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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S Rainbow] 치에리 - 1주차 일상 '동경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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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2, 2013 21:09에 작성됨.

“…….”

“…….”

내가 오가타 치에리를 프로듀스 하게 된 첫 날, 첫 미팅.
치에리와 나, 두 사람 모두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치에리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나 혼자서만 치에리를 바라보고 있는 거지만.

그렇게 아무 말 없이 10분이 흘렀다.
치에리는 불안한 표정으로 내 시선을 이리저리 피하며 우물쭈물 거리고 있을 뿐이었고, 나는 어디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계속해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었다.

10분이 더 흘렀다.

그리고 거기서 또 5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미팅은 여기서 끝.”

“에……?”

치에리는 그제야 불안한 표정 일색에서 얼굴빛을 바꿨다. 그녀의 표정에서 드러난 감정은 당연하게도 의아함이었다.

“저기…. 프, 프로듀서….”

“드디어 날 부르는군. 그래, 왜 부른 거냐.”

“저…. 미팅은….”

“말했잖아, 끝났다고.”

“저기…. 그, 그러니까……. 오늘 제 일정은 어, 어떻게….”

그게 궁금하겠지.
나는 입가에 슬쩍 미소를 지으며 들고 있던 서류를 치에리의 앞에 던져놓았다. 그러자 녀석은 흠칫 놀라며 나와 서류뭉치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자, 그 서류에는 오늘 네가 갈 수 있는 곳, 음…. 그래,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항목이 세 가지 있다. 그리고 남은 한 가지 선택지는 오늘 유일하게 네가 받을 수 있는 보컬 레슨이 있겠지.”

“네에…?”

“자, 그럼 네가 직접 선택하도록. 오늘 오전오후 스케줄은 네가 직접 정하는 걸로 한다.”

“엣? 그, 저기…. 그러니까…….”

“빨리빨리 정해, 곧 오전 스케줄 시작이란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퉁명스럽게 말하는군, 하지만 이게 내 성격인 걸 어쩌리.
치에리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서류들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다.

“읽는 게 느리잖냐.”

“아, 그, 죄, 죄송합니다…….”

뭐든 스스로 판단해야 자신감이 생기는 법이다. 이 녀석이 이렇게 소심한 이유를 나는 일단 자신감 결여로 인한 것으로 생각해보기로 했기 때문에(척 봐도 그렇게 보이긴 한다만.), 내가 프로듀서로서 치에리에게 해줄 첫 번째 레슨은 바로 자신감을 키우는 내 나름대로의 훈련으로 정했다.
조금 스파르타식인 감이 없잖아 있지만, 나도 이렇게 배웠으니까.

내가 치에리에게 준 서류들은 각각 미니 라이브, 악수회, 잡지 인터뷰. 아이돌 후보생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자신을 알리는 영업이다.
하지만 그래도 말이지, 이런 소심한 녀석들의 성격상 일단 앞으로 닥친 오전 일과부터, 그러니까 급한 불부터 끄기 위해 오전 일과는 당연히 보컬 레슨으로 잡고,

“오, 오전은…. 레슨을 받을게요….”

그리고 그나마 사람을 적게 만날 수 있는 잡지 인터뷰로 오후 일과를 소화하려 하겠지.

“그리고 오후는……. 오후는 자, 잡지 인터뷰로…. 부탁드릴게요…….”

척하면 척이군. 정말 예상하기 쉬운 패턴의 녀석이다.

“좋아, 그럼 네가 말한 대로 오전은 보컬 레슨, 오후는 잡지 인터뷰다. 그럼 슬슬 레슨 준비부터 하도록 해.”

“네…….”

그럼 일단 치에리는 잡지사 인터뷰로 하고, 나머지 일들은 다른 아이돌들에게 맡겨야겠군.

 

“자, 오가타 씨. 일단은 오가타 씨가 가장 좋아하는 곡을 불러보세요.”

“아, 네….”

트레이닝복을 입은 치에리는 트레이너의 권유에 살짝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멀찍이서 오후에 있을 잡지 인터뷰를 위해 기자와 통화를 마친 나는 치에리의 입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이 첫 레슨이 앞으로 이 녀석을 어느 노선으로 키워낼지 판단하게 될, 치에리에겐 그저 레슨에 불과하지만 나에게는 꽤나 중요한 한 걸음이기 때문이다.

