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퍼스널리티P 시리즈] 「프로듀서, 자기 자신한테 꽤 인색하지」

댓글: 8 / 조회: 779 / 추천: 3


관련링크


본문 - 03-05, 2018 02:12에 작성됨.

<퍼스널리티P 시리즈의 이전 이야기들>

1. 타카가키 카에데 <밤 바다의 이정표>
2. 사기사와 후미카 <First Step>
3. P <인내의 삶> 
4. <신데렐라 걸스> 
5. 센카와 치히로 <함께 걷는 길> 
6. <'어제'가 '오늘'과 함께 할 '내일'에게> 
7-1. <방랑자라고 다 길 잃은 것은 아니다> 
7-2. 호죠 카렌 <히로인과 소녀, 꿈의 무게> 
8. 네가 모르는 이야기, 너만이 아는 이야기
9. (Re)Write─덮어 쓰는, 혹은 다시 쓰는
10. 촛불과 별빛이 가장 밝게 빛날 때
11. 결말을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것
12. 시마무라 우즈키 - Like a Fastball

 

<외전격 이야기들>

메모리얼 <사쿠마 마유의 회상>

사기사와 후미카<걷지 않은 길>

사기사와 후미카 <파트너>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



「프로듀서, 자기 자신한테 꽤 인색하지」



신데렐라 걸즈 소속 유닛, '트라이어드 프리무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린과 나오, 그리고 카렌은 하루의 스케줄을 마치고 사무실의 소파에 앉아 퇴근시간까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소파 사이의 테이블에는 세 사람 분의 음료수와 과자가 올라가 있었다.


“프로듀서, 자기 자신한테는 꽤 인색하지?”


1인용 소파에 옆으로 앉아, 소파의 팔걸이에 다리와 상체를 걸친 채 잡지를 읽던 린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옆의 3인용 소파에 앉아 있던 나오가 휴대전화의 화면에서 눈을 떼고 린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으응, 갑자기 생각나서 말이야.”


“들어봐.” 린은 읽고 있던 잡지를 내려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소 갑작스런 행동이었지만, 익숙한 듯 두 사람은 하던 것을 멈추고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저번 주말, 간만에 휴일이었잖아?”

“그랬었지. 간만에 밀린 애니메이션 보느라 바빴어.”

”그래, 모처럼이다 싶어서 오랜만에 하나코랑 산책을 나갔거든.”

“응, 응.”

“우리들 맨날 가던 공원 있지? 우리 가게 앞에 있는 공원 말고, 거기서 세 블록쯤 떨어진 데.”

“아하, 그 놀이터랑 같이 붙어있던 거기?”

“응, 거기 말이야. 간만에 산책이니까 좀 오래 걸어보고 싶어서 평소보다 조금 크게 돌아갔단 말이야? 강변 한 바퀴 돌고 그쪽 공원으로 돌아오는데, 벤치에 왠지 낯익은 등이 보이는거야. 맨날 입고 다니는 감색 정장 자켓은 벤치 등받이에 걸어놓고, 뭘 하고 있는 건지 벤치에 웅크려 앉아 있더라.”

“P씨네.”


“응, 맞아.” 카렌의 말에 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보니까, 역시나 프로듀서였어.”


나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말이었잖아? 그런데 거기서 뭐 하고 있었대?”

”정장 차림이니까 일 아니었을까?”

“그렇겠지, P씨도 사복은 꽤나 스포티한 느낌이었으니까. 그래서 린, 그 다음은?”

“슬쩍 다가가서 뭐 하고 있나 보니까 편의점 도시락을 먹고 있었어.”

“헤에, 도시락이라. 그래서?”

“어? 이게 끝인데?”

“뭐?”


린의 대답에 카렌과 나오는 나란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랑 아까 전에 꺼낸 얘기랑 무슨 관계야?”

“그러니까, 프로듀서가 편의점 도시락 먹는 데 되게 익숙해 보였다는 거지. 생각해 봐. 프로듀서랑 편의점 도시락, 이미지가 좀 안 맞지 않아?”

“……하긴, 그렇긴 하네. 평소 그 사람 행실 생각해보면 못해도 식당은 꼭 챙겨서 갈 것 같은데. 우리한테는 맨날 그랬잖아? ‘영양 밸런스가 어떻고, 균형잡힌 식단이 어떻고’……막 이래.”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나오가 프로듀서의 말투를 흉내내어 말하자, 카렌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하! 맞아. 스케줄 있을 땐 패스트푸드는 근처에도 못 가게 하던 사람인데.”

“그렇지?”

”나오는 어때, 뭐 떠오르는 거 없어?”

“으음……글쎄다…….”


“아아, 맞다. 나도 그런 거 있었어.“ 린의 말에 팔짱을 끼고 눈을 내리깔던 나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눈을 떴다.


“저번에 내 솔로 무대 준비할 때 기억해?”

“아, 기억났다. 맨날 남아서 연습하고 그랬었지.”

“맞아. 그 때, P씨랑 귀가시간이 맞아서 몇 번 같이 돌아가고 그랬거든.”


