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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7, 2018 14:07에 작성됨.

"――아이돌에, 흥미는 없으십니까?"




겨울은 물론 꽃샘추위가 들이닥칠 날은 훨씬 넘은 달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불어오는 밤바람은 겉옷을 여며 쥐게 했다. 낮 동안 주변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사람들은 그 추위에 몸부림치며 각자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서둘렀고, 이윽고 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분해지고 있었다. 유일하게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은 건물의 빛뿐이었다.


허나 남자는 이 시간에 용무가 있었다. 젊음의 거리라고 불리는 이 장소에는 퍽 익숙해 보이지 않는, 그리고 실제로도 이런 곳에 머무를 나이는 지난 남자였지만, 그는 이곳의 지리를 잘 알고 있다는 것처럼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카페, 게임 센터, 노래방 등이 몰려있는 거리를 쭉 걸어가 옆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방금의 그곳인가 위화감이 들 정도로 풍경이 달라졌다. 낡아빠진 디자인의 술집, 허름한 포장마차, 심지어 간판마저 달지 않은 수상쩍은 건물. 마치 쇼와(昭和) 시대의 풍미를 그대로 옮겨둔 듯한 느낌이었다.


"변하질 않았군."


남자는 골목길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거리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이곳에 마지막으로 발을 들인 곳이 십여 년도 더 지났는데,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변화가 없는 모습에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그렇다면 '그 사람'도 분명히 거기에 있을 터.


골목길의 제일 안쪽에는 소박한 규모의 이자카야가 있었다. 남자가 이십여 년 전에 처음 사회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있던 집이었다. 비록 음식의 맛이 특출나진 않고 손님의 왕래도 그리 잦은 집은 아니었지만, 그 특유의 분위기는 마음을 내려놓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기에 그가 단골로 출입하던 곳이었다.


그렇기에 '그 사람'도 이 이자카야를 선택한 것일 터였다. 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장소였으니까. 이곳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곳에서 끝났으니까.


하지만 남자는 쉬이 발을 들일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오만가지 상념이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날 찾은 것일까?', '어째서 날 찾은 것인가?', '무엇 때문에 날 찾은 것인가?'


한참 동안 이자카야의 미닫이문을 내려다보던 남자는 이내 각오를 다지듯 눈을 꾹 감았다.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이 이상 나아갈 수 없었으니까.





"어서 오세요."


들어서자마자 날 반겨주는 것은 직원의 목소리였다. 그래도 사람을 계속 고용하긴 하는 것일까, 십여 년 전의 사람과는 다른 얼굴이었다.


"예약한 방이 있습니다만."

"어머, 그러세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예약 명부를 뒤져보던 직원에게 눈을 돌려 이자카야의 안을 둘러보았다. 그때에도 그랬지만, 이 집은 너무나도 한산하다. 손님으로 온 사람이 너무 적어 손가락으로 셀 수도 있을 정도였다. 이런 매출로도 어떻게 이십년 씩이나 버티고 설 수 있는 것인지.


하지만 이렇게 고요한 분위기야말로 이 가게의 특징이자, 내가 이 가게를 단골로 정했던 이유였다. 처음엔 불평했던 그 녀석도 어느샌가 이곳에 푹 빠져, 나중엔 여기가 아닌 회식 장소는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했을 정도이니까.


"이쪽으로 와주세요."


직원은 총총 걷는 걸음으로 나를 안내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 방. 특별히 우리 전용 자리라고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회식을 할 때는 반드시 이 방을 골랐다.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그 안에는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십여 년 전, 나의 후배이자 부하, 때때로는 친구기도 했던 그 녀석.


"오, 오오! 선배님, 안녕하세요!"

"취했나? 얼굴이 달아올랐군."

"반가워서 그렇습니다, 반가워서."


그리 신뢰는 가지 않는 말이었다. 상 위에는 벌써 빈 사케 병이 두 병 정도 굴러다니고 있었으니까. 주량은 그렇게도 약하면서, 술을 마시는 건 참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묘하게 히죽거리는 얼굴로 내게 잔과 병을 건넸다.


"오랜만에 한 잔 마시죠. 제가 따라드리겠습니다."

"됐어. 내가 손이 없나, 발이 없나."

"부탁드립니다. 따르게 해주지 않는다면 바닥에 엎어져서 울 겁니다?"

"나잇값 좀 해."


