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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 「나와 아이들의 지잡대 생활기.」 -마지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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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26, 2018 19:58에 작성됨.


5.

지루한 순간에, 고개를 들어 하루가 담긴 벽걸이 시계를 볼 때에는 그리도 안 가는게 시간이지만,

문득 생각나 뒤를 돌아보는 순간에는 그렇게나 빨리 지나가버리는게 시간이다.


아즈사 씨의 결혼식도 벌써 2주 전이였고,

이제 나는 마지막 과제를 앞두고 있다.


교수 「..고로 내가 주는 마지막 과제는, 상징적인 사진을 찍는 거라네.

어떤 효과를 사용하고 의미를 부여하든 상관은 없네. 본인에게 상징적인 사진이면 된다네.

그렇게 찍은 사진으로 졸업식 사진 전시회를 열 예정이네.

전시회에는 앞서 졸업한 자네들의 선배들도 다수 참석 예정이니, 과제는 최대한 성의있게 해오도록 해주게.」


교수 「..그리고 치하야 학생. 폰은 넣게나.」


치하야 「아..죄송합니다.」


큿..마지막까지 눈치 빠르네. 설마 책 뒤에서 몰래 보고 있는걸 들킬 줄이야..


교수님 「다들, 사진학개론 마지막 수업까지 오느라 다들 수고 많았다.」


그렇게, 내 마지막 수업은 끝이 났다. 물론 완전히 폐강하고 졸업식까지 고려하면 아직 남았다지만,

사실상 끝인 것이나 다름 없다.

다 끝났지만 남는 것이라곤 허무한 마음 뿐이다. 난 4년 동안 여기서 뭘 한 걸까?

그리고 여기서 나가면 난 뭘 해야 하는거지?


공허한 마음에, 근처 벤치에 앉아 눈을 살며시 감는다. 눈을 감으니까 보이는 것은 암흑 뿐. 마치 내 앞길 같다.

..여기 와서 난 뭘 하고 싶었던 걸까? 문득 하루카가 떠올랐다.


하루카, 보고 싶다..


...


어차피 사진학개론 학점은 잘 해봐야 B나 맞을 것이 분명했다. 따로 과제를 준비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집에 오자마자 땅바닥에 드러눕고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왠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허무하고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지난번에 축제 때 찍은 사진이 떠올랐다. 찍고 그냥 방치하듯이 냅뒀는데..


다시 한번 사진을 꼼꼼하게 살펴본다. 와, 나 이렇게 웃고 있었던가?

이렇게 웃은 적은 처음이였는데..

풉. 히비키 왠지 웃기게 찍혔네. 미키는..역시나 이쁘구나. 

마코토는 이오리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있었네? 그렇게 싸우더니만, 이 때엔 벌써 그렇게 친해졌었구나..

..사진 괜찮네.


뭔가 그럴싸한 생각이 들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과제용 싸구려 노트북을 켰다.

이후로는 그냥 떠오르는대로 막 적었던 것 같다. 대학교 생활의 허무함. 외로움.

그리고 다시 만난 친구들.. 고민들.. 그런 것들.

약간의 젊음 한 줌에, 나머지는 죄다 우울감과 자아 비판만이 가득한 내 리포트는 결코 대학생의 이상적인 모습에 어울리는 것은 아니였으나,

최소한 나란 사람의 대학교 생활에 대해서는 이것만큼 더 투명하고 솔직할 수가 없었다.


미키와 히비키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문을 두드릴 즈음엔, 과제는 다 완성되어 있었다.

싸구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과 그걸 보고 대충 1시간도 안되서 적어내린 조잡한 리포트라. 풉.

참, 역시 대단하다 치하야. 넌 마지막까지 대학 생활을 이렇게 날로 먹는구나..


미키 「치하야씨~ 빨리 나오는거야. 지금 마빡이랑 마코토군은 타카네정에서 기다리고 있는거나노!」


히비키 「배고프다조 치하야!」


뭐, 그래도 어쩌겠는가. 최소한, 마지막은 솔직하게 썼잖아?

그것 만으로도 마음에 짐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였다.


치하야 「응 곧 나갈께!」 


그 날은 뭐랄까, 평소답지 않게 제법 많은 돈을 썼던 것 같다.

허무한 마음을 달래려던 것도 있었지만..


마코토 「마! 우리 사진 쓰면서 한턱 쏴야지 않겠어 치하야?」


미키 「치하야씨 돈으로 달리자 이기야!」


이오리 「뭐, 이몸의 존안이 찍힌 사진값 치고는 싸지만..너그럽게 용서할께 치하야.」


히비키 「신난다조! 치하야 잘 먹을께~ 아, 타카네 자신은 가장 비싼걸로!」


타카네 「후훗. 역시 통이 크시군요 치하야. 대신, 쿠폰은 넉넉히 챙겨드리겠습니다.」


치하야 「저기.. 시죠씨, 졸업하면 쿠폰 쓸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영수증에 액수를 확인한다. 도대체 얼마나 시킨거야 이 인간들!

