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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 「고맙다는 말을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어」 -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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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1, 2018 22:57에 작성됨.


"치하야 쨩, 생일 축하해!"


이 애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처음 그 말을 들은 순간에 들었던 생각이었다.


"에헤헷, 서프라이즈 대성공일까나? 자, 여기 케이크. 생일이라면 역시 케이크이지요! 음, 치하야 쨩이 뭘 좋아하는 건지는 몰라서 일단 무난하다 싶은 걸 만들어왔긴 한데....."


그저 멍하니 서 있는 사이 하루카는 즐겁게 재잘거리며 탁자에 놓여있었던 작은 종이상자를 들어보였다.


"짠! 이래보아도 나름 실력 발휘한 물건이라구?"


희미하게 풍겨오는, 부드럽고 달콤한 냄새. 아까 언급했던 케이크가 그 안에 들어있다는 걸까. 직접 만들어왔다니, 과자를 몇 번 구워오는 건 봤어도 케이크까지 만들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대단하구나. 그런데 케이크는 왜? 뭔가 좋은 일이 있다는 걸까? 축하하고 싶은 것이라도?


.....맞아. 그러고보니 좀 전에, 생일을 축하한다고 했었지.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해. 생일.....누구의? 아, 나의.....삐걱거리는 머리로 그 말을 몇 번이고 반복재생한 끝에, 겨우 하루카가 처음 한 말이 의미하는 바를 알았다. 그렇네. 그러고보니 오늘, 내 생일이었구나.


- 저기, 괜찮다면 사무소로 와주지 않을래? 할 이야기가 좀 있거든. 잠깐만이라도 좋아!


갑자기 그런 메일을 보내서 왜 그런가 싶었는데. 그 때문이었구나. 응. 그런데. 그게 어떻다는 걸까. 생일. 내가 태어난 날. 기념해야할 날. 다들 그렇게 하는 날. 머리로는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감정은 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두 눈을 하루카에게 향했다.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활짝 웃고 있는 하루카는, 마치 자기가 생일을 맞이한 것처럼 보였다.


"치하야 쨩?"


하루카가 고개를 살짝 갸웃하더니 다시 나를 부른다. 녹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둥그런 두 눈에는 의아함이 조금씩 깃들기 시작하는 듯 했다. 하긴 그렇겠지. 기껏 시간과 정성을 들여 축하를 해주는데도, 그 당사자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듯 보일테니.


"아하핫, 미안. 많이 놀랐어?"

"그런 건 아니지만....."

"그, 그래."


가장 가까운 사람들한테조차 듣기 어렵게 된 축하 한 마디. 너무도 오랜만에 접하는 호의. 응당 기뻐해야할 일일텐데. 어째서일까. 하나도 기쁘지 않고, 너무나도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차게 식어버린 대꾸만을 내뱉고 만다. 그렇게 해서 하루카가 내보이는 순수한 마음을, 단번에 헤집어버리고 만다.


"에.....저, 저기, 치하야 쨩! 설마 오늘말고 내일이 생일이었다, 같은 건 아니지? 아, 아니면 어제가 생일이었습니다! 이거나 해서....."

"오늘, 25일이지?"

"으, 응. 그런데?"

"그러면 맞아."

"그렇구나.....다행이네! 딱 맞출 수 있게 되어서!"


쾌활한 목소리였지만, 무리해서 밝은 척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일단 매일 같이 얼굴을 보는 사이니까. 서로 통성명을 한 지 몇 개월정도밖에 안되었고, 어디까지나 그 쪽에서 일방적으로 내게 다가오려고 하는 것이긴 해도. 하루카라는 애 자체가 무슨 일이 있으면 금방 얼굴에 드러나는 타입이라는 것도 한 몫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있지, 실은 다른 사람들도 불러서 같이 축하해줄까 했어. 그치만 치하야 쨩이 아직 좀 어려워하는 것 같아서."

"다들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괜찮아괜찮아. 조금씩 천천히 친해지면 되는 거니까."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응. 그럴 수 있을 거야. 하여튼 그래서, 다 같이 파티를 열기로 했다가 생각을 바꿨어. 그냥 나 혼자서 치하야 쨩의 생일을 축하해주기로."


