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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의 어떤 하루 _ 미즈키, 미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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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7, 2018 17:44에 작성됨.


 세 번의 노크 후 극장 사무소의 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내민 미즈키는 두리번거리며 프로듀서를 찾았다. 자신의 책상 앞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프로듀서의 뒷모습이 눈에 보였다. 오른쪽 어깨를 비정상적으로 올린 채, 인기척에도 바쁘게 움직이는 프로듀서를 보곤 미즈키는 안으로 들어와 살포시 문을 닫고 살금살금 프로듀서에게로 다가갔다.


 "프로듀서."


 "아. 잠깐만."


 프로듀서의 오른쪽 어깨와 볼 사이에는 스마트폰이 껴 있었다. 프로듀서의 모습과 행동에서 전화 통화중이었음을 인지한 미즈키는 방해가 되지 않게 한 켠에 마련된 소파로 가서 앉았다. 고요한 사무소에 통화하는 프로듀서의 목소리가 배경음처럼 들려왔다. 네. 네. 알겠습니다. 빠른 시일내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걱정 마세요. 짧은 문장으로 간결하게 끊기는 말들의 운율이 느껴질 즈음 프로듀서는 마무리 인사와 함께 통화를 끊었다. 한쪽 어깨를 들어 올린 불편한 자세로 한참을 통화 한 모양인지 프로듀서는 목을 좌우로 움직이며 스트레칭을 했다. 미즈키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두어번 더 목을 돌리던 프로듀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즈키의 맞은편에 앉았다.


 "달리 부른게 아니라. 미즈키. 내가 생각했을 때, 미즈키에게 딱 알맞은 행사 하나가 들어왔거든. 잠깐만 있어봐."


 프로듀서는 다시 일어나 노트북을 통째로 들고 왔다. 노트북에는 공고문 같은 문서 파일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프로듀서는 스크롤을 올려 문서의 제일 첫 장을 보여주었다.


 "제1회... 아마추어... 마술 경연 대회..."


 미즈키는 타이틀을 한 템포씩 끊어 읽었다.


 "게스트를 세울 모양이야. 혹시 마땅한 아이돌이 있냐고 섭외 연락이 왔거든. 아무래도 마술을 하는 아이돌은 찾기가 힘들지? 우리 사무소엔 매우 알맞은 친구가 있잖아."


 미즈키는 움찔, 반응했다.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프로듀서는 마주친 미즈키의 시선에 빙긋 웃어보였다.


 "부탁할게. 미즈키가 이 행사에 나가줬으면 좋겠어."


 ".....맡겨만주세요. 프로듀서."


 "고마워. 행사 측에서는 마술 공연과 라이브 공연을 하나씩 원하는 것 같거든. 아직 기간이 있으니까, 천천히 대비하고 있으면 될거야. 적어도 빠른 시일 내로 뭘 준비해야 하는지 확답을 줄게."


 "저...."


 일어나려던 프로듀서는 저... 한 마디를 꺼내고 머뭇거리는 미즈키를 보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궁금한 거 있니?"


 "아뇨.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프로듀서는 대답 대신 미즈키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일어났다. 자리에 앉고는 노트북을 원래 있던 자리에 놓은 후 타자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아이돌들의 특기와 취미를 존중해주고 싶었다. 그 최고의 존중은, 그에 맞는 일거리를 찾아주는거라고 생각해오던 프로듀서는 이번 미즈키에게 마술과 관련된 일을 맡기게 된 것이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프로듀서는 아직 자리를 뜨지 않은 미즈키를 곁눈질했다.


 "....... 힘 내자. 미즈키."


 들으라고 한 소리가 아님을 안다. 프로듀서는 못 들은 척 어디에도 꽂혀있지 않은 이어폰을 양 귀에 꽂았다. 미즈키라면, 분명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


 다음 날 극장으로 출근한 미즈키를 반겨준 것은 자신의 스케줄이 적힌 스케줄 보드였다. '마술 이벤트. 마카베'. 불과 어제까지는 적히지 않은 글자들이었다. 미즈키 비로소 실감되는 것 같았다.


 "미즈키쨩의 마술이라면 당연히 카드 마술이려나?"


 뒤로 들리는 목소리에 미즈키는 빙글 돌았다. 들린 목소리는 하나였지만 사람은 세 명이었다.


 "아마미씨. 키쿠치씨. 호시이씨. 좋은 아침입니다...... 굿모닝."


