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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리티P 시리즈] 시마무라 우즈키 - Like a Fastball (下-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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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08, 2018 02:28에 작성됨.

시마무라 우즈키 (中-2) 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안녕하세요.”


평소와 같은 아침. 평소처럼 인사를 건네고, 평소처럼 사무실로 들어가는 저를 기다리는 것은, 평소와는 다른 사건이었습니다.


“아, 쭉정이? 잘 왔다. 이리 와봐.”


사무실로 들어오는 저를 손짓으로 불러낸 K씨는, 제가 다가가자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서류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이거 가져가.”

“저기……이건 뭔가요?”

“보면 몰라? 계약 해지 서류다.”


”너 모가지라고.” 해주지 않아도 될 보충설명까지 해 주시는 K씨의 말에 저는 눈앞에 캄캄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서류봉투를 받아 든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저……그러면, 저는 어떻게 해야 되죠……?”

“몰라. 알 게 뭐야. 계약 파기했으니까, 이제 너한테는 볼 일 없어. 썩 나가. 훠이.”


더 이상 이야기할 가치도 없다는 듯, K씨는 제게 저리 가라는 손짓을 하고는 서류로 시선을 되돌렸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나가던 그 때, 저는 막 사무실로 들어오던 M씨와 마주쳤습니다. 저를 향해 인사를 건네려던 M씨는 제 손에 들려 있는, K프로덕션의 로고가 찍힌 서류봉투를 보더니 저를 사무실 옆에 딸린 응접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곳에서 M씨는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선배한테 이야기 들은 모양이네요.”

“네……오늘부터 안 나와도 된다고……저, 정말로 이대로 끝인가요? 뭔가 다른 방법은 없나요? 제가 어떻게…….”


제 이야기를 들은 M씨는 무척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미안해요. 저도 막아보려고 했습니다만, 사장님이나 선배님의 의지가 너무 확고해서…….”


“대신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이걸 드릴게요. 집에 가시거든 꼭 한번 자세히 살펴보세요.”라고 말씀하시며, M씨는 품 속에서 꺼낸 것을 저에게 내밀었습니다. 그것은 CG프로덕션의 로고가 그려져 있는 명함이었습니다.


“당신께 도움이 될 겁니다. 힘들고 슬픈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주저앉지는 마세요. 아직 당신의 이야기는 결코 끝난 게 아니니까요. 아시겠죠?”


무척 급한 일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M씨는 제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라는 인사를 남기고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응접실에 혼자 남아 있던 저는 조용히 응접실을 나갔습니다.



사무소를 나온 저는 서류가 들어 있는 봉투를 들고, 집 근처에 위치한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집으로 바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모님께서는 막연하게 아이돌이 되고 싶어하시던 저를 믿어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합격 통지를 받았던 날, 처음으로 레슨을 받았던 날, 그리고 데뷔가 정해졌던 날……그 때마다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셨던 부모님 앞에서 ‘오늘부터 아이돌 안 해도 된대요’라는 말을 할 용기가 좀처럼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공원에 멍하니 앉아 있던 저는 해질녘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부모님께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까, 고민하면서 저는 방 안의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들고 온 봉투를 옆에 내려놓은 그 순간, 봉투의 입구에서 빠져 나온 무언가가 팔락, 하고 방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주워 보니, 그것은 M씨에게 받았던 명함이었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이게 있었지.”


CG프로덕션의 로고가 그려진 명함을 바라보던 저는 별 생각 없이 그것을 뒤로 뒤집었습니다. 그러자 뒤늦게 명함의 뒷면에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을 본 순간 저는 제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습니다.


여전히 미련이 남아있다면, 그 곳에서.


저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굴러떨어지듯 계단을 뛰어 내려갔습니다.


“엄마!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등 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저는 대답을 듣지 않고 현관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생각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 곳이 어디인지, 그 곳으로 어떻게 갈 수 있는지는, 다른 누구보다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요.

집을 나섰을 때는 이미 하늘이 어둑해지고 있었습니다. 명함을 손에 쥐고 정신 없이 내달리면서, 저는 제가 처음으로 아이돌이 될 수 있었던 오디션 당일을 떠올렸습니다.




*****




“다음은 참가번호 14번……시마무라 우즈키 양?”

“네! 시마무라 우즈키입니다!”

“흐음, 연습생 경력이 꽤 되는군요. 오디션 탈락 경험도 꽤 있고……좋아요. 하나만 물어봅시다.”


