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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P 리퀘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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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25, 2018 18:33에 작성됨.

1) 달려 나가는 청춘의 1페이지


 이제 끝장이다. 유우키의 뇌리에 절망적인 생각이 스쳤다.

 파란 하늘 아래로 구름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햇빛이 내리쬐는 날. 좋은 날씨에 모든 것이 모인 장소에서 유우키는 생애 처음 겪는 떨림에 움직이지 조차 못 했다.

 아직 날씨가 쌀쌀해서? 아니다. 지진이라도 났기 때문에? 확실히 이 장소에서 지진이 나면 큰일이지만, 다행히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유우키는 차라리 지진이라도 나서 촬영이 무산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저 낭떠러지로 떨어질 일은 없을 테니까. 번지점프 무서워! 13살 소녀의 가련한 외침이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버라이어티 방송에서 패배한 벌칙이었다. 퀴즈와 체육을 합쳐 달려 나가면서 미션을 해결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간다는 컨셉의 방송인데, 육상부인 유우키와는 잘 맞는 일이라 그녀 스스로도 1등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사는 맘대로 되지 않는 법. 팀을 짜서 나간 요시노가 ‘부활절’을 전혀 몰랐던 탓에 두 사람은 번지점프대에 오르고 말았다. 먼저 유우키가 뛰기로 했으나 키와 달리 아직 여린 마음을 가진 소녀에겐 너무 가혹한 미션. 30분 째 심호흡과 다리떨기만 하다가 촬영은 휴식에 들어갔다.

 침울해진 유우키는 점프대 앞을 떠나지 못 하고 있었다.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며 극복해 보려 했으나 공포만 가중되었다. 어린애한테는 너무 가혹했나. 스태프들도 고민에 빠져 유우키를 안쓰럽게 바라보는데, 유일하게 그 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야. 놀고 있냐, 지금?”

 프로듀서가 비루한 움직임으로 툭, 건드렸다. 좀비 같은 몰골로 불쑥 다가오자 유우키는 유우키는 화들짝 놀랐다. 꺄악! 넘어질 뻔 한 것을 난간에 매달려 버텼다.

 “아깝네. 성공할 뻔했는데.”

 “손이라도 내밀어 주시고 그런 얘기 해주세욧!”

 “웃겨. 뛸 것도 아니면서 왜 계속 자리 차지하고 있어. 바보 같이.”

 “뛰고 싶지 않은데, 정말 뛰기 싫은데! 일이라서 어쩔 수 없잖아욧! 저 처음으로 이런 일을 가져온 프로듀서를 원망하고 싶어욧!”

 “귀여운 일 하고 싶대서 자칭 귀여운 녀석이 하는 일을 가져온 건데…….”

 “그거 말고 다른 방향으로 귀여운 일들도 있잖아욧!”

 잠시 실랑이를 벌이다 유우키는 안전한 곳까지 올라왔다. 늘어지게 하품이나 하는 프로듀서에게 눈치가 보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말로 그가 원망스럽지는 않다. 오히려 기껏 생각해서 가져와준 일을 멋지게 해내지 못해 미안하다. 그런 마음을 담아 말하기도 전에 프로듀서가 물었다. 뭐가?

 그는 신기한 눈을 가졌다. 뭐든지 볼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눈을. 남의 마음을 함부로 읽는 건 좋지 않지만, 지금은 말할 기운도 없기에 유우키는 그대로 대화를 이었다.

 기껏 가져와주신 일인데……. 그럼 뛰어. 하지만 너무 무서워서……. 그럼 포기해. 포기한다고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스태프 분들한테도 피해만 줄 텐데.

 “네가 여기서 못 뛰고 우왕좌왕하는 게 제일 피해야. 저것들, 지들이 시켜놓곤 너무 무리였나 보다…… 이러고 있거든. 시간 지나면 더 심해질 걸. 그러니까 얼른 뛰든지, 무리니까 다른 벌칙으로 바꿔 달라 하든지……. 저기서 머리 식히고, 하나 결정해서 와.”

 반강제로 떠밀려 드디어 점프대를 벗어났다. 배려라고는 느껴지지 않지만 이것도 프로듀서 나름의 배려겠지, 라고 아닌 걸 알면서도 이해하며 유우키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멀리 새 한 마리가 날아갔다. 나도 날 수 있었다면 좋을 텐데. 멍하니 상상하는데 아담한 키의 요시노가 유우키에게 다가왔다. 저 때문에 고민이신지요-? 유우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에요.

 “저도 모르는 문제가 많았는걸요. 달리기가 빨랐어도 이기긴 힘들었을 거예요. 지금은 다만…… 뭐가 답인지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 하는 게 한심해요.”

 “두려움은 누구나 있는 법이오니-. 저 또한 이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건 두렵습니다-. 그러나 유우키-. 그대가 정 무리라고 한다면-.”

