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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시호] 산책로, 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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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3, 2018 10:33에 작성됨.

 아이커뮤에 글을 올리는 건 처음이다 보니, 폰트 크기나 양식이 못생겨보일까 걱정이네요. 1은 시즈카 시점, 2는 시호 시점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셨음 좋겠어요!

1.


 산책로엔 특유의 고요함이 있다.

 겹쳐있는 하천에서 들려오는 강물 흐르는 소리,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꾸준히 들리지만 그래도 어쩐지 조용한 분위기가 있다.

 두 사람이면 이렇게나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다.

 처음 사무소 근처인 이 산책로에 왔을 땐 기분을 전환하는 의미로 이 곳을 걸은 적 있다. 별 감흥 없이 금세 빠져나왔지만, 하지만 이렇게 둘이서 걷자니, 왠지 좋다.

 다들 이러고 있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가끔식 긴 머리카락을 타고 시호의 항기가 어렴풋이 전해지는 이 거리감이 좋았다.

 [ 누군가와 사귄다는 것 ]

 나에게는 그 경험이 없다. 어떻게 하는건지 짐작도 하기 어렵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시호의 뒷모습을 보고있었더니 내 시선을 깨닫고, 시호가 평소와 같은 표정을 하고 나를 돌아보았다.

 시즈카 「아니,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시호 「뭐가?」
 시즈카 「시호랑 이렇게 있는거.」
 시호 「스케쥴 중에라도 종종 있잖아?」
 시즈카 「둘만 있을 때. 지금 같은 상황을 말하는거야.」
 시호 「...흐응.」

 시호는 늘 짓던 그 표정 그대로 꽃잎이 반쯤 남은 벚나무를 바라보았다.

 옆에서 바람이 한 번 세게 불어왔다. 수면에 반사되는 검정색 그림자가 살짝 흐려졌다. 져가던 노을의 붉은 빛이 사라지고 청색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시즈카 「시호, 조금 춥지 않아?」
 시호 「괜찮은데. 추워?」
 시즈카 「으응, 조금은.」

 그리곤 갑자기 가느다랍고, 매끄러우면서 의외로 따뜻한 손이 겹쳐졌다. 내 심장이 크게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좋은 분위기, 라고 생각했다. 연인같은 일을 해서가 아니라, 시호와 서로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손의 감촉이 알려주는 것 만 같은 이 감각이 행복했다.

 시호 「시즈카.」

 밤공기에 녹아드는 목소리. 손을 다시 잡는 시호의 손. 어째서일까, 곧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시즈카 「...왜?」

 가을바람의 차가운 공기마저 잊고, 백색소음이 들리지 않게 되었다. 시호의 존재를 느끼며, 늘 보았지만 어딘가 낯선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심장박동이 들릴 것만 같은 고요함 속에서 낯선 분위기가 갖게하는 기대에 신기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시호는 내 대답에 바로 돌아보지 않았다. 스테이지에 올라가기 전처럼, 무언가를 각오한 듯 한숨을 내쉰 뒤

  나를 바라보았다.

 고요하면서 가까운 둘의 거리 속에서 시호의 눈이 지금을 담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순간을 심취하며, 보이는 세계를 잊지 않도록 기억하려는 듯한, 그런 복잡한 눈빛이었다.

 시호 「좋아해.」

 눈이 조금 촉촉해졌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곤, 엉망이 된 축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즈카 「......응.」

시호는 내 눈을 손끝으로 닦은 후에, 피식 웃어주었다.

 시즈카 「... 응...!」

 산책로엔 특이한 고요함이 있다.
 
 겹쳐있는 산조에서 들려오는 강물 흐르는 소리,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꾸준히 들리지만 그래도 어쩐지 조용한 분위기가 있다.

 두 사람이면 이렇게나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다.




 2.

 초여름, 어설프게 내려앉은 더위와 오락가락 가랑비가 뒤섞인 저녁의 골목은 행인들의 움직임을 더디게 만들었다.

 커플이 연휴에 필요한 것은 화창한 날씨와 좋은 휴식처임이 틀림 없다. 시즈카 역시 으레 옥빛 푸른 바다를 마주한 베란다에서 시원하면서 짠 바닷냄새를 곁들여 샴페인 한 잔과 달콤한 열대과일을 즐기는 자신을 상상하곤 했다. 

 황홀하며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분위기 속 단 둘이 바라보는 저녁바다. 시즈카는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콧노래를 흘렸었다.

 "저기, 시호. 분명 로맨스할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때?"

