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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가 내린 길을 따라 그대를 맞이하리라(花の雨が降った道で貴方を迎える)

댓글: 10 / 조회: 1201 / 추천: 9



본문 - 03-12, 2018 05:35에 작성됨.

 -일러두기 -

1. (이 글의 일부 이미지는 공식 이미지를 흥미 위주로 합성한 것입니다. 작성자는 이에 대한 어떠한 권리 주장이나 상업적 이용을 할 의도가 없으며 문제시 즉시 삭제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절대 공식 일러스트가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2. (이 글에는 캐릭터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자의적인 해석을  불쾌하게 생각하시는 분들께 미리 사과드립니다.

3.   링크된 곡은  이선희 의 명곡 '인연' 입니다.

     같이 감상하시면서 읽으신다면  어울릴....까요?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에 뒤섞여 무어라 외쳐대는 고함소리가 귓가에서 멀어진다.

흐릿한 눈 앞에 형형 색색의 불빛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점멸하며 시들어간다.   


몸의 어느 곳 하나 힘이 들어가지 않고 손가락 조차 움직일 수 없는 지금 이 순간,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가쁜 숨을 몰아 쉴 때마다,

미처 이루지 못한 일들에 미련이 가슴 속으로 밀려 들어와 한꺼번에 터져나온다.

숱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표류하는 목소리들 가운데서도 나는 너를 찾고 있다.

 

'...........오늘은 시라기쿠씨의.....첫....데뷔 라이브....일....텐...........'


아....

끝내 이어지지 못한 인연과 전해지지 못한 말들은 모두들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보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들 어디로 가버리는 걸까. 알 수 없는 의문들이 의식을 어지럽힌다

점차 어두워지는 눈 앞이 흐려져 비가 올 것만 같다. 초첨 없이 흔들리는 불빛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린다.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눈이 감긴다. 점차 밀려오는 어둠에 모든 것이 검게 물든다.

졸립다.





얼마나 잠이 든 걸까....주변이 조용하다.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온다. 알 수 없는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좀 더 잠을 자볼까.....하려던 찰나


"프로듀서님.....프로듀서님?"

이 목소리는.....시라기쿠씨....?


"힘들고 피곤하신건 알겠지만...이런데서 주무시면 감기걸리셔요."


벌써 팬미팅 끝 난건가? 아냐....그럴리 없어 아직 대기자 순서가....

아니......대기자들이 있을리 없지 시라기쿠씨는 아직 데뷔를... 

....어라? 잠깐. 우린 분명 데뷔 라이브 회장으로 가던 중 아니었던가?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요. 조금만 더 가면....이제 편히 쉴 수 있어요."


.....무슨 소리야? 라이브 회장에서 쉴 수야 없잖아?

시라기쿠씨 지금 무슨 말을....


"보세요. 저 쪽이 바로.....피안(彼岸)이네요."


뭐?


"으....으허어억!"

'피안'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프로듀서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듯한 표정이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는 소녀는

잠깐 놀란듯 싶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린다.


"우후후훗. 마치 악몽이라도 꾸신듯한 표정이셔요."

"시.........시라기쿠씨?"


붉은 달......그 달빛을 받은채 창백하게 서있는 소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췌 어딘지 알 수 없는 허허벌판에서 붉은 피안화가 어지러이 수놓인

검은 기모노를 차려입은 소녀는 분명 사라기쿠.

시라기쿠 호타루였다. 이치메가사(市女笠/いちめがさ) 사이로 보이는 그리운 얼굴도 틀림없다.  


"프로듀서님 혼자 멀리 가버리시면 어쩌나 했었는데....이런데서 곤히 주무시고 계실줄이야. 정말 짖궂으셔요."

"아...아니. 잠깐만 시라기쿠씨. 방금....방금 전에 우리가 피안으로 간다고 했어?"

"그럼요. 프로듀서님과 함께 가는 길이었는 걸요. 벌써 잊으셨어요?"

"아...아냐, 아냐...그럴리 없어...난......난 아직..."


