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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의 어떤 하루 _ 리오

댓글: 8 / 조회: 551 / 추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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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0, 2018 11:05에 작성됨.

'(가제)신개념 미팅 프로그램! '당신의 반려를 그대에게!'


 '신개념'이란 첫 머리에 한 번. '미팅'이라는 주제에 한 번. '당신의 반려를 그대에게'라는 제목에 한 번. 프로듀서는 괴상한 기획서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머리를 쥐어 싸맸다. 무려 지상파 프로그램의 파일럿의 MC 섭외 들어온건데, 기획서만 보고서는 프로그램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었다. 믿을거라곤 오로지 지상파라는 방송사 네이밍이었다. 순전히 느낌으로는 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런데 피하기엔 너무 조건이 좋다. 만약 이를 받아들인다면 과연 이 프로그램에 적합할만한 765의 아이돌들은 누가 있을까. 다른거 다 제치고 '미팅'이라 한다면 성인인 아이들에게 맡겨야 하겠지. 프로듀서는 손에 집어 든 펜으로 성인인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씩 적어나갔다. 레이카. 아즈사. 치즈루. 후카. 카오리. 코노미......


 "프로듀서군? 일하는 중?"


 "그리고 리오."


 "응? 그렇게 갑자기 이름을 부르면.... 당황한다고?"


 "내가 이름을 불렀던가?"


 프로듀서는 써 내려간 이름들을 쳐다보았다. 코노미의 이름 옆으로 의미 없는 긴 줄만 쭉 그어져 있었다. 코노미 다음으로 써 내려갈 사람으로 생각한 리오의 목소리가 실제로 들리자, 반사적으로 리오의 이름을 부른 것 같았다.  


 "암튼 프로듀서군. 커피 타 왔어. 고생하는 거 같아서. 약간의 카페인은 머리 회전을 좋게 한다지?"


 "리오. 프로그램 하나 해 볼래?"


 툭 던진 말이었다. 아차 싶은 마음이 있긴 했는데, 이미 던져진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뭔데뭔데?"


 리오는 관심을 보였다. 프로듀서는 말 없이 기획서를 리오에게 건넸다. 기획서를 받아 든 리오에게서 반응이 온 건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아서였다.


 "미..팅..?!?!"


 "...... 어때?"


 "미팅 프로그램의 MC란거지? 이거?"


 "기획서로 판단하기엔 그렇지."


 "프로듀서군. 이거 내가 해도 될까? 그.... 조건이 좋잖아? 음.... 지상파네! 그리고... 파일럿이면 부담이 좀 덜 되지 않을까...?"


 '미팅 프로그램'이라는 프로그램 방향에 혹해 하고싶다 하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어떻게든 이유를 붙이기 위해 재빨리 기획서를 훑으며 한 마디씩 늘어놓는 리오에게서 프로듀서는 기획서를 가로챘다. 기획서의 움직임대로 리오의 시선이 따라 움직였다.


 "정리해보자. 일단 지상파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MC의 섭외가 들어온거고, 프로그램의 방향과 주제는 미팅이야. 아직까지는 그 정도의 정보 말곤 아는 게 없어. 그럼에도 리오. 할래?"


 "응! 밝혀진 게 별로 없더라도 미팅 프로그램이란 건 변함이 없는거잖아? 좋았어. 드디어 내 매력을 만천하에 공개할 기회를 얻게 된거야! 프로듀서군. 고마워!"


 생각 이상으로 기뻐하는 리오를 보며, 프로듀서는 물어보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리오의 말마따나 제일 기본적인 틀이 되는 정보는 확고하니 살이 붙여지더라도 별 탈은 없을 것이다. 프로듀서는 리오가 타 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결재를 받기 위한 서류를 작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


 "리오쨩. 미팅 프로그램 MC를 맡았다는게 정녕 사실인거야?!"


