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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 「하루카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어」 -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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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3, 2018 22:14에 작성됨.

* 치하야 「고맙다는 말을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어」 와 이어집니다


벌써 3월의 끝자락이구나. 잠깐 사무소 벽 한 켠에 걸린 달력에 시선을 두자 일어난 생각이었다. 나는 들고 있던 악보를 잠깐 내려놓고 그 쪽에 좀 더 주의를 돌렸다. 며칠 정도밖에 남지 않은 3월이 한눈에 들어왔다. 얼마 안 가 돌아올 다음 달마저도 미리 엿보이는 듯 했다.


그렇네.....곧 있으면 4월이네.


시간이라는 건 어쩜 이다지도 빨리 흐르는 걸까. 상투적이다 싶은 한탄이 작게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바로 물 흐르듯 돌아올 그 때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겨울이라는 건 이미 온데간데도 없어진 지금. 그 때가 되면 분명 더욱 따뜻해져- 만개한 벚꽃이 춤추듯 거리를 수놓다가, 한순간에 사그라들겠지.


일부러 감상을 흘릴 필요도 없을 만큼, 몇 번이고 반복되어온 일.


하지만 나는, 그것을 기대하기라도 하듯 달력에 두었던 시선을 창가로 천천히 떨어트렸다. 투박한 박스테이프 너머로 보이는 화창한 하늘. 그와 함께하는 따스한 햇살. 조금은 여유롭게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마음 끄트머리를 슬쩍 간질이는 그 둘에게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좀 더 다른 것들에 신경 써야만 했다. 아이돌로서 정식 데뷔한 지 이제 6개월을 앞두고 있는 걸. 뭐라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않으면 슬슬 위태로워진다는 정도는 인식하고 있다. 이런 것에 마음이 들떠서야 될 것도 안 되지 않을까. 나는 손 안에 들려있는 악보의 무게를 실감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그 때, 어떤 정보 하나가 머릿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잠깐, 그러고보니.....


그러고보니, 뭐?


아직 머릿 속에 명확히 그려지지 않는 그것을 찾아, 나는 반사적으로 달력을 되돌아보았다. 아직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떤 날짜라는 것 하나는 기억났으니까. 그게 언제였지. 뭐하는 날이었지. 내게 있어 중요한 날이었나? 머리가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두 눈은 얼마 남지 않은 3월을 훑어버리고는 그 너머까지 더듬거렸다.


4월.


1일, 2일, 3일.....3일.....


"아, 그렇지. 참."


그 날이 무슨 날인지 마침내 기억해낸 나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고 말았다. 확실히, 이건 잊어서는 안되는 날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애의 생일이니까.


그래. 그 애, 하루카의 생일인 걸. 


4월 3일. 그 날이 어떤 날인지 확실하게 인식한 그 때. 어쩐지, 마음 한 구석에 봄이 깃들어버린 것 같아, 그만 악보가 손 틈을 빠져나가 탁상에 어지럽게 흩어져도 전혀 주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대신, 그 날에 대해서만 자꾸 생각해볼 뿐.


생일.....하루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 마땅히 축하해줘야하는 날. 이미 내 쪽에 대해 축하를 받은 이상, 더더욱 그러지 않으면 안되는 날. 그런데, 어떻게 축하해줘야하는 걸까. 어떻게 축하해줘야 하루카가 기뻐할까. 애초에 자기 자신의 생일마저도 잘 챙기지 않았던 내가, 과연 그 애의 생일을 제대로 축하해줄 수 있는 것일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얼마 전 지나간 타카츠키 씨의 생일파티 풍경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과거에 내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돌이켜보면, 적어도 그 때보다는 좀 더 나은 행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 때 나는 어떻게 했더라.