믿을 수가 없어 자신의 몸을 여기 저기 더듬어보던 프로듀서는 순간 자신의 옷이 정장이 아닌 새하얀 수의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언제나의 하얀 와이셔츠는 얇은 면포의, 목을 죄던 넥타이 대신에 두른 머리의 텐칸(天冠/ 망자의 머리에 두르는 삼각건)....


나.....죽었어?




"어머, 혹시나 두고 오신 물건이라도 있으신가요?"

"잠깐....잠깐....시....시라기쿠씨. 난 지금 무척 혼란스러워."

"잠이 아직 덜 깨신 건가요?"

"아니....그게 아니라. 우린 아직 죽지 않았어. 우린...."


자못 비장한 어조로 내뱉은 말이었지만, 호타루는 그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미...저 쪽에 두고 오셨는걸요."

호타루는 손가락 끝으로 지평선 저편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 앞에 펼쳐진 광경에

프로듀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해야할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바다가 땅을 집어삼켜버린 그곳에 소용돌이치는 건 참혹함과 암담함.

무너진 집들과 뒤집어진 차들. 기울어진 배와 주인 잃은 물건들.

쉴새 없이 타오르는 불과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연기가 달빛을 붉게 물들인다.

저게....저게 대체 다 무슨 일이야?


"망자들은 항상 처음엔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고 느끼지요. 프로듀서님처럼."

"시....시라기쿠씨....이게 대체 다 무슨 일이야....이게...."

"받아들이시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보시는 바와 같이...."

"..........."


프로듀서는 어렴풋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주마등들을 떠올렸다.

두고 온 사람들, 보고 싶은 가족들, 이루지 못한 꿈과 전하지 못한 마음들...

여러가지 영상들이 뒤엉킨 와중에 프로듀서는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꽃이 지는 봄날, 오랜 연습생활 끝에 드디어 데뷔 라이브 스테이지가

잡혀 기뻐하던 프로듀서와 호타루의 모습과

무대를 준비하며 함께 동고동락했던 스태프들과 철야의 추억.

그리고 공연을 며칠 앞둔 리허설날, 무대에서 한창 라이브 연습이던 도중....도중에.....


틀렸어. 더 이상 생각이 나질 않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아무리 애를 써도 끊겨진 필름처럼 더 이상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울고 싶으시면 우셔도 된답니다. 소리치고 싶으시면 소리치셔도 된답니다.

 하지만 이제 두번 다시는 저 쪽으로....되돌아 갈수는 없으셔요."




망연자실한 채 앉아있는 프로듀서를 호타루는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눈물도 목소리도 모두 메말라 버린듯 프로듀서는 눈시울을 붉히며

소용돌이치는 기억들 속에 다시금 빠져들었다.


호타루의 무대 리허설이 한창이던 도중 갑작스레 바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진이다.

심상찮은 진동에 다들 당황하고 있던 찰나, 빨리 대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듦과 순식간에

무대 장비들이 한꺼번에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 건 거의 동시였다.

프로듀서는 미처 생각할 겨를 도 없이 무대로 몸을 날린 것을 간신히 기억했다.


무대 천장에서 쉴새없이 떨어지는 조명들은 무대 위의 출연진과 스태프들을

덮쳐버렸다. 가까스로 호타루를 무대 밖으로 밀쳐냈다고 싶은 순간 뼈가 부러질 정도로 강한 충격과 함께 프로듀서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게 다였다.

.....하지만 어째서 시라기쿠씨가 여기에?


"....시라기쿠씨. 정말 시라기쿠씨 맞는 거야?"

떨리는 목소리는 분명 부정의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누가 보아도 시라기쿠 호타루가 분명한 터였다.


" 네. 그래요. 저 편에서는 제가 그런 이름으로 불렸었죠."

호타루는 회상에 잠긴듯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 하지만 지금의 저는....프로듀서님을 피안으로 인도하는 안내자랍니다."

".....무....무슨 소리야 시라기쿠씨?"


호타루는 당황한 프로듀서를 달래듯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 정체를 속인 것을 용서하세요. 프로듀서씨. 저는 본래 망자를 인도하는

 지장보살로. 피안의 염마직을 수행하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딱한 처지에 놓여있는


 망자들을 허락없이 이승에 되돌려 보낸 죄로, 인간이 되어 온갖 역경과 희로애락을 겪는

 처벌을 받아야 했답니다. 저편에 있을 시절에 저는 항상 숱한 불행과 절망에 시달렸었죠.

