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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 「고독」

댓글: 5 / 조회: 701 / 추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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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03, 2018 16:01에 작성됨.

 

 니노미야 아스카(二宮 飛鳥).

 

 중학교 2년생, 아이돌. 나이, 14살.

 

 생일, 2월 3일. 별자리, 물병자리.

 

 신장은 154cm. 체중, 42kg. 

 

 혈액형, B형. 잘 쓰는 손─ 오른손.

 

 취미, 헤어 어레인지.

 

 취미2, 인물화 그리기.

 

 취미3, 라디오 청취하기.

 

 취미4, 프로듀서 괴롭히기.

 

 좋아하는 음식. 딱히 없음. 좋아하는 소설. 딱히 없음.

 

 좋아하는 음악. 80년대 음악.

 

 좋아하는 영화. 80년대 영화.

 

 좋아하는 과목. 수학.

 

 좋아하는 동물. 늑대.

 

 좋아하는 친구. 어느정도 있음.

 

 좋아하는 동료. 어느정도 있음.

 

 좋아하는 어른. 프로듀서 1명.

 

 좋아하는 이성. 프로듀서 1명.

 

 

 사랑하는 사람.

 

 프로듀서 1명.

 

 

 

 그런 니노미야 아스카.

 

 그런 정도의 니노미야 아스카.

 

 

 

 ─나는 지금, 공원 한가운데를 걷고 있다.

 

 


GmaTrYC.jpg  

 

 

 「...추워」

 

 늦은밤이라고 해도, 아니. 늦은밤이어서 더더욱 춥게 느껴지는 걸까.

 

 살짝 가벼운 옷차림에, 바지도 꽤나 얇은 재질의 것을 가져와서 그런지 밤바람이 피부에 아렵게 느껴왔다. 조금 더 늦게 나왔으면─ 예를 들어 2시간 정도 후에 나왔으면, 오래 견디지 못하고 집에 들어가야 할만한 상황이었지만.

 

 「...그정도까지는 아닌가?」

 

 하품을 하며 길을 걸었다. 양손을 녹이며 길을 걸었다.

 

 오후 9시 30분, 착한 아이들은 모두 집 안에 돌아가 있는 시간대.

 

 ...인데도, 이상하게 사람이 많다. 정확히는 많다기보단 어느정도 존재한다. 책가방을 메고 돌아다니는 학생들, 지친 얼굴로 집을 향하고 있는 어른들.

 

 애정행각을 벌이는 커플들, 대형견를 산책시키는 주민들. 커다란 솜사탕을 팔고 있는 아저씨, 그리고 그런 아저씨를 따라다니는 귀여운 어린아이...들? 

 

 개인적으로는 커플들이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

 

 이런 늦은 시간에─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건 나 혼자만의 착각일 뿐이고, 그들에게는 이정도의 어스름 따위 전혀 두렵다고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불빛은 밝고, 사람은 많고.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두 가지를 완벽하게 극복해낸 그들은 늦은 밤 공원 위를 자유롭게 걸어다니고 있었다.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지배하고 있다...고 표현해도 괜찮지 않을까. 느낌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조금 말이 과했다고 느껴지질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나, 니노미야 아스카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말이다. 

 

 인간들의 지배.

 

 지배하는 인간.

 

 그리고 지배당하고 있는...공간? 장소? 비슷한 말이니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해도, 그것이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 공원이라는 점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겠지만. 그 조용한 공원 속을 걸으며, 나는 쓸데없는 의문 한 가지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런 공간.

 

 그런 장소.

 

 사람들이 지배하는 장소. 

 

 사람들이 함께 지배하는 장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는 장소. 존재하고 있는 장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밖으로 나오는 것도 하등 문제될 이유가 없지만 그런 사람들과 연관되는 것이, 그런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확정적인 장소. 확정되어 있는 장소.

 

 고독하지 않은 장소.

 

 외톨이가 불가능한 장소.

 

 그런 공간 속의 나.

 

 그런 장소 속의 나.

 

 

 

 

 

 

 ...이 공원에서, 나는 지금 대체 무엇을 하려 온 것일까?