 거기서 말을 끊고 요시노는 프로듀서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말했다. 그러자 프로듀서가 스태프들에게 또 뭔가를 말하더니 촬영은 속행됐다. 요시노 먼저 뛰겠습니다! 충격적인 말에 유우키가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요?

 요시노가 점프대에 섰다. 바람에 신비로운 머리칼을 나부끼며 서 있는 모습은 어째서인지 크게 보여, 키는 한참 작아도 유우키보다 연상임이 납득 갔다. 순간 요시노는 고개 돌려 유우키에게 방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째서인지 유우키는 소녀를 불렀다. 요시노 씨!

 뛰었다. 목소리가 닿기도 전에. 얼른 달려가 소녀가 뛴 자리를 확인하니 요시노는 이미 땅 아래에 도착해 있었다. 프로듀서가 유우키의 옆에서 아래를 내다봤다. 지긋이 바라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생각보다 별거 없다고 한다.”

 “네?”

 “전해 달라고. 너한테.”

 그래도 정 못하겠으면……. 프로듀서가 여분의 안전장비를 가지고 왔다. 같이 뛰어주라는데…….

 “할래? 말래?”

 눈을 껌뻑거리며 유우키는 위와 아래를 내다봤다. 작게 손을 흔드는 요시노와 뭐든 좋으니 빨리 결정하라고 타박하는 프로듀서. 자연히 웃음이 터졌다. 말할 필요도 없이 프로듀서가 비루하게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에 손 많이 간다니까.

 갑자기 예전에 TV에서 본 번지점프 도전기가 떠올랐다. 점프를 뛰기 전에 소망을 크게 말하고 멋지게 내려가는 것인데, 요시노는 아무 말 없이 뛰어내렸다. 그러니 자기가 요시노 몫의 소원까지 말해도 괜찮을 것이다. 용기만이 아니라 소망까지 남기고 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우키는 점프대에서 조금 떨어졌다. 줄이 걸리지 않게 치워두고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육상 자세를 취했다. 익숙한 모습이라 그럴까. 다시 두려움을 한 꺼풀 벗어던질 수 있었다.

 “좀 더 귀여운 아이돌! 하늘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반짝이는 아이돌이 되겠습니닷! 하나, 둘, 셋!”

 번지!







2) 데레스테류


 “만약에, 정말 만약에 이야기야. 하나 가정을 해보자고. 나는 영국 귀족인데 잘 생긴데다 돈도 많고 능력도 있으면서 일본에 어느 중견 아이돌 기획사에서 일하고 있어. 굳이 이런 짓을 하는 이유는 그 회사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지. 정말 사랑스럽고 마치 하늘의 천사가 인간의 모습을 빌려 내려온 것만 같은…… 아이돌 말이야. 그래, 뭔 소리 하고 싶은지 알아. 어느 미친놈이 아이돌이랑 연애하겠답시고 굳이 프로듀서 일까지 해? 내가 생각해도 보통 일은 아니야. 그래서 말인데, 사실 가정이 아니라 진짜야. 내가 그런 사람이거든. 거짓말해서 미안. 아니, 사실 안 미안. 피해준 것도 없는데 왜 미안해. 어쨌든 얘기 계속하자면, 나는 내 아이돌이 불편하지 않게 최대한 배려하면서도 어떻게든 유혹해 보려고 여러모로 노력 했어. 신사적이고 프로페셔널하게. 그 결과 주말에 단 둘이 만나 데이트를 할 수 있게 됐지. 물론 그 아이돌은 내 마음을 몰라. 고마운 사람에게 밥 한 끼 사주려는 게 전부야. 아쉽긴 해도 데이트 하는 게 어디야. 자, 이제부터가 본론이야. 기쁜 마음에 나는 데이트 당일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쫙 빼입고, 데이트 코스를 세 번이나 점검했어. 그리고 약속 시간 2시간 전 여유롭게 출발했지. 하늘도 맑고 바람도 선선하고,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이는 날이야. 이런 날에 내가 우연히 자연적으로 발생한 차원의 문에 휘말려 인간 세상으로 넘어온 드래곤과 마주쳐 빌딩 숲을 넘나들며 싸움을 벌이게 될 확률은…… 대체 얼마인 걸까?”

 철퇴 같은 붉은 꼬리가 그에게 직격했다. 간신히 양팔로 막아냈지만 체급의 차이는 어쩔 수 없어 그는 뒤로 밀려났다. 튕겨나갔다. 텀블링하는 움직임으로 땅에 착지하자 눈앞에 괴물이 힘을 과시하는 포효를 내질렀다. 진동하는 공기를 타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 닥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대형 화물 트럭만한 몸집, 그걸 부풀리는 날개. 어느 산장에 박제해두면 멋있을 법한 뿔 달린 대가리와 파충류 특유의 눈동자. 단단한 비늘과 무시무시한 발톱까지. 어딜 보나 이 녀석은 드래곤이었다. 공룡도 도마뱀도 시조새도 아닌, 드래곤. 신화에서나 위용을 뽐내던 판타지 생명체가 20층 건물 옥상에서 한 인간과 대치하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이없는 상황에 그는, 프로듀서는 하던 말을 마저 끝내기로 했다. 그러니까 말이지.

