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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 「나와 아이들의 (지잡)대학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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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29, 2018 12:20에 작성됨.

1.

치하야 「끄응..미안해..하루카..미안..하지만 나, 더 이상은..」(쿨쿨)

 

ㅡもっと遠くへ泳いでみたい~♬

 

치하야「아ㅡ! 좀 더 자자..」

 

치하야「...」

 

치하야 「..지금 시간이..」(힐끔)

 

치하야 「..늦었다!」(벌떡)

 

오늘은 사진기술학 III 출석 확인이 있는 날이였다.

출석이 전체 점수 70%를 차지하는 과목인데 늦잠을 자버리다니!

허겁지겁 일어나 눈꼽을 떼고, 밤중에 흐르다 마른 눈물 자국을 슥슥 지우면서 대충 세수로 마무리한다.

 

쌩얼에 대충 로션과 비비크림만 바른 다음에 떡지고 기름진 긴 파란 머리칼을 아이돌 시절부터 써왔던 싸구려 모자로 대충 눌러 가린 다음

예전에 하루카가 선물해줬었던 낡은 가방을 등에 메고는 신발을 구겨 신는다.

나가기 전에 뭐 놓고간 것은 없는지 자취방을 다시 한번 둘러본다. 새삼 X판이 된 추잡한 방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뭐..나중에 치우자.

 

허겁지겁 올라가는 길에 같이 수업을 듣는 하루카에게 문자를 보낸다. 설마 출석체크 벌써 끝난건 아니겠지?

 

치하야 [하루카! 혹시 지금 출석체크 끝나버린거야?]

 

하루카 [에에? 치하야짱 지금 안온거야?]

 

치하야 [응. 그만, 늦어버린 것 같아. 설마 교수님이 뭐라고 하신거야?]

 

하루카 [아니..그게..교수님이 강의실 한번 슥 보고 안온 사람 없다고 그러면서 출석체크 안했거든..

ㅡ교수님, 치하야짱 안온걸 모르는게 아닐까, 하고..のヮの]

 

하루카 [그러면 교수님한테 늦는다고 말해드릴까?]

 

치하야 [아냐. 그냥..밥 좀 먹고 올께.]

 

하루카 [응응! 이따가 점심 때 보자 치하야짱!]

 

..그래도 신학기부터 지금까지 내내 안 빠지고 들었는데 어떻게 날 모를 수 있는거지?

이거,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예전엔 아이돌 출신이라고, 나 조금은 유명하지 않았었나?

 

ㅡ꼬르륵. 배에서 추잡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도 함부로 학식에 들어갈 수는 없다고?

거긴 친하진 않은데 쓸데없이 얼굴 아는 사이인 사진과 선후배들이 많아서, 

잘못 혼밥하다간 서로 부끄러운 곤란한 상황에 처해버릴지도ㅡ

 

이럴 때엔 맥도날드에 가는 것이 상책이다. 맥도날드에 가서, 구석탱이 작은 테이블에서 햄버거를 시켜 먹자.

햄버거는 유용한 식품이다. 맛도 있을 뿐더러, 무엇보다 혼자서 먹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맥도날드에서 조용히 식사 중인데, 왠 아이 하나가 다가온다.

부담스러워서 시선을 피하려는데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기습적인 비수를 가슴팍에 꽂아넣는다.

 

꼬마 「파랑머리 누나, 왜 누나는 왜 매일 혼자 먹어?」

 

치하야 「...」(화끈)

 

여기..다시는 오지 말자. 

 

 

2.

다음 강의까지는, 제법 시간이 남아 있었다.

최대한 눈에 안띄게 캠퍼스 주변을 조용히 산책하고 있었는데, 하필 인사를 받아버렸다. 아는 사람이랑.

 

마코토 「오! 치하야, 오래간만인걸?」(쾌활)

 

치하야 「어, 안녕 마코토.」(어색)

 

마코토 「아, 여기는 내 친구 치하야. 예전에 나랑 같이 아이돌 생활도 했었다고? 다들 인사해라.」

 

마코토 후배들 「아..그렇구나. 안녕하세요?」「와! 저도 노래 들어본 적 있어요! 빨간새죠 빨간새?」

 

치하야 (파랑새인데..큿!)