제 서류를 살펴보던 심사위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은 왜 아이돌이 되고 싶습니까? 이력서에는 뚜렷한 특징도 없고, 그렇다 할 특기도 없어 보이는데요.”

“예전부터 쭉 동경하고 있었어요. 아이돌이라는 걸.”

“동기는 그것 뿐인가요?”

“네!”


제 대답에 심사위원 분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목소리를 낮추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다지 좋은 표정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몇 번이나 겪었던 일이고, 몇 번이나 봐 온 풍경이었기에, 저는 마음 속으로 슬며시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아, 정말로 끝났구나……’하고요.

그제서야 뒤늦게 코끝이 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디션 도중이었기에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지만, 할 수만 있다면 저는 당장이라도 회장을 뛰쳐나가고만 싶었습니다.


“잠깐, 저도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그 때, 심사위원석의 가장 끝자리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수군거리던 심사위원 분들은 그 분의 목소리에 언제 그랬냐는 듯 허리를 곧게 펴고, 손을 든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감색 정장을 입고, 얼굴에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그 분의 가슴에는 ‘CG프로덕션’이라는 명찰이 걸려 있었습니다. CG프로덕션이라면, 저도 들어 본 기억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유명 연예인들이 소속되어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회사라고요.


“꼭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그저 좋아서, 하고 싶어서 할 수도 있죠. 단순히 좋아하기만 하는 것과, 좋아하기에 되고 싶은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후자 쪽에 좀 더 가치를 주고 싶네요. 중요한 건 ‘왜’가 아닙니다. ‘어떻게’죠.”


심사위원들을 돌아보며 그렇게 말한 그 사람은,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니 참가번호 14번, 당신께 제가 질문하겠습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저를 바라보는 그 분의 목소리는 어쩐지 몹시 낯이 익었습니다.


“아이돌을 동경하고 있었기에 지원했다고 하셨죠?”

“네, 네!”

“좋아요. 그러면, 만약 당신이 아이돌이 된다면, ‘어떤 아이돌’이 되고 싶나요?”


‘어떤 아이돌이 되고 싶은가?’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눈 앞의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늘 입고 다니던 트레이닝복과 뿔테 안경 대신 정장과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눈 앞의 저 사람은 제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도록 제게 용기를 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선글라스 너머로 저를 향해 빙그레 웃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가슴을 펴고, 제가 가슴 속에 담고 있던 대답을 꺼냈습니다.




******




몇 분을 내달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산책로의 입구 근처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있었습니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이미 늦은 것은 알고 있지만, 더 이상 늦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오디션에서 저를 선택해 준 것은 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했던 말,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꼭 보여주세요. 당신이 되고 싶었던 아이돌의 모습을.”


그는 제게 이 말을 남기고 조용히 오디션 회장을 빠져나갔습니다.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저는 그 사람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K프로덕션에서 새로이 만난 친구들과 함께, 고된 레슨과 훈련을 거쳐 마침내 저는 꿈에도 그리던 아이돌로써 데뷔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돌의 세상은, 제가 막연하게 동경하던 것처럼 밝고 깨끗한 곳만은 아니었습니다. 철저하게 결과만이 인정받는 세상이었고, 약육강식의 정글이었고, 권모술수가 판치는 전쟁터였습니다.

저는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M씨도, K씨도, 저와 함께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그 사람을 다시 만났습니다. 저를 이 길로 인도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아이돌이 되어 다시 만난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트라이어드 프리무스라고 하는 무척이나 멋진 세 명의 여자아이들과 타카가키 카에데라고 하는, 굉장히 우아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굉장히 부러웠습니다. 저런 근사한 프로듀서님과 함께한다면, 어디까지라도 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제가 K프로덕션에서 쫓겨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




그 장소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호흡도, 체력도 이미 한계였습니다. 하지만 호흡을 고를 생각도 하지 않고, 저는 계속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저 멀리,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늘 향하던 추억의 그 장소에서, 띄엄띄엄 서 있는 가로등의 불빛을 받으며, 비록 도시의 불빛에 가려져 많은 별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반짝이는 별이 펼쳐진 하늘을 등지고 ‘그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나란히 함께 앉아 강 너머를 바라보며 푸념을 털어놓곤 했던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은 마치 제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래도 메시지가 전해졌던 모양이네요. 자기가 되고 싶었던 모습이 되었나요? 아니면 아직 미련이 남아 있습니까?”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해보고 싶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그 누구보다도 나를 진지하게 봐 주는 사람과 함께. 그런 미련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제게 다가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제 얼굴을 손으로 쓱 닦아냈습니다. 여전히 가쁜 숨을 몰아쉬는 저를 향해 빙그레 웃으면서, 그 사람은 제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이돌, 다시 한번 해 볼래요?”


