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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스타샤 『언어의 정원』 -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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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16, 2018 01:43에 작성됨.

그리고 그 다음 비오는 날. 
어김없이 휴가를 받은 나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로덕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나는 아나스타샤를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그 쪽으로 갈 필요가 없었으니까. 

프로덕션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곧 그녀의 친구 한 명과 같이 우산을 쓰고 어딘가로 향하는 아나스타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잠깐. 저 아이는 칸자키 란코? 
친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만, 저렇게 우산을 같이 쓸 정도로 친했던건가. 
그녀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자니, 그 시선을 감지한 듯한 란코가 내 쪽을 쳐다보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아나스타샤에게 알려준다. 
란코가 가리키던 곳을 쳐다보던 아나스타샤는 미소를 지으며 이 쪽으로 다가온다. 
저번에 프로덕션에서 봤을 때는 그렇게 나에게 달라붙어왔었는데. 
그 약간의 쌉쌀함을 느끼며, 아나스타샤를 웃는 낯으로 맞이한다. 
나를 본 아나스타샤가, 마침 잘 됐다는 듯이 나에게 란코를 소개해준다. 

「제 친우, 칸자키 란코쨩이에요-」 

「프로방스의 바람! 여가 바로 북쪽의 여왕의 배필인가?!」 

 

란코의 말에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아나스타샤를 쳐다보자, 그녀의 얼굴에 붉게 물든다. 
대체 저게 무슨 말이야...? 

「아무래도 여는 나와 파장이 맞지 않는 자인 모양이다! 그, 그럼... 혹시 아나스타샤 씨랑... 연인 관계예요?」 

조심스러운 말투로 묻는 란코의 물음에,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 지 몰라 아나스타샤를 쳐다본다. 
하지만 아나스타샤도 역시 질문이 부끄러웠는지, 나와 시선만 마주치면 고개를 숙여버리니... 
어쩔 수 없다. 여기서는 친구라고 해 둘까. 
란코에게 그렇게 이야기하자, 란코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아나스타샤를 쳐다본다. 
붉어져 있었던 아나스타샤의 얼굴은, 조금은 화난 듯한 표정으로 바뀌어있었다. 
혹시라도 아나스타샤에게 불필요한 오해가 얽혀들어가지 않도록 나름대로 조심했던 건데, 그것이 그녀에겐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혹시 저번에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이 있던가?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채로, 다시 란코의 질문을 받는다. 

 

「그, 그럼... 어떻게 알게 된 거죠?」 

 

그녀의 물음에 내가 무심코 대답하려다가, 잠깐 입을 닫고 곰곰히 생각에 잠긴다. 
나의 이야기나 아나스타샤의 이야기를,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굳이 란코에게 할 필요는 없겠지. 
조심스럽게 입을 연 나는, 어른의 연륜이란 징표를 앞세워 매우 깔끔하고 아름다운, 하지만 거짓말인 이야기를 란코에게 해 준다. 
이야기를 마치고 아나스타샤를 쳐다보니, 화가 났었던 그녀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무래도 란코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조금 껄끄럽겠지만, 우리 두 사람만의 말랑하고도 촉촉한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그녀도 생각한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그녀의 생각대로 움직여줘서 화가 풀린 거겠지. 
나의 말을 들은 란코가 조금 이해가 가지 않지만 어쨌든 이해가 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연다. 

「그럼 북쪽의 여왕의 권속이여! 그대는 나와 함께 미지의 어둠으로 향해보지 않겠는가?」 

「란코가, 만약 당신이 일이 없다면 저희들과 같이 움직이지 않겠냐고 묻는데요-?」 

설명 고마워, 아나스타샤. 
음, 그렇네. 
어차피 일도 없고 두 사람만 움직이면 조금 걱정되니까 같이 움직일까. 

 

아름답기 그지없는 두 사람과 같이 비 오는 거리를 걷는다. 
촉촉하게 내리는 비로 거리는 조금씩 감성적이 되어, 그 슬픔을 이겨낼 수 없는 사람들은 도저히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거리. 
하지만 그것은 그들에게는 아나스타샤가 없기 때문. 
지금 나의 곁에 있는 아나스타샤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내리는 비로 인한 우울감은 한 방울도 느낄 수가 없다. 
그리고보니 아나스타샤의 얼굴이 평소와는 좀 다른데... 화장이라도 한 건가? 

「시토-? 왜 그러세요-?」 

나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음을 알고 있다는 듯이, 아나스타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본다. 
그녀에게 혹시 화장을 한 것이냐고 묻자,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란코를 쳐다본다. 
란코가 해 준 것인가, 그럼 이해가 가지만. 