“헤에, 좋았겠네.” 카렌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자신을 바라보자, 나오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 그다지 둘이서 놀러 갔다던가, 데이트 기분 같은 거 냈다던가 하지는 않았으니까!”

“응?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뭐야, 나오는 프로듀서랑 그런 거 하고 싶었어?”

“으으……아, 됐어! 아무튼!”


흠흠, 하고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뒤 나오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떤 때는 내가 조금 늦게 마칠 때도 있었는데, 그러면 역 앞에서 꼭 P씨를 만나곤 했어.”

“응? 역 앞에서? 거기 뭐가 있었나?”

“글쎄. 딱히 뭐 떠오르진 않는데.”


린과 카렌은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거 있잖아? 한 그릇에 400엔 하는 라면 포장마차.”

““아, 맞다.””

“자주 가는 것 같더라. 주인 아저씨랑 P씨랑 얘기하는 게, 먼 발치에서만 봤지만 굉장히 친해 보였어.”


나오가 이야기를 마치자 린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거기까지만 들어보면 프로듀서가 딱히 돈을 막 쓰는 것 같지는 않네. 오히려 저축하는 쪽 같기도 하고.”

“그렇지?”

“그럼 역시 박봉인가?”

“그치만 프로듀서, 야근 엄청나게 많이 하지?”

“그렇지. 인사팀이나 총무팀에서 거의 요주의 인물로 찍힌 모양새던데.”

“그럼 역시 돈 많이 버는 거 아닐까?”

“글쎄, 난 P씨가 버는 건 둘째치고, 쓰는 건 꽤 많지 않을까 하는데.”


두 사람은 카렌을 바라보았다.


“생각해 봐. 일 끝나고 나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하면 먹고 싶은 건 다 사주잖아? 그 외에도, 우리가 뭐 해달라고 하면 해주는 것도 있고.”


카렌의 말에 그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렌의 말대로 업무 도중이든, 아니면 개인적인 시간이든, 프로듀서는 그녀들이 원하는 것에는 대부분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던 것이었다.


“그렇네.”

“생각해보니 확실히……아!”


고개를 끄덕이던 나오는 무언가가 떠오른 듯 손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거 아닐까? ‘법인카드’라는 녀석. 회사 돈이니까, 우리들한테는 막 펑펑 쓰는거지. 반대로 본인한테는 인색한거고.”

“그런가?”

“확실히, 그거면 설명이 되긴 하네. 치히로 씨라도 있었으면 물어볼텐데……이럴 때 어디 가신 거람.”

“다녀왔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하던가. 때마침 사무실의 문이 열리면서 품 안에 서류다발을 안고 있는 치히로가 모습을 나타냈다. 소파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그녀는 방긋 웃었다.


“아, 치히로 씨, 수고하셨습니다.”

“후훗, 세 사람은 오늘도 어김없이 사이가 좋네요.”


품에 안고 있던 서류를 창가의 프로듀서의 자리에 올려놓고, 준비실에 들어가 자기 몫의 차를 꺼내온 치히로는 소파의 비어있는 자리에 살며시 앉았다.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요?”

“프로듀서 얘기를 하고 있었어. 어쩐지 버는 거에 비해서 쓰는 게 인색하지 않나 싶어서 말이야.”

“인색해요? 프로듀서 씨가요?”


고개를 끄덕인 세 사람은 치히로에게 지금까지 나누었던 이야기를 말해 주었다.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그녀 또한 미심쩍은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네요. 프로듀서 씨, 확실히 평소에는 회사 식당, 그 이외에는 대개 현지에서 도시락으로 때우신다고 들었거든요. 그러고보니 혼자서 어디 비싼 데 다니는 걸 못 봤네.”

“역시.”

“그렇지?”

”……그런데 또 얘기 들어보면 씀씀이가 결코 인색하지는 않으신데……?”

“그래서 말인데, 그거 혹시 ‘법인카드’라는 녀석 아냐? 왜 그거 있잖아? 회사 돈으로 대신 써 주는거.”


“법인카드요? 에이, 그럴 리가요.” 나오의 질문에 치히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프로듀서 씨, 출장 갈 때 지금까지 한 번도 예산 쓴 적 없는걸요? 오히려 매번 여비가 남아돌아서 그거 다 회식비로 들어가고 있거든요.”

“엥?”

“진짜로?”

“진짜에요. 매 분기마다 총무팀에서 난리라니까요? 분기 예산 자꾸 남는다고, 어디든 좋으니까 좀 갖다 쓰라고요.”


“거기다 말이죠.” 사무실의 문 방향을 곁눈질로 한번 쓱 쳐다본 치히로는 세 사람을 향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지금은 자동차 있잖아요? 그런데 아주 예전에 저랑 프로듀서 씨 두 사람만 있었을 때는 아예 자동차도 없었어요.”

“그럼 돌아다닐 땐 뭘로 했어? 걸어다니기라도 했어?”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고, 걸어서 출퇴근하고, 어디 갈 때는 꼭 버스나 기차 타고 그랬죠.”

“와……대박.”