그 사람은 저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때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반드시 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것이, 저를 기억해준 그 사람을 위한 보답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시마무라 우즈키 <Like a Fastball> (下)





퇴근 시간을 조금 넘긴 시각이었지만 CG프로덕션의 별관에 위치한 상무의 집무실에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그 곳에서, 우즈키와 린에게 폭언을 퍼붓던 K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온 프로듀서는 상무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고 있었다.


“……하여,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프로듀서의 이야기가 끝나자 상무는 팔짱을 끼며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런가. 시마무라 우즈키의 이상행동은 그 남자가 원인이었다는 말이지.”

“네. 저는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라고만 생각했습니다만……완전히 제 오산이었어요.”

“……그래서 ‘이야기’를 나눴고?”

“네.”

“하아…….”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바라보던 상무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업무 시간 중의 그녀에게서는 참으로 보기 드문,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에서는 신선함마저 느껴졌다.


“프로듀서, 네가 지금 어떤 신분인지는 알고 있나?”

“외국인이지요. 취업비자로 들어온.”

“잘 알고 있군. 그러면 취업비자에 가장 치명적인 건 뭐라고 생각하나?”

“범죄 기록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럼 네가 한 건?”

“…….”


프로듀서는 대답 대신 신음처럼 들리는 짤막한 소리를 흘렸다. 못 말리겠군, 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상무는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너답지 않게 경솔했군. 하필이면 지금처럼 중요한 때에 그런 빌미를 남겨두다니. 그렇게 행동해야 할 이유라도 있었나?”

“……머리가 너무 달아올랐던 모양입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상무는 다시 한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서로간의 입장이라는 것도 있고, 우리 법무팀도 허수아비는 아니니 최악의 결과가 나오지는 않겠지. 하지만 만의 하나라도 화근이 될 불씨는 남기지 않는 게 좋다. 그 점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만일의 사태에는……무슨 수를 써서든 제가 반드시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래, 알고 있으면 됐다.”


상무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팔짱을 풀었다.


“아무튼, 너는 한동안 몸가짐에 주의하도록. 네가 저쪽에 먼저 손을 댄 이상, 경거망동하여 좋을 건 하나도 없다.”

“네.”

”……이야기는 내일 마저 하지. 너도 출장에서 막 돌아온 참이고, 그 이외에도 ‘처리할 일’이 남아 있을 테니까. 그렇지 않나?”

“맞습니다.”

“그럼 얼른 가 봐. 혹시나 특이사항이 발생하면 바로 보고하고, 다음 주까지 시말서랑 사유서 제출하도록.”

“……네?”


상무의 손짓에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가려던 프로듀서가 동작을 멈추고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못 들었나? 시말서랑 사유서 제출하라고. 최소한의 반성하는 기색이라도 보이라는 뜻이다.”

“……알겠습니다.”



******



“하아…….”


상무의 집무실을 나온 프로듀서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뒷머리를 몇 번 긁적인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퇴근 시간을 넘긴 복도에는 인기척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의 한숨소리를 듣는 사람은 없었다.

가볍게 기지개를 켠 뒤, 그는 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복잡하기 때문일까, 평소의 힘찬 걸음 대신 느긋한 보폭으로 걸어가는 그는 뚜벅, 뚜벅, 하고 구둣발 소리를 내는 자신의 발 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 상무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사소한 손길이 오가기는 했지만, K와의 ‘느긋한 대화’를 통해 그는 지금껏 몰랐던 우즈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우즈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우즈키를 어떻게 대했는지. 그 내용을 듣고서도 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보통내기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그 원인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한다면 더더욱.

다만, 그 내용과 별개로 그에 대한 대응만을 보자면 상무의 판단이 옳았다. 평소대로라면 좀 더 차분하게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쓸데없이 감정적인 대응을 한 것이었으니 명백한 자신의 실수였다.


‘나답지 않았어.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해버렸군…….’


천천히 걸어가던 그의 발걸음이 별관의 지상과 지하를 연결해주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추었다. 엘리베이터 옆에는 자그마한 거울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는 가만히 거울 속에 비치는, 정장에 뿔테 안경을 쓴 남자를 바라보았다.