「어머, 저길 봐봐! 하렘남이야, 하렘남!」 

「저런 귀여운 소녀들을 두 명이나 끌고 다니다니... 분명히 야쿠자일꺼야!」 

어이, 내가 조금 못생겼기로서니 야쿠자라니. 
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나스타샤와 란코를 쳐다보자, 두 사람은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냐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어떻게 할까, 내가 그렇게 험악하게 생겼냐고 물어볼까... 

「당신은, 조금 험악하게 생겼을지는 몰라도 잘생겼어요.」 

「북쪽의 군주!」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대답해주니 참 고맙네. 
특히 아나스타샤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더더욱. 
나는 턱 아래쪽에 드문드문 난 수염을 매만지며 내 얼굴을 만진다. 
확실히 내 얼굴은 조금 험악하게 생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야쿠자 정도는 아닐텐데. 
아나스타샤를 쳐다보니 그녀가 자신은 거짓말따위는 할 줄 모른다는 듯이, 그녀 자신은 흰 눈같이 하얗다는 듯이 빙긋 미소를 짓는다. 
그래, 누가 뭐라고 하든 어때. 
아나스타샤만이 나를 제대로 봐 준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그보다 비가 거세지기 시작한다. 
어딘가로 들어가서 비를 피하지 않으면 안되겠는데... 어디로 갈까? 
일단 보이는 것은 영화관과 편의점, 그리고 동물카페 정도인데. 

음, 일단은 금방 그칠 비일지도 모르니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이라도 들어가서 뭐라도 마셔야겠다. 
그렇게 결정한 나는 아나스타샤를 쳐다보고는 손가락으로 편의점을 가리키며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다. 
나의 가리킴에 란코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나스타샤는 금방 이해했다는 듯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다- 일단 비를 피하고 봅시다-」 

「텔레파시?!」 

아나스타샤의 말에 란코가 화들짝 놀라며 나와 그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본다. 
거 참, 원리만 알면 그녀도 바로 알아차릴텐데. 

일단 편의점으로 들어온 우리는, 비에 젖은 서로의 어깨를 쳐다보고는 한 번 웃는다. 
비를 피한다고 옹기종기 붙어있긴 했어도 역시 비를 맞을 수밖에는 없구나. 
편의점을 한 바퀴 돌아, 두 사람에게 사줄 것을 고르기 시작한다. 
음, 뭐가 좋을까? 

그래, 저번에 아나스타샤와 같이 먹었던 캔커피를 고르자. 
저번만큼 달달하고도 부드러운 맛이 날지도 모르는 거니까. 

 

무엇을 살지 결정한 나는 캔커피 세 개를 가지고 와 계산하고는 두 사람에게 하나씩 나눠준다. 
캔커피를 받은 아나스타샤는, 그 아름다운 눈으로 캔터피를 스윽 훑어보더니 나를 그윽한 눈으로 쳐다본다. 
아, 이 캔커피를 왜 골랐느냐고 물어보는 듯하다. 
그야, 이 캔커피는 따뜻하니까지? 

「카사노바....」 

...지금, 나한테 말한건가? 
아나스타샤의 중얼거림에 내가 말하려던 찰나, 란코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달콤해! 고마워요, 아나스타샤 씨의 남자친구분!」 

남자친구?! 
아니, 나와 아나스타샤는 그런 관계가...! 

그래, 내가 말해도 별 수는 없을테니 아나스타샤에게 도와달라고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나스타샤를 쳐다보자, 그녀는 얼굴이 완전히 홍당무인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혹시라도 비를 너무 맞은 것이 아닌가 걱정되어서, 그녀에게 괜찮냐고 물어본다. 
나의 물음이 얼굴에 잠깐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던 아나스타샤가,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더니 역시 조금 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괘, 괜찮아, 아나스타샤 쨩?!」 

「다- 그래도, 어딘가 침대가 있는 아늑한 공간에서 쉬고싶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곁눈질로 힐끔힐끔 쳐다보는 아나스타샤. 

그 눈빛이 신경쓰이긴 하지만, 역시 열이 좀 나는 것 같다니까 집으로 데려다가 간호를 해 주자. 
아나스타샤가 혹시라도 감기라도 걸린다면, 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나 혼자 사는 집으로 란코와 아나스타샤를 데려다주자, 두 사람은 신기하다는 듯이 내 집을 둘러본다. 
내 집이라고 해 봐야 혼자 쓰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가끔씩 외로워질 때가 있는 방 두개 짜리 렌트하우스다. 
그나저나 오늘 나가기 전에 청소를 해 두길 다행이군. 
원래는 이 정도로 깨끗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와아, 넓은 방! 가끔 놀러와도 되나요?!」 

나의 집을 보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외치는 아나스타샤. 

