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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 「하루카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어」 -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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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4, 2018 23:52에 작성됨.

* 이걸로 완결입니다. 지난 글 목록


"내일부터는 정말 레슨이 있는 거니까 까먹으면 안된단다. 알았지?

"네, 네에. 명심하겠습니다. 치하야 쨩은 집에 안 가?"

"조금 더 있다가 갈까 해서."

"아.....그래."


그런 지 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무렵이 되어, 하루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이 워낙 멀기도 하고 또 너무 집에 늦게 들어가면 어머니가 걱정하신다는 이유다. 어머니가 걱정하신다라. 그렇구나. 확실히, 저게 정상이겠지. 이쪽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그, 그럼 먼저 가볼게. 안녕 치하야 쨩. 아, 코토리 씨도 안녕히 계세요."

"잘가렴 하루카 쨩. 아, 그렇지. 오늘 있었던 건 절대 리츠코 씨에게 비밀로 해주기야. 알겠지?"

"후후후, 글쎄요. 그건 코토리 씨의 태도를 봐서.....뭐, 농담이랍니다. 저 아마미 하루카, 비밀은 확실하게 지킨다구요?"


자, 그러면 진짜로 가볼까나. 모두 내일 봐요! 그렇게 외치며 씩씩하게 사무소를 떠나는 하루카에게, 나는 작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쿵, 하고 기세 좋게 닫히는 사무소의 낡은 문. 멀리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추가로 들린 것 같았지만 단순한 착각이겠지. 응. 그럴 거야. 나는 닫힌 문에게서 고개를 돌려 탁자를 보았다. 오토나시 씨는 어느 순간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뒷정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앗, 그, 저어.....오토나시 씨, 저도....."

"괜찮아."


이쪽도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같이 하려고 했지만, 앗하는 사이에 내 몫이었던 잔까지 뺏겨버렸다. 별로 고맙지만은 않은 배려였지만, 이렇게 된 이상 거기에 좀 기대보기로 할까. 오토나시 씨가 설거지를 하러 탕비실로 가버린 사이, 나는 자리에 도로 앉아 멍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한 사람 줄어들었을 뿐인데, 그만한 분량보다도 훨씬 더 가라앉은 듯한 사무소의 분위기. 하지만, 그와 다르게 내 마음은 조금씩 끓고 있는 물 같았다. 뻐끔뻐끔 올라오다 사라지고, 다시 또 올라오기를 반복하는 걱정과 불안과 기대라는 이름의 기포들.


그런 불안정한 상태 그대로, 나는 하루카가 일방적으로 쏟아낸 것에 가까웠던 회화를 다시끔 곱씹어본다. 새로 생긴 악세서리 가게. 거기에 있었던, 푸른색 리본 한 쌍이 계속 눈에 띄었다고 했었지. 하루카는 그게 갖고 싶었던 듯 했다. 그런데, 그걸 왜 굳이 나한테 이야기한 거지? 그럴 필요 같은 게....앗, 설마. 하루카는 그 리본을 내게 받고 싶었던 걸까?


잠깐, 그렇다면 하루카는 내가 생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온 몸의 털이 쭈삣 서는 듯한 감각에 몸서리를 쳤다. 어쩌지. 정말일까. 서프라이즈 계획은 실행하기도 전에 물거품이 되고 마는 걸까. 그럴 리가. 그, 그렇지는 않을 거야. 아니, 기다려. 오토나시 씨가 슬쩍 알려줬을 수도.....? 아니, 아니야. 아무리 오토나시 씨라도 그런 극악무도한 짓은 하지 않을 거야. 응. 그러니까, 이건.....잠깐 보류. 생각하면 할수록 확신이 되어가는 가정에게서 도망치던 나는 신경쓰이는 또 다른 점으로 급히 주의를 돌렸다.


그래. 하루카는 굳이 왜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한 걸까.


어쩌면 일부러 선물해줬으면 하는 걸 슬쩍 알려준 걸지도 모르겠네.


이쪽이 따로 뭔가를 준비하기 전에, 미리 선수쳐서.


괜히 허튼 짓 하지 않도록.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했지만.....스스로 생각해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네거티브하고, 말도 안되는 쪽으로 사고가 전개되고 있었다. 나는 정도를 모르고 툭 튀어나와버리는 모난 생각들을 타일러 본다.


