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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Hav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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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26, 2018 02:23에 작성됨.

밤하늘에 별들만이 가득히 떠 있는 시간. 한 갈색 머리의 여성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손에 들린 종이에 의지해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한참을 그렇게 두리번거리며 걷던 그녀는, 이내 붉은 벽돌집 앞에 서서 주소를 확인한다. 아무래도 처음 들어가는 집 안인 모양이다.
 
「베이커가 221b...여긴가보네.」
 
손에 들린 주소를 한 번 중얼거리고 벽돌집을 주욱 훑어보던 여성은, 이내 문 옆에 자그맣게 달려있는 초인종을 누른다. 몇 번이나 눌렀을까, 누군가가 부리나케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달칵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40대 중반 즈음의 중년 여성. 잠시 여성의 아래위를 훑어보던 그녀가, 이내 작게 탄성을 지르더니 입을 연다.
 
「그러니까 분명히... 케이트 양이었죠, 아닌가요?」
「아뇨, 제대로 기억하고 계시네요. 그럼 오늘부터 제가 묵을 방을 소개해주시지 않겠어요?」
「그러죠. 아, 저는 허드슨 부인이라고 불러주시면 되겠네요. 무거워 보이는데, 짐을 좀 들어드릴까요?」
「아뇨, 감사히지만 괜찮아요.」
 
허드슨 부인의 호의를 영국인스러운 매너로 거절한 케이트가 한 손으로 짐을 들어올리고서는 그녀를 쳐다본다. 젊은 여성치고는 꽤나 힘이 세다고 생각하며, 허드슨 부인은 케이트가 미리 예약해둔 방으로 그녀를 안내한다. 문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방. 열쇠 꾸러미에서 열쇠를 꺼내 방문을 연 허드슨 부인이 케이트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한다.
 
「방 안에서 담배는 피면 안 되고, 다른 방 사람에게 불편을 주셔서는 안 돼요.」
「네, 알겠습니다.」
「그거 말고는 딱히 말할 것은 없네요. 열쇠는 여기에 두고 갈께요. 혹시 다른 질문 있으시다면 제 연락처로 연락해주시면 되고요.」
「감사합니다, 허드슨 부인.」
「뭘요. 그럼 편한 밤 보내세요.」
 
케이트의 감사에 허드슨 부인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문을 닫고 나간다. 케이트는 방을 한 번 둘러보고는 방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폭신한 1인용 소파에 앉는다. 빨아들여지는 기분이야, 케이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빙긋 미소를 짓는다. 천천히 눈을 감고 소파에 온 몸을 맡긴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쉰다.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케이트는 도쿄의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일본이란 동방의 미지의 국가에 와, 이것저것 구경하고 문학도 조금 배울 겸. 동양 문학과 서양 문학은 그 표현부터가 다르다는 말을 교수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그 때는 신기하다라고만 생각했지만, 지금 일본에 온 자신은 그 말이 진실인지, 또 얼마나 다른지 확인을 할 수가 있겠지. 케이트는 잘 부르지 못하는 휘파람을 불며 근처의 서점을 찾아보기로 했었다. 하지만 중간에 길을 잃어버린 것같아, 주변을 둘러보던 케이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가 마침 지나가는 양복 차림의 남자에게 잘 하지는 못하는 일본어로 질문을 했다.
 
「Good afternoon! You, bookstore가 어디 있는지 아나요?」
「Bookstore...아, 서점 말인가요. 이 근처에 서점은 이 쪽으로 가면 있을겁니다.」
「Thank you for your kindness! 친절한 사람이네요!」
「별로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 실례지만 혹시 아이돌 해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Idol?」
 
양복의 남자에게서 나온 뜻밖의 말에 케이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아이돌이라, 원 디렉션이나 스파이스걸스같은 팝 보이/걸 그룹을 말하는 걸까. 케이트의 표정을 본 남자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대략적인 일본 아이돌 시장과 그 속에서 외국인의 가치, 그리고 그녀라면 유명한 아이돌이 되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런 남자를 본 케이트가, 잘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계속 지어보이다가 무언가에 흥미가 동했는지 순순히 입을 열어 그렇게 하자고 한다.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사무소로-」
「그 전에, I want to confirm somthing important.」
「중요한 것... 무엇인가요?」
「저는, You에게 매우 흥미가 있습니다. 아이돌은... so so?」
「저 말인가요? 저는 그저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아이돌 프로덕션의 프로듀서입니다만...」
 
양복을 입은 남자의 말에, 케이트는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 아이돌 프로듀서란것 부터가 평범과는 거리가 멀다. 화려한 신데렐라들을 많이 봤을 것은 당연한 일인데다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길을 물어본 사람에게 아이돌이 되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지는 않을을테니까.
 
「뭐, 일단은 프로덕션으로 가요.」
「일본어 꽤 하시네요.」
「Diffcult sentence는 영어로 해야 하지만요.」
「그 정도는 이해합니다. 자, 그럼 갈까요.」

그 날 처음으로 잡은 프로듀서의 손의 감촉을, 케이트는 잊지 못한다. 그 따스함 때문일까, 아니면 왠지 모르게 찾아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케이트는 둘 다 아닐 것이라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마도 그 느낌은...
 