 

 「그러게, 뭘 하려 온 걸까?」

 

 자기 자신에게 반문하는 것도 제 3자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우습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그 시점에서 나는 당연하게도 깨닫고 있었다...만. 그냥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일일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는 것도 귀찮을 뿐더러, 애초에 내 작고 작은 목소리를 의식하는 행인 따위 지금 이 공원 안엔 존재하지 않으니까. 

 

 ...아니, 오히려 내가 의식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목소리를.

 

 이 공원 안에서 들리는, 내가 알고 있는 목소리를.

 

 희미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아스카'

 

 나를 찾는 듯한 목소리를.

 

 「......」

 

 나는 아무 말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터벅.
 터벅터벅.

 

 늦은 밤, 공원의 불빛은 아직도 밝게 빛나고 있다.

 

 

 

 

 

 

 

 

 

 

 

 -------------------

 

 

 그렇게 조용히 걷고 있던 도중, 한 40분 정도가 지났을까. 슬슬 두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할 때 문득 눈앞에 의자가 보였다. 

 

 「......」

 

 앉아있는 사람도, 놓여있는 물건도 무엇 하나 없는 단순한 공원 의자. 먼지도 없고 부러진 곳도 없고, 마침 주변에는 행인들은 물론이고 지나가는 고양이 한 마리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그야말로.

 

 그야말로 나를 위해 준비된 의자였다...고 할 수 있다.

 

 「......」

 

 나는 잠시동안 그 의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민했다.

 

 ...너무 준비가 잘 되어있는 것 아닌가?

 

 「...찾아오는 행운은 거절하지 않아」

 

 정말로 단순한 행운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비틀어놓은 백사(白蛇)같은 악의의 산물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겠으나... 일단 지금은 좀 쉬고 싶다, 는 것이 내 솔직한 본심이었으므로. 그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나는 조심스레 의자에 앉았다. 

 

 ...따듯했다. 이상하게도 따듯했다.

 

 누군가가 앉아있던 걸까─같은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여전히 내 주변에는 그 누구도 눈에 띄지 않았다. 막연한 가로등 불빛만이 환하게 빛나며 그 존재를 주장하고 있을 뿐...인데. 

 

 타이밍이 어긋났거나, 아니면 이미 공원 저 먼 곳으로 가버렸거나. 어차피 둘 중 하나겠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그녀?)를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해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정확히는 아쉬움이랄까, 궁금증이었지만.

 

 누구였을까. 이곳에 앉아있던 사람은.

 

 나는 자리에 앉아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구일까, 누구일까」

 

 밤바람은 불어오지 않는다. 

 

 의자 위의 온기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내 생각도, 내 관념도. 

 

 사라지지 않고, 소멸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조금씩 눈덩이를 이루며 차가운 머릿속 내부를 휘저어가기 시작했다.

 

 「누구일까, 누구일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어른일까, 청소년일까?

 

 

 

 직업은? 사는 곳은? 나이는? 키는? 친구는 있을까? 동성친구? 이성친구? 좋아하는 물건은? 좋아하는 사람은? 음식 만화 소설 영화 스포츠 게임 음악 친구 만약 좋아한다면 이유는 뭘까? 원인이 뭘까? 성격은 소심한지, 활발한지. 음침한지, 쾌활한지. 과묵한지 달변인지 세심한지 온건한지 바보인지 천재인지 정도인지 외도인지 나는 좋아할까? 나는 좋아하고 있을까? 알고 있을까 보고 있을까 듣고 있을까 생각하고 있을까 아는 사람? 보는 사람? 듣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그사람인지 그사람인지 그사람인지 그사람인지 그사람인지 그사람인지 그사람인지 그사람인지 여기 온 이유는 어떻게 되고 여기 앉은 이유는 또 어떻게 되고 어째서 가버린 건지 어째서 만나지 못한 건지 어째서 손잡지 못한 건지 어째서 껴안지 못한 건지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다.

 

 「......」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다.

 

 

 

 

 

 

 

 

 

 

 

 「...당연하잖아, 이런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로 당연하게도, 내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야. 이럴 때 짠, 하고 나타나주지 않으려나 하고」

 

 나는 그렇게 자조섞인 혼잣말을 던졌다. 이 혼잣말조차도, 결국은 누군가가 되받아쳐주기를 바라고 던진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다.