 대기실의 문을 부서져라 연 코노미가, 안에 리오가 있나 없나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던진 말에 온갖 시선이 집중되었다. 시선 하나하나 마주치며 인원을 파악했다. 오프 모드로 게임을 하고 있던 안나, 구급상자를 정리하고 있던 후카, 구석탱이에서 뭔가를 보고있는 모모코, 그냥 마냥 떠들고 있던 아미, 마미, 타마키. 그냥 앉아있던 미라이, 책을 읽고 있던 유리코, 그 옆에서 뭘 하고 있던건지 파악 불가능한 아유무. 한 켠에서 악보를 보고 있던 카오리. 그 옆에 카나.  


 "없니.... 없었구나.... 볼일들 봐도 좋아..."


 "코노미 언니가 찾는 리오쨩은 여기있지."


 민망함에 열이 확 오른 코노미에게 구원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홱 몸을 돌린 코노미의 눈 앞엔 사람의 가슴팍만 한가득 들어왔다. 몸을 돌렸을 때의 파워 그대로 고개를 홱 젖혀올렸다.


 "어머, 코노미 언니. 그렇게 사람의 가슴을 가까이서 쳐다보면 아무리 섹시함에 단련되었더라도 부끄럽다구?"


 "뭐라는거니. 야, 잠깐. 리..."


 리오는 코노미를 그대로 꽉 껴안은 채로 대기실 안으로 아장아장 들어왔다. 푹 파묻힌 코노미가 뭐라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웅얼거림은 아무에게도 전해지지 않았다. 연장자 두 사람의 격의 없는 행동에 대기실 안에 있던 멤버들에게서 키득거리는 웃음 소리가 들렸다. 유일하게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있는 코노미가 야무지게 쥔 주먹으로 리오의 어깨를 퍽퍽 쳤다. 그제야 코노미는 리오의 품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정말. 장난도 정도껏 쳐야지."


 "미안. 하지만 나쁘진 않았지? 그 민망한 상황을 잘 헤쳐나갔잖아?"


 "아..아무튼! 미팅 프로그램 MC. 사실이야?"


 "응! 그냥 출연자도 아니야. 무려 MC라고? 드디어 내 어른의 경험담을 토대로 한 섹시한 매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게 된거야!"


 "그.. MC면 진행자잖아? 진행자는 자기가 돋보이는 게 아니라 출연자들을 돋보이게 해야 한다고? 리오씨. 그런 기본적인 것도 파악하지 못했다면 프로 실격이야."


 꼼지락거리며 보고있던 걸 뒤로 숨긴 채, 모모코가 리오와 코노미의 대화에 참여했다.


 "응훗훗. 그래도그래도. 아미의 생각으로는 미팅 프로그램이라면 당연히 진행자도 미팅에 일가견이 있어야 한다구-?"


 "미팅이 뭐야? 타마키도 미팅할래!"


 "안나.... 미팅 관련한 게임..... 플레이 해 본적 있어...."


 "미팅 게임도 있어? 우와. 신기하다. 데헤헤. 나도 해 보고 싶은걸."


 모모코가 물꼬를 틀자 대기실 안에 다른 멤버들도 한 두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여러명이 한 마디씩 보태는게 한데 섞이니 과장을 조금 보태 시장 바닥이 따로 없었다.


 "저기. 제안 하나 할 게 있는데요."


 아수라장을 뚫고 들려온 청아한 목소리에 개인방송들이 정리되었다. 구급상자 정리를 끝낸건지 상자를 닫은 후카가 살짝 한쪽 손을 들고 있었다.


 "제안이라니. 뭔데?"


 리오가 후카를 지목하며 물었다.


 "미팅 프로그램 MC라면 분명 미팅에 대한 조언같은 것도 해주겠죠? 인원도 여러명이겠다. 그 부분에 대한 연습 같은 거 해 보는 건 어떨까 해서..."


 "어머, 후카쨩. 그거 좋은 제안인걸? 나에게는 연습이 될 테고, 다른 사람들에겐 나에 대한 신뢰를 쌓을 수 있겠네!"


 리오는 후카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확실히 후카의 제안은 흥미로운 제안이었고, 리오의 말 또한 일리있는 말이었다. 이 짧은 한 마디에 시작된 본격 '시어터배 미팅 고민 상담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럼... 누구부터 할래?"


