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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의 어떤 하루 _ 코노미, 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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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2, 2018 17:16에 작성됨.

 "버라이어티 땜빵이야 상관 없지만, 괜찮으려나. 프로듀서?"

 코노미는 사무소 책상 앞에 놓인 커피 한 잔을 호록 마시며 물었다. 난감한 표정의 프로듀서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저자세로 부탁해 오는 모습에 뭔가 일이 꼬였구나 직감할 순 있었지만, 아무리 급해도 땜빵을 부탁하는 멤버의 인선이 너무 모험적이라 확답을 받을 차원의 물음이었다. 현재 이 사무소 안에는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제 일은 아니라는 양 무관심한 시호와 코노미 본인. 단 둘 뿐이었다.  

 "지금 당장 스튜디오로 가야하기 때문에 사무소에 있는 멤버로밖에 진행할 수가 없어요. 그게 코노미씨와 시호네요."

 스마트폰을 만지던 시호의 손가락이 멈춘 것을 코노미는 목격했다. 이제야 시호도 이 일에 본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파악한 모양이다. 

 "프로듀서씨. 다시 한 번만 말씀해 주시겠어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프로듀서를 응시하며 시호가 물었다. 평소에도 웃음기가 없던 아이었지만 표정이 살짝 살벌해보이기까지 했다.

 "그... 미안. 내가 일정을 잘못 짜서 버라이어티 녹화 인선이 겹쳐버렸어.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대타를 구해오면 된다는 허락을 받아서.... 메이저 케이블 버라이어티 방송이라 우리 사무소 쪽에서 누구든 출연해도 분명 후회는 하지 않을거야."

 "그런 중요한 버라이어티 방송인데 이런 실수를 하셨단거죠."

 "시호."

 코노미는 살짝 타이르는 투로 시호의 이름을 불렀다. 코노미 역시 시호의 말에는 동의하지만 워낙 바쁘게 움직이는 프로듀서가 어떻게든 좋은 스케줄 잡으려 이리저리 신경쓰다 생긴 실수일 것이다. 이대로 방송을 펑크내는 것은 사무소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이 될 것이고 그걸 알기에 프로듀서가 사정사정해서 대타의 허용을 받아낸거겠지. 그걸 시호도 모를 리 없다. 

 "딱히,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에요."
 
 역시나.

 "고마워! 시호! 그리고 코노미씨..."

 "나는 애초에 괜찮았어."

 다만, 우리 둘의 케미가 과연 괜찮을까. 코노미는 의문을 굳이 다시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대타들의 동의를 받은 프로듀서는 분주하게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시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스마트폰에 다시 집중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급작스런 버라이어티라. 버라이어티 쪽 일을 자주 하는 친구들은 보통 말주변이 좋거나 활발한 아이들. 혹은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아이들이었다. 메구미라던가, 우미라던가, 아카네라던가, 미야라던가. 코노미 역시 그놈의 키와 나이 덕택에 버라이어티에 간간히 출연하는 멤버 중 하나였다.  반면 시호는 버라이어티 쪽 일에는 살짝 거리가 먼 아이었다. 아니 애초에 출연한 적이나 있었던가? 코노미는 슬쩍 시호의 스마트폰을 쳐다봤다.

 [재미있는 유머]

 심각한 표정으로 써 내려간 검색어가 아마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는거겠지. 빵 터질뻔한 걸 코노미는 잠깐의 파트너가 될 시호를 위해 꾹꾹 참아 눌렀다.

*

 "즉석 꽁트요?"

 부랴부랴 달려온 녹화장에서 프로그램 컨셉을 듣고 시호도, 코노미도 같은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하루 아침에 잡혀버린 스케줄의 메인 테마가 즉석 꽁트란다. 그것도 주제는 현장에서 직접 제시한단다. 어쩐지 대기실에서 본 출연자 목록이 심상치 않았다. 다들 각자의 소속사에서 날고 긴다하는 코미디쪽 아이돌 콤비들이었다. 코노미는 손가락으로 큐시트를 훑어보며 원래 출연하기로 한 765프로의 멤버를 찾아보았다.