아니야. 진정해. 하루카가 그런 아이일 리가 없잖아. 그런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잖아.


그래. 그 애를 상처입혀가면서 말이지.


하지만 돌아온 것은, 여전히- 아니, 그보다도 훨씬 비꼬임 섞인 대답. 순간 가슴이 따끔하나 싶더니, 곧 주변으로 쓰라린 아픔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확실히, 나는 그 말을 전혀 부정할 수 없었다. 그 때 하루카한테 심하게 굴어서, 결국 울려버리기까지 했잖아. 다른 모두한테도 짜증을 부렸고. 일단, 그에 대한 사과를 했지만. 그래도.


이런 내가 정말로 하루카의 생일을 축하해줘도 되는 걸까.....


조금 차올랐다고 생각했던 자신감은, 그저 모래성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무너져내리기 시작하는 그것. 그냥 싹 다 포기하고 없던 일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대신 자리를 차지해나간다.


나 말고도 하루카를 진심으로 축하해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


그렇다고 해도, 나는.....하루카를.....그 애의 생일을.....축하해주고 싶은데.


거기에 완전히 붙들려버리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을 때. 조금씩 다른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어깨가 조금 흔들렸다. 뭐지. 그 모든 자극을 가한 이를 찬찬히 스캔하고, 둔해진 머리로 정체를 파악한다. 아.....오토나시 씨네. 뒷정리, 전부 끝내신 건가. 그렇다 해도 조금 이상해보인다. 마치 뭔가를 참고 있는 듯한.....


"푸훗, 우후후훗, 쿠훗."


아, 잠깐. 뭐야. 왜 웃으시는 거지? 내 얼굴에 뭐 묻었다는 것도 아닐 텐데. 어째서? 순간 어리둥절했던 나는 주춤주춤 그 이유를 물어보기로 했다.


"저, 저어....뭐가 그리 우스우신 거죠?"

"아니 그냥, 치하야 쨩이 너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보여서. 원래 웃으면 안되는 건데, 그치만. 어쩔 수 없었다구."

"그렇게 웃긴 건가요, 제 얼굴이?"

"손에 거울이 들려있었다면 바로 보여주고 싶을 정도였어."

"큿, 그렇습니까."


정말,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람? 이유를 들어도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내게, 이번에는 오토나시 씨가 질문을 던져왔다.


"그래서 정할 수 있었니?"

"네?"

"후후, 알면서." 

".....오토나시 씨가 꾸민 일이었나요."


지금까지 오토나시 씨를 잘못 보고 있었던 것 같네요. 제가 몰래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하루카에게 귀띔을 하고 싶었나요. 그동안 소모하지 못했던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한순간에 어떤 누군가를 향한 원망으로 탈바꿈되는 순간이었다.


"뭐, 뭐니, 그 흑막은 당신이었군요! 하는 식의 말은. 나, 나는 딱히 하루카 쨩에게 치하야 쨩이 정말 고심해서 생일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은 죽어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 원망과 최소 직선거리로 맞닿아있는, 아니, 원망을 받아야하는 어떤 누군가 그 자체가 되시는 오토나시 씨는 손사래를 치며 어떻게든 도망칠 구석을 찾았다. 그렇지만 이미 늦었어.


"어쨌든 당신인거죠?"

".....처음부터그러려고했던것은아닌데하루카쨩하고이야기하다보니적당히힌트정도는빼오면어떨까싶어서삐요삐요."


그런다고 해서 제가 기뻐할 줄 알았나요. 그렇게 쏴붙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결국 내뱉지는 못했다. 마음의 한구석에서는 귀중한 정보 get! 하며 환호하는 자신이 분명 있었거든. 조금 분하지만.


"어, 어쨌든 하루카 쨩은 정말 모르고 있는 모양이야."

"......"

"그, 믿어줬으면 하는데."

"......"

"화, 화이팅! 치하야 쨩!"


그런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 급조했을 뿐인 응원에 갑자기 고마움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는다. 불신과 원망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자 오토나시 씨는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는가 싶더니, 곧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치하야 쨩은 요즘 자취하고 있다고 했었지?"

"뭐, 그렇게 되었네요."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그러는 거군요. 정말, 당신이라는 사람은. 일단 대답 정도는 해두고 있자니, 오토나시 씨는 조금 과장된 어투로 대화를 어떻게든 이어나가려고 했다.


