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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리티P 시리즈] 시마무라 우즈키 - Like a Fastball (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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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01, 2018 03:28에 작성됨.

시마무라 우즈키 - Like a Fastball (中-1)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그로부터 4일이 지난 어느 날.

 

퇴근시간을 약간 넘긴 시각, 트레이닝 파트 안쪽에 위치한 트레이너들의 사무실에서는 루키 트레이너가 마무리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마스터 트레이너는 상무의 집무실에 올라갔고, 베테랑 트레이너와 트레이너는 쉬는 날이었기에 오늘 사무실의 뒷정리를 하는 것은 그녀 혼자 뿐이었다.

 

“음, 좋아. 이 정도면 되겠지.”

 

뒷정리를 마치고, 사무실의 보안장치를 잠금으로 설정한 뒤 루키 트레이너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트레이닝 파트의 복도를 걸어 나왔다. 어차피 회의는 상무의 집무실에서 진행되고 있었으니 그 동안은 신데렐라 걸즈의 사무실에서 치히로와 함께 회의가 마치기를 기다릴 심산이었다.

 

“어?”

 

그 때, 복도를 걸어가던 그녀는 연습실의 문 틈으로 새어나오는 희미한 불빛을 발견했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곳은 다름아닌 댄스 연습실이었다.

‘내가 아까 불 안 끄고 나갔나?’라고 생각하며 열린 문 틈 사이로 조심스레 연습실 안을 바라보던 루키 트레이너는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불을 안 끈 것이 아니라, 연습실 안에 아직도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엑, 우, 우즈키?!”
“아……루키 트레이너 씨?”

 

거세게 문을 열어젖힌 루키 트레이너는 땀 범벅이 된 채 자신을 바라보는 우즈키를 향해 다가갔다. 히터조차 켜지 않아 냉기가 흐르는 연습실이었지만, 그녀의 앞에 위치한 거울만큼는 부옇게 김이 서려 있었다. 그 정도로 그녀는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지금까지 계속 여기에 있었어? 아까 집에 간다고 했잖아!”
“아, 그게……그때 가려고 했는데요……생각해보니까 아직 조금 안 되는 부분이 있어가지고……에헤헷.”
“에헤헷, 이 아니야! 눈꺼풀 떨리는 거 봐……그만 하고 앉아서 좀 쉬어. 금방 뭐 마실 거 가져올테니까!”
“네? 아,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면서……”

 

좀처럼 가만히 서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디딤발을 바꾸는 우즈키를 바라보던 루키 트레이너는 괜찮다며 손사레를 치는 우즈키를 막무가내로 바닥에 주저앉히고는 그녀의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만지기 시작했다. 우즈키의 팔과 다리의 근육 여기저기를 만져보던 그녀의 표정이 금세 창백하게 변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계속 했던 거야?! 서 있기도 힘들잖아!”
“그, 그치만요, 지금의 저로는 턱없이 부족한걸요…….”
”아무튼 가만히 앉아 있어! 지금 마사지 해 줄 테니까, 그거 받고 당장 집으로 가. 알겠지?”
“그, 그치만…….”
“우즈키!”
“네, 네?!”
“아무리 막내고 ‘루키’라지만, 나도 엄연한 트레이너야! 나는 너희들의 컨디션을 체크할 의무가 있고, 그걸 관리해야 할 의무도 있어! 이건 ‘트레이너’로써 네게 말하는 거야. 알겠어?!”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단호한 목소리로 자신을 쏘아보며 말하는 루키 트레이너의 모습에 우즈키는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습은 쉬고 나서 해도 괜찮으니까. 응? 몸을 소중하게 대해 줘. 부탁이야.”
“네……그렇게 할게요.”

 

 

***

 

 

우즈키를 집으로 돌려 보낸 뒤, 사무실로 돌아온 루키 트레이너는 마스터 트레이너와 치히로에게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거든요. 일단 오늘은 돌려보내기는 했는데요…….”
“세상에…….”
“으음…….”

 

자초지종을 듣고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리는 치히로의 옆에서 마스터 트레이너는 낮은 신음을 흘렸다.

