변해갔다. 미즈키가 직접 적은 '미즈키' 석자에서 점점 '즈' 한 글자가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미즈키 세 글자는 5초 뒤 미키 두 글자로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핀 조명은 팟-. 사라졌다. 화려한 조명이 터지며 노래가 울려퍼졌다.


Please tell me why?

I cannot stop


Please tell me why?

I cannot leave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상자의 문을 박차고 미키가 등장했다. 여러개의 핀조명이 미키 한 사람을 집중 조명했다. 관객석에서는 엄청난 환호가 터져나왔다. 그 전까지는 없던 기자석의 플래시세례 또한 또 다른 장관을 이뤄냈다. 미즈키의 의도는 대성공이었다. 그 열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미키는 열창했다. 약 2분 40초를 혼자 열창하던 미키는 간주 부분에서 상자로 향하기 시작했다. 미키의 돌발 행동에 관객들은 또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미키는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리고 '미키'라고 적힌 글자 사이에 '즈'를 휘갈겼다. 그리고 다섯 손가락을 쫙 펴 강조했다. 그 후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의도를 파악한 관객들은 바로 카운트를 하기 시작했다. 5초. 4초. 3초. 2초. 1초. 퍼엉-. 아까보다도 더 화려하고 강렬한 폭죽과 함께 상자가 동서남북으로 갈라졌다. 그 갈라진 상자 위에, 미키와 미즈키가 함께 등장했다. 노래는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그 절정을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 가득 메워나갔다. 강렬하게 쪼개지는 비트를 함께 맞추며 미키와 미즈키는 공연의 열기를 온 몸으로 맞았다.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그 고통이 엔돌핀으로 바뀌는 순간, 노래의 마무리와 함께 두 사람은 등을 맞댄 마무리 포즈를 취했다. 다시 한 번 무대 앞과 뒤로 폭죽이 올라갔다. 폭죽이 터지면서, 조명은 서서히 어두워졌다.


 지금부터, 제1회 아마추어 마술 경연대회 본선. 그 화려한 막을 올리겠습니다!


 우렁차게 이벤트의 시작을 알리는 외침과 함께, 달아오른 관객들의 함성 소리가 회장을 뒤엎었다.


*


  이번에 우리쪽에서 조금 무리한 부탁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단 그 부분에 대해선 대표로서 사과드립니다. 또한 그럼에도 이런 멋진 무대를 선보여 본격적인 대회의 포문을 열어 준 765프로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본인을 이번 이벤트를 주최한 대표라고 소개한 노신사는 무대의 마무리와 동시에 프로듀서를 찾아와 그동안의 일에 대한 사과와 함께 공연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프로듀서는 그 공을 미즈키와 미키에게 돌리며 인사를 마쳤다. 대표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지켜보든 프로듀서는 시야에서 그가 사라지자마자 무언의 포효를 시작했다. 됐다! 됐어! 마음 같아서는 무대 뒤를 활보해 뛰어다니면서 미친듯 소리치고 싶었다. 그간의 고생이 한꺼번에 날아가고도 남을 전율이 온몸에서 일었다. 무대를 마친 미즈키와 미키가 프로듀서를 향해 다가왔다. 프-로-듀-서어! 뛰어들 기세로 내달린 미키와 손이 아릴 정도로 격한 하이파이브를 했다. 총총거리며 그 뒤를 따라 밟은 미즈키와는 양 손으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저기저기. 무대. 완전 뜨거웠어."


 흥분이 가시지 않는 건 미키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프로듀서는 미키의 어깨를 조금 세게 토닥였다.


 "미키. 정말 잘했어. 임팩트 있었어. 미즈키도 정말 잘했어.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깔끔하게 선보였구나."


 ".......석세스. 인가요?"


 미즈키의 목소리에선 온갖 감정이 느껴졌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소리에 힘이 없었지만, 흥분되어 올라간 톤을 감추지는 못했다. 프로듀서는 미즈키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보였다.


 "석세스."


 프로듀서는 눈을 한 번 찡끗했다. 프로듀서의 아양 아닌 아양을 정면으로 마주한 미즈키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푸후훗. 작은 웃음 소리를 냈다.


 "어엇? 프로듀서-. 미즈키에게만 그러면 안 되는거야!"


 "아니 나는 그저 미즈키가 잘했다는 걸 뭐랄까. 내 몸으로 표현하고 싶었을뿐이야."


 미키와 프로듀서가 투닥거리는 모습을 미즈키는 한 발자국 떨어져 주시했다. 잘 했어, 미즈키. 성공했어, 미즈키.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채 내적으로 자화자찬하며 자기 자신을 칭찬한 미즈키는 그 후 굳은 결심을 한 듯 앙 다물었던 입을 뗐다.


 "저...!"


 응? 프로듀서와 미키는 동시에 미즈키에게 시선을 향했다. 막상 두 사람의 시선을 받자, 방금 전 무대에서의 수천개의 시선들보다도 더 긴장되었다. 그렇지만, 말해야 해.