“차 없어도 되겠냐고 하니까, ‘자전거는 교통체증에 영향도 덜 받고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고 하면서……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치히로의 대답을 들은 세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법인카드도 아니면, 자기 돈이라는 뜻인데……P씨 사실 돈 많은 거 아냐?”

“그랬으면 뭐 하러 돈을 그렇게 아끼는 거지?”

“그러게요……듣고보니 저도 궁금해지는걸요.”


네 사람이 신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긴 그 때, 사무실의 문을 열고 두 사람이 모습을 나타냈다.


“안녕하시어요~?”

“안녕! 무슨 재밌는 얘기 하고 있었어?”


데님 팬츠 위에 얇은 재킷을 걸친 슈코와 늘 입고 다니는 기모노 위에 얇은 겉옷을 걸친 사에였다. 프로듀서와 함께 교토로 갔던 두 사람이 사무실에 나타나자 치히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두 사람은 오늘 바로 기숙사로 가신다고 들었는데……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아니, 그런 건 아니고. 마음 같아서는 바로 가고 싶었는데 말이야, 부탁을 하나 받아버렸거든.”

“그렇대요~.”


사무실로 들어오는 슈코와 사에의 두 손에는 종이가방에 포장된 무언가가 잔뜩 들려 있었다. 치히로를 향해 방긋 웃으면서 소파로 다가온 두 사람은 소파의 빈 자리에 들고 있던 물건들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자! 이거! P씨한테서 선물이야.”

“P항은 회의가 있으셔서 들렀다 오신다고, 즈이더러 먼저 가서 먹고 있으라 하셨어요~.”


네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소파 위에 놓인 종이가방으로 향했다. 네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슈코와 사에는 종이가방 안에서 종이 포장지에 감싸인 상자들을 하나 둘씩 꺼내 테이블 위로 옮겨놓았다. 포장지의 겉면에는 모서리가 둥그스름한 사각형 테두리 안에 들어간 塩이라는 글자와 함께 정갈한 필체로 ‘화과자전문, 시오미토키치(塩見藤吉)’라는 문구가 찍혀 있었다.

트라이어드 세 사람과 함께 상자의 내용물을 살펴보던 치히로는 고개를 돌려 슈코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왠 화과자에요? 귀한 거 받아서 좋긴 한데…….”


“간만에 집 근처까지 갔다 왔거든.” 슈코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상자의 포장을 풀기 시작했다.


”좀처럼 용기가 안 나서 제대로 인사는 못 드렸지만, 그래도 기왕 온 거 기분이라도 내자면서 P씨가 산 거야. 그런데 치히로 씨, 혹시 물 끓여놓은 거 있어? 차도 같이 가져온 게 있는데. 이거랑 딱 어울리는 녀석이거든.”

“아! 있어요. 잠시만요!”


치히로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실로 향했다. 치히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린은 고개를 돌려 슈코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슈코 씨네 집이랑 이거랑 관계 있어?”

“후훗, 당연히 관계 있지.”


슈코는 외투의 소맷자락으로 입가를 가리며 작게 웃었다. 그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운 것을 보면, 말괄량이라도 교토 아가씨는 아가씨인 모양이다.


“이거 우리 집 물건이거든.”

“헤에, 선물로 받은 거야?”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린이 되묻자 슈코는 치켜세운 검지손가락을 좌우로 까딱까딱 흔들었다.


”이거, 우리 집에서 만든 물건이야.”

““뭐?””


그 말에 상자 속 내용물에 정신이 팔려 있던 카렌과 나오의 시선이 일제히 슈코를 향했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 것인지, 고개를 돌려 웃음기를 참는 사에의 옆에서 슈코는 입가를 가리던 소매를 팍! 하고 털어내며 가슴을 폈다.


“이제와서 무엇을 숨기랴! 이 슈코 님의 본가가 바로 이 가게라는 말씀!”

“시오미토키치……시오미, 토키치……시오미……?”


““아아, 시오미!”” 가게의 이름을 몇 번인가 중얼거리던 세 사람은 뒤늦게 손바닥을 짝! 하고 마주치며 슈코를 바라보았다.


“흐흥, 이제 알겠어?”


세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편 슈코는 씨익 웃으면서 과자들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린은 납득했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슈코 씨네 가게였구나. 난 또 이것들도 프로듀서가 산 건 줄 알았어.”

“응? P씨가 산 거 맞는데? 아까 말했잖아? P씨가 샀다고.”


그 때, 슈코의 옆에서 가만히 눈을 깜박이던 사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 슈코 항은 여기가 자기 본가라고 했지만요, 공짜로 가져온 거라고는 한 마디도 안 했사와요?”

“맞아. 교토의 자존심이 있지, 친족이라고 해도 염가에 팔지언정 공짜로는 주지 않아.”

“어머나, 그른 자존심도 있었던가요?”

“엑, 없었나?”


뺨을 긁적이던 슈코는 짝! 하고 작게 박수를 쳤다.


“뭐, 아무렴 어때. 중요한 건 이게 여기에 있다는 거고, 우리는 입이 심심하다는 거니까.”

“따뜻한 물 나왔습니다!”