 

”요 며칠 계속 스스로 연습한다고는 들었는데, 그렇게 오버워크를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제가 좀 더 빨리 눈치챘어야 했는데…….”
“아니, 네 잘못만은 아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눈이 팔린 내 책임도 있으니까. 센카와, 당신도 몰랐나?”

 

마스터 트레이너는 고개를 돌려 치히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요 며칠 안색이 조금 안 좋다 보인다고는 생각했지만…….”
“했지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면 늘 괜찮다고만 했거든요.”
“그런가.”
“어쩌죠? 모레까지는 프로듀서 씨도 안 계신데……”

 

치히로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일정표를 바라보았다. 프로듀서의 이름이 적혀 있는 일정표에는 자그마한 글자로 ‘출장’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봄 라이브의 제작회의를 위해 3일간 출장을 나가 있었던 것이다.

 

“……일단 연락이라도 드려 봐야 할까요?”
“그 편이 좋겠군. 부탁해도 될까?”
“네, 그럼 잠시 실례할게요.”

 

고개를 끄덕인 치히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전화를 들고 사무실을 나갔다. 마스터 트레이너는 아직도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막내를 바라보았다.

 

“뭐야, 뭔가 석연찮은 부분이라도 있다는 표정이군.”
“네. 우즈키의 상태라고 해야 할지, 그게 조금…….”

 

말꼬리를 흐리던 루키 트레이너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확실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뭔가에 쫓기는 것 같았어요.”
“쫓기는 것 같았다?”
“네…….”
“그렇군……쫓기는 것 같았다고.”

 

그 때, 때마침 통화를 마친 치히로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연락은 됐나? 그가 뭐라고 하던가?”
“알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우즈키가 먼저 손을 내밀 때까지 절대로 먼저 다가가지 말라’는 말씀도요.”
“그렇군. 그렇게 하도록 하지. 동생들에겐 내가 따로 전달해두마.”
“네, 부탁드릴게요.”

 

 

 


 

 

 

 

그 날 저녁.
교외에 위치한 비즈니스 호텔에서는 3월에 개최되는 합동 라이브에 대한 제작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으음……이게 이렇게 되는 건가……? 애매한데…….”

 

회의는 이미 끝난 지 오래인 밤 늦은 시각이었지만,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프로듀서는 창가에 설치된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노트북의 화면에 떠오른 것은 치히로와 상무에게서 받은 업무자료였다. 한참이나 노트북의 화면과 씨름하던 프로듀서는 한숨 섞인 호흡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등받이로 몸을 기대었다. 꼬박 하루 종일 진행된 회의에 이어 곧바로 서류작업을 하려니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눈두덩이를 손으로 문지르며 크게 기지개를 편 그는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집중이 통 안 되는군……잠깐 바람이나 쐬고 올까.”

 

생각이 미치면 행동은 빨랐다. 프로듀서는 곧바로 옷걸이에 걸어 둔 코트를 들고 방을 나섰다.

호텔 밖에는 커다란 연못을 둘러싸는 형태로 꾸며놓은 자그마한 정원이 있었다. 여기저기 심어 둔 동백나무가 반짝거리는 정원에는 가로등 대신 사람 허리 높이만한 정원용 램프를 군데군데 세워 은은한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조금 먼 곳을 바라보면, 저 멀리 한밤중에도 화려함을 잃지 않는 불야성(不夜城)의 풍경이 보였다.
산책을 나온 프로듀서가 호텔의 규모를 생각하면 예상외로 수준 높은 정원의 모습에 감탄하던 그 때, 그는 자신의 가슴팍에 넣어둔 업무용 휴대전화가 붕붕거리는 진동을 느끼고는 휴대전화를 끄집어냈다.
휴대전화에 떠오른 번호를 확인한 프로듀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면에 떠오른 번호는 다름아닌 마스터 트레이너의 번호였던 것이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나무 다리 위로 올라간 프로듀서는 휴대전화를 열어 귓가로 가져갔다.