트레이너는 내 부탁에 따라 곡을 직접 정해주지 않고 치에리에게 원하는 곡을 직접 선택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것은 곧 ‘스스로 판단하는 훈련’의 연장선상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녀석이 무슨 곡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가 이 녀석을 인도할 방향을 정할 수 있으니까, 이다.
뭐, 이 녀석 성격상 무난한 곡을 선택하려 할 게 분명하다. 갑자기 깨는 곡을 부를 생각도 용기도 없겠지.

“그, 그럼…. 부르겠습니다….”

치에리는 약간 자신 없는 표정으로 트레이너를, 그 다음은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눈을 꼭 감고 노래했다.
문득 정신이 드니 어느새 비는 그치고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어

 


호오? 이건….
‘바람과 구름과 나’로군. 지금은 명실상부한 톱의 자리에 올라서 있는 765프로의 하기와라 유키호가 지금만큼의 명성이 없던 시절 커버한 적도 있던 곡이다.
그리고 이 곡의 가사대로라면….


내가 있어 언제부터인가 여기에
눈부시게 혼자 서있어
그때 보이지 않았던 내일에
내가 있어
조금 젖은 눈을 닦고 혼자 걷기 시작해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굳이 저 노래를 선택한 이유는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라서, 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런 자리에서 저 노래를 선택했다는 건 그만큼 이 노래를 많이 불렀기 때문에, 이 노래라면 나와 트레이너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 자신이 있기 때문에, 라는 거지.
그리고 보통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물론 곡 자체가 좋은 것도 있겠지만, 가사가 좋아서라는 이유도 역시 존재한다. 치에리 같은 소심한 아이가 저런 노래를 좋아한다는 건 십중팔구 가사일 테고, 이 노래의 가사처럼 자신도 바뀌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나는 좋아 어떤 아침이더라도
쓰러져버릴 것 같더라도
어제보다 더 앞을 바라보고 있어
내일이 좋아 아주 조금
나의 하늘이 보이는 내일이 정말 좋아


노래를 할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더 밝은 표정을 짓던 치에리는, 곧 다시 평소의 자신으로 돌아와 우물쭈물하며 나와 트레이너의 얼굴을 이리저리 주시하기 시작했다. 

“노, 노래…. 끝났습니다….”

트레이너는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을 뿐이었기에, 그에 대한 평가는 내가 해야만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이돌은 아이돌이로군. 좋아, 내 우려를 불식시켜주는 멋진 솜씨였다. 잘했어.”

누군가를 이끄는 입장인 사람은 무릇 자기가 이끌어야 할 사람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돈이랑 칭찬을 마다하는 사람은 이 지구상을 탈탈 털어도 없을 것이다.

“가, 감사… 합니다…….”

치에리 역시 내 칭찬에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방금 그 미소 좋은데, 이따 오후 인터뷰 때도 그런 미소라면 문제없으리라 생각한다.”

“앗, 네…. 노, 노력해 볼게요….”

내가 생각한 이 녀석 최고의 무기는 바로 가끔씩 보여주는 저 미소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녀석은 일을 할 때에 단점이 훨씬 많아 보이지만 그 일이 아이돌이라면 상황은 달라져서, 일단 ‘겁 많은 가녀린 미소녀’라는 점에서 아이돌의 주 고객층인 남자들의 보호본능을 미친 듯이 자극하게 된다. 여자들에게 모성본능이 있다면 남자들에게는 보호본능이 있어서, 저런 가녀린 여자아이를 보면 보호해주고 싶은 충동이 폭발하게 된다는 거지.
이야기가 잠시 샌 것 같지만 어쨌든, 그런 여자아이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본다면?
이야기는 끝났다. 남자들은 그 미소를 지켜준답시고 청중들 한가운데서 연설 중인 미합중국 대통령의 멱살을 잡게 된다고 하더라도 기꺼이 할 것이다. 비유가 조금 이상하지 싶지만.

“프로듀서…?”

“응? 아, 그래. 점심부터 먹고 슬슬 기자랑 약속한 곳으로 가야겠군.”

“네에….”

내 몇 걸음 뒤에 서서 내 뒤를 따르는 치에리를 흘끗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녀석은 이런 성격에 어쩌자고 아이돌이 되려는 것일까.
언젠가 알게 되겠지. 아니, 알아야 한다. 나는 이 녀석의 프로듀서니까.

 

점심을 대충 먹고 약속한 카페로 가는 차 안, 조수석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치에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프로듀서…?”

“그래, 말해라.”

“죄, 죄송하지만….”

“뭔데? 설마 이제와서 생리현상이 급하다던가.”