때마침 치히로가 준비실에서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주전자와 새 찻잔 두 개가 들어 있는 쟁반이 들려 있었다. 


“흐음, 이제 준비가 다 된 모양이군.” 만족한 씨익 웃으면서 쟁반을 바라보던 슈코는 “엣헴” 하고 과장되게 헛기침을 했다.


“우리 집 과자에는 먹는 순서가 있단 말씀이지. 무턱대고 먹지 말고, 이 슈코 님의 지시에 따르도록!”

“와~아, 짝짝짝~.”


어디서 꺼낸 것인가, 한껏 폼을 잡으며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푸른 바탕에 새하얀 학과 색색의 꽃이 수놓아진 쥘부채를 펼치는 슈코의 옆에서, 방실거리는 웃음을 만면에 띄운 사에가 작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들어본 이야기를 종합하면 말이죠.”


치히로는 남아 있던 경단을 마저 입 안으로 집어넣고, 빈 꼬챙이를 지휘봉처럼 고쳐 잡았다.


“프로듀서 씨는, 여러분들이 엮여 있을 때는 씀씀이가 호쾌해지는 것 같네요. 맞나요?”

“응.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치히로 씨는 그런 거 못 느꼈어?”

“글쎄요……저는 최근 들어서는 프로듀서 씨와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어서요.”


그녀의 대답을 듣던 나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어? 그런데 치히로 씨는 저번에 P씨랑 데이트 하지 않았어? 카나데가 그랬는데.”

“헤에, 진짜로?”

“나오 항, 그 이야기, 나중에 따로 들려주실 수 있으시나요?”

“나, 나, 나, 나오?!”


노골적으로 재밌어 보인다는 표정을 짓는 교토 출신 두 사람과는 별개로 삽시간에 홍당무가 되어 크게 당황한 듯 두 팔을 파닥거리는 치히로의 모습에 나오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옆을 바라보았다. 아니나다를까,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카렌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미, 미안……이거 말하면 안 되는 거였어?”

“아니, 괜찮아.”


가늘게 뜬 눈으로 치히로를 바라보던 카렌은 하아,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그 이야기는 그때 실컷 했으니까 됐고. 그나저나 치히로 씨, 데.이.트.하면서 뭐 느낀 거 없어? 본 거라던지.”

“그, 글쎄요……그 때 식사는 제각각 냈고, 영화 표는 프로듀서 씨가 냈고, 커피는 내가 샀고……택시비는 프로듀서 씨가 냈는데…….”


명백하게 악센트가 들어간 특정 단어에 쓴웃음을 지으며 기억을 더듬던 치히로의 머릿속에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앗!’하고 외칠 뻔 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한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르겠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역시, 딱히 지갑을 여는 건 못 본 것 같네요.”


그러자, 카렌의 옆에 앉아 있던 슈코가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치히로를 바라보았다.


“헤에~그렇구나. 치히로 씨는 거짓말 안 할 사람이니까. 정말로 모르는 거겠지?”

“그, 그럼요! 저는 거짓말 같은 거 안 한답니다?”


치히로는 슈코의 눈길을 애써 외면하며 딴청을 피웠다. 그 때, 사무실의 문이 열리면서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Привет!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트레이닝 복 차림을 하고 있는 아냐와 후미카였다. 이미 레슨을 마치고 올라오는 길인지, 사무실로 들어오는 두 사람의 새하얀 피부는 은은한 열감(熱感)을 품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촉촉하게 수분을 머금고 있었다. 


“아, 두 사람 수고하셨어요! 레슨은 잘 끝났나요?”

“네……어떻게, 보충 레슨만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Да……프로듀서가 사무실에 맛있는 게 있을 거라고 하셔서 왔어요.”


아이들이 모여 있는 소파로 다가온 아냐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화과자를 발견하고는 눈을 반짝였다.


“화과자, 네요!”

“화과자 좋아해?”

“коне́чно! 무척 좋아해요! 쉽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구나. 후미카는?”

“아, 저, 그게…….”


치히로의 말에 입술을 달싹이던 후미카는 얼굴을 가볍게 붉히며 자세를 낮추었다.


“……괜찮으시다면……저도 동석해도 괜찮을까요……?”

“물론! 우리 먹으라고 가져온 거니까. 얼른 와서 앉아!”

“많이 드시어요. 조금 양이 줄기는 했지만, 아직 잔뜩 남아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조금씩 자리를 비켜 두 사람이 앉을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소파의 빈 자리에 앉은 아냐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테이블 위를 둘러보다가 야츠하시 하나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야츠하시를 한 입 베어 문 그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вку́сная! 아, 맛있어요……!”

“이야, 그렇게나 좋아할 줄이야. 이거 몸둘 바를 모르겠는데.”

“어머나, 슈코 항을 칭찬한 건 아니어요?”

“아하하, 대리수상 같은 거잖아? 아무튼 우리 가게의 매상을 책임지는 녀석이니까, 맛있는 건 당연한 거라구.”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는 아냐의 모습에 마치 자신이 칭찬을 들은 것처럼 배시시 웃는 슈코의 옆구리를 사에가 쿡쿡 찔렀다. 아냐의 옆에 앉아 전병 하나를 입으로 가져가던 후미카는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셨나요……?”