 

“네, 프로듀서 P입니다.”
[나야, 마스터 트레이너. 바쁠 때인가?]
“아뇨, 지금은 괜찮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별 건 아니고, 시마무라 관련으로 할 얘기가 있어서.]
“그거라면 센카와 씨에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그런데 이렇게 따로 연락을 주셨다는 건, 그 이외에도 뭔가 특이사항이 있다는 뜻이겠죠?”
[하하, 정답이야.]

 

그렇게 운을 뗀 마스터 트레이너는 휴대전화 너머로 프로듀서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루키 트레이너가 치히로에게 말해 준 것에 더해 그녀 자신이 본 것과, 루키 트레이너에게서 들었던 것을 포함한 내용이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프로듀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을 떠난 숨결은 곧바로 새하얀 뭉게구름이 되어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뭐야, 센카와가 이건 얘기 안 하던가?]
“네. 센카와 씨는 그냥 우즈키가 최근 무리하는 것 같다고만 말씀하셨거든요.”
[그렇군. 그런데 그런 것 치곤 반응이 무척 태연한데.]
“뭐……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지요.”

 

그는 전화기를 든 손을 바꾸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아이가 그렇게 하는 거라면 아마도 심리적인 부분일겁니다.”
[심리적인 부분?]
“네, 원래 시마무라는 말이 조금 많은 편이에요. 기분이 좋은 날에 같이 있으면 재잘재잘, 끊임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죠. 오늘 하루 자기가 뭘 했는지, 자기가 뭘 봤는지, 자기가 뭘 느꼈는지.”
[하긴……처음 만났을 때 그런 느낌을 받긴 했더라만.]
“그런데, 뉴 제너레이션즈를 구성한 다음날부터 말수가 줄어들었어요.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구나, 싶었죠.”
[그런데 어째서 가만히 있었지?]
“이야기는 계속해서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그 아이는 저를 피하더군요. 자기는 괜찮다면서.”

 

프로듀서는 호흡을 고르듯 잠시 말을 멈추었다.

 

“……시마무라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요전에 해 드린 적이 있었죠? 처음 만났을 때 얘기.”
[아아, 기억이 나는군. 머리가 꽃밭으로 가득 찬 아이랬던가.]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한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프로듀서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전에 있던 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결코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겠죠.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그 아이에게 트라우마를 심어 줄 정도였다면요.”
[그러면 어떻게 할 거지? 이대로 밀고 나갈 생각인가? 스스로 극복하기를 바라면서?]
“그럴 리가요. 좀 더 근본적인 부분으로 들어가야죠. 그 아이에게 다가갈 핑계가 필요합니다. ‘봐, 지금 너는 괜찮은 게 아니잖아’라고 말해 줄 수 있는 핑계가.”
[그렇군……지금껏 별 말이 없어서 그냥 관망하는 줄 알았다만……괜한 걱정이었어.]
“아뇨, 오히려 제가 우리 애들한테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하죠. 아무튼, 걱정하신 바는 잘 알겠습니다. 별 일 없을 거에요. 맡겨 주세요.”
[그래, 그럼 이쪽은 당신만 믿도록 하지. 바쁠텐데 방해해서 미안해.]

“아, 그리고 제가 메일로 일정표 새로 보내놨으니까 참고해주세요. 혼다가 급한 일이 있어서 연습을 못 나온다고 하더군요.”
[알겠다. 참고하도록 하지.]
 

수고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귓가에서 휴대전화를 떼어낸 프로듀서는 우즈키가 매번 습관처럼 말하는 구절을 떠올렸다.

 

-네, 시마무라 우즈키,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그 노력이 공회전이 되면 곤란한데…….”

 

새하얀 한숨 한 뭉터기를 토해낸 프로듀서는 휴대전화를 품 속으로 되돌리고 다리의 난간에 기대어 서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새벽까지 휘황찬란한 불빛이 번쩍이는 도시와 달리, 해질녘이 되면 가로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광원이 사라지는 곳이었기에 구름 한 점 없는 겨울의 날씨와 맞물려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별이 보였다.

 

“아냐가 좋아하겠군. 다음에 한번 데리고 올까…….”

