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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나이트 외전 - 오리온자리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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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07, 2018 21:58에 작성됨.

 회의실로 가보니 부장 이하 여러 사원들이 심각한 얼굴로 모여 있었다. 전부 나보다는 직급이 높았다.

 나는 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정중히 앞에 섰다. 선배가 내 옆에 서서 지금 이 상황이 심히 마음에 안 드는 얼굴을 했다. 나 또한 같은 심정이었지만 무뚝뚝함으로 본심을 숨겼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보게.”

 부장이 조곤조곤한 어조로 말했다.

 루머입니다. 나는 즉답했다. 흔하디흔한, 악성 루머요.

 “단순 루머치곤 확산 속도가 너무 빨라. 여기저기서 전화 걸어오는 통에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어. 뭐 더 아는 거 없나?”

 “……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말씀드리자면?”

 “어느 정도는, 이렇게 되리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간략히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띄엄띄엄 말하는 통에 듣는 이들 모두 답답해했지만. 얘기를 마치자마자 부장이 쏘아붙이듯 물었다.

 “그 사실을 왜 지금에서야 얘기하는 거지?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아이돌 개인의, 프라이버시라 생각해서…….”

 “그게 지금 말이 된다 생각해!”

 부장이 핏대 세우며 호통을 쳤다. 그것을 시작으로 이 때다 싶은 주위의 수군거림이 터져 나왔다. 미리 알았어야 대책을 세웠다느니, 이게 웬 날벼락이냐느니. 쏟아지는 말 속에서 거칠게 신경을 긁는 한 마디를 청각이 잡아냈다.

 “지금 걔 때문에 회사가 얼마나 큰일 난 줄은 알아!”

 쾅, 하고 책상을 내리쳤다. 순간 소음들이 사라지고 회의실에 정적이 가득 찼다. 나를 포함해 모두가 선배를 바라봤다. 진짜 듣자듣자 하니까. 쓰러진 의자를 일으키고 날카롭게 말했다.

 “말들 참 너무하게 하시네! 대책은 무슨! 이게 뭐, 미리 알았다고 바뀌는 일이에요? 그렇게 좋은 수가 있으면 지금이라도 얘기를 해보시던가! 그리고 그게 왜 얘네 때문이야! 루머 퍼뜨리고 악플이나 다는 것들이 문제지!”

 선배의 말투가 거칠어졌다.

 “큰일은 개뿔, 진짜! 우리 회사 이 정도에 흔들릴 만큼 허접한 곳 아니고, 여기 사람들 힘든 거 다 합쳐봐야 얘랑 얘 담당 지금 힘든 거에 비하면 반에 반도 안 돼요! 그럼 격려의 말은 못 해줘도 상처를 들쑤시지는 말아야지! 다그치는 게 말이 됩니까? 자기들 담당한테 일 터져도 똑같이 말할 수 있어? 남 일이라고 막말하는 거지! 진짜 실망이다, 실망!”

 “이봐, 자네. 진정 좀 하고…….”

 “부장님도 부장님입니다! 얘 올해 초에 막 입사한 애고, 미오는 올 여름에 데뷔했어요! 아는 게 뭐가 있다고 이런 문제들까지 해결합니까! 그런데도 회사에 얼마나 도움 줬는지 아시면서 이렇게 갈구면 어떡해요!”

 “그래. 나도 알지. 하도 답답해서 그랬네.”

 부장의 말에 선배는 간신히 진정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민망한 듯 고개를 돌린 채 눈도 마주치지 못 했다. 내가 미안했네, 자네가 이해해줘. 부장이 그들을 대신해 사과했다. 괜찮습니다. 나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내가 받을 사과는 아니었지만.

 회의는 아무 결론도 내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애초에 영양가 있는 답이 나올 모임도 아니었지만. 회의실에서 나오자마자 모자를 쓰는 내게 선배는 진지하게 물었다.

 “멋졌냐?”

 “존경했습니다.”

 나는 작게 박수쳤다.

 “회사 실적, 1위만이 가능한, 카리스마 넘치고, 훌륭한 일침이었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럴 땐 당연히 도와야지. 너도 나를 본 받아라.”

 복도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선배에게 건넸다. 사뭇 당연하게 보답을 받으며 선배는 말을 이었다.