 막상 판이 벌어지자 서로 눈치들을 보고 있는게 느껴졌다.


 "어머, 싫다. 이 리오 언니에게 연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저, 저기..."


 빼꼼 손을 올린 이는 유리코였다. 읽고 있던 책으로 얼굴을 반 쯤 가리고 있다가 시선이 집중되자 그 마저도 쏙 들어가버렸다. 꼭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같았다.


 "유리코쨩!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래.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그... 책에서 읽었어요. 사랑이 깨지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사랑이 변하는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안 가서..."


 "사랑이 깨지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사랑이 변하는 것이다."


 리오는 유리코가 말한 명언을 그대로 읊었다. 이게 무슨 말이래. 듣자마자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저 말은 신뢰를 쌓기도 전에 신뢰를 쳐박아버릴 말이었다.


 "그러니까... 음. 그러네. 자. 유리컵이 있어."


 일단 단어 하나를 던졌다. 유리컵이란 단어는, 깨진다니까 생각난 단어였다. 이제 여기에 피와 살을 덧붙여야 한다.


 "이 유리컵이 깨졌어. 깨지면 어떻게 해?"


 "치워서 버릴거에요."


 던진 물음에, 유리코는 즉답했다.


 "그치. 버리지. 근데 이 유리컵이 말이야. 깨진 게 아니라 말이지. 갑자기 흐물거리면서 모양이 변했어. 그럼 어떨까?"


 "갑자기 그러면.... 무서울 것 같은데요."


 "그렇지! 그거야!"


 "아아. 그러니까, 깨지면 버리면 그만이지만, 변하면 그에 따른 두려움과 무서움이 딸려 와서 더 괴롭다는 뜻이군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야, 유리코쨩. 역시 잘 이해하는구나?"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질문을 던진 당사자가 무슨 말인지 알겠단다. 그러면 된 거다. 주변에서 작게 박수치는 소리도 들렸다. 남모르게 리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다음 분?"


 이러나저러나 첫 질문이 잘 통과가 되어서인지 두 번째부터는 손을 드는 사람의 수가 조금 늘었다. 아미, 마미, 카나였다. 세 사람 중 누구를 선택할까.


 "카나쨩?"


 "에에에? 분명 마미가 제일 먼저 일빠로 손들었는데!"


 "그러면 마미쨩은 카나쨩 다음으로 해 줄게."


 돌발적인 상황의 대처. 이 정도면 합격점이다. 리오는 내적 자화자찬을 하며 다시 한 번 카나를 향해 손짓했다.


 "저. 연애 같은 건 잘 모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노래를 불러 주고 싶어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머, 로맨틱하다. 생각한 노래가 있니?"


 "지금 막 생각한건데 한 번 불러볼게요! 사랑에 빠져버린 야부키 카나~! 카나는 당신을 원.츄.할까나~!"


 리오는 먼저 박수를 쳤다. 리오에 박수에 청중들은 따라서 하나둘씩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하나의 박수는 미약할 지언정, 여러개의 박수는 웅장하리라. 박수세례에 카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에헤헤-. 하고 웃었다. 리오는 매의 눈으로, 이 때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 카나쨩의 그 미소. 에헤헤-. 하고 흘린 그 부끄러운 그 웃음이 바로 상대방을 심쿵하게 할 무기인거야."


 "오."


 이 상황을 관망하듯 바라보던 코노미의 입에서 처음으로 감탄사가 나왔다. 코노미의 반응에 리오는 한층 더 자신감이 상승했다. 이 자신감 그대로 리오는 다음 타자인 마미를 지목했다. 분명 마미라면, 엉뚱한 질문을 꺼낼 것이다. 또 한번의 실험을 잘 통과해야 한다. 리오는 마음을 다잡았다.


 "마미. 공연할 때 마다 오빠 언니들을 헤롱헤롱- 하게 할 무기를 발사하는데. 이제 그 무기가 다 떨어지고 있다궁. 리옷치라면 분명 새로운 섹시한 포오즈를 추천할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에! 질문 드립니다요-"


 "자고로 섹시란 말이지."