 

 「...고독함」

 

 고독함.

 

 고독함.

 

 고독함.

 

 고독함.

 

 「싫어」

 

 툭 내뱉듯이 던져보았다. 싫다고? 무엇이? 머릿속에서 그런 반문이 들려왔다. 고독함. 다시 한번 반복하자, 뜨거워진 머릿속에선 나를 향한 질문들을 폭풍같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당혹감이 번져간다.

 

 어째서?

 

 왜?

 

 무슨 이유로?

 

 갑자기 무슨 일이야?

 

 

 아니었잖아.

 

 너는.

 

 아니었잖아.

 

 너는.

 

 아니었잖아.

 

 너는.

 

 아니었잖아.

 

 너는.

 

 

 

 

 「...그만해」

 

 이제, 나는 아니야.
 
 나는 그렇게 자기 자신한테 토해냈다.

 

 

 

 

 ─가로등 불빛은 이미 꺼져있다.

 

 온몸에 피로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무엇이 아닌지, 무엇이 아니었는지─ 는 여전히 불분명한 채로, 나는 따스했던 온기에 몸을 맡기고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아스카」

 

 그리고 눈을 떴다.

 

 「아스카」

 「프로듀서」

 

 그렇게 되뇌어보았다. 

 

 인물의 직함을, 정확히는 내 눈앞에 서있는 어떤 인물의 직함을.

 

 「찾고 있었어, 아스카」

 

 그는 그렇게 말했다.

 살짝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는 멍하니 있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

 

 나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어라. 무슨 일이야 아스카? 혹시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

 

 실없는 농담을 하며 자기 얼굴을 매만지는 그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안 묻었는데...흐음, 아스카. 뭐 잘못 본 거 아냐?」

 

 아무 말도.

 

 「...아스카? 무슨 일 있었어? 왜 말이 없어?」

 

 아무 말도.

 

 「아스카, 아스카」

 

 「아스카, 아스카」

 

 그 사람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큰일났네. 우리 아스카가 말을 하지 않아」

 

 여전히 나는.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아스카, 아스카」

 

 「아스카, 대답 좀 해줘, 아스카. 정말로 걱정되잖아」

 

 「...으음. 아, 좋은 생각이 났다」

 

 

 

 

 

 

 

 

 츄.

 

 

 

 

 

 

 


 「.......................................」
 「...오, 효과가 있나? 얼굴이 새빨개졌─ 아, 아얏!! 아파 아스카!!!」

 

 꽈악.

 

 「아아아악!! 진짜 아파!! 엄청 아파, 아스카!」

 

 ......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아파, 아스카!!」

 

 ....거야

 

 「아파!! 아파!! 아파!! 죽을만큼 아파!!」

 

 ...나쁜 거야.

 

 「아파!! 진짜진짜 아파!! 아스카, 그러니까 그 표정으로 꼬집는 것 좀 그만 해줘!!!」
 「...전부 다 네가 나쁜 거야」
 「그래, 미안했으니까─!? ...어?」

 

 그 사람은 우뚝 멈춰섰다.

 

 「어? 어? 말, 꺼내도 되는게」
 「짜증나」

 

 툭 던져보았다.

 

 「...에?」
 「짜증나」

 

 툭 던져보았다.

 

 그 사람에게, 가까히 다가가면서.

 

 「짜증나」

 

 툭 던져보았다.

 

 「짜증나」

 

 툭 던져보았다.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아스카」

 

 심장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짜증나. 짜증나, 짜증, 짜증나...」

 

 하나씩 하나씩, 밑바닥부터 그러모아.

 

 「짜증...으읍, 짜...흐끅, 짜증나」

 

 더이상 남아날 것이 없도록. 더이상 토해낼 것이 없도록.

 

 「으으...흐끅, 으아....으아앙...」

 

 더이상 아프지 않도록. 더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으아앙...흐끅, 으아아아아아앙...!!」
 「아스카...」

 

 어째서일까.