 미즈키는 한 명씩 호명하여 인사했다. 올스타즈 선배가 3명이나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즈키는 사뭇 부끄러웠다.


 "이야... 마술 관련 스케줄이라니... 아이돌 활동 하면서 거의 처음 보는 스케줄인 것 같은데?"


 "미즈키라면 잘 할 수 있을거야. 아핫."


 "감사합니다.... 잘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가 아닌 '잘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내심 뿌듯한 마음이 새어나와 미즈키는 조금 놀랐다. 하지만 하루카와 마코토가 바라보는 미즈키는 새로운 스케줄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언제나의 미즈키였다. 딱 한 사람 빼고.


 "아핫. 미즈키. 기분 좋은가봐."


 "네?"


 "미키도, 미키가 잘 하는 스케줄이 오면 열심히 하는거야."


 "미키가 잘 하는 스케줄이라면..... 댄스? 연기?"


 하루카의 물음에 미키는 찡긋 웃으며 답했다.


 "자는 거?"


 "차라리 오니기리 푸드파이터 같은 스케줄이라고 말을 하는게 현실성이 있지."


 미키의 말에 마코토는 반사적으로 미키의 말을 받아쳤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화들을 미즈키는 경청했다. 저게 선배의 관록이구나. 사적인 대화에서도 버라이어티에 나올 법한 대화의 흐름이 이어진다. 저런 모습은 배워두는게 좋아. 미즈키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튼 우리는 이제 스케줄 가야하거든. 미즈키. 잘 할 수 있을거야!"


 "응응. 미즈키쨩. 응원할게!"


 "힘내는거야."


 세 사람은 한 마디씩 미즈키를 격려했다. 각자의 스타일이 묻어나오는 격려의 말을 미즈키는 고맙게 받아들였다. 세 사람이 나간 후, 미즈키는 고이 쥔 두 주먹을 앞으로 모았다. 그리고 한 번 훅하고 힘을 주었다. 힘 내자. 미즈키. 그 자세를 유지한 채로 미즈키는 극장의 사무실을 벗어났다.

.

.

.

 극장 대기실 탁자에 앉아 책을 읽던 유리코는 맞은 편에서 두 주먹을 모은 채 가만히 앉아있는 미즈키를 슬쩍 쳐다보았다. 대기실 안으로 들어올 때 부터 저 자세였는데,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미즈키는 그 자세를 풀지 않았다. 한 번 의식되자 도저히 책의 내용들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똑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기를 여러 번. 유리코는 결국 책갈피를 꽂고 책을 덮었다.


 "미즈키씨. 그 자세는.... 뭔가요?"


 혹시 중요한 의식같은 걸 행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순간 방해하지 말아야 할까 싶기도 했지만 호기심을 도저히 억누를 수 없었다. 유리코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나오씨."


 미즈키는 자세 그대로 몸을 살짝 돌려 유리코를 향했다.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자신의 성을 진득하니 부르는 미즈키의 행동에 유리코는 괜히 긴장되어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넷."


 유리코는 저도 모르게 비장한 대답이 나왔다. 미즈키는 두 주먹을 유리코 앞으로 뻗었다.


 "이 안에는 제가 소중히 지니는.... 제 혼이 담긴 동전이 있습니다. 다만 둘 중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군요. 나나오씨의 맑은 영혼으로 그 동전을 찾아주세요."


 "아.. 아무쪽이나 선택하면 되는건가요?"


 "그렇습니다..... 부디."


 "만약 선택했는데 없으면 어쩌죠?"


 "그렇다면 제 영혼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겠군요...... 훌쩍."


 "예에에?"


 상상 이상으로 무거운 이유였잖아? 유리코는 신중을 기해 미즈키의 양 손을 번갈아 쳐다봤다. 보통 사람은 오른손잡이니까 오른손에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너무 당연하니까 한 번 꼬아서 왼손에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유리코는 검지 손가락으로 미즈키의 오른손을 살짝 터치했다. 표정이 없다. 유리코는 오른손을 터치한 손을 슬그머니 옮겨 왼손을 터치했다. 표정이 없다. 다시 오른손을 가리켰다. 미동이 없다. 왼손을 가리켰다. 눈을 한 번 끔뻑거린다. 저건, 신호야.


 "결정했어요. 왼쪽입니다!"