며칠 전 출장 장소에서 ‘우즈키에게 문제가 있다’는 마스터 트레이너의 연락에 대해 단순한 멘탈 트러블이라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손을 들어 눈 앞에 떠오른 얄미운 녀석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잖아, 이 얼간아.”


몇 번이나 스스로를 쥐어박던 그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힘없이 손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 때, 머리를 쥐어박느라 아슬아슬하게 귓가에 걸쳐져 있던 그의 안경이 툭, 하고 자리를 떠났다. 반사적으로 손이 움직였기에 안경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안경을 다시 쓰려던 그 때, 그의 몸이 멈칫했다.


“……뭐지?”


왼쪽 시야의 일부가 부옇게 흐려진 것처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눈을 깜박여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희뿌연 노이즈에 미간을 찌푸리던 그는 얼마 전 의사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불현듯 떠올렸다.


“지금은 분명 진전이 더딥니다. 하지만 차근차근 다가가고 있죠. 언젠가는 분명히 당신 스스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어떤 ‘전조’가 느껴질 겁니다. 그 때가 오면……슬슬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전조……라고.’


언제부터 맺혀있던 것인가, 이마에 맺혀 있던 식은땀이 콧잔등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의 왼팔에서 들려온, 찰칵, 하는 소리에 이어 땡, 땡, 땡, 하는 가느다란 타종소리에 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손으로 땀방울을 훔쳐내고 고개를 돌려 복도를 바라보았다. 머리 위에 켜진 형광등의 불빛 덕분에 왼쪽 눈이 다소 시큰거리기는 했지만, 조금 전처럼 부옇게 흐려지는 듯한 느낌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아직은 아니야. 아직 이대로 끝낼 수도 없어.”


가볍게 머리를 흔들고 다시 안경을 고쳐 쓴 뒤, 그는 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는 정적이 흐르는 사무실에서 프로듀서 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무실의 다른 사람들은 치히로 씨와 함께 회식을 갔다가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저는 혼자서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일까요?


K씨의 앞을 벗어나고 싶어서 무작정 방송국을 빠져나간 저였지만, 방황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일단 뛰쳐나오기는 했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공원에 앉아 있던 저를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프로듀서 씨가 찾아낸 것입니다. “네가 무슨 이치노세도 아니고, 어딜 혼자서 돌아다니냐”라면 딱밤 한 대를 맞기도 했지요.

아, 프로듀서 씨는 지금 상무님의 집무실에 계십니다. 저를 데리고 사무실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상무님의 호출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혼자 남은 저는, 이렇게 사무실에 얌전히 앉아서 프로듀서 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쩌지……분명 화나셨을거야…….”


히터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째깍, 째깍,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시계 소리를 들으면서, 저는 몇 번째일지 헤아리기도 힘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 때, 테이블 위에 놓아둔 제 휴대전화가 부우웅, 하고 진동했습니다.


-우즈키, 지금 사무실이야? 프로듀서는?


잠금상태의 화면에 떠오른 것은 짤막한 메시지였습니다. 서둘러 휴대전화의 잠금을 풀고 발신인을 확인했습니다. 린에게서 온 메시지였습니다.


[조금 전에 상무님께서 찾으셔서 상무님께 가셨어요……화나셨겠죠?]

-괜찮아. 그 사람, 그렇게 쉽게 화 내는 사람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칼같이 돌아온 답장에는 너무나도 낙관적인 대답이 실려 있었습니다.


-……미안해. 그 때, 내가 좀 더 확실하게 대답했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제가 확실하게 말하지 못해서……여러분들께도 확실하게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아니, 상대가 그런 사람이라면 설령 나라고 하더라도 쉽게 말하진 못했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


역시, 여기에는 좋은 사람들뿐이네요. K씨에게 당당하게 맞서던 린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분명히 저를 위로해주기 위해서 한 말일테죠.

그저 메시지를 읽었을 뿐이지만 잔뜩 힘이 들어가 있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신경을 써 준 린에게 고맙다는 답장을 보낸 바로 그 때, 그 때, 똑똑, 하는 노크소리에 뒤이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 왔다.”

“히엑?!”


프로듀서 씨의 목소리에 저는 화들짝 놀라며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내려놓았습니다. 사무실로 들어온 프로듀서 씨가 터덜터덜 자신의 자리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평소의 자신감 넘치는, 성큼성큼 걸어다니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뭘 그렇게 놀라? 나한테 뭐 잘못이라도 했어?”