결국, 그의 억지에 이기지 못하고 잔을 내밀었다. 시간이 그리 많이 흘렀으면 조금 버릴 법도 한데, 그 유치함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배시시 웃는 얼굴로 내게 술을 따라주곤, 이어서 자기 잔을 들어 보였다.


"건배하시죠."

"……건배."

"건배!"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잔이 부딪치기가 무섭게, 그는 술을 한 번에 들이켰다.


"크으, 역시 여긴 술맛은 꽤 좋아요. 그렇죠?"

"변한 게 없군. 그렇게 촐랑대는 모습하고는."

"평소에는 안 그래요. 이래 봬도 실적도 신뢰도 우수한 사회인이라고요?"

"지금 내가 보는 녀석은 그때의 풋내기 그대로인데 말이지."


아무렴 어때요, 그 말을 자연스럽게 흘리고는 그는 젓가락으로 안주를 집어 먹었다. 내가 오기 한참 전부터 자리 잡고 있었는지, 벌써 안주 접시가 몇 개씩이나 쌓여있었다. 호리호리하게 생긴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였지만, 그의 식성은 변함이 없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 변함이 없었다. 그의 목소리, 얼굴, 몸짓, 성격, 분위기. 전부 그대로였다. 빛이 바래고 쉬어버린 나와는 다르게, 그는 여전히 현역이었다.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할까. 어떻게 날 찾아냈나?"

"말도 마세요. 선배님 찾아내느라, 제가 얼마나 기를 썼는지 아십니까? 아는 정보통을 총동원하기도 하고, 옛날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한테도 물어보고, 하여간. 무슨 탈주 닌자인 줄 알았다니까요."

"완벽히 정리했으니까. 그때 이후로 나와 연락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왜 그렇게 떠나신 겁니까?"


그의 질문에 순간 입술을 깨물었다.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지 않나, 그렇게 소리칠 뻔했다. 이 분노는 온전히 나에게만 쏟아야 하는 것인데, 관계도 없는 그에게 화를 내봐야 아무 소용도 없었다. 자괴감만이 커질 뿐이겠지.

그의 눈을 무심코 쳐다봤다. 취기로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었지만, 그 눈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직도, 아니, 십여 년 전보다도 더욱 빛나는 총명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반대로 그의 눈동자에 비친 나는, 수척해지고 녹슬어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는 처량한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을 보기가, 내 얼굴을 보기가 괴로워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괴로워하고 계시는 겁니까?"

"난 잊은 적 없어. 잊을 수도 없고, 잊고 싶지도 않아."

"그건 선배님 탓이 아니었잖아요?"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내게도 한때는 그와 같은 의욕이 있었다. 무슨 일이든 전심전력으로, 할 수만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작고 큰 일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 나머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불 속에 몸을 던졌을 때, 나와 같이 묶여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또한 잊고 말았던 것이다. 불에 타 나와 사람들을 묶던 끈이 끊어졌을 때, 나는 혼자 도망쳤다. 그들을 구하려 하지도, 같이 불타 죽으려 하지도 않고, 그저 제 몸보신 하나 하겠다며 도망치고 말았다.

이제 나를 비추던 빛은 어디에도 없어졌고, 그을음만 남아버린 것이 지금의 나였다.


"……왜 나를 불렀나?"


두 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그럼 그가, 어째서 나를 찾은 것일까? 이 초라한 남자를, 인제 와서 무슨 필요가 있다고 찾은 것일까?


"선배님, 346 프로덕션이라고 아시나요?"

"……? 대강 안다만."


346 프로덕션. 엔터테인먼트 계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초대형 기획사.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지사를 두고 있으며, 막대한 자금력과 뛰어난 수완으로 인해 과거부터 346 프로덕션에 입사하는 것은 예능계의 사람이라면 꿈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기업이다.

오죽 그 위명이 뛰어나, 연예계 소식에 대해서는 한참이나 거리를 두고 있던 나조차도 그 이름이 신문이나 TV에 오르내리는 것을 몇 번이나 봤을 지경이다.


"그럼, 346 프로덕션이 무슨 사업에 손대고 있는지 아십니까?"

"글쎄. 그쪽에는 손 떼고 산 지 오래라."

"346 프로덕션은 원래 모델, 배우, 탤런트 분야에 주력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최근에, 아이돌 부문까지 사업을 확장하기로 했죠."

"그래서?"

"훗,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저, 346 프로덕션의 아이돌 프로듀서입니다."