 “뾰족한 수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더 저러는 거야. 소속사나 당사자가 뭐라고 해명하든 깔 놈들은 계속 깔 테니까. 눈도 닫고 귀도 닫고, 잘난 듯 손만 놀리는 거지. 이런 말 하긴 뭐한데, 회사 사람들이 저러는 건 네가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 대신 누가 너한테 뭐라 하면 내가 바로 도와줄게.”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건, 혹시라도 미오에게, 들릴까봐서요.”

 “우리 부서 내에서는 입단속 철저히 시킬게. 너는 너희 애한테만 신경 써.”

 이 정도 밖에 못해줘서 미안하다. 다 마신 캔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선배는 사무실로 돌아갔다. 해결할 일이 많으니까. 어쩌면 지금 상황은 아직 시작조차 아닐지도 모른다. 휴게실에서 기다리던 미오를 데리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차를 출발시키려다 문득 걱정이 들었다. 이걸로 괜찮은 걸까.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대중교통은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당장은 주말이라 괜찮겠지만, 학교에서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는 아예 쉬어야 할지도. 가족에겐 뭐라 설명해야 할지…….

 백미러로 미오를 확인했다. 아까보단 나아졌지만 여전히 기운이 없어보였다. 부모님껜, 말씀드렸어?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하셔?

 “걱정해주셨어. 오늘도 바빠서 늦게 들어오지만, 집에 와서 다 얘기하자고.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네 편이라면서, 옆에서 수군거리는 건 신경 쓰지 말라고도 하시고. 오빠도 갑자기 전화 와서는 그러더라. 기운 내라고, 옆에 없어서 미안하다고. 동생은 문자도 없었지만.”

 잠잠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안심했다. 중학교 때 있던 일은 가족들에게도 비밀이었다. 부모는 바쁘고 위아래로는 남자형제. 심지어 사춘기 동생과 사회초년생 오빠뿐이라 관심을 주고받기 힘들어서 미오는 혼자 상처를 삭히기만 했다.

 이제라도 가족이 도와준다면 괜찮겠지. 모자챙을 올리고 차를 출발시켰다.

 

 차가 막히지 않아 예상보다 일찍 집에 도착했다. 아파트 입구에 차를 세우니 바람이 휑하니 불었다. 기분전환이라도, 할래? 조심히 권하자 미오는 고개를 저었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있을 텐데, 바로 집으로 올라 갈 거야. 안까지 따라가려하자 몇 번이나 괜찮다며 나를 돌려보냈다.

 지금 남을 걱정할 때가 아닌데. 저 아이의 좋은 점이면서 동시에 나쁜 점이었다. 지금은 좀 더 자신에게 신경을 써야 할 때라고, 부탁할 일이나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만 하라고 말한 뒤 엘리베이터 타는 것까지 확인하고 돌아왔다.

 회사로 왔더니 슬슬 해가 질 시간이었다. 기온이 내려간 것 같아 조금만 쉬어가려 했는데 폰이 울렸다. 땡땡이치려는 걸 벌써 들킨 건가, 정말 대단한 회사군. 확인해 보니 스팸문자였다. 삭제하고 화면을 끄려다 기시감을 느꼈다. 아까 아나스타샤에게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읽었지만, 답장을 안 한 상태. 이상했다.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당장 전화를 걸었다. 짧은 신호음 뒤에 받았지만 아무런 말도 없었다.

 아나스타샤. 숨소리만 조용히 들렸다.

 “지금 어디야?”

 “…… 사무실이에요.”

 “올라갈게. 기다려.”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실수했군. 한곳에만 정신이 팔려 저지른 실수. 숨긴다고 해서 어떻게 되는 일도 아닌데. 차라리 상황을 전부 이야기해줘야 했어.

 사무실 문을 열자 바로 아나스타샤와 마주쳤다. 겁에 질린 눈이 역에서 만난 미오와 닮아있었다. 봤구나. 입술을 깨물었다. 안 보는 게 이상하지, 그렇게 떠들어 대는데. 사무실이 혼잡해서 일단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인적 드문 복도에서 잠깐 동안 가만히 있었다.

 신중히 말을 고르는데 아나스타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때 그 일 때문이죠? 이거.”

 숨을 깊게 내쉬었다. 맞아.