음, 역시 그건 거절하도록 하자. 
내가 매일 집에 있는것도 아닌데다가, 만약 아나스타샤가 
이 곳에 있는 것을 기자들이 알게 된다면, 이제 막 유명세를 타고 있는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미안해, 아나스타샤. 너를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 그럴 수는 없어.」 

나의 입에서 나온 단호한 말에, 아나스타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그녀도 알고 있는 것이다. 
이 곳을 왔다가는, 나와 그녀 둘 다 좋지 못함이. 
그녀는 아이돌이고, 나는 그녀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평범한 녀석이니까. 
그녀를 위해서, 이쯤으로 물러나는 것이 낫다. 

「그렇네요- 그래도, 다른 곳에서라도 만나줄거죠?」 

 

「우울해지는 비 오는 날에, 아나스타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나는, 그렇게밖에 대답할 수가 없다. 
그녀의 미소 띈 얼굴을 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으니까. 
그녀를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 

「북쪽의 군주여! 슬슬 하늘의 전주곡이 끝나니 나의 자리로 회귀하겠노라!」 

「란코쨩이, 비가 슬슬 멈추니까 가봐야겠다고 해요-」 

아직 물기가 다 마르지 않는 눈을 닦아내며, 아나스타샤가 빙긋 미소를 짓고는 란코의 말을 해석해준다. 
굳이 그렇게 번거롭게 대화를 나눠야하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것도 그녀의 개성이니까 뭐라고 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 
창 밖을 보니, 란코의 말대로 비가 슬슬 그쳐간다. 
아나스타샤를 보내줄 준비를 하자. 
다시 만날 그 날을 위해. 

 

 

그로부터 한 2달간은, 비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 두달간은, 고된 노동의 현장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물론 비가 오지 않더라도 주말 정도는 휴식할 수 있는 기업에 다니고 있으니까 별 문제는 없다. 
그래도... 비가 올 그 날을 위해, 그리고 아나스타샤를 만날 그 날을 위해, 나는 자진해서 특근과 야근을 하며 두 달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비오는 날. 
내일까지 비 예보가 있어, 나는 이틀치의 휴가를 내고 우산을 챙겨 밖을 돌아다닌다. 
아직은 비가 오지 않지만,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검은 하늘. 

발걸음을 옮겨 프로덕션 근처까지 가자, 그 곳에는 아무도 없다. 
뭐, 그렇겠지. 
항상 오프만 있는 아이돌이라면, 그건 아이돌이 아니라 그저 귀여운 아이일 뿐일테니까. 

그보다 이제 어디로 간다.
아나스타샤를 찾으러 아무 곳이나 돌아다닐 수는 없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역시 한 군데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나스타샤와 내가 처음 만났던 그 역. 
그 바쁘면서도 한가로운, 권태로우면서 정신없는 그 역. 

 

우산을 쓰는둥마는둥하며 역 안으로 들어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혹시라도 아나스타샤가 있을까봐, 혹시라도 하얗고 순수한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봐.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역 안으로 달려들어간다. 
그리고 그녀 앞에 선 나. 
그녀에게, 혹시라도 여기에서 날 기다린 것이냐고 묻는다. 

「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는 듯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아나스타샤. 
내가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찰나, 아나스타샤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작별인사예요.」 

그 말에, 나는 왠지 모르게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미소짓는다. 
그래, 그녀는 아이돌이고 나는 평범한 일반인. 
우리 두 사람의 애정은, 언제까지고 식지 않을 불꽃은 아니었다. 
처음 만났던 곳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던 곳으로. 

그 오묘한 씁쓸함에, 나의 미소가 조금 무너져내릴 것 같았다. 

「당신을 만나서 즐거웠어요. 그리고 행복했어요. 사랑이란 감정이 있다면, 아마 이런 것이겠죠.」 

아냐의 말에 나는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만 같은 표정을 애써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빙긋 미소를 짓는다. 
나는 그녀와 같은 길을 갈 수 없다. 
나는 프로듀서가 아니고, 그녀는 일반인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녀에게- 

「당신의 따스한 마음에 저는 한 번 위안을 얻었어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제가 위안을 드릴게요.」 

아나스타샤의 말에, 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본다. 
그리고, 나의 입술에 느껴지는 진한 살갗의 감촉. 

「작별인사예요, мое солнце.」 

그 말이 무슨 말인지는, 굳이 알고 싶지 않다.

 

 

말이란건 참 신기하지. 
내가 전하려고 했던 것들이, 단 몇 가지의 단어들로 너에게 전해진다는 건. 
말이란건 참 신기하지. 
내가 전하려고 해는 것이 있을 때마다, 너는 언제나 먼저 알아채고 나에게 미소를 지었으니까. 

мое солнце. 
너는 그래서, 나에게 태양이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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