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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 「나와 아이들의 지잡대 생활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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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9, 2018 20:06에 작성됨.



(전편은 제 닉으로 글쓴거 검색하면 바로 나옴여)


0.

눈을 뜨자, 아직 765 프로 아이돌로 있었던 그 때의 그 빌라 자취집이였다.

아. 악몽이구나.. 그런데 제법 신기한걸?


손가락을 꼼지락거려본다. 몽롱하지만, 제법 현실감 있는걸?


그 때, 벨이 울린다. 그리고 누군가 날 부른다.

아, 하루카구나. 


하루카 「치하야, 거기 있어?」


하루카 「하루카인데..」


하루카 「같이 춤 레슨하러 가지 않을까 해서...」


하루카 「있잖아, 몸을 움직이면 기분 좋잖아! 그러니까..」


무언가 대답하려고 생각한 순간, 다시 세상은 정전.

나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꿈은 곧 끝났다. 나는 식은땀에 범벅이 되어 일어난다.


그 날, 그 때에 내가 무언가 대답했더라면,

그래서 아이돌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아직도 765 프로가 살아있었더라면..모두가 아이돌이였더라면,


우리 사이는,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하루카?


...


1.

숙취로 지근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눈을 뜨니, 

미키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미키 「치하야씨! 축제 가는거야! 응? 빨리 일어나자~」


치하야 「..아..」


치하야 「알았어..으으 머리 아파.」


젠장, 술을 진창 마셨더니 머리가 아프다. 지금 몇 시지?

아아, 12시네. 그래도 다행이다.

일단 밥부터 먹는 것으로, 시간을 떼우자. 그 다음엔 뭘 해야하는거지..


문득 후회한다. 그때 왜 내가 미키한테 대학교 축제를 같이 가자고 그랬을까?

그것은 분명히 쓸데없는 동정심이였다. 애초에 나부터 먼저 동정받아야 할 아싸적 존재잖아?

같은 아싸면서, 무슨 대학교 축제를 소개시켜주겠다고 말한 것일까?


치하야 「으으..그나저나 히비키는 잘 들어갔어?」


미키 「아아! 히비키 일어나자마자 엄청 토하고 간거야! 아핫~」


치하야 「..화장실이겠지?」


설마..설마 아닐꺼야.


미키 「노노! 방바닥에다가 실컷 토한거야. 그래도 미키랑 같이 치하야씨 자는 사이에 엄청 닦은거야! 잘했지?」(기대)


..왠지, 방에서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나중에 보자 히비키..


치하야 「..그나저나 히비키는 어디간거야?」


미키 「아! 오늘 축제 전시회 있고 다음엔 예도 연습 있다면서 일찍 나간거야! 그나저나 예도가 뭐야?」


치하야 「휴우..일단은 배고픈데, 밥부터 먹자 미키. 봉구x 에서 오니기리 밥버거 어때?」


미키「아핫~ 역시 똑똑한거야 치하야씨! 그리고 고마워. 

치하야씨 아니였으면 미키, 축제도 제대로 못해보고 왕따로 졸업해버릴 뻔한거야. 고마워!」(미소)


치하야 「..뭐, 이정도 가지고..」(우쭐)


ㅡ뭐 어때? 이왕 이렇게 된거 대충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보면 될 것이다. 대학교 축제 뭐 까짓거 별거 있겠나?

 


2.

밥버거 가게에서 대충 속만 채우고 나온 다음에, 미키와 함께 대학 캠퍼스를 돌아다닌다.

그런데 축제인데도 볼게 없다. 명색이 축제인데 보이는 것이라곤 잔디밭 위에서 술이나 돌리는 광경 밖에는 없다.

진부한 술게임에 남아도는 것은 먹다 남은 종이컵들 뿐이다.

아무런 열기도 없고 그들이 떠난 자리에 남는 건 쓰레기 뿐인데,

오히려 산에서 내려온 너구리 다람쥐들 비둘기들이 더 신난 것 같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술판을 지들이 차지하고 저들끼리만의 산속 축제를 벌이고 있다.