..사진을 사용하는 대가로 아이들에게 너무 크게 쏴버렸다. 큿, 생활비도 별로 안 남았다고!




6.

알람 소리에 맞춰 눈을 뜬다. 오늘은 대학교에서의 마지막 날,

즉 졸업식이다.


라니, 뭔가 허무하네. 하지만 정말로 아무런 감흥이 없다.

심지어는 오늘이 졸업식인 것도 이틀 전에야 알았다. 이 빌어먹을 지잡대에서 졸업 날짜를 잘못 문자 발송하는 바람에, 

착각해서 하마터면 오늘 졸업식인데 내일 나갈뻔 해버렸으니까.. 

..딱히 배는 고프지 않았기에, 좀 더 멍하니 누워 있다가 시간에 맞춰 옷을 설렁설렁 갈아입고는,

학위 수여식이 진행될 캠퍼스 지하 강당으로 향한다.


조금 앞서 들어갔는데도, 이미 강당에는 제법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좋아, 이 사람들이 나와 같이 이제 곧 사회에 내동댕이쳐질 가엾은 영혼들이라 이거지?


저 앞에서 예도 칼을 차고 있는 ROTC 단복 차림의 히비키가 보였다. 아마, 총장 입장할 때의 예도식 때문에 온 거겠지?

총장이 강당 문으로 들어온다. 그에 맞춰, 히비키와 ROTC 단원들은 절도 있는 동작과 우렁찬 소리로 칼을 맞춰 올려든다.

다행스럽게도, 히비키는 이번 예도 때만큼은 지난번처럼 총장 머리 위에 칼을 떨어트린다던가 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물론 지난번 축제 때 일 때문인지, 총장이 유독 히비키 칼 아래를 지나갈 때에 후다닥 지나가긴 했지만.)

성장했구나, 히비키. 

왠지 대견하네. 훗.


마이크를 툭툭 건든 총장이 일장 연설을 시작한다. 슬슬 졸릴 무렵에 적당히 연설도 끝났다.

차례대로 올라와서 학회장 교수에게 졸업증명서와 학사학위, 소정의 기념품(놀랍게도 만년필이였다. 그동안 빼먹은 등록금에 비하면 턱없지만, 이걸로도 어딜까?)을 받고 나자,

나머지는 사실상 가족들끼리의 행사로, 졸업식은 그대로 끝나버렸다.


물론 나는 혼자다. 축하해주는 가족도 없다. 허무하네.


난 이제 진짜로 사회에 그냥 버려진 셈이다. 새삼 무서워지네.

내 곁엔 아무도 없ㅡ


그때 저 멀리서, 누가 내 이름을 부른다.


「치하야씨~~」


고개를 올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본다.

미키, 히비키, 이오리, 마코토.. 유키호랑 야요이까지?


미키 「치하야씨! 왜 멍하니 서 있는거야? 다들 아까부터 기다린거나노!」


히비키 「졸업 축하한다조!」


이오리 「훗, 이몸이 와줘서 제법 놀란 모양인가보네 치하야?」


마코토 「야 치하야! 졸업 축하한다고.」


유키호 「조, 졸업식 축하해 치하야짱!」


야요이 「웃우! 치하야씨 축하드리는 거에요! 앞으로도 계약 연장..이 아니라 친하게 지내요! 웃우!」


치하야 「...」


미키 「에에? 우는거야?」


히비키 「(울먹) 치하야..울면 나도 눈물난다구!」


치하야 「..아니. 그냥..좋아서.」


치하야 「다들 고마워.」(미소)


그리고 고마웠다. 같이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있었음에,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혼자가 아님에.


그나마 조금 친했던 사진학개론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전체 사진을 부탁했다.


교수님 「축하하네 치하야군. 아! 그리고, 나중에 문자 확인 좀 바라네.」


치하야 「..예! 감사합니다.」


교수님은 내 앞에서 처음으로 환하게 웃으시면서,

(아마, 날 친구 없는 아이로 생각하다가 그나마 친구들이 있었다는걸 알게 되어서 그런 것 같다.)

우리들의 사진을 찍어주셨다.


그리고 맹세컨데, 그 사진 속에서 나와 아이들은,

ㅡ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7.

바깥으로 나가니, 캠퍼스 입구가 제법 북적인다. 뭐 가족들이 많이 찾아왔을테니까.

평소에는 그냥 조용하던 핸드폰이 왠일로 시끌벅적하게 요동친다.