 

프로듀서가 유독 별을 좋아하는 자그마한 러시아 혼혈 소녀를 떠올리던 그 때, 또다시 붕붕거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가슴팍의 업무용 전화가 아닌 바지 주머니에 넣어 둔 개인용 휴대전화였다. 업무용에 비하면 몇 갑절이나 커다란 개인용 휴대전화의 화면에는 무척 뜻밖의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코히나타……?”

 

코히나타 미호. 그녀는 우즈키와 줄곧 붙어 다니곤 하던 쿠마모토 출신의 동갑내기 친구였다. 그 이름을 본 순간, 프로듀서의 머릿속에서 재빨리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래, 잘 하면 이걸로…….”

 

생각을 마친 프로듀서는 곧바로 개인용 휴대전화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신데렐라 걸즈 총괄 프로듀서 P입니다.”

 

 

 

 


 

 

 

 

“으응…….”

 

팔과 어깨에서 느껴지는 저릿한 느낌에 우즈키는 신음을 흘리면서 눈을 떴다. 흐릿한 눈 앞에는 동영상을 재생중인 노트북의 화면이 형형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깜박 졸았네……몇 시지……?”

 

몇 번째나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배터리가 반 정도 남아있는 노트북의 화면에는 안무가 녹화된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몸을 일으킨 그녀는 눈을 비비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불이 꺼져 있는 방 안은 시계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모니터의 하단에 떠오른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후아아암…….”

 

우즈키는 늘어져라 하품을 한 뒤 다시 노트북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몸도 눈꺼풀도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지금은 잠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조금만 더 보고 자도 되겠지……조금만 더 보자…….”

 

두 뺨을 찰싹 두드려 몰려오는 잠 기운을 쫓아낸 우즈키는 화면에 떠오른 동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2일이 지나, 프로듀서의 출장이 끝나는 날이 되었다.

 

평소대로라면 트레이너들과 함께 레슨을 받고 있었을 시간이었지만, 우즈키와 린은 별관의 지하가 아닌 도내에 위치한 S방송국에 있었다. 그 날은 카에데와 마유가 참가하는 발렌타인 특집 프로그램의 촬영이 있던 날이었고, 때마침 개인적인 사정으로 미오가 연습에 참가할 수 없는 날이었기 때문에 프로듀서는 우즈키의 컨디션 관리를 겸해 레슨 대신 현장 견학으로 일정을 변경한 것이었다.

 

“역시 CG프로덕션은 굉장하네요. 대기실부터 저희랑은 한참 달라서…….”
“그래? 거기는 어땠는데?”
“저희는 매니저분들이 안 계셨거든요. 그래서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게 아니면 대부분 저희들 스스로 메이크를 해야 했어요.”
“아, 그래서 K프로덕션만 리허설 시간이 좀 짧았구나?”
“네. 맞아요.”
“우와……힘들었겠네.”
“헤헷, 처음에는 그랬는데, 하다 보니까 그것도 적응이 되더라구요.”

 

촬영이 끝난 뒤, 우즈키와 린은 대기실을 나와 차량이 대기하고 있는 방송국의 정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카에데와 마유는 촬영의 뒷정리가 남아 있어서 우선 두 사람을 먼저 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ㄱ자로 꺾인 복도를 걷고 있던 바로 그 때, 모퉁이 건너편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오던 한 남성이 린의 옆에서 걷고 있던 우즈키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꺄악!”
“어엇!”

 

남자는 두어 걸음 뒷걸음질을 치는 것으로 끝났지만, 우즈키는 자신보다 적어도 반 곱절은 더 큰 남자의 덩치에 부딪혀 성대하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툭 튀어나온 콧잔등과 길게 찢어진 눈꼬리, 그리고 가느다란 입술이 마치 어딘가 뱀이나 쥐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였다.

 

“뭐야! 계집애가 눈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가느다란 눈을 한껏 부라리며 언성을 높이려던 남자는 눈 앞에서 엉덩이를 문지르고 있는 우즈키를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오야, 이게 누구인가. 시마무라 우즈키 양 아니신가?”
“네……?”