 인간인 시절의 저는 분명 알 수 없었을테지만....그 모든건 저의 죄값이었답니다."


분명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모든 것을 체념한 프로듀서는 잠자코 듣고 있을 뿐이었다.

호타루는 창백한 손을 들어 그런 프로듀서의 볼을 타고 흐르는 마른 눈물을 닦아주었다.

회한과 미련이 담긴 망자의 눈물은 호타루의 손끝에서 꽃잎이 되어 흩날려 사라졌다.


"인간으로서 감당할 거의 모든 불행과 고통의 나날들이 계속되던 가운데, 많은 이들이 저를

역병신과 같이 취급하고 꺼리고 멀리했었죠. 가는 곳마다 불행한 일들이 끊이질 않고 주변 사람들도 휘말려들어 곤란하게 만들 지경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프로듀서님은....프로듀서님만은 달랐었네요."


호타루와 어떻게....처음 만났었더라....

본래 다른 소속사에 속해 촬영장에서 게스트로 만났었지만

그 날의 방송은 출연진이 의문의 펑크를 내는 바람에 촬영될 수 없었지...


그런 불운을 인연으로 스카웃 제의를 프로덕션에 제안한 결과 돌아온 것은

'숱한 회사를 망하게 만든 기묘한 불행을 가진 소녀.'라는  

가위표를 마구 그어 놓은 프로필란에 붉은 글씨로 휘갈긴

인사담당자의 개인적인 메모들. 이미 인사계에선 기피 대상으로 유명했던 것이다.


운수로 사람을 뽑다니, 정말 비과학적이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호타루의 스카웃을 밀어붙인 결과

얻은 건 호타루였지만, 되돌아 온것은 모종의 인사 보복.

분명 불운이라면 불운이지만 그것이 호타루의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엔 사무소 내부에서도 호타루를 반기는 임원들이 거의 없었기에

차라리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부서로 이동된 것은 좋은 일이었다.

프로듀서는 한직에 좌천되어도 호타루와 함께 새롭게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호타루에겐 분명 가능성과 미래가 있다고. 프로듀서는 자신의 안목을 믿었다.


그 후 찾아 온 것은 오랜 기간의 공백기와 이런 저런 알 수 없는 불행들이었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그것이 호타루의 불운 탓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역량 부족이라거나 사내 파벌에 의한 보복임을 잘 알고 있었다.

프로듀서는 무엇이든지 다 자신을 탓하는 호타루를 항상 격려하며

함께 역경을 헤쳐나가고자 하였었다.


그런데.....그런데......


"항상 저를 위해 애를 쓰시고, 노심초사하시며...인간으로서의 삶을 버리지 않고 이어갈 수 있도록 지켜주셨죠. 인간이 아니게 된 지금도 프로듀서의 님과의 추억은 항상 소중히 하고 있답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이번 인연은.....여기까진가 보네요."


호타루는 다시 손끝으로 반대편 지평선 끝을 가리켰다.

안개 자욱한 저 너머 보이는 흐릿한 형체들

저곳이 바로....피안인가.


".....숱한 망자들을 인도하였지만, 프로듀서님을 직접 인도하게 될 줄이야.....

 저 역시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어요. "


프로듀서는 마침내 자신에게 다가온 삶의 끝을 받아들여야만했다.

일생을 바쳐 준비한 호타루의 데뷔날 갑작스런 천재지변.

그것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면....인간이 어찌 할 수 있으랴.


"라이브...결국 볼 수 없었네요. 무척 오랫동안 준비한 무대인데

 프로듀서님의 마음.....저와 같으시겠죠."


"적어도.....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네가.... 행복하기만을 바랬었는데..."


".....전 프로듀서님과 함께 한 모든 순간이.....가장 행복했어요.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셔요.

프로듀서님은 최선을 다 하셨으니까요."


호타루는 프로듀서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 자 그럼. 같이 가보셔요. 분명 저 편에서도 멋진 일들이. 아직 발견하지 않은 행복들이 기다리고 있을테니까요."