 유리코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미즈키는 왼손을 뒤집었다. 그리고 새끼손가락부터 하나씩 펼쳤다. 있을거야. 있겠지? 있으려나? 있나?


 "짜잔. 빈 손이었습니다."


 "그럼 오른손!"


 유리코의 외침에 미즈키는 방금 전과는 다르게 오른손을 활짝 펼쳤다.


 "그 어디에도 제 영혼은 없었습니다."


 "네에에?! 그럼... 그럼 미즈키씨의 영혼은.... 결국 저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영원히 영혼이 봉인되어 버리시는 건가요옷!"


 비어있는 미즈키의 양 손을 쳐다보며 유리코는 야단스럽게 소리쳤다. 미즈키는 한 쪽 손으로 그런 유리코의 어깨를 살포시 잡았다.


 "나나오씨.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어깨를 잡지 않은 다른 손은 유리코의 목덜미로 향했다. 목 뒤로 미즈키의 손길이 느껴졌다. 이 상황은 무슨 상황인거지? 유리코는 가까워진 미즈키의 얼굴에 당황해 시선을 방황했다. 뭐지? 뭘까? 별별 생각들에 머리가 펑 터져버리기 직전 딱-. 손가락을 튕겨서 낸 마찰음이 들렸다.


 "미즈키씨?"


 유리코의 뒷덜미를 감쌌던 미즈키의 손이 점차 빠져나왔다. 미즈키는 그 손을 유리코의 시선에 가져다댔다. 미즈키의 손에는 100엔짜리 동전이 잡혀있었다. 분명 뒷덜미로 향하기 전까지 미즈키의 손에는 1엔짜리 동전조차 보이지 않았었다.


 "제 영혼을 유리코씨에게서 회수해갑니다...... 서프라이즈."


 미즈키는 차분한 표정으로 100엔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유리코는 급하게 양 손으로 자신의 뒤통수와 목덜미를 만져보았다. 도대체 저 100엔이 어디서 나온거지? 그 어디에도 동전을 숨겨 놓을 공간 같은 건 없었다.


 "이른바 동전 마술이었습니다. 어떠셨나요...... 감상평을 들려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두근."


 아직 벙 쪄있던 유리코 대신 몇몇 사람들이 한꺼번에 만들어내는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미즈키도 유리코도 박수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레이카, 아카네, 시즈카, 시호, 세리카. 이른바 크레센도 블루 5명이었다.


 "이야... 미즈키쨩의 마술. 볼 때마다 신기하다니까? 이 아카네쨩이 신기해 할 정도면 엄청난거라구!"


 "미즈키씨! 방금 마술 진짜 멋졌어요!"


 "빰 빠카빰! 방금 마술의 점수를 매기면 10점 만점에 9.78점입니다. 좋아요. 성공이네요!"


 아카네, 세리카 그리고 레이카가 한 마디씩 감상평을 건넸다.  


 "예행 연습이라도 하셨던건가요?"


 시즈카는 감상평 대신 미즈키의 행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예행연습이라니?"


 시즈카의 물음을 유리코가 되물었다.


 "모르셨군요. 미즈키씨. 마술 공연에 게스트로 섭외되셨어요."


 유리코의 물음에 시호가 답했다. 그제야 유리코는 미즈키의 행위에 대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었다.


 "아, 아앗. 설마 미즈키씨. 제가 말을 걸기만을 기다리셨던건가요?"


 "......나나오씨의 책에 대한 집념이 제 생각보다 엄청났습니다."


 유리코는 자신을 바라보길 기대하며 주먹 쥔 양 손을 모은 채 두근두근하며 기다렸을 미즈키의 행동을 회상했다. 시간을 체크하지 않아 확신할 수 없지만 체감으로만 따져봐도 10분 정도는 넘겼을 것이다. 그 긴 기다림 끝에 마술을 선보이고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무덤덤하게 서프라이즈라 읖조린 미즈키의 행동들. 만약 이 상황들을 소설 속의 문장들로 보게 되었더라면, 참 흥미롭게 읽었을 챕터였으리라.


 "미즈키씨. 멋졌어요."


 유리코는 자신이 느낀 모든 감정들을 잔뜩 함축하여 미즈키를 칭찬했다. 미즈키는 본의 아니게 마술의 주인공이 되었던 유리코의 간단하고도 짧은 평에 살짝 볼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으흥. 미즈키쨩 특유의 분위기가 있으니까. 분명 잘 할 수 있을거라고? 그나저나 프로쨩은 말야. 아카네쨩에겐 아카네랑 관련된 일 안 주려나? 이를테면... 인형 봉제라던가!"

