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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하라 미치루 『와리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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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06, 2018 03:37에 작성됨.

어릴 적에, 그러니까 무엇도 모르고 빵만 먹던 시절.

빵을 먹던 저는, 우연히 아버님이 카운터에 놓고 가신 작은 수첩을 발견했습니다.

무엇일까, 궁금했던 저는 그 수첩을 열어 내용을 읽어보았지요.

그 수첩에는, 아버님의 고뇌가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말씀하지 않으시는, 작은 베이커리로서의 생존 방향이나 프랜차이즈와의 협업 같은 것도 잔뜩 있었죠.

협업...그 때의 저는 잘 몰랐지만, 어쨌든 빵을 지금보다는 적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했던 것 같습니다.

좋아했던 소라빵도 줄이고, 바게트는 하루에 한 개씩만.

그때부터였을까요, 제 머리카락은 항상 소라빵 모양으로 돌돌 말려 있었습니다.

어머님의 배려였을까요, 아니면 좋아하는 소라빵을 마음껏 먹지 못하는 저의 약간의 욕심이었을까요.

어느 쪽이든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래도 이 머리는 아직도 매일 아침이면 제가 직접 만드는 저만의 빵입니다.

 

 

어느 정도 자라니까, 자연스럽게 먹는 양도 많아져서 아버님도 고민을 꽤나 하신 모양이예요.

빵을 만들어보라고 하신 적도 있었지만, 만드는 중에 다 먹어버려서 팔만한게 남지 않으니까 그 다음부턴 오븐에도 가까이 가질 못했죠.

프로듀서 씨를 만난 건 그 즈음이었을 거예요.

한산한 오후의 빵집에 한가로이 앉아, 가게의 빵을 후고후고-하고 먹어치우는 제 얼굴을 보고 아이돌을 하자고 제안하신 분.

아이돌이 되면 빵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프로듀서 씨는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그야 당연하지! 미치루는 귀여우니까, 분명히 톱 아이돌이 될 거라구! 그럼 빵도 원하는 걸로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게 될거야!」

 

그 때, 프로듀서 씨를 따라가지 말아야 했나란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이 사람이라면, 이렇게 빵 먹는 데에만 재능이 있는 저에게 다른 길을 보여준 당신이라면, 한 번 믿고 가 보자라고 생각했죠.

뭐, 그 다음부턴 현실의 벽에 막혀버렸지만 말이죠.

 

 

아이돌 지망생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꽤나 커다란 프로덕션의 정식 아이돌이 된 것까진 좋았어요.

하지만 아이돌이 되는 것이 끝이 아니라, 아이돌이 되어서 어느 정도의 실적을 보여주어야만 돈이 들어오는 거였어요...

돈이 있어야 빵을 먹을 수 있는 건 저같은 아이도 아는 거예요.

그러니, 무슨 일이라도 해야만 해요.

그래도 제가 발로 뛰어서 일을 구할 수는 없으니까, 프로듀서 씨의 도움이 절실한데 말이죠...

제 프로듀서 씨는 다른 아이돌도 담당하고 계셔서, 유명한 아이돌들을 먼저 보살펴주고 남는 시간에 저를 돌봐 주셨어요.

가끔은 저를 위해서 노력해 주셨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야말로 가끔이었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프로듀서 씨도 승진이라던가, 중요하니까요.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변한 건 없어요.

작은 베이커리에서 조금이라도 먹는 입을 하나 덜으면 다행이죠.

제가 집에 와서 빵을 달라고 하면, 부모님은 무심한 표정으로 거의 팔 수 없을 정도의 바게트를 툭 던져주셨어요.

그나마 그마저도 없는 날도 있어서, 그런 날은 하루 종일 쫄쫄 굶어야 했죠.

정말, 아이돌 일을 열심히 해서 배부르게 먹을 날을 위해서 오늘은 참자라고 생각했던 날들의 연속이었어요.

 

 

매일매일의 시간표요?

별 것 없어요.

학교가 끝나고 매일 사무소에 출근했다가 하찮은 일이라도 들어오기 전까지는 스케쥴 표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상.

어쩌다 가끔 짧은 단역이라도 들어오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관계자 분들께 보여드리려고 노력했죠.

하지만 역시,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 세상에는 있는 모양이었어요.

분명히 표정도, 움직임도 완벽했다고 생각했는데 몇 번이고 리테이크가 나올 때는... 주저앉아 울 뻔했죠.

그래도 이것만 끝내면 빵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어요.

열심히, 열심히... 했어요...

 

 

몇 달 뒤였던가, 사무소에서 아이돌 자체 평가지를 나눠주셨어요.

평가지라고 해 봐야 벌어들어온 수입이나 방향성을 보고 점수를 매기는 것에 불과하지만, 저는 나름 열심히 했기에 자신있었죠.

...하지만 받아든 평가지에는, 거의 낙제점에 가까운 점수가 매겨져 있었죠.

그 때였을까요, 왠지 모르겠지만 저의 한계점은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귀엽다는 말을 들어도 그건 작은 빵집에서나 겨우 통용될만한 것.

귀여운 아이들이 많은 이런 사무소에서, 저같은 아이는 그저 빵으로밖에 연관되지 않는 거겠죠.

그 날로 사무소를 뛰쳐 나왔어요.

어차피 그 곳에는, 내일이라곤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아이돌이 되었는데 집으로 바로 돌아갈 수는 없어서, 며칠이고 거리를 해멨어요.

거리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어요.

일하러 가는 사람,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 어디에도 있지 못해 거리에 머물러 있는 노숙자들...

아무런 방향성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저는, 노숙자 부류에 껴보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그것도 안 되는 거였나 봐요.

그들도 저를 받아주지 않더라고요. 하하...

그래서 다시 사무소로 가 봤어요.

하지만 저를 본 사무소의 경비원 분들께서 제가 누군지 물어보시더니, 제 이름을 들으시고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듯이 저를 내쫓더라고요.

뭐, 이해하기로 했어요.

저는 유명하지 않은 아이돌이니까요...

 

 

그래서 다시 거리로 나왔어요.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예요.

집으로 돌아가봐야 항상 그렇듯, 빵도 조금씩밖에 못 먹고 심심하면 가게의 카운터를 봐야 하겠죠.

작은 베이커리라 할 일은 없지만, 그래도 저는 빵을 먹는 걸 좋아하는 거지 베이커리를 좋아하는게 아니예요...

그래서저는,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사무소로 돌아갈 수도 없어요.

그렇다고 거리에 마냥 있을 수도 없었죠.

버스 정류장에 조금만 오래 앉아있을라치면, 금방 경찰 분들이 다가와서 집을 물어보러 오셨거든요.

집으로 돌아가기 싫은 저는, 그저 집과 사무소 근처를 연신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어요.

마치 방향성이 없는 저처럼, 와리가리만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거의 끝이 보여요.

며칠을 굶었고, 이제는 집으로 들어가봐야만 해요...

집으로 들어가면, 부모님의 잔소리를 한동안 들어야만 하겠죠.

그야 그런게, 집에도 없고 사무소에도 없었으니 저의 소재를 알 수가 없잖아요.

실종 신고같은 건 안 하신 모양이지만, 뭐, 그래도 집엔 들어가야죠.

저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까, 저는 집으로 돌아가 봐야겠어요.

 

 

『와리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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