 “내가 하고픈 말은 이거야. 이 따위 소재를 리퀘 신청한 놈 누구야! 나 엿 먹이는 거냐!”

 드래곤의 주먹이 덮쳐들었다. 프로듀서도 지지 않고 주먹을 날렸다. 두 철권이 정면에서 부딪치자 또 순간 대기가 진동했으나 얼마 안가 프로듀서가 밀려났다. 같은 힘이라도 무게가 더 나가면 강한 법. 당연한 물리법칙에 프로듀서는 혀를 찼다. 옥상 난간을 부수고 맥없이 날아가며 하늘을 응시했다.

 “너 내가 댓글 확인했어. 프사도 다 봤어! IP 추적할 거니까 모니터 앞에서 딱 기다려!”

 그 순간 하늘에서 빛이 사라졌다, 그렇게 착각할 만큼 빠르게 큰 그림자가 프로듀서의 시야를 가렸다. 날개를 펼친 드래곤이 중력을 이겨내고 프로듀서의 위를 점하고 있었다. 아까도 맞아본 꼬리가 아까보다 더 크고 강하게 휘둘렀다. 시야를 벗어나 왼쪽, 비행의 기세를 더해 정확히 머리를 노린 공격이었다.

 쉐따 빡. 짧은 욕설과 함께 프로듀서의 손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 때 시야가 스쳐지나가는 커다란 물체를 붙잡았다. 눈을 번뜩이더니 프로듀서는 순식간에 행동을 바꿔 가드를 취했다. 날아드는 꼬리가 그를 골프공처럼 후려쳐 저 멀리 빌딩에 처박았다.

 콘크리트 벽이 갈라지고 찢어진 옷 조각과 텁텁한 가루가 흩날리는 가운데 프로듀서는 시선을 정면에 향했다. 방금 전 공방에서 그의 반격을 멈춘 물건, 옆 빌딩에 걸린 전광판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아이돌 타카모리 아이코와 소속 유닛인 포지티브 패션의 멤버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만약 공격을 속행했다면 맞을 수도 있는 위치였다.

 바람이 불어 연기를 걷어내고 그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했다.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진짜 예쁘다, 아쨩, 어쩜 저리 천사 같을까. 여유를 들여 구경하고 싶었으나 또 드래곤이 시야를 가렸다. 자연히 표정이 일그러졌다.

 “야생동물 새끼 매너도 없어. 내가 저 광고 붙이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으직, 소리와 함께 균열을 빠져나왔다. 뻐근한 목을 풀자 드래곤이 날아들었다.

 빨리 끝내야 약속 안 늦지. 품 안을 뒤져 두 자루의 리볼버를 꺼냈다. 그보다 이 녀석이 날뛰면 약속 취소잖아. 손 안에서 타오른 불꽃이 실린더 안으로 들어가 탄환을 대신했다. 그건 안 되지, 안 돼. 총을 거꾸로 돌려 총구가 뒤를 향하게 쥐었다. 엄지손가락을 방아쇠에 걸고 꽉, 강하게 쥔 순간 코앞까지 온 드래곤을 응시하며 당겼다.

 “You can do it.”

 부스터와 함께 주먹이 명치에 꽂혔다. 미사일처럼 날아오던 놈의 기세가 꺾이고 목구멍에서 피가 흘렀다. 프로듀서는 멈추지 않고 다른 주먹을 들어 엄지를 당겼다.

 “Just do it.”

 다시 한 번 명치. 폭발하듯 가속한 주먹이 비늘을 부수고 살과 뼈를 박살냈다. 그러고도 아직 실린더엔 10발의 화염이 장전되어 있었다.

 “즐겁지 않으면 안 돼~ hey! hey! hey! hey! 아직 뻗어버리면 안 돼~ hey! hey!”

 탕, 소리를 구령으로 주먹을 날릴 때마다 육중한 몸이 망가졌다. 거대한 고깃덩이를 망치로 얇게 피듯이. 곤죽이 된 몸으로 드래곤은 발악의 비상을 했다. 총을 똑바로 잡고 부스터로 공중에 멈춰선 채 프로듀서는 고개를 들었다. 햇빛에 가려 잘 안 보이지만 이미 점이 되어버린 놈이 공격 준비를 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브레스, 드래곤의 상징이지. 놈이 입을 크게 벌렸다. 근데 이거 어쩐다. 남은 힘을 집중한 혼신의 불꽃이 프로듀서에게 직격하더니 그가 피워낸 불꽃에 삼켜졌다.