 [765프로 출연진. 노노하라 아카네, 키타카미 레이카]

 풋. 실소가 터져나왔다. 이 답없는 프로듀서는 아카네와 레이카의 땜빵으로 코노미와 시호를 선택한 셈이 되어버렸다. 아예 삶이 꽁트같은 애들을 어떤 수로 커버치라는걸까. 코노미는 시호를 슬쩍 쳐다보았다. 한 손으로 머리를 짚은 채 큐시트를 쳐다보는 걸 보아하니 물어보지 않아도 그 속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호. 버라이어티 경험 있니?"

 분위기도 환기 시킬 겸 코노미는 물음을 던졌다.

 "아뇨. 딱히. 음악 방송 인터뷰라면 해 봤어요."

 "인터뷰라... 막 몸 쓰는 운동같은 거 하는 버라이어티는?"

 "그런 일이 제게 들어올 리 없잖아요."

 "꽁트는?"

 "하물며 꽁트라면 더더욱...."

 하아. 시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막 던져주는 주제로 펼치는 즉석 꽁트는 정말 생각하지 못한 영역이었다. 차라리 짜여진 개그 코너에서의 연기라면 해봄직 했을텐데. 

 "아카네씨와 레이카씨라면 분명 잘 하셨을거예요."

 "그런가. 시호는 걔네들이랑 같은 유닛이었지."

 "대체 프로듀서씨는 그 적임자들에게 어떤 다른 일을 시키셨던 걸까요?"

 "그러게."

 큐시트에서 등을 돌린 시호는 대기실 한 켠에 마련된 소파에 풀썩 앉았다. 그리고 다시 스마트폰으로 손을 뻗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무언가 꾹꾹 누르는 모습은 진지하다 못해 경직되어 보이기도 했다. 코노미는 아까 전 사무소에서 '재미있는 유머'따위를 검색하던 시호의 모습을 떠올렸다. 속으로 몇 번 킥킥 웃은 뒤 슬쩍 옆으로 가 시호의 액정을 훔쳐보았다.

 [애드리브 잘 하는 법]

 푸핫. 이번에야 말로 웃음을 숨기지 못한 코노미는 바로 옆에서 큰 소리로 웃어보았다. 그제야 코노미의 시선을 눈치 챈 시호가 재빨리 스마트폰을 던지듯 놓았다. 

 "뭐, 뭘 보시는 건가요?"

 "미안. 미안. 그래도 시호. 말은 그렇게 해도 어떻게든 열심히 일하려는 그 노력은 높히 치하해줄게."

 코노미는 활짝 웃으며 시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연장자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한 채 귀가 빨갛게 달아 오른 시호는 어쩔 줄 모르며 버둥거렸다. 

 "따, 딱히 열심히 하려는 건."

 "뭐, 즉석 꽁트 대결이면 우리가 사전 준비를 한다고 될 일도 아니잖아? 아마 방송국도 시청자들도 아이돌에게 개그맨 급의 꽁트 실력을 원하지도 않을거야."

 "레이카씨와 아카네씨라면 개그맨 급의 꽁트를 선보였겠죠."

 "어머. 옆에서 보고 배운 게 있으니 시호도 그 만큼의 꽁트를?"

 "......그럴 리 없단거.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버라이어티 경험이 있는 이 코노미 언니가 조언을 해 주자면 그냥 흐름에 몸을 맡겨. 원래 버라이어티는 그래. 내가 잘 하고 싶다고 의욕 넘치게 하면 오히려 좀 오글거리고, 그냥 한마디 툭툭 던지는게 엄청난 호응을 줄 때도 있고.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

 "......흐름이 보여요?"

 "......아마...도?"

.
.
.
.

 백 명 남짓의 방청객. 무거운 스탭들. 대포 같은 카메라. 뜨거운 조명. 형형색색의 스튜디오. 그리고 가지각색의 아이돌들. 저 소속사에서 출연한 아이돌들은 원래 코미디언 지망생이었단다. 이 소속사에서 출연한 아이돌들은 아예 인형옷을 준비했단다. 그 소속사에서 출연한 아이돌들은 회사 자체 꽁트 오디션을 통과했단다. 그 걸출한 스펙들 사이에서

 "안녕하세요. 765프로의 대표 섹시 어덜티 아이돌! 바바 코노미입니다!"

