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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나이트 외전 - 오리온자리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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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07, 2018 21:53에 작성됨.

 안녕, 아나스타샤!

 что()? , 미오…… 인가요?

 맞아. 혼다 미오! 오늘부터 같은 반 됐으니까 인사하러 왔어.

 그렇군요. Привет(반가워요), 미오. 저는 아냐라고 불러줘요.

 아냐가 별명이구나. 귀엽다. 근데 그거 어느 나라 말이야?

 러시아어예요. 하지만 저, 러시아 사람은 아니에요. 일본 사람입니다.

 그래? 혼혈인건가?

 Да(). , 맞아요.

 그렇구나. 신기하다. 이렇게 예쁜 사람 처음 봤어. 피부도 하얗고 눈도 맑고……. , 혹시 내가 무슨 실수했어?

 …… Нет(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좀, 그런 말은 자주 들었어요. 예쁘다, 남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조금…… 차가워 보인다.

 그렇구나. 미안해. 그럴 줄은 몰랐는데. 내가 실수한 거 맞았네. 다른 뜻은 아니었어. 정말로 순수하게 아냐가 예뻐 가지고.

 Да. 알아요. 칭찬인 거. 기분 나쁘지 않아요.

 다행이다. 그런데 뭐 보고 있었어? 천문학? 굉장하다!

 미오도 Звезда…… 별, 좋아하나요?

 응. 하늘에서 반짝반짝 거리는 게 엄청 멋지잖아. 부럽다. 이런 것도 잘 알고. 별이 러시아어로 뭐라고?

 Звезда. 즈베즈다, 예요. 이 책, 빌려드릴까요?

 진짜? 그럼 고맙지! 벌써 아냐한테 신세지고 말았네. 우와, 근데 이거 엄청 어려운 내용이네. 시간 너무 오래 걸릴 거 같은데. 그냥 같이 읽을까? 아냐가 가르쳐줘.

 Да. 얼마든지요.

 별자리 이야기도 있구나. 난 사수자리인데. 아냐는 무슨 자리야?

 처녀자리요. 사수자리 이야기는 여기에…….

 

 *

 

 우선 이야기에 앞서 별 거 아닌 나에 대해 밝혀두려고 한다.

 나는 25살의 한국인으로 현재 이름은 백야, 별명은 겨울P, 전직은 해결사에 현직은 일본의 프로듀서다. 여기서 해결사란 돈을 주면 사람을 찾아 패거나 죽이는 일, 프로듀서는 아이돌을 프로듀스 하는 일을 말한다. ‘어째서 당신이 프로듀서인 거죠?’ 라는 의문이 떠올라도 여기서는 묻지 말았으면 한다. 굉장히 복잡하고 꼬일 대로 꼬인 사정이 있으니까. 그래도 하나 변명해두자면 나는 해결사 시절에 오로지 악당들만을 죽였다. 무고하고 어려운 사람을 괴롭힌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본래 얘기로 돌아가서, 난 어린 시절을 고아원에서 자랐는데 그로 인해 여러모로 삐뚤어진 인간으로 자라고 말았다. 일단 원장이 아주 쓰레기였고, 진짜 말도 못할 쓰레기였기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이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눈매가 날카롭고, 고문과 살인, 시체처리는 누구보다 잘 한다고 자신할 수 있으며, 인생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 망상에 빠졌고, 내가 죽인 버러지들이 눈앞에 환상이 되어 거의 항상 따라다닌다. 남들이 보기에 나는 인상 사나운 덩치 큰 남자겠지만, 내가 보는 나는 피투성이에 인상 사납고 덩치 큰데다 마음속에 살인충동을 품고 사는 쓰레기인 것이다. 때문에 나는 표정 변화가 극단적으로 적고, 최대한 남들에게 예의를 갖추려 노력한다. 그래야만 남들과 같은 수준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일본에 왔다가 나를 마주치면 무섭다고 피하지만 말고 당신은 잘 하고 있어요.’ 하고 격려해 주기를 바란다.