 

 정신이 들고 보니, 내 눈가에선 눈물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으아앙...으아아아앙...!!」
 「미안해, 아스카」

 

 그 사람은 울고 있는 나를 끌어당겨 자신의 품에 안았다. 그리고 내 등을 토닥이며, 위로의 말을 귓가에 속삭여주었다.

 

 따뜻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사람의 왼쪽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아주 약간의 차가움까지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흐끅, 으아아아앙...으아아아아아아아아앙!!!」

 

 나는 더욱 더 심하게 울었다.

 

 마치 아기처럼.

 

 불공평한 현실을 처음으로 마주한,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미안해...미안해 아스카. 다 내 잘못이야」

 

 그는 사과한다. 무엇을?

 

 그는 사과한다. 누구에게?

 

 그는 사과한다. 어떤 이유로?

 

 「아, 으...흐끅, 으아아앙...!!」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울어간다.
 그래서 무너져간다.

 

 「흐끅, 흐으읍......흐끅」

 「미안해, 아스카...미안해...」

 

 끝은 어디일까, 이 밤의 끝은 어디일까.

 

 끝은 어디일까, 이 고독의 끝은 어디일까.

 

 

 

 

 가로등 불빛이 깜박거렸다.

 

 밤바람이 다시 불어오기 시작한다.

 

 

 

 

 

 

 

 

 

 

 ...프로듀서는 여전히 내 등 뒤를 토닥이고 있다.

 

 

 

 

 

 

 

 

 

 

 

 

-------------------

 

 

 「자, 여기 손수건」
 「...훌쩍」

 

 팽.

 

 훌쩍.

 

 「여기, 잘 썼어」
 「가져도 돼. 난 여분이 많으니까」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손수건 2개를 꺼내보였다. 언뜻 들여다보니, 꽃잎같이 아름다운 자수가 두 장 모두 세세하게 박혀있었다.

 

 ...수제겠지, 아마도.

 

 「......」
 「...아, 안돼. 또 울면 곤란해, 아스카.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아니 사회적으로도 네 울음은 남성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있지만, 더이상은 무리야. 그래, 주로 내 양복 쪽이 무리야」
 「안 울어. 유난 떨지마」

 

 크흥.

 나는 코를 훌쩍이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프로듀서.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아무한테도 알린 적이 없는데, 내가 여기 있다는 걸.

 

 「그냥. 왠지 여기 있을 것 같았어」

 「단순히 느낌만으로?」

 「여긴 그곳이잖아? 우리가 처음 만났던 장소」

 「......」

 

 프로듀서는 옛 시절을 추억하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휘파람 소리...였던가. 너를 따라왔던 이유가. 이야, 그때는 참 천진난만 했었는데~」
 「누가? 내가, 아님 프로듀서가?」
 「둘 다」

 

 프로듀서는 그렇게 힘주어 대답했다.

 

 「......」
 「......」

 

 우리 둘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읏」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슨 상상을 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상대방이 어떤 마음이 있는지, 무슨 감정이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와 프로듀서는 꺼내야할 다음 화제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작은 낙엽 한 줄기가 길바닥에 떨어졌다.

 

 「...프─」
 「미안해, 아스카」

 

 프로듀서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더는...안될 것 같아. 지금 하고 있는 일만으로도 벅차」
 「......」

 

 나는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연인 놀이는...이제 끝이야. 미안해, 아스카」

 

 

 

 

 ─그 말.

 

 오늘 들어 두번째로 듣는, 그 끔찍한 말.

 

 「...다시 듣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지. 프로듀서는 잔인하네」

 「내가 해야할 일이니까」

 

 프로듀서는 슬픈 표정으로 대답했다.

 

 정말로.

 

 정말로, 그 표정은 슬퍼보여서, 약간의 자조를 담아서 던졌던 내 말이 어느 순간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지만.

 

 「끝...인가」

 

 끝.

 

 end, the end.

 

 「실감나지...않아, 프로듀서」
 「......」

 

 알면서도.

 

 이런 말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나는.

 

 「인정하기...싫어. 왜, 도대체 왜 우리가─」
 「그래야만 하니까」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만 하니까, 아스카.

