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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증명의 동행자 ~니노미야 아스카, 시작의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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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30, 2018 19:04에 작성됨.

 ‘퍽’하는 소리와 함께 운동가방이 휴게실 소파 위로 나뒹굴었다. 어찌나 세게 던져졌던지, 소파 위에서 두바퀴 정도를 구른 가방은 그 위에 멈추지 못하고 바닥으로 동그라졌다. 니노미야 아스카二宮飛鳥는 잠시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째려보다가, 신경질적으로 방금 가방이 나뒹굴었던 소파에 몸을 던졌다.

 

 “하…”

 

 그런 수준으로 데뷔를 할 수 있겠냐며 계속해서 다그치던 트레이너의 목소리가 아직도 아스카의 귓가를 맴돌았다.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쥔 아스카의 입에서 짜증 섞인 한숨소리가 새어나왔다. 최악이다. 이보다 최악일 수는 없다. 그런 생각만이 머릿속에 감돌았다.

 

 14살. 또래의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며 학업에, 때로는 취미 생활에 열중할 나이. 하지만 시즈오카 현 출신의 이 소녀는 집에서 차로 두 시간 넘게 떨어진 도쿄에 있는 아이돌 프로덕션의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찾아다녔어요.”

 

 기온이 영하로 막 내려갔던 어느 겨울날 밤, 고향 마을의 공원에서 건네진 한 마디가, 아스카를 이곳으로 끌어당긴 방아쇠였다.

 

 “혹시, 아이돌을 해볼 생각 없나요?”

 

 방금 전 처음 본 사람이 난데없이 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인지, 아스카는 파악하지 못했다. 당연히 가장 마음속에서 피어오른 것은 의심과 당혹감이었다. 유괴 수법이라면 티가 나다 못해 하등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감정을 애써 숨긴 채, 아스카는 눈앞에 선 사람을 향해 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소녀를 꾀려는 어른의 미사여구가 나올 것이라 기대하면서. 하지만 상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 생각과 어긋난 것이었다.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잖아요.”

 

 아주 잠깐, 아스카는 새로운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 헤맸다. 마찬가지라니, 대체 무슨 말인가. 그리고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아아, 그런가. 나 역시 이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지 않는가. 그런데도 이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을 것이라 단정하고 있었구나.

 

 따지자면 아스카의 사고에 틀린 부분은 없었다. 낯선 사람이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어온다면 의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런 의심에 대해서 이렇게 되받는 사람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나중에 듣기로는, 또래의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과 조금 다른 표현법, 이른바 ‘중2병 환자’ 내지는 ‘보는 사람 아프게 만드는 애’로 불리던 아스카의 모습에서 운명을 느꼈다는 것이 그 사람의 설명이었다.

 

 눈앞의 사람에 대한 의심이 사라졌을 때, 아스카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분명한 다짐을 받아두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당신이 권유한 길…… 아이돌인가. 진심이야?”

 

 아스카의 프로듀서가 된 그 사람은, 웃음을 짓고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비일상으로 가는 문을 열죠.”

 

 그 대답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사람에게는 당해낼 수 없겠구나. 그럴 것 같지 않게 생겨서는, 꼭 자신에게 맞는 말을 이렇게 찾아서 할 줄이야.

 

 “비일상…이네. 내가 원하는 것이, 그곳에 있는 걸까.”

 

 잠시 생각을 했다. 어쩌면 되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이 길을, 정말 걸어도 괜찮을 것일까. 하지만 아스카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뭘 또 생각하는 건가. 이미 자신은 대답을 얻고, 확신을 얻지 않았던가.

 

 손을 뻗지 않으면, 문이 열릴 리도 없겠지.

 

 “아이돌… 비일상인가. 그곳으로 당신이 안내해준다면, 가도록 할까. 이것이 나의…… 작은 저항의 시작이라고 믿으며.”

 

 그렇게 걷기 시작한 길이었다. 첫 무대로 향하는 그 길도 순조로워 보이기만 했다.