"……호오?"


자신만만한 얼굴을 한 그는 품에서 명함을 꺼냈다. 건네받은 명함에는 '346 프로덕션 아이돌 사업부 차장'으로 거창하게 쓰여있는 직책명과 그 밑에 적힌 이름, 그리고 연락처가 보였다.

아무래도 그는 그 굴지의 대기업이라 불리는 346 프로덕션의 정사원임은 물론이고, 심지어 꽤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어리바리했던 그 신입의 모습은 아닐 것일 터였다.


"출세했군."

"성공한 부하에게 축하의 말은 그게 끝인가요?"

"내가 더 이상 네 상사는 아니지 않나?"

"선배님은 제게 있어서 영원한 선배님인데요?"

"아부하는 솜씨도 늘었군."

"너무하네요―."


살짝 토라진 표정과 목소리로 칭얼거리는 그를 뒤로하고 명함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덤덤하게 반응한 이유는 그뿐은 아니었다. 언젠가 그가 이런 자리에 앉게 될 것을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상사로서, 그의 동료로서, 그의 친구로서 옆에서 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가 이렇게 될 것이란 사실은 쉽게 예측할 수 있었으리라.

그 사건 이후 내가 프로덕션에서 도망치듯 퇴사한 이후에도, 그는 회사를 떠받치기 위해 가공할 노력을 해왔다고 들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에는 '기대주' 취급을 받던 남자의 직속 후배이니, 그 타이틀은 자연스레 그에게 넘어왔을 것이니. 어쩌면 내가 퇴사함으로, 그는 날개를 펼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재능과 열정과 노력은 부족한 누군가의 밑에서 썩히기는 너무나도 아까웠으니까.

물론 그 부족한 누군가는, 바로 나다. 그렇기에 그의 지위에 시기도, 부러움, 대견스러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그저 제 자리를 찾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선배님."

"?"


그의 발언이 나옴과 동시에, 일순간 공기가 무거워졌다. 덧붙여 그의 표정 또한 어느 때보다 진지해졌다. 흔히 말하는 일 모드라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 표현하기에는 다른 진중함이 방 안을 감쌌다.




"――아이돌에, 흥미는 없으십니까?"





"…………."

"…………."

"………뭐?"


싸늘함이 느껴지는 정적을 깬 것은 탈력적인 되물음이었다.


"그러니까, 아이돌에 흥미는 없으시냐고 물었습니다."

"나도 들었어."


예능 계열, 특히나 아이돌 부문에 몸 담고 있는 프로듀서라면 한 번쯤은 말해본 적이 있는 그 말. 프로듀서의 직책을 가진 남자가 이 말을 하며 스카우트를 시도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상대가 누구인가에 따라 그 분위기는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마련이다.

가령, 어딜 봐도 세월의 흐름에 맞부딪힌 중년의 남성에게 한다면――그 어색함은 가히 시공간을 뒤틀 정도의 파괴력을 지닐 수 있다.

남자는 초점없는 눈을 한참 후배와 명함에게 번갈아 돌리다가 물었다.


"……제정신인가?"

"저는 진심으로 묻고 있는데요?"

"……취했나?"

"멀쩡한데요."

"어딜 봐서?"


남자는 답답한 마음에 곁에 있던 사케를 병째로 한 숨에 들이켰다. 입 안에서 한꺼번에 쓴맛이 들이닥쳤지만, 이 도를 넘은 혼란스러움에 나가버린 정신을 일깨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필사적으로 저었다.


"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제 연줄을 조금만 활용한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을 텐데요……."

"이상한 데에다가 연줄 쓰지 마. 나같은 놈을 왜 쓰려고 하나?"

"그러기 위해서 선배님을 백방으로 찾아다닌 거에요."

"넌 도대체……."


남자는 기가 막혀하며 술을 다시 들이켰다. 한 병이 가득 남아있던 사케는 단 두 번만에 바닥나고 말았다. 이런 그의 격앙된 반응에도 불구하고, 후배는 무엇이 잘못 됐는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 듯 불안한 눈빛만 보였다. 어떻게 보면 필사적인 분위기였다.


"너한테 그런 취미가 있는 줄 몰랐어."

"예에?"

"마흔도 넘은 아저씨를 스카우트 하겠다고? 아이돌 사업 부문이 막 태동했다고는 하지만, 너무 사람을 가리지 않고 가져다 쓰지 않나?"