미키 「헤..원래 저렇게 술만 마시는거야 치하야씨?」


치하야 「뭐.. 축제날엔 보통 저렇게 술 마시고 놀지.」


미키 「우웅..그런데 술마시는건 다들 축제 아닌 날에도 이 학교선 다들 맨날 하잖아?」


치하야 「..그, 그건..」(당황)


생각해보니, 그렇네.

하지만 미키, 우리 대학교는 지잡대야.

애초에 공부할 열의도 없는데 재미있게 놀 열의 따위가 있을리가 없잖아.


하지만 미키의 실망한 얼굴을 보니, 왠지 마음이 다급해졌다.

최소한 미키에게만큼은 대학교의 청춘다운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다.. 그런 마음?

그건 아마, 이 지잡대에서 청춘을 허비할대로 허비한 나에 대한 죄책감일지도 몰랐다.


치하야 「아, 미키! 오늘 저녁에 아이돌 온다는데 구경하러 갈래?

지금 낮에는 축제라고 해도, 사실상 볼만한 건 없을꺼야.」


미키 「응? 연예인 구경? 치하야씨가 아이돌 보러가자니 이상한거야.

예전에는, 우리들이 아이돌이였잖아. 그 때가 그리운거나노..」


미키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큿..

내가 어리석었다. 어쩌자고 아이돌 이야기를 꺼냈을까..


미안해 미키..결국 나란 사람은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봐. 난 태생이 아싸라 더 이상은 생각 못하겠어.  

..하긴 그러니까 아이돌도 그렇게 쉽게 그만뒀겠지.


치하야 「..으, 응..」(우울)


미키 「아핫~ 치하야씨 또 곤란해하는거야. 미키, 과거는 정말로 신경 안 쓰는거야! 치하야씨 잘못이 아닌걸?

..그러지 말고, 우리 심심한데 히비키나 보러 가자 치하야씨.

히비키 학과는 오징어심리학과니까, 어쩌면 재미있는거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거야!」


미키..새삼 느끼지만 정말 착하고 좋은 아이였다.

765 시절에는 왜 몰랐을까? 

그 때에는, 단지 외형(특히 가슴..큿!) 때문에 거부감이 들었었는데..


아니, 사실은 다들 좋은 아이들이였다. 

ㅡ단지 내가 피하고 다녔던 것일 뿐이다. 그 뿐.


그나마 하루카가 이런 내 곁을 지켜준 유일한 친구였는데..

하루카조차도 난 그저 허무하게 떠나보내고 있다.

새삼 그립다.


대학생이 되서, 너랑 같이 하고 싶은게 많았어.

함께 MT도 가고, 미팅도 해보고 리포트도 준비하고 자취방에서 같이 밤새도록 마블 영화도 보고 싶었어.

그런데 어쩌다 우린 이렇게 멀어진걸까?


하루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거니?


미키 「치하야씨! 빨리 히비키네 보러 가자! 분명히 꿀잼일꺼나노!」


치하야 「..알겠어. 좋은 생각이야.」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히비키는 미키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캠퍼스 1층 오징어심리학과 전시회라는 곳에 도착하니, 왠 횟집에서나 쓸법한 어항 옆에 어색한 ROTC 단복 차림의 히비키가 서 있었다.

히비키가 우릴 발견하고는 반갑게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히비키 「아! 미키랑 치하야도 왔냐조. 마침 잘 왔다조!」(미소)


치하야 「음..수조네. 히비키 학과에서 하는 전시회 같은거야?」


히비키 「응응! 자신 학과에서 엄청나게 준비했다조!」


가만히 들여다보니, 수조 안에는 진짜 오징어 하나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오징어..실화냐?


미키 「헤..진짜 오징어네.」


히비키「응응! 자신 학과가 오징어심리학과잖아! 그래서 학과에서 제일 똑똑한 오징어로 심리 테스트 중이다조?

