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Pair 사이더

댓글: 1 / 조회: 711 / 추천: 2


관련링크


본문 - 02-17, 2018 02:15에 작성됨.

최근 아는 사람이 아이돌이 된 것 같다. 티비에서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바쁜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음... 내용은 시크릿인가. 물어볼까 말까 고민이 들었지만 그 고민은 나대신 누군가가 해소해 주었다.


뒤통수에서 시작되서 머리 깊은 곳이 흔들렸다.


어우 머리야...


관자놀이를 만지작거리며 더듬더듬 뒤를 돌아보자..


"뭐하시나요! 후배!"


관자놀이를 보라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단신의 셰프가 양손을 허리춤에 두고 소리쳤다.


"아우....오오하라 선배.."


"업무 중 스마트폰 조작, 벌점 5점입니다아"


왠지 지금 맞지도 않았는데 두통이 추가된 느낌이야...


머리는 아직도 띵해서 눈 앞의 풍경이 여러개로 분열중이다. 하지만 오오하라 선배의 팔은 정확하게 잡았다. 잡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부탁했다. 벌점만큼은 제발...!


"그럼 오늘 영업 후 청소담당을 하시는 수밖에...아 물론, 그것도 내일봐서 별로면 벌점이에요."


이따 밤에 약속이 있다는 말에 선배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열심히 하셔야겠어요..."


오오하라아아아아....!!!!


좁은 가게 같아도 참 넓다. 불이 꺼지기만을 기다리는 빵가게는 쓸쓸하구나.... 오오하라 선배가 모든 사람들에게 빵을 주고싶다는 마음이 이해가 되려고한다.


이 청소만 아니었어도...


"빨리 하세요! 후배! 원래, 후배가 할 일이잖아요!"


"선배는 가도 되잖아요?"


"주방에서 후배가 실수한건 선배의 책임이에요. 게다가, 내일 와서 청소가 제대로 안 되어있을 수도 있고요."


네이네이....조금은 고마우려나... 애매하게 부끄러움으로 가려진 친절이 새삼느껴졌다. 그리고 3시간 후, 청소를 간신히 다 마무리한 내 마음속엔 그딴 거 없어졌다. 늦었다고!


......숨이 막힌다. 추운데 더워. 내 몸을 지나 미끄러지는 바람은 차갑지만, 옷 안에서 버둥거리는 내 몸은 덥다. 땀이 멈추지않고 배어나온다.

막힐 것 같은 숨을 억지로 비집어 연다. 어깨에 자꾸 부딪혀 연신 머리를 숙여야했던 사람들도 없다. 연기처럼 희미해지던 노랫소리도 이젠 들리지않는다. 저 멀리 지평선까지 닿아있던 빛도 없다. 별이 떠도 이상할 것 같지않아.

지면을 후려치는 둔탁한 소리, 귓가에서 울리는 숨소리. 뱀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만들었나, 구불구불 이어진 계단을 따라 오른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어쩔 수 없이 지팡이 삼아 계단을 밟고 밟는다. 하지만 멈출수는 없다. 내가 늦었으니까. 잠깐 이래도 멈추려고하면 내 처지가 생각나고, 생각난 내 처지가 만들 미래에 식은땀이 배어나온다. 뛰어가는 것보다도 멈추어버리는게 더 덥다.


눈 앞에 길게 가로로 뻗은 물체가 흐려진다. 그 위에서 무언가 홀로 기다란 것을 흔들고 있음을 알았다. 마지막 계단을 나는 밟고 올라온 것이구나.


"You're late"


중간중간 툭툭- 꺾이는 듯한 악센트가 오늘따라 유난히 귀에 잘 박히는구나...


최대한 빨리 온거라고 말은 하는데, 내 귀에도 내가 하는 말이 말처럼 들리지않는다.


쇳가루로 메마른 목을 비비는 것 같은 소리가 그마저도 툭툭 끊어진다.


그렇게 나는 마지막 계단에 발을 놓았다는 영광을 안고 그 영광의 자리에서 최후를 맞이 하기 전에 그녀가 다가왔다.


한숨을 내쉬며 물병을 건내주었다.


살았다. 물을 한 숨에 들이키자 시원한 한숨이 터져나왔다. 살았다.