“아, 아뇨……그게, 상무님과는 어떻게 되셨나요……?”

“어떻게 되긴, 혼났지.”


툭, 하고 가볍게 날아온 대답이 가벼워졌다고 생각했던 어깨를 삽시간에 다시 짓눌렀습니다.


“죄, 죄송해요. 저 때문에 괜히…….”


자신의 자리에서 외투와 서류가방을 챙기던 프로듀서 씨는 손을 멈추고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눈을 깜박이며 저를 쳐다보던 프로듀서 씨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저는 제가 무슨 말실수라도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하, 나 참.”


가방을 내려놓고, 저를 향해 다가온 프로듀서 씨는 제게 손을 뻗었습니다. 딱밤이라도 맞는 건 아닐까 싶어 눈을 꽉 감고 목을 움츠리던 저는 푹, 하고 머리를 덮는 커다란 손길에 조심스레 눈을 떴습니다. 프로듀서 씨의 커다란 손이 제 머리 위에 올라앉아 있었습니다.


“너 때문에 혼난 거 아니다. 내가 잘못해서 혼난 거지. 그러니까 어깨에 힘 좀 빼.”


프로듀서 씨는 제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준 뒤 다시 몸을 돌려 자신의 자리로 향했습니다.


“상무님 퇴근하신댄다. 우리도 슬슬 가자.”

“네, 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갈 채비를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이 탄 승용차는 CG프로덕션의 부지를 빠져 나와 시내를 지나고 있었다.

퇴근시간을 넘긴 시내는 회사 내부와 마찬가지로 다소 한산했다. 물론 차도가 그렇다는 뜻이고,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보도를 가득 메운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시부야의 말만 들었을 때는 멀리 갔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너도 참 여전하구나.”


잠시 신호에 멈춰 선 틈을 타 운전대에서 손을 놓은 프로듀서는 우즈키를 발견했을 때를 떠올렸다.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는 린의 말에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움직였지만, 뜻밖에도 그가 우즈키를 발견한 곳은 방송국 옆에 있는 자그마한 공원이었다. 카렌의 전례를 생각하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던 그는 예상 밖의 허무한 결말에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던 것이다.

그것이 책망하는 것처럼 들렸을까, 조수석에 앉아 있던 우즈키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죄……죄송해요…….”


몇 번째인지 모를 사과를 하며 우즈키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던 그 때,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아얏!” 하고 우즈키의 새된 비명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운전석의 프로듀서가 왼손을 들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딱밤을 때렸던 것이다. 불의의 일격에 이마를 부여잡은 우즈키는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운전석의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혼내는 거 아니라고 했지? 화난 것도 아니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마.”

“그치만…….”

“또 맞고 싶으면 그렇게 있어보던지. 지금도 나한테 죄송해?”

“아, 아니에요! 하나도 안 죄송해요!”


“그래, 그래야지” 황급히 두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가로젓는 그녀의 모습에 프로듀서는 씨익 웃으며 들어올렸던 왼손을 다시 내렸다. 때마침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었다. 가속페달을 밟는 발에 힘을 넣으면서 프로듀서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뭐, 그건 그렇고. 나 없는 동안 루키한테 혼났다면서?”

“네?! 아, 저, 그러니까…….”


적당한 변명을 결국 찾지 못한 것인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우즈키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오버워크를 한다고 혼났거든요…….”

“오버워크? 트레이너들이 짜 준 메뉴로는 뭔가 부족했나봐?”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닌데……그게…….”


우즈키는 또다시 말꼬리를 흐렸다. 때마침 자동차가 정체구간에 멈춰 섰기에 프로듀서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적당한 대답을 찾는 것처럼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던 우즈키는 자신을 바라보던 그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게……죄, 죄송해요…….”

“또, 또 사과한다. 자, 이마 대.”

“네? 아앗! 아니에요! 이건 그러니까……!””


방금 전에 나눈 대화를 뒤늦게 떠올린 우즈키가 화들짝 놀라며 이마를 가렸지만 그보다 프로듀서의 반응이 한 발 빨랐다. 따악! 하는 경쾌한 소리와 돌림노래처럼 새어 나온 우즈키의 비명소리가 다시 한번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아으으…….”

“내가 하지 말라고 하면 좀 하지 마라. 응?”

“죄, 죄송……읍!”