 고아원 생활과는 별개로 나는 더위에 약한 체질이다. 이게 제일 미치는데, 보통 약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 지독히도 약하다. 우리 프로덕션에는 더위에 약해서 종종 옷을 벗어재끼는 순수한 성격의 아이돌이 있는데, 그 여자애가 그냥 커피면 나는 아메리칸 블루마운틴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약하다. 심지어 난 그 애처럼 옷을 벗어재끼지도 않는다. 그딴 짓 못 한다. 쪽팔리기도 하고, 옷을 벗으며 몸에 가득한 흉터가 드러나니까.

 그래서 습한 무더위에 기록적인 폭염이 겹친 날씨에도 나는 땀을 줄줄 흘리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정장을 입고 다닌다. 그나마 내 아이돌에게 선물 받은 모자 덕에 저주스러운 햇빛으로부터 조금은 도망칠 수 있지만.

 내가 일하는 프로덕션은 중소기업에서 시작해 최근 빠르게 성장을 이룬 곳이다. 꽤 많은 아이돌들이 소속되어 있고, 그 중에는 유명 아이돌들도 적잖이 있다. 아이돌들도 직원들도 개성이 넘치기로 업계에 소문이 파다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도 그 개성 넘치는 부류 중 하나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말할 것은 나의 감에 대해서다. 인생에서 몇 번이나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산 덕분인지 나는 흔히들 말하는 육감이 굉장히 발달해 있다. 오늘 뭔가 좋은 일이 생길지, 아니면 엿 같은 일이 벌어질지는 물론이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단 번에 알아맞힐 수 있다. 말만 들으면 편리하겠지만 이것도 전지전능한 건 아니고, 무엇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발동되는지라 불편한 점도 굉장히 많다.

 지루한 소개는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려고 한다. 실컷 프로필을 늘어놓았지만 내 이야기는 아니고, 나의 현재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매력 넘치는 내 담당 아이돌들의 이야기.

 

 *

 

 소녀가, 아나스타샤가 도쿄로 올라온 이유는 아이돌이 되기 위해서였다. 홋카이도에서 길을 걷던 중 내게서 명함을 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나는 아나스타샤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며 아이돌로 스카우트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아나스타샤는 고민했다. 나는 외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된 신참 프로듀서였고, 그래서 말이 굉장히 서툴렀다. 전하고 싶은 말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었다.

 아마 다른 사람이었으면 무시하고 지나갔겠지만 아나스타샤는 오히려 묘한 동질감을 느껴주었다. 내가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고, 끝까지 이야기를 들었다. 듣고 보니 아이돌이라는 직업은 굉장히 멋지고 훌륭한 일이라며, 며칠 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생각을 정리해 부모님을 설득했다.

 아이돌이 되고 싶어요. 꿈을 품고 도쿄로 올라왔다. 이제부터는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아이돌 활동을 해야 했다.

 도쿄로 올라오기까지 아나스타샤는 나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구했다. 부모를 설득할 때도 내가 함께 했고, 혼자 자취할 집을 구했을 땐 이사를 도와줬다. 레슨을 할 때는 지켜봐주고, 부족한 점이 있으면 얘기해 줬다. 불안감이 들 때면 직감적으로 먼저 알아채서 다가가 해결해줬다.

 거창하고 건방진 소리지만 나는 이 낯선 도시에서 그 아이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프로듀서가 있으면 괜찮을 거야. 어느새 아나스타샤는 나를 의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지 절대적인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서 입학 첫날부터 아나스타샤가 혼다 미오의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나는 굉장히 안심할 수 있었다.

 

 마치 짠 것처럼 정해진 교실 뒤편 창가자리. 교실 안의 시선들이 모두 그곳에, 자신에게 향했다고 한다. 자그마하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누구도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다고. 그래서 아나스타샤도 일부러 고개를 숙이고 읽고 있는 책에만 집중했다. 그러는 척 했다. 고개를 들면 불안과 마주쳐야만 하니까.

 아나스타샤는 러시아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혼혈이다. 거의 서양인처럼 생긴 외모지만 스스로는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남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어린 시절을 러시아에서 자라 일본어보다 러시아어가 익숙한 소녀를 사람들은 러시아인으로 여겼다. 반대로 러시아에서는 일본인으로 취급 받았다.