 부정할 것도 없었고, 부정해 봐야 소용도 없었다. 아나스타샤는 이미 그 일들을 알고 있었으니까. 미오가 아이돌을 시작할 때부터 내가 말해줬으니까. 하지만 말로만 듣는 것과 실제 사태를 보는 건 받아들이는 충격의 양이 달랐다. 내내 느끼고 있던 불안한 감은 미오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정하지 못 하고 멍청히 서 있는 나에게 아나스타샤가 폰을 들어보였다.

 물었다.

 “이 사람들은 왜 미오를 미워하나요?”

 “…… 전에도 말했지만, 이유는 없어.”

 그냥. 재미있으니까. 힘을 과시하기 위해. 어이없을 만큼 별 것도 아닌 이유들이 즐비했지만 전부 허울에 불과할 것이다. 사람들은 별을 좋아하고, 또한 별이 추락하는 것을 즐기니까. 자신들의 순간적인 재미를 위해 그들은 얼마든지 돌을 던질 수 있었다. 지금은 단지 그 대상이 마침 미오가 되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무언가 더 필요하다면 갖다 붙이면 그만이고. 그것이 불특정다수의 무서움이다.

 “미오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했어요. 프로듀서. 그게 그렇게, ошибка, 잘못인가요?”

 “아니. 절대로, 아니야.”

 “그러면 미오에겐…… 잘못이 없는 거죠?”

 “없어. 절대로.”

 확신을 담아 답하자 아나스타샤도 확신을 담아 고개를 들었다. 프로듀서, 부탁이 있어요.

 “미오를 만나고 싶어요. 지금 당장.”

 

 *

 

 하루에 두 번이나 도쿄에서 치바까지 왕복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그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저녁은 간단히 편의점 음식으로 때우고 도로를 달리길 1시간 30. 전과 달리 퇴근 시간에 걸리는 바람에 예정보다 늦어지고 말았다. 이미 해는 저물어 어두운 하늘. 그러나 낮부터 구름이 없어 맑은 날씨 덕인지 적게나마 별들이 반짝였다. 잠깐 올려다보고 있으니 아나스타샤가 재촉했다. 프로듀서, 빨리요.

 공동현관 앞에서 인터폰으로 미오의 집에 연락을 걸었다. 뜸들이듯 울리던 신호음이 끊기자 조금 어린 남자애가 답했다. 누구세요? 경계하는 느낌이 들어 우선 신원을 밝혔다. 미오의 프로듀서입니다, 혹시, 동생 분이십니까? 조금 머뭇거리다 대답이 돌아왔다. 아까보다는 누그러진 톤이었다. 맞는데요, 왜 오셨죠?

 “미오에게, 전할 말이 있습니다. 전화로는 좀 그렇고, 직접, 만나야 할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인터폰이 끊기고 바로 자동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를 올라가니 동생은 이미 밖에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나스타샤를 보자마자 놀라더니 고장 난 것처럼 입을 벌렸다. 그래, 네 마음 이해한다. 무심히 고개를 까닥였다. 마음의 준비 없이 만나기엔 너무 아름다운 아이지.

 아나스타샤가 먼저 인사를 하고 나서야 동생은 정신을 차렸다. 쭈뼛거리며 인사를 받더니 의외의 말을 했다. 누나 지금 없어요.

 “없다고요?”

 “. 저도 학교 끝나고 와서 두 세 시간 정도 기다리고 있어요. 문자는 보내도 답 없고, 전화 걸으면 받긴 하는데 바람 소리가 심해서 뭐라 하는지 안 들리더라고요. 이젠 아예 핸드폰 끄고 받지도 않아요. 신고라도 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 때 마침 우리가 왔다는 건가.

 나는 모자챙을 만지작거렸다.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는데 이걸 동생에게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동생이 먼저 물어왔다. 저기요.

 “누나 괜찮은 거죠?”

 굉장히 마지못한 어투. 그와 상반되는 걱정하는 표정. 누나와 사이 서먹한 동생의 스테레오 타입 같은 느낌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동생 또한 학교에서 시달렸을 것이다. 가족이 스캔들 당사자인 것은 절대 유쾌한 일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원망이나 짜증이 엿보이지 않았다. 늦은 시간 찾아와 프로듀서라 주장하는 수상한 남자에게 문을 열어주고, 밖으로 나와 기다리다 이렇게 안부를 물었다. 처음엔 무심한 듯 했으나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연락까지 취했고.

 아까 전 미오와의 대화까지 해서 전체적으로 좋은 가족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조금만 더 서로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 또한 남았지만.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분명. 신고는 하지 말라고 덧붙인 뒤 엘리베이터에 탔다. 제일 꼭대기 층의 버튼을 눌렀다.