 

 「......」
 「미안해, 이런 말밖에 못 해줘서. 하지만 이게 우리가 가야할 길이야」

 

 단호한 목소리.

 여전히 슬픈 표정이지만, 그래도 확신이 담겨있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고서 나는, 니노미야 아스카는 그제서야 이별을 실감했다.

 

 「......읏」

 

 싫어.

 

 싫어.

 

 싫어...

 

 

 

 다시 흘러나오는 감정.

 다시 쏟아지려는 감정.

 

 그 가슴 찢어지는 슬픔을 억지로 되집어 넣은 채, 나는 공원 위의 하늘을 멍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아무 의미 없는, 그저 어딘가로 눈을 돌리고 싶은 내 자그마한 발악. 

 

 머리 위에선 커다란 동그라미가 빛나고 있었다. 밝게, 아주 밝게. 주위의 어둠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제 혼자 자기 가야할 길을 가겠다는 듯이.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프로듀서」
 「응?」
 「별이 안 보여」
 「......」

 

 나는 토해내듯 말했다.

 

 「별이 안 보여. 달은 있는데, 별빛이 보이지 않아」

 

 쓸쓸해 보여.

 

 나는 그 말을 하고 다시 프로듀서에게 눈을 돌렸다.

 

 「무서워 보여, 프로듀서」
 「...아스카, 나는─」

 

 프로듀서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대답은 중간에 끊기고,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침묵.

 

 침묵.

 

 침묵.

 

 

 

 

 

 

 

 

 

 

 

 

 

 

 ...싫어, 이런 건.

 

 

 

 

 

 

 

 

 

 

 

 

 

 

 저런 표정, 보고 싶지 않아.

 

 

 

 

 

 

 

 

 

 

 

 

 

 

 이렇게 끝내도 되는 걸까?

 

 

 

 

 

 

 

 

 

 

 

 

 

 

 ...될 리가 없잖아, 바보같이.

 

 

 

 

 

 

 

 

 

 

 문고리를 돌린 건, 내 작고 작은 이야깃소리.

 

 「...프로듀서, 알고 있어?」
 「?」

 

 내가 여기 온 이유.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이 공원에 혼자 찾아온 이유.

 

 프로듀서는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그야 당연하지. 아까도 말했다시피 여기는─」
 「그것뿐만이 아냐」

 

 그것뿐만이 아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
 「물론 그것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냐」
 
 중요한 것.

 

 연인과의 오래된 추억보다, 중요하고 더 먼저 다뤄져야 하는 것.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이야, 프로듀서.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무엇을?」
 「고독을」
 「......」

 

 프로듀서는 입을 다물었다.

 

 「이상하지? 내가, 니노미야 아스카가 이런 말을 하는 모습이」

 

 나는 자조하듯 말했다.

 

 이별 통보를 듣고 절망한 채 공원 속을 떠돌지 않나.

 기껏 만난 연인 앞에선 펑펑 울기만 하고. 

 

 「이제는 어린애처럼 투정부리기까지...푸흡, 모양 빠지네」
 「아스카, 그건」
 「─나는 약해졌어, 프로듀서」

 

 나는 나약해졌어, 프로듀서.

 이전과는 다르게, 예전과는 다르게.

 

 「혼자 있을 수 없어. 혼자서 살아갈 수 없어」

 

 혼자서, 혼자서, 혼자서ㅡ

 

 고독한 채로, 혼자서 살아갈 수 없어.

 

 「......」
 「변해버린 거야, 나는」

 

 달라져버린 거야, 나는.
 이전과는 다르게, 예전과는 다르게.

 

 「프로듀서가 없으면 안돼. 프로듀서가 없다면 살아갈 수 없어」

 

 혼자서, 혼자서, 혼자서ㅡ

 

 외로운 채로, 혼자서 살아갈 수 없어.

 

 「아스카」

 

 프로듀서가 내 이름을 불렀다.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푹 숙인 채.

 

 「...걱정하지마. 프로듀서의 탓이 아냐」

 

 이런 모습을 싫어한다는 말도 아니고.