유키호와 리츠코, 아미 마미와 아즈사씨, 심지어는 별로 달갑진 않지만 프로듀서까지

엄청나게 문자랑 전화가 쏟아져서 졸업식이 끝났는데도 바빴다.


그런데, 왠지 나쁘진 않네.


이오리 「아, 그리고 치하야! 오늘 저녁은 시간 비워두라고?

오늘 저녁은 이 이오리님이 친히 쏠테니까.

어제 비트코인 팔아서 돈으로 출금해서 그걸로 타카네정에 미리 예약까지 해났다구?」


마코토  「야리~ 드디어 그럴싸한데에 그 가상화폐 머시기를 쓰는구나?」 이오리 「시, 시끄러워!」 


치하야 「고마워 미나세씨. 마침, 타카네씨에게도 어떻게든 인사하고 싶었으니까..」(미소)


히비키 「그런데 치하야, 왜 부모님은 안오셨어?」


미키 「에에..히비키, 눈치없는거나노.」(한심)


아이들 (째릿)


히비키 「우갹! 미, 미안하다조 치하야..아, 알고 있었는데 깜빡 실수해버렸다조..」(우물쭈물)


치하야 「..풉」


치하야 「괜찮아. 어차피 다들 궁금했을꺼잖아.」


치하야 「그냥..765 프로 나오고서는.. 다들 완전히 남남으로 갈라져 버렸거든.

알다시피 원래 우리 가족은 이혼 가정이였고..765 때에 그런 일도 있고 나서부터는 사이가 더 안좋아져서..

ㅡ거기에는 이혼하신 부모님 책임도 있고, 내 책임도 있었어. 그래도 너무 안타깝게 생각하지는 마.

너무 오래되어서, 사실은 별 감흥도 없거든.」


치하야 「뭐, 혼자인건 익숙하니까. (씁쓸) 아마도 난 평생 이러겠ㅡ」


미키 「치하야씨!」(버럭)


미키 「..그런 말은 하지 않는거야! (울먹) 미키는 항상 치하야씨랑 같이 있어줄꺼야.

치하야씨 덕분에 요즘 정말 매일이 즐거웠고 앞으로도 쭉 이렇게 다들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는거야.

설마 졸업했다고 그러는거야? 하지만 치하야씨가 졸업해도 상관없어.

설령, 치하야씨가 저 멀리 오키나와의 무시무시한 적도 정글로 간다고 해도 미키는 치하야씨를 보러 갈거야!」


히비키 「..뭔가 자신 고향에 대한 평가가 괴상한 느낌이지만..뭐, 나도 마찬가지다조!

후훗, 자신이 나중에 사단장까지 올라서 바쁘게 되버려도, 연락은 꼭 할꺼니까 난쿠루나이사!」


마코토 「훗. 뭔가 감동적이네.」이오리 「..가, 감동적이긴! 이런거 하나도..뻔하다구..훌쩍(울먹)」


야요이 「웃우! 저도 앞으로 자주 방문 판매..가 아니라 방문할께요!」


유키호 「헤헷. 치하야짱, 다시 한번 졸업 축하해.」(미소)


치하야 「..고마워.」(미소)


그동안 거쳤던 캠퍼스들을 같이 천천히 거닐어본다. 뭔가 딱히 감흥이 있던건 아니였지만,

그래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몇 번인가 사진을 찍어 남겨보았다.

대신 언제나처럼, 나 혼자만 있는 그런 외로운 사진이 아니라, 친구들이 함께인 소중한 기념 사진들을.


치하야 「아! 저기 얘들아. 난 잠깐 먼저 가볼께.

졸업식날에 이 시간에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었거든..저녁 식사 때에는 늦지 않게 올 테니까, 걱정하지는 말고.」


미키 「응! 아즈사랑 리츠코..씨랑 아미랑 마미네도 저녁 때 타카네정으로 온다고 했으니까, 시간 맞춰서 늦지 말고 오는거야!」


치하야 「알았어.」(미소)


나는 서둘러 대학교 후문 쪽으로 달려갔다. 늦지는 않았겠지?

대학교 아래에는 봄을 알리는 벚꽃나무 한 그루가 만개한 분홍빛 꽃잎들을 주변에 흩날리며 칙칙한 도로 위를 분홍빛으로 수놓고 있엇다.


흩날리는 꽃잎 아래, 나는 기다렸다. 10분..30분..아이들과의 약속 시간이 다 될 즈음까지.

이제는 한가해진 거리 위로, 내가 기다리는 그 사람이 혹여 오지는 않을까

오매불망 초조한 심정으로 기다렸다.


대학교 뒤편 산 아래로 석양이 드리울 즈음 되어서,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뒤로 벚꽃나무를 등지고 떠나는 그 순간에도

그립고 보고 싶은 이내 마음은 여전히 그녀의 모습만을 그리고 있었다.


하루카.. 잘 지내는 거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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