 “프로듀서. 미오가 어디 있는지 아는 건가요?”

 “알아. 그런데 조금…….”

 심각한 어조로 말하자 아나스타샤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톤을 유지한 채 설명했다.

 내가 바래다줬을 때 미오는 분명 아파트 안까지 들어갔다. 다른 곳에 들르지 않고 바로 집에 가고 싶다 했으며, 기분전환도 하고 싶지 않아했다. 애써 밝게 있으려고 했지만 우울함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동생이 집에서 기다린 건 두 세 시간 정도. 내가 치바에서 회사까지 갔다 온 시간과 비슷했다. ,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는 뜻이다.

 오늘은 모처럼 따뜻해진 날. 바람이 적어서 체감온도 또한 상대적으로 높아진 날씨. 하지만 동생이 미오와 통화했을 땐 바람 소리가 심했다고 했다. 장거리를 움직일 기력이 없는 소녀가 아파트 내에서 갈 수 있는 곳 중 통화에 장애가 올만큼 바람이 강하게 부는 장소는 오직 하나 밖에 없었다.

 “옥상.”

 아나스타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미오는 현재 상처가 크게 벌어진 상황. 최악의 결과를 예상한 것이다. 눈을 엘리베이터 문 위에 고정하고 올라가는 숫자에 집중했다. 안 돼요, 미오……. 중얼거리는 소리가 정적 속에서 크게 들렸다. 느려터진 시간의 흐름을 답답히 여겼는지 무서울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의 기온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아나스타샤가 박차고 튀어나갔다. 망설임 없이 어두운 계단을 뛰어올라 옥상으로 향했다. 나는 뒤를 따르며 감탄했다. 얘가 이렇게 빠른 줄은 몰랐는걸.

 문 앞에 닿자마자 숨도 고르지 않고 벌컥, 열어젖혔다. 바람 부는 옥상 난간에서 내 아이돌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오!”

 큰 소리로 부르자 흠칫 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우리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냐? 겨울P?

 어리둥절해 하는 미오에게 아나스타샤가 달려들었다. 꼭 끌어안고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흐느끼자 미오는 굉장히 당황했다.

 “안 돼요, 미오! 그런 짓은!”

 “잠깐만 아냐! 무슨 소리하는 거야? 여긴 왜 왔어?”

 “Не умирай(죽지 마요)! пожалуйста(제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너무 꽉 안아서 아파!”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두 아이돌이 아파트 옥상에서 부둥켜안고, 한 명은 울고 한 명은 영문을 모르는 모양새라니. 내막을 알면 아름답겠지만 그냥 보면 코믹한 모습이었다.

 미오가 눈빛으로 내게 도움을 구했다. 무슨 상황이야? 나는 속으로 사과했다. 미안, 나 때문이야.

 

 *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쇼를 한 것이다.

 미오는 처음부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생각 따위 없었다. 단지 혼자서 오랫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을 뿐. 가족과 친구, 주위 사람들의 격려는 분명 좋지만, 때로는 그 모든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인적 드문 옥상에 올라온 것이다. 동생의 문자에도 답을 하지 않았고, 마침 폰 배터리도 떨어지자 잘 됐다 싶어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나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애초에 미오의 상태가 그렇게나 심각했다면 내가 가만히 둘 리가 없잖은가. 벌써 감으로 눈치 채고 뭐든 간에 조치를 취했겠지.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미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고, 대화를 위해서는 극적인 연출이 필요하겠다 싶어 무대를 마련한 것이다. 쓸데없이 무게 잡고 말하는 바람에 어이없는 상황이 나오긴 했지만. 잊고 있었어, 아나스타샤는 순수한 애지. 애꿎은 모자를 만지작거리는데 직감이 말을 걸어왔다.

 이건 비밀로 해야겠지? 당연하지, 사실대로 말했다간 아나스타샤에게 혼날 게 뻔 해. 그럼 어쩌다 한 번 실수한 걸로 넘어갈까? 괜찮은 생각이야, 한 번 쪽팔리고 끝나면 돼. 그럼 여기선 병풍처럼 물러나 있지. 좋아, 두 사람의 시간을 방해하지 말자고, 오늘 밤은 마침 별도 밝은 밤이니까.

