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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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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12, 2018 17:37에 작성됨.

 '첫눈에 알 수 있다.'는 건 바로 지금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765 프로덕션에 입사해서 다른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만났던 그 아이. 항상 소파에 앉아 이어폰을 꽂은 채 책을 읽고 있던 아이. 푸르스름한 긴 머리에 차가운 인상, 표정 없는 얼굴, 그리고 세상과 단절된 그 분위기. 누구도 쉽게 다가갈 수도, 쉽게 말을 걸 수도 없는 그 모습. 그걸 보고 누구나 떠올릴 것이다.
 ‘아, 저 아이는 어둡구나.’
 그렇게 첫눈에 알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엔 꺼려졌다. 내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반응 한 번 해주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옆에 앉아서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 흥얼거리는 콧노래에도 반응이 없었다. 며칠 동안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은 아주 적었다. 765 프로덕션에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려주는 사장님이나 오토나시 사무원님, 그리고 처음 들어온 프로듀서님, 그리고 새로 들어온 동료 아이들. 하지만 그 아이는 손윗사람에게만 몇 번 조금 대화했을 뿐, 다른 아이들과는 통성명조차 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버릇 없는 아이’라고 생각할 법 했다.
 하지만 그 아이가 가장 활발하게 행동할 때가 있었다. 보컬 레슨 때였다. 누구보다 열심히 레슨을 받았고, 쉬는 시간에도 트레이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우등생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시시콜콜한 잡담으로 쉬는 시간을 보냈지만, 그 아이만은 악보가 뚫어져라 보며 연습했다. 한 마디로 괴짜 같았다. 그렇다고 다른 레슨 땐 이렇지 않았다. 댄스 레슨 땐 잘 해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의욕이 없어서 금세 꾸중을 듣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표정엔 ‘왜 내가 이런 걸 해야 하는 거지?’라고 쓰여있었다. 비주얼 레슨도 마찬가지였다. 포즈나 표정도 아이돌이나 가수에겐 매우 중요한 것임에도 그는 진지하지 않았다. 오로지 눈이 가는 건 보컬 레슨뿐이었다.
 보컬 레슨이 없던 때엔 자주 사무소 옥상에 올라가 발성 연습을 했다. 나도 가끔씩 옥상에 올라갈 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연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청아한 목소리, 확실한 가사 전달력, 그리고 엄청난 폐활량. 나는 조금 감탄했다.
 ‘가수 같다.’
 그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 아이는 아이돌이 아니라 가수로 가야 했다. 하지만 우리 사무소는 엄연한 아이돌 사무소. 그 아이와는 맞지 않는데 어째서 온 것일까? 내가 그 아이가 아니라서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고 나도 사무소 동료들도 어느덧 데뷔를 했다. 각자 개인곡이 나오고 활동을 시작했다. 프로듀서님은 바쁘게 뛰어다녔고, 사무소도 전화와 씨름했다. 우리 역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노래며 영업이며 인터뷰를 했다. 하루를 쪼개 써도 모자랄 만큼 부족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노력의 결실이 드디어 맺어졌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달랐다.
 “노래 업무 위주로 짜주세요.”
 그 아이가 프로듀서님에게 요구한 것이다. TV 방송이든 소규모 라이브든 좋으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업무여야만 한다고 했다. 프로듀서님은 난처한 얼굴로 하나만 할 수는 없다고는 했으나 그 아이는 단호했다. 프로듀서님은 찡그린 얼굴로 고민하다가 최대한 만들어보겠다고 말씀하셨고, 그 아이는 어느 정도 마음에 찼는지 인사를 하고 사무소를 나갔다.
 “하아, 지친다.”
 프로듀서님은 바로 한숨을 쉬셨다. 강도 높은 업무에 매일 치이시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누구나 지칠 수밖에 없지 않나 싶었다. 나는 그 이후로 프로듀서님이 가져오신 업무는 불평 없이 하기로 결심했다.
 밑바닥이었던 우리 사무소도 어느덧 인지도가 쌓이고 나도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자 변장을 해야 할 만큼이 되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사무소에 들어서면 다들 꽁꽁 싸맨 옷이나 가발 등 변장도구를 푸는 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딱히 변장은 하지 않았다. 왜인가 싶어서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팬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길거리나 무대 공연이 끝나고 사인을 해달라는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지나치는 것이 일상이라고 했다. 아무리 노래가 좋아도 팬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인기를 스스로 차버리는 꼴이 되고 만다. 아이돌은 팬들의 응원을 먹고 사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시들어 죽고 만다.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걱정되었다.