 

 하지만 요 며칠, 댄스 레슨에서 몸이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마치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양, 박자도 동작도 무엇 하나 제대로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체력 문제를 생각해봤지만, 그 가설은 제기와 동시에 폐기되었다. 스스로의 몸은 스스로가 안다. 무리한 식이요법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결코 체력 문제, 나아가 몸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정신 문제. 트레이너도 계속해서 혼을 어디다 빼놓는 거냐며 아스카를 다그쳤고, 아스카도 그 문제를 의식하고 있었다. 처음 레슨을 시작할 때와 다르게, 이상할 정도로 레슨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정신을 레슨에 집중하려 했지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코끼리의 모습만 떠오르는 법이다. 의식을 하면 할수록, 아스카의 집중력은 통제를 잃은 글라이더처럼 스파이럴을 그리며 곤두박질쳤다. 아무리 노력해도, 정해진 레슨 시간을 초과하여 자율 연습을 해도 결과는 같았다.

 

 방금도 막 자율 연습을 하다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연습실을 뛰쳐나온 참이었다.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정신 하나 똑바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도대체 무슨 놈의 작은 저항이란 말인가.

 

 이래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차라리 나만 나아갈 수 없다면, 저 앞에 있는 것은 신포도 뿐이라고 합리화를 하며 여기서 발길을 돌리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지금 나아가는 이 길은, 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2인 3각 달리기와 같다. 이 길을 안내해주겠다고 한 것은 분명 프로듀서였지만, 결국 걸어나가는 것은 함께 발을 내딛을 때에야 가능하다. 내가 나아가지 못한다면…

 

 거기까지 생각하자 머리가 더욱 아파왔다. 심연 속의 괴물이 끌어당기기라도 하듯, 의식이 점차 옅어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아, 들어본 적이 있다. 자기방어기제라고 했던가. 그 중에는 긴장과 불안이 지속적으로 작용하면서 신체적 증상으로 전환되어 나타나는 것도 있었고… 갑작스런 잠 또한… 그런 방어기제 중… 하나로…

 

 

 

 

 

 

 

 

 

 

 잠에 빠져들 때와 같이, 깨어날 때도 의식이 서서히 선명해져갔다. 우선 달콤한 향이 코를 간질였다. 그 다음에는 종이 팔락이는 소리가, 또 그 다음에는 멀지 않은 곳에서 숨을 길게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감각에 슬며시 눈을 뜨자 낯익은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프로듀서가 한 손에는 서류뭉치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얼굴을 감싸쥔 채로, 맞은편 소파에 앉아있었다.

 

 “프로듀서…?”

 

 잠이 덜 깬 탓이었을까, 자신도 모르게 눈앞의 이 사람을 부르고 말았다. 아스카의 목소리에, 서류에 꽂혀있던 프로듀서의 시선이 아스카에게로 옮겨왔다.

 

 “일어났어요?”

 “내가 얼마나 잠들었던 거지?”

 “글쎄요…? 제가 들어왔을 때부터 자고 있었으니까 최소한 한 시간은 잤겠네요.”

 

 프로듀서의 애매한 대답을 듣고 아스카는 시계와 창문을 번갈아 살폈다. 휴게실에 돌아왔을 때까지만 해도 진한 자줏빛이었던 하늘은 어느새 칠흑 같은 검은빛으로 물들어있었다. 언제 잠들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넉넉잡아 두어 시간 정도는 잠들어있었던 듯했다.

 

 “방어기제가 꽤 강하게 들어갔군…”

 “네?”

 “혼잣말이야. 신경 쓰지 마.”

 

 깍지를 끼고 기지개를 켠 뒤, 아스카는 다시 정면으로 눈을 돌렸다. 마주보는 소파 사이에 놓인 탁자 위에, 못 보던 것이 놓여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가운데가 뚫린 원형의 빵. 그리고 사과로 보이는 덩어리들이 바닥에 엉겨있는 것이 훤히 보이는 차. 양쪽 모두 옅은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웬 도넛이지?”