 

마코토 「앗차! 미안 치하야, 과에서 준비중인게 있어서 지금은 바쁘네..

뭐, 나중에 보면 되니까. 그리고 다음번에 축제 때 우리 유도학과 과 쪽으로 오라고?

술이고 음식이고 엄청나게 챙겨줄 테니까! 나, 이래뵈도 과에서 제법 권력이 있다고? 나, 역시 주먹이 쌔니까..

어쨌든, 유도학과야. 잊지 말고 꼭 와줘.」(쾌활)

 

치하야「어..응. 꼭 가볼께.」

 

마코토 「야리~ 그러면 다음에 봐~」

 

치하야 「응. 다음에 봐..그러면」(어색)

 

치하야 (그래봐야 안 갈꺼지만..)

 

치하야 「그나저나..권력..주먹 힘이라니..풉! 꽤나 좋은 유머였어.」

 

점심 때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캠퍼스를 할 일 없이 돌아다녔다.

그렇게 세바퀴 정도 도니까, 왠지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처다보는 것 같이 느껴져서,

(가만히 생각해본다. 아마도 내 새파란 머리 때문이 아닐까?)

적당히 대학교 도서관에 들어갔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오다 에이치로씨의 원피스를 1권부터 다시 읽는다.

봐도 봐도 재미있다. 그렇게 두어권 정도 적당히 읽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가버렸다.

 

오후 1시 30분. 점심 식사하기에는 애매하다. 그래도 오늘은 적당히 먹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역시 하루카에게 뭐하냐고 문자를 보내본다. 이럴 때에는 역시 하루카가 최고다.

하루치하는 공식이라고?

 

10분 있다가, 문자가 들어왔다.

 

하루카 [아 미안 치하야짱;; 문자가 온지 몰랐어. 잠깐 친구들이랑 카페에서 대화 중이였어.

그나저나 치하야도 LINE이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혹시 나랑 같이 스마트폰 사러 가볼 생각 없어?] 

 

치하야 [미안 하루카. 난 아날로그적 감성이 더 좋아. 스마트폰이 좋다고 해서, 세계의 유행에 편승할 생각은 없어.]

 

치하야 (사실은 등록할 친구가 별로 없어서, 문자가 더 편한거지만.

그리고 스마트폰은 여전히 어려워..)

 

치하야 [그나저나 하루카, 혹시 밥 먹었니?

안 먹었다면, 내가 학식 사고 싶은데 어떨까?]

 

하루카 [으..미안해 치하야짱! ㅠㅠ 치하야가 들어가서 쉬는 줄 알고 이미 후배들이랑 같이 밥 먹어버렸는데..

그래도 아직 배고프니까 우리 같이 먹을까? のヮの]

 

치하야 [아냐. 됬어 그러면. 사실 나도 식사 약속한 사람이 있어서..

이따가 봐, 하루카]

 

하루카 [응응! 아, 그리고 오늘 사진과 예술 강의 휴강이래. 교수님이 아프시다고 그랬어.]

 

치하야 [응? 그렇게 중요한 걸 왜 이제야..]

 

하루카 [미안..치하야가 LINE 안한다는걸 과 조교들이 까먹었나 봐.

오늘 저녁에 학과 회의 있으니까, 그때 말해놓을께.]

 

치하야 [아냐. 그럴 필요까진 없어. 그런데 나도 학과 회의 들어가야 할까?

그거 학과 애들 다 참석하는거잖아.]

 

하루카 [아니. 꼭 올 필요는 없어. 치하야 이런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애들도 이해해줄거야.]

 

..큭, 왠지 가슴 아픈 배려다.

 

배고파서 학내 식당에 들어갔는데, 하필 얼굴'만' 아는 사람이 몇몇 있어서, 그대로 발을 돌려버렸다.