그렇지만 이건 이것대로, 좀 쓸쓸한 것 같기도. 하루카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작게 웃었다. 그렇게 해서 속상한 마음을 적당히 넘기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축 처지고 마는 어깨를 감출 수는 없었다. 어쩌지. 기쁘지 않은 걸 기쁘다고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하다못해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해야했다. 그 누구도 축하해주지 않았던, 나 자신도 잊어버리다시피했던 생일을 하루카는 단 혼자서라도 축하해주려고 하는 거잖아.


그런데 왜. 할 수 없는 걸까. 하려고 해도 나오지 않아. 그 부분만 고장나버리고 만 것처럼. 말, 해야하는데.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도 초대하거나 하고, 케이크도 좀 더 근사한 걸로 만들어올테니까. 그러니까 그 때는....."

"됐어."

"앗, 으, 으응."


대신 퉁명스러운 대답만이 술술 나와버린다. 정말.....괜찮아라고 말해도 되는 거잖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아직 좀 불편하긴 해도 그렇게까지 차갑게 답할 필요는 없었다고. 하루카는 날 생각해서 그러는 거잖아. 그런데 난, 그런 호의를, 신경써주는 마음을, 잘 대해주려고 하는 노력을, 끝까지 내쳐버리기만 해.


"그렇구나.....미안해. 괜한 말을 꺼냈나봐."

"하, 하루카....."


아니야. 나야말로 미안해. 방금 그 말은 잘못한 거야. 기뻐해야할텐데, 그러지 못해서....그렇다고 싫다는 건 전혀 아니야. 그, 뭐라고 해야하지. 얼떨떨하다고 해야할까. 설마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 그러니까.....


나는 뒤늦게라도 변명을 입에 담아보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금까지 쳐내버린 하루카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답을 해줄 수 있기를 바랐다.


"있지. 괜찮다면 이거라도 받아줄래? 아, 그, 싫다면 받지 않아도 괜찮긴 한데....."


그렇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눈 앞에 보이는 하루카의 슬픈 미소가, 변명 같은 걸 늘어놓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하루카가 조심스럽게 내미는 케이크 상자를 거절하지 않는 정도가,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고마워."


그러자 하루카가 내가 해야할 말을 자기 쪽에서 해버린다. 전혀 고마워해야할 일이 아닐텐데, 어째서. 네가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순간 따지려는 마음에 살짝 입을 벌려보지만, 소리까지는 낼 수 없었다. 여기서 그런 말을 해버렸다간 하루카가 벽처럼 두르고 있는 억지 웃음마저 깨트려버릴 것 같았다. 그것마저도 없어진다면, 남는 건 상처뿐이지 않을까.


이미 한가득 상처를 안겨준 주제에. 그리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스워졌지만, 그래도 그것만큼은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살짝 벌렸던 입을 도로 닫아버렸다. 그러고는 출입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앗, 그, 가는.....거야?"

"응."

"그, 그럼.....내일 봐, 치하야 쨩."


어깨너머로 평소보다 조금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나치게 형식적으로 그에 긍정을 하자, 하루카는 끝까지 배웅해주었다. 기껏 준비했을 모든 것이 차갑게 무시당하고 있는데도. 너는 어떻게 그리 상냥할 수 있는 거야? 그대로 낡은 문손잡이를 붙잡아 돌리려는 손이 멈췄다. 지금이라도 좋으니 말해야할까.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만약 그렇게 한다면 어쩌면 지금 이 모든 상황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조용하고, 낡고, 어수선한 사무소에서이지만. 하는 것이라고는 작은 케이크 하나를 나눠먹으며, 아무래도 좋을 법한 사소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정도겠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다고 평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하루카랑 같이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잠깐 동안 떠오른 너무나도 낙관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나는 그 자리에 가만 멈춰서 뒤를 돌아보려고 했다. 그 순간.


하지만 그런 건, 하루카가 가진 상냥함에 기대는 게 아닐까.


