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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스타샤 『언어의 정원』 -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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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16, 2018 01:42에 작성됨.

그로부터 며칠 간은 열심히 일만 했다. 
몸을 움직이고, 사람들과 아무런 의미 없는 농담을 하고, 별다른 이유도 없이 눈물 흘리고. 

오로지 단 한 가지의 목적을 위해, 아나스타샤를 비 오는 날에 맞이하러 가기 위해.


그리고 다시 비 오는 날의 휴일. 
별달리 할 일도 없던 나는, 꾸물거리며 나의 더러운 우리에서 나와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배가 고파져 근처의 카페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곳에는, 마치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아나스타샤가 홀로 앉아 있었다. 

조금 아는 척을 하며 그녀 앞에 서자, 아나스타샤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껴안는다. 
나는 그저 비 오는 날에 역 안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던 별볼일 없는 아저씨인데도. 
그렇지, 아나스타샤의 환한 미소를 보고 아무것고 사주지 않을 수는 없지. 
무엇이 마시고 싶냐고 그녀에게 물어본다. 
그녀는 그래도 괜찮냐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나스타샤가 잠시 고민하더니 카페 안에서 마시는 커피 대신, 바로 앞의 편의점에서 파는 캔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한다. 
왜 하필 캔커피냐고 물으니,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소매만 잡고 있다. 
아, 혹시 편의점에서 사는 캔커피를 마시는 것이 꿈이었다거나. 

어쨌든 그녀가 원하는 대로 편의점을 가서, 그녀가 원하는 캔커피 하나와 내 몫의 마실 것 하나를 사서 공원으로 향한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비가 오고 있지만, 오늘은 내가 두 사람 몫의 우산을 가지고 왔기에 누구 하나 비를 맞을 일은 없다. 
공원에 도착해 비가 들어치지 않는 작은 정자에 들어서자, 아나스타샤가 먼저 자리를 잡고 캔커피를 따 마신다. 
홀짝홀짝. 마시는 모습이 마치 작고 귀여운 여우가 물을 홀짝이는 모습같아 귀엽다. 
나의 시선에 아나스타샤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 자신이 마시던 캔커피를 내밀고는 한 모금 마시지 않겠냐고 묻는다. 
나는 그 말에 굳이 거부하지 않고, 그녀가 방금까지 손에 쥐고 있었던 따스한 캔커피를 넘겨받아 한 모금 마신다. 
그녀의 온기가 커피 속에 녹아내린 것같은 깊은 맛이 난다. 
한 모금의 커피에 비 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린 채로, 아나스타샤에게 캔커피를 돌려준다. 
잘 먹었어라고 말하니, 아나스타샤가 별 말씀을 한다는 듯이 환한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에, 나는 그녀와 같은 예쁜 아이를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창 밖을 쳐다보니 아직 비는 계속 올 모양. 

어디로 가야할까 고민하다가, 아냐의 추천으로 근처의 플라네타리움에 가기로 한다. 
추천이라고는 해도, 그녀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것 같지만. 
이유를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즈베즈다- 아, 별을 좋아하는 아이돌은 잘 없으니까요-」 

아냐에게 별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니, 너무나도 맑은 미소로 다-라고 대답한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면 대답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에게서 이해받을 수 있으니까. 

아나스타샤와 함께 플라네타리움에 도착하자, 그녀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내 손을 잡고 달려들어간다. 
아직 어린 아이네, 나는 내 입가에서 비어져나오는 미소를 막지 않는다. 

플라네타리움에 들어가 객석에 앉자, 둥근 돔에 조각된 별들이 조명을 받아 빛나기 시작한다. 
평일의 오전 시간이라 사람도 없어, 광활한 우주가 나와 아나스타샤 두 사람의 것만같이 펼쳐진다. 

「예뻐요-」 

「그러네. 정말로 아름다워.」 

아름다운건 별들만은 아니지만 말이야. 
아나스타샤가 주변을 둘러보며 눈을 반짝이며 손가락으로 별을 가리키자, 나는 나도 모르게 무심코 그녀가 가리킨 별에 대해서 중얼거린다. 
어렸을 적에 별자리라던가 별의 이름들을 꽤나 외우고 다녔으니까, 무심코 반사적으로 나온 것이겠지. 