“아, 혹시 복도까지 들렸어요?”

“네……엿듣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습니다만……사무실의 문이 조금 열려 있었기에…….”


후미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앉아 있던 린이 불쑥, 후미카를 향해 상체를 내밀었다.


“후미카나 아냐는 혹시 프로듀서한테서 뭐 선물 같은 거 받아본 적 있어?”

“네……?”

“아, 있습니다! 프로듀서에게 받은 것!”


린의 질문에 먼저 대답한 것은 아껴 먹으려는 것인지 야츠하시를 두 손으로 들고 야금야금 베어먹던 아냐였다. 소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신에게 향하자, 아냐는 야츠하시를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오, 뭔데뭔데?”

“잠시만요, 그러니까…….”


휴대전화를 꺼낸 아냐는 사진 폴더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는 사진 하나를 크게 확대해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это, 이거에요.”

“천체 망원경이네?”

“подарок……아, 선물입니다. 아이돌이 되고 나서 맞이한 첫 번째 크리스마스 때 받은 선물이에요. 프로듀서가 사 주었어요.”

“와, 되게 비싸보인다. 혹시 모델명 같은 거 알고 있어?”

“наверно……Vixen사의 ED80SF와 포르테2, 일거에요.”

“어디보자……Vixen, ED……아, 이거구나……어엉?!”

“……어머나.”


인터넷에서 망원경의 가격을 확인하던 슈코와 사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상에, 0이……하나, 둘……다섯……? 와우, 럭셔리…….”

“차, 참으루 통 큰 선물이어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채 뭐라 이야기를 나누는 슈코와 사에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냐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프로듀서와 함께 도쿄로 왔을 때, 처음엔 굉장히 Одинокий……외로웠어요. 홋카이도의 엄마 아빠……러시아의 할머니, 할아버지……참 많이 보고 싶었어요. 이 망원경은, 그 때 프로듀서에게서 받은 거에요. Звезда……별이라도 마음껏 보라고,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요.”

“사연이 있는 물건이었군요…….”

“굉장하네, 프로듀서.”

“그러게. 다른 프로듀서들도 다 저러던가?”

“아닐 거야, 아마.”


이야기를 마친 아냐는 다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야츠하시로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치히로는 이번에는 아냐의 옆에 앉아 있던 후미카를 바라보았다.


”후미카는 어때요? 아냐처럼 뭔가 받은 거라던가 있어요?”

“받은 거……아니요, 저는 딱히…….”


치히로의 질문에 후미카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미카의 옆에 앉아 있던 카렌은 야츠하시 하나를 마저 먹고, 가방에서 꺼낸 자그마한 문고본으로 시선을 돌리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후미카가 늘 애지중지 가지고 다니던 만년필이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뭐, 그게 꼭 P씨가 준 거라는 보장도 없으니까……후미카 씨도 단순히 소중한 사람이라고만 했었고.’


그 대신, 그녀는 지금껏 이야기에 탑승하기만 하던 두 사람을 향해 화제를 돌렸다.


“그러면 슈코 씨나 사에는 혹시 아는 거 없어?”

“P씨한테 받은 거? 있지~.”

“오오, 뭔데? 보여줘!”

“아니, 지금은 없는 거라서 보여주지는 못 하고.”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슈코는 씨익 웃었다.


“우리 기숙사 들어가기 전에 따로 살았거든. 아마 치히로 씨도 알걸? 그 때 한번 미즈키 씨랑 놀러 왔으니까.”

“아, 아아, 맞아요. 기억나요.”


치히로는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슈코와 사에가 살고 있던 곳은 사무실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곳으로, 두 사람이 각각 사용할 수 있도록 방 2개와 거실, 부엌이 딸린 빌라였다.


”그거 P씨가 우리 들어가서 살라고 사 준 거였어. 기숙사 못 구해줘서 미안하다고.”

“푸흡! 콜록, 콜록!!”


슈코의 입에서 튀어나온 폭탄발언에 치히로는 그만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재빨리 고개를 숙인 덕분에 건너편에 앉아 있던 아이들에게 차가 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사에는 콜록거리며 마른 기침을 반복하는 치히로의 등을 재빨리 두드려주었다.


“어머나, 치히로 항, 괜찮으셔요?”

“콜록, 콜록! 괘, 괜찮……콜록! 아요……! 콜록!”


입으로는 쉴 새 없이 마른 기침을 하고 있었지만, 치히로의 머릿속에는 언제였던가, 기숙사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던 프로듀서의 모습이 떠올랐다.

과연, 어느 날 갑자기 일이 해결됐다면서 후련해하더니, 그런 일이 있었구나. 아무리 그렇다지만 빌라까지 선뜻 구해다 주다니, 대체 그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것일까?

부드럽게 등을 토닥이는 사에의 손길을 느끼면서 치히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부서의 사람들이 하나 둘씩 퇴근길에 오르는 퇴근시간, 센카와 치히로는 CG프로덕션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레슨이나 트레이닝을 마친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뒤 함께 귀가길에 올랐을 그녀였지만, 그녀가 이렇게 서 있는 이유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 씨, 늦네……회의가 길어지나…….”