우즈키는 황급히 입을 막았다. 프로듀서는 들어올린 손을 다시 운전대 쪽으로 되돌렸다. 교통정리가 끝난 것인지, 단단히 뭉쳐 있던 자동차들이 다시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즈키를 바라보던 프로듀서의 시선이 다시 앞을 향했다.


“구체적으로 말하기 힘들다면 Yes/No로만 말해.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아, 아니요! 고민 같은 거 없으니까요!”

“정말로?”

“……네! 정말로요!”


하지만 대답과 달리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우즈키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조금만 긴장을 해도 좀처럼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는 점. 지난 몇 개월간 함께하며 알게 된 그녀의 특징이자 약점이었다. 프로듀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가슴 속으로 탄식이 섞인 한숨을 토해냈다.

이것 역시 그 자식이 만들어낸 결과겠지.


“……엊그제 코히나타에게서 연락이 왔다.”

“ㄴ, 네? 미호에게서요……?”

”그래. 지난 1주일간 네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다고. 너에게 뭔가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불안하다고 하더구나.”


코히나타 미호와 우즈키는, 비록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은 사이였지만 사무소 내에서 가장 친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돈독한 사이를 과시하고 있었다. 서로의 성질이 비슷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목표가 비슷했기 때문일까. 석 달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말문을 트기 시작한 이래로 두 사람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서로의 집으로 상대방을 초대할 정도로 사이가 가까워졌던 것이다.


“나 역시 코히나타와 같은 생각이다. 시마무라, 지금의 너는 명백하게 정상이 아니야.”


자동차가 또다시 교차로의 신호등에 멈춰 섰다. 이 구간의 신호는 한번 걸리면 꽤나 시간이 걸리기로 악명이 높은 구간이었기에, 기어를 중립으로 바꾼 프로듀서는 운전대에 몸을 기대며 가로등 불빛 너머로 어렴풋한 별빛이 반짝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뉴 제너레이션즈로써의 데뷔가 결정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즈키는 미호나 프로듀서를 곧잘 전화로 괴롭히곤 했다. 구체적으로는 한밤중에 수십 분 가까이 전화로 이야기를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것이었다. 오늘은 어떤 레슨을 받았고, 어떤 아이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옛날 이야기였다.


“최근 들어서는 전화하는 것도 줄었지? 나나 코히나타에게.”

“그. 그랬었죠…….”

“뉴 제너레이션즈 때문이야? 아니면…….”

“아니에요.”


우즈키는 프로듀서의 말허리를 자르며 단호하게 말했다. 여태껏 풀 죽은 대답이나 간단한 대꾸밖에 하지 않던 그녀로써는 무척 드문 반응이었기에,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프로듀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우즈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프로듀서 씨께서 챙겨 주신 거에요. 하겠다고 한 것도 저였고요. 절대로 그것 때문은 아니에요. 그것만큼은……그것만큼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조금 전까지 목소리를 가늘게 떨고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지금의 우즈키는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자신의 생각을 곧이곧대로 말하고 있었다. 우즈키를 바라보던 그는 그녀의 무릎 위에 올라가 있는 자그마한 손이 주먹을 쥐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움켜쥔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보면, 적잖이 긴장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꽝 카드를 뽑은 것을 직감한 프로듀서는 가슴 속으로 자기 머리를 쥐어박았다.


“미안하다. 내가 실언을 했구나.”

“아, 아니에요. 저야말로, 제가 제대로 했으면 그런 생각이 안 드셨을 텐데…….”


차 안에는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평소라면 여기서 이야기를 마쳤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조금 더,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프로듀서의 머릿속에는 이미 어떤 아이디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는 자칫하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는 방법이었다. 잠시 동안 손끝으로 운전대를 두드리며 가만히 생각하던 그는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작게 심호흡을 했다.


“……K라고 했지. 너의 전 프로듀서.”


K라는 이름에 우즈키는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어깨를 떨었다.


“호, 혹시, 만나셨나요……?”

“그래. 너희를 데리러 갔던 그 방송국에서.”


그러자 그를 올려다보던 우즈키의 고개가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면, 다……들으셨겠네요……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 그 중에서는 좋은 이야기도 있었고, 나쁜 이야기도 있었어.”


물론 그것은 반만 맞는 이야기였다. K라는 남자는 우즈키에 대해서는 단 한 순간도 좋은 평가를 한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에는 몰라서 좋은 것도 있는 법이다. 구태여 지금 와서 그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는 나머지 절반에 해당하는 진실을 가만히 가슴 속에 묻기로 했다.


