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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의 우걱

댓글: 5 / 조회: 912 / 추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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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10, 2018 00:00에 작성됨.

담당 아이돌을 레슨보내고서 잠깐 나갔다 오니 못 보던게 책상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방금전까지 내가 끄적이던 종이 위에 놓여있는 걸 보니 내가 놓은 건 아니군. 덧붙여서 난 사무원도 없다.


[프로듀서! 식사 안하고 일하면 안 된다구요! 배가 고프면 결국엔 쓰러져버리니까. 일하려면 먼저 배부른 식사입니다! 오오하라의...것은 아니지만 티비에도 나온 빵집이니까 못지않을거에요! 추신: 사올 때는 좀 더 많았는데, 도착하니까....아하하..죄송합니다!]


....며칠간 굶어가며 일하는 걸 들켜버리다니 부끄럽군. 여유롭게 밥이나 챙겨먹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돌이 프로듀서를 챙겨줘버릴 정도라니. 조금은 나도 신경써야할까.


그거랑 별개로 요즘 시대엔 뭐랄까 이 손글씨쪽지말이야. 보기힘든 건 아닌데 막상 받으니 반가운 기분이다. 이건 소장하기로하자.


부시럭-


그래도 빵 봉투 종이에 쓰인 쪽지는 이것 하나 뿐이려나....


킁킁....잉크 냄새와 따로 희미하게 빵냄새가 느껴진다. 음.............버터향....크루와상 먹었구나, 미치루. 식후 운동이라 조금 걱정되네...미치루니까 괜찮다고는 하지만, 나도 트레이너도 때로는 걱정이다. 안 먹으면 그것대로 쓰러져 버리니 먹이긴하는데...음. 지금쯤 잘 하고있으려나


나 대신 신음을 내질러주는 책상 의자에 몸을 던지고 빵을 집었다. 미치루가 두고간 쪽지와 똑같은 감촉과 바스락거림이 느껴지는 이유...외면하기엔 너무 뻔하군.


흰색 종이가 빵을 완전히 감싸고있어서 안을 볼수없지만, 일단 짐작해볼까. 가볍다. 크기가 작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조금 큰 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가볍다니....아마도 샌드위치는 아닐거다.


포장만 봐도 알수있지. 이렇게 찢어질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 얉은 종이에 셀로판 테이프로 간단하게 마무리. 일단 씹었을 때 흐르는게 없거나 적은 빵이다.


일단 포장을 뜯었다.


음 크루와상 느낌의 빵이군. 하지만, 기다란 원통형 빵. 초등학교에 들고다니는 필통 중에 아무런 장식도 없이 뻣뻣한 가죽으로 된 원통형 필통을 닮았다.


다만 크루와상 보다는 단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크루와상은 바삭하지만, 내부 기공이 많아서 잡으면 푹신하게 눌리지만 이건 그렇지가 않잖아...


위에는 설탕 알갱이를 약간? 너무 달지않으려나. 이런식으로 위에 단 물을 뿌려두는건 별로 취향이 아닌데...


그러나 모름지기 빵이라는 건 먹어보기까진 모르는법. 일단은 먹어보도록할까. 빵이라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먹어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그랬지. 아무것도 모른채로 먹는 빵은 기대가 되어서 더 먹어보고싶다고, 덧붙였다. 미치루, 그 말. 부정도 동의의 말도 하지않겠다. 나는 빵을 먹겠다!


우걱-


후고후고 소리는 나지않는다. 아니,솔직히 그거 어떻게 내는 소리인거야. 의식적으로 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씹을 때나는 소리라니. 턱관절 구조가 궁금해. 뭐 사실은 본인도 모르는 모양이지만. 자꾸 물어보면 잘못이라도 한건지 불안해 하기도 하니까....귀여워서 자꾸 물어보고싶-아니 이게 아니라...음 괜찮다고 생각한다 미치루.


우적...


겉 부분이 완전히 딱딱한 껍질 같아서 바삭바삭... 마치 여러개의 얉은 종이가 한꺼번에 구겨지는 듯한 소리. 아....종이를 먹어봤냐고하면.....나는 그런 적 없다. 그런 걸 본 적은 있다. 빵냄새가 난다고 아무거나 입에 넣지 말아줬으면 좋겠구나 미치루. 보는 사람은 심장이 덜컥한다고... 차라리 빵을 사달라고 하는게 나을텐데.


아, 잠깐 다른 생각하는 사이에..부스러기가...!