 “내 불이 더 강한데.”

 크게 벌린 입이 닫히지 않았다. 펄럭이는 날개와 반대로 사고가 정지해 버렸다. 리볼버를 재장전 했음에도 드래곤은 어찌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 했다. 온 몸에 이글거리는 화염을 두른 인간에게서 자기보다 더 크고 강력한 드래곤의 모습을 보았다. 태어나 처음 겪는, 먹이사슬에서 자신보다 위에 있는 상위 포식자의 등장이었다.

 그 공포를 아는지 모르는지 프로듀서는 그저 날아다니는 놈을 거슬려 했다. 한손으로 비행을 유지하고 다른 한손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속사로 쏘아올린 세 발의 화염이 두 날개와 한 팔을 꿰뚫었다.

 “세 개의 별~”

 비명이 터지기도 전, 어느새 프로듀서가 드래곤의 위를 점하고 있었다. 팟, 하고 튀어올라~. 부스터로 회전하며 날린 발차기가 머리에 직격했다. 올라타자, 유성~.

 부서진 이빨과 뿔 조각 사이로 터져 나온 눈물이 빛을 반사했다.

 “분함의 눈물도 전부가 소중해~”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브레스처럼 발사된 화염이 드래곤을 휘감고 땅에 떨어졌다. 쿵, 하고 잠시 흔들린 땅 위로 프로듀서는 여유롭게 착지했다. 도망치려는 드래곤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아지랑이처럼 불꽃이 피어올랐다.

 느긋하면서도 또 나긋한 움직임. 한발 한발 딛을 때마다 녹아내린 아스팔트에 발자국이 찍히고, 불꽃은 불씨가 되어 허공을 날았다. 그 걸음 그대로 놈을 밟고 산책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놈에게 한 손을 들어 똑똑히 보여줬다. 지금껏 쏘아댄 불꽃들이 전부 모여들어 태양처럼 거대한 구체를 형성했다.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열만으로도 살갗이 탈 것 같은 뜨거움. 분명한 최후의 일격에 드래곤이 눈을 감자 프로듀서는 구체를 던졌다.

 “팡팡팡 팡FAN의…….”

 펑!


 약속 시간까지 30분. 씻고 옷 갈아입고 에너지를 소비했으니 배 좀 채우고 최대한 빠르게 날아간다면 얼추 맞을 시간. 초토화 된 거리와 덜 익은 야생동물을 뒤로 하고 프로듀서는 장소를 벗어났다.

 그 때 멀리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엔진 소리와 헬리콥터 소리. 이런 일을 전문으로 처리하는 기관이 드디어 온 것이다.

 “저것들은 항상 느려터졌다니까. 아니지. 내가 빠른 건가?”

 분개하다가도 한 칸씩 움직이는 초침을 보면 화낼 시간도 없음을 알 수 있다. 피해 복구며 기억조작까지, 뒷수습은 전부 저들이 해줄 터. 그가 해야 할 일은 이제 여기에 없다. 얼른 약속 장소로 가야 한다.

 골목을 벗어나자 내리쬐는 햇빛이 따스하게 닿았다.

 “음. 데이트하기 좋은 날씨네.”





















3) 낙엽처럼


 우거진 신록이 옷을 갈아입는 어느 날이었다. 프로듀서는 공원 벤치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군고구마를 먹었다. 옆에서 웬 노숙자 한 명이 쳐다봤지만 신경 쓰지 않고 먹는 데 집중했다. 점심도 굶고 간신히 때우는 끼니라 나눠 줄 여유가 없었다.

 매정히 눈을 돌리면서 별 것 아닌 통념에 의문을 제기해 보았다. 어째서 가을에는 군고구마일까. 낙엽이 많아서인가. 날씨가 쌀쌀해져서인가. 곰곰이 생각하다 내린 결론은 ‘아무렴 어때’였다. 날도 좋고 맛도 좋고, 그 덕에 분위기도 좋으면 만사 OK. 그뿐이다. 이렇게 시원시원히 넘어가야지 물고 늘어지다 보면 중요한 일을 놓친다. 예를 들면 저기 지나가는 아름다운 아가씨라던가.

 프로듀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기인 친근함과 열정으로 다가가 물었다. 아이돌 해보지 않을래요? 어리둥절해 하는 아가씨에게 명함을 건네고 공들여 설명했다. 당신이라면 분명 멋진 아이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아가씨는 생각해 본다고는 말했지만 아무리 봐도 귀찮아하는 모양새였다. 이럴 때는 오직 밀어붙일 뿐. 프로듀서는 더 적극적으로 명함을 권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것 같았다. 견디다 못한 아가씨가 도망치듯 떠나고 나서야 자신이 너무 나갔음을 알았다. 아차. 머리를 긁적이는데 누군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순경이었다.