"힘들겠네~"

"아니요, 그렇게까지는. 실은, 오히려 지금이 더 편한 걸요."

"그러니? 그렇지만 여자애가 혼자서는.....아니 이건 어쩌면......후후후, 우후후후....."

"저어, 이번에는 뭐가 또 우스워서 그러시는 건가요."

"치하야 쨩!!!!! 이건 찬스야!!!!!"

"네?"

"그 날이 되면 슬쩍 하루카 쨩을 집으로 초대하는 거야. 그리고, 그리고는.....안 돼, 안 돼 코토리! 아직 이 애들에게는 너무 일러!"

".....하아?"


이상하네. 오토나시 씨, 오늘따라 영 종잡을 수 없는 언동을 보여주고 계시는데. 갑자기 기분나쁜 웃음을 흘리신다든가,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치신다든가. 그러다가 또 돌연 고개를 맹렬하게 젓는다든가. 뭔가 말을 걸어보려고 해도 전혀 소통이 되지 않을 것 같아보여서, 대신 벽면의 시계로 눈을 돌렸다. 앗, 벌써 이렇게나 시간이. 이쪽도 슬슬 나가보는 게 좋겠는 걸.


"그렇지만 사랑에는 꼭 정답이 있다는 건 아니니까.....그래, 앗하는 사이에 이어질 수도 있는 법이고.....아니, 이 경우는 진작에 이어졌고, 서로의 확인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일지도!?!?!?"

"오토나시 씨, 먼저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나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오토나시 씨를 내버려두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물론 사무소와 집 사이에는 조금 다른 곳들이 끼어들 예정이긴 했지만.


.....


이걸로 모든 게 갖추어진 걸까.


케이크, 꽃다발, 그리고 작은 선물 하나.


이걸로 정말 모든 준비를 끝냈다고 할 수 있을까.


생일 축하의 삼신기라고 할 수 있는 걸 모두 갖추고도, 나는 여전히 고민하고 있었다. 


부족해.


아까부터 그 생각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다.


물건만이 성의를 보이는 전부는 아닐 것이었다. 하지만, 성의를 표할 수 있는 최소한의 레벨은 있지 않을까. 적어도 잡동사니 하나 던져주고 축하를 논할 수는 없을 테니까. 지금 이렇게 손에 쥐어보고 있는 꽃다발은, 그 최소한의 레벨이라도 충족시킬 수는 있는 걸까? 미리 예약해둔 케이크를 찾아서 더해본다고 해도 역시 부족할 것 같아. 추가로 준비한 선물이라는 것도, 어딘가 좀.....여기서 뭘 더해야 최소한의 레벨을 채울 수 있는 거지? 아니, 그 최소한의 레벨이라는 건 과연 뭘까? 생각하면 할 수록 혼란만이 가중되는 가운데, 유일하게 명확함을 지키고 있는 단 하나의 것. 그것은.....


이걸로는 아직, 부족해.


그래, 그랬다. 정말, 어쩌면 좋은 거야!? 해결법을 찾아 머리 속을 떠도는 지식이며 기억을 샅샅이 뒤지고 있자니, 어딘가에 박혀있었던 오토나시 씨의 목소리가 돌연 재생되기 시작했다.


- 슬쩍 하루카 쨩을 집으로 초대하는 거야.


라니. 안된다고. 이 곳, 내가 살기에는 지장없지만 그, 역시 남들에게 보여주기에는 탐탁치 않다고 해야할까.....그리고, 아무리 나라고 해도 남들이 좋아할 만한 것과 좋아하지 않을 만한 것들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 TV도 게임기도 없는, 있는 거라고는 음반들과 책 몇 권 정도밖에 없는 이 곳을 하루카가 좋아해줄 리가 없잖아. 가능하다면 음악이라도 같이 들으며 감상을 나누거나 했으면 좋겠지만, 하루카 같이 평범한 아이로서는 잠깐 어울려주는 것만으로도 고역일 거야.


"하아....."


그러니까 역시 안 돼. 나는 도리도리 고개를 젓고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괜히 포장된 리본을 만지작거려봤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해서 그것도 곧 그만두었지만.


성의를 표할 수 있는 최소한의 레벨이 있다고 해도, 역시 물건만이 성의를 보이는 전부는 아닐 것이었다.