 

 "와! 그거 재밌겠네요. 아카네씨에게 매우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음... 레이카씨에게도 등산과 관련된 스케줄이 잡히면 재밌을 것 같아요!"


 "와이! 산과 산 사이를 폴짝 폴짝 나는 스케줄이었으면 좋겠는걸? 그럼... 시즈카쨩에겐 우동 육수로 즐기는 온천 여행 스케줄이라면 괜찮으려나?"


 "레이카씨도 참. 우동을 좋아해도 우동 육수로 온천을 즐기진 않는다고요! 그리 따지자면 시호는 고양이 분장을 하고 야옹거리는 스케줄이면 맞겠네요."


 "괜히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아줘. 시즈카."


 "그, 그럼 나는...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서... 고난들을 이겨내고 해피 엔딩을 맞이하는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는 스케줄이었음 좋겠는걸."


 각자 한 마디씩 본인들이 하고 싶은 스케줄이나 다른 멤버들에게 어울릴만한 스케줄에 대해서 언급했다. 미즈키는 무리에서 살짝 떨어져  그 수다를 지켜보았다. 농담마냥 하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저 농담에는 분명 몇 퍼센트의 진심도 섞여 있을 것이다. 이번 자신의 스케줄이 성공해야 각자 원하는 스케줄을 받게 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미즈키는 선두 주자로서 책임감 같은 것이 꿈틀거렸다. 잘 하는게 아니라 성공해야 한다. 성공하자. 미즈키. 미즈키는 한 단계 업그레이된 다짐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


 평탄하게 하루 하루가 지나갔다. 미즈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선보일 수 있는 마술을 차츰 준비해갔고, 프로듀서는 자신의 업무를 보고 간간히 미즈키를 서포트하며 미즈키가 마술 공연과 함께 이벤트 회장에서 선보일 라이브 준비를 차근차근 준비해갔다. 이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면 분명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살짝 붕 뜬 맘으로 일을 하던 프로듀서에게 한 통의 연락이 걸려왔다. 이벤트 주최측의 연락이었다. 프로듀서는 잽싸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연락 기다렸습니다. 765프로 프로듀서입니다. 프로듀서는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했다. 지금쯤 온 연락이라면 이벤트 출연과 관련되어 출연하게 될 시간, 무대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써야하는지 등의 완전히 정리된 확정 스케줄을 전달하려는거겠지. 하지만 예상과는 다른 내용들이 귀를 타고 흘러 들어갔다. 기분 좋게 전화를 받은 프로듀서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무어라 길게길게 뜸들여서 얘기하는데, 정리하자면 이 말이였다.


 "마카베 미즈키양의 출연이 어려울거란 말씀인가요?"


 프로듀서는 심각하게 되물었다.  


 - 그러니까... 765프로에는 조금 더 인지도가 좋은 아이돌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주최하는 이번 이벤트는 비록 처음 개최되는 이벤트이지만 많은 후원사의 후원으로 상당히 크게 개최 될 예정입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마카베양의 인지도가......


 "하지만 처음 연락이 왔을 땐, 마술이 가능한 아이돌을 찾으셨습니다. 그 말씀으로 따지자면 마술 실력과 하등 상관없는 아이돌도 괜찮으셨다는 말씀이신지요."


 단어 선택이 공격적이란 것을 느끼긴 했지만 그마저도 프로듀서는 상당히 화를 억누른 상태였다.


 "마카베 양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 중 드물게 마술에 일가견이 있는 아이돌입니다. 프로의 실력까진 아니더라도 마술사를 준비하는 아마추어들과 비교했을 때, 그에 뒤지지 않는 실력 또한 갖춘 아이돌입니다. 또한 유닛 활동과 싱글 활동으로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어필도 된 아이돌입니다. 행사에 폐를 끼칠 일은 없을겁니다."


 프로듀서는 차분히, 그러나 완강하게 미즈키가 알맞은 게스트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어필했다. 다른 대안을 떠올리려 해도 이 이벤트에 걸맞는 아이돌은 미즈키 말곤 없었다.