 "안녕하세요. 765프로의.... 키타자와 시호입니다."

 아, 이거 망했다. 코노미씨가 말했던 흐름이라면 나도 섹시 아이돌이라고 소개했어야 했을까? 아님 없는 어필 포인트라도 쥐어 짰어야 했을까? 시호는 제 입에서 나온 평범하다 못해 무색무취한 자기 소개에 자괴감이 들었다.

 "아니, 시호. 준비한 멘트가 있었잖아?"

 "네? 아. 네?"

 "내가 섹시 어덜티면 너는 뭐겠어?"

 이. 이건 뭐야. 급작스럽지만 이건 분명 어떤 말이라도 던져야 할 포인트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급작스런 애드리브는 대체 어떻게 받아 쳐야 할까. 시호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흐름. 흐름. 그래. 이 흐름은 분명.

 "765프로의!.... 논 섹시 어덜티 아이돌. 키타자와 시호입니다."

 "으핫핫하. 논 섹시 아이돌이 뭐꼬?"

 이름도 파악 못한 어딘가의 게스트에게 당한 태클에 시호는 온몸이 달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막 던진 멘트와 태클 덕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는 것. 코노미는 카메라에 잡히지 않게 시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내보였다.

 "좋았어."

 "정말 좋은건가요?"

 대답 대신 코노미는 시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건드렸다. 놀라서보니 카메라가 두 사람을 투샷으로 잡고 있었다. 코노미는 활짝 웃으며 아이돌 미소로 투샷을 반겼다. 코노미를 슬쩍 쳐다본 시호는 코노미를 그대로 카피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하하하하. 절로 어색한 웃음소리가 나왔다. 이제 겨우 자기 소개가 끝났을 뿐인데 진이 빠진다. 본격적인 게임에 들어가면 정말 어쩌지. 하지만 걱정 제치고 지금은 그냥 웃어야 한다. 아직도 컷이 안 넘어간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걸까 또 다른 자괴감에 빠지기 직전, 또 다시 코노미가 시호의 옆구리를 쳤다.

 미안. 저 카메라는 그냥 우리 계속 잡는 카메라야.

 .......

*

 꽁트 주제는 총 9개. 가로 3개, 세로 3개의 빙고판으로 주제가 나열되어 있고 이 빙고판에서 하나라도 빙고가 나오는 팀의 승리하는 본격 꽁트 배틀이라는데 그런 설명 따위가 두 사람의 귀에 온전히 들어올 리 없었다. 양 옆을 도리도리 쳐다보며 다른 사무소에서 온 팀들의 동태를 살펴도 다들 여유만만이었다. 지금 여기서 불안해하고 초조해 하는 건 오로지 둘 뿐인 것 같았다.

 "첫번째는 사회자의 재량으로 빙고판의 가운데를 뜯어보겠습니다!"

 사회자가 빙고판의 가운데를 뜯었다. '타코야키' 네 글 자가 보이자마자 코노미와 시호를 제외한 출연자들은 요란하게 부저를 눌러댔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코노미도 열심히 눌렀으나 이미 한참 늦은 상태였다.

 "그냥 주제 보지도 않고 누르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게임 진행 자체에서도 한 발 늦은 두 사람은 이젠 소리도 나지 않는 부저를 꾹꾹 눌러가며 제일 먼저 누른 참가자의 뒤꽁무니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한 사람이 타코야키를 주문하고, 한 사람은 타코야키를 만드는 상황극. 주문한 사람이 잠깐 한눈 파는 사이 와사비를 가득 넣어 버리고, 그걸 모르고 한 입 가득 타코야키를 먹은 주문자는 뜨겁고 매운 이중 공격에 매우 아파한다는 참으로 흔한 기승전결의 꽁트는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뭐야. 그냥 이야기만 잘 이어지면 되는건가? 저 어설픈 꽁트로 손쉽게 빙고의 정중앙을 가져가는 팀을 보며 시호는 승부욕 같은 것이 꿈틀거렸다.