“……시마무라. 나는 네 프로듀서야.”

“……네.”

”프로듀서라는 건, 단순히 너희들에게 스케줄을 잡아주고, 일감을 가져다 주는 게 전부가 아니야. 예전에 트레이너들 앞에서 내가 했던 얘기 기억해? 멘탈과 피지컬의 관계.”

“극한 상황에서는 멘탈이 피지컬을 잠식한다……는 이야기요?”

“그래, 사람이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리면 멘탈은 결국 피지컬을 잠식하게 되지. 나는 프로듀서가 그런 상황을 방지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었다. 다른 사람보다 유별나게 높은 그의 체온 덕분에 금세 따끈해진 우즈키의 손에서 손을 떼고 그는 운전대로 손을 가져갔다. 낮은 엔진소리가 다시금 차 안을 채웠다.


“그리고, 나는 바로 지금이 ‘그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프로듀서로써 무엇이 너를 이 상황까지 몰고 갔는지 알고 싶어.”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듯 프로듀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우즈키는 대답이 없었다. 잠깐 동안 흐르던 정적을 깨고 프로듀서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다시 한번 물을게. 정말로 괜찮아? 나한테 말 안 해도 되겠어?”

“…….”


침묵 속에서 엔진 소리만이 조용한 차 안에 울려 퍼졌다. 즉답이 튀어나오던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우즈키가 좀처럼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운전에 잠시 여유가 생긴 틈을 타 프로듀서는 곁눈질로 조수석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이걸로도 안 되는 건가……라고 생각한 프로듀서가 다음 방법을 모색하려고 할 때, 우즈키가 입을 열었다.


“……역시 프로듀서 씨는 뭔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네요……지금까지는, 아무도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거든요. 정말로……정말로 괜찮나요? 사실대로 말해도……?”

“물론이지. 오히려 털어놔 주는 게 편한데.”

“그, 그런가요……?”

“그래.”

“그, 그럼 말할게요! 그, 그게, 그러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즈키는 입을 뻐끔거리기만 할 뿐 좀처럼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또다시 조용한 차 안이 엔진 소리로 가득 찰 무렵, 우즈키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프로듀서 씨께서 기대하시는 모습을 보여 드리지 못해서……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게, 프로듀서 씨께서 직접 이적 신청을 받아들이셨다고 들었거든요…….”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저, 그게……M씨에게서요. 저번에 우연히 만났거든요…….”

“그랬구나…….”


우즈키의 대답에 그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작게 탄식하며 한 손으로 미간을 짚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애한테 부담만 더 지워놨군……그래서 내가 입 단속 해달라고 몇 번을 부탁했는데…….’


M이라는 사람은 K프로덕션에서 우즈키를 가장 먼저 담당했던 프로듀서였다. 프로듀서가 기억하는 M이라는 사람은 붙임성도 좋고 업무 수완도 좋은 남자였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입이 가볍다는 것이었다.

물론 사회 물을 먹은 어른인 이상 어느 정도의 선은 지키고 있었지만, 그 선을 넘는 부분에서는 자비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몇 번인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고 다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프로듀서의 옆에서, 여전히 고개를 떨어뜨린 채로 우즈키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때……M씨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생각했어요. 혹시 프로듀서 씨께서 저를 찾은 건 제게 무언가 기대할만한 부분이 있어서는 아닐까……싶어서, 그래서.”

“그래서, 자신이 내세울만한 건 경험과 실력뿐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네.”


정곡을 찌른 것일까, 말허리를 자르며 들어온 프로듀서의 말에 우즈키는 움찔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 참, 너한테 그런 걸 기대했으면 내가 널 연습생으로 넣었겠어? 당장 정식으로 이적발표하고 즉시전력으로 굴렸겠지.”

“그, 그런가요……?”


다만, 그녀 스스로의 생각과는 달리, 실제로 트레이너들과 프로듀서의 시선으로 본 우즈키는 연습생 아이들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경험의 차이라는 것이겠지만, 만약 급한 문제가 생겨서 연습생들 가운데 몇 명을 끌어다 써야 한다면 아마도 십중팔구는 우즈키가 후보 멤버로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이런 사실을 구태여 이야기하지 않았다. ‘단결’이라는 유대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출발점이라도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명씩 끌어다 쓰는 대신 3개월씩이나 휴식기를 가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구태여 ‘신데렐라 걸즈’라는 새로운 이름을 내건 것이었다.