곧바로 그런 생각이 바로 그 자리를 대신 꿰어차, 다시 한 번 망설이고 만다. 그렇지. 하루카는 착해. 그러니까 내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웃으며 받아줄 거야. 방금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건 그것대로 하루카를 괴롭게 만들테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등줄기에 싸늘함이 달렸다.


이미 늦었잖아. 이제와서 자기 좋을 때만 하루카를 찾는 거야? 네 변덕에 하루카가 맞춰주기를 바라는 거야? 그런 거,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마음 한 쪽에서 또 다른 자신이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주륵, 하고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의 감각이 기분 나쁠 정도로 선명해 저도 모르게 미간이 좁혀진다.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들뜨는 머리가 제멋대로 사고를 개시한다. 이쪽이 등 돌리고 있는 탓에, 보이지 않는 하루카의 얼굴에 대해서. 내 뒷모습을 가만 지켜보고 있을 하루카의 심정에 대해서.


내가 보고 있지 않은 하루카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보이지 않는 지금이라면, 분명.....그 이상 생각하는 게 두려워진 나는 손잡이를 힘주어 돌렸다. 끼릭,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사무소 안의 공기는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신 땀으로 젖어가는 등을 떠민다. 그렇게 느껴진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신체는 그런 사고의 지배를 받아버린다.


덜컥! 쾅!


문을 거칠게 열고, 나가고, 다시 거슬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닫아버린다. 그러고는 고장난 지 한참 된 엘레베이터를 외면하고는 무작정 계단 아래를 뛰어내려간다. 얼마 안 가 맞닥트리게 된 유리로 된 출입문, 어깨를 앞세워 밀어버린다. 그렇게 해서 건물에서 나와, 늦은 오후의 거리를 맞이한다. 2월의 끝자락이라고는 해도, 아직 쌀쌀한 바람. 무기력하게 내리쬐는 햇살. 저마다 오고가는 사람들.


그리고, 나 혼자.


"하아, 하아, 하아....."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잔뜩 거칠어진 숨을 정돈하며, 나는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사무소를 한 번 슥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시선을 거절할 수 없어서 받아버린 작은 케이크 상자로 옮겼다. 작은데도, 이렇게나 무거워. 그렇지만 버릴 수는 없어. 가져가야만 해. 나는 마지막으로 지면에 시선을 내리고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고맙다는 말은 끝까지 하지 못했다.


.....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집. 수라장 같았던 그 곳을 벗어나, 겨우 갖게 된 나만의 장소. 그 앞에 선 나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동작으로 잠가놓은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와 다시 문을 닫는다. 불없이 껌껌한 안. 나는 복도 앞에 짐을 잠깐 내려놓고 신발을 벗으면서 벽을 더듬으며 스위치를 켰다.


그러자 보이는 건, 짐을 풀지도 않은 박스가 가득한 복도.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뭐라고 한 마디씩 할 수준이겠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내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전부 꺼내놓았던 것이다. 괜히 짐을 더 풀었다간 복잡해질 뿐인 걸. 나는 들고온 짐을 다시 챙기고는 먼지가 아직도 남아있는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갔다. 청소, 역시 한 번 더 하는 게 좋을까. 그런 아무래도 좋을 생각을 하면서 들고 왔던 것을 적당히 탁자에 둔다. 그 다음으로는 외투를 벗고는 옷장을 열어 옷걸이에 대충 걸어놓는다. 먼지를 좀 털고 걸었어야 했는데. 그런 후회가 잠깐 들었지만, 곧 상관없다는 마음이 들어버린다. 사소한 일이니까. 그러니까 그냥 바닥에 앉아버린다. 그렇게 해서 바닥이, 아니 아예 거실 전체가 차갑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고보니까 히터를 외출 모드로 두고 있었지. 뒤늦게 떠오르는 정보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곧 그만두었다. 그렇게 추운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가만 있다보면 익숙해질 법한, 그런 차가움. 그러니까 가만히 있는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그건 바로.....싸늘한 거실을 정처없이 헤메고 있던 시선이 탁자 위에 놓여진 상자에 멈췄다.