미키랑 치하야도 해볼래?」 


미키 「응..그런데 오징어가 안 움직이는데?」


히비키 「응? 그럴리가..아까 물도 갈아줬는걸?」


치하야 「..물을 갈아줘? 설마 수돗물은 아니지?」


미키 「에이..치하야씨도 너무한거야! 아무리 그래도 히비키가 그 정도 실수는ㅡ」


히비키 「우, 우갹! 수 수돗물 넣어버렸다조!! 오, 오징어 죽는다조!」(허둥지둥)


치하야 「..하네?」(한심)


미키 「...」


미키 「풉!..아하하핫!」치하야 「..큭큭큭」


히비키 「우, 우갹! 웃지말고 빠 빨리 바닷물 구해야..우갸악!!」 햄죠「찍찍(븅신)」


결국 그 불쌍한 오징어는 죽었다. 히비키 말로는, 축제 때 학과 파전 부칠 때 쓰면 된다고 한다.

고로 심리 테스트가 무엇인지 알 길은 영영 없어졌지만..뭐, 그래도 미키가 모처럼 웃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또다시 할 일이 없었으므로, 우린 그대로 히비키를 따라다녔다.


전시회 이후 히비키는, 저녁에 대학교 연예인 초청 행사 때 총장님 입장 예도식을 한다면서,

지하 강당에서 다른 ROTC 동기생들과 함께 예도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칼을 들고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예도 연습하는 히비키의 모습은 제법 멋있었지만..


히비키 「우, 우갹! 칼 놓쳤다ㅈ..아니 습니다!」


ROTC 선배 「야 히비키. 똑바로 못서냐? 그리고 언제까지 '조'자 붙이는거냐? 하.. 일단 엎드려.」


히비키 「어, 엎드려엇!!」


...

미키「하..히비키, 엄청 힘들게 사는구나..」


치하야 「그러게.」


ㅡ히비키, 나중에 예도식 때엔 잘해야 할텐데..


히비키의 예도 연습이 끝날 즈음 미키와 함께 밖으로 나가보니, 거진 해가 다 저물어가고 있었다.

주홍빛 노을 아래로ㅡ 곧 있을 학과 주점 준비로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는게 보였다.


그렇게 나의 마지막이자, 미키의 첫 대학교 축제의 하이라이트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3.

아이돌 공연이 있다는 대학교 운동장에 나가보니,

흙먼지 날리는 서부의 황야 같은 운동장 한가운데에 거진 그럴싸한 조립식 무대장이 올라와 있었고,

운동장 바깥으로는 천막형 학과 주점들이 제각기 괴상한 이름판을 달고 세워져 있었다.


그나저나.. 미세먼지 때문에 목이 거칠다. 생수를 살짝 들이키면서 생각한다.

이놈의 지잡대는 돈은 그렇게 많이 받아처먹으면서 운동장에 잔디 하나 안깔고 뭐했을까..


치하야 「저기..미키, 뭐 혹시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꿀꺽꿀꺽)


미키 「섹파.」 


치하야 「ㅡ푸웁!! 켁켁..」


미키 「꺄악~ 치하야씨 요즘 물 자주 뱉는거야!」


치하야 「섹ㅍ..라니. 그, 그런 단어는 어디서 배운거ㅡ」


미키 「아니, 저기 봐봐 치하야씨. 주점 간판에 섹파 판다고 써있는거야!」


치하야 「아니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딴 제목을 ..섹(시한) 파(전)..진짜네..」(한심)


..하..내가 다니는 대학교지만 정말 수준 낮구나..

그 외에도 7천원 주물럭줘 주점. 오빠가 먹여주는 왕소세지집, [부산] 오뎅탕 돌려먹기.avi 등등..

보기에도 낯부끄러운 온갖 추잡한 주점 간판들이 가득했다.


..그나마, 미키가 순진해서 모르는게 다행이구나.


미키 「어? 저기 유도부 마코토네 주점인거야! 저기 가자 치하야씨!」


치하야 「으, 응..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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