그래서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산 다음에 편의점에서 밥을 먹으려는데,

빌어먹을 후배 커플이 먼저 테이블을 차지하고 꽁냥거리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타 학과의 빈 강당에서 식사해버렸다.

타 학과라는게 걸리지만, 그래도 변소식보다는 낫다.

 

ㅡ혼자서 조용히 식사하는데, 아까 전 마코토랑 같이 붙어다니던 사람과 만나버려서 서로 어색해져버렸다.

 

마코토 후배 「저..천천히 드세요. 그래도 우리 강당이니까, 뒷 정리만.. 하..하하?」

 

치하야 「...」(화끈)

 

그 사람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지만..아직도 얼굴이 화끈하다. 

마코토에게 내가 혼자서 여기서 밥 먹고 있었다고 말하는건 아니겠지? 큿!

 

..우연인지 장난인지, 학내 라디오에서는 예전 내 노래 '파랑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

 

3.

시간이 없어서 도서관에 갔다가, 도서관에서 밀린 원피스 전권을 다 읽어버렸다.

허리 반만치 쌓인 만화책들에, 주변 사람들이 힐끔힐끔 처다보는게 느껴진다.

왠지 부끄러워져서 그대로 들고 책장에 다 꽂아넣어버리곤 도서관에서 빠져나왔다.

 

어느덧 저녁이 되어 있었고, 나는 배가 고파졌다. 집에 가야겠다. 오늘도 알찬 하루였어.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사회학부 건물에서 청소 아줌마랑 무언가 튀는 노란머리 양아치녀가 싸우는게 보였다.

아줌마한테 막 대하다니. 역시 노란머리에 가슴 큰 년들은 머리가 빈 것이 분명하다.

2ch에서 배운 지식이 맞았다. 역시 가슴은 나 정도 72가 딱 적당하다.

 

말릴까 하다가, 내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나 먹고 살기에도 벅찬걸?

..그래도, 역시 신고라도 해줘야 하는걸까?

 

아줌마 「아이고 글쎄 학생, 여기다 이런거 붙이면 안된다니까?」

 

??? 「이건 페미니즘 홍보니까 잡광고 게시물이 아닌거야! 아줌마가 뭘 잘 모르는거나노!」

 

치하야「...설마」(불안)

 

미키 「..응? 치하야씨인거야! 반가운거야!」(미소)

 

아..빨리 도망갈껄. 설마 미키였을 줄이야.

..이 대학교 온건 알고 있었지만..

 

어색하다. 미키는 예전이랑 별로 바뀐게 없구나.

여전히 튀는 노란머리에 큰 가슴..큿.

미키는 마치 예전 모습 그대로 따다 넣은 것만 같은 모습이였다. 하긴, 다들 그렇겠지. 나도..너도..

그래도 미키는 제법 바뀐 구석이 있었다.

 

문제는, 그게 영 그렇다는 것이지만.

 

치하야 「Girls Do Not Need A Prince..하아 미키, 도대체 어디까지..」(한숨) 

 

미키 「응? 치하야씨도 이 티셔츠 아는거야? 역시 치하야씨인거나노!」(해맑)

 

치하야 「저기..내가 좀 바빠서.

미키, 만나서 반가웠고 다음에 또 보자.(다시는 보지 말자)」

 

미키 「에에? 재미없는거야 치하야씨!

좋다 이기야! 치하야씨도 만났으니까 내가 밥 사주는거야! 

이번에 타카네가 만든 라면집으로 가는거야!」(미소)

 

치하야 「저기..꼭 그러지 않아도..」(당황)

 

미키 「가는거다 이기야!」(신남)

 

 

4.

미키가 안내해준(억지로 끌고간) 라면집은 골목 어귀 한귀퉁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런데에 라면집이 있었나? 되돌아봐도,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라기엔 애초에 이런 술거리를 돌아다녀본 기억 자체가 없지만.. 큿.