 

별안간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우즈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뱀처럼 두 눈이 길게 찢어진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우즈키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프, 프로듀서 님……?”
“야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누가 당신 프로듀서야? 이젠 남남이잖아. 시마무라 우즈키 양.”

 

남자는 가뜩이나 가늘게 찢어진 눈을 더욱 가늘게 뜨며 그녀를 향해 자세를 낮추었다.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우즈키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누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신세 좋아 보인다? 난 누구씨 덕분에 다시 밑바닥에 꼬라박혔는데 말이야. 자, 이거 좀 봐. 사원증에 적힌 직책 말이야. ‘영업부’ 보이지? 네 업적이야. 너 덕분에 난 팔자에도 없는 영업부 말단 신세로 처박혔다고.”
“죄, 죄송해요…….”
“아직도 이 동네에 계속 붙어 있는 거 보면 너도 참 징하다. P라고 했던가? 너를 데려간 그 남자. 너처럼 아무 것도 없는 쭉정이 준다고 좋다며 데려간 걸 보면 그 녀석의 안목도 참 형편없나봐. 싸구려 동정심 때문인가?”

 

“아니지, 아니지.” 남자는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한테 동정심을 느낄 가치라도 있을려나 모르겠다. 혹시 베개영업이라도 했냐? '제발 좀 데려가 주세요~'하고 말이야. 응? 말해봐, 맞지 않아? 그렇지 않고서야 CG프로덕션 같은 곳에서 널 데려갈 이유가 있어? 응?”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쏘아붙이듯 말하는 남자의 말에 우즈키는 대꾸다운 대꾸조차 하지 못한 채 새파랗게 굳어 가만히 벌벌 떨고만 있었다. 그 때, 우즈키와 남자의 사이에 린이 손을 집어 넣었다.


“당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우즈키랑 아는 사이야?”

“이야, 이게 누구야. ‘트라이어드 프리무스’의 시부야 린 아니신가?”

 

린의 얼굴을 알고 있던 것인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 남자의 눈이 아주 조금이지만 휘둥그래졌다. 남자는 린의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우즈키를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것 참, 너 정도나 되는 인재가 이런 쭉정이랑 어울리다니, 재능이 울겠군. 잘 나가고 싶다면 얼른 그 녀석 옆에서 떨어지는 게 좋을거야. 너무 가까이 붙어 지내다간 평범이 옮을지도 모른다고?”
“우즈키한테 자꾸 쭉정이, 쭉정이 거리지 마! 당신이 뭘 안다고!”

 

잔뜩 가시가 돋힌 린의 말을 한 귀로 받아 흘리면서 남자는 입술을 한껏 비틀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린조차도 혐오감을 느낄 정도로 불쾌한 표정이었다.

 

“크크, 조금 전에 저게 한 말을 못 들은 모양이군. 나는 저 평범녀의 전 담당 프로듀서였다.”
“뭐라고……?”
“정말 고역이었단 말이야. 얼굴은 조금 봐 줄만 했지. 하지만 그게 끝이었어. 춤도 못 춰, 노래도 못 해, 그렇다고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야. 그야말로 평범 그 자체란 말이지. 할 줄 아는 거라곤 헤실거리면서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뿐이고.”
“웃기지 마! 노력하겠다는 게 뭐가 나빠서? 무엇이든 노력한다는 건 좋은 일이야! 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뜻이니까!”
“오오, 정론이군. 정론이야. 그럼, 그렇게 ‘노력’을 높게 평가하는 우리 재능 덩어리님께 여쭤보지. 결실이 없는 노력은 무슨 가치가 있지?”

 

남자의 말이 나올 때마다 우즈키는 한 걸음씩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그는 또다시 입꼬리를 한껏 비틀어 올리며 우즈키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와 눈을 마주친 우즈키의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크크, 결실이 없는 노력도 노력이라고 해 줘야 하나? 그냥 삽질이 아니라?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그저 ‘노력할게요’를 입에만 달고 사는 저런 게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세상에, 그건 열 살 짜리 꼬맹이도 할 수 있어. 입이 있으면 대답을 해 봐, 응?”