이따금씩 지나가는 다른 부서의 동료들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하면서 치히로는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일곱 시를 막 넘긴 시각, 주차장의 입구로 나온 지 10분이 지나고 있었다.


‘으으, 역시 해 지니까 바람이 싸늘하네……좀 더 안에 있다가 나올걸 그랬나…….’


프로듀서에게서 조금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을 받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퇴근시간의 회사 앞에 자동차를 세워놓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판단해서 나와 있던 것이지만 바깥날씨가 예상 밖으로 싸늘했기에 괜한 짓이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니야, 기다리기로 했으면 끝까지 기다려야지! 정신 차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낸 치히로는 조금 전, 아이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떠올렸다. 프로듀서의 약간 엇나간 씀씀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고보면, 미즈키 씨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지……장거리 일은 갈 때마다 복지가 어마어마해서 놀랐다고…….”


예전에 미즈키와 카에데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해외로 이동해야 하는 일에 프로듀서가 동행하면 온갖 애프터케어가 붙는다는 이야기였다. 비행기 좌석 등급이 바뀌는 건 예사고, 스케줄을 조금 타이트하게 조여 어떻게든 여유를 만들어낸 뒤, 현지에서 간단하게 여행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던가.

물론, 그녀로써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회사 예산을 사용한 게 아니라, 순전히 프로듀서 본인의 사비를 사용한 것이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예전의 온천 티켓도 그랬다. 축제에서 반쯤 공짜로 딴 경품이긴 했지만, 그 내용물은 틀림없는 하코네 소재의 노천탕이 딸린 고급 여관의 4인 투숙권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온천 전문가인 카에데에게 듣기로는 2인실이 4만엔부터 시작하는 중상급 여관이라고 하던가.

만약 그것을 딴 것이 자신이었다면 어땠을까. 동료들을 위해서 기꺼이 그것을 내어줄 수 있었을까? 자신에게 되묻던 치히로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난 못하지……그게 얼마짜린데……그런데 그런 거였으면 가족들이랑 가는 게 더 낫지 않았나?”


흔들흔들, 천천히 제자리걸음을 걸으며 옷깃을 여미던 치히로의 앞에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상념에 빠져 있던 치히로는 자동차가 멈춰 섰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계속해서 흔들거리는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었다. 빵! 하고 짧게 경적 소리가 울리자, 그제서야 치히로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자동차를 눈치챘다. 조수석의 창문이 스르륵 내려가고 그 너머로 프로듀서의 모습이 나타났다.


“센카와 씨, 무슨 생각을 하길래 자동차도 못 봅니까?”

“프, 프로듀서 씨?!”

“얼른 타세요. 날씨 많이 싸늘하죠?”

“죄, 죄송해요. 잠깐 생각 좀 하느라…….”


달칵, 하고 잠금장치가 풀리자 치히로는 재빨리 조수석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수석에 앉은 그녀가 안전벨트를 착용하자 위이잉 하는 조용한 모터소리와 함께 자동차가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회의 끝나고 어디 좀 갔다가 오느라……많이 기다렸어요?”

“아, 아뇨, 괜찮아요. 저도 막 나온 참이거든요.”

“기다렸으면 기다렸다고 해도 되는데.”

“아, 아니에요. 정말이니까요.”


운전에 집중하느라 프로듀서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 멈춘 틈을 타 치히로는 창 밖을 바라보는 척 하면서 소리 죽여 조용히 하품을 했다. 따뜻한 히터바람을 쐬자 삽시간에 나른함이 몰려왔던 것이다. 그녀는 잠도 깰 겸 차 내부를 한번 쓱 돌아보았다. 프로듀서의 자가용은 T회사에서 만든 높은 연비와 경제성을 강점으로 내세운 자동차로, 빈말로도 비싸다고는 할 수 없는 모델을 그것도 중고로 구입한 것이었다. 주인의 성격을 반영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부는 번쩍번쩍 광이 날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인테리어는 역시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치히로는 슬며시 눈을 돌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늘 입고 다니는 정장은 브랜드조차 없는 맞춤옷이고, 가을이나 겨울에 입고 다니는 외투는 유행이 지나 할인하는 물건이었다. 물론 옷걸이 자체가 매우 뛰어난 비율을 가지고 있었기에 전혀 싼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단순히 ‘사치’를 넘어서, 본인의 생각에 ‘쓸데없는 지출’과는 담을 쌓은 사람. 그녀가 알고 있는 프로듀서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인데, 어째서 우리들한테는 그렇게 씀씀이가 커지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뒷좌석을 돌아본 그녀는 운전석 뒤에 세워져 있는 커다란 종이가방을 발견했다. 휙휙 지나가는 가로등의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종이가방의 로고는 그녀 역시 몇 번인가 본 적 있는 것이었다.


“이건……R호텔 제과점이네요?”

“네. 회의하러 가니까 주더라고요. 먹어보니까 꽤 맛있던데요.”