「방금 그 별은 리겔이네. 오리온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이지. 오리온은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오, 즈베즈다- 아, 별에 대해서 많이 아시나요?」 

「뭐, 웬만큼. 옛날에 다 외우고 다녔거든.」 

「그런가요-? 저도 코스모납트- 아, 우주비행사가 되는것이 꿈이에요-」 

「과연 그런가. 어릴 적에는 다들 꿈으로 하곤 하지.」 

「다-」 

아나스타샤의 말에 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와 함께 대화를 나눈다. 
내가 잃어버린 순수를 가지고 있는 듯한 아나스타샤의 표정을 볼 때마다 들뜨는 기분이다. 

가슴 가득 그녀에게서 빌린 순수를 머금고 플라네타리움에서 나온 나에게, 아나스타샤가 이 쪽 헌책방에 가지 않겠냐고 묻는다. 
헌책방이라, 고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긴 하지만 오늘은 그녀를 주욱 따라다니는 것도 괜찮겠지. 
아직도 센 빗발은, 아직은 아냐와 내가 헤어질 때가 아님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헌책방에 들어서자, 카운터에서 책을 읽던 직원이 조용하면서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어서오라고 인사를 건넨다. 
맞인사를 한 나는, 헌책방의 서고에서 처음 보는 책들에 휩싸여 빙긋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 때, 아냐가 보물을 찾았다는 듯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책 한 권을 들고 온다. 
그 책은 아직 미발견된, 하지만 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별들에 대한 책. 
나는 아나스타샤가 가지고 온 책을 보고 그녀를 생각한다. 
아나스타샤는, 얼마나 더 숨겨놓고 있는 것일까? 

「무슨 일인가요-? 뭔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어요-」 

아나스타샤의 말에 나는 빙긋 미소를 띄우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그 책을 사주겠다고 한다. 
아나스타샤는 극구 사양했지만, 두 번째 만남의 기념품이라고 말하며 사 주었다. 
나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감사해하는 아나스타샤에게, 그럴 필요는 없다고 손을 내젓고는 대신 한 가지 부탁만 들어달라고 한다. 
그것이 무엇이냐는 그녀의 말에, 나는 그녀의 일터인 프로덕션에 가보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나의 말에 아나스타샤는 「프로덕션-? 그게 왜 궁금한 건가요-?」 

혹시라도 그녀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까 봐. 
사랑받은 자격이 충분한 그녀가, 그저 외톨이로 남아있다면 혼내주고 싶으니까. 
아나스타샤에게 나는 그저 지나가는 사람일지라도, 그것을 내가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뭐, 부끄러우니까 그냥 궁금해서라고 말했지만. 


나는 내 평생 귀여운 아이돌들이 가득한 프로덕션에는 연관이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그야 그렇잖아. 
프로듀서 일을 할 것도 아니고, 남자 아이돌이 될 얼굴도 아닌데다가, 아이돌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오늘, 아나스타샤와 함께 프로덕션에 오게 되었다. 

「하라쇼- 그럼 같이 들어가요-」 

아나스타샤의 재촉에 내가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경비원들의 눈치를 살피며 들어간다. 
몇몇 경비원들은 아나스타샤에게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는 듯했지만, 그 때마다 아나스타샤가 잘 넘겨준 덕에 별 탈 없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아나스타샤의 안내로 그녀 담당의 프로듀서가 일하는 사무실로 막 들어가려는 찰나 꽤나 아름다운 사람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가 사무소 최고의 아이돌인 닛타 미나미라는 건 나중에 알았지만. 