 “아, 외근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신메뉴가 나왔길래 사왔어요. 충동적으로… 하나 먹을래요?”

 “보아하니 열량이 낮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이돌 프로듀서가 담당 아이돌에게 당분을 주저없이 공급해도 괜찮은 건가?”

 “걱정 말아요. 칼로리 계산은 다 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아스카 양은 좀 더 먹어도 괜찮아요.”

 “프로듀서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거절하진 않겠지만.”

 

 충동적으로 사왔다면서, 열량 계산은 다 하고 있었다니. 모순이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겠지. 게다가 도넛 한 개에 차 한 잔이다. 이건 아무리 봐도 대놓고 먹으라고 차려둔 상이다.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녀라도 이것보다는 그럴듯하게 아이들을 살찌울 함정을 파뒀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거기까지 딴죽을 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아스카는 호의를 감사히 받기로 했다.

 

 도넛을 한 입 베어물자 고소한 빵의 향이 입안에 퍼졌다. 그 다음에는 벌꿀과 설탕을 섞은 것 같은 느낌의 단맛이 남은 빈자리를 채웠다. 식빵에 꿀을 바르면 비슷한 맛이 날까. 그러고보면 빵에 잼이나 버터는 발라서 먹어본 적이 있어도, 꿀을 발랐던 적은 14년 평생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차를 곁들이면 어떨까. 아직 온기가 남은 찻잔에서 캐모마일향이 향긋하게 올라왔다. 허브티에 취미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얼마 전 사무소의 동료 아이돌에게 대접 받았던 적이 있어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음?”

 

 입에 차를 머금은 순간, 아스카는 움찔하고 손을 멈췄다. 기억하고 있던 것과 다른 맛이었다. 향이 강한 것에 비해서 맛은 그야말로 무미(無味)에 가까운 것이 허브티의 특징인데, 이 차에서는 방금 전의 빵에서 났던 것과 비슷한 달콤한 맛이 났다. 그것이 꿀의 풍미임을 깨닫기 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벌꿀에 벌꿀 조합인가. 보통은 단맛과 쓴맛을 조화해서 플러스마이너스 제로가 되도록 유도할 텐데. 아니면 무미의 차로 단맛을 씻어내도록 하거나. 어색할 건 없지만, 좀 생소한 걸.’

 

 그렇지만 쓴맛의 차는 잘 마시지 못하는 아스카로서는 오히려 환영할만한 맛이었다. 차를 한 모금 더 입에 머금자, 단맛이 한층 강해졌다. 벌꿀이 주는 강렬한 단맛 뒤에서, 사과의 새콤한 맛이 혀를 자극했다. 찻잔에 남은 차의 양이 줄어갈수록, 감미(甘味)는 점차 강해져 혀를 옭아매어 왔다. 그걸 덜어내기 위해 도넛을 베어물어야 할 정도였다.

 

 이쯤 되니 찻잔 바닥에 고인 사과 조각들을 한입에 머금으면 어떤 맛이 날지 궁금해졌다. 아래로 갈수록 맛이 강해진다는 건, 저 사과조각들이 감미의 근원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맛이 우러난 차의 감미도 이렇게나 강렬한데, 그 근원은 얼마나 강렬한 자극을 선사할 것인가.

고민할 것도 없이, 니노미야 아스카는 마지막 남은 한모금과 함께 찻잔 바닥의 사과조각을 한입에 털어넣었다.

 

 눈앞이 아찔해졌다.

 

 맛이 역전됐다. 방금 전까지 느꼈던 벌꿀의 맛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농밀한 사과향이 아스카의 머리를 때렸다. 사과가 준 충격이 좀 가실 때에야 다시 익숙한 맛이 돌아왔다. 그야말로 ‘사과 꿀절임’이다. 이러다 슈거 크래시로 다시 잠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너무 달콤해서 목이 탈 정도로 강렬한 감미가 입안에 맴돌았다.