 “방금 여자 분한테 뭐하려고 하신 겁니까?”

 “오해예요. 저는 아이돌 프로듀서입니다. 여기 명함 확인해 보세요.”

 “자꾸 달라붙으시던데. 연예 기획사라면서 사람 잡아다 수상한 짓이나 하는 수법 아닙니까?”

 “아니요, 진짜요! 프로덕션에 전화해서 물어봐도 되는데!”

 “서까지 가서 전화해 보죠. 바로 근처니까.”

 프로듀서의 얼굴이 파랗게 변했다. 역시 너무 나갔다. 도망쳤다간 일이 더 커질 터. 그렇다고 잡혀 가기도 싫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데 아까 전 노숙자가 다가왔다.

 뭐지? 프로듀서도 순경도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제가 아까 이 사람 얘기하는 거 다 들었습니다. 남자는 무겁게 입을 열더니 정말로 프로듀서가 아가씨에게 했던 말들을 그대로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나쁜 짓 할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변호했다.

 이번에 순경은 남자를 의심했다.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이번에 남자는 자기 거주지가 어딘지 상세히 설명했다. 덥수룩한 머리하며 퀴퀴한 냄새, 비루한 몰골 등 행색과 달리 노숙자는 아니었지만, 지금 하는 일은 없고 지금은 잠깐 산책을 나왔다고 말했다.

 끝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지만 순경은 결국 물러났다. 멋대로 의심해놓고, 사과라도 하면 덧나나. 입을 쭉 내밀고 쳐다보다 프로듀서는 뒤늦게 남자의 눈치를 보았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 뭐가요?”

 “제가 좀 실례되는 생각을 해가지고……. 그, 고구마라도 드실래요?”

 둘은 같이 벤치에 앉았다. 딱히 배고프지 않고 먹고 싶지도 않지만 거절하기도 뭐하다는 양 남자는 고구마를 입에 물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프로듀서는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 얼굴이 왠지 부담스러워 남자는 화제를 돌렸다.

 “아이돌 프로듀서 한다고?”

 “네. 꽤 큰 프로덕션에서 일해요. 아이돌도 백 명 넘게 있고, 제 담당도 꽤 많죠. 그래서 행동을 조심해야 돼요. 이 업계라는 게 소문 하나 잘못 퍼져도 큰일이라…….”

 “별로 조심하는 것 같지 않던데.”

 관심도 없이 툭하니 던진 말이 프로듀서에게 박혔다. 기침으로 무마하려는데 남자가 물었다. 그래도 즐겁나봐. 프로듀서가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걔네들한테 약속 했거든요. 최고로 만들어 주겠다고. 저를 의지하고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저 성처럼 우뚝 선 무대에 반드시 데려다 주고 싶어요.”

 감사했습니다. 다시 한 번 인사하고 프로듀서는 공원을 떠났다. 폰이 울려 확인했더니 회사였다. 혹시 경찰에서 연락했나? 괜히 쫄면서 받았으나 바로 긴장이 풀렸다. 프로듀서의 아이돌들이 큰 브랜드에서 광고를 찍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날아갈 것처럼 다리가 가벼워졌다. 풍요의 계절이라 그런가. 좋은 일들이 연달아 터지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스케줄을 정리하며 프로듀서는 달려갔다.

 그 모습을 남자는 멍하니 시야에 담았다. 곧 이어 자조했다. 왜 도와준 거야, 아직 미련을 못 버렸어? 대답하기도 전에 현기증이 머리를 깨뜨렸다.

 망할……. 작게 신음하며 몸을 웅크렸다. 고통이 서서히 퍼져나가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눈이 빠질 것 같고 위장이 뒤틀리고, 뭔가 안 좋은 것이 온 몸에 뿌리내린 듯 했다. 마침 불어온 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위험해. 간신히 몸을 움직여 공원을 벗어났다. 토할 것 같은 감각과 함께 기억이 올라왔다. 당신이 나의 프로듀서? 소녀들이 말했다.

 뭐 나쁘진 않네. 제가 귀엽다는 걸 증명하도록 도와주세요. 아이돌? 응, 힘낼게! 아이돌 같은 경박한 건 안 한다고! 저, 정말로 내가 아이돌이 될 수 있는 거야? 이 이상의 행복을 아이돌로써 맛볼 수 있다니…… 대단해! 걱정하지 마, 일은 제대로 할 테니까 말이야. 저, 열심히 할 테니 프로듀스 잘 부탁드립니다.

 하나하나의 말이 머리를 후벼 파고 다음 기억들을 불러냈다. 가장 떠올리기 싫었던 기억. 조그마한 소녀의 목소리가 스쳤다.

 ‘안즈를 부자로 만들어줘, 프로듀서.’