그래, 저거.


중요하지만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또 너무 중요하게 느껴졌다. 고작 케이크 따위가? 그렇게 반문하는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케이크라는 물건 자체가 아닌, 그 물건을 준 이 때문에 중요하다는 대답으로 받아쳤다. 그래, 하루카가 날 위해 만들어준 거잖아.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나는 벌써 행동을 개시하고 있었다. 상자를 열어서 내용물을 꺼내본다는 행동을.


"....."


확, 하고 퍼져오는 달콤한 냄새와 함께, 하얀 생크림 케이크가 시야를 한가득 채웠다. 모양은, 아마 반구형이었지 않았을까. 지금은 여기저기 찌그러져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다는 건 아니겠고, 역시 가져오면서 이렇게 되고 만 거겠지. 그저 들고 오는 것에만 급급했었으니까. 잘 생각해보니 오는 길에 몇 번 부딪치거나 한 것 같기도 하고. 설사 처음부터 그랬다고 해도, 불만은 없었다. 가져서도 안되었다.


나는 완전히 케이크를 완전히 상자에서 꺼내서 탁자에 올렸다. 손바닥보다는 약간 큰 사이즈. 둘이 먹기에는 적당, 혼자 먹기에는 조금 과한 정도일까. 특히, 나같이 단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 사람에게는 한 조각 잘라서 먹는 것조차 힘들어보였다.


잠깐 시계로 시선을 돌려보니, 오후라고 하기에는 좀 늦고 저녁이라고 하기에는 살짝 이른 애매한 시간대. 그러면 이것은 조금 이른 저녁으로 생각하면 되는 걸까. 멋대로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찬장을 열어, 쓸 일은 없겠지만 구색이라도 맞춰두자고 단정지어버린 접시를 한 장 꺼내, 먼지를 닦아냈다. 작은 포크도 꺼내 같은 과정을 반복한 다음, 다시 자리로 돌아와 탁자에 놓았다. 그러고는 상자에 동봉되어있던 작은 플라스틱 칼을 꺼내 포장을 뜯고, 그 삐죽삐죽한 날을 케이크에 대어 대강 잘라냈다.


슥슥하고 잘리는 감촉이, 묘하게 기분이 좋다. 나는 잘려진 조각들 중 가장 작은 조각을 대강 접시에 옮겼다. 서투르게 옮긴 탓일까, 케이크 조각은 똑바로 놓이질 못하고 옆으로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다시 세우는 게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포크를 들어 가장자리를 작게 잘라낸다. 그러고는 끝으로 잘라낸 것을 찍어, 한 입, 먹어본다.


".....달아."


케이크에는 설탕이 들어간다. 설탕은 달다. 그러니까, 달 수밖에 없다. 당연하기 짝이없는, 굳이 입밖으로 낼 필요 없는 감상을 굳이 흘려본다. 그러고는 또 한 번 조각을 내서, 끝으로 조각을 찍고, 또 한 번 먹어본다. 달다. 그렇지만 그것은 끈적끈적한 등의 불쾌한 단맛이 아니었다. 표현해보자면, 부드럽고, 따뜻하고, 산뜻한 단맛. 부족하거나 과한 일 없이 절묘하고, 물리는 없이, 입 안에서 사라지는 게 도리어 아쉬워질 정도로.


그 애답다면, 그 애답다고, 생각해버리는 그런 맛이었다.


"....."


케이크는 맛있었다. 맛있는 만큼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애한테 미안해졌다. 그래서, 나는 한 조각을 접시에 더 옮겼다. 너무 급하게 옮겨버린 탓에, 이번에는 아예 철벅하고 떨어지고 만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묵묵하게 케이크 조각을 접시에 옮기고, 먹어치워나가는 것을 반복했다. 식사 같은 건 내게 있어 그저 연료 보급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영양밸런스를 생각해야한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케이크가 앞으로의 활동에 쓸데없는 열량만을 제공한다는 것과, 덤으로 소화 활동에 있어서도 상당한 지장을 준다는 것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덜그럭.