 

 “역시 스트레스에는 단 게 최고죠?”

 “…알고 있었군.”

 

 마지막 한 모금을 넘기고, 잔을 내려두며 대답했다. 데뷔 준비가 바빠지면서 프로듀서도 일이 많아진 것 같아 연습 성과를 일일이 보고하지는 않았는데, 어느새 파악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트레이너가 프로듀서에게 알려줬을지도 모르고.

 

 “담당 아이돌의 상태도 파악하지 못해서야 프로듀서 실격이니까요. 아스카 양이 자율연습까지 하면서 노력하는 걸 보고, 저도 자극을 받았고.”

 “날아오르는 새(飛鳥)가 날갯짓을 하지 않는 법은 없지. 목표를 위해서 노력이 따르는 건 당연해.”

 “이름값, 이라는 건가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란 뜻일 뿐이야.”

 

 아스카는 어느새 소파위로 돌아와있던 운동 가방에서 생수병을 꺼내 물을 한모금 들이켰다. 감미의 후폭풍으로 들이닥친 갈증이 조금 가셨다.

 

 “당신도 요즘 바빠진 거 같던데. 매번 레슨을 보러 오더니 요즘은 그러지도 못하고 말야.”

 “아, 그게…”

 

 프로듀서가 말끝을 흐리며 아스카의 시선을 피했다. 아스카를 피해 돌아간 시선의 끝에는 손에 든 종이뭉치가 있었다.

 

 “좀 봐도 될까?”

 “네?”

 “그 서류. 내 데뷔에 관한 거겠지? 극비사항이 아니라면야, 나도 읽고 한두 마디 할 권리는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좀…”

 

 이번엔 눈동자가 갈 곳을 모르고 헤맸다. 꼭 도망칠 곳을 찾는 토끼 같다.

 

 “곤란한가?”

 “아니에요. 가져가요.”

 

 포기한 듯 한숨을 쉬며, 프로듀서는 종이뭉치를 아스카에게 건넸다. 생각했던 대로, 아스카의 데뷔에 관한 기획서였다.

 

 “1차 기획이 통과되면 이야기해주고 세부 조율을 하려고 했는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아스카는 서류를 읽어나갔다. 페스티벌 라이브에서 데뷔 무대를 가진다는 계획은 첫 출발로는 나쁘지 않아보였다. 아니,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오히려 과분할 지경이다. 서류를 읽으면 읽을수록, 프로듀서도 자신과 사고회로가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점차 확신으로 변해갔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별다른 상의 없이 이렇게까지 자신의 취향에 맞추는 무대를 준비한다는 건 ‘맞춰주는’ 걸로는 불가능하다. 프로듀서도 자신과 같은 부류이거나, 그랬던 것이 아니고서는…

 

 몇 페이지를 더 넘기자, 의상 기획 페이지가 있었다. 두 가지 정도의 안을 마련해놓고 무대와 노래에 맞춰 선택하려는 생각이었던 것처럼 보였는데, 다른 페이지와는 다른 점이 확연하게 들어왔다. 새빨간 잉크로 여러 번 그어진 가위표가 선명했고, 물이 묻었는지 종이가 울고 잉크가 번진 곳도 있었다. 한두 곳에 집중적으로 떨어진 물방울의 흔적이 무엇을 말하는 지는, 가위표와 함께 생각해보면 명백했다.

 

 “…잘 되지 않았군.”

 

 대답은 없었다.

 

 “윗선의 취향에 맞지 않았던 건가? 다른 것들에 별말이 없었던 걸 보면 이런 연출 자체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닌 모양인데.”

 

 나머지 페이지들은 깔끔했다. 결국 퇴짜를 맞은 것은, 의상 콘셉트뿐인 모양이었다.

 

 “그냥…”

 

 아스카가 서류를 덮자, 한동안 닫혀있던 프로듀서의 입술이 힘겹게 떨어졌다.

