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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 「나와 아이들의 지잡대 생활기.」 -마지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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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26, 2018 19:51에 작성됨.



1.

전등 꺼진 자취방에 남은 빛이라곤 텔레비젼 화면의 현란하게 번쩍이는 불빛 말고는 없었다.

그 빛 아래, 나와 하루카는 지금 서로 그 어느 때보다도 밀접하게 붙어 있다.

하루카의 뜨거운 온기가 바로 옆에서 느껴진다. 몸은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달아오른다.


치하야「하루카..고마워. 이런 흥분되는 기분은 처음이야.」


치하야 「그러니까 이제 다음은..」(꿀꺽)

...



치하야 「어벤져스 2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보자! 

이 영화도 친구랑 같이 자취방에서 밤 새면서 보고 싶었거든!」(신남)


하루카 「..으, 응!」(당황)


하루카 「휴..치하야도 은근히 순진하구나..」(안심)


치하야 「응? 내가 순진하다니.. 잘못 봤어 하루카.」


순진하다니. 하루카는 너무하네. 내가 이대로 넘어갈 줄 알았어?

고개를 돌려, 하루카에게 다가간다. 코 앞까지 다가가자, 하루카의 얼굴 위로 당황한 기색이 가득히 떠오른다.

나는 하루카의 바들바들 떠는 어깨 위에 부드럽게 한 손을 올린 다음 그대로 잡아 누르면서ㅡ


치하야 「후훗. 보일러를 내가 너무 쌔게 틀었지? 미안해 하루카.

하지만 하루카가 덥다는 건, 이미 진작에 눈치챘다고?」(미소)


ㅡ하루카 뒤에 탁자에 올려진 보일러 리모컨을 잡아 온도를 내렸다.


치하야 「자, 다음은 어벤져스 2야! 우리 같이 오늘은 엔트맨까지ㅡ」


하루카 「...」(초조)


하루카 「저기..!」


하루카 「돈은..그 아까 빌려달라는 액수가 너무 커서 이러는거면 저기ㅡ」


치하야 「아..맞다! 그 전에 배고픈데 우리, 밖에서 밥이나 먹자.

대학교에서 하루카랑 꼭 같이 야식도 먹어보고 싶었다고?

잠깐 기다리고 있어. 좋은 데가 있는데, 열었는지 잠깐만 보고 올께.」(미소)


2.

왠지 어수선한 분위기의 하루카의 손을 붙잡고 근처 학식가의 타카네정으로 들어간다.

새벽 때까지 장사하는 집들 중에선 그래도 여기만한 식당이 없다.


치하야 「이 시간대에는 처음 보네, 시죠씨.」


타카네 「후훗. 오늘은 그리운 손님이 하나 더 늘었군요.」


치하야 「맞아.(미소) 그러니까, 가장 잘 하는걸로 2개 부탁해! 아아, 덤으로 고야 튀김도.」


타카네 「과연, 견문이 있으시군요.」


보글보글 지글지글. 끓고 튀기는 소리와 함께 주방 안쪽에서부터 구수한 냄새가 흘러나온다.

식었던 위가 달아오르는 기분이다. 

내 옆에 하루카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왠지 초조한 눈치이다.


하루카 「저기..치하야, 아까 했던 이야기ㅡ」


치하야 「아! 저기 나온다. 하루카, 오늘은 내가 사는 거니까 마음껏 먹어. 

타카네가 자랑하는 특제 점보 챠슈 콩나물 고야 불고기 라면이야.」


하루카 「..자, 잘 먹을께..헤헷」(억지미소)


후루룩. 쩝쩝. 걸죽한 돼지고기 육수에 후추와 할라피뇨 고추를 더하여 제법 맵게 끓인 국물을 호호 불어 한입 마셔보고,

얇게 썰은 대패 돼지고기와 콩나물에 면발을 집어 오물오물 감칠맛을 느껴본다.

매운 맛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면서도 젓가락은 멈추지 않는다. 이상하네.

이렇게나 맛있는걸 제법 자주 먹는데도 왜..

..가슴은 안 자라는 걸까? 


치하야 「큿!」


하루카 「(화들짝) 치, 치하야 혹시 기분 안 좋은 거라도 있는거야?」


치하야 「아니..그런건 아니고..」


치하야 「그나저나 하루카는 잘 안 먹네?」


하루카 「아니..그냥, 저녁을 좀 많이 먹었거든..헤헤.

그, 그래도 지금 이 하루카짱은 열심히 먹고 있다구?

정말 맛있다 치하야짱! 역시 치하야짱이 선택한 음식점이야!」(초조)


치하야 「...」


치하야 「후훗. 뭐, 이 정도는 기본이랄까..」


하루카 「그런데 저기..아까 했던 말 있잖ㅡ」


치하야 「그만. 지금 새우 튀김까지도 나왔다고?」


하루카 「...」


하루카 「저기..치하야짱, 내가 조금 급해서 그런데ㅡ」


치하야 (쩝쩝쩝ㅡ후루룩)


하루카 「...」(불쾌)


하루카 「..미안. 나 먼저 일어나도 될까?」


치하야 「그래 잘가.」


하루카 「...실례했습니다!」(울컥)


치하야 「잠깐!ㅡ」


하루카 「왜? 또 뭐 고야 튀김이나 처먹으라고? 치하야짱, 나 정말 믿을 사람이 치하야짱 밖엔 없어서ㅡ」


치하야 「아니. 고야 튀김도 같이 먹으면 좋긴 한데..」


치하야 「그것보다, 이거 가지고 가라고..」


내가 품 속에서 준비했던 봉투를 내밀자, 하루카는 퍽 놀란 눈치다.