프로듀서의 손을 거머쥔 호타루의 손길은 창백하지만 분명 따뜻했다.


본래 우리의 삶은 모두 피안에 이르는 여정이 아니었던가

그 와중에 울음과  웃음이 있고 , 만남과 헤어짐이 있고

미련과 슬픔, 욕망과 번뇌가 어우러져 인생여정을 만든다.


인생을 하나의 무대로 본다면 우린 모두 그 위에 선

아이돌들과 같아 저마다의 노래로 저마다의 춤으로

때론 주연으로, 때론 조연으로 , 또 어떤 때는 관객으로

막이 내릴 때까지 열연을 펼쳐나가네


각본과 연출은 우리의 손을 떠났기에 어찌할 수 없지만

실수하지 않으려 전전긍긍하고, 대사를 외우느라 노심초사하며

괴로워하기 보다는 유연함과 자연스러움으로 두렵더라도 당당하게 

힘들더라면 서로 함께 힘을 합쳐 나가면서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분명 어떤 공연이든 박수받을 명연이 아닐까.


이승에서는 내가 호타루의 손을 잡아주었지만

이곳에서는 호타루가 나의 손을 잡아 이끌어준다.

.......그러니까 무섭지많은 않다. 프로듀서는 그렇게 생각하며

뒤돌아 보지 않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부서지고 무너진 꿈들의 잔해 속을 지나며

프로듀서와 호타루는 흩날리는 꽃잎들 즈려밟으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승에서 못다 흘린 눈물은 때론 삼도천의 강물이 되고

때론 저승의 꽃 비, 무덤 위의 유성우가 되어

망자들의 갈 길을 밝혀주리라. 



먼 길을 돌아 마침내 다다른 피안의 문턱 앞에서 호타루는 결심한 듯 말을이었다.

"아무래도 저는....염마직을 맡을 자질이 부족했었나봐요. 이렇게 또 일말의 가능성을 믿어버리니까요."

"...시라기쿠씨?"

"인간으로 지내던 시절은 분명 고통스럽고 힘들었었죠. 하지만 프로듀서씨와 지내던 시간들 역시 무척이나 소중했답니다."


호타루는 품 속에서 서찰을 꺼내더니 이내 힘껏 움켜쥐었다.

서찰은 순식간에 재가 되어 검은 꽃잎으로 흩어졌다.


"시라기쿠씨 그건...."

"프로듀서님이 망자라는 증거는 이로써 사라져버렸네요."

"........시...시라기쿠씨?"


망자의 징표를 없애버린 호타루는 굳게 닫혀있던 피안의 문을 열어젖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아가리를 벌린 가운데 무시무시한 바람이 휘몰아치며 비명을 지른다.

마치 사바세계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절규와 같으면서도 열락에 휩싸여 내지르는 함성과 같은 알 수 없는 소리다.


잔뜩 긴장한 표정의 프로듀서에게 호타루는 부드럽게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열었다.

"이 문은 망자가 지나면 명부로 이어지고, 산자가 지나면 이승으로 되돌아가는 문이랍니다.

 본래라면 프로듀서님은 명부의 재판을 받으시겠지만.....산자도 죽은 자도 아니게 된 지금,

 이 문을 지나신다면 어쩌면....이승으로 되돌아가실지도 모르겠네요.

그곳은 저와 프로듀서씨가 함께 만났던 바로 그 삶은 아닐지도 몰라요. 하지만 인연이라면 분명 다시 또 만날 수 있겠죠. 어떤 모습, 어떤 장소이 있던지 간에 프로듀서님이 저를 잊지 않으시는 이상. 저 역시 프로듀서님을 항상 찾고 있을 테니까....."


"내...내가 다시 살아난다면...시...시라기쿠씨는...."


"저는 또 다시 죄값을 치르기 위해 이승에서 숱한 고난을 겪도록 다시 떨어지겠죠......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어........어째서 이런 일을....그렇게 고통을 겪었으면서도..."