 "코노미씨. 그냥 무조건 누르죠."

 "그래서?"

 "그냥 아무렇게나 해서, 얼른 끝내요."

 이러나저러나 주어진 일에는 참으로 열심히 하는 성질머리를 가진 아이다. 코노미는 그런 시호에게서, 눈가리개를 장착한 경주마의 모습을 보았다. 

 "그럼 다음 주제는......"

 우타타타타타타타. 사회자의 말이 채 끝나기 전부터 시호는 부저를 부서저라 타격했다. 그와 동시에 공개된 주제. 'CIA'

 *

 오홋홋호! 과연. 이 고저스 세레브한 섹시 어덜티에게 이 정도 스파이짓 쯤이야. 오홋홋호! 콜록, 콜록.

 잠깐! 바바 코노미. 너의 정체는 이미 다 파악하고 왔다!

 아니, 넌? 큭. 설마.... 정체를 숨긴 정보요원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게 너였구나. 

 정의의 이름으로! 비비드, 래빗! 변신! 에잇, 국가 기밀 빔!!!!!!!!!!!!!!!!!

 아아악. 국가가 가진 기밀의 무게가 이토록 무거울줄이야.... 안 그래도 작은 키가 더 작아져버려...... 털썩.

 이걸로... 또 하나의 비밀 수행을 클리어 했군. 아디오스.

*

주제. 파파라치.

끼요오오옷!! 참으로 섹시한 코노미씨의 사진을 겟했어요! 우오오오오!!!

잠깐! 시호. 지금 날 몰래 찍은거지? 사진을 지워!

절대로 지울 수 없어요! 이건 대대손손 보관해야 할 소중한 사진인거예요!

분명 시호라면 정상적인 사진을 찍었을 리가 없어. 이리 내!

끼요오오옷! 찰칵찰칵찰칵! 사진을 지우라며 달려드는 코노미씨의 화난 모습도 겟했어요!!

시....호....!!!!!!!


*

주제. 푸딩

코노미씨! 제가 냉장고에 넣은 푸딩! 또 드셨죠!

나는 냉장고 두번째 칸에 있던 푸딩을 봤을 뿐이야!

그 두 번째 칸에 넣은 푸딩을 제가 넣었어요. 그거 드신거잖아요!

아니야. 난 냉장고에 있던 푸딩을 먹었는걸!

그니까! 냉장고에 있던 푸딩이 냉장고 두 번째 칸에 있던 푸딩이잖아요! 그걸 드셨다는거죠?

아니야. 두 번째 칸에 있던 푸딩을 보긴 했지만 먹진 않았어!

그게 무슨 말인가요! 냉장고에 푸딩은 거기에밖에 없었잖아요!

아니야. 냉장고 두 번째 칸에 있는 푸딩을 보면서 내 푸딩을 먹었을 뿐이야!

그게 대체 무슨 말인건가요!!!!

*

 멀찍이서 둘의 활약을 보며, 프로듀서는 생각했다. 혹시 쟤네들. 즉석 꽁트 경연을 성대모사 경연 대회 같은 걸로 착각한 게 아닐까? 주제가 나오면 되는대로 부저를 부서져라 폭행해서 첫 번째를 획득하면 묘하게 어떤 아이들이 연상될만할 대사와 행동들을 내뱉는다. 그래. 저건 진짜 되는대로 뱉는 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으허허허헣. 알 수 없는 허탈웃음이 속에서부터 터져나왔다. 누굴 원망하랴. 이 모든 원흉은 바로 스케줄을 꼬이게 짜 버린 나에게 있도다. 프로듀서는 방청객 끝에서부터 시선을 쭉 내렸다.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실소들이 터져나온다. 그리고 그 실소를 터지게 하는 주인공들은 무대 한 가운데에서 비로소 만든 첫 번째 빙고를 자축하며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거기. 765프로 프로듀서 분?"