 

남자의 말에 린은 자신도 모르게 우즈키가 있는 등 뒤를 돌아보았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일그러진 표정으로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던 우즈키는 린과 눈을 마주치자 곧바로 몸을 돌려 달음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우즈키! 잠깐만……!”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멀어져가는 우즈키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린의 등 뒤에서 찢어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웃지 마!”

“하하하하! 안 웃게 생겼냐? 저 도망가는 꼬라지 봐라. 쟤는 저게 딱 어울린다니까? 구체적인 목표도 없고, 구체적인 방향도 없이, 그저 머리에 꽃밭만 가득 차서 말이지. 응? 그래놓고 뭐?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하, 웃기고 앉았네. 그건 노력이 아니라 시간낭비겠지.”

 

린은 언젠가 프로듀서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것은 데뷔 이후 처음으로 나간 오디션에서 떨어졌을 때, 분한 마음에 눈물을 삼키던 린과 나오, 카렌을 앞에 두고 프로듀서가 했던 이야기였다.

 

“노력하는 건 좋아. 무언가 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 노력을 동력 삼아서 내가 어디로 갈 것인지 방향을 정하는 거다. 목표를 잊지 마. 내가 어디로 갈 것인지, 목적지를 눈에서 떼어 놓지 마. 너희들의 노력을 공회전으로 만들어서는 안 돼. 알겠지?”

 

“이제 알겠나? 저 녀석의 노력은 그런 거다. 아무런 방향성이 없어. 노력을 해서 자가발전을 하면 뭘 하지? 거기서 나오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니까 저 녀석은 쭉정이라는 거다! 노력하는 흉내밖에 내지 못하는!”

 

“뭐, 너희들이 그걸 스스로 할 수 없으니까 내가 월급을 받으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거지만 말이야. 너희들이 그걸 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난 필요 없었을 거야.”

 

남자의 말에 겹치듯 프로듀서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정 반대되는 이야기였다. 잔뜩 달아올랐던 머리가 식는 것이 느껴졌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린은 주먹을 꽉 움켜쥐어 눈 앞의 남자를, 아니,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을 노려보았다.

 

“아니, 틀렸어. 당신은 자신의 무능력을 우즈키에게 덮어 씌우는 것 뿐이야.”
“뭐라고?”
“우리 프로듀서는 말했어. ‘프로듀서는 우리들에게 목적을 잡아 주는 사람’이라고. 우리가 헤매지 않도록 가야 하는 길을 잡아 주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실제로, 그 사람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목표를 가르쳐 주었어. 그런데 당신은 우즈키한테 뭘 해 주었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잖아! 진짜 무능한 건 당신이야!”

 

‘무능’이라는 말에 남자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두 눈을 부릅뜬 그는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아가씨, 듣자듣자하니 점점 표현의 수위가 도를 넘어서는데, 난 어른이고 넌 꼬맹이야. 집에서 부모님들이 어른 앞에서는 입조심하라고 안 그러든?”
“이, 이거 놔!”
“누가 무능하다고? 좋은 말로 할 때 헛소리 지껄여서 죄송하다고 사과해. 그러지 않으면 험한 꼴을 보게 될 테니.”
“부끄러운 줄 알아! 다 큰 어른이 여자애한테 손이나 대고……!”
“입 닥쳐!”

 

좀처럼 린이 굴복하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남자는 잡고 있던 그녀의 멱살을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손아귀에 힘이 더 강하게 들어갔다. 

 

“어때, 이 상황이 돼서도 남한테 무능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나올까? 자, 말해봐. 얼른.”
“으, 큭…….”
“말해 보라고! 그 잘난 주둥아리 다시 놀려 봐!”

 

남자는 핏발 선 눈으로 린을 다그쳤다. 그의 손아귀에 들어간 힘이 더해질수록 투둑, 하고 목덜미의 단추가 뜯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린은 비명이라도 질러보려 했지만, 옷깃으로 단단히 조이는 목에서는 그마저도 여의치가 않았다. 오히려 피가 머리에 쏠려 점점 시야가 흐릿해지고 있었다.