 

라면집은 주변 상가와 술집들에 어울리지 않게 제법 향토적인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편백나무로 지어진 골격에 일반 벽지 대신 향지를 발라서, 마치 예전 일본 전통 가옥 같은 느낌이였다.

예전에 본 느낌이다. 뭐랄까, 마음이 아려온다.

 

미키 「..타루키정 생각한거지, 치하야씨? 헤헷.」

 

치하야 「..그러게. 비슷하네.」(씁쓸)

 

미키 「아, 그리고 치하야씨. 여기 주인이 누군지 알아?」

 

치하야 「누구길래? 아, 그리고 사장님, 여기 라면이랑 사케 한병만요.

그리고 미키, 옆에 정수기에서 물 한잔만 줄래?」

 

미키 「그나저나 이렇게 다 모이니까 정말 최고인거나노!」(신남)

 

나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내가 물 홀짝이는 소리 빼고는 그냥 적막해졌다.

미키는 혼자 신나서 싱글벙글 웃으면서 나만을 바라보는데, 그 시선이 왠지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였다.

 

마치 과 행사 준비할 때 손들고 그날 쉬어도 될까요? 말할 때 모두가 주목하는 순간과 같은 기분이다. 

너무 부끄러워서, 결국 참지 못한 나는 억지로 질문을 만들어서 쥐어짜냈다.

 

치하야 「저기..미키는 요즘 대학생활 어때?」

 

미키 「..치하야씨..」(울먹)

 

미키 「미키 걱정해주는건 역시 치하야씨 뿐인거야!

미키, 대학생활 맘에 안드는거야. 명예 흉자들이 자꾸 미키보고 불여우라고 흉보고 따돌리고!(울컥)

진짜 대학교 여자들 짜증나는거야! 보적보 싫은거나노! 명예자x 흉자들 정말 다 못된거야! 미키는 다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울먹)

6.9 일남들은 관심없다는데도 자꾸 치근덕대고.. 맨날 성적은 C랑 F만 받고..왜 대학교 왔나 모르겠는거야.

데헷..그래도 이렇게 가끔이라도 다같이 만나서 기분 좋은거야!」(다시 신남)

 

치하야 「저기..다 모이다니 그게 무슨 소리ㅡ」(홀짝)

 

「오래간만이군요, 치하야.」

 

치하야 「푸흡!ㅡ컥컥」

 

미키 「꺄악! 치하야씨, 정말 매너가 없는거야!」

 

치하야 「컥컥..타카네씨?」

 

타카네 「오래간만이군요, 치하야씨. 여기..주문하신 라면 두 그릇입니다.

...잠시, 잘 되었는지 마지막으로 확인을 해봐야겠군요.」(후루릅)

 

치하야 「...저기, 확인이 아니라 그냥 한젓가락 먹는거 같은데?」

 

타카네 「(우물우물) 그럴리가요. 어디까지나, 확인입니다.」(진지)

 

치하야 「..뭐, 그렇다면..」

 

타카네는 정말로 바뀐 것이 없었다. 그냥,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그냥 예전 기억 그 모습 그대로 걸어나온 기분이였다. 기묘한 느낌이였다.

 

치하야 「..타카네씨가 라면집 주인이야? 뭐, 라면 좋아하는건 익히 알고 있었다만..」

 

타카네 「후훗. 신장개업이랍니다? 드디어 숙원을 이루었지요.」

 

치하야 「저기...나, 예전 생각은 잘 안 나는데, 타카네씨 꿈은 그것보다 더 크지 않았어?

뭐 고향을 빛낸다던가 그랬던거 같은데..」 

 

타카네 「여기에서는 뭐, 아무래도 상관없답니다?

사실 그런게 중요한건 아니니까요.

치하야씨의 '꿈'도 다르지 않았던가요.」

 

치하야 「...미안. 그 이야기는 그만해줬으면 좋겠어.」(정색)

 

타카네 「..죄송합니다. 예전 일이 떠오르셨나보군요.」

 

치하야 「..미안해. 여러모로.」

 

타카네 「치하야씨가 잘못한 일은 없어요. 예전 일은 치하야씨 잘못이 아니죠.

