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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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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02, 2018 16:22에 작성됨.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장소는 필요합니다. 그 장소가 한 곳만 있을 필요도 없지요. 저에게는 이 카페가 그런 장소들 중 하나입니다. 학교를 쉬는 날 사무실에 출근해야 할 때면, 아침에 잠시 이 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차분히 하고 사무실로 가곤 하거든요. 커피를 한 잔 시켜 그 머그잔을 두 손으로 잡고 천천히 마시면 생각들도 감정들도 같이 섞여서는 천천히 몸 안으로 스며들어 옵니다. 그 과정을 천천히 반복하며 커피를 다 마실 때 즈음이면 저는 저로서 온전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죠. 하루의 시작이 깨끗해져요. 이 커피 한 잔이 참 좋습니다.

  머그잔을 잡고, 한 모금 마십니다. 생각이 섞입니다. 어제 미즈키씨가 한 말이 떠오르네요.

"이상하잖아, 그거"

  이상할 거에요. 저도 잘 모르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니깐요.

"미나미쨩, 그런건 단순한 질투라고 하는 거라고"

  그건 아닌 거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질투라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도 그럴게, 저는 카나데씨를 미워하거나 하지 않는다고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십니다. 감정이 섞입니다. 카나데씨를 볼 때마다 느끼는 이 아픔은 뭘까요. 욱신거려요, 무언가 어울해요, 무언가 아파요. 최근 카나데씨를 볼 때마다 그렇게 느낍니다. 프로듀서를 볼 때마다 그렇게 느껴요. 둘만 만나면 아파서, 그저 웃는 얼굴을 유지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잡고 있는 머그잔이 맥주잔 같다는 생각이 문득 스칩니다. 그렇네요, 어제 맥주도 이렇게 잡고 마셨죠. 맥주를 마치 커피처럼 천천히 마시던 저에게 미즈키씨가 말씀하셨습니다.

"미나미쨩, 지금껏 인기 많았지?"

  네, 조금요.

"당연한 소리겠지, 으음... 연애 경험도 있지?"

  네, 있어요. 잠깐잠깐 뿐이었지만요. 제 연애 경험을 열심히 캐물으시던 미즈키씨는 종국에 이런 질문을 하셨지요.

"너가 좋았던 경우는 없었던 거잖아... 너, 사랑해본 적 없었구나"

  이상하네요, 분명히 저는 여러번 연애를 했었는데요.

"그건 사랑을 찾아 헤매인 거겠지"

  저랑 달리 한 손으로 맥주잔을 마시고는 미즈키씨는 말을 마무리지었죠.

"아, 몰라, 고생해, 어쨌든 좀 많이... 고생할 거야 너"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걸까요.

  다시 커피잔을 훑습니다. 넘어오는 커피가 없습니다. 어느새 다 마신 모양입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생각도 감정도 정리되기 전에 커피를 다 마신 적은.......

  콕콕. 누군가 제 등을 찌릅니다. 그 감각에 뒤를 돌아봅니다.

"우연이네"

  프로듀서가 웃으며 저를 보고 있습니다. 차마 인사를 할 수가 없어서 당황하여 컵을 내려놓습니다. 서둘러 내려진 컵은 보기 좋게 미끄러지며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엇차, 위험하잖아"

  프로듀서가 그 컵을 바로 발로 받아내고는 곧 이어 손으로 잡습니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제 앞에 컵을 내려놓습니다.

"미나미답지 않다고 이런 실수는"

  웃지 말아주었으면 해요.

"미안해요 프로듀서,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나 봐요"

"하핫, 그런가"

  웃지 말아주세요. 제 생각을 억누르며 저도 프로듀서에게 웃어줍니다.

"프로듀서는 여긴 왠 일이세요?"

  프로듀서의 웃는 얼굴이 좋습니다. 그러니 웃지 말아달라니, 그런 생각은 이상해요. 좀 더 웃어주었으면 하는데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한다고요.

"모닝커피라도 마실까, 싶어서"

"프로듀서가요? 후훗, 뭔가 안 어울려요"

"아, 좀 너무하는데"

"여기는 그냥 블랙보다는 라떼를 추천드려요, 우유를 좋은 걸 쓰는 거 같더라고요"

"아 그래? 고마워, 그럼 라떼를 두 잔..."

  그 말에 겨우 웃는 얼굴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또 가슴이 아픕니다.

"저는 이미 커피를 마시고 있어요, 프로듀서?"

"아아, 카나데 거야"

  괜한 말이라도 꺼내봤습니다만, 역시 말하지 말 걸 그랬어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기 위한 말은 전혀 괜찮지 않으니 하는 건데 왜 그걸 몰랐을까요. 왜 알면서 물어본 걸까요.

  잠시 침묵이 흐릅니다. 견딜 수 없을만큼 아파서 어떤 말도 끄낼 수가 없습니다. 프로듀서는 그런 제 마음을 모르는 채, 열심히 혼자서 저에게 떠들다가는 준비된 커피를 챙기고는 그대로 먼저 간다는 말만 남깁니다. 그 떠나가는 뒷모습에 프로듀서를 부릅니다.

"응?"

  저기, 프로듀서, 그러니깐 말이에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마음에 나오려던 말이 멈춥니다. 저 밖에 카나데씨가 보입니다.

"왜 그래?"

"아니에요, 좀 더 있다 갈테니, 사무실에서 뵐게요"

  너무 늦지는 말라고. 그 말을 남기며 프로듀서는 커피를 챙겨 밖으로 나갑니다. 카나데씨와 함께 무언갈 떠들며 가는 모습만이 희미하고 뿌옇게 보이네요.

  다시 커피잔을 내려봅니다. 빈 커피잔에는 커피만이 말라붙어 있습니다. 프로듀서에게 하려던 말을 참은 건 잘했다고 생각해요. 갑자기, 뜬금없이, 전혀 상황에 맞지 않게, 이상한 말이나 할 뻔 했거든요. 그런 말 해도 프로듀서를 당황하게 만들 뿐이에요. 카나데씨도 난처하게 만들 뿐이죠. 잘 참았어요, 잘 참았는데.

  아퍼요. 참을 수 없을만큼 아퍼요. 억울해요, 왜 저만 이렇게 혼자 남아야 하죠? 왜 제 사랑은 보답받지 못해야 하는 거죠? 지금껏 남의 사랑을 받아준 적도 있었는데 이제서야 시작하는 제 사랑은 왜 받아지지 않는 거죠? 왜 제가 원하는 사람만은 저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는 건가요. 왜죠? 왜 저만? 왜 저만 이런 처지가 되어야 하는 건가요? 저는 왜 혼자 남아야 하는 거냐고요? 제가 뭐가 부족한가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지금까지 못한 게 있었나요? 저는, 단지 저는, 이제서야, 이제서야 한 사람의 사랑을 원했을 뿐인데 왜 저는.......

  어느새 커피잔이 제 눈물로 조금 차올랐습니다. 저는 그걸 마실 수도 버릴 수도 없어서, 단지 자리에 앉아 두 손으로 그 눈물을 안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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