방금 전 생각을 거꾸로 돌려본다. 그렇지. 아무리 값비싼 물건이라고 해도, 거기에 상대를 위한 마음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 그렇다면.....지금 느끼고 있는 부족함이라는 건, 물건으로는 채울 수 없는 종류에 속하고 있을지도.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나는 겨우 찾아낸 실마리를 쫒아가기로 했다.


역시 집에 초대해야하나!


.....이라니. 좀 전에 폐기했을 게 분명한 억지가 왜 다시 살아나는 거야!? 순간 주의가 그쪽으로 튀어나가려는 걸 겨우 붙들어매가면서, 생각을 달리게 한다. 마음이 중요해. 중요한 건 마음. 축하하는 마음. 하루카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어. 단순한 보답을 위해서만이 아니야. 하루카가 만약 내 생일을 축하해주지 않았더라고 해도, 나는 하루카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어! 이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역시.....!


노래가 아닐까!?


네, 그렇습니다. 애초에 내겐 노래밖에 없는 걸.


어디까지나 사실을 적시하는 것인데도. 지금까지 후회한 적 없었는데도. 어째서인지 아주 조금, 후회가 들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마저도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까 언급했듯이, 내게는 노래밖에 없다.


그러니 할 수밖에 없어.


바로 결심을 굳힌 나는 어떤 노래를 부를지 생각해본다. 확실히, 생일에 관한 노래는 많지. 그렇지만 가장 심플하면서도 생일을 축하한다는 목적에 부합하는 것은 역시 단 하나라고 생각해. 나는 조금 숨을 가다듬고는, 시험삼아 작게 그것을 불러보았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당신의....."


끝까지 다 부르기 전에도 귀 끝까지 빨갛게 열이 올라왔다. 


"....해피버스데이 투 유- 해피버스데이 투 유- 해피버스데이 디어 하루카....."


혹시나하고 원곡을 불러봐도 상황은 똑같았다. 영어라면 조금은 덜 부끄럽지 않을까 생각했는데....틀렸어....다른 노래를 불러볼까했지만 곧 그만두었다. 생일에는 역시 이거야. 이거 아니면 안 돼. 그 생각만이 확고하게 내 자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역시....하는 수밖에 없어."


여전히 식지않은 머리로, 나는 주먹을 꾹 쥐고는 결심했다.


.....


그런지 며칠이 지나, 드디어 결전 당일의.....상당히 이른 아침.


현재 나는, 사무소에 있다.


원래 이 시간대라면 문이 잠겨있어서 들어오지 못했지만, 이미 이쪽의 사정을 알고 있는 오토나시 씨의 조력을 받아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조력이라고는 해도, 그냥 사무소 열쇠를 빌려준 정도였지만. 항상 여벌 키를 가지고 다니는 타카츠키 씨가 벌써부터 와있거나 하면 어쩌지하고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후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종이상자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품에 쏙 들어올 정도의 크기. 희미하게 풍겨오는 달콤한 냄새. 정체는, 전에 예약해두었던 케이크. 하루카가 뭘 특별히 좋아하는 건지는 몰라서, 일단 무난해보이는 걸로 하나 골랐는데....괜찮을지 모르겠네. 나는 손잡이가 달려있는 곳의 투명필름을 통해 상자 안쪽의 내용물을 들여다보았다. 다행히 별 이상은 없어보였다. 후후, 조심조심 들고온 보람이 있네.


나는 미지근한 웃음을 지으며 같이 들고온 꽃다발 확인에 들어갔다. 벚나무 가지를 몇 개 꺾어서 묶어둔 정도인 그것은 그렇게 큰 하자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괜찮다는 건 또 아니었다.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 일찍 가져와버렸다고 해야할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쭉 집에 놔뒀던 탓인지, 조금 시든 것처럼 보여. 처음 맡아봤을 때 느꼈던 벚꽃 향기도 전부 날아가버린 것 같고. 이것도 예약만 걸어두었다가 나중에 찾아왔어야했는데. 뒤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었다.