그리고 지금도 그렇고요. 사실은, 아직도 그렇죠. 아직도요.」(미소)

 

어색한 기류가 감돈다. 나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솔직히 그 이상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예전 일에 대해서 더 말해봤자, 기분만 상할 뿐이니까. 

실패한 아이돌의 과거사일 뿐이다. 그것도 내가 자초해버린.

 

그 이야긴 더 이상 꺼내고 싶지 않았다.

 

미키「..에에? 쓸데없이 우울한 분위기인거야!」

 

치하야 「..미키, 술 한잔만 따라줄래?」

 

미키「아핫!~ 치하야씨랑 술 마시니까 기분 좋은거야! 오래간만에 다들 만나서 신나는거야! (해맑)

그리고 라면 잘먹겠는거야 타카네!」

 

 

엔딩.

옛 생각에 기분이 씁쓸해서 술을 시킨건 나인데,

정작 다 마셔서 취해버린건 미키였다.

나가니 어느새 밤이다. 거리는 이제 막 대학물 좀 맛본 신학생들이 제 맘껏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술병을 제낀다. 한쪽에서는 갓 사귄 연인과 팔짱을 끼고 오순도순 사랑 분위기를 풍긴다.

어딘가 자취방에서는 간간히 애처로운 신음 소리가 흘러나온다. 뭐 말 안해도 뻔하겠지.

 

나는 여기가 싫다. 이 거리가 싫다. 이 젊음의 분위기가 싫다.

나는 아직도 아이돌 시절에 765 프로의 키사라기 치하야 그대로인데..

지금은 그냥 어른들의 세계로 던져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잘 생각나지 않아.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걸까 나는.

그냥 꿈만 같다. 예전 일도, 지금 이 순간도. 

술에 취해서 그런걸까?

 

문득 하루카가 궁금하다. 하루카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하루카는 인싸니까, 누군가랑 사귀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 사귀고 있을거야. 아마 나랑 달리 이전에도 몇 번 씩이나 사귀지 않았을까?

서, 설마.. 지금 저 자취방들 중 한 집에서 신음하고 있는게 혹시 하루카는 아닐까?

예전에, 한 연예인 잡지에 과자 만들기(お菓子作り)가 하루카의 취미라고 작성한 걸 아미 마미가 앞글자 가리고는 취미가 '애 만들기(子作り)'라면서 놀렸었는데,

어쩌면 하루카는 지금 정말로 애 만들기를 하고 있는건 아닐까?

 

예전에는 그렇게 서로 단짝이였는데.. 지금은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건 아닐까?

아니, 아마 그렇겠지.. 여전히 하루카는 내 인생에 가장 가까운 사이인데,

지금 하루카에게 있어 나는 그저 한 명의 친구에 불과하겠지?

 

그렇게 잡념에 사로잡혀 있는 날 깨운 것은 술 취한 미키의 괴랄한 고성이였다. 

 

미키 「와아! 기분좋타 이기야! 야호! 치하야씨 정말 좋은거야! 친구랑 만나서 되게 행복한거나노!」(버럭)

 

치하야 「저기..여기 동네인데 그렇게 소리지르면ㅡ」

 

미키 「야 이 명예 흉자들아! 일남들 6.9cm xx에 박히니까 기분 좋은거야?!

미키는 페미니스트인거나노! 일남들은 줘도 안사귀는거야! 미키는 지금까지 깨끗한거나노! 프로듀서는 후회할꺼나노!

미키는 페미니ㅈㅡ읍읍!」(고래고래)

 

치하야「미, 미키! 뭐하는 짓이야!」(화끈)

 

미키 「....」

 

치하야 「미, 미안. 갑자기 입 막아서 혹시 기분이 상한거ㅡ」

 

미키 「저기..치하야씨..」(울먹)

 

치하야 「..응?」

 

미키 「..미키는, 사실 아직두 프로듀서가 진짜 엄청 보고 싶은거야..