 -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역시 그대로 진행하는게 여러모로 편리하고 좋습니다만. 프로듀서라면 아시지 않습니까. 이 바닥 생태계라는게... 최대한 765프로 쪽과 함께 하고 싶은 것에는 이의 없습니다. 출연자의 교체만 검토해주신다면 말이죠. 그에 대한 사례가 필요하다면 해드릴 용의 또한 있습니다.


 프로듀서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짚었다.


 "만일 출연하게 된다면 어느 타임에 우리 아이돌을 넣으실 생각이셨습니까."


 프로듀서는 한 발 물러 이벤트 자체를 파악하려 질문을 던졌다.


 - 예선이 끝나고, 본선이 시작하기 전의 스테이지입니다.


 프로듀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헛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이성으로 눌렀다. 결국엔 본선이 시작하기 전 스테이지를 달궈줄 사람이 필요했던거다. 뭐, 아이돌이 필요할 것 같지 않은 이벤트에서 굳이 아이돌을 섭외하는 이유가 뭐겠어. 결국에 필요했던 건 마술을 잘 하는 아이돌이니 뭐니 다 필요없고 얼굴 마담이 필요했던거겠지.


 "일단...... 검토하겠습니다. 저희도 입장이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 좋은 방향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시다시피 계약은 마카베양이 아닌 765프로와 계약이 되어 있으니까요.


 "....... 나중에 연락하겠습니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프로듀서는 들고 있던 전화기를 팽개치듯 던졌다. 양 손으로 얼굴을 강하게 쓸어내린 후 울분은 토하듯 한숨을 쉬었다. 자기네들 딴에는 계약을 이용해서 채찍과 당근을 적당히 썼다고 생각하겠지. 우리가 계약을 파기할 생각이 없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뜻이 잔뜩 담긴 주최측에게 어떻게든 대응해야했다. 정말 냉정히 생각하면 그들이 원하는대로 할 수도 있다. 그게 제일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스케줄을 통보받고 조용히 기뻐하던 미즈키를 떠올렸다. 안 돼. 이거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 한다. 프로듀서는 박차고 일어났다. 과부하 상태의 머리를 일단은 식히고 싶었다. 사무실을 벗어나려 문고리를 당겼다. 문고리를 돌리지 않아도 문이 열렸다. 프로듀서는 의문을 띄운 채 다시 문을 닫았다. 문고리를 돌리지 않고 문을 당겼다. 열리지 않는다. 문고리를 돌려 문을 당겼다. 문이 쉽게 열린다.


 "설마"


 프로듀서는 있는 힘껏 문을 당겨 나갔다.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그 아이가 있다면, 분명 대기실에 있지 않을까. 프로듀서는 대기실 앞으로 서 두 번의 노크를 했다. 그 후 방금 전, 사무소의 문을 차고 나올 때와는 다르게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미즈키의 뒷모습이 보였다.


 "미즈키."


 프로듀서는 두벅두벅 미즈키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내려다 본 미즈키는 카드 몇 장을 손바닥으로 섞고 있었다. 의도가 담긴 행동 같진 않았다.


 "미즈키."


 프로듀서는 다시 미즈키를 불렀다. 미즈키는 느리게 올려보았다.


 "프로듀서."


 프로듀서는 미즈키의 맞은편으로 건너가 의자에 앉았다. 미즈키의 표정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의 미즈키라면, 저 카드들을 아무런 생각없이 섞는 일은 없을 것이다.


 "들었니?"


 프로듀서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미즈키는 카드를 섞는 행동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알아야 했어도, 이렇게 알게 하고 싶진 않았다. 내부사정을 모른 채 최대한 좋은 여건을 얻어내 알려주고 싶었다. 프로듀서는 당장 미즈키에게 해 줄 말들을 찾지 못했다. 적막은 꽤 오래갔다. 미즈키는 손바닥으로 섞은 카드들 중 네 장의 카드를 한 장씩 프로듀서의 앞에 덮어 놓았다.  


 "프로듀서. 네 장의 카드가 있셔....죄송합니다. 혀를... 네 장의 카드가 있어요. 그 중 한 장을 선택해주시지 않겠습니까."


 프로듀서는 자신의 앞에 놓인 네 장의 카드를 응시했다. 얘가 왜 이럴까. 같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른쪽 끝에 있는 카드를 골랐다.


 "뒤집어주시겠어요?"


 미즈키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조커."


 프로듀서는 기계적으로 카드에 써 있는 영어 단어를 읽었다. 그리곤 갸웃하며 미즈키를 바라보았다.