 누군가 어깨를 톡톡 두드려 프로듀서는 몸을 돌렸다. 해당 프로그램의 감독이였다. 

 "저, 저기. 오늘은 정말 죄송했습니다. 저 친구들도 아직 예능에 익숙치 않은 아이들이라..."

 프로듀서는 다급하게 몸을 숙였다. 방송을 망친 것에 대한 불이익 같은 걸 받으면 어떻게 하지. 아직 765에는 50명 이상의 아이돌들이 있는데. 코노미랑 시호는 어떻게 하지. 하필 오늘 사무소에 일찍 출근했단 이유 만으로 대타로 들어간 아이들인데.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 속을 헤집어 놓고 있을 때,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래. 저건 분명 껄껄 웃는 소리다. 프로듀서는 고개를 살짝 들어 눈치를 살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런 걸로 태클 걸려 온 게 아니니까요."

 "네?"

 프로듀서는 굽혔던 허리를 폈다. 시야 한가득 만족스런 미소를 뜬 프로그램의 감독의 얼굴이 들어왔다.

 "아.. 사실 아카네씨랑 레이카씨가 아니라 걱정을 좀 하긴 했지만서도. 저 친구들 상당히 만족스러워서 온 겁니다. 바바 코노미랑 키타자와 시호라. 새로운 조합이 의외로 괜찮군요. 그래도 신경 써서 저런 신선한 조합을 구상해 온 765의 프로듀서에게 고맙다는 말 하러 온겁니다."

 ".....아. 그렇죠. 아무리 대타라 할지언정 아무 인선이나 보낼 수는 없으니까요."

 "그 키타자와 시호라는 친구는 연기를 좀 하는 친구인 모양이죠?"

 "예. 저희 사무소에서 연기 쪽 일을 많이 맡고 있는 아입니다. 가창력도 준수하고요. 어떤 일이든 진지하게 임하는게 매력인 아이죠. 바바 코노미씨도 저희 사무소에서 여러 일들을 맡고 있는 아이돌입니다. 가창력도 좋고, 춤도 괜찮고 특히 노래들은 대중들에게도 평이 좋죠."

 이때다 싶어 프로듀서는 시호와 코노미에 대한 짤막한 PR을 했다. 방송계는 입소문이다. 저 둘을 만족스럽게 생각한 감독에게 기회를 틈 타 홍보하는 것 역시 프로듀서의 일이리라. 

 "그래요. 잘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고맙습니다. 죄송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프로듀서는 멀어져가는 프로그램 감독의 등 뒤로 사과와 감사의 말을 외쳤다. 아아. 어떻게든 됐다. 무난하게만 뽑혀도 다행스런 일인데 이 정도면 선방 이상이다. 얼른 녹화가 끝나면 코노미와 시호에게 이 소식을 전달해줘야지.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스튜디오를 벗어나기 위해 출입문으로 향하던 프로듀서는, 그 문 양 옆에 기대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두 시선과 마주친 후 우뚝 멈춰섰다. 코노미. 시호? 녹화가 끝난건가? 아. 그러고보니 빙고판에서 1빙고를 만드는 팀이 승리하는 걸로 프로그램이 끝난다고 했었지.

 "......봤니?"

 그냥. 왜 그런 물음이 나온건지 모르겠는데, 물어봐야만 할 것 같았다.

 "뭐, 어쨌든 성공적이었으니까요. 아무 인선을 보낼 수 없다는 그 호언장담을 인정하긴 해야겠지요."

 "시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리를 홍보하는 것도 잘 봤고. 이왕이면 어덜티한 누나의 섹시한 매력을 언급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코노미는 웃으며 다가와 프로듀서의 등을 두어번 팡팡 쳤다. 

 "그... 이해해주셨음 해요. 차마 이 인선이.... 그런 인선이라고는 말 못하잖아요?"

 혹시 다른 스탭들의 귀에 대충 짠 인선이란 말이 들어가 만족한 감독의 호평에 스크래치를 낼까봐 프로듀서는 에둘러 말했다.