"행복했으니까요. 프로듀서님과 다시 한번.....같이 살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염마로 있는 것보다는....시라기쿠 호타루로 지낸 시간들이 더 좋았으니까요"

"....시........시라기쿠씨. 안돼. 그럴 수 없어. 난 더이상 시라기쿠씨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아. 난 시라기쿠씨가 항상 행복하기만을 바랐었어. 그러니까....그러니까 제발 나를 위해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지마. 시라기쿠씨? 시라...!"

"프로듀서씨는 언제나.....한결 같으시네요....다음에 만날땐 호타루라고 불러주셔요. 프로듀서님. 그럼...안녕히."


호타루는 망설이던 프로듀서의 등을 떠밀어 문의 저편으로 떨어뜨렸다.

프로듀서는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점점 멀어져가는 호타루를 향해 손을 뻗어보았지만

조금도 닿질 않았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모습이었지만, 프로듀서의

눈물이 가득한 눈동자에 비친 호타루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진듯 바닥 없는 추락이었지만 그 끝이 어디인지

프로듀서는 개의치 않았다. 다만 다시 만난다면....반드시 호타루라 부르리라 다짐하였다.

몇 번의 인연과 시간을 거슬러 다시 만나게 될 지 아무것도 모른 채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나는 호타루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그녀를 만나게 되겠지.




"으....으허어억!"

자다가 깜짝 놀라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프로듀서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듯한 표정이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는 소녀는

잠깐 놀란듯 싶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린다.

시라기쿠씨....

무엇때문에 놀랐었는지....프로듀서는 이내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무언가 엄청 이상한 꿈을 꾼 것만 같은데...


"우후후훗. 마치 악몽이라도 꾸신듯한 표정이셔요."

"시.........시라기쿠씨?"

"프로듀서님이 너무 곤히 주무시길래....깨우려다 말았는데. 정말 많이 피곤하셨나봐요."

"아...아니. 잠깐만 시라기쿠씨. 여긴?"


"차 안이에요. 고대하던 데뷔 라이브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인 걸요. 벌써 잊으셨어요?"

"아......그...그....그렇지"

"라이브.....정말 굉장했네요. 눈물이 날뻔 했어요."


감격스럽게 첫 라이브의 감상을 말하는 호타루를 보면서 프로듀서는 어딘지 모르게

중요한 무언가를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대체 뭐였지....아무튼 무사히 잘 마무리되었다니 다행이다. 호타루의 데뷔에 별다른 사건이나 사고가 없었다니 이례적이지만 좋은 일이다.


"앞으로도 멋진 무대에서 팬들....만나고 싶어요."

"그래. 호타루쨩의 바람이라면....항상 전력으로 도와줘야지!"

"아....."

"응.......?"


무심코 내뱉은 호타루라는 이름이 왜 입에서 자꾸 맴돌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무척 그리운 느낌이 드는 말이었다.


"아하하...피곤해서 잘못 불렀구나. 미안해 시라기쿠 씨."

"그....괜찮아요. 프로듀서씨라면."

"응....?"

"편하실대로 부르셔도 좋아요."

"아...아냐, 아냐 업무상 담당 아이돌의 이름을 함부로 막 부르는 것도 이상하니까..."

"후훗....항상 한결같으셔요. 그럼 좋을대로 하셔요."


돌아가는 차안에서 프로듀서는 다시금 곯아떨어졌다.

무척이나 피곤했을테지 수많은 시간들을 거슬러왔을테니.

호타루는 그런 프로듀서에게 살며시 기대어 심장 소리를 들어보았다.

두근 거리는 생명의 박동. 분명 제대로 살아있다. 살아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가슴 속에서 뛰는 박동 역시 제대로 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침내 만났네요....프로듀서님. 숱한 엇갈림 끝에 인연이 닿은 재회.

이번엔 분명히 제가....당신 곁을 지켜드리겠어요.


당신을 만나기 위해 몇 천번, 몇 만번이고 겪은 불행한 삶이지만

이처럼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과 함께라면

싫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며, 호타루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7년 전의 어느 늦봄.

몇 천, 몇 만번의 생을 건너

그렇게 프로듀서는 처음으로 호타루를 이름으로 불렀다.




후기 - https://www.idolmaster.co.kr/bbs/board.php?bo_table=creatalk&wr_id=12685


(2018 우상춘추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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