 여행사와 코스까지 알아봐온 시즈카의 설득을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받아줬지만, 열대의 바다 어딘가에서 발생했다는 소형 태풍 소식은 남은 일정에 대한 기대감을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아무튼 내가 이 더운 날씨에 나온 이유는 하나였다.
 평소라면 날 따라오는게 귀찮지도 않다는 듯이 일과삼듯 했던, 밝기만 했던 시즈카의 마지막 표정은 아쉬움에 오래 웃기 유지하기 힘들 정도의 쓴웃음이였다.

 날아가버린 기대감은 허무함으로 변했다. 시즈카 쪽이 좀 더 아쉬웠을 테지만, 나라고 마냥 아쉽지 않은건 아니였다.

 연인, 가족, 직장인 등으로 시내는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상의의 목 부분을 앞뒤로 흔들어가며 나는 겨우 시내에서 빠져나왔다. 시내를 빠져나오는 것 만으로도 시간이 지나버렸다. 이미 해는 거의 다 지고 없었다.

 시호 「...서두르지 않으면.」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즈카는 차갑고 어두운 침실의 낮은 창턱에 앉아 꼼짝도 않고 바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등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어깨와 뚜렷한 눈에 띄는 가냘픈 머리는 평소와는 사뭇 다른 진지한 분위기였다. 내가 다가와 창가에 멈추어 섰는데도 시즈카는 전혀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시즈카 「...아, 시호.」

 시즈카는 고개를 겨우 돌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나를 향해 웃어보였다. 늘 지어보이던 웃음. 그 웃음에 이질감을 느낀 나는 왠지 모를 초조함을 느꼈다.

 시호 「여행의 일, 아쉽게 됬네.」
 시즈카 「그러게. 모처럼 시호도 허락해 줬는데.」
 시호 「신경쓰지마. 여행은 언제든 갈 수 있으니까. 그리고...」
 시즈카 「그리고?」
 시호 「부족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거.」

 나는 품 안에서 샴페인과 열대과일이 들어있는 과일 꾸러미를 보여주었다. 시즈카가 말했던 것이였다. 분명 샴페인을 마시며 저녁바다를 본다면, 낭만적일거라고.

 내가 준비해온 것들을 건내주며 서있자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런 감정에 젖어 있을 여유는 없었다.

 시즈카는 살짝 당황한 듯 보였다가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끝내 웃음을 보였다.

 베란다에서 우리는 시원한 바람을 곁들여 샴페인을 마셨다. 열대과일의 노란빛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시즈카 「저기, 시호. 저녁바다는 준비 못한거야?」
 시호 「저녁바다? 그건...」
 시즈카 「후후. 시호랑 있는게 좋은건걸. 저녁바다도 야경도, 시호가 없으면 상상만 해도 보이는거니까.
 시호 「그럼, 내년에도 야경을 보면 되겠네.」
 시즈카 「윽. 정말...」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에 구름마저 밀리는지, 구름 속에 갇혀있던 달이 그 모습을 들추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잔 안의 샴페인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도시불빛을 반사하며 빛을 냈다.

 시즈카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아마 이 순간이 오랜만에 상대방의 얼굴을 진지하게 바라본 순간 같았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부드럽게 솟아있는 콧날, 얇고 보기 좋은 모양의 입술과 턱선, 뺨까지 예쁜 선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시즈카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시즈카는 내 손 쪽으로 고개를 기웃해, 손에 자신의 머리카락이 가득 들어가게 했다. 장난스럽게 시즈카의 귓볼을 간지럽히자 시즈카는 아이같은 웃음소리를 내며 키득였다. 시즈카의 밝은 얼굴이 가까이서 보인다. 시즈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기에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머리카락이 내 손바닥에 흘렀다.

 시즈카 「시호...」

 시즈카가 좀 더 가까이 내게로 다가왔다. 어느세부턴가 시즈카가 몸으로 내리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은은한 향내를 풍기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그녀의 이마를 스쳤다. 넓게 퍼진  눈꺼풀과 까만 속눈썹으로 덮인 그녀의 눈은 살며시 감긴 채 바로 내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수줍은 듯이 내민 시즈카의 입술이 내 입에 닿았을 때, 강렬한 전율이 내 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시즈카는 내 입술을 놓아주지 않았다. 무언가에 빠져드는 듯한 낯선 느낌이 들었다. 입술이 떨어지기도 전에 전율에 휩싸인 내 몸은 어떻게든 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경련을 일으키는 듯한 손가락으로 침대시트를 꼬옥 붙들었다.




 시즈카 「샴페인, 다 마셨을까?」
 시호 「아직. 부족해?」
 시즈카 「으응. 천천히 마실까 해서.」

 도시의 야경은 꺼지지 않았다. 와인잔에 아주 약간 담긴 샴페인이 도시의 황금빛 불빛을 가득 담으며 잔 안에서 빛을 냈다.

 도시는 의외로 오래 빛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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