「어머, 안녕, 아냐 쨩. 좋은 하루. 그런데 옆의 사람은 누구야? 혹시, 남자친구?」 

그녀의 말에 아나스타샤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나를 소개하려 해 보지만, 자꾸만 헛나오는 말에 얼굴을 더 빨갛게 물들인다. 
그 표정이 너무나 귀여웠는지, 그녀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아나스타샤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는 사무실의 문을 열어준다. 
사무소 안에는 웬 젊은 남자 하나가 앉아있다가 나를 보고는 아나스타샤에게서 이야기는 자주 들었는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악수를 청한다. 
잠시동안 맞잡은 손을 풀자, 아나스타샤의 프로듀서가 천천히 입을 연다. 

「저희 아나스타샤가 당신께 꽤 폐를 끼친 모양이군요.」 

폐라니, 전혀 그렇지 않다. 
나도 지나가는 비의 날에 그녀를 만나서 친해졌을 뿐,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말이 잘 통할 뿐. 
나의 손짓에 프로듀서 씨가 마침 사무원 씨가 타온 커피를 나에게 내민다. 
비 오는 날에는 맞지 않는 듯한 따뜻한 아메리카노. 

그 아메리카노가 복선이었을까, 프로듀서 씨의 표정은 웃고는 있지만 뭔가 불편한 듯한 표정이다. 
말로 내색은 할 수 없지만, 역시 나와 아나스타샤가 가까이 지내서는 안된다는 듯한 분위기. 
잠시 말 없이 커피만 홀짝이던 프로듀서 씨가, 그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지요. 당신은 아나스타샤의 무엇입니까?」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애정을 가진 상대, 라고 말씀드리면 괜찮겠습니까?」 

더 이상은 아나스타샤에 대한 감정을 숨길 필요도 없다. 
그럼으로 인해 아나스타샤라는 쪽배가 조금 더 길을 잘 찾을 수만 있다면, 나같은 바닷갈매기는 바다를 헤쳐나가는 데에 도움을 주리라. 
나의 말에 프로듀서 씨가 의외라는 듯이 나를 쳐다보더니 빙긋 미소를 지으며 아나스타샤를 쳐다본다. 
그녀는 나의 팔에 팔짱을 끼며, 나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보여준다. 
아나스타샤의 반응에 놀랐는지, 놀라움을 감출 수 없는 눈으로 나와 그녀를 쳐다보는 프로듀서 씨. 
잠시 아무런 말이 없던 그는, 다시 한 번 커피를 홀짝이고는 입을 연다 

「아나스타샤 씨는 아무래도 당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아예 프로듀서로 전업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저는 아나스타샤를 도와주고 싶을 뿐, 연예계에는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습니다.」 

프로듀서 씨의 말에, 나는 단 마디도 주저하지 않고 내 생각을 말한다. 
내 말에 아나스타샤는 조금은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떨군다. 
하지만 아나스타샤를 위해서는 그것이 최선이겠지. 
나는 프로듀서의 재능도 없고, 사람과 많이 부딪치며 화를 내야 하는 일에는 맞지 않으니까. 

「아쉽군요. 후배 프로듀서가 한 명 들어오나 했는데 말이예요.」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단언하며, 나에게서 조금 떨어진 아나스타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 손길에 아나스타샤는 기분이 괜찮아졌는지 빙긋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래, 욕심을 낼 필요는 없다.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하니까. 

「이런, 시간이 꽤나 흘렀군요. 댁까지는 여기서 머십니까?」 

 

프로듀서 씨의 말에, 내 집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고, 걸어서 20분 정도라고 솔직히 말한다. 
굳이 말하면, 아나스타샤와 만났던 그 역보다 이 프로덕션이 더 집에서 가깝다. 
나의 말에 프로듀서 씨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나스타샤를 보며 말한다. 

「아나스타샤 씨, 너무 자주 가지는 않도록 해 주십시오. 어쨌든 당신은 아이돌이니까요.」 

「다- 스파시바, 프로듀서 씨-」 

아나스타샤의 미소 띈 대답에 프로듀서 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밖으로 안내한가. 
그의 손길에 이끌려 밖으로 나오니 비는 벌써 그치고 두둥실 해가 띄워져 있다. 
프로듀서 씨와 인사를 하고 막 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하려는 찰나, 아나스타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당신의 집이 어디인지 아직 몰라요!」 

비 오는 날에 알게 될거야, 그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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