어쩔 수 없네. 조금 올라가있었던 입꼬리가 축 내려앉는 걸 자각하면서, 나는 케이크 상자 옆에 꽃다발을 놔두고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리본을 꺼내 들여다보았다. 이상 없다. 어딘가 불량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불안했다. 하루카가 말했던 게 정말 맞을까. 그만 다른 걸 사와버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갑자기 또 떠올랐다. 어제 밤, 잠을 설쳐가면서 이게 맞을 거라는 결론을 겨우겨우 내렸는데 말이지.


아아, 정말, 뭐야!


기껏 모든 걸 준비했는데, 막상 이렇게 두고보니 차라리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쪽이 훨씬 더 나아보이잖아!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부 챙기고 돌아가버릴까. 하루카의 생일을 축하해줄 사람은 분명 많을테니까. 굳이 나한테까지 축하를 받지 않아도.....뭉글뭉글 피어오르는 그 생각을, 나는 고개를 붕붕 저어 필사적으로 꺼트렸다.


- 갑자기 이런 메일을 보내게 되어서 미안해 하루카. 부탁인데, 오늘만큼은 아침 일찍 사무소에 나와주면 안될까? 조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기다리고 있을게.


왜냐면, 하루카에게 어제부터 미리 메일을 보내놓고 말았으니까. 거기다 그러겠다는 답신마저도 받아버리기까지 한 것이다. 자기가 부른 주제에 도망치겠다니, 그건 정말 해서는 안되는 짓이야. 어떻게 보면 스스로의 무덤을 파버린 꼴이 된 이 상황에, 나는 애꿎은 꽃다발의 포장지를 계속 만지작거리며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했다.


그런 지 약 몇 분 후. 나는 한숨을 푹푹 쉬며 벽면에 걸린 시계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아, 이러고 있으면 안되는 시간이네. 거기다 그러고보니 불을 키는 것도 잊고 있었구나. 시야로 들어오는 풍경에 조금 회색톤이 덧붙여져있다는 점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뭐, 괜찮은가. 창문으로 햇살이 조금씩 들어와서인지 그렇게 어두운 편도 아니고. 그리고 서프라이즈 파티는 보통 불을 다 꺼놓고 시작한다고들 하니까. 나는 멋대로 납득해버리고는 굳게 닫혀있는 낡은 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 문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반투명한 유리에 곧 사람의 그림자가 슬쩍 비칠 것이었다.


슬슬 케이크를 꺼내놓아야할 때다. 나는 탁자에 놓인 상자를 풀고, 조심조심 내용물을 꺼냈다. 먹어버리는 게 조금 아까울 정도로 멋드러진 생크림 케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이 손으로 직접 만든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카가 좋아해줄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용기를 얻은 나는 조속히 상자 겉면에 붙어있는 작은 종이봉투를 떼서 숫자 모양의 생일초를 꺼냈다.


1과 7. 오늘로 맞이하게 될 하루카의 나이. 그러고보니 하루카, 나보다 1살 연상이었네. 전혀 그런 느낌은 안나지만. 대수롭지 않은 감상을 속으로 흘리면서, 초를 케이크에 조심스럽게 꽂아넣었다. 음, 괜찮아. 실수하지 않았어. 정석대로라면 큰 초 1개와 작은 초 7개였겠지만, 너무 많이 꽂아버리면 볼품없어질 것 같아서 이걸로 했는데 좋은 선택이었나봐. 그렇게 큰 의미없는 뿌듯함을 느끼며, 나는 봉투에 같이 들어있었던 길다란 성냥 하나를 꺼냈다. 불은 어떻게 하지? 지금 붙여버릴까? 아니, 그러다가는 초가 벌써부터 녹아버릴 것 같은데. 촛농이 케이크에 떨어져버릴 수도 있겠지. 불은 조금 있다가 하루카가 올 때쯤 붙이도록 하자.


사소한 것 하나하나마저 확인과 결심을 거치고 난 뒤, 나는 종이봉투에서 빵칼을 마저 꺼내려고 했다. 어라, 그런데 뭔가 하나 더 남아있어? 뭔가하고 꺼내보니 작은 원뿔모양의 물건이 나왔다. 흔히 말하는 생일 푹죽이라는 것이겠지. 그렇네, 생일이라면.....지난번 타카츠키 씨의 생일 파티 때, 아미하고 마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걸 터트리던 게 떠올랐다. 이참에 이쪽도 조금 흉내를 내봐도 괜찮지 않을까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비닐로 포장된 빵칼을 케이크 근처에 놓아두고, 손 끝으로 폭죽을 집어들어보았다. 그런데 그 때.