자...이제 상황을 정리하자, 빠르게.  나는 오랜만의 약속에 늦었다. 추하게 엎어져서 기다리던 그녀가 물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아직 내게 아무말도 안 했다. 아니 아까 말은 했는데...그건 뭐랄까.. 아직 제대로 혼낸 건 아니잖아. 응


자...그럼...답은 하나!


"죄송합니다..."


양 손은 합장! 머리를 숙이고! 눈은 최대한 사연있고 처량하게! 암튼 용서 받을 수 있게!


"뭐가요우?'


늦어서.. 죄송합니다...!


"that all?"


........어.........


잘 못 들었습니다?


"그게 전부 다에요?"


..............


식은땀이 배어나온다. 등줄기가 살벌하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I'm cold"


어...?


한 대 맞은 것처럼 방금전 말이 머릿속에서 울린다.


방금 전까지 잠긴 자물쇠처럼 단단해보였던 팔짱이 풀려있었다. 이쪽을 향해 손바닥까지 새하얗게 뻗어있다. 입술을 앞으로 내놓고 삐죽거리는 케이트, 그녀의 양 뺨에 올라온 홍조가 추위때문만은 아니리라


"My old friend"


서로의 몸이 밀착해서, 서늘하게 굳은 피부에 살짝 온기가 돌았다.


뺨에 입술을 살짝 붙였다 떼어내고서야 그녀는 조금 풀린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래서, '좋은 것'이라는 게 뭐에요?"


케이트는 기대해도 좋다고했다.


"페어 사이더..."


일본이나 한국에서 으레 일컫는 것이 아니라, 술이다.

"간만에 british 스타일입뉘다아~"


과연, 일본에서 어떻게 나와도 진짜 영국인에게는 가짜로 느껴지는 게 더 많았겠지. 오늘 찾은 건 그래도 진짜인가보다. 웃고있잖아.


그나저나 사람을 이런 늦은밤 달동네로 부른게 페어사이더라...

"Sumin도 좋아하나요? 페어 사이더. 웃고있네요우."


"아니 그런 것보다....고마워서요."


좋네. 좋은 걸 같이 나눌 사람으로 그녀의 마음에 내가 있었다는 게 내심 좋았다. 조금은 어딘가에 자랑하고싶달까.


내 말에 안심하고서 그녀는 까드득, 술병을 열었다. 술을 들이키다가 나온 표정은 상쾌함으로 찡그러진 시원한 미소였다.


사는 것 참 별거 없구나 생각했다.


뭔가 하는 말은 꿈이니 행복이니 하면서 거창한데, 이런 술 한 병에 무슨 일있었냐는 듯 웃어버릴 수 있다는게......딱잘라 뭐라 말할 수 없는데 웃어버리고 말았다.


케이트도 무슨 미소인지 알았을까. 그녀도 나를 보고 웃어버렸다.


병입구를 입술로 감싸안고 병을 기울였다. 신맛에 배 향이 나는 단맛이 섞여있다. 상큼하다라는 맛일까.


탄산과 상큼한 배즙의 맛은 나쁘지않은 조합이다. 술이라기보다는 조금, 어른에게 어울리는 주스라는 느낌이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그냥 시나브로 홀짝홀짝거리에 충분하다.


바람이 부는 것처럼 우리는 이야기했다. 예고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몰려왔다가, 언제그랬냐는 듯 뒤편으로 사라진다.


별 것도 아닌 걸, 지금 이 말하는 순간에는 어느 것보다도 미소를 띄우고서.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이젠 좀 많이 달라져버렸다. 그래서 이젠 좀 서로 듣고만 있게된다. 이전보다는 더욱. 아, 늙었다.라고 말해도 좋으려나.


오가는 이야기는 별 것없다. 무어라 자세히 집어줄 수 조차없는 실없는 이야기. 많이 다른 삶의 이야기인데도, 왠지 다 알게되는 사소한 이야기.


그래서 좋다. 말할 수 있다는 것.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서로 기대고 있다는 것. 그것이 사람을 웃게한다.


살면서 어디서는 꼭 하고싶은 말인데, 정작 들어줄 사람은 별로 없다.

생각해보면 이 별거없는 하루의 푸념을 위해 우리도 참 지독히 달려왔다. 서로 만나기 위해 아무도 찾지않을 법한 어두운 달동네를 헉헉거리며 올라왔지.