“그럼 프로듀서 씨는 어째서 저를 선택하셨나요? 저는 재능도 없고 개성도 없는 그냥 평범한 여자아이인데……어째서 저를 린이나 미오 같은 아이들과 함께 선택하셨나요……?”


우즈키는 잠시 말을 멈추고 호흡을 골랐다.


”K씨……제 이전 프로듀서님께서는 그게 저를 향한 싸구려 동정심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어요……예전에 저를 지명하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저를 데려간 거라고……그게 정말인가요? 그게 아니라면, 프로듀서 씨는 제게서 어떤 가능성을 보고 있나요?”


감정이 북받쳐 올랐기 때문일까, 마치 봇물이 터지듯 말을 쏟아내는 그녀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K에게서 들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이질적인 무언가가 느껴졌던 것이다.


“……너, ‘그 놈’ 말고도 다른 사람들한테도 무슨 소릴 들었구나.”


프로듀서의 말에 우즈키는 멈칫, 하더니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서 숨기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네. 상무님이랑 시키 씨 한테서요…….”

“뭐라고 하던?”

“……상무님께서는 제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보라고 하셨어요. 프로듀서 씨께서 리스크를 무릅쓰고 저를 뽑은 데엔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너한테 그 소리를 한 게 언제쯤이었어?”

“그게……그러니까, 2주 전쯤이었을 거에요. 개인연습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셔서…….”

“2주 전이면……마시러 가자고 한 그날이었구나.”


‘계모니 답례니 하던 게 그것 때문이었나……’ 그는 우즈키에게 들리지 않도록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래서는 계모고 나발이고 그냥 악역이지 않은가.


“그럼, 이치노세는 뭐라고 하던?”

“시키 씨는……제 냄새가 수상하다고, 정말로 아이돌 일이 즐거운 게 맞냐고 말했는데요……프로듀서 씨? 무슨 일인가요?”

“……아니, 아무것도 아냐.”


우즈키의 이야기를 듣던 프로듀서는 조용히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눌렀다.

위아래로 저렇게 압박을 줬으니 애가 부담감을 가질 만도 하지…….


“……시마무라.”

“네?”

“앞으로 이치노세가 말하는 건 적당히 흘려 들어. 그거 분명히 생각없이 막 내뱉은 말이니까.”

“그, 그런가요?”

“그래. 그 녀석, 기본적으로 생각을 안 하고 막 내뱉는 타입이거든. 오히려 생각을 할 땐 말을 거의 안 하는 편이지. 생각에만 집중하느라.”

“그렇군요……그치만, 굉장히 예리한 지적처럼 들렸는데요…….”

“그냥 관찰한 결과를 그대로 말할 뿐이니까 대개는 맞는 말처럼 들리는 것뿐이야.”


후우, 프로듀서는 날숨을 내쉬었다. 한숨에 한없이 가까운 날숨이었다.


”그나저나, 그래. ‘이유’가 궁금하단 말이지. 너를 선택한 이유가.”

“……네. 무리한 질문이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만큼 저도 알고 싶어서……죄송해요.”

“죄송할 거 없어. 무리한 질문도 아니고. 뭐, 궁금해 할 수도 있지.”


도로 상황에 여유가 생겼기에 프로듀서는 잠깐 고개를 돌려 우즈키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각오를 한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여전히 무릎 위에서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이 눈에 띄었다.

이래서야 이야기가 되겠나, 일단 어깨에서 힘부터 빼야겠군.


“시마무라, 혹시 저녁에 급한 일이라도 있어?”

“아, 아뇨, 딱히 없는데요…….”

“그래? 그러면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부모님께는 내가 말씀 드릴게.”

“네, 그럴게요.”


우즈키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곧바로 차선을 바꾸었다.


“좋아, 그럼 장소를 옮기자.”

“네? 어디로요?”


“내 비밀의 장소 중 하나야.” 프로듀서는 유턴 신호에 맞춰 자동차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서 대답했다.


”고민이 있을 때면 늘 향하는 곳이지. 거기서 가르쳐줄게. 내가 왜 너를 선택했는지. 어째서 시부야 린과 혼다 미오에게 시마무라 우즈키가 필요한 건지.”


시마무라 우즈키 - Like a Fastball (下-2)편으로 이어집니다.



늘어져서 죄송합니다. 다음 편은 늦어도 모레 안으로 업로드될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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