 "조커. 그렇군요......"


 "딱히 마술은 아니었던거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52장의 카드들 중에서 제가 가지고 놀던 카드 중 네 장에 조커가 들어있을거란 생각은 못 했습니다...."


 "그러니?"


 "그리고 그 4장의 카드들 중에서도 프로듀서가 조커를 뽑을거란 것 또한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깜놀."


 "그렇구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행동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의미 없는 행동이었을까. 아무리 포커페이스가 본성이라 하더라도 이런 소식을 듣고 난 후라면 표정이 아닌 속마음까지 침착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면 자신의 속상한 마음을 이런식으로 푸는 것일까? 프로듀서는 미즈키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이 뽑은 조커를 만지작거렸다.


 "프로듀서. 아까 막 찾아본 사전적인 의미입니다만.... 조커는 게임용 엑스트라 카드입니다. 와일드 카드로도 사용이 가능하죠."


 "응?"


 "제가 부족하다는 것을 압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해보고 싶습니다. 성공하고 싶습니다. 방법을... 찾아주세요....... 부디."


 높낮이가 없는 무덤덤한 말 만큼이나 표정에도 딱히 동요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에서 간절함이 뚝. 뚝. 묻어나왔다. 프로듀서는 만지작거리고 있던 조커를 한참이고 바라보았다. 딱히 마술이 아니라 했던 말과 달리 조커의 사전적 의미까지 찾아봐 알려준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문득, 아까 전 통화 말미에 주최측에서 던진 문장이 팟 떠올랐다. 아시다시피 계약은 마카베양이 아닌 765프로와 계약이 되어 있으니까요.


 "있잖아. 미즈키. 지금 내가 머리로 판단하고 있는 걸 그대로 전달해주는거라 정리가 좀 안 될 순 있어. 미즈키의 출연이 어려울 것 같다고 했지. 안 된다고는 하지 않았거든."


 미즈키가 아닌 조커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프로듀서는 말을 이었다.


 "나도 이 스케줄에 미즈키가 출연했으면 좋겠어. 미즈키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 혼자의 출연이 어렵다면. 같이 하면 되지. 그래. 우리측도 와일드 카드를 제시할 수 있어."


 "와일드 카드라면......"


 "미즈키. 잠깐 나 좀 따라와줄래?"


 프로듀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서 걸었다. 그 뒤를 미즈키가 졸졸 쫒았다. 극장 사무소로 들어간 프로듀서는 스케줄 보드 앞에 서서 미즈키의 스케줄 당일의 다른 스케줄을 살폈다. 한 템포 느리게 도착한 미즈키는 프로듀서의 시선을 파악하고 같은 곳에 시선을 두었다.


 "하루카, 마코토, 유키호는 화보 촬영. 이오리, 아즈사, 아미, 리츠코는 지방 로케 촬영으로 이 때 여기에 없고... 마미랑 야요이도 버라이 어티 출연. 히비키 레귤러 프로그램 녹화. 그 프로그램 게스트로 타카네...... 치하야는 싱글 녹음이 있구나. 미키는...... 쉬는 날이다."


 프로듀서는 던져 놓았던 폰을 집어 들어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길게 이어져 끊어지려는 찰나에, 딸깍. 하고 전화 받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미키. 어디니?"


 - 댄스 레슨 이제 막 끝난 참이야.


 "잘 됐다. 극장으로 올 수 있니?"


 - 에에? 그냥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저기..."


 미즈키가 통화를 원하는 듯 손을 내밀었다. 미키, 잠깐만. 프로듀서는 순순히 전화기를 내 주었다.


 "호시이씨. 호시이씨를 위한 오니기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무쪼록 꼭 와서 드셔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 ...미즈키?


 "네. 미즈키입니다."


 - 음.... 오니기리 때문에 가는 게 아니라 미즈키 때문에 가는거야. 프로듀서에게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전해줘.


 "고맙습니다."


 순식간에 미키와의 통화를 끝낸 미즈키는 프로듀서를 한 번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제 나름의 뿌듯함을 표현한 미즈키의 행동에 프로듀서는 살짝 미소지었다.


 "어떻게든 불러냈습니다....... 브이."


 "오니기리는 어쩌려고?"


 "...... 편의점에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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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번 시도해봤으나 글이 계속 잘려 부득이하게 2편으로 나눠 올리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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