"그렇지만, 선배님과 다시 일하는게 제 꿈입니다."

"네 꿈이 그렇게까지 뒤틀린지는 몰랐어."

"뒤틀리다뇨? 선배님은 실력도 있으시잖습니까?"

"그래서, 넌 내가 이 나이 먹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바라는 거냐?"

"에, 예? 네? 무슨…… 아. 아, 아아!"


선배의 힐난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던 그는, 이내 자신들의 발언을 되돌아보고는 황급히 손을 저어 그 이상의 말을 제지했다.


"아니, 아니, 그 뜻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요."

"그럼 또 뭐야?"

"아이돌에, '더 이상' 흥미는 없으십니까? 라고 묻고 싶었습니다."

"뭐라고?"


점점 알 수 없는 말에 선배는 심기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후배는 그런 선배의 눈치를 살피며, 하지만 방금보다는 분명하고 또렷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말 그대로입니다. 선배님, 저와 함께 다시 프로듀서로서 일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아이돌 스카우트보다 더 터무니 없는 말이군."


권유를 들은 남자의 표정은 더더욱 굳어갔다. 더불어 그의 목소리에는 희미하게 분노의 빛이 서려있었다.

이 반응을 어느정도 예상하기는 한 것인지, 후배는 차분히 계속 말을 이어갔다.


"지금 346 프로덕션에게는, 저에게는, 그 아이들에게는 선배님이 필요합니다. 선배님 같은 등대가 필요해요."

"너, 정말 잊은 거냐? 내가 했던 짓을?"

"그건 선배님 탓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아니면서 멋대로 단정짓지 마. 난 실패했고, 모두를 상처입혔다. 그런 내게 속죄의 기회라도 주겠다는 거냐?"


남자의 얼굴이 울긋불긋 달아올랐다. 한꺼번에 들이킨 알콜이 몸을 지배해버린 것인지, 아니면 애꿎게 기억난 과거로 인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그는 다소 난폭한 말을 서슴지 않았다.


"난 다시 누군가를, 아이돌을 돌볼 자격이 없다. 너도 알지 않나?"

"아니요. 선배님이야말로 그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에요."

"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선배님을 제일 가까이서 봐왔으니까요. 선배님이 무슨 마음을 가지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 아이들을 대했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과열된 방 안에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어색한 침묵.

먼저 침묵을 깬 것은 후배였다. 그 소리는 비록 조용했지만 듣는 이의 귀에 쿡쿡 눌러박히기에 충분했다.


"알고 있습니다. 선배님이 과거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을. 하지만, 선배님. 전에도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지나간 일은 뒤돌아보지 말고,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과 눈 앞에 펼쳐질 미래에 집중하라'고."

"……."

"선배님, 전 그 말을 그대로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돌아보지 말고 걸어갑시다. 같이, 미래를 보여줍시다. 지금도 빛을 기다리고 있는 그 아이들을 위해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후배는 내팽겨쳐진 명함을 주워 건네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그런 그의 모습을 멍하니 올려다보기만 했다.


"지금은 제가 억지로 권해봤자 좋을게 없겠죠? 만약, 그럴 마음이 드신다면 꼭 연락해주세요. 기다리고 있을테니."


남자는 우두커니 앉아 후배를 떠나보냈다. 명함에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눈을 감으면 때때로 그때의 광경이 재생되고는 한다. 처음 입사하여 의욕을 불태우던 때, 담당 아이돌과 2인3각을 하며 달려갔던 때, 모두의 신뢰를 받으며 일하던 때, 그리고…… 그 모든 것에서 도망쳤던 때.낙인과도 같다. 영겁의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그런 흉터와도 같다. 

나는 이 낙인에 평생 파묻혀 살리라 다짐했다. 다시는 어줍잖게 빛의 세계로 나가지 않기로 몇 번이고 되뇌였다.

이 명함을 받기 전까지는.


'만약, 그럴 마음이 드신다면 꼭 연락해주세요. 기다리고 있을테니.'


고민의 고민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과연 내가 이 제안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인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그때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것인지.

명함을 쥔 손가락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후우……."


이것으로 네 개피째다. 줄담배는 평소 몸에 잘 안 받는 편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내 신체도 용인해주는 듯 싶었다. 힘없이 바람에 흩어지는 연기가 저 반짝거리는 야경에 사라지는 것이 나를 보는 듯했다. 빛에 도달하고 싶으나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미약한 모습.