 "프로듀서. 호시이씨. 무대를 성공적으로 끝맺을 수 있게 도와주셔서......감샤앗."


 .......미즈키는 느리게 한 손을 입에 가져다댔다. 맹렬히 깨물어버린 혀에서 아픔이 느껴졌다. 한 쪽 눈을 찡긋 감은 채 고통을 참는 미즈키를 보곤 미키도, 프로듀서도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에 미즈키는 다른 한 손도 볼에 가져다댔다. 부끄러워.


 "저기저기, 미즈키."


 "네. 호시이찌."


 아픔이 달아나지 않아 진정되지 않은 혀에서 발음이 샜다. 미키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이런 멋진 무대에 설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운거야. 미키. 나름 노력했는데. 어때? 미즈키의 무대에 화려한 조커가 되었으려나? 아핫-!"


 ".......제 무대의 조커가 되어 주셔서 고맙습니다......최고였어."


 미즈키는 악세사리로 달려 있었던 모자를 떼어 오른손으로 살짝 잡은 후 그를 자신의 왼쪽 가슴 쪽으로 가져다 댔다. 왼손으로는 뒷짐을 지었다. 무대의 극초반. 관객들에게 선보였던 무대인사를 프로듀서와 미키에겐 조금 더 예의를 차린 형태로 선보였다. 미키는 인사를 마친 미즈키의 앞에 정면으로 섰다. 방금 전 미즈키처럼 오른손으론 가슴쪽을 감싸고, 왼손으론 뒷짐을 진 채 답례의 인사를 했다. 프로듀서는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시선을 맞추고 동시에 프로듀서를 쳐다보았다. 해맑은 미소와, 담담한 미소를 머금은 두 사람에게 프로듀서는 그들이 취했던 포즈 그대로 인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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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저나 대단했던거야. 무대 리프트 앞에 스탭들이 그렇게 빠르게 움직여야 할 줄 몰랐어.


 그 리프트 부탁하는건 조금 힘들긴 했다. 미즈키. 다른 건 몰라도 그거에 대한 이 프로듀서의 노고는 알아줘야 해.


 프로듀서에겐 감사합니다. 다만.... 그 리프트는 마술의 비밀.....


 응? 이제 끝났는데 괜찮지 않은거야?


 ....... 호시이씨. 우리가 선보인 마술의 비법은 간직해야 할 국가적인 기밀입니다.......평생동안.


 으응----? 미키, 그런 거 모른다는거야.


 맛있는 오니기리를..... 공수해 오겠습니다.


 오니기리? 마침 출출한데 잘 됐다. 그 공수는 내가 할게. 미키. 어떻게 할까. 편의점에 차 세울까?


 뿌뿌-. 편의점 오니기리 말고 전문점으로 가주는거야.


 


 


* * *






 스마트폰의 음질을 타고, 미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펑펑 터지는 폭죽의 소리가 깨지듯 들렸다. 손바닥만한 화면에 스바루, 사요코, 치즈루, 토모카. 총 네 사람은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레슨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미키는 답답할 정도로 뭉쳐있는 네 사람의 뒤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뭐하는거야?"


 목소리에 놀란 네사람이 허둥지둥거리는 사이 미키는 화면을 슬쩍 훔쳐보았다. 미키와 미즈키의 공연을 풀로 찍어 올린 직캠이었다.


 "무대 보고있었던거구나?"


 "미키! 이 영상이 실시간 동영상 순위 1위야. 알고 있었어? 이야.. 이거 완전 쩔잖아. 미즈키도 마술 잘 하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 몰랐어!"


 스바루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방방 뛰었다.


 "그러게요. 관객들의 함성소리가 꼭 아기돼지들의 외침과 같았어요~"


 스바루와는 다르게 토모카는 차분히 감상평을 전했다.


 "그나저나 미즈키. 이렇게 커다란 물건들을 이용한 마술도 할 줄 알았던거군요."


 "그러게요. 미즈키쨩의 재주를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아, 미키쨩도 하지 않았나?"


 "아 그러네! 미키! 그 마술. 어떻게 한거야? 어차피 끝났으니까 알려줄 수 있지?"


 미즈키의 마술에 대한 치즈루의 감상평은 사요코를 건너 스바루에게로 와 마술의 비법을 캐묻는 질문으로 변했다.


 "아, 그거는 말야. 리프....."


 호시이씨. 우리가 선보인 마술의 비법은 간직해야 할 국가적인 기밀입니다.......평생동안.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저 말을 했던 미즈키가 번개처럼 떠올랐다. 미키는 말을 끊고 입을 가리며 아핫-. 하고 경쾌하게 웃었다.


 "미안. 그건 기밀사항인거야."


 "으에? 그게 뭐야. 말해줄 것 처럼 굴더니!"  


 스바루의 외침에도 미키는 그저 즐겁게 웃을 뿐이었다.



 

 미키와 미즈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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