 

‘수, 숨이……!’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일까, 점차 흐릿해지는 그녀의 귓가로 쿠당탕,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눈 앞의 남자를 덮치는 커다란 감청색의 실루엣이 보였다.

 

 

 


 

 


출장을 마치고, 프로듀서는 출장 장소에서 사무실로 돌아가는 대신 아이들이 있는 S방송국으로 향했다. 다른 아이들은 레슨을 마치고 해산할 시간이었으니, 기왕이면 함께 합류해서 돌아가는 길에 맛있는 거라도 사 줄 생각이었다.

 

“어디, 이쪽쯤인가?”

 

방송국 직원들에게 물어가며 린과 우즈키가 향한 길을 뒤따라가던 그는 ㄱ자로 꺾이는 널따란 복도에 쩌렁쩌렁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데……누구랑 말싸움이라도 하는건가?”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 모퉁이를 향해 걸어간 그는 조심스레 머리를 내밀어 모퉁이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정장 차림의 남자와 긴 흑발을 늘어뜨린 캐주얼한 차림새의 여자아이가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남자의 뒷모습에 가려져 목소리만이 복도를 타고 들려왔지만, 프로듀서는 단번에 그 여자아이가 린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시마무라도 같이 있다고 들었는데……어디갔지?’

 

좀처럼 보이지 않는 우즈키의 모습을 찾고 있던 프로듀서의 눈에, 린에게 성큼성큼 걸어간 남자가 린의 멱살을 두 손으로 붙잡는 것이 보였다.

 

“저게 미쳤나?”

 

몸이 머리보다 더 빨리 반응했다. 모퉁이를 박차고 나가며 들고 있던 캐리어를 대충 집어 던진 프로듀서는 쏜살같이 두 사람을 향해 내달렸다. 대여섯 걸음만에 그 장소에 도착한 그는 린의 멱살을 잡고 있느라 훤히 드러난 남자의 옆구리를 향해 뿌득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억세게 움켜쥔 주먹을 그대로 냅다 박아 넣었다.

 

“손 놔라.”

 

 


 

 

 

쿵, 하고 무언가를 내던지는 소리와 함께 뻐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복도 전체를 울렸다. 그와 동시에 윽, 하는 억눌린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곧이어 무언가 무거운 것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며 린은 자신의 몸이 풀려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콜록, 콜록!”

 

두 손으로 목을 문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아 마른 기침을 내뱉던 린은 머리에 쏠렸던 피가 다시 돌기 시작할 때까지 잠시 동안 눈을 질끈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잠시 후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오자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의 목을 조르던 남자는 자신의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런 그의 옆에는 눈에 익숙한 디자인의 감청색 정장을 입고 있는 남성이 서 있었다. 남자가 쓰고 있던 뿔테 안경의 렌즈가 반짝거리며 형광등의 불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프, 프로듀서?!”
“시부야,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으, 응. 난 괜찮아.”

 

프로듀서는 복도 한 구석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자신의 캐리어를 곁눈질로 슬쩍 쳐다본 뒤 다시 린에게로 자세를 낮추었다. 조금 전 들렸던 쿵 하는 소리는 아무래도 그것을 집어 던지는 소리였던 모양이었다.

 

“어디, 목소리 한번 내 봐.”
“아아아아, 응, 괜찮아.”
"이거 몇 개로 보여?”

“검지랑 중지, 2개.”

“음, 좋아. 괜찮아 보이네.”


고개를 끄덕인 프로듀서는 바닥에 쓰러져 고통 섞인 신음소리를 흘리는 남자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시마무라는 혹시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
“그, 그게……좀 전까지 여기 있었는데……어디로 간 건지 나가버렸어. 쫓아갈게. 지금이라도 내가 뛰어가면…….”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프로듀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는 일단 쉬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시마무라의 일도, 이 일도, 이 뒤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하지만……!”
“시부야. 일이 이렇게 된 건 순전히 내 잘못이야. 그러니 내가 책임을 지게 해 다오.”
“……아니야, 프로듀서는 아무 것도…….”