"돌아보지 말고 걸어갑시다, 라."



"프로듀서, 전 정말 안 될 아이인거 같아요."

"무슨 섭섭한 소리야."


소녀의 눈에 당장이라도 터져나올 듯한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렇지만, 저, 이번에도 완전히 실패해버려서……."


레슨은 그리 착실히 넘어가면서, 실전에 서면 긴장하여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이 그녀의 약점이었다. 이번을 합해 벌써 세번이나 무대에서 음이탈을 내버리고 말았다. 관객의 호응도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크게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음은 사실이었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았을 뿐이야."

"그렇지만, 그렇지만 저, 예전에도 지금도 계속 실수만 해서……."


소녀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더니, 이윽고 온 신경을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작아졌다. 한두번의 실수야 용인한다고 쳐도, 이렇게나 계속 실수를 연발하게 되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위축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이라는 직함을 달고, 특기 분야인 노래를 연속으로 실수하게 된다면 그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리라.

고개를 푹 숙이고 소리 죽여 울고 있는 소녀를 보았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필요한건 자신감이었다. 턱,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고 살살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엣……?"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거야.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그, 그렇지만……."

"이미 공연은 끝났잖아? 지나간 일은 뒤돌아보지 말고,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과 눈 앞에 펼쳐질 미래에 집중하자."

"제가, 그런 미래를 볼 수 있을까요?"

"물론. 다만, 그 미래를 보고 싶다면 길을 걸어가야해. 이렇게 갈 걸, 이라며 후회하며 뒤돌아보기만 한다면 결코 보이지 않아. 반대로 의지를 갖고 나아간다면, 어떤 장애물이나 벽이 널 가로막아도 반드시 넘어 밝은 미래가 보일 거야."



"잘도 입을 놀렸군, 그때의 난."


어느새 필터까지 도달한 담배불을 끄곤 적당히 창문 바깥으로 던져버렸다.

그 과거를 떠올리자 문득 자신이 우스워보였다. 그렇게 있는 척 말을 해놓고는, 정작 지금의 자신이 지나간 길을 돌아보며 후회만 하고 있지 않는가? 만약 그 아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웃어버리고 말 것이 틀림없었다.

그때의 내가 보고 싶었던 미래는, 톱 아이돌이 된 그 아이가 만인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미래였다. 자신이 키운 아이돌이, 모두의 동경과 축복을 받으며 세상을 누비는 미래가 보고 싶었다.


"돌아보지 말고 걸어갑시다. 같이, 미래를 보여줍시다. 지금도 빛을 기다리고 있는 그 아이들을 위해서."


만약 기회가 있다면, 빛나는 미래를 동경하는 아이들에게 그 미래를 선사하리라. 빛의 세계로 나서지 않겠다며 스스로에게 최면 걸듯 말하면서도, 틈을 타 비집고 들어오던 한 줄기 욕망이었다.

지금이, 그 기회를 붙잡을 때인 것 같았다.


"……늦은 시간에 미안하지만, 염치불구 좀 해볼까."


침대 위에 대충 던져놓은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안녕하세요! 아이커뮤에 처음으로 글을 써보는 신입p입니다.

구상 자체야 아주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습니다만, 왠일인지 오늘은 필이 와 슥슥 적어본 글입니다... 부족한 필력이겠지만 부디 넓은 아량으로 보아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묘사를 애매모호하게 하여 타임라인이 조금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메인이 되는 프로듀서의 연령대는 못해도 40대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20여 년전부터 프로듀서 일을 시작했고, 몇년 뒤 후배를 만나 의기투합하다가, 30대쯤 되는 때에 사건을 겪어 은퇴한 뒤로 10여 년동안 죽은 듯이 지내다가 어렵사리 복귀하게 된 설정입니다. 정확한 나이는.. 으음 글쎄요 여러분이 마음껏 상상해주세요!


연재 주기는... 완전 랜덤입니다... 저는 필이 와야 글을 쓰는 글러먹은 성질인지라 1주일 내에 쓸 수도 있고 한달 내에 쓸 수도 있고 1년이 되어야 쓸 수도 있고 어쩜 아예 안 쓸 수도 있어서... 글러먹은 정신이란걸 알기에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피드백과 관심과 덧글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사랑해요.


졸작정신을 버리지 못해 마구 써버린 결과 개연성이 날아가버린 부분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피드백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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