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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단편 - 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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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11, 2018 20:24에 작성됨.

 누구나 반짝이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누구나 하늘에서 빛나는 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스무 살이나 먹을 동안 인생을 평탄하게만 살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나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그 무게가 다르다.

 케이트 씨, 이쪽으로 와 봐요! 스태프의 부름에 그녀는, 케이트는 책을 덮었다. Yes, 금방 가요. 본토 발음에 유창한 영어와 어색한 일본어가 섞인 대답이었다.

 일본에서 아이돌을 시작한지 반 년. 그녀의 주된 일은 노래나 춤이 아닌 스태프들의 허드렛일 돕기였다. 굳이 아이돌이 해야 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돌로서 일하려면 이런 일들도 해야만 한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그녀가 기회라도 붙잡기 위해선 일을 가려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인맥을 쌓고, 이미지를 좋게 보여야만 한다. 그 덕에 그녀는 오늘 무대에 백댄서로나마 설 수 있었다.

 센터가 아니라 주역을 돋보이게 하는 가장 자리. 그곳에서도 무대의 중압감은 느껴진다. 관객들의 환호성을 듣고 사이리움의 빛을 보면, 그게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사이 달콤한 착각에 빠져 헤어 나오기 어렵다. 마치 동화 속에 빠져든 것처럼.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한 곳을 바라봤다. 성처럼 굳건한 무대의 중앙, 이곳의 주인. 정말로 반짝이는 아이돌을 보며 자신의 초라함을 확인했다.

 

 일본에 온 것은 일종의 도피였다. 그녀는 영국에서의 생활을 싫어하지 않았지만,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에 다닌다고 바뀌는 게 있을까. 이대로 살아가면 나는 무엇이 될까. 남들처럼 살다가 남들처럼 고생하고 남들처럼 죽게 되려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이제 막 성인이 된 그녀를 집어삼켰다. 떠나게 만들었다. 고국을 떠나 새로운 것을 보고, 많은 것을 경험하면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것만 같았다.

 케이트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는 흥미로운 곳이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독특한 볼거리가 많았다. 어떤 곳에선 전통을, 어떤 곳에선 세련된 현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음식이 마음에 들었다. 사케는 입맛에 안 맞았지만, 안주가 맛있어서 취하지 않을 만큼만 마시면 괜찮았다.

 실컷 즐기고 만끽했으나 여전히 불안은 남아있었다. 이런다고 바뀌는 게 있을까? 아무런 목표도 없는데. 그 때 제안 받은 것이 아이돌이었다.

 정말 갑작스럽게 길거리에서 캐스팅 받았다. 명함을 건네준 남자는 케이트의 이국적인 매력을 칭찬했다. 남들에겐 없는 새로운 모습을 가졌다고, 재능을 살려보자고. 그 말에 혹해 아이돌을 시작했으나 큰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불안만 가중됐다. 나는 저 아이돌처럼 반짝일 수 없다, 누군가의 빛에 가리기만하다 사라질 운명이다. 평생 이렇게 뒤치다꺼리만 하다.

 하루 일을 끝내고 케이트는 비어있는 무대에 남았다. 나 이외엔 아무도 없는 곳. 적막만 가득한 곳에서 케이트는 노래를 불렀다.

 눈앞에 있는 것은 텅 빈 관객석. 그 위에 사이리움의 환상을 덧칠하고, 들리지 않을 환호성을 상상했다.

 알고 있다. 이 노래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겠지.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든 사람들은 관심 가지지 않을 거야. 하지만 아무것도 못 해봤는데, 나의 빛을 확인해 보지도 못했는데, 이대로 묻히기는 싫어. 그러니까…… I will sing.

 그 때, 열린 문으로 발소리가 들렸다. 케이트는 당황해서 노래를 중단했다. 덜컥 겁이 났다. 멋대로 무대를 쓰면 안 될 텐데. 재빨리 무대 뒤로 도망쳤다.

 발소리는 가까워지다 홀에 들어왔다. 한 남자가 무대와 객석을 두리번거리다 밖으로 나갔다. 주차장에서 오늘 무대의 주인공이 기다리고 있었다. 프로듀서님, 늦으셨잖아요. 프로듀서는 한숨을 쉬었다. 먼저 가라고 했잖아.

 소녀를 바래다주며 프로듀서는 어렴풋이 들은 노래를 떠올렸다. 괜찮은 음색이었는데, 더 듣지 못해 아쉽네. 백미러로 힐끗, 소녀를 보았다.

 저 아이도 얼마 전까지는 무명이었다. 반짝이는 별이 된 건 최근. 막막한 현실에 부딪혀 포기하려는 것을 프로듀서가 붙잡았고, 다시 한 번 노력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은 모른다. 저 아이의 빛이 다한다 해도 모르는 채 넘어갈 것이다. 그들은 새롭게 빛날 별을 쫓으면 되니까.

 그래서 더 안타깝다. 저 아이도, 아까 목소리의 주인도.

 숨 가쁘게 살다가 간신히 한 번 밖에 낸 목소리. 나는 여기에 있다고, 남들 몰래 토해낸 울림. 지금껏 몇 번이나 들어왔고 그 때마다 프로듀서는 같은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 사람을 만났더라면.

 누구나 반짝이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누구나 하늘에서 빛나는 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프로듀서는 잘 알고 있다. 업계 사람이니까 더욱 뼈저리게. 그 무게를 알고 있다.

 동정일지도 모른다. 혹은 괜한 참견. 하지만 아깝지 않은가. 이렇게 마음을 끌어내는 힘을 가졌는데, 무언가 조건이 안 맞아 반짝이지 못 한다니.

 찾아볼까. 소녀를 바래다주고 프로듀서는 전화를 걸었다. 오늘 무대를 도와준 스태프였다. 목소리의 주인이 혹시 공연 관계자라면 무언가 알지도 모른다.

 허탕일 수도 있겠지. 시간도 오래 걸릴 거야. 내가 나서봤자 아무것도 안 바뀔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아. 나는 별을 찾는 사람이니까.

 “네, 접니다.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 혹시 오늘 무대 섰던 백댄서들 프로필을 알 수 있을까요?”

 

 

 

 

 

 

 

 

 

 

미오 토막글에서 문제 정답을 맞추신 후고링 님의 리퀘로 써봤습니다.

원하시던 내용에다 엔딩 부분을 좀 추가해 희망적인 느낌으로 끝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원래 생각했던 분량보다 길어졌지만, 별로 상관없겠죠.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쓰면서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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