병을 기울여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술은 술인지 어째 뭔가 둥실둥실해지는 것 같아


"요즘 어때요?"


뭘 묻는지 정하지않고 물어본 말이었다.


그녀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요즘 본 일이 드물긴했지...


"기대엔 못 미치네요."


"……"


"예전엔 느끼는 것도 없었는데, 하루이틀 지날 수록, 초조해지고 욕심만 커져요우. 언제 끝나서 쫓겨날지모르니카..."


아아아--소리를 지르며 그녀가 이마에 손을 짚고 몸을 크게 틀었다.


"요즘엔 하지말걸 생각도 들어요우. Regret"


그녀가 힘을 냈으면 생각도 들지만, 이러니저러니해도 잘 모르는 내가 섣불리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래도, 가까이가는 걸 멈출 수가 없다. 쪼그라들어서 굽은 등을 향해, 파르르 떨리는 손이 다가갔다.


"もうこんな町いややー!こんな人生いややー!"


벤치를 뒤로 넘어트릴 기세로 벌떡 일어나 앞으로 내달려가더니 고래고래 소리치기시작했다. 구불구불 아래로 뻗은 계단을 따라 밑에 놓인 도시의 빛무리를 향해.


"I want my own live concert!!"


콘서트라는 말이 마지막으로 남았다. 돌을 맞아 흔들리는 호수처럼 방향을 가리지않고 울렁이며 퍼져나갔다. 이 말이 어디까지 닿을까?


그것보다도 케이트의 머리가 땅에 닿을 것 같다.


"You're drunk"


윽 소리를 조금 참을 수 없을 만큼 강하게 들어왔다. 그녀의 머리를 가슴으로 받아냈다.


제 분과 취기를 못 이기고 후악거리는 호흡이 느껴진다. 가만히 그걸 받아내고 있으려니 내 가슴팍에 닿아 스며든다. 약간의 뜨뜻한 열기와 알콜이 섞인 습기. 옷섬유 사이사이의 틈으로 스며들어나와 옷 아래 가려진 곳들이 묘하게 간질간질해지는 기분.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둘이 만나기 좋지만, 그만큼 누군가에게 도움받기도 힘들어. 지금은 그녀를 밖에 그냥 둘 수는 없다.


하지만, 이대로 여길 내려가고싶지도 않다. 여길 내려가서 서로의 길로 접어들면 언제다시 올라오게 될 지 알수없으니까. 그녀가 걱정되지만, 이대로 내려가면 걱정스러운 너를 다시 보기힘들어지겠지.


나는 내 욕심을 이기지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도로 케이트를 데려다 앉혀놓고 기울어지는 그녀의 몸을 받쳐주었다.


시간이 흘렀다.


어차피 늘상 하는 투정이었고, 대답따위 없어도 개의치않는다. 술에 달아오른 열기는 차가운 달빛에 젖어 조금 가라앉은 것 같았다. 덜 낭만적으로 말하자면 그냥 지친거겠지.


한참을 멍한 표정으로 빈 병을 흔들흔들 잡고있다가 그녀는 말했다.


"죽이는 달이네, Cool Moon"


남은 술을 조금 삼키며 나도 그말에 긍정했다. 딱히 그런 말을 한 이유는 없었을것이다. 그냥 달이 떠있으니까, 그리고 보였으니까 그랬겠지.


"달이 아름답네요"


"그거 고백?"


문학도답군.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우리는 사랑하고있었다. 이것도 우리가 늘 하는 대화 중 하나. 그냥 확인하는 거다. 서로 사랑하고있다는 걸.


"Thank you"


고마워하는 이유는 알았다. 나도 똑같이 고마워하고있었으니까.


언제 돌아갈지 딱히 정하지않고 돌아가야지 돌아가야지 진심으로 바라지않는 말만을 의미없이 주섬주섬 입에 올렸다.


하지만 역시 돌아갈 마음은 없네. 그런 소리는 싫어서 술병으로 틀어막아 삼켰다.


그리고 이번에는 콘서트를 한다면 어떻게 할지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우리는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는 신혼부부처럼 꿈에 젖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시 신이 나기시작했다.


술병을 잡고서 이야기했다. 듣고 말하고 말하고 듣고. 시간이 어떻게 흘러버리든 좋았다.


달이 떠있었다. 죽이도록 아름다운 달 아래에서 우리는 단 둘이 있었다.


2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