하루카 「...」


치하야 「아까, 여기 오기 전에 잠깐 나갔을 때 인출기서 뽑았어. 하루카가 필요하다고 말했으니까.」


하루카 「..너무 많은데.. (주저함) 그냥 줘도 되는거야?」


치하야 「말한 것보다 더 많이 넣긴 했는데..어차피 난 혼자 사니까..」


하루카 「...」


하루카 「치하야짱은..내가 이 돈을 어디다가 쓸 건지도 안 물어보는거야?」(울먹)


치하야 「솔직히 궁금하긴 해.(미소)

그래도, 하루카가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하루카라면 분명히 중요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을 뿐이야.

말하기 곤란하면 말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대학교 내내 하고 싶었던 한 마디.

그러나 대학교 와서는 단 한 번도 앞에서 해본적 없었던 한 마디를 꺼내어 본다.


치하야 「우린, 절친이잖아.」(미소)


하루카 「...」


하루카 「그렇게..생각해주고 있었구나. 다행이다. 헤헷」


하루카 「...」(울먹)


하루카 「저기..나..」 


하루카 「사실, 임신해버렸어..」(뚝뚝)


하루카 「사실 나, 정말 외로웠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도, 거기서 정말로 친했던 사람은 치하야 말고는 단 한 명도 없어서..

그런데 치하야짱은 또 바빠서 나랑 멀어지는거 같고..」


하루카 「그래서, 외로워서 아무나랑 막 사귀고..분위기에 휩쓸리면 아무나랑 같이 해버리고..

그런데 단 한 명도 안 도와줬어. 마지막에 사귀었던 료씨는 아예 화까지 내더라. 나보고..나보고 꽃뱀이래 꽃뱀.. (울컥)

그러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렸어.. 아직까지도 누구 애인지도 몰라. 나, 정말 더럽지?」


치하야 「..」


치하야 「..괜찮아.」


치하야 「하루카는 상관없어! 내게 하루카는 언제나, 하루카니까!」


더 이상은 물어보지 못했다.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위로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겠어.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가장 비참하고 슬픈 순간엔, 그 누구도 어떤 위로도 날 도울 수 없다는 걸.


가장 친하고 그립고 보고 싶었던 사람이 앞에 있는데도,

그 아이가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끔찍한 일을 해야 될지도 모르는데, 

나는 몇 마디 말 따위 뿐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리고 그렇게 되어버린 데에는 내 책임이 있다는 것이,

그 괴롭고 비참한 사실이 내 심정을 잡아 끌어내리고 산산히 부셔버린다.


한참을 숨죽여 울던 하루카는 타카네가 휴지 몇 장을 건네고서야 간신히 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옛적의 그 환했던 미소를 지으며 애써 위로하는 것이였다.


하루카 「헤헷. 치하야짱 또 그런 슬픈 표정 지으면 안된다구.

그러면 내가 너무 슬퍼지니까..

..미안해 치하야짱. 치하야짱은 항상..날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해줬는데 내 멋대로 그렇게 오해했던거네..헤헷

그리고 돈은 걱정하지 마. 이번 년도 지나기 전까지는 꼭 값을께! 

아니면 차용증이라도 쓸까?」


치하야 「아냐. 그냥..몸 조심해. 그거면 됬어.」


하루카 「아아, 그나저나 치하야짱이 이렇게나 맛있는걸 사줬는데, 다 먹고 가야지. 헤헷

치하야짱도 어서 먹어. 벌써 다 식어버렸겠다..」


메이는 목 위로 어느새 미적지근하게 식어버리고 퉁퉁 불어버린 라면 면발을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최대한 천천히 씹고 씹고 씹어 삼킨다. 이 순간이 지나면, 왠지 그녀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아서.

하지만 결국 우리의 마지막 순간은 끝나고, 이별이 찾아왔다.


하루카 「헤헤. 다 먹었다..잘 먹었어 치하야짱! 다음엔 내가 쏠게.」


치하야 「..그럼 이제 대학교는 그만두는거야 하루카?」


하루카 「아무래도..」(회피)


치하야 「...」(우울)


하루카 「또 그런 표정 짓는다 치하야짱! 뗏!」


하루카 「..졸업식에 꼭 올테니까. 우리, 그 대학교 후문 근처에 벚꽃나무 아래서 보자.

그 날 꼭 찾아올께 치하야짱!」


치하야 「..고마워. 벌써부터 기다려지네.」(미소)


하루카 「그러면..」


하루카 「잘 지내, 치하야짱.」


치하야 「안녕, 하루카..」


..그녀는 그렇게 어두운 밤거리 속으로 녹듯이 사라진다.

그녀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나는, 힘 없이 터덜터덜 걸어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타카네 「..치하야, 당신이 자책할 필요는 없는ㅡ」(측은)


치하야 「저기..시죠씨.」


타카네 「..예」


치하야 「가장 독한 술로, 부탁해.」


치하야 「..정말 독한걸로..다 잊고 마셔버릴 수 있어버리게..」(울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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