 "그렇지. 그런 인선이었는데 이런 인선이었던거지."

 역시 코노미씨다. 거지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주는구나. 프로듀서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 뭘 잘했다고 웃으시는건가요."

 시호의 톡 쏘는 말에도 프로듀서는 방긋거렸다. 

 "잘하긴 했으니까. 그래. 밥 사줄까? 새로운 예능 콤비가 된 기념으로. 자, 나가자. 가자가자."

 프로듀서는 두 사람의 등을 떠밀며 스튜디오 밖으로 함께 나갔다. 일을 하고 난 상황임에도 몸도 마음도 날개를 단 마냥 가볍게 느껴졌다. 그건 필히 이 두 사람 덕택이리라. 두 사람이 원하는 맛난 음식으로 제대로 사례를 해야겠다 생각하며 프로듀서는 두 사람과 함께 일터를 벗어났다.
.
.
.
 그나저나 밥만 사줄거야? 밥만으로는 안 되지.

 코노미씨. 아직 열 네살인 시호가 있어요.

 시호는 음료수를 먹으면 되지. 콜라? 사이다? 오렌지쥬스?

 딱히 뭘 먹어도 상관은 없지만. 아이 취급은 하지 말아주세요. 코노미씨.

 하지만 그렇다고 어른의 음료를 줄 순 없잖아. 안 그래?

 그, 그렇긴 하지만...

 하여튼간, 귀엽다니까.

 코,코노미씨도 정말...!



 - 후일담.


 얼떨결에 찍은 예능프로그램을 녹화한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자신이 출연한 프로그램을 모니터링 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어느 방송국에서 몇 시에 방영한다는 공지를 프로듀서에게서 전달 받았지만 시호는 굳이 챙겨보지 않았다. 지금와서 그 때를 떠올리면 대체 그 때 내가 어떤 짓들을 펼쳤는지도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걸 내가 녹화를 하긴 했을까 싶은 의문까지 들 정도로. 그만큼 시호에게 있어 그 날은 참 정신없는 하루였다. 그런 정신상태로 촬영한 프로그램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분명 인터넷으로 기사도 떴을테고, 시어터의 몇몇 사람들도 챙겨봤겠지. 부디 챙겨 본 사람이 적기를 바라며 극장 대기실의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무심한 인사와 함께 대기실을 훑어 본 시호는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자신을 향하는게, 저 눈빛들은 필히...

 "바로 레슨실로 갈..."

 "시호링---!!"

 도로 문을 닫고 나가려는 시호를 아카네는 필사적으로 끌고 들어왔다. 

 "이야. 프로쨩에게 얘기 듣긴 했지만, 시호링. 감동이야. 우릴 그렇게 관찰하고 있었던거구나."

 "그러게. 그 꽁트로 아카네쨩의 푸딩을 먹지 않는다는 걸 증명할 수 있었어."

 "아니아니, 그 꽁트가 어떻게 그런 결말이 될 수 있는거야?"

 레이카와 아카네가 투닥거린다. 이 틈을 틈타 나가야한다. 시호는 아카네에게 붙들린 손을 슬며시 풀었다. 하지만,

 "우햐아아! 시호쨩! 시호쨩의 완벽한 아리사의 성대모사에 감동했어요! 아리사, 그 영상 평생 소장하겠어요! 무흐흐."

 "안나... 시호의 비비드 래빗....잘 봤어..."

 꽁트의 도움을 받았던 본체들의 다양하고도 열렬한 환대에 시호는 혼이 빠져 나갈 것 같았다. 어서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머릿속에선 경고를 울려대는데 여러 명이 끌고 들어가는 힘은 도저히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렇게 그 이끌림에 의자에 풀썩. 주저앉듯 앉아버린 시호는 맞은편에 앉아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곤,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시호. 안녕?"

 "코노미씨에게도 이랬나요?"

 "말해 뭐하니."

 오늘의 일과는 이걸로 끝났다. 이렇게 시달리다 돌아가게 되겠지. 그래. 끝나버렸다. 





 코노미 좋아요. 시호 좋아요. 그래서 둘 다 넣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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