 그 때마다 느꼈던 낯선 것을 대하는 행동들을 아나스타샤는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을 보는 반 아이들의 눈이 바로 그러했다고 한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한 명 씩 말을 걸어올 것이다. 예쁘게 생겼다며 서두를 떼고, 신기한 동물을 대하듯 하다가 말이 안 통하는 것을 알면 떠나가겠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일이었다. 딱히 원망할 생각은 없다고 아나스타샤는 말했다. 그들에게 자신은 종잡기 어려운 미지의 존재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건 알고 있다면서. 단지 조금 외로울 뿐이라고.

 세상 어디를 가도 저는 이방인 같았어요.

 자신과 그들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우주가 있는 것처럼 섞여들지 못하고 떠돌기만 하는 외로운 별. 아나스타샤가 생각하는 자신은 그러했다.

 아나스타샤의 일이라면 모두 해결해 주고 싶은 나였지만, 학교에선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그 아이가 느끼는 이방인의 괴로움을 나도 사무실에서 느끼고 있었고, 하필 계절은 봄이라 체질 또한 나를 괴롭혔다. 그것을 알기에 아나스타샤는 내게 짐을 안겨주기 싫어했다.

 내가 조금 더 참으면 돼, 익숙한 일이야. 마음을 움츠리며 아나스타샤는 페이지를 넘겼다. 다른 소녀가 말을 걸어온 것은 그 때였다.

 “안녕, 아나스타샤!”

 활발한 어투로 말을 걸어와 아나스타샤는 당황했다. 얼른 그 소녀의 이름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짧은 머리카락과 교복 위에 입은 핑크색 저지. 자기소개 시간에 제일 큰 목소리로 이름을 말한 소녀. 분명 혼다 미오라고 했다.

 “что()? , 미오…… 인가요?”

 “맞아. 혼다 미오! 오늘부터 같은 반 됐으니까 인사하러 왔어.”

 나와 달리 붙임성 좋은 사람. 아나스타샤가 느낀 미오의 첫 인상이라 했다. 목소리는 밝지만 내용에는 은근한 섬세함이 묻어나고 친근감 있게 다가왔다. 아나스타샤의 말을 차분히 기다려주었고, 덕분에 편안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미오는 아나스타샤가 읽던 책에 관심을 보였다. 천문학과 별자리에 관한 책으로 신화 속 이야기부터 전문적인 지식까지 다양하게 다루고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미오는 아나스타샤를 찾아와 같이 책을 읽었다. 천천히 설명해주면 미오는 어려워하면서도 금세 알아들었다.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말하다 보니 아나스타샤도 점점 말수가 많아졌다. 그런 아나스타샤를 보며 미오가 말했다.

 “아냐는 정말로 별을 좋아하는 구나.”

 그랬다. 별은 아나스타샤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어릴 적 러시아에서 하늘을 수놓은 은하수를 본 뒤로 그 아름다움에 푹 빠져버렸다. 별에 대해 조사하고 그 안에 얽힌 이야기들을 알아가며 점점 더 별을 좋아하게 되었다. 소행성에 자기 이름을 붙이고 싶다는 꿈도 생기게 되었다. 아이돌을 시작하게 된 것도 아나스타샤가 별처럼 반짝여 보인다는 나의 말이 결정적이었다. 아이돌은 별과 같은 존재니까.

 아나스타샤는 자신이 별처럼 빛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Да. 아냐는 별을 정말로 좋아해요!”

 “그렇지! 우리 닮은 것 같다!”

 두 소녀의 미소가 마주했다. 그 순간 아나스타샤에겐 지금 눈앞에 있는 소녀가 정말로 아름답고 눈부신 별처럼 보였다. 메울 수 없다고 여긴 우주의 허무공간을 건너 자신에게 다가와 반짝이는 별. 마치 유성처럼.

 프로듀서가 저를 봤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을까요? 언젠가 아나스타샤가 질문해 왔다. 분명 그럴 거야. 나는 확신을 갖고 답해주었다.

 아나스타샤에게 미오는 이 도시에서 처음으로 생긴 친구였다.