 

 나는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남의 도움을 받는 걸 싫어하고.
 무엇이든 혼자 해결하려 하면서ㅡ 그렇게 상처받았던 이전 날들.

 

 

 

 ...그 때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해, 진심으로.
 
 「......」
 「하지만 프로듀서, 그건 지금도 그런 걸까?」
 「......!」

 

 질문.
 흉터를 헤집어 놓는, 그런 질문.

 

 「지금도 그런 걸까. 아니,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한테 차이고, 연인과의 연결점을 부정당한 상태에서도. 

 

 나는, 니노미야 아스카는...그와 함께했던 모습 그대로인 걸까?

 

 

 

 프로듀서가 고개를 들었다.

 

 「...아스카, 그건」

 

 그는 뭔가 말하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
 「고집...일지도 몰라, 미련일지도 몰라」 

 

 아마도 이어져야했을 말들.

 

 「고집일지도 몰라, 미련일지도 몰라. 하지만 프로듀서, 난 그것만은 확인하고 싶었어」

 

 멀어지면 아쉬워하고.

 가까워지면 행복해하고. 

 

 연락이 안되면 불안해하고.
 단 둘이 있으면 즐거워하고.

 

 그런 마음.

 

 자연스러운 마음.

 

 변해버린 마음.

 

 간직하고 싶은 마음.

 

 「과연...그대로일까, 프로듀서?」
 「아스카」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눈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다시 변하고 싶지 않아. 변해버리고 싶지 않아」

 

 나도 그를 바라보았다.
 눈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싫다고, 그런 건」

 

 프로듀서가 없어도 웃을 수 있는 나.
 프로듀서가 없어도 즐거울 수 있는 나.

 

 프로듀서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나.
 프로듀서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나.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정말로.

 

 

 

 

 「......」
 
 프로듀서는 멍하니 눈을 뜨고 있었다.
 
 「그래서 찾아온 거야, 이곳에」

 

 확인하고 싶었어.

 

 나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 공원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 정확히는 어느 정도 존재했다.

 

 학생들, 상인들, 주민들, 직장인들. 
 행인들, 커플들, 어른들, 어린아이들.

 

 환한 가로등과, 가끔씩 불어오는 차가운 밤바람까지. 

 

 

 외로움 같은 건...보통 사람이라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장소겠지만.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말이야ㅡ」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이 복잡한 공간 속에서도.

 

 고독에 두려움 떨며,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기억 속을 헤멜 수 있다면. 

 

 프로듀서와 함께하면서.
 프로듀서와 함께 살아가면서.

 

 프로듀서와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했던 수많은 것들 전부ㅡ

 

 내 가슴 속에 소중하게.

 아주 소중하게, 하나도 남김없이 박혀있다는 말이니까.

 

 

 

 

 

 

 

 

 

 

 

 

 

 

 

 

 

 

 「아직도 사랑해, 프로듀서」

 

 

 

 

 

 

 

 

 

 

 

 

 

 

 

 

 

 

 「...아스카, 다시 말하고 싶지 않아」

 

 프로듀서는 울음을 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고 있어. 그러니까ㅡ」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건 내 마지막 소원.

 

 

 나는 손을 뻗어 프로듀서의 팔을 붙잡았다.

 

 「부탁해, 프로듀서」
 「......」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몸을 감싸고 있던 외투를 조금씩 잡아내렸다.

 

 「부탁해, 프로듀서」
 「...아스카. 이건─」
 「오늘만이야. 그러니까 부탁해, 프로듀서」

 

 나를 혼자 내버려두지 말아줘.

 

 나는 마지막 진심을 담아, 내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그렇게 말했다.

 

 

 

 

 「......」

 

 프로듀서는 잠시 침묵했다.

 

 그는 오랜 시간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후 포기한 듯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마워」

 

 프로듀서가 천천히 내 곁으로 다가왔다.

 

 프로듀서가 천천히 내게 입을 맞추었다.

 

 프로듀서는 천천히───

 

 프로듀서는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

 


 ─

 

 

 

 

 

 

 

 

 

 

 

 

 

 

 

 

 

 

 

 

 

 

 


 ...의자의 온기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完
 

 

 

생일 축하해, 아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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