 765 프로덕션 올스타 라이브라는 게 결정되었다. 사무소 동료들의 인기가 많아져 모두가 함께 라이브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사장님도 오토나시님도 프로듀서님도 서로 수고했다면서 기뻐했다. 우리도 기쁜 건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무대 의상을 입어보고, 새로운 단체곡도 받아 연습했다. 물론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라이브 준비까지 해야 하니 할 일은 두 배로 늘었지만 다들 지친 기색 없이 열심히 소화했다. 그리고 라이브까지 일주일이 남았을 때, 그 아이는 쓰러졌다.
 댄스 레슨 중이었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과 거친 숨소리, 그리고 창백한 얼굴에 뜬 붉은 홍조. 누가 봐도 심각한 상태였다. 프로듀서님은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그 아이를 데려가셨고, 남은 우리들은 마저 레슨을 시작했다. 하지만 상태가 걱정이 됐는지 쉬는 시간에 다들 모여 프로듀서님께 전화를 했다.
 “며칠 쉬면 괜찮을 거래.”
 프로듀서님이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는 그나마 안심했다. 하지만 라이브까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아, 그 아이는 이 공백이 커다랗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있는 지금도 분명 분해있겠지. 오늘은 레슨 이외에 스케줄이 없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다른 아이들을 대신해 내가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 병원에 도착해 병실에 들어서니 프로듀서님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프로듀서님께 내가 대신 하겠다고 한 뒤 자리를 바꿨다. 프로듀서님은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프로듀서님은 앞으로의 스케줄 때문에 먼저 병원을 나섰다.
 그 아이는 자고 있다. 이럴 때 보면 누구 못지않게 따뜻한 표정인데 왜 평소에는 그런 것일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해봐야 그 아이가 아니고선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라 생각했다. 나는 시간이라도 때울 겸, 혹은 연습 겸 MP3 플레이어 안에 넣은 라이브 연습곡을 들었다. 어느 정도 지났을까? 그 아이가 깨어났다.
 “일어났어?”
 그 아이는 반쯤 뜬 눈으로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러다 상반신을 일으키려 했다. 나는 일으키는 걸 도와줬다. 그 아이는 머리를 쓸어 넘기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글러먹었어.”
 “응?”
 난 그 말에 얼떨결에 대답했다.
 “네가 아니라 나 말이야.”
 “아, 으응.”
 “이렇게 좋은 기회가 생겼는데.”
 그러고는 이마로 손을 짚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커다란 라이브가 잡혔는데 어처구니 없이 쓰러졌다는 뜻 같았다.
 “그런데 넌 왜 여기 있어?”
 “응? 아, 병문안… 아니, 보호자려나?”
 나는 우물쭈물 답했다. 그 아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가서 연습이나 해. 여기서 시간 버리지 말고.”
 “어떻게 그래? 너도 우리 사무소 식구잖아.”
 “식구?”
 그 아이는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피식 웃었다.
 “그런 태평한 소리를…….”
 “어?”
 “그런 허울 좋은 소리는 집어치워!”
 그 아이는 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화가 가득 찬 표정이었다. 금방이라도 날 잡아먹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그 모습에 목이 잠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다 라이벌이야. 식구? 동료? 그런 게 정말 있을 것 같아? 이 바닥은 살아남기 위해선 누군가를 밀어내야 해. 그런 마음가짐으론 살아남을 수 없어.”
 “너…….”
 “내가 왜 연습에만 매진했는지 알아? 살아남기 위해서야. 죽을 정도로 연습해서 무대에 나가서 노래를 불러야 내 동생…….”
 그 아이는 말을 하다가 멈췄다. 그리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쓸데없는 말을 할 뻔 했네. 아무튼 내 말 이해했으면 돌아가. 나 같은 패배자는 그냥 비웃든지 마음대로 해.”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돌아누웠다. 나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아이가 한 말이 모두 틀린 건 아니었으니까. 나야말로 너무 안일하게 아이돌 활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한 번이라도 저 아이처럼 진지하게 임했던 적이 있었을까? 그저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마음만이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만약 내가 정말 인기가 많아졌을 때 모두와 함께 나아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내 머리에서 뒤섞였다. 나는 속이 조금 메스꺼워졌다.
 “뭐 해? 안 나가고.”