 

 *

 

 미오도 아이돌을 시작한 것은 그 해의 여름이었다. 오후에 갑작스러운 비가 내릴 것을 느끼고 내가 아나스타샤를 데리러 갔다가 우연히 미오를 만난 것이다.

 전부터 아나스타샤가 이야기를 자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첫 만남에도 서로를 알고 있었다. 나는 미오의 밝은 매력을 아름답게 보았고, 바로 아이돌이 되어달라며 명함을 건넸다.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미오는 아이돌이 되었다. 아나스타샤는 굉장히 기뻐했고, 미오는 내게 겨울P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나는 점점 더 일이 많아졌다. 이미 데뷔한 아나스타샤는 물론이고, 새롭게 미오의 데뷔까지 준비해야 했으니까. 아나스타샤와 나의 시간은 줄었지만 대신 두 여고생의 시간이 늘었다.

 좋아하는 친구와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한다는 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기쁜 일이겠지. 두 사람이 함께 웃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의 선택이 현명했다고 칭찬할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의 아름다움이 또 나에게도 강한 영향을 끼쳤으니까.

 한편으론 두 사람이 친구라는 사실에 의외라는 말이 들리기도 했다. 그도 그럴게 정반대의 성격이었으니까. 겉으로 보기에 쿨한 인상의 아나스타샤와 열정적인 미오. 별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안에서도 둘은 종류가 나뉘었다. 미오가 밝고 화려한 이미지라면, 아나스타샤는 좀 더 은은하고 조용한 이미지.

 일반적으로는 엮이기 힘들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오히려 두 사람이 끌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은 둘이 같이 노래방에 간 적이 있는데, 긴장한 아나스타샤에게 미오가 물었다. 아냐는 이런데 처음 와봐? 아나스타샤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들하고는 가끔 와봤지만, 친구랑 와본 건 처음이에요.

 “좋아하는 노래가 있어도, лирика, 가사를 따라가기 어려워서요. 아이돌의 노래는 잘 될 때까지 몇 번이나 연습할 수 있지만…….”

 그 때 아나스타샤가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다. 나와 함께 할 때도 자주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까. 주로 또래 집단에서 겪게 되는 여러 문화들로부터 그 아이는 소외되어있었다. 게임이라든지, 쇼핑, SNS 같은 것들. 천체관측에 더욱 빠진 것도 이러한 점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까.

 남들이 아는 것을 나만 모른다, 나만 하지 못 한다. 민감한 나이에 굉장히 큰 박탈감이 되었을 것이다. 비슷하게 어린 시절을 친구 없이 보내봐서 알았다. 자기 때문에 미오가 즐기지 못 하면 어쩌나, 걱정도 들었겠지.

 하지만 미오는 오히려 아나스타샤를 이끌었다. 가사 좀 놓쳐도 괜찮아!

 “무대도 아니고 노래방이잖아. 자기가 즐겁게 부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OK! 그러니까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말고 렛츠 싱잉!”

 둘이 같이 있으면 보통 이런 식이었다. 아나스타샤가 서투른 영역에서 미오가 길을 비추는 것. 나중에 가면 아나스타샤도 꽤나 적극적으로 변해 있었다. 가끔 미오의 별 것 아닌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태도 있었지만 말이다.

 둘의 관계는 학교와 매스컴에서도 나름대로 주목 받았다. 같은 학교 같은 반에 다니는 두 사람이 같이 아이돌을 했으니까. 학교에서는 꽤 명물 취급 받았고, 인터뷰를 할 때도 꼭 한 번씩은 언급되었다. 휴일도 같이 보내고.

 미오는 치바에 사는지라 도쿄까지 오려면 꽤 시간이 걸렸는데, 그래서 아나스타샤는 매번 역으로 나가 미오를 기다렸다. 약속 장소를 따로 잡아도 항상 마중 나왔다고 한다.

 이를 보고 선배 프로듀서는 이렇게 말했다.

 “아냐가 미오를 참 잘 따르네.”

 “?”

 “그렇잖아. 자기가 계속 마중 나갈 정도면. 미오가 도움을 많이 주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친구보다는 뭐라고 할까, 언니랑 동생? 그런 느낌도 난다.”