으으음.....일단 다른 사람들과 박수를 같이해줬고, 작은 선물 정도는 건네주기는 했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정말로 생일을 축하하는 성의가 담겨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의례적인 것에 좀 더 가까운 행동이었다고 생각해. 솔직히, 아쉬운 심정이네. 하지만 지금와서 따로 또 성의를 표하기에는 좀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타카츠키 씨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다음 생일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겠지.


그렇지만 하루카는 달라.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 아닌,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니까. 그 때에도 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아. 그래, 이번에야말로 좀 더 성의를.....정말로 축하하는 마음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래야만 먼젓번의 축하에 보답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혼자 먹기에는 지나치게 맛있었던, 그러나 결국 혼자 먹어버리고 말았던 케이크를 떠올렸다. 하루카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와 동등한 것을 주지 않으면 안되겠지.


그렇다면.....이쪽도 똑같이 케이크를 선물해주는 건 어떨까.


하루카는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듯 보였으니까, 그렇게까지 부족한 선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하루카는 직접 만들어서 줬으니까, 나 또한 그래야겠지. 그러면 일단 오븐을 사야되려나. 그렇게 부족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풍족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생활비를 가지고, 계산기를 몇 번 두들겨 본다. 한동안 허리띠를 조인다면 어느정도 근사한 레벨까지는 손을 뻗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좋아. 그렇다면 오늘부터 당장 시작하자. 시간이 얼마 안남은 만큼 빨리 시작하는 것이 아무래도..... 


잠깐, 기다려.


나는 벌써부터 앞서나가려는 의욕에 급히 제동을 걸었다. 아무리 좋은 오븐을 구매한다고 해도, 그것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그저 돈낭비에 불과할 터.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진 실력이라는 것은 그것을 충분히 실현시킬 정도다.


"하아....."


나는 어느덧 꾹 차올라버린 한숨을 내뱉었다. 그 뒤로는 어지럽게 펼쳐진 악보들을 주워서 가지런히 정리해 탁자 한 구석에 밀어놓고는, 그 자리에 푹 쓰러지듯이 엎드렸다. 초짜에 불과한 내가 고작 며칠 사이에 하루카만큼 케이크를 잘 만들 수 있을 리는 없잖아. 아무리 상냥한 하루카라도 엉망인 케이크까지 받아들여주지는 않을 거야. 겹쳐놓은 두 팔 안에 깊숙히 숨을 죽이고 있던 나는, 한층 더 깊은 한숨을 그 안에 풀어냈다.


이런 건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지도. 하지만 이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넘어가는 건, 한층 더 질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뭐라도 해야 해. 적어도 시판품이라도 하나 사두지 않으면. 적어도 내가 만든 케이크보다는 훨씬 나을테니까. 그렇지만 역시 수제보다는 아무래도 정성이 좀 부족해보이려나. 좀 더 축하하는 의미를 더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걸 더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꽃? 좋네. 나쁘지는 않아보여. 아까보다는 조금 기분이 나아진 나는 축 처져있던 상반신을 다시 일으키고, 자세를 고쳐앉았다.


하루카는 꽃을 좋아할까? 일단 싫어하는 걸로는 보이지 않았는데.....적어도 싫어하지는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꽃을 선물하는 게 좋을까. 꽃다발이라고 한다면 역시 장미. 그것도 새빨간 장미가 떠오르기는 한데.....뭐야, 정말. 프러포즈 같은 것도 아닌데. 난 어디까지나 축하하는 의미에서 꽃을 주고 싶은 것뿐이야. 그런 건, 주는 쪽에게도 받는 쪽에게도 부담스럽기만 할 뿐이라고.


끼이익.


돌연 튀어나와버린 조금 바보 같은 생각에 스스로도 질려버렸을 쯔음, 등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찌푸리고 있던 미간을 피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허리를 곧게 펴서 앉고는 그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곧 사무원치고는 조금 튀는 원색의 유니폼을 차려입은, 부드러운 인상의 단발 머리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아.....오토나시 씨.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짧은 인사를 나눈 뒤, 나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시선을 그만 다른 곳으로 돌렸다. 조금씩 가까워지다가 다시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었을 때, 오토나시 씨는 곧바로 자기 자리로 간 듯 했다. 나는 그 쪽 눈치를 한동안 보다가,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는 정리해둔 악보 쪽으로 괜시리 손을 뻗었다. 지금 그걸 본다고 해봤자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게 뻔했지만, 일단 손에 뭐라도 하나 쥐고 있는 편이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팔락.