어디선가에서 담배 연기같은 매캐한 냄새가 난다. 이상하다. 분명히 이 곳은 담배를 피울 수 없는 곳이었을텐데. 자신이 피웠을리는 없다. 그야, 지금 담배꽁초가 손에 들려있지도 않다고. 하지만 무언가가 타는 듯한 담배 냄새는 계속해서 코를 괴롭힌다. 케이트가 허드슨 부인에게 불평하고자 막 연락처를 집었을 때, 허드슨 부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말, 방 안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고 말씀드렸죠?!」
「죄송합니다, 부인. 하지만 사건이 잘 풀리지 않아서 말입니다.」

허드슨 부인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뒤이어, 케이트의 바로 앞 방에 사는 듯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역시 그가 범인인걸까, 그렇게 짐작한 케이트는그 남자의 상판때기나 구경해볼까 생각했지만 이내 단념한다. 혹시 모른다. 오늘 이 방에 처음 들어온 날이기도 하고, 어쩌면 그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다시 천천히 눈을 감고 소파에 몸을 오롯이 맡긴다. 그리고 숨을 쉰다.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프로듀서의 지도에 맞춰, 케이트는 처음 몇 주간은 열심히 레슨실에 다니며 춤과 노래, 그리고 맵시 있게 카메라에 찍힐 수 있는 각도같은 것을 연습했다. 케이트는 자신에게 그 정도의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이 때 처음 알았다. 정말로 어쩌면, 그녀는 그가 말한 대로 유명한 아이돌이 되어서, 영국으로 금의환향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희망의 맛에 취해, 케이트는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레슨을 했다. 언젠가는 그에게 유창한 일본어로 중요한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케이트의 프로듀서는 인기가 많았다.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타입이여서였을까. 그건 아닌 듯했다. 실제로 그는 프로덕션에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일만 하면서 보냈고, 커뮤에 잘 신경을 쓰지 않는 타입의 프로듀서였으니까. 그렇다면 천연 지골로여서였을까. 케이트는 그럴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몸에 밴 매너와, 꽤나 잘 생긴 얼굴, 그리고 수트가 잘 어울리는 적당히 각 잡힌 몸까지. 영국 신사가 있다면, 그야말로 진정한 영국 신사의 표본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케이트는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어쩌면 그에게 자신은 그저 평범한 아이돌 중 한 명이라고 생각되었을지도 몰랐다. 평범한 아이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케이트는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탈진과 연습, 그리고 프로듀서의 고민 섞인 표정들의 시간.
 
아슬아슬한 시간들 속에서, 케이트는 보여줄 것이 있다는 프로듀서를 따라 짧은 문학여행을 했다. 당일치기 여행이었지만, 케이트는 만족스러웠다. 나츠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같은 자신이 몰랐던 작가들을 알게 되었으니까. 케이트는 그 중에서도 특히 나츠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빠져들었다. 고양이의 삶과 인간의 삶, 그 사이에서 흐르는 감정들. 케이트는 자신이 고양이같다고 생각했다. 운명을 잡아낼 수 없는 작고 여린 푸른 눈의 고양이.
 
여행에 돌아오자마자 케이트는 프로듀서의 권유에 따라 데뷔를 했다. 그리고 맛본 것은 성공의 달콤함이 아닌 처절한 실패의 맛. 역시 일본어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아니, 발목을 잡은 것은 일본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일례로 같은 처지라고 생각했었던 아이돌은 큰 성공을 거두었으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 되었던 걸까. 아이돌이 되기로 한 것? 어쩌면 그럴지도 몰랐다. 케이트는 애초에 아이돌에 대해선 거의 무관심했었으니까. 케이트는 그저 프로듀서의 곁에 있기 위해서 아이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수단과 결과의 뒤바뀜. 케이트는 어쩌면 이것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처절한 실패가 찾아온 그 주에 날아온 학생 비자 취소 공문. 그야 당연했다. 학교에는 가지도 않았고, 열심히 노력해서 낸 앨범은 실패했으며, 프로덕션이 아무리 뛰어봐야 취업 비자는 내 주지 않을테니까. 그래서 케이트는 영국으로 돌아왔다. 프로듀서에게 유창한 일본어로 말하겠다는 꿈은 고이 접어 캐리어 안에 넣어놓은 채로. 프로듀서는 다른 아이돌들에게 사랑받기에 자신 따위는 얼마 가지 않아 잊어버릴 것이다. 가슴 아픈 작별 인사, 케이트는 프로듀서를 마지막으로 봤던 그 날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알지 못한다.
 
담배 냄새가 다시 그녀의 코를 쿡쿡 찌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다지 기분 나쁘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이번 담배는 그다지 독하지 않은 것인지도. 그 생각이 든 순간, 케이트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앞 방으로 간다. 문을 세 번, 약하게 두드리고는 앞 방에 사는 중년 남자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잠시 기다린 끝에 남자가 나오자, 케이트는 방금 옆 방으로 온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입을 연다.

「그 담배, 같이 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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