 

고개를 흔들며 프로듀서를 바라보던 린은 그와 눈을 마주치자 말을 하려다 말고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은 더 이상의 고집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의 프로듀서에게 무슨 말을 하더라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그와 함께했던 2년간의 세월이 그녀에게 몇 번이나 가르쳐주었다. 입술을 깨물던 린은 어깨를 늘어뜨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미안해, 도움이 되지 못해서.”
“천만에. 넌 최선을 다했어. 굉장히 믿음직스러워졌구나.”

 

바닥에서 린을 일으켜 세운 프로듀서는 코트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준 뒤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자, 정문에 센카와 씨가 있을 거야. 사무실에 맛있는 거 시켜 놨으니까 같이 가서 먹어.”
“응……고마워, 프로듀서.”
“별 말씀을. 나는 일이 있어서 알아서 갈 테니까, 센카와 씨한테 먼저 출발하시라고 전해줘. 그리고 어딘가 몸이 안 좋다 싶으면 바로 병원으로 가고. 알겠지?”
“응. 고마워.”

“고맙다는 말은 내가 해야지. 고생했다, 시부야.”

 

프로듀서는 가볍게 말아 쥔 주먹을 그녀를 향해 내밀었다. 마찬가지로 손을 들어 가볍게 주먹을 맞부딪힌 린은 잰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아 복도를 빠져 나갔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복도 쪽을 바라보던 프로듀서는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몸을 일으켜 여전히 바닥에 웅크려 있는 문제의 근원을 향해 다가갔다. 갈빗대가 나가기라도 한 모양인지, 여전히 옆구리를 부둥켜안은 채 웅크리고 있는 남자의 눈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으……으윽……콜록!”

 

프로듀서는 바닥에 웅크린 채 고통 섞인 신음을 흘리고 있던 남성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남자의 옆에는 'K프로덕션 영업팀'이라고 적힌 사원증이 떨어져 있었다. 사원증에 적힌 K라는 이름은  그 역시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우즈키의 이적 처리를 위해 K프로덕션을 방문했을 때, 그녀의 담당 프로듀서라며 자신을 만나러 온 남자였다.

 

“이봐요, 당신 지금 괜찮습니까?”

 

프로듀서의 물음에 남자는 그의 얼굴을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윽……니 눈에는……이게 괜찮아 보여……?!”
“안 괜찮아 보이네요. 다행이에요.”
“뭐, 뭐……?”
“괜찮아 보였으면 안 괜찮아질 때까지 몇 대 더 때릴 생각이었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프로듀서는 손을 뻗어 남자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옆구리를 감싸쥐고 기침을 내뱉던 남자는 그제서야 덜덜 떨면서 눈알을 돌려 자신의 머리를 쥐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콜록, 콜록! 너, 너는……!”
“……늘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밝고 긍정적이었던 시마무라한테 뭔 짓을 했길래 애가 저 꼴이 났는지가 말이죠. 그런데 당신이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까 어느 정도는 예상이 가는군요. 이전 사무소에서 그 아이가 무슨 꼴을 당했을지도.”

 

“거기다” 프로듀서는 씨익 웃으며 남자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넣었다. 억세게 움켜쥔 손 끝을 통해 머리카락이 한 올씩 뜯겨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당신 지금 내가 보는 앞에서 우리 애 건드렸죠? 그래, 오늘 한번 끝장을 봅시다. 시마무라 건 이외에도 내가 저번 오디션 때부터 당신네들한테 감정이 좀 많았거든. 오늘 그거 다 풀고 허심탄회하게 헤어지자고요.”

 

프로듀서는 씨익, 송곳니를 드러내는 미소를 지었다. 담당 아이돌들이나 치히로가 본다면 기겁할만한 표정이었다.

 

 

 

--------------------------시마무라 우즈키 - Like a Fastball (下-1) 에서 계속됩니다.


 

 

시리즈 역대 최초의 연참입니다. 장하다 나, 짝짝짝.

....은 거짓말이고,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게시글이 도중에 잘리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두 개로 나누어 게시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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