후우.....자, 그래서. 어디까지 생각해봤지. 일단 장미는 안된다는 건 알겠어. 그러면 어느 것이 좋을까. 안개꽃, 프리지아, 샤프란, 목련, 제비꽃.....들어본 적 있는 이름들을 연달아 생각해보지만, 어느 것 하나 썩 좋아보이지는 않네. 정말, 어느 게 좋을까.....


나는 들었던 악보 낱장을 다시 쌓아둔 더미 위에 돌려두었다. 그러고는 그 더미의 귀퉁이에 클립을 끼워 넣어 고정시킨 뒤, 더미 째로 선에 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흐트러진 정신으로는 악보를 봐봤자야. 시간 낭비에 불과해. 자꾸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는 것 같아 부끄러워졌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게 또 사실이었다.


뭐어, 사실 여기에 굳이 남아있을 필요는 처음부터 없었긴 했다. 당장 주어진 레슨 정도는 진작에 해치운 지 오래였으니까. 문제는 그렇게 레슨을 해도 주어지는 일이 그다지 없다는 것이지만.....아니, 됐어. 그런 것 정도는 이미 질릴 정도로 알고 있어. 나는 씁쓸한 현실을 애써 무시하며 대충 던져놓은 크로스백을 찾아 찌익- 하고 거칠게 지퍼를 열었다. 그러고는 악보 더미를 반쯤 쑤셔넣다시피 잡아넣어버리고 다시 지퍼를 잠근 뒤, 어깨에 끈을 걸치고 매무새를 정돈했다. 바로 그 때.


"어라라, 치하야 쨩? 레슨은....아, 벌써 끝났네. 일부러 남아있었던 거구나."

"그런 셈이네요."


조금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최대한 평정을 가정하며 그 쪽을 돌아보았다. 어지럽게 쌓여진 각종 서류 더미들 틈바구니 속에서, 그와는 상당히 대조적으로 몇 글자 빼고 텅 비어있는 화이트보드를 확인하고는 멋쩍게 웃어보이는 오토나시 씨가 보였다.


"언제나 열심히구나, 치하야 쨩은."

"별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후후, 또 그러네. 솔직하게 칭찬을 받아주면 좋을 텐데."

"글쎄....."

"음.....그렇다고 해도 치하야 쨩, 어딘가 지쳐보이네. 많이 힘들었을까?"

"네?"


이상한데. 나, 최대한 평소 같이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토나시 씨는 어떻게 알아챈 걸까. 아니면 그냥 해본 말에 이 쪽이 괜히 찔린 걸까? 속으로 당황스러움을 애써 삼키는 사이, 오토나시 씨가 의자를 뒤로 빼고 일어나 한참 기지개를 펴더니, 곧 이 쪽으로 걸어왔다.


"으으으~ 마침 나도 좀 피곤해서 큰일이네. 이럴 때는 역시 커피지. 치하야 쨩도 어때? 괜찮지?"

"그, 그게....."

"아, 혹시 돌아가서 쉬려는 걸 붙잡았을까? 그렇다면 미안한데......"

"아, 아뇨. 그렇지는."


이래서야, 집으로 가려고 해도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오토나시 씨가 부드럽게 이끄는 대로 다시 사무소 한 켠에 자리를 잡아, 그녀가 커피 두 잔을 타올 때까지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하루카쨩 생일 축하해! 원래라면 완성본을 올려야겠지만 분할 신공을 좀 쓸 수밖에 없게 되었네요. 이것도 상중하로 나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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