프로듀서어!!(절규) 미키는 프로듀서가 좋은거야!

그때부터 지금까지 미키한테는 프로듀서 말고는 없는거나노..(울먹)

그래도 행복하니까 된거야. 

프로듀서는 미키 몫까지 행복해야 하는거야! 그래도 프로듀서 보고 시프은거야~우애앵」(고래고래)

 

치하야 「미, 미키! 그만 하라니ㅡ응?」

 

미키 「웁..」

 

치하야 「서, 설마..」(당황)

 

미키 「..저기 치하야씨..미키, 토할 것 같은거야우웩!!」

 

치하야 「꺅! 튀었다고 미키!」

 

깜빡깜빡ㅡ깜빡이는 주홍빛 가로등 아래 따끈따끈한 라지 사이즈 피자 한 판을 만들고 나서야 미키는 구토를 멈추었다.

..미키가 갓 만든 훈훈한 피자에는 도핑으로 타카네가 정성스럽게 만들어준 라면 그릇 하나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좋아, 내일 비둘기들이 좋아하겠구나.

 

미키 「치하야씨..우애앵!」

 

치하야 「..토한 얼굴로 달라붙지 마! 

..왜 또 이러는거야 미키..」(곤란)

 

미키 「우우 미키.. 학과에서 왕따라 슬픈거야..

미키는 맨날 사람들 몰래 변소식해야 하구.. 흉자들은 미키보고 불여우라고 욕하구 일남들은 뒤에서 욕하거나 추근대기만 하는거야! 

미키는 그냥 모두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에..

우아앙! 765프로가 그리운거나노!

이렇게 아싸처럼 사느니 죽는게 더 나은거야! 이렇게 사는건 사는게 아닌거나노!」(뚝뚝)

 

치하야 「..아..응..저, 적응할 수 있을거야.」(뜨끔)

 

내버려뒀다간 그대로 길바닥에서 객사하는건 아닐까 걱정스러워서, 미키를 일단 내 자취집에 데려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벽 너머로 격렬한 신음소리와 공사판을 방불케하는 '박는 소리'가 위아래 왼쪽 오른쪽에서 들린다.

하하, 오늘도 윗옆으로 서라운드 사운드로 신음소리가 가득하구나. 문득 짜증이 들어서, 싸구려 빗자루로 두어번인가 벽을 치고 나니 그제서야 소리가 가라앉는다.

더러운 연놈들아! 대학생이면 대학생답게 애만들기 말고 공부나 하라고!

그 와중에 미키는 씻지도 않고 그대로 내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그대로 고양이마냥 잠들어버렸다.

 

치하야 「..저기 미키, 그거 내 침대인데..아냐 됬다. 그냥 자..」

 

미키 「..아핫~ 치하야씨는 그런 점이 좋은거야..하암~」

 

침대를 뺏긴건 제법 황당한 일이지만, 이상하게 화는 나지 않았다.

미키는 순식간에 잠들었다. 잠에 빠진 미키의 모습을 물그러미 바라보았다.

제법 신기하다. 곤히 자는 미키의 모습은, 예전이랑 똑같았다.

그래. 미키는 765 프로 시절에도 어디서든 잘 잤었지. 쇼파든 다다미 바닥이든..

 

그런데 잠꼬대인지 뭔지, 미키가 중얼거린다.

 

미키 「미키는 여전히 그대로인 것만 같은데.. 세상은 왜 이렇게 많이 변해버린거야?

가끔씩은 미키만 뒤쳐진 것 같아. 아니 사실은 미키, 원래는 뒤떨어졌던거 아닐까? 

이상한거야. 미키, 늦잠 잘때 빼곤 매일 수업도 열심히 듣고 인사도 꼬박꼬박하구 점수도 잘 받을려고 노력하는데..

..미키, 예전 생각이 나는거야. 765 프로에 있었을 때가..

그땐 정말로 반짝였었는데..