 집에 도착했다. 바람 한 점 닿지 않는 길목, 꽉 막힌 사각형의 방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절망과 좌절이 반겨줬다.

 그대로 쓰러졌다. 굴러다니던 술병이 발에 채여 팅, 소리를 냈다. 그것이 고막을 자극해 다시 현기증을 불러 일으켰다. 처음부터 다시 낭랑한 목소리들이 심장을 쑤셨다.

 기억 속에서 한 인간이 그를 쳐다봤다. 한 때 가을P라 불렸던 남자가 한심하게 쳐다봤다. 너 거기서 뭐 하는 거야? 프로답지 못 하게. 짓누르는 두통 속에서 그는 중얼거렸다.

 “썩어 가고 있는 거야.”

 마치 낙엽처럼 떨어져서.

 “그냥 썩고 있어…….”









4)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혼다 미오. 겨울P 담당 아이돌 그만둡니다.”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다 들은 이야기였다. 정말 갑자기, 그 전에 아무런 징조도 없이. 하루 웬 종일 감 한구석이 거슬리다 싶더니만 이거 때문이었나. 잠시 잔을 내려놓고 모자를 매만졌다.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미오가 미간을 좁히고 말했다. 뭐야, 나 진지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진지하게 생각 중이야. 네가 뭐 때문에 삐진 건지 모르겠거든.”

 “시치미 떼지 마. 다 알고 있으면서. 겨울P랑 아냐 때문이잖아!”

 그게 이유라면 기각. 다시 잔을 들었다. 합당한 이유면 바꿔줄 수도 있었는데, 담당. 차가운 액체를 넘기던 중 나와 미오의 폰이 울렸다. 일 다 끝났다는 보고 메시지였다. 바로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보고 싶다는 소망이 길게 담겨 있었다. 자연히 피식하고 웃음이 나는데 미오가 도끼눈을 뜨고 날 노려보고 있었다.

 이거 놀랍군. 답장도 잊고 남은 커피를 들이켰다. 몇 년 전까지 내가 저런 눈이었는데. 자그마한 얼음 조각 하나가 혀를 스쳐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좋아?”

 “좋지. 꿈꾸던 일인데.”

 “겨울P의 꿈으로 인해 누군가의 인생이 피해를 볼 수도 있어.”

 “그거 참 심각하네. 하지만 난 좀 행복해져야겠어. 앞으로 계속.”

 놀리듯 말하며 슬쩍 답장을 보냈다. 나도 보고 싶다고, 얼른 와달라고. 진실함을 담은 문자를 보내자 미오의 폰이 또 울렸다. 잠금을 해제해 내용을 보더니만 짜증을 냈다. 아우, 진짜!

 “왜 겨울P랑 아냐는 자꾸 단체방에서 이런 문자를 주고받는 거야!”

 튀어나온 본색에 나는 고개를 까닥했다. 간단히 말해 미오가 화난 이유는 이거다. 솔로천국 커플지옥. 세상 모든 싱글들의 바람이기도 한 그것 말이다.

 내가 아나스타샤와 사귄지 2년.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사랑이 고팠던 우리는 밀린 빚을 갚듯 사랑을 해나갔다.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껴안고 좀 더 깊게 껴안고.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말보다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다보니 주위를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당연히 그로 인한 부작용이 있었고,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네가 좀 이해하라 따위의 말을 내뱉기도 어려웠다. 미오, 그리고 시키는 우리 사랑의 최대 피폭자였기 때문이다.

 데이트나 애정행각을 할 때 정말 은밀한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 옆에는 항상 미오와 시키가 있었다. 단체로 행동하면 남들 눈을 피할 수 있다는 까닭에서였다. 어쨌든 간에 우리는 아이돌과 프로듀서고, 그리 공개적인 관계는 아니니까.

 우리를 가장 가까이서 봐온지라 처음에는 둘도 이러한 행위에 대해 뭐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네 아줌마들처럼 집요하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다음 자기들끼리 안주거리로 삼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연 단위로 눈꼴 시린 모습을 보다 드디어 분노가 터진 것이다.

 “그래도 담당 바꾸는 건 안 돼. 네 아이돌 생활 끝날 때까진 내가 옆에 있을 거거든.”

 “겨울P 완전 이기적이야.”

 “나 원래 이기적이야.”

 “처음엔 안 그랬어. 멋있고 친절하고 섬세하고 내 마음 다 알아주는 줄 알았는데, 연애하더니 바뀌었어. 아냐도 그래. 이젠 나보다 겨울P가 더 좋나봐.”

 “한참 전부터 그랬겠지. 인정하기 싫겠지만 이제 받아들여야 할 때야. 너도 어른이잖아.”

 어른……. 미오의 목소리가 침울해졌다.