 나는 새삼스레 그렇군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 고개를 갸웃하며 ? 아니야?’하는 표정을 지었다. 서투른 말로 적당히 얼버무리고 나는 선배가 한 말을 곱씹었다. 그렇군. 남들에겐 그렇게 보이나. 일리가 가면서도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신선하게 들렸다.

 내가 보기에 저 아이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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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은 빠르다면 빠르게, 느리다면 느리게 흘러갔다.

 담당 아이돌이 또 하나 늘고 증오하는 폭염과 머리를 뒤흔드는 사건들을 지나 가을. 선선한 바람과 높고 공활한 하늘 아래에서 프로듀서 일에 익숙해지다 보니 겨울. 그리고 깊어진 계절이 첫눈을 알리는 시기. 뒤돌아보니 여러모로 많은 일들을 겪고, 때로는 휩쓸리며 지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돌들은 순조롭게 자신의 길을 찾아갔다. 나는 앞에서 길을 열거나 뒤에서 보조하거나, 가끔씩은 오히려 그 아이들 덕에 나의 길을 찾으며 한 사람의 프로듀서가 되었다. 그리고 정말 가끔씩은…… 전직을 살려 차마 말로하기 힘든 더러운 짓을 벌이기도 했다.

 후회할 새도 없이 쓰레기들에게 아픔과 괴로움을 주고, 뒤에서는 후회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내 아이돌들을 대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양 뻔뻔하게. 사실은 당장이라도 죽고 싶으면서 겉으로는 가식을 떨었다. 그래도 그 아이들을 덮치려는 더러운 피를 내가 대신 맞아줄 수만 있다면,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나는 그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정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인간이니까.

 하지만 입사 1년도 안 된 신참 프로듀서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건 아이돌 업계 그 자체를 넘어 인간 사회의 뿌리 깊은 어둠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아침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온 어느 날. 적당히 차 있는 한기에 만족하면서도 나는 석연치 않은 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왜 이러지? 수도관이 얼 날씨도 아닌데? 시답지도 않은 생각을 하며 출근하고, 평소처럼 업무를 보았으나 감은 계속 안 좋은 채였다. 날씨가 너무 좋은 나머지 오히려 더 그런 것 같았다.

 분명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그걸 파악할 수 없을 때. 대비는커녕 무슨 행동을 취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때. 나는 등에 업은 불안이 신경 쓰여 일에 집중하지 못 했다. 태어나서 감이 틀린 적은 한 번도 없었으므로 단순히 기분 탓이라며 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발달한 감이 가져온 단점 중 하나였다.

 바람이라도 쐴까. 나가려던 중 사무원 치히로에게서 전화가 왔다. 얼른 인터넷 좀 들어가 보세요! 다급한 목소리에서 이것이 내가 느낀 불안감의 정체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당장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를 확인했다. 가늘어진 눈으로 인터넷 기사 제목까지 훑어보고 나서 시간을 확인했다. 젠장. 속으로 욕을 삼키며 밖으로 나갔다. 차를 타고 단숨에 역까지 달렸다. 혹시라도 엇갈릴까봐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기다렸다.

 30분 정도 지났을 때 빠른 걸음으로 나오는 미오를 발견했다. 나는 조용히 불렀다. 미오.

 흠칫, 어깨를 떨었다. 푹 숙이고 있던 고개가 천천히 올라가더니 나를 발견하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겨울P…….

 피폐한 표정과 식은 땀, 겁에 질린 눈. 전철에서 무슨 일을 겪었을지 상상이 갔다.

 나는 얼른 미오를 차에 태웠다. 쫓아오는 남들의 시선보다 빠르게. 문이 쾅, 닫히고 시동을 걸었지만 바로 출발할 수는 없었다.

 엔진 소리에 섞여 숨 가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갑자기 다 쳐다보더라고. 무슨 일인가 했는데, 이거 나 맞느냐면서 인터넷 기사를 보여줬어. 그런데…….”

 호흡이 조이듯 말이 끊겼다. 사무실 히터 소리에 묻힐 만큼 자그맣게. 마침 치히로가 차를 갖다 줬지만 미오는 마시지 못 했다. 나는 건조한 눈으로 핸드폰 스크롤을 내렸다. 손가락을 까딱일 때마다 수준 떨어지다 못해 비료로도 못 쓸 썩어빠진 문장들이 줄을 이었다.