“그럼 일부러 안 드시고 가져오신거에요? 저희들 주려고?”


“하하, 설마요. 저도 체면이 있지, 그런 짓을 어떻게 합니까.” 그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예 한 세트 샀어요. 여러분들이랑 나눠 먹으려고. 거기 들렀다 오느라 늦은 겁니다.”

“네, 네?! 한 세트를요? 그거 기본 만 엔은 넘을텐데……?”


치히로는 예전에 봤던 R호텔 제과점의 가격표를 떠올렸다. 가장 싼 것이 천 엔 후반대에서 시작하는, 반죽에 금가루라도 들어간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가격. 물론 싸고 비싸고의 기준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맛있더라’는 이유로 대량으로 살 수 있을 정도의 물건은 아니었다.


“그렇죠. 확실히 과자치곤 꽤 비싸더군요. 뭐, 그래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먹어보겠습니까?”

“그, 그렇긴 한데요…….”


‘하긴 뭐, 파트너십 협찬이라도 받은 거겠지……’ 멋대로 납득하며 치히로는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R호텔은 지금 신데렐라 걸즈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있는 ‘메리엇 스튜어트’의 계열사였으니까.




*****




자신이 살고 있는 맨션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차에서 내린 프로듀서는 치히로와 함께 약속 장소인 골목길 깊숙한 곳에 위치한, 간판조차 없는 자그마한 선술집으로 향했다. 신데렐라 걸즈가 아직 ‘아이돌 부서’라는 자그마한 곳이었을 무렵 카에데와 프로듀서의 밀회 아닌 밀회장소로 애용되던 그 곳은 프로듀서와 비슷한 덩치의, 거구의 점장이 운영하는 곳으로, 어느 샌가 신데렐라 걸즈의 어른들이 향하는 단골 매장이 되어 있었다.

입소문을 탄 것인지, 실제 아이돌을 보기 위해 일부러 먼 곳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생긴 듯 하다고 한다. 그 대부분은 아이돌은커녕 곰이 일어선 것 같은 점장의 풍채에 찍소리도 못하고 돌아가는 모양이지만.


“오랜만이네요, 프로듀서 씨가 마시는 건.”

“그렇죠. 지금까지는 늘 구경만 했으니까요. 제가 스스로 참는 거긴 했지만, 부럽긴 했거든요.”

“집에 가서 따로 드신 거 아니었어요?”

“안 먹습니다. 혼자 먹으면 무슨 맛이에요.”


뚜벅뚜벅, 골목길을 걷는 두 사람의 발소리에 맞춰 프로듀서의 손에 들린 종이가방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규칙적으로 냈다.


“있죠, 프로듀서 씨?”

“네, 말씀하세요.”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져 있는 주택가의 골목길을 지나가며 치히로가 입을 열었다.


“프로듀서 씨는……아이들이나 저희들한테 꽤나 관대하시죠?”

“관대해요? 제가요?”


고개를 돌려 치히로를 내려다보던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기억나는 건 여러분들을 닦달하거나 재촉한 것 밖에 안 떠오르는데요. 레슨 때나 트레이닝 때나……”

“아,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그, ‘금전’적인……측면에서요.”

“네? 아, 아아, 그런 뜻이었군요.”


프로듀서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확실히,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씀씀이가 크긴 했어요. 뭐, 아무렴 어떻습니까. 기왕 쓰는 거,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에 써야지.”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센카와 씨도 잘 아시잖아요? 제 월급. 고작 그 정도 나간다고 해서 저 하나 사는 데는 아무 지장 없어요.”


치히로는 며칠 전 우연히 본 프로듀서의 급여표를 떠올렸다. 야근수당이나 출장비를 비롯한 특별수당을 제외하면 지금 자신의 월급과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아니, 특별수당을 다 합한다 치더라도 아냐나 슈코에게 들었던 이야기만 보자면 그 선에서 해결이 되는 지출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가벼운 것도 아니잖아요?”

“뭐……그렇긴 하죠.”

“어째서 아이들한테, 우리들한테 그렇게까지 해 주시는 건가요?”


“글쎄요……저도 잘 모르겠네요.” 웃으면서 뺨을 긁던 그는 손에 들린 종이가방을 바라보았다. 종이가방의 표지 부분에, 반짝이는 도료로 칠해진 R호텔의 로고가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도 굳이 이유를 말씀드리자면……그래요. ‘죄책감’일까요?”

“죄책감……이요?”


뜻밖의 단어가 들려왔다. 치히로가 되묻자, 프로듀서는 작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문득 생각난 거에요. 잘 생각해보니까 저도 참 나쁜 놈이다 싶더라구요.”

“무슨 소리에요? 프로듀서 씨가 나쁜 놈이라뇨?”

“저 때문에 아이들이 청춘을 모조리 날려버렸지 않습니까? 또래 아이들이랑 하고 싶은 것도 있고, 가보고 싶은 곳도 있을텐데, 맨날 레슨이다 일이다 하면서 그런 거 근처에도 못 다가가게 하고요. 이게 나쁜 놈이 아니면 뭐에요.”