입주변에 부스러기

허벅지에 부스러기

책상위에 부스러기

밑바닥에 부스러기

부↑스↓러→기↑이↑


하....미안해. 하이얀 종이에 둘둘 싸인 채로, 얼마나 먹히기를 고대했을 것인가아- 빵, 너를 보고서 내마음이 두근! 입이 쩌억- 후고곳... 너무 성급했어엇!!

크윽....빵에서 부스러기가 되어 이제 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아져버렸어요...미안해!

하지만, 버리지않습니다! 전부 먹는다앗!

핥짝- 음, 이 맛은 빵 맛이구나!


...이라고 미치루가 그랬던 날도 있었지. 허벅지에 있는 걸 주워먹고 입가를 핥짝거리는 건 그렇다쳐도 (나도 그러니까) 바닥에 있는 건 먹지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고보니 전에 어딘가의 방송에서는 옆의 아이돌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를 후고곳하려고 깨물깨물하는 바람에....어느쪽의 팬덤이 환호성을...(?) 아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걱정마세요.


부스러기를 꾹 눌러붙인 손가락을 핥짝. 음, 이 맛은 빵 맛이구나.



음 약간은 쓰다. 빵의 갈변이 과했을까. 보통이라면 여기서 그만두겠지. 보통의 경우라면 나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빵이고 나는 이제 한 입 떼었다. 빵을 먹는사람이라면 으레 한 번 쯤 한 입 베어물어 우물거리는 동안에 안에 무엇이 있는지 대충이라도 보게된다고.


아, 물론 어떤 빵이든 한 입에 넣고 후고곳 거리다가 속재료를 다 알아맞히는 소녀도 있지만...


흠, 이 빵은 안에 잼이 있네. 검은색에 가까워보이지만, 광택이 진하고 깊은 보라색. 약간 크리미한 흰색이 옆에서 살짝 섞여있다.


음, 그러니까 이건  한 가운데를 관통하듯이 잼이 들어있고 바삭한 파이형의 빵이 감싸안아두고있는건가....


이런 막대형 잼빵을 먹을 때면 느끼지만, 끄트머리를 닫아놓아서 잼을 보관하는 대신 양 끝에서는 잼을 즐기지 못하는 것과 양 끝에 구멍이 나서 잼을 즐길수있지만 자칫하면 흘러나올지도 모르는 것.


이 둘 중 뭐가 더 좋을까. 미치루라면 물론 한 입에 다 먹어버릴 수 있지만, 이런 고민을 알아주는 건 역시 미치루겠지-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재밌는 주제란 거다. 재밌는 걸 공유하는 사이라- 난 그래서 미치루가 좋아.


우적-


블루베리의 달콤함보다는 먼저 시큼함이라고 할만한 부드러움...요거트이려나? 시큼하다는 걸 아예 부정할수는 없지만 그것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요거트의 부드러운 식감에 빠져서 미미하게 섞여있는 듯한 편안한 맛.


우적,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를 다 핥아보기도 전에 한 입 더.


동시에 슬며시 달다. 설탕의 단맛보다는 과일의 단맛. 뒤로 갈수록 블루베리의 맛이 조금씩 확실해져가 입가심이 깔끔해. 잼이 한 가득인데도, 단맛이 입에 남지않아서 굵고 긴 잼빵인데도 다 먹어버린다. 오히려 아쉬운걸. 조금 적어. 굵기도 조금 큰 김밥정도인데다가 길이로 치면 크게 벌린 어른의 한 뼘보다 살짝 길다.


이 정도 크기에 더해 한 가운데에 요거트잼이 들어있다라...


보통이면 앉은 자리엔 다 먹지못하는데...역시 미치루는 예외로 하겠습니다. 으음...뭐 어떤 빵이라도 빵이라고 한다면 다 먹을 것 같고말이지....실제로도 그렇고.


아무튼 조금 모자라네. 빵이 묵직하다기보다는 안이 텅빈 쪽이라 크기에 비해 배고파.


그래도, 쓰린 속을 애써 눌러가며 무시하는 것보다는 낫다.


무엇보다도 프로듀서로서 아이돌이 힘내라라고 챙겨준다는 것....


역으로 보살핌받았다는 점에선 약간은 글러먹었을지도 모르지만, 조금은 기분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미치루에게 빵까지 받았겠다. 힘내야할 것 같다. 등짝을 쎄게 맞은 것보다도 효과가 좋구나.


허벅지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다시 일을 잡으려니 손이 좀 더럽네. 잠깐 손을 씻으려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타이밍 좋게 그녀가 들어왔다. 나를 반가워하면서도 제대로 먹어주었나 기대를 품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미치루."


"후고곳..? 네?"


"고마워."


고맙다고 했습니다, 나의 아이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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