 과거 교우관계가 안 좋았다느니, 학교에서 사고를 쳤다느니. 심지어 매스컴에서 비춘 모습은 전부 연기라는 진위 확인도 안 된 말들. 아이돌 혼다 미오의 과거라는 제목으로 사이트에 글이 올라온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으나, 이미 인터넷은 공장에서 찍어낸 기사들로 점령된 상태였다.

 신문쟁이 새끼들 일 참 쉽게 하는군. 무엇보다 나를 분노케 한 것은 망할 놈의 댓글들. 저열한 인성과 스스로의 질 떨어지는 의식 수준을 익명 뒤에서 자랑하는 녀석들이 회사 홈페이지까지 쳐들어와 오물을 뿌려댔다.

 1시간. 치바에서 전철을 타고 회사 근처 역까지 걸리는 시간. 그 동안 쏟아지는 원치 않는 시선에 짓눌려 미오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겁에 질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몸을 움츠리고 있었을 아이를 생각하니 분노와 자책이 밀려왔다.

 사실 언젠가는 한 번 터질 일임을 알고 있었다. 그게 지금인 줄 몰랐을 뿐. 나는 미오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의 미오는 무리해서 남들의 호감을 사려는 경향이 있었다. 재능이 많아 여러 부활동에서 도움을 구하자 하나도 빼지 않고 도와주고, 성적은 항상 상위권으로 유지하면서도 교우 관계에서조차 빠지지 않았다. 아나스타샤는 그런 미오를 대단히 여겼으나 한편으로는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하루 동안 두 소녀와 같이 다니며 미오를 관찰했고, 이 아이가 과거에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과거 이야기를 꺼리고, 1시간이나 떨어진 학교로 통학하면서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는 이유.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행동이었다.

 당시에는 잘 해결하였으나 한편으로는 계속 걱정이었다. 미오가 유명세를 얻는다면 괴롭히던 녀석들이 가만히 둘 리가 없었으니까. 불행히도 예상은 정답이 되어 지금 문제를 일으켰다. 인터넷에서 퍼지는 악성 루머들. 어떻게든 이 아이를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이라도 난 것 같은 혐오정서. 이렇게라도 이유를 마련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시키려는 거겠지.

 마음 같아서는 진원지를 찾아 쳐부수고 싶지만, 그래봤자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 전에 지금 신경 써야 하는 건 미오였다.

 “미안. 겨울P. 치히로 씨.”

 죄책감. 미오의 안에 자리 잡은 감정을 나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일이 터지고부터 회사는 비상에 걸렸다.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리고, 난장판이 된 홈페이지를 정리하느라 바빠졌다. 광고를 끊겠다는 업체들도 있었다. 그것을 아는 만큼 미오는 아파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자기 때문이라며.

 “아니야.”

 또박또박 강하게 말했다. 네 탓, 아니야.

 “이게, 왜 네 탓이야? 자책하지 마. 우리가 전부, 해결할 테니까.”

 “맞아요. 미오의 잘못이 아니에요. 나쁜 건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고, 잘 알지도 못한 채 떠드는 사람들이죠.”

 나와 치히로는 최대한 위로하려 애썼다. 애쓰면서 스스로의 무력함을 깨달았다. 이 따위 말 밖에 해주지 못한다니. 그럼에도 미오가 살며시 웃어주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일단, 오늘은 쉬어. , 데려다줄게.”

 “괜찮은데. 일정이라 해봐야 레슨 밖에 없잖아.”

 “너 지금, 레슨 할 상태 아니야. 하루라도 좋으니까, 푹 쉬어.”

 “…… 응. 고마워.”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보냈다. 미오가 없으면 오늘 레슨은 무의미하니까. 다른 애들에게도 회사에 오지 말고 쉬어두라고. 괜한 사견을 붙이지 않고 간단히 내용만 전했다.

 바로 미오를 데려다주려 했는데 선배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나와 미오를 번갈아보더니 한숨 쉬며 말했다.

 “위에서 잠깐 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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