 리오는 윗단추를 하나 풀었다. 단추를 풀어? 코노미는 심각한 표정으로 리오의 행동을 감시했다. 코노미 뿐만 아니라 후카도, 카오리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눈초리들이 따가워졌다. 그 따가운 눈초리를 리오는 조명삼아 단추 하나를 더 풀었다. 저기서 하나만 더 풀면 당장에 출동이다. 리오는 웃으며 세 번째 단추에 손을 가져다 댔다. 가 아니라, 두 번째 단추를 다시 잠궜다.


 "에? 당연히 푸는 줄 알았는데?"


 "섹시는 억지로 발산하는 게 아니란다. 마미쨩. 그럼에도 불구하고 섹시 포즈를 배우고 싶다면 나보다는 저기, 무려 섹시의 본 고장. 아메리카의 소울을 가지고 있는 아유무가 더 잘 알지 않을까?"


 "......나?"


 "아유아유? 그러쿠나!"


 "뭐가 그렇구나.. 야? 갑자기 이렇게 떠넘기면 어쩌자는거야?"


 "아유무가 집중을 못하고 있는 거 같아서. 아니야?"


 굳이 미팅 프로그램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프로그램의 진행자라면 출연자 모두를 챙겨야 한다. 이번 건은 마미의 난감한 질문을 스리슬쩍 피해가면서도 존재감이 살짝 묻혀있던 아유무를 주목하게 만든 고급진 진행 스킬이란거지. 미팅 프로그램이라면 검증된 연예인이 아닌, 방송에 익숙치 않은 일반인이 참여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 하나하나까지 챙기는 자기 자신이 뿌듯해 리오는 빙긋 웃으며 코노미를 쳐다봤다. 그 시선을 받은 코노미는 악의 없는 헛웃음을 흘렸다.  


 "자, 이제 딱 한 사람만 받을게."


 점점 분위기가 오르고 있던 건 맞았는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이 중 정말로 진지하게 미팅과 연애에 관련한 질문을 던질만한 사람을 택해야 한다. 선택권을 가진 리오는 신중하지만 여유있게 한 사람을 골랐다. 영광의 1인은 카오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한 진정한 성인이었다.


 "미팅이라 한다면 처음 본 사람을 만나게 되는건데, 처음 본 사람과 한두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한 일인지......"


 "......."


 확실히 앞자리 숫자가 괜히 다른 게 아니었다. 카오리의 질문은, 정말 질문다운 질문이었다. 그래서 리오는 대답할 수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리오는 소개팅, 미팅 등의 만남의 자리에서 단 한번도 선택을 받은 적이 없었다. 선택을 받아봤어야 한 두시간이 넘는 대화를 해볼 것이고, 그래야 사랑에 빠지는지 그냥 수다만 떨고 오는지를 알 수가 있을 터. 리오는 그동안 잡지에서 연마했던 소개팅 성공 비법들을 떠올렸다. 막상 떠올리려니 떠오르지 않는다. 음.... 음.... 그러니까 그런 말이지.... 에라, 모르겠다.


 "사랑은, 사람이 예측할 수가 없는거야. 1초만에 반할수도 있지만 10년이 지나고서야 사랑에 빠질 수 있는거지. 대화는 부가적인 것 뿐, 그래. 운명인거야."


 "어머, 멋져..."


 얼떨결에 내뱉은 말은 청산유수였다. 다만 그 명언에 누군가가 뿌린 '멋져'란 조미료가 문제였다. 단 한마디에 스위치가 당겨진 듯 다 빵 터져버렸다. 리오 역시 그 웃음에 휩싸여 함께 웃었다. 감탄이 나왔으면 멋진 마무리가 되었겠지만, 아무렇게나 던져본 말에 감탄 같은 거 바라지도 않았다. 차라리 이런 유머스런 마무리가 나았다. 분위기가 싸해져서 끝내기도 아무렇지 않은 듯 넘어가기도 애매한 상황만 아니면 되었다.


 "자. 여기까아지이! 모두들, 어떠셨나요? 특히 코노미 언니. 마치 심사위원처럼 살펴보셨는데, 감상평. 부탁드립니다."