 

치하야 「..그래. 그 땐 그랬었지..」

 

그래도 미키, 내 눈에 미키는 여전히 그때 그 착하고 순수한 미키 그대로야.

잠 많고 당돌하지만 착한 그런 미키.

 

어쩌면 미키가 그.. 메갈이 된 것도 프로듀서와의 일 때문은 아닐까?

..아마 그렇겠지. 예전에, 프로듀서가 결혼식을 한 날에 미키가 하루 종일 울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솔직히 별로 신경쓰지 않았었다.

그냥, 미키는 여전히 철 없는 어린아이였구나ㅡ라고만 생각하고 금방 잊어버렸을 뿐이였다.

 

하지만, 어쩌면 그 당시에나 지금이나 미키에겐 그것만큼 가슴 아픈 일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미키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을 테니까. 그 순수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프로듀서만 바라봤을 터이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그래서 이렇게 비뚤어진 건 아닐까?

 

그래도 미키는, 비뚤어졌을지언정 여전히 착하고 순수한 아이다.

항상 해맑고 순수하게 빛나는 어린아이 같은 아이.

미키는 언제나 똑같았고 앞으로도 똑같겠지.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왠지 가슴이 답답해서(72 사이즈와는 상관없이ㅡ) 바깥으로 나왔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을 넘어가고 있었다. 빌라에 불은 거진 다 소등하고 있었다.

짜증나는 연놈들의 신음소리도 이제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밤하늘에는 별 하나 보이지 않는다. 아마 주변이 너무 밝아서 그런거겠지.

 

예전엔..미키랑 나랑 모두들 다 별처럼 환하게 보였었는데..

지금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난 아직 그 때 그대로인데..

가끔씩은 옛날 생각도 한다.

'그 날'에, 만약에 내가 하루카 말을 들었으면 조금 달라졌을까?

아직도 나는 빛나고 있었을까?

 

알 수 없다. 그건 앞으로도 알 수 없겠지.

 

밤하늘은 오늘따라 어둡고, 어두웠다.

 

...

대충 자고 일어나니, 미키는 토가 덕지덕지 묻은채로 아무렇게나 뒤집힌 이불보 위에 작은 메모장 편지 하나를 남겨놓고 나간 후였다.

 

[미키, 어제 덕분에 즐거웠던거야! 내 번호는 xxx-xxxx-xxxx인거야! 꼭 저장해주는거야?

이제부턴 치하야도 명예페미인거야! 이제 같이 주먹밥이랑 크레이프도 많이 먹는거야 아핫~]

 

..문자라도 하나 보낼까 하다가, 왠지 어색해서 그만두었다. 나중에 하자 나중에..

미키의 악취나는 피자 자국이 묻은 이불을 자취 빌라 공용 세탁기에 넣고 돌리다가, 

문득 오전 수업에 늦겠다는 생각에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하루카는 따로 연락이 없었다. 늦잠이라도 잔걸까? 아니면 정말로 어제 누군가와 밤새도록 '그짓'을 하고.. 큿! 큿큿큿!!!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강의실에는 데면데면한 사이인 조교 한 명만이 있었다.

 

치하야 「저기..조교 언니, 혹시 오늘 사진학개론 III 수업 시간 변경됬어요?

그게, 아무도 없네요?」

 

조교 「어? 그 수업 오늘 휴강인데? 어제 LINE 못봤어?

과 챗방에도 올라갔을텐데..친구들이 안 말해준거야?」

 

치하야 「..아..」 

 

저기요. 저는 친구가 저기..하루카 빼고는..큿!

 

..집에서 밀린 2ch 개드립이나 더 보자. 아니, 밀린 개드립이 있었던가? 

 

아니 없겠지..

 

..큿!

 

 

ps. 놀랍게도 시리즈물로 일단 예정입니다.

물론 보시는 분들이 반응이 좋은게 전제되어야 하므로..ㅠㅠ

호응이 좋으면 좀 쓰고 없으면 여기서 끝낼 수 있게 마무리도 적당히 지어놨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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