타박, 타박.....


조금 멀리서 발소리가 울렸다. 누군지 바로 감이 잡혔던 나는 마지막으로 숨을 크게 내쉬며 가다듬은 다음, 바로 행동에 나섰다. 탁, 타닥, 몇 번의 시도 끝에 성냥에 불을 붙여, 곧장 초로 옮겨 붙인다. 그리고는 성냥을 훅 불어 불을 끈 뒤 잔재들을 대충 놓아두었던 종이봉투에 털어넣었다. 


타박, 타박, 타박.....


그러고 있는 사이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나는 문 앞을 가로막듯이 서서 한 손으로는 폭죽의 몸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끄트머리의 실을 붙잡았다. 이런 건 애들 장난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었다. 깜짝 놀라는 하루카의 모습이 보고 싶었다.


끼이익-


두근, 두근, 두근, 아무리 진정을 하려고 해도 그치지 않는 문이 서서히 열린다. 틈새를 통해 보이기 시작하는 갈색 단발머리며 특징적인 리본. 크고 둥근 초록 눈. 그 나이대 여자애다운 화사한 복장. 전체적으로 밝고 따뜻한 인상. 두말할 것도 없이, 하루카다. 나는 혹시 하루카가 맞지는 않도록, 조금 위로 향해 힘껏 폭죽의 줄을 잡아당겼다. 


톡.


하지만 어째서일까. 터졌어야할 폭죽은, 불발에 그쳤다. 부, 불량품!? 아니면 잡아당기는 데도 요령이 필요했던 거야!? 아니, 처음부터 이런 어린애 장난 같은 짓은 하지 말았어야했는데. 봐, 하루카도 어이없다는 듯 가만히 서 있잖아. 어라, 잠깐. 가만히 서 있다.....? 나는 조심조심 하루카를 살폈다. 하루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동그랗게 커진 눈을 끔뻑끔뻑하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쩌지.


어색한 정적이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는 가운데. 나는 터지지 못한 폭죽을 대충 던져버리고는, 탁자로 뛰어들어가 거기 있던 꽃다발을 황급히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하루카에게 도로 달려가서는 불쑥 코 앞으로 내밀었다. 많이 부족하긴 해도 널 위해 준비한 거니까, 그러니까, 받아주면, 좋겠어. 고맙다고 해준다면, 정말 기쁠 테니까!


"에, 에, 에에.....?"


그런데.....이런 내 마음과는 달리, 하루카는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른다는 식으로 굴었다. 어라, 어떻게 된 거야. 마음에 들지 않는 거야? 마음에 들지 않는데 일단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줬으니까, 쉽사리 거절할 수 없어서, 그래서 그만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는 거니? 하루카, 싫으면 싫다고 해줘. 그 편이 우리 둘 다에게 좋을 거야. 이쪽도 깔끔하게 마음을 접을 수 있을 테고.....


아니, 기다려. 멈춰.


생각해보니 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무작정 꽃부터 내밀고 말았잖아. 지금 봐. 거의 반 강제로 꽃다발을 떠넘긴거나 다름 없다고. 빨리 어떻게든 해야해. 자책할 시간 같은 건 없어! 순식간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맹돌진하기 시작하는 사고의 뒷목을 억지로 잡아채 정상, 지금 이 상태도 확실히 정상이라고는 말할 수 없긴 하지만, 하여튼 조금 나은 상태로 되돌리려고 애썼다.


"저, 저기.....치하야 쨩.....?"

 

그 사이 이쪽을 부르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쪽으로 바로 고개를 돌리니, 여전히 어쩔 줄 모르고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하루카가 보였다. 미안해. 근데 나도 당황스러워 미칠 것 같아. 어떻게 해야할지 하나도 모르겠어. 생각해둔 건 많은데. 준비해둔 건 많은데.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그런데도, 막상 닥쳐오니 머리가 새하얘져서.....아,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은 거야. 그, 그렇지. 우선 빼먹었던 말을 보충해주기로 하자.


"그, 그, 그게, 그러니까.....오늘이, 하루카의 생일.....맞지."

"아, 으, 으응. 그, 그래."

"그, 그래서.....축하하는 의미에서.....이렇게. 자."