 "저는 말이죠. 으음......."


 예능을 겪어본 사람이라 그런가. 코노미는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긴장감을 조성했다. 리오는 두 손을 모아 코노미의 감상평을 기다렸다.  


 "예능프로그램의 진행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봤을 때. 이 정도면 과하지도 않고 적당히 웃어 넘길만한 부분도 있었고... 합격점입니다!"


 해냈다-! 리오 뿐만 아니라 대기실의 멤버들까지도 코노미의 평가에 환호했다. 찍지도 않은 프로그램의 녹화를 벌써 성공적으로 마친 것 같은 쾌감이 들 정도였다. 악동같은 아이들의 테스트도 통과했으니, 오히려 녹화는 더 쉽고, 더 순조롭게 진행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쩐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때마침 리오의 휴대폰으로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하지만 대기실의 요란함은 휴대폰의 울림 소리 따위는 잡아 먹고도 남았다. 그 시끌벅적함에 휩쓸려 리오는 대기실의 무리들과 한 바탕 신나게 수다 대 잔치를 벌였다.


 그 즐거움 그대로 현장의 녹화도 쉽고, 재밌고, 예상 가능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

.


 "MC의 복장이... 사육사 복장이라고?"


 빡, 힘을 준 정장의 복장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준비되어 있다는 의상은 다름 아닌 사육사 복장이었다. 리오는 자신의 대기실 문에 붙여있는 종이를 다시 확인했다. '당신의 반려를 그대에게! - 모모세 리오씨-'. 한 치의 오타 없이 정확했다.


 "프로듀서군. 뭐 잘못 착각한 거 아니지?"


 리오는 대기실 안 쪽에 붙여진 큐시트를 살펴 보는 프로듀서를 툭툭 건들며 물었다. 프로듀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리오를 바라보았다.


 "아니야. 의상은 방송사 쪽에서 준비한다고 했으니 그 의상에 맞을걸?"


 "하지만 미팅 프로그램이라구? 미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사육사 복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구."


 "응? 음... 리오. 이리와서 큐시트 확인해봐."


 프로듀서는 살짝 몸을 틀어 리오가 큐시트를 잘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간을 주었다. 그 공간으로 들어와 리오는 큐시트를 읽어보았다. 진행자를 제외한 출연자는 총 8명이었다. 남자 출연자 2명. 여자 출연자 6명. 응?


 "성비가 이상한데...?"


 "....... 저기. 리오. 확인할 게 있거든. 내가 보낸 메일 말야. 확인했니?"


 "......메일을 보냈었어?"


 리오는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수많은 메일의 알람들 속에 파묻힌 프로듀서의 메일. 그 메일에 딸려 온 첨부 파일. 설마 하는 마음으로 리오는 첨부 파일을 클릭했다. (최종)신개념 미팅 프로그램! '당신의 반려를 그대에게!'. 급한대로 스크로를 내리며 기획서를 속독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단순히 동물을 소개하는 애니멀 버라이어티가 아닌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애니멀 버라이어티를 선보이기 위하여 타 방송사에서 시도해보지 않았던 '동물들 간 미팅'이라는 소재로 신선하고 새로운 재미를 선보인다. 미팅을 소재로 한.... 애니멀... 버라이어티?


 "반려가... 짝꿍.. 커플.. 뭐 이런 게 아니라..... 반려동물의 반려를 뜻하는 거였어?"


 리오는 사육사 복장과 휴대폰을 번갈아봤다. 동물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라면 사육사 복장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그러면. 잠깐.


 "프로듀서군. 나 그럼 동물들을 상대로 미팅을 진행해야 하는거야?"


 프로듀서는 패닉에 빠진 리오를 보며 바쁘다는 핑계로 리오를 직접 만나지 않고 메일로 기획서를 보낸 자신의 안일함을 후회했다. 자신의 매력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리오의 모습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언뜻 듣기로는 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예행 연습까지 마쳤다던데. 사육사 복장 앞에, 아직 현실을 마주하려 하지 않는 리오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저기. 리오. 어쨌든 미팅 프로그램이라는 큰 틀은 변하지 않았잖아?"