결국 케이크 전부를 먹어버린 나는, 포크를 접시에 툭 내려놓았다. 작다고는 해도 케이크였기는 한 만큼 속이 다소 거북해졌다.


그런다고 해서 하루카의 기분이 풀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야. 네가 하고 있는 건, 아무 쓸데없는 짓.


알아. 알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어. 나 자신을 꾸짖는 또 다른 나에게 그리 대꾸해버리고는 조금 뜨뜻미지근해진 두 눈을 감았다. 하지만 마음 속의 더부룩함은, 여전했다.


그래봤자 늦었어. 하루카는 많이 속상할 거야. 아마 날 싫어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지. 아니지. 어쩌면 진작부터 그랬을지도. 하루카는 착하니까, 상냥하니까. 곤란한 사람을 두고 볼 수 없다고, 자주 말하니까.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나를 도와준다는 심정으로, 잘 대해줬던 걸 거야.


그리고 그건, 오늘로 끝.


또 다른 내가, 노래하듯이 잔혹한 진실을 고한다. 그리고 거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내가 있다. 당장 내일 마주하게 될 하루카의 표정만이라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겠지. 웃어주더라도 그건 언제나 보이는 태양 같은 미소가 아닐 거야. 어디까지나 예의를 차리는 정도의. 이제는 나와 거리를 벌리려는, 그런 느낌으로 변해있을 거야.


잔혹한 진실에 상상이 덧붙여진다. 그 상상은 무척이나 설득력 있어보였다. 아니, 그것은 상상이라기보다는 추론에 가까웠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그러겠거니 짐작이 되는 식이라고 해야할까. 상당히 높은 확률로 이루어질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면 할 수록, 점점 더 그럴 확률이 올라간다.


98, 99, 100.


말릴 사이도 없이 추론은 금방 확신이 되고 말았다. 나는 완전히 젖어버린 두 눈을 떴다. 불을 켜서 환할 방이 조금, 흐릿하게 보였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다시 혼자가 되겠구나."


머리 속에서 도출된 결론을 입에 담아본다. 그러고보니 어딘가에서 들은 적 있었는데. 말을 해버리면, 그게 현실이 될 수도 있다던가. 언령, 이라고 했었지. 그러면 방금 그건 해서는 안되는 말이었을까. 아니, 이건 어떻게 생각하면 반대이지 않을까. 말을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이루어지는 걸 말해버리는 거니까. 그러면 이건 해도 되는 말이지 않을까. 미리 해두어야, 익숙해질테니까. 다시 혼자가 되는 것에.


"혼자로 돌아가는 거구나."


괜찮아.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니까. 익숙하잖아. 혼자 있는 거. 봐, 지금도 혼자 있잖아. 혼자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잖아. 그렇지?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렇게 되어야 해. 그러지 않으면 안 돼. 나는 씹어 뱉듯이 중얼거리고는 답답하고, 욱신거려오는 가슴에 손을 대었다. 눈에 고여있는 물을 억지로 훔쳤다. 차라리 울어버리는 게 마음 편한 일이겠지만, 그런 데에 휩쓸려서는 안되었다.


하루카는 내게 있어, 은인과도 같은 사람. 가능하면 계속, 같이 있고 싶었던 사람.


하지만 하루카가 나를 멀리하기로 한 이상, 억지로 붙잡아서는 안되었다. 포기해야만 해.


이미 늦은 일. 돌이킬 수 없는 일. 그에 후회는 하더라도 끝까지 집착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아가는 것을 멈춰서는 안되니까.


비록, 단 혼자서라도 해도.


그렇게 다짐하고나니, 소란스러웠던 마음에 어느 정도 평온이 돌아왔다. 그렇다고 답답함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것은 억지로 밀어넣었던 케이크 탓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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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다가오는 치하야쨩 생일 기념으로 조금씩 써볼까- 해서 끄적적 중입니다. 예상 편 수는 상, 하 두 편 정도? 분량 조절 실패하면 중이 중간에 추가될 수도 있겠네요. 과연 이 글을 생일 때까지 완성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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