그 뒤로 기세를 이어 바로 하루카를 케이크가 놓인 곳까지 안내했다. 다행스럽게도 초에 불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그렇다고 또 촛농이 뚝뚝 케이크에 떨어져있거나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고 있었다. 후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남 모르게 흘리고는 하루카를 슥 보았다. 아까부터 쭈욱 놀라움의 연속을 담고 있었던 하루카의 얼굴에는, 기쁨 또한 엿보이는 것 같았다. 거기에 아주 조금 용기를 얻은 나는 천천히 준비해왔던 노래를 입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해, 해피버스데이 투 유.....해피버스데이.....투 유-"


해, 해피버스데이, 디어 하루카......해피버스데이 투 유. 


그렇게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목소리는 떨렸고 음정은 불안했다. 가사를 또박또박 말하는 것마저도 어려워 버벅거리기까지.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한다면, 이건 아마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못 부른 노래이지 않을까. 일과 중 틈틈히 연습해왔는데, 정작 나온 결과물이 이거라니. 난 대체 무슨 짓을.....정신을 차리고보니 내가 해왔던 모든 것들이 전부 부끄러움으로 다가와, 등에서 식은 땀이 줄줄 났다.


"그, 저번에는 미안했어."


이번에도 좀 미안하게 된 것 같지만. 이 불편한 정적을 어떻게든 타개해보려고, 사죄를 내뱉었다. 그렇지만 하루카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 괜찮대두. 괜찮아.....그리고, 고마워. 정말. 치하야 쨩이 이렇게나 근사한 걸 준비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방금 그게, 그저 말뿐만이 아니어서. 엉망인 게 틀림 없는 방금 내 노래를, 하루카가 정말 좋아해주고 있어서. 지금까지 부족하다부족하다 생각하고 있던 게, 정말 바보 같아져서. 찔끔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아가며, 나는 주머니에 넣어두고 있던 리본을 꺼내 하루카에게 보였다.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해 하루카. 여기 선물. 별건 아니지만."

"앗, 이건....."


그러자 하루카가 잠시 양해를 구하더니, 꽃다발을 근처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리본을 받아 이리저리 살피는가 싶더니, 곧 탄성을 쏟아냈다.


"역시, 그거야! 치하야 쨩, 혹시 전에 내가 해준 이야기를 듣고....."

"으,응. 다행히 맞은 것 같....."

"치하야 쨩!"

"꺗!?"


그 말에 긍정하기가 무섭게 하루카가 돌연 내게로 뛰어들어왔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져버릴 뻔한 걸 겨우 버티고 서있자니, 가장 가까이에서 조금 울음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너무 고마워서, 되려 이쪽이 미안해질 정도야."


"아, 아니.....하루카가 미안해할 필요 같은 건 없어. 나, 나는 그냥 네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었을 뿐이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울지 않아도."


어떻게 된 일일까. 분명 정답을 골랐는데도 하루카를 울리고 말았어. 곤란한데. 이를 어떻게 해야 달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이, 하루카는 이쪽을 와락 끌어안고는 말했다.


"크흥, 이건 기뻐서 우는 거야. 너무 기뻐서 나오는 눈물이라구.....훌쩍."


그렇게 말한다면야 한동안은 흘리게 놔둘 수밖에. 완전히 내 품에 꼭 달라붙어있는 하루카의 등에, 어색하게나마 팔을 둘러주었다. 뭔가 기대한 것과는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와버린 것 같았지만, 그래도 하루카가 정말 기뻐해줬으니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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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 생일로부터 14일 지나서야 겨우 다 쓰다니 완전 대지각이네요.....그래도 다 쓰긴 했습니다 으흐흑.


저번에 치하야쨩 생일 기념으로 쓴 '치하야 「고맙다는 말을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어」'에서는 치하야 쨩의 좀 음울하고 신경질적인 모습에 중점을 두고 썼습니다만, 이번에는 하루카를 위해서 서툴러도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은 걍 진지한 보케일뿐) 에 중점을 두고 써봤습니다. 으 어쨌든 하루카 생일 축하한다! 14일이나 지났고 이제 몇 십분 뒤면 15일 지나버리겠지만 하여튼 축하한다!!!!


아 그리고 오토나시 씨는 좋은 걸 찍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괜히 열쇠를 빌려준 게 아니겠죠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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