“그치만, 그건 프로듀서 씨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결국 아이돌이 되는 건 아이들이 선택한 건데……”


“그렇죠. 그러니까 이건 제가 멋대로 가지는 죄책감입니다.” 프로듀서는 손에 든 종이가방을 들어 보이며 덧붙였다. “그리고 이건 제가 멋대로 하는 속죄고요.”


”어때요, 꽤나 제멋대로인 이유죠?”

“어……그, 그럭저럭, 요……?”


프로듀서는 치히로의 대답에 빙그레, 웃음으로 답했다. 언제 도착한 것일까, 골목길 저 앞에, 입구에 걸린 노렌 너머로 불빛이 새어나오는 선술집이 서서히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 갑시다. 다른 분들 기다리겠어요.”

“네!”


치히로는 터벅터벅, 자신의 앞을 걸어가는 커다란 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시간, 열정, 그리고 자신의 재산까지. 이 사람은 모든 것을 우리들에게 바쳤다.

단순히 죄책감 때문에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걸까? 그렇게 자기 자신을 납득시킨다고 해서 그게 납득이 되는 걸까? 만약 그 이외의 다른 이유가 있다면, 이 사람은 우리들에게 대체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치히로는 프로듀서의 뒤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반쯤 지정석이 되어 버린 듯한 가게 구석진 곳의 테이블에, 먼저 도착한 선객 세 사람이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 치히로, P군! 이쪽이야!”

“죄송합니다. 제가 개인적인 볼일이 좀 생겨서요. 대신 좋은 거 가져왔으니까 봐 주세요.”

“프로듀서, 이리 오세요. 오늘은 제 옆이랍니다. 모처럼 함께 마시는 날이니까, 오늘은 쉽게 안 놔줄거에요?”

“저는 괜찮습니다만, 타카가키 씨야말로 내일 레슨에 영향 안 가도록 해 주세요?”

“그런 건 내일의 저에게 맡기기로 했으니까요♬”

“아, 치히로 씨는 제 옆이에요……. 두 분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미후네 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프로듀서의 뒤를 따라 치히로가 빈 자리에 앉자, 노란 백열전등의 불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거구의 점장이 기다렸다는 듯 두 사람의 앞에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1차의 시작은 맥주지! 자, 모두 건배!”

“”건배!!””


유리잔이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테이블 가운데에 모였던 잔이 제각각의 입가로 향했다. 맥주잔이 입에 닿기 직전에 치히로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프로듀서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 그는 잔을 들고 있지 않은 왼손 검지를 들어 자신의 입술에 가볍게 갖다 대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비밀입니다. 아시죠?’


무엇이? 라는 질문까지는 할 필요도 없었다. 아마도 조금 전에 나누었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리라. 치히로가 ‘알겠다’는 신호로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뜨자 그는 입꼬리를 약간 끌어 올렸다.


‘뭐, 아무렴 어때. 지금은 그냥 믿고 따라가기만 하자.’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사람을 믿고 따라서 잘못 된 적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치히로는 자기 몫의 맥주를 쭉 들이켰다.





「끝.」






안녕하세요, 어김없이 새벽 업로드를 하는 작가입니다.


'오프 더 레코드'에 이어서 다시 외전격 스토리로 인사드립니다.

오프 더 레코드가 단순히 P와 치히로의 꽁냥대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면, 이번에는 자신의 동료들에게는 한없이 허들이 낮아지는 프로듀서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P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각 아이돌들의 주연 에피소드에서 (나름대로 열심히)나타내고 있지만, P가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써 보고 싶었거든요.

그러던 와중에 문득 좋은 소재가 떠올라서 이렇게 써 보게 되었습니다.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네요.


다음 이야기는 다시 본편의 시간축으로 돌아갑니다. 우즈키의 문제도 해결했고, 근사하게 히나마츠리 라이브의 데뷔 무대까지 성공시킨 프로듀서를 기다리는 것은 타카가키 카에데와 카와시마 미즈키에 대한 '메리엇 스튜어트'의 깜짝 놀랄 제안. 프로듀서는 당연히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인사'라는 명목으로 카에데와 독대하는 자리에서 메리엇 스튜어트의 대표는 그녀에게 폭탄 발언을 합니다. 그게 과연 무슨 내용일지는......다음 이야기에서 뵙죠.


이번엔 정말 빨리 쓸 거에요. 빨리 쓸 수 있을 거에요. 아마도요.



덧. 다음 이야기에서 나올테지만, 퍼스P가 선수로 뛰던 시절 우승기록은 총 8회(리그 4회, 월드시리즈 4회)이고, 각 해마다 우승 배당금은 약 50만 달러, 한화로 약 6억원씩을 받았습니다. 그걸 4번 받았으니 우승 배당금만 한화로 24억+@.....
이 정도면 돈 저렇게 써도 별 느낌도 없겠네요.


덧2. 아냐의 망원경은 실제 '스타라이트 스쿨' 카드에서 아냐가 가지고 나온 망원경입니다.

c882ebcbdd8a554dcd903c1db47972b2.jpg

여기서 아냐의 뒤에 있는 저 녀석이에요.

3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