 "위로하지 않아도 돼. 프로듀서군."


 "새로운 포맷을 진행해본다는 건, 아이돌로서의 방송 생활에 있어서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있잖아?"


 "프로듀서군."


 낮아진 목소리 톤. 프로듀서는 입을 닫고 리오의 기분을 살폈다. 하아-. 하는 한숨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프로듀서군의 잘못이 아니라 흥분해서 메일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내 잘못이 커. 그러니까 나를 위로해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그리고 어쨌든 여기까지 왔잖아? 물릴 수도 없잖아? 잘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열심히는 할 수 있어."


 사육사 복장을 양손의 쥔 리오는 한 번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듀서의 눈에, 그런 리오가 오늘만큼 듬직하게 보인 적이 없었다. 옷을 든 채로 프로듀서를 마주한 리오의 표정은 전선에 나가는 군인의 모습이 연상될 정도로 비장했다.


 어떻게든 될 거니까. 갔다올게.


 그 한마디가 왜 유언처럼 들렸을까.


.

.

.

.


 신개념 미팅 버라이어티! 여러분, 이젠 사람만이 미팅을 즐기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본격 반려동물 짝 찾아주기 프로젝트. 내 반려동물을 그대의 반려동물에게! 내 멍순이가 미팅에 끼지 못하고 겉돌면 어떡하죠. 내 멍돌이가 넘치는 활력을 주체 못하고 날 뛰면 어떡하죠. 걱정 마세요. 모든 이들의 미팅은 이 인간계 미팅 마스터. 모모세 리오가. 철저하게 관리해드립니다. 오늘의 미팅에 참여하는 동물들은 바로 귀여운 강아지들이랍니다. 자. 한 마리씩 소감을 한 번 들어보도록 하죠. 우선... 346프로의 시부야 린씨의 반려견, 하나코쨩이네요. 하나코쨩? 자신 있니?


 왈!


 견이 견을 유혹할 때, '왈'은 옳지 않단다. '와앙-♡'이라 짖어볼래?


 왈!


 아니아니, '와앙-♡'


 왈왈!


 그래. 왈을 두 번 외치는 것도 나쁘지 않단다. 이들의 커뮤니케이션에 감히 사람이 껴서 왕이나 멍이니 왈가왈부 하는 건, 오히려 방해일 수도 있어요.


.

.

.

.


 "저기, 리오씨. 저 진행을 하면서...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그... 인지는 하고 있으셨던가요?"


 카오리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단어 하나하나도 신경 쓰며 묻고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었지만 리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탄산이 가득 든 탄산수를 거칠게 따는 걸로 대답을 대신 했다. 왜 이걸 극장에서 보고있어야 하지? 왜 하필 방송하는 날이 극장 정기공연의 리허설 날인거지? 왜 모든 극장의 아이돌이 쉬고 있을 이 타이밍에 이 프로그램은 방영하고 있는거지?


 "이런 프로그램이라면 자신에게도 출연 섭외를 했으면 좋았을텐데. 이누미가 저기 나갔으면 완전 킹카 대접 받았을거라구."


 "타마키의 꼬붕도 저기 출연할 수 있을까?"


 "아쉽지만, 파일럿이란다?"


 리오는 탄산수를 벌컥벌컥 마시며 답했다. 텔레비전 속, 8마리의 강아지들을 거느리며 미팅판을 주도하는 리오의 행동 하나하나에 시어터의 아이돌들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출연자로서는 이보다 더 성공적인 출연이 없으리라.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끝나고 남게 될 이미지는. 이 모모세 리오의 아이돌로서의 이미지는 어떻게 되는걸까? 이렇게 또 한 번, 섹시계 아이돌로서의 이미지와 멀어져간다.


 "리오쨩. 지금 마시고 있는 게 맥주였으면 좋겠지?"


 코노미가 슬그머니 던진 말에, 리오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글이 계속 잘려 올라가서 마지막 시도입니다. 안 되면 두 편으로 나눠야 할듯요... 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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