 “어릴 땐 몰랐는데, 어른 참 싫다. 뭐든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고. 불만 있어도 꾹 참고. 주위에 있는 것들은 다 변해 가. 나조차도. 변하기 싫은데, 이대로 계속 있고 싶은데 내 맘대로 되지 않아. 언젠가는 끝이 와버려.”

 “받아들여야지. 그게 세상의 순리야.”

 “딱딱한 얘기는 싫어. 좀 더 정열적이고 재밌는 게 좋아. 아이돌처럼. 겨울P도 그랬잖아. 하고 싫은 일은 안 시킨다, 하고 싶은 일을 해라.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을 영원히 할 수는 없어.”

 “네 말대로 모든 건 변하니까. 변해버린 세상에서 너도 네 할 일을 찾으면 돼.”

 “하지만 거기에 겨울P랑 아냐는 없잖아! 이제…… 결혼하잖아.”

 순간 높아졌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미안해, 좋은 일인데.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미오는 고개를 숙여버렸다. 정적 속에서 망상이 스멀스멀 과거를 불러 일으켰다.

 결정을 내린 건 한 달 전. 어느 인터넷 기사에서 아나스타샤의 연애 의혹이 났을 때였다. 상대는 드라마 촬영을 같이 했던 남자 배우로 당연하지만 사실무근. 양측 소속사에서는 기사 내용을 부인했으나, 한 번 터진 스캔들은 쉬이 잠잠해지지 않았다.

 티내지 않으면서도 아나스타샤는 괴로워했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밝히지 못 하고, 그저 가십거리로 다뤄지는데 지친 것이다. 나는 결단을 내렸고 준비한 반지를 건넸다. 차라리 모든 것을 속 시원히 털고 떠나자고 말하자, 아나스타샤는 나를 꽉 끌어안았다.

 소속사 차원에서 사실을 밝힌 덕에 처음 기사를 다룬 가십은 금방 시들었고, 대신 진짜를 다룬 가십들이 판을 쳤다. 누군가는 응원을, 누군가는 천박한 분노를 드러냈지만 아무런 상관없었다. 우리는 우리만을 신경 쓰자고, 즐거웠던 기억만을 갖고 일상을 살아가자고. 서로를 다독이며 남은 일들을 마저 해내기로 했다.

 “시키냥도 떠난다고 했지. 겨울P가 가져온 일 아니면 흥미 없다면서. 정말 시키냥다워. 아냐는 겨울P랑 있으면 당연히 행복할 거야. 그런데 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가라앉은 목소리가 불안을 드러냈다. 마음 같아선 계속 아이돌을 하고 싶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지금껏 미오는 아이돌이었기에 때로는 리더, 때로는 팀원, 때로는 언니로서, 때로는 동생이나 친구로서 항상 믿음직하게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답을 내려야 한다.

 ‘아이돌이 아닌 혼다 미오는 무엇을 해야 되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끌어주는 나도, 함께 나아가는 친구도 없이 혼자서.

 가지 말라고 붙잡을 수도 있다. 섭섭하다고 솔직히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게 우리에게 부담이 될 걸 알기에 강하게 말하지 못 한다. 겨우 한 번 반항한 것이 담당 바꿔 달라는 조름이지만, 어차피 담당이 바뀔 것이 확정된 상황에서 그걸 조른다고 할 수나 있을까. 이별을 앞당겨서 아무렇지 않을 척 하려는 게 아닐까.

 미오. 어깨가 살짝 떨렸다. 고개 들어봐.

 “아나스타샤와 시키는 떠나도 난 아이돌로서의 네 마지막 무대를 지킬 거야. 그 때까진 시간이 있지만 끝까지 책임진 뒤엔 나도 프로듀서를 그만두겠지.”

 “나는 정말로 혼자가 되고…….”

 “그래도 넌 잘 해낼 거야.”

 “그걸 겨울P가 어떻게 알아?”

 “네 프로듀서니까.”

 미오가 고개를 들었다. 황갈색 눈동자가 아름답게 빛났다.

 “당장은 불안하겠지만 넌 분명 해내. 내가 인정한 아름다운 사람이니까. 어른은 누군가를 이끌어줄 수 있어야 해. 그런데 넌 어렸을 때부터 이미 그런 일들을 해왔잖아. 그러니까…… 너를 좀 더 믿어.”

 해낼 수 있을까? 조용히 물어왔다. 내 감은 틀리지 않아. 피식, 웃어보였다. 미오도 싱긋 웃더니 발랄하게 말했다. 결혼 축하해, 늦었지만. 나는 모자챙을 올리고 그 모습을 좀 더 넓게 시야에 담았다.

 완전히 불안을 털어냈다면 거짓이겠지. 하지만 그 어둠이 있기에 별은 더 눈부시게 빛날 수 있다. 오늘 밤을 넘어서 내일은 더 밝은 미래가 너에게 있기를.