“그, 그, 그건… 아니에요……. 저기…. 라, 라디오 채널…. 바꿔주셨으면 해서요…….”

“하아…. 정말이지, 그게 그렇게 어려운 부탁이냐?”

“죄송합니다….”

“죄송할 필요까진 없지만. 그래, 어디로 바꿔줄까?”

“아, 제가… 바꿀게요….”

치에리의 작은 손이 내 카오디오의 채널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이 멈춘 곳은 다름 아닌….

[네, 키쿠치 마코토와.]

[하기와라 유키호의.]

[[블랙&화이트 라디오, 지금 시작합니다!]]

하긴, 이거 요즘 애들 사이에서 안 들으면 간첩이라더라.
765프로의 톱 아이돌 두 사람이 진행하는 라디오니까.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의 첫 신청곡인 하기와라 유키호의 ‘Kosmos, Cosmos’부터 듣도록 하겠습니다.]

키쿠치 마코토의 멘트에 치에리의 표정이 살짝 밝아진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으나,

“코스모스 코스모스~”

치에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을 들으며 살짝 놀랐다.
그런가, 아까 부른 것도 그렇고 설마.

“치에리 너 하기와라 유키호의 노래를 좋아하는 모양이구만.”

“아, 네…. 좋아… 해요….”

아 그래…. 그러고 보니 하기와라 유키호는… 그랬었지.

“너, 하기와라 유키호의 노래가 좋은 게 아니라 하기와라 유키호라는 아이돌 자체를 좋아하는 거였군, 안 그래?”

그러자 치에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것도 꽤나 귀여워서 먹힐 것 같은데.

“네…. 맞아요….”

그렇담 대충 그거군. 이 녀석이 유키호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 그게 바로 이 녀석이 아이돌이 되려 하는 이유와 일맥상통까진 아니더라도 아예 없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하기와라 유키호의 아이돌이 된 이유가 바로 ‘나약한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니까.
물론 치에리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래서 자신이 동경하는 하기와라 유키호처럼 자신 역시 아이돌이 되면 약한 자신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그렇다면 이 내가 아이돌로서도, 아이돌이 되려는 본래의 목적으로서도 여러 방면으로 도와줄 수가 있겠군.

“걱정 마라, 치에리.”

“네…?”

“내가 도와주면 안 되는 게 없으니까 말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차차 알게 될 거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내 뒤만 따라오면 돼.”

“네……. 프로듀서는 의지가 되는 분이시네요…….”

“당연하지, 이런 방면에 있어서는 믿음직하다고. 이건 내 분야니까.”

“프로듀서의 분야… 인가요….”

“그래, 전직을 까발릴 수는 없지만 하여튼 그래.”

“그럼…. 믿어요….”

잠시 침묵.

“프로듀서…?”

“응.”

“저, 믿을 테니까…. 어, 없어지면 안돼요?”

“당연하지, 프로듀서가 담당 아이돌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다는 건데?”

“저, 힘낼 테니까요….”

“그래, 힘내서 너도 하기와라 유키호 못지않은 정도의 아이돌이 되는 거다.”

“제가 될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이 내가 프로듀서인 이상은 뭐든 될 수 있어. 내 장담하마.”

상대가 불안해할 땐 신뢰를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특히 이 녀석 같이 심약한 아이에겐, 일단 안심시켜준 다음 자세한 생각은 그 뒤다. 불안해하는 녀석 앞에서 자신도 어쩔 줄 모르고 갈팡질팡하다가는 그때야말로 정말 끝장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자신이 있었다. 이 녀석에게 가능성을 보았기에, 이 녀석이 스스로 바뀌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에.
내 말을 들은 치에리의 표정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것을 보며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래, 이 녀석은 가능성이 있어. 이 녀석은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한 녀석이었다. 그렇다면 됐어, 그렇다면 승산이 있어.
오가타 치에리가 이 바닥에서 찬란하게 빛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그 빌어먹을 사장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가능성.

그럼 지금부터 정말 시작이다.
하기와라 유키호라는 우상을 동경하는 한 신인 아이돌을 그녀에 못지않은, 그녀를 뛰어넘을 찬란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나의 이번 임무가 되는 것이다.

간단하군, 이번 임무 역시 성공해 보이겠어.
신데렐라 프로덕션의 신인 아이돌, 아직 그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고 있는 이 오가타 치에리를 곧 눈부신 별로 만들어서 사장놈 앞에 보여주겠다고! 나 같은 인재에게 3개월씩이나 잡무처리 따위를 시킨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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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1주차가 상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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