 그 아이는 돌아누운 채 내게 물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짜증이 가득 섞인 얼굴일 것이다. 나는 병실 문 앞까지 터덜터덜 걸었다. 문을 열려고 했을 때 나는 입을 열었다.
 “네 말도 이해는 할 수 있어. 하지만 난 그게 다가 아니라고 믿어.”
 “뭐?”
 “우린 혼자가 아니니까.”
 나는 뒤돌아서 그 아이에게 말했다.
 “혼자서도 잘 해낼 수야 있겠지. 하지만 지치고 쓰러졌을 때, 누군가 옆에 있다면 더 마음이 든든하지 않을까? 아주 조금만이라도 동료를 믿고 나를 맡긴다면, 더 좋은 무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몸조리 잘 해.”
 나는 병실을 나왔다. 조용한 복도엔 약품 냄새만이 코를 찔렀다.
 ‘나도 무슨 이야길 한 거람.’
 한숨을 쉬었다. 괜한 말을 꺼내서 저 아이가 이상한 생각이라도 할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쏟은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냥 잊자. 그렇게 생각하고 병원을 나서 집으로 향했다.

 라이브 이틀 전. 그 아이는 퇴원해 다시 라이브 연습을 시작했다. 평소와 똑같이 레슨에 연습에 집중했다. 하지만 몇 가지 바뀐 점이 있었다. 레슨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 아이가 먼저 인사를 했다. 깜짝 놀라 모두의 눈이 그 아이에게 쏠렸지만 그 아이는 당황하지 않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우리를 또 놀라게 한 것이 있었다.
 “혹시 내가 방해가 안 된다면 연습하는 거 도와줄까?”
 그 아이가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는 것이다. 전에는 생각도 못 했던 일이 일어나자 다들 수군거렸지만 그 아이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다른 아이들은 도와주면서 자기 레슨을 할 뿐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왠지 모를 안도감이 생겼다. 레슨을 마치고 다들 헤어지는 도중에 그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래?”
 “그냥.”
 그 아이는 별 거 없다는 듯이 짧게 대답하곤 저벅저벅 걸어갔다. 변함없어 보이지만 어딘가 바뀌었다는 걸 난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라이브 당일이 되었다. 개장까지 1시간 남짓하자 다들 바쁘게 뛰어다녔다. 프로듀서님이 세트 리스트를 가져다 주시면 우린 그걸 확인하고 무대 순서와 가사 암기를 했다. 대기실은 조용하다가도 한숨 소리와 긴장감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나 역시 긴장해서 안절부절못했다. 가사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다른 아이들의 떨리는 모습만이 보였다. 그 때였다. 그 아이가 무표정인 모습으로 일어섰다. 모두의 눈이 그 아이에게 몰렸다.
 “다들 긴장되는 건 알고 있어.”
 그 아이가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실수가 두려울 수도 있고, 잘못하면 어쩌지 하고 고민도 될 거야.”
 그리고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럴수록 마음을 편하게 가지자. 즐긴다는 마음으로 나서자. 우린 혼자가 아니잖아?”
 아. ‘혼자가 아니다.’ 분명 내가 한 말이다. 그 아이는 그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구나. 내가 한 말을 흘려 듣지 않았구나. 나는 내심 고마웠다.
 “실수를 하면 옆에서 도와주는 게 동료니까. 안 그래?”
 그 아이의 말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감한다는 뜻이었다. 그 말로 대기실을 맴돌던 긴장감은 조금씩 풀렸고,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아까까지 그 긴장했던 표정은 사라지고 어느새 자신감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무대에 설치된 커튼 뒤에서 서로 손을 맞잡았다. 관객들은 우리의 실루엣을 보고 환호했다. 나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직 긴장감이 다 해소되지는 않았던 탓인지 내 손은 살짝 떨렸다. 그걸 눈치챘는지 그 아이는 내 손을 꽉 잡아주었다.
 “네 덕분에 나도 조금 바뀔 수 있었어. 고마워.”
 “고, 고맙긴. 내가 뭘 한 것도 없는데.”
 “아니. 네가 없었으면 난 여전히 혼자였을 거야.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려준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리고 나를 향해 빙긋 웃어주었다.
 “정말 고마워, 하루카.”
 그 모습에 나는 활짝 웃어 화답했다.
 “천만에, 치하야.”
 그리고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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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씁니다.

하루치하빌런님을 위해 짧게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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