 나는 나의 아이돌의 별에 대고 기도했다.











와아. 오랜만에 써본 단편들 입니다.

중간에 좀 막히기도 하고, 생각보다 분량이 길어지기도 했지만 약속된 기한 내에 다 썼네요.

그래...... 아이돌 누아르도 화이트 나이트도 안 쓰고 있는데, 이거라도 잘 해야지.


개인적으로 1번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들게 나왔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들도 다 좋은 소재들이었던 만큼 제 나름대로 공들여 써봤습니다.

할 얘기는 작품에서 거의 다 했으니 각 이야기 별 간략한 후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1) 달려나가는 청춘의 1페이지


제목은 유우키의 솔로곡 순풍 러닝의 후렴구 가사 입니다.

이 노래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가사이기도 하죠.

뭔가 굉장히 뻔하다고 할까, 왕도적인(?) 전개로 나갔는데 그게 왠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일 무난하게 쓰인 느낌이에요. 쓸 데 없는 기교를 부릴 필요 없이.


사실 번지점프는 다 꿈이고, 유우키가 봄P에게 해몽을 해달랬더니

'높은 데서 떨어져서 키 커지는 꿈이다'라고 하는 결말을 처음에 생각했으나......

훈훈한 분위기에 찬물 끼얹는 것 같아 취소했습니다.



2) 데레스테류


제목의 데레스테류는 여름P가 '그냥 때리면 심심하니까 기술 이름이나 지어볼까?'하고

적당히 갖다 붙여 만든 일종의 무술입니다.

진짜 대충 만든데다 드립으로 점철 되었지만 여름P가 쓰니까 그냥 강합니다.

이번에 나온 기술들은 각각 이렇습니다.


열혈소녀 A - 총의 반동을 이용한 부스트로 가속하며 주먹으로 후려패는 기술.

세 개의 별 - 세 발의 화염탄으로 공중에 띄운 뒤 날아가서 따라잡고, 부스트로 가속한 발차기로 유성처럼 땅에 처박는 기술.

산책 카메라 - 화염을 다리에 집중해 걷는 것만으로 땅을 녹이고 화염의 산책길을 만드는 기술.

재화 이벤트 원기옥 '정열 팡팡파레' - 지금까지 쓴 불꽃을 구체 상태로 모아 던지는 기술.


저 중에서 세 개의 별은 남은 기술이 더 많은데 여름P가 적당히 생략했습니다.

불타라 우정 패션, 대기권 돌입, 대플라이트, 대퍼레이드, 논스톱&대시, 스페이스 오페라, 여섯 개의 별......

이런 거 다 쓰면 드래곤 죽어요.



3) 낙엽처럼


내용상 가장 충격적인 글이 아닐까 싶네요. 반전도 있고.


처음에는 글에 나오는 프로듀서가 가을P가 과거이고, 회상 중이라는 느낌으로 쓰려했는데

이쪽이 현재 가을P의 처지를 더 절망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아 바꿨습니다.

이런 걸 리퀘하시다니...... 당신은 정말 귀축이시군요.


리퀘 내용에서는 6년 후로 해달라 하셨지만 저는 8년 후를 생각하며 썼습니다.

6년 후에 무너지고 2년 동안 스스로 고통 받으며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죠.

이걸로 다른 사계절P들, 그리고 스페이드P와 대충 동류가 되었네요.

별로 좋은 게 아닌데 이거......


정작 다른 애들은 저 시점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요.



4)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가장 쉽게 내용을 정한 이야기 입니다. (가장 어려웠던 건 가을P)

저는 이미 겨울P와 아냐가 결혼해서 딸 하나 낳고 살다가 늙어죽는 것까지 생각해 뒀거든요.

그 이야기들을 언제 풀어놓을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이렇게 쓰게 됐네요.

본편 시점에서 5년 후에 고백, 6년 후부터 사귀기 시작, 8년 후 결혼이라는 순서입니다.

무너진 가을P와 같은 시점인 만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습니다. 희망적인 쪽으로.


정작 이야기는 아냐와 겨울P보다는 미오가 주연이었는데, 여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마스 중에서도 신데마스는 특히 개성적인 아이돌이 많은지라

아이돌 안 하면 뭘 하고 살았을까? 라는 질문에 떠오르는 일들이 꽤 많습니다.

반대로 아이돌 외의 모습은 잘 생각 안 나는 애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미오였습니다.

좋게 말하면 천상 아이돌이고, 안 좋게 말하면 진로 고민이 좀 심할 것 같았죠.


일본 아이돌은 우리나라보다 더 엄격해서 중고등학생 때가 전성기.

8년 후면 좋을 때 다 지나갔고, 친구들도 프로듀서도 하나 둘 떠나 더 이상 아이돌로 있을 수 없게 된 미오......

남몰래 저런 고민 하나 쯤은 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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