 “미오. 정말로…… 정말로 죽지 않는 거죠?”

 “안 죽어! 무시무시한 얘기하지 마! 그냥 잠깐 혼자 있으려고 한 거야. 잠깐만…….”

 안심시키려는 목소리 뒤에 분위기가 낮게 깔렸다. 깊은 눈빛을 취했다가,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가. 평소와 달리 종잡을 수 없는 모습에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아나스타샤와 눈을 맞추더니 미오는 울컥, 토해내듯 말했다. 미안해.

 “괜히 걱정시켜서 미안해. 계속 안 좋은 생각만 들다가 가족들이랑 아냐랑 겨울P, 치히로 씨가 좋은 말 해주니까…… 조금씩 힘이 나는데.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나한테는 너무 과분한 것 같아.”

 “그렇지 않아요!”

 아나스타샤가 단박에 부정했다. 친구의 이런 모습을 처음 봐서인지 미오는 당황했다. 저길 봐요. 아나스타샤가 하늘을 가리켰다. 손을 따라 시선을 올린 그곳에는 유난히 밝게 빛나는 세 개의 별이 있었다.

 아름답군. 나는 아나스타샤가 자주 보는 천문학 책을 떠올렸다. 분명 오리온 자리였지.

 “오리온은 겨울에 가장 대표적인 звезда()에요. 도시에서도 잘 보이고, 밤하늘에서 가장 밝고 화려하죠. 그 중 가장 밝은 세 개의 별들을 오리온 벨트, 삼태성이라 불러요.”

 사뭇 진지한 어조였다. 나보다는 낫지만 말이 서투른 아나스타샤가 굉장히 능숙하게 이야기를 끌어갔다. 별에 관해서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아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미오도 순식간에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미오가 태어난 별자리는 사수자리지만, 저는 미오의 별자리는 분명 오리온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노래 때문에?”

 “Нет(아뇨). 그것만이 아니에요. 미오가 아이돌을 시작하기 전부터,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생각했어요. 미오는 오리온이라고.”

 어째서? 의문이 담긴 눈빛이 따라왔다.

 “미오는 저를 처음으로 이끌어준 друг. 친구니까요. 프로듀서가 그랬던 것처럼, 저를 더 많은 친구들, 제가 모르는 즐거움으로 인도해줬으니까. 별에 관심을 갖고 천체관측을 시작했을 때, 제일 처음 찾아낸 별자리가 오리온이었어요. 처음으로 별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해준 별자리요. 그러니까 미오는 저에게 특별한 친구, 오리온이에요.”

 아나스타샤가 미오의 손을 잡았다.

 “과분하지 않아요. 미오는 팬들을 별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오리온이에요. 나쁜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미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도 프로듀서도. 그 외에도 잔뜩. 그러니까 미오…… 계속 반짝이는 별로 있어줘요.”

 간절함. 진심. 마음을 담아 부르는 노래와도 같은 말들이었다. 이와 같은 것을 아나스타샤를 처음 만났을 때도 느낀 적 있었다. 지나간 추위를 대신하는 더위에 지쳐있을 때 나를 구원한 것은 아나스타샤가 가진 겨울의 이미지였다.

 이 아이는 누군가를 치유하는 힘이 있어. 남들은 이끌기엔 부족하지만 남들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강함이 있지. 자신도 상처를 입었고, 그것을 극복했기에. 포근히 감싸주는 힘을 가진 거야. 바로…….

 “고마워, 아냐. 진짜 고마워. 이 말 밖에 못 하겠어.”

 “저도 고마워요. 미오.”

 미안해가 아니라 고마워라고 말하게 하는 힘. 어두운 밤에도 하얗게 빛나는 눈과 별. 그것이 내가 느끼는 아나스타샤였다.

 아나스타샤가 미오를 잘 따른다고, 선배는 말했었지. 하지만 다르다. 이 아이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반짝이고 있었다. 불안한 어둠속에서 이끌어주고, 지쳐 쓰러질 때 의지할 존재가 되어주었다. 그게 내가 아름답다고 느낀 아이돌들.

 밤은 깊어가고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에서도 어디에서도 하늘을 보면 그곳에 오리온자리가 있겠지. 때로는 구름에 가리는 일도 있겠지만, 그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별은 하늘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그 반짝거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기를. 온갖 음해에도 맞잡은 손을 놓지 말기를. 나는 모자 아래에서 조용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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