 

 “그냥… 제가 부족했던 것뿐이에요. 더… 더 힘을 썼어야 하는데… 기획을… 의상을… 받아냈어야 하는데…”

 

 그 뒤에 이어질 말도, 너무 뻔했다. 하지만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미안…”

 “거기까지.”

 

 프로듀서의 말이 끝나는 것보다, 아스카의 검지 손가락이 그 입술 앞에 멈추는 것이 먼저였다.

 

 “그래.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지. 하지만 모든 날개가 옷은 아니야. 이 무대, 이 음악, 당신이 날 위해 준비해준 날개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 중 하나쯤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그렇게까지 자책할 일인가?”

 “하지만…”

 “프로듀서.”

 

 항변의 여지를 막고, 아스카는 가방에서 플라스틱 카드 하나를 꺼내면서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나를 위해 얼마나 마음을 써주는지, 모르는 게 아니야. 다른 어른들에게선 받아본 적도 없는 성의야. 하지만 그게 본질을 벗어나 당신의 정신을 해치는 건, 난 원하지 않아.”

 

 함께 길을 걷는 사람에게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담당 아이돌이니만큼 더 좋은 것, 마음에 들어할만한 것을 입히고 싶은 것도 당연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어한다면 이쪽으로서도 마음이 쓰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아스카가 꺼내보인 것은, 이 프로덕션의 출입증이었다. ‘니노미야 아스카’라는 이름이 분명하게 새겨진, 아스카가 이 프로덕션에 소속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서.

 

 “당신은 나를 선택했어. 나는 이 길을 선택했어. 그 결과, 로스트 칠드런이었던 나는 여기에 있어. 그것이 우리 둘을 잇는 관계의 본질이라고, 나는 생각해. 당신은 동행자이면서 안내자잖아? 그러니 당신이 보여주는 길이라면, 내 존재를 증명해줄 길이라면, 나는 그게 어떤 모습이더라도 따라가겠어. 그러니…”

 

 그리고 맞은편으로 한발 다가서, 프로듀서의 한쪽 어깨를 잡는다.

 

 “어깨를 펴고 당당해져. 누가 뭐래도, 당신은 나 니노미야 아스카의 프로듀서니까.”

 

 말하면서도, 스스로가 우습다. 니노미야 아스카답다면 니노미야 아스카답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게 위로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설교를 하는 것인가. 위로라고 한들, 누가 누구를 위로하고 있는 것인가. 방금 전까지 당분까지 대접받아가며 마음을 쓰게 했던 것도 바로 자신인데. 그 모든 고민의 원인이 바로 자신인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표현이 이런 것뿐이니, 이미 말을 뱉은 시점에서는 그것이 프로듀서의 마음에 닿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한동안 휴게실에 정적이 감돌았다. 먼저 그 정적을 깬 것은, 프로듀서였다.

 

 “…좋네요. 존재증명이라.”

 

 닿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한 연기를 하는 것일까. 적어도 아스카로서는, 자신의 말이 닿았다고 믿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곡을 아직 안 들려줬었죠?”

 

 곡이라면, 예정에 있었던 솔로 데뷔곡을 말하는 것일까.

 

 “금시초문인데.”

 “아, 막 곡이 완성돼서 작곡가 선생님께 받아온 참이거든요. 작사는 이제부터 해야겠지만… 들어볼래요?”

 “…그러도록 할까. 어쩌면 이 슬럼프를 넘어서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힘이 난 것인지, 프로듀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스카를 데리고 스튜디오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은 퇴근을 한 뒤인지, 복도도 스튜디오도 어둠에 잠겨있었다. 스튜디오의 불을 켜고 기계를 조작하더니, 프로듀서는 아스카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들어봐요.”

 

 잠시의 고요 뒤에, 스튜디오에 일렉트릭 기타 소리가 울려퍼지고 뒤이어 베이스 기타와 드럼이 합류하며 커다란 음악의 줄기를 만들어냈다. 주선율을 내지르는 일렉 기타의 울림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보컬과 발맞춰 몰아치는 베이스의 울림이, 4분의 4박자에 맞춰 음악을 이끌어가는 드럼의 울림이 하나가 되어, 강렬한 비트를 만들어낸다. 그 선율에 공명하듯, 아스카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전류가 몸을 타고 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프로듀서가 준비해준 의상을 입고, 이 음악과 함께 무대에 선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프로듀서가 준비해주는 것이라면, 무엇이 됐든 이 무대에 어울릴 것이다. 그래, 이런 음악이라면 마이크는 스탠딩 마이크가 어울리겠지. 격한 안무는 오히려 어울리지 않는다. 정적이면서도, 첫 무대의 인상을 확실히 각인할 힘있는 안무. 그게 제격이겠지. 간주에는 간단한 메시지를 넣을 수 있을 것 같고. 뷰잉 카메라가 있다면, 노이즈 연출을 넣자고 하는 건 어떨까. 그리고 마무리는, 마이크 스탠드의 아랫단을 가볍게 차올리면서…

 

 며칠간 했던 고민이 햇볕을 맞은 눈처럼 녹아간다. 이 이미지였다. 무대 위에 선 자신의 모습. 이 모습을 떠올릴 수 없었기에, 그렇게 헤맸던 것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목적지 없이 헤매었으니, 당연히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지. 이제야 눈앞의 안개가 걷히고 나아갈 방향을 찾은 기분이었다.

 

 스튜디오를 메웠던 음악소리가 잠잠해지자, 프로듀서가 물어왔다.

 

 “어떤가요?”

 

 대답을 생각할 것도 없지.

 

 “완벽해! 이 선율, 이 흐름! 더 이상 내게 어울릴 곡이 없다고 할 정도로 완벽해!”

 “다행이다…”

 

 환희에 찬 아스카의 얼굴을 본 프로듀서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뱉었다. 이번에는 안도의 한숨이다.

 

 “이제 가사와 안무만 붙이면 되는 건가?”

 “그러면 노래는 완성되는 셈이죠. 그 뒤는… 무대를 준비해야 하겠고.”

 

 함께 길을 걷는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본다. 나아갈 길에 대해 각자의 답을 얻은 두 사람은, 서로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그 답을 교환한다.

 

 “존재증명… 할 수 있겠죠?”

 

 존재증명이라, 사실은 넌센스적인 이야기이다. 분명히 나는 이 자리에 존재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그 사실을 증명해야하고 또 그것을 해낸다는 것은, 보편적인 인식과 이치에 어긋난다.

 

 그래도 그걸 부르짖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것을 목표로 해서, 함께 나아갈 수 있으니까.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프로듀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분명한 답을 얻었고, 목표를 다시 세웠다. 그러면 남은 것은,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뿐이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할 수 있다, 해낼 것이다.

 

 스튜디오를 나서서 휴게실로 돌아가는 길은 여전히 칠흑 같았지만, 스튜디오로 향할 때와는 반대로 저 끝에 휴게실의 불이 들어와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자신의 마음이 그대로 길에 투영된 것 같아, 조금 웃음이 나왔다. 평소 같았다면 이 웃음기를 애써 숨겼겠지만, 지금은 그럴 것까진 없겠지.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아이돌 니노미야 아스카는 프로듀서를 향해 돌아서서 선언했다. 지금부터 함께 할  일, 함께 할 맹세를.

 

 “자, 가볼까.”

 

 

fin.

 

 


 

원래는 아스카의 생일 축전으로 준비하던 글입니다만… 아스카 관련으로 주변에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아 예정보다 빠르게 글을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아스카와 프로듀서의 만남 장면은, 데레스테 아스카의 1차 메모리얼을 따온 것입니다. 아스카의 팬이 1명이던 바로 그때의 이야기입니다. 데레스테 시작이 빠르셨던 분들이라면, 아직 아스카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던 시절에 보셨을 이야기입니다